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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연화26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 이렇게 천마가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공모전참가작

장연화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5.08 11:58
최근연재일 :
2024.06.27 22:20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58,351
추천수 :
1,966
글자수 :
262,810

작성
24.05.26 19:05
조회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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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글자
12쪽

전(前), 혹은 전(戰)

DUMMY

남궁세가의 장원.


합비를 넘어, 안휘에서 가장 높은 곳.


이 강호에서 오직 다섯 곳, 금서위판(金書威板)을 걸 수 있는 장소.


이 땅을 한데 내려다볼 수 있는 그곳에서···.


“그래.”


어느 부자(父子)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경瓊아, 무엇이 보이더냐.”


아비가 묻자 아들이 답한다.


“선(烍).”


그것은 들불을 뜻하였다.


“려(爈).”


그것은 산불, 더불어 불사름을 뜻하였다.


“그리고 전(戰)입니다.”


그것은··· 단지 싸움이었다.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학.


그는 아들, 경을 바라보며 그 세 가지 단어를 곱씹었다. 각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근래 벌어진 일들의 무엇을 비추는지를 생각했다.


퍼져나가는 형국을 보고 들불이라 칭했음이라.


땅 가지지 못한 자가 산에 들어가 화전(火田)을 빚듯, 누군가 의도하여 저질렀단 점에서 산불이라 칭했음이라.


그리고 마지막은···.


‘생각할 필요도 없지.’


다만 그들의 행위를 직설적으로 칭했음이라.


연씨세가와의 싸움.


적사회와의 싸움.


뒤이어 치러지게 될 것은··· 우리 남궁과의 싸움.


‘그렇다면 그들은 안휘의 지배자 자리를 원하는 건가.’


- 그럴 리가.


아들의 입을 빌어 자문할 필요도 없었다. 남궁학의 시선은 이내 저 아래 합비의 거리를 향해 옮겨갔다.


흑도의 상징이자, 이 땅의 밤을 지배하던 이룡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터조차 남지 않고 파괴된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한 것은, 오직 정적뿐.


신천후를 죽이고, 적사회를 무너뜨린 자들은 단지 정적만을 고수했다. 무릇 무의 세계에 들어온 이들이라면 지켜야 마땅할 법도를, 그들은 따르지 않았다.


새로운 파(派)가 탄생하였음을 알리는 개파대전(開派大典)도, 안휘의 각 세력에 인사를 올리고 자신들의 포부와 취지를 밝히는 일도···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역사상 강호에 나타났던 그 어떠한 세력도 이러한 행보는 보인 적이 없었다.


그것은 오만함에서 비롯된 것인가.


혹은, 광기에서 비롯된 것인가.


한 치 앞도 뚜렷하게 가늠할 수 없는 작금의 사태에서··· 다만 확실한 것은.


“연이가 과한 장난을 치는구나. 불 무서운 줄 모르고.”


“연··· 말씀이십니까.”


남궁세가의 소가주, 남궁경. 그는 생각했다. 절연한 이래로, 아버지가 제 배다른 누이를 입에 올린 것이 몇 해만이던가.


‘···확실히.’


이 사태의 중심에는 그녀가 있었다.


남궁연. 지금은 창연이라는 이름이었던가.


어찌 다가간 건지 용케도 흉수에게 붙은 그녀는, 며칠 전 유민 떼를 이끌고 적사회를 무너뜨렸다.


여전히 믿기 어려운 소식이었다. 진위를 제대로 판가름할 수 없어, 더욱이 들어온 정보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때늦은 후회에, 또 어리석은 미련에 불과하지만··· 네 누이를 끝까지 품어줘야 했던 게 아니었나 싶구나.”


남궁학의 그 말에는 약간의 회한이 서려 있었다. 허나, 단지 뒤늦은 부정(父情)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으니.


본디 초동에 진압하지 않고 이 동란을 내버려 둔 것은, 그를 기회 삼아 이 땅을 한 차례 닦아낼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직접 나설 일 없이, 하나하나 명분을 세워가며 제 손 더럽힐 것 없이, 무능하고 또 성가신 것들을 솎아낼 기회라고 여겼다.


