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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연화26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 이렇게 천마가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공모전참가작

장연화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5.08 11:58
최근연재일 :
2024.06.27 22:20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58,366
추천수 :
1,966
글자수 :
262,810

작성
24.06.10 19:05
조회
732
추천
33
글자
11쪽

"그대는 그저,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길을 나아가주게."

DUMMY

강우는 침묵했다.


장환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강우는 줄곧 침묵하고 있었다.


그가 천무지체를 타고난 무당파의 일대제자였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도.


그가 규촌에서 벌어진 학살에 대해 들려주었을 때도.


그것이 학살임을 깨달은 순간에 관해 이야기할 때도.


그를 자각한 직후, 동문, 문파, 나아가 무림 그 자체에 배신당했던 순간에 대해 그가 말할 적에도.


모든 힘을 잃고 그 누구보다도 아래에서 엎드린 채 살았던 시절을 토로할 때도.


창연이 신공이라 이름 지은 힘을 창시한 뒤 이 세상을 떠돌기 시작했음을 알려주었을 때도.


끝내···.


나를 만나고.


내가 나로서 완성되기 위해서,


공헌명을 향한 증오, 오랜 세월 동안 가슴 깊숙이 억눌렀던 그 증오가 터져 나오도록 만들기 위해서···.


어머니를 죽게 내버려 두었다고.


의도적으로. 구할 수 있었음에도 방관했다고.


그 사실을 고해할 때까지, 강우는 줄곧 침묵하고 있었다.


“······.”


끔찍한 내용을 듣게 될 거라고, 진작부터 각오하고 있었다.


분명 그 또한 자신 못지않게, 어쩌면 그보다 훨씬 심한 정도로 처절한 일을 겪었을 거라 예상하였다.


그의 강함, 더불어 원한과 증오를 장작으로 삼는 이 힘의 성질을 생각하면··· 그런 사연이 없는 쪽이 도리어 이상했다.


하지만.


그렇지만. 이건.


“······.”


- 하아.


한숨인지 탄식인지 모를 희미한 목소리가,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경악스러웠다.


노인의 이야기는 자신이 상상한 정도를 아득히 뛰어넘을 만큼 경악스러웠다.


강우는 다만 멍한 표정을 짓고서 노인을 멀거니 내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양어깨에, 그리고 머리칼 위에 어느샌가 소복이 허연 잿가루가 쌓여 있었다. 마치 처음 만난 그날, 하얀 눈이 길을 따라 도톰하게 쌓여 있던 것처럼.


할 수 있는 말은 많았다.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반응할 수 있었다.


‘말도 안 돼. 거짓말이야. 그런 일이 정말 벌어졌을 리가 없잖소.’ 믿을 수 없다는 것처럼 그리 말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눌러 삼켰다.


지금 와서 그가 거짓을 고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더구나 의념을 읽어내는 이 시야를 통해, 노인은 오롯이 진실만을 이야기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시야를 통해 볼 수 있었다.


그의 가슴 속에서 꺼져가는 불꽃.


진청색을 띤 채 꺼져가는 화마.


지독한 비탄과, 깊은 부끄러움.


그가 이 순간 무엇을 느끼는지를 알 수 있어서··· 도저히 그런 식으로 반응할 수 없었다.


그리 말하는 것만으로도 노인에게 더 큰 절망과 고통을 줄 것 같아서.


‘어떻게 그런 일이···.’ 몸서리칠 만큼 참혹하다는 듯 그리 말할 수도 있겠지. 그 말 또한 눌러 삼켰다.


그것은 기만이었다.


이토록 사람을 죽여놓고서.


어차피 살인자에 불과한데. 피차.


이 상황에서 노인을 연민하는 것이야말로 그를 모욕하는 일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노인에게 있어서 연민은 질책보다도 더 고통스러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무어라 말해야 하는가.


저 처절한 고백 앞에 나는 무어라 답해야 하는가.


강우는 생각했다.


고민했다.


마음을 가라앉혔다.


진정하려 애썼다.


저 멀리서 외치는 듯한 아우성을 듣지 않으려 애썼다.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마침내 정신을 차릴 즈음.


“미안하네.”


강우가 대답하기에 앞서, 장환은 먼저 말을 꺼냈다.


“미안하다.”


단지 그 말만을 되뇌면서, 그는 아이처럼 울기 시작했다.


목 놓아 우는 통곡 한번 없이, 그저 자그마한 흐느낌과 함께.


“정말, 미안하다···.”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담아두었으나, 단 한 번도 전할 기회가 없었던 그 말을··· 장환은 뒤늦게 입 밖으로 꺼냈다.


