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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연화26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 이렇게 천마가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공모전참가작

장연화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5.08 11:58
최근연재일 :
2024.06.27 22:20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58,345
추천수 :
1,966
글자수 :
262,810

작성
24.05.29 19:05
조회
952
추천
31
글자
11쪽

재(災), 이어서 재(齎)

DUMMY

“안녕, 아빠.”


그 한마디에 잠시 정적이 돌았다.


창연. 일찍이 남궁연이었으며, 경과 란의 누이였다. 더불어 가주 남궁학의 자식이기도 했다.


절연한 지 오래라고 한들 같은 핏줄이다. 그 탓일까.


그 사실을 일깨우는 창연의 첫 마디에, 정적이 바람처럼 토벌대를 스쳐 지나갔다.


“아.”


이내, 남궁경이 무어라 운을 떼려던 순간.


“당신네들 뻔한 소리 듣기 전에 묻고 싶은데.”


휙 하고.


경의 입을 가로막듯, 창연은 그에 앞서 안고 있던 수급을 내던졌다.


철퍽.


힘없이 나무 바닥을 구르는 그 머리는, 남궁진성의 것이었다.


“청룡대주가 어찌 죽었는지 궁금하지 않아?”


움찔.


뒤이어 덧붙인 창연의 말에,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멈칫한다.


경과 란, 심지어 가주 남궁학까지.


앞선 두 명은 자기 사촌 형제가 어떻게 죽었는지. 혹여 숨겨진 진실이나, 죽기 직전 전하고자 했던 말이 있는지를 알고 싶어서.


그리고 남궁학은···.


‘그 사실은 숨기고 싶었다만···.’


나지막이 침음했다.


‘싸우다 죽어라’, 자신이 그리 명했음을 제 자식들이 알지 않았으면 해서.


동시에, 피식 하고.


“당신들은 도통 변하질 않네.”


그들의 모습을 보며 창연이 비웃었다.


“예나 지금이나 빌어먹을 정도로 한결같지.”


그 말꼬리마다 피로감에 찌든 한숨이 매달려 있었다.


“자기 것, 자기 사람, 자기 세상!”


순간 치밀어 든 부아에 괴성을 내지르고서.


“···신경 쓰고 살피는 건, 단지 그것뿐이잖아.”


다시금 확, 목소리가 가라앉는다.


“지금 너희의 모습을 돌아보라고. 스스로가 생각해도 참 지겹고도 역겹지 않아?”


“연 누님.”


하아.


남궁경은 한 차례 숨을 내쉬었다.


저 지독한 악의 앞에, 호흡을 고르지 않고선 견딜 수가 없었다.


“이 이상 만행을 저지르신다면 더는 가만 있지 않겠습니다.”


“왜? 당장 움직이지. 뭘 기다려?”


곧장 돌아온 것은 다만 싸늘한 조롱이었다.


“무로서 협을 실천하는 데 앞장서는 게 남궁이라며. 너희가 늘상 씨부렸던 거잖아.”


- 헌데.


“내키는 대로 사람 새끼 쳐 죽이고 다니는 악적이, 여기 느이 앞에 있는데.”


그 비릿한 웃음 아래로, 창연은 손가락을 세워 제 목을 가리켰다.


“어째 내 목은 잘만 붙어 있구나. 이 덜떨어진 새끼들아.”


“어떻게···.”


뒤이어 입을 연 것은 남궁란이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도저히 숨길 수 없는 경악이 묻어났다.


“어떻게 사람이 그토록 야멸찰 수 있죠?”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감당할 수 없는 무언가를 마주했을 때, 반사적으로 드러나는 몸의 반응.


“연 언니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어요. 의로운 사람을 구함으로써 협을 실천하겠다, 그 마음으로 의원이 되신 것 아닌가요?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쉬잇.”


간신히 이어가던 말을, 그 한마디로 끊어낸다.


“어른들 말씀하는데 끼어드는 게 아니야.”


더불어···.