귀영객이라고 했던가. 그 구파의 끄나풀 또한 마찬가지였다.


가지치기를 위해.


살아남을 가치가 있는 것들만을 남겨두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 화를 방치하였으나···.


‘변명할 순 없겠지.’


이것은 엄연한 실책이었다.


하성에서 벌어진 학살.


연씨세가의 멸문.


그리고 적사회의 몰락까지.


이 일련의 사변이 벌어지는 데 걸린 시간은, 겨우 두어 달에 불과했다.


겨울이 끝나기 전에.


봄이 찾아오기도 전에, 그에 앞서 이 땅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아니, ‘변화(變禍)’라고 칭하는 것이 맞을까.


“기의己擬한테서 서신이 왔더구나. 아무래도 정혼자인 네 동생 란蘭이가 걱정되는 모양이야.”


입안 가득 느껴지는 씁쓰름함을 덜어낼 심산인지, 남궁학은 그리 운을 떼었다.


‘여전한 녀석이다.’ 친우의 소식에 남궁경은 그리 생각하며 속으로 쓴웃음을 짓는다.


신기제갈(神機諸葛). 그 별칭에 걸맞게 진법과 지략으로 으뜸가는 것은 제갈세가였으니. 그들은 으레 신중한 성정을 가지고 있었다.


남궁경의 벗 제갈기의는 그 점에서 유별나다고 말할 수 있었다. 샌님밖에 없다고 여긴 그곳에서, 자기보다도 혈기 넘치는 녀석이 있을 줄이야.


짧게 첫 만남을 회상하자, 무거웠던 공기가 한결 가신 것 같았다. 그러나···.


그가 보내온 내용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 의도가 보이지 않는다.


합비와 호북 사이에는 적지 않은 거리가 있다. 그럴 터인데···.


그사이에 어찌 소식을 들은 걸까. 그가 보내온 내용에는, 이 땅에 있는 남궁경 자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도 상세한 것이 적혀 있었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간절한 경고.


땅에서 솟아났다, 혹은 하늘에서 내려왔다. 그리 표현하는 게 옳을 그 정체불명의 흉수에 대하여··· 그는 엄중히 경고하고 있었다.


“참, 구파의 일은 어찌 흘러가는지 알아보았느냐.”


허나 아비의 그 물음에, 남궁경은 잠시 친우의 말을 머릿속에서 밀어낸다.


“네. 예상대로입니다. 우리의 견제를 위해 맹盟의 창설을 준비하고자 분주합니다.”


자연스레 전환되는 화제.


지방의 유지로서 단단한 지지기반을 갖춘 세가와는 달리, 그저 같은 뜻을 가진 자들이 모였을 뿐인 문파는 비교적 그 세력이 약할 수밖에 없다.


단순히 무력이라면 몰라도, 종합적인 영향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그러니 아홉 개 문파와 한 개의 방이 뭉쳐야 겨우 우리 다섯 세가와 대등하지 않던가.


같은 정파로서 드러내놓고 적대하지만 않을 뿐, 물밑에서는 치밀한 견제와 대립이 끝없이 벌어지고 있었다.


남궁학은 생각한다. 그들을 견제하기에 앞서 우리의 힘을 한 번 증명하리라.


지금 저 정적 속에 있는 흉수의 무리는, 그 제물로서 제격일 테지.


- 진성아, 내 아이를 데려오라 명하지 않았더냐.


그는 진즉 던진 사석(死石)을 떠올린다. 남은 일은, 그것이 무슨 결과를 빚어낼지 기다리는 것뿐.


어느 쪽이든 간에 대비는 갖춰져 있었다. 그러니.


‘무의 정점이 어떤 존재인지, 천하는 다시금 알게 되리라.’


***


깊은 밤, 청월루 최상층.


땅과 멀다고 하기엔, 근래 거리에서 불었던 피바람의 잔향이 여지없이 닿았다.


그곳에서 강우는, 언제나 그랬듯 저 멀리 시선을 두고 있었다.