그 처절한 사죄에.


“.”


강우는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비록 노인의 시선은 자신에게 향해 있었으나, 강우가 느끼기에 그는 자신을 보고 있지 않은 듯했다.


저 진심 어린 사과가 자신을 향한 게 아닌 것 같았다.


문득, 강우는 어떤 환상을 보았다.


마치 노인이 말하던 그 소녀, 자신은 어찌 생겼는지조차 알지도 못하는 그 소녀가 제 옆에 서서 노인의 사과를 받아주는 것 같았다.


그 소녀의 모습은, 어째선지 어머니와 닮아 보였다.


그 직후에.


“-”


격렬한 충동이 강우의 머릿속을 뒤흔들었다.


입 닥치라는 말이 튀어나오려는 것과 동시에 노인을 위로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이제 와서 뒤늦게, 그것도 나를 제대로 보지도 않고 사과하느냐며 일갈하고 싶단 마음이.


당신에게 벌어진 일, 그리고 그로 인해 당신이 내려야만 했던 선택은 전부 어쩔 수 없던 것들이었다고 격려하고 싶단 마음이.


그 상반된 욕구가 더불어, 그리고 같은 순간에 피어올랐다.


그러나 강우는.


“······.”


단지 눈을 감았다.


장환을 원망하지 않았다.


끝끝내, 그를 원망하지 못했다.


일찍이 자신이 은인이라 여겼으며, 또한 절대적인 힘을 가진 우상이라 우러러보던 그조차도···.


‘···결국, 주체할 수 없는 비탄에 휘둘려 마음이 문드러져 가던 사람에 불과했구나.’


나와 하등 다를 바 없는.


조금도 다르지 않은, 똑같은 사람.


그걸 깨달아버렸기 때문에.


그래서··· 그의 간절함과 처절함을 이해해버렸기 때문에.


내가 저 사죄를 받아주더라도, 받아주지 않더라도, 그의 고통은 절대로 가시는 일이 없을 테니까.


분명 나 또한 그럴 테니까.


그렇기에 강우는 장환을 원망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강우는 다만 침묵했다.


더불어··· 장환 또한.


“···내 원한을 대신 풀어달라느니, 끝내 이루지 못했던 복수를 대신 이뤄달라느니 하는 말은 하지 않겠네.”


강우의 뜻을 이해했는지, 울음이 잦아든 후 더없이 작아진 목소리로 그리 말했다.


“제발 이 무림을 부숴달라거나, 자네를 따르는 저들을 이끌어달라든가 하는 부탁 또한 하지 않을 거야. 나는··· 자네에게 아무것도 강요할 자격이 없어···.”


단어 하나하나에 무거운 회한이 깃들어 있었다.


지독한 부끄러움. 그것은 분명 오롯이 눈앞의 강우를 향해 전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이런 내가, 염치없게도 단 하나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 말과 함께.


장환은 줄곧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강우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피워낸 불씨를 이어받아, 저 하늘에 닿을 겁화로 키워낸 자를.


타고 남은 재처럼, 더없이 창백해진 그의 얼굴을.


이 생의 마지막 온기를 담아··· 사람의 눈으로 바라보고서,


“그대는 그저,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길을 나아가주게.”


오직 그것만이.


내가 바라는 전부야.


그 말을 끝으로, 비로소 머리가 기울어졌다.


강우는 볼 수 있었다.


비탄에서 비롯된 원한, 그 원한에서 비롯된 증오. 이 모든 것을 불사르며 재앙을 부르고자 했던 그가···.


삶의 마지막 지점에 다다라, 끝내 제 가슴속에 있던 불꽃을 꺼트리는 모습을.


지금까지 그 자신을 지탱하던, 그의 품속에서 타오르던 진청색 불꽃이 사그라드는 광경을.


“······.”


- 안녕히.


···그런 인사라도 남겼다면 좋았을까.


안구가 뻑뻑했다. 얼굴이 돌처럼 굳어진 것 같았다.


강우는 몇 차례 눈을 깜빡였다. 쩌적, 건조해진 눈이 끝내 갈라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어느 시점에, 소란이 들려왔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소란은 아득하고도 몽롱하게 들렸다. 삐걱거리는 목을 돌려 소리의 진원지를 시야 안에 넣었다.


작은 소리.


익숙한 소리.


그 소리에는 얼떨떨함이 섞여 있었다. 자신들이 무엇을 해냈는지, 오늘 이 땅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아직 실감하지 못한 사람들의 것이었다.


그 소리에는 희열 또한 섞여 있었다. 이들은 오늘 무엇을 이뤘는지 뚜렷하게 자각하고 있었다.