“···얻다 대고 이제 와서 아는 척인데, 건방진 애새끼가.”


창백해진다.


찰나, 창연의 얼굴에 표정이 지워진다.


낯빛에 남은 것은 단지 무(無).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 같은 그 모습에··· 남궁란은 반사적으로 한 발짝 뒷걸음질 쳤다.


그제야.


“그만.”


보다 못한 남궁학이 앞으로 나섰다.


“아버지···.”


“물러나라. 내가 직접 상대하마.”


염려하는 아들을 뒤로 물리고서, 선포했다.


“대답을 신중히 해야 할 것이다.”


찰칵. 이어서 스르릉, 하고.


“오늘 거두게 될 목숨이 얼마나 될 것인지.”


검을 뽑아 들고서 겨눈다.


“그 알량한 입에서··· 무슨 소리가 나오느냐에 따라 결정될 테니.”


“남궁학 당신이야말로, 제대로 결정하는 게 좋을 거야.”


허나 조금도 위축되지 않는다.


가주의 이름, 그 전에 제 아비의 이름을 함부로 부른다. 그 패륜적인 행위에 잠시 남궁학의 눈썹이 꿈틀댔다.


“지금 이 자리에 내 아버지로서 왔는지, 아니면 단지 남궁의 가주로 왔는지를 말이야.”


“허튼소리 말아라.”


위엄있는 그 목소리에 노기가 실렸다.


“진즉 출가외인이 된 너를 당장 참하지 않는 이유가, 가족 간의 정 때문이라고 생각하느냐?”


“아, 그래···?”


창연의 눈이 가늘어진다.


그녀는 슬쩍 시선을 옮겼다. 파괴된 한쪽 벽면, 일찍이 연씨세가의 토벌대가 쳐들어왔을 적 뚫린 구멍을 향해서.


가주가 내뿜는 위압감에 눈을 마주치질 못하는 걸까.


- 그럴 리가.


그녀는 그 너머에 존재하는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남궁세가의 장원.


뚫린 구멍 너머, 절묘하게도 그 드높은 누각이 보이고 있었다.


한참 동안 그쪽을 노려보던 창연은, 문득.


“화진성은 암습을 하다 죽었어.”


태연하게.


아무 일도 아니란 것처럼 평온하게, 그리 입을 열었다.


““···뭐?””


남궁경과 남궁란, 그 두 명의 목소리가 겹친다.


그조차도 ‘그럴 줄 알았다’라는 듯이.


“야밤을 틈타 담벼락을 넘어와선 그분의 목을 노렸지. 그러고도 끝내 패사(敗死)했고.”


창연은 설레설레 고개를 흔들며 말을 이어갔다.


“솔직하게 알리기엔, 청룡대의 권위가 실추될 만한 일이지. 안 그래?”


- 너희 아비가 진실을 감췄다.


진성은 끝내 본가 남궁이 아니라, 다만 방가 화씨로 죽었다.


창연이 넌지시 알린 그 사실에, 남궁경은 황급히 아버지를 바라본다.


저 말이 참이냐고.


단지 모함하고자 내뱉은 거짓이 아니냐고.


아들은 간절함 서린 시선으로 아버지께 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저 미간의 주름살만이 깊게 패일 뿐. 남궁학은 그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무엇보다도 확실한 대답이었다.


“걱정하지 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남궁학을 대신하여, 이번에도 창연이 말을 이었다.


“그깟 진실 따위, 이제 아무 상관 없게 될 테니까.”


그와 함께, 잠시 걷혔던 웃음이 다시금 짙게 드리운다.


‘그게 무슨-’


남궁경은 의문이 들었다. 저자는, 일찍이 제 누이였던 자는 지금 무슨 말을 하려는 건가.


허나 그에 앞서.


- 화악!


“······!”


저 멀리서, 무언가가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폭음(爆音)이라 칭하기엔 느지막했다.


그러나 한낱 소음(騷音)이라 치부하기엔··· 불길했다.