남궁세가의 장원.


단지 바라볼 뿐이나, 그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을 만큼 적개심이 짙었다.


그때.


“아래 사람들은 다 잠든 지 오래인데, 눈 좀 붙이는 게 좋지 않겠소?”


방안 가득 깔린 짙은 적개심에 개의치 않고, 누군가 다가온다.


이젠 어련히 적응된 것일까. 이연석은 스스럼없는 태도로 다기(茶器)와 더불어 타온 엽차를 내려놓는다.


생각해보니 동란을 벌인 이후로 무언가를 먹거나 마시는 모습을 통 본 적이 없었다. 그 생각에 나름대로 준비한 것이었다.


그러다, 눈치챈다. 옆에서 설핏, 멱리 사이로 비친 얼굴에.


“당신, 안색이···.”


염려보다는 경악에 가까웠다.


처음 봤을 때도 충분히 희멀건 낯빛이었으나, 그 허연 안색이 더욱 창백해 보였다.


한낱 기분 탓이라 넘길 수 없을 만큼 뚜렷했다. 혹여 병이라도 걸린 걸까.


“아니.”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답이 돌아온다.


마음속을 꿰뚫어 보는 듯한 특유의 화법. 그것도 슬슬 익숙해질 참이었다. 뭐가 아니냐고 반문하는 대신, 이연석은 곧장 말을 잇는다.


“그럼···.”


“여기다.”


강우는 오른손을 들었다.


주먹을 쥐고, 자신의 가슴팍을 친다.


왼쪽, 심장이 위치한 그 부근이 주먹과 맞부딪치자··· 팍, 하고.


단지 그 동작만으로, 순간적으로 기파(氣波)가 터진다.


“윽···.”


제대로 발하기는커녕, 단지 새어 나온 것에 불과했다.


고작 그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압박이 느껴졌다. 잠시 휘청였던 이연석은 짧게 심호흡하며 겨우 평정을 되찾았다.


‘이만한 힘이, 사람의 몸에 담길 수 있는 건가?’


소문으로는 많이도 들어보았다. 세가와 문파의 정점. 절정조차도 아득히 넘어선 강자들의 존재.


하지만··· 눈앞의 흉수, 아니. 이제는 살신이라 불러야 하나. 이 자는 그 소문 속 존재들과 무언가 근본적으로 달랐다.


오랜 시간을 들여, 수없이 거듭한 제련 끝에 빚어낸 강고함.


어쩌면 소문대로 정말 반로환동을 이룬 걸지도 모르지만··· 눈앞의 이 자는, 그런 강고함을 취하기엔 너무나도 어린 나이 아니던가.


그 대신 느껴지는 것은, 악(惡).


더불어, 악(齷).


‘방금 느꼈던 압박감을, 이 자는 매 순간 느끼고 있는 걸까.’


나름대로 일류의 말석까진 들어보았다. 덕분에, 이연석은 창연이 정리한 소위 ‘신공’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터무니없고, 더불어 위험한지를 이해했다. 그조차도 한 차례 여과되고 또 정렬된 것인데.


지금 이 자는, 이 길을 어찌 열고 어찌 걸어온 것인가.


“잔불이 가시질 않아.”


문득 열린 입에서 새어 나온 한마디.


그 말에··· 희미한 한탄이 섞여 있음을 눈치챈다.


그토록 원통한 걸까. 이만한 일을 벌였음에도, 부모를 잃은 원한이 가시질 않는 걸까.


아니면.


‘돌이키기엔 이미 늦어서?’


여기까지 와서 뒤늦게, 피워올린 화마를 꺼트려 봐야··· 아무것도 남을 것이 없어서.


그래서 거듭하여 장작을 넣는 건가.


“······.”


이연석은 소리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저 밑에 있는 사람들 누구 하나 가릴 것 없었다. 창연은 물론이거니와, 적사회가 무너진 뒤에서야 찾아와 겨우 종이 씻는 일만 반복하는 일손조차도.


전부 처절하기 짝이 없는 사정들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당신은 어쩌고?’