그 성취감에.


더 이상 엎드려 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자신들이 무언가를 할 수 있음을 깨달았기에··· 저리도 기뻐하는 것이리라.


분명 그중에는 창연 또한 있지 않을까.


나를 따라서 여기까지 온 사람들.


나와 마찬가지로, 무림에 원한을 품은 자들.


나를 통하여, 오래도록 눌러 온 증오를 풀어내길 바란 이들.


그래서 오늘, 다 함께 재앙으로 거듭난 사람들.


강우는 시선을 옮겼다. 저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서, 제 눈앞에 잠든 노인을 향해.


할 수 있었다면, 그는 이렇게 했을까.


만약 그에게 시간이 있었다면.


그래서 나를 찾아낼 필요가 없었더라면.


그랬더라면··· 과연 그는 무엇을 했을까.


서서히 아래로 떨어지던 시선이 제 양손에 걸렸다.


강우는 자신을 향해 펼친 두 손바닥을 보았다.


왼쪽의 셋과 오른쪽의 다섯, 이젠 합쳐서 여덟이 되어버린 손가락을 보았다.


잘려 나간 약지와 소지가 있던 자리의 단면을, 드러난 뼈에 피와 잿가루가 검게 엉겨 붙은 모습을 보았다.


그 속에, 이 살가죽 아래에 꿈틀거리는 내공의 흐름을 느꼈다.


수많은 생명을 집어삼킨 끝에 완성된 힘을.


그러고도 모자란 건지, 앞으로 더 많은 삶을 앗아가길 바라는 감각을.


그리하면··· 이 세상 누구보다도 강하게 만들어주겠노라고.


그 어떤 존재라 할지라도 네 발밑에 무릎 꿇게 될 거라고.


지금까지의 세계를 파멸시키고, 모든 것이 부서진 대지 위에서 정점에 서게 해주겠다고.


그리 약속하는 이 힘의 존재를 느꼈다.


강우는 다시금 시선을 옮겼다.


먼 곳부터 시작하여 가까운 곳에서 맺었다.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


파괴된 남궁세가의 장원.


영원한 잠에 빠진 노인.


그리고 자신의 두 손에 이르기까지.


그 순간 깨닫는다.


-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다고.


이 세계에서 단 한 명. 오직 나만이 이 화(禍)를 다룰 수 있다고.


대지를 넘어 저 하늘까지, 세상 전부를 불사르도록 이 화(火)를 끝없이 키워나갈 수 있다고.


사람을 장작으로 삼아 문드러지게 만드는 이 화(火)를, 더 이상 번져나가지 않도록 사그라들게 만들 수도 있다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래서···.


‘내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그 깨달음이 강우의 온몸을 관통한다.


누구를 이끌어야 하는가.


누구를 쓰러뜨려야 하는가.


이때.


걷혀가는 먼지구름 사이로, 하늘이 다시금 햇빛을 내보였다.


내려오는 햇빛을 따라 강우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방금까지 이 땅에서 벌어진 사변에도 불구하고, 구름 사이로 본 저 하늘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청명했다.


그 푸르른 하늘이, 어쩐지 창백해 보였다.


이 아래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한사코 관심 두지 않으려 했던, 드높은 전각에서 다만 신선놀음을 벌이던 이들처럼.


‘그래.’


그제야 말할 수 있었다.


내 가슴속에서 영원히 타오를, 열기와 따뜻함이 느껴지는 이 불꽃으로 무엇을 이뤄야 할지를.


“파천(破天)이구나.”


저 하늘을 부순다.


비탄과 원한, 그리고 증오를 거듭하여··· 기어이 화를 불러낸 이 세상을 조각낸다.


그리하여,


‘더 이상 화라는 것 없이도 살아갈 수 있도록.’


그 누구도 화를 품지 않고 살 수 있도록.


그때.


잿더미 속에서 꺼져가던 잔불처럼, 끊어낸 은원에 가라앉던 강우의 마음에.


화악, 하고.


자색(紫色) 화염이 새로이 피어올랐다.


작가의말

"나는 천마가 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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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는 그저,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길을 나아가주게." +3 24.06.10 733 33 11쪽
35 “···이리하여 나의 고난이 시작되었고.” 24.06.09 758 31 13쪽
34 “옛날 옛날, 한 옛날에.” +1 24.06.08 751 2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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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퇴락한 꿈 +1 24.06.06 814 28 13쪽
31 대물림 24.06.05 819 3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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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회(徊)를 딛고서 회(䝇) +3 24.05.31 889 3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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