어디인가.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남궁경이 시선을 옮기자.


“저건···!”



화염이 치솟고 있었다.



나무를 타고 오르는 뱀처럼, 시뻘건 화마가 장원을 불사르고 있었다.


말도 안 된다. 누군가 생각했다.


그럴 리 없어. 또 다른 누군가가 생각했다.


토벌대의 출정, 그것은 곧 세가의 정예들이 자리를 비운다는 것을 뜻한다. 모두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결코 본가의 경비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밥과 잠자리를 얻는 대신 칼을 써주겠노라 했던 객인들이 있었다.


대주의 시신을 지키겠다 맹세한 청룡대 삼조도 있었다.


거기에, 일찍이 역전의 용사들이었던 장로들 또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심지어 장로원주는 환갑을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초절정의 영역을 지키고 있었다.


그런 자들이 지키고 있는 장원이, 불타고 있었다.


“그럴 리 없어···.”


누군가 중얼거렸다. 남궁란이었다.


바람결에 실린 탄내에, 재와 불씨가 전하는 따스함에.


그녀는 현실을 깨닫고 있었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그럼에도 부정하고 싶었다.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자.”


그런 그들을 향해.


“결정할 시간이라고, 남궁학.”


자리에서 일어난 창연이 당당히 선포한다.


“아버지로서 뒤늦게나마 엇나간 자식을 훈육할 건지.”


그 무엇보다도 괴로운 선택을, 강요한다.


“아니면 단지 남궁의 가주로서, 저 호사스러운 잿더미 속에 남은 것이나마 지켜볼 건지!”


“아버지!”


창연이 말이 끝나는 그 순간, 남궁경은 보았다.


자신이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아버지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을.


직후.


- 쾅!


대지를 뒤흔드는 굉음이 있었다. 바닥에 새겨지는 균열이 있었다.


있는 대로 내력을 끌어모아 다릿심으로 방출한다. 그렇게, 남궁학은 장원을 향해 ‘날아갔다.’


“···아버지!?”


“가주님!”


경도, 란도, 토벌대도 전부 당황한다. 하지만 우왕좌왕할 여유는 없었다.


빠르게 판단을 내린다. 남궁경은 소리 높여 외쳤다.


“화재를 진압해야 한다! 지금 당장 본가로 돌아간다!”


그러나.


“소가주님!”


토벌대를 수습하기도 전에, 후열에서 당황 섞인 외침이 들려왔다.


서둘러 뒤편으로 향한다. 무사들을 헤치고 청월루 바깥을 확인한다. 그러자 눈에 들어온 것은.


“이건···!”


흉수의 추종자들.


며칠 전, 적사회가 무너지던 밤. 거리를 가득 채웠던 그들이 다시금 길을 막고 있었다.


그 악몽 같은 광경에, 깨닫는다.


‘이 모든 게 철저한 함정이었나···!’


사흘 동안의 침묵.


피해를 줄이기 위해 내어준 그 시간을, 저들은 철저히 이용했다.


철저하게, 이용당했다.


“크윽···!”


남궁경은 이를 악물었다. 후회 따위로 시간을 허비할쏘냐.


“길을 터라!”


진격한다.


가장 먼저, 칼을 앞세우고 추종자들을 향해 돌진한다. 토벌대는 황급히 앞서가는 소가주의 뒤를 따랐다.


그 모든 광경을 바라보며.


“하긴.”


창연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나는 뭘 기대한 걸까.”


***


약 한 식경 남짓 전.


토벌대가 출정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강우는 품 안의 호리병을 매만졌다. 창연이 마련한 기름, 한 번 불이 붙으면 절대 꺼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 작전에서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소였다. 잘 간직하고 있음을 확인한 강우는, 곧 제 앞의 장원을 올려다본다.


‘이것이··· 공헌명이 꿈꿨던 광경인가.’