누구는 한낱 흉수라 힐난하고, 누구는 다만 살신이라 숭배한다.


그것을 그 자신이 어찌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양쪽 모두, 그를 진정으로 봐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 누구도 더는 사람으로 봐주지 않는 그를.


이연석은 단지 한 명의 인간으로서 안타까워했다.


“부탁하지.”


그 마음 또한 알아챈 걸까.


“그녀에게는 말하지 말아다오.”


살짝 고개를 돌리고서, 강우는 이연석을 향해 그리 입을 열었다.


그 순간.


‘ ‘······!’ ’


두 사람 모두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정확히 이쪽을 노려오고 있었다. 그 강렬한 느낌은, 자신의 존재를 선연히 내비치며 강우와 이연석을 관통했다.


살기.


갑작스럽고, 또한 강렬한 그것에 슴베를 쥐려는 순간.


카앙!


거친 금속음이 방 안에 울려 퍼졌다.


“““······!?”””


이 자리에 있는 둘, 아니. 이젠 세 명.


지금 벌어진 결과에, 그들 모두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강우가 곡검을 꺼내려는 그 순간, 이연석 또한 허리춤의 직도를 뽑아 들었다.


운이 좋았던 걸까. 아니면 아직 낭인으로서의 감각이 살아있던 걸까.


자객이 날린 초격을, 뽑혀 나온 직도가 거칠게 튕겨냈다.


“후우···.”


실패로 돌아간 기습에 낙담한 걸까. 아니면 이곳까지 급히 와야 했던 탓일까.


남궁진성.


이번에 맡은 역할은 전령이 아닌 살수였다. 그는 자신의 검을 갈무리 하며 상황을 살폈다.


‘경계해야 할 것은 오직 흉수 한 명이 아니었나.’


며칠 전 거리에서는 보지 못한, 저 두건을 쓴 자는 누구인가.


상관없다. 가주께서 이런 사정을 신경 쓸 리도 없을 터인데.


결국 자신이 할 일은 변치 않는다.


그 사실을 되새기며 마음을 다잡는다. 흉수를 향해 검을 겨누며, 남궁진성은 선언한다.


“연 아가씨를 데리러 왔다.”


그 말에.


- 피식.


소름 끼치는 웃음이 강우의 얼굴에 번졌다.


마침 잘 되었다.


타지 못한 잔열에 속이 쓰라리던 차에···.


“장작이 될 자가, 직접 걸음 해 올 줄이야.”


작가의말

前: 앞 전

戰: 싸움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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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순례(巡禮) ※23/06/20(목) 수정※ +3 24.06.15 646 2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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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교(交), 교(敎), 그리고 교(矯) +2 24.06.12 745 33 13쪽
37 맹(盟), 맹(盲), 그리고 맹(儚) 24.06.11 724 29 13쪽
36 "그대는 그저,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길을 나아가주게." +3 24.06.10 732 33 11쪽
35 “···이리하여 나의 고난이 시작되었고.” 24.06.09 758 31 13쪽
34 “옛날 옛날, 한 옛날에.” +1 24.06.08 750 2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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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대물림 24.06.05 819 30 12쪽
30 하늘에서 내려온(天) 악마처럼(魔). +1 24.06.04 864 38 11쪽
29 비로소, 파(破) +2 24.06.03 860 34 12쪽
28 몰(歿)할 때까지 몰(沒) 24.06.02 867 30 13쪽
27 악(惡)이 벼려낸 악(鍔) +1 24.06.01 862 30 12쪽
26 회(徊)를 딛고서 회(䝇) +3 24.05.31 889 32 11쪽
25 해(害), 이어서 해(邂) +1 24.05.30 901 3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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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업(業), 더불어 업(嶫) +1 24.05.28 949 28 13쪽
22 절(切), 더불어 절(折) +2 24.05.27 995 30 14쪽
» 전(前), 혹은 전(戰) +1 24.05.26 1,037 29 12쪽
20 신(神), 혹은 신(信) +2 24.05.25 1,105 36 12쪽
19 린(躪) +3 24.05.24 1,089 3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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