알게 모르게 감회가 남달랐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건물 자체의 자태도 웅장했으나, 의념을 읽는 이 시야로 보이는 모습은 더욱 환상적이었다.


저 하늘보다도 청명한 기운이 탑처럼 드높았다. 푸르게 빛나는 성채, 그것은 꿈에서나 나올 법한 광경이었다.


그러나···.


‘그래서, 저것이 나의 원한보다도 커다랗나.’


나의 마음을 불사르는, 이 깊은 증오보다도 높다란가?


지금부터 불러내고자 할 재앙이··· 저딴 집 한 채조차 무너뜨리지 못할까.


‘전혀.’


뚜벅뚜벅. 강우는 장원 대문으로 향한다.


혹시 모를 기습에 대비해 장원의 경비는 평소보다도 삼엄했다. 그런 상황에서 웬 정체 모를 자가 다가온다니.


“멈춰라!”


대문을 지키던 수위 무사 둘, 그들은 큰 소리로 외쳤다.


“세가에 출입하기 위해선 명부에 이름이 있어야 한다! 너는···.”


허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입이 멈춘다.


붉은 기운이 서린 짙푸른 장포.


바람에 휘날리는 하얀 멱리.


그리고 지독히도 칼날이 상한 겸(鎌) 한 자루까지.


“···누구, 냐.”


더듬더듬, 겨우 말을 잇는다.


낯빛은 사색이 되고, 두려움이 치밀어 든다.


깨닫는다. 지금 다가오고 있는 자가 누구인지.


아니, 다가오는 존재가 무엇인지.


가까스로 혀를 깨물어 정신을 차린다. 허겁지겁 허리춤의 칼자루로 손을 옮긴다.


그러나 한발 앞서.


“나는,”


전조 없는 횡 베기에 두 명의 가슴팍이 크게 패인다.


“죽음이다.”


울컥, 피를 쏟으며 두 명 모두 제자리에 쓰러진다.


자아.


“맞서보아라.”


뉘 강대하다 자칭하는 이들아.


“그 모든 것이 부질없게 될 순간까지.”


작가의말

災: 재앙 재

齎: 탄식하는 소리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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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순리(殉利) ※24/06/20(목) 수정※ +1 24.06.18 392 22 13쪽
41 순조(順潮) ※24/06/20(목) 수정※ +3 24.06.16 489 23 14쪽
40 순례(巡禮) ※23/06/20(목) 수정※ +3 24.06.15 646 23 11쪽
39 순복(馴服) +4 24.06.14 735 27 13쪽
38 교(交), 교(敎), 그리고 교(矯) +2 24.06.12 745 33 13쪽
37 맹(盟), 맹(盲), 그리고 맹(儚) 24.06.11 724 29 13쪽
36 "그대는 그저,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길을 나아가주게." +3 24.06.10 732 33 11쪽
35 “···이리하여 나의 고난이 시작되었고.” 24.06.09 758 31 13쪽
34 “옛날 옛날, 한 옛날에.” +1 24.06.08 750 28 11쪽
33 회한의 종막, 혹은 재탄 24.06.07 786 31 11쪽
32 퇴락한 꿈 +1 24.06.06 814 28 13쪽
31 대물림 24.06.05 819 30 12쪽
30 하늘에서 내려온(天) 악마처럼(魔). +1 24.06.04 864 38 11쪽
29 비로소, 파(破) +2 24.06.03 860 34 12쪽
28 몰(歿)할 때까지 몰(沒) 24.06.02 866 30 13쪽
27 악(惡)이 벼려낸 악(鍔) +1 24.06.01 862 30 12쪽
26 회(徊)를 딛고서 회(䝇) +3 24.05.31 888 32 11쪽
25 해(害), 이어서 해(邂) +1 24.05.30 900 3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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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절(切), 더불어 절(折) +2 24.05.27 995 30 14쪽
21 전(前), 혹은 전(戰) +1 24.05.26 1,035 29 12쪽
20 신(神), 혹은 신(信) +2 24.05.25 1,105 3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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