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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연화26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 이렇게 천마가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공모전참가작

장연화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5.08 11:58
최근연재일 :
2024.06.27 22:20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58,361
추천수 :
1,966
글자수 :
262,810

작성
24.06.03 19:05
조회
860
추천
34
글자
12쪽

비로소, 파(破)

DUMMY

- 죽을 때까지 싸워보자.


그 선언 이후,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강우와 남궁학.


두 명은 다만, 서로를 처절하게 난도질했다.


피보라가 일었다. 오직 두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라곤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사람의 몸속에, 서로의 몸 안에 혈액이란 것이 얼마나 있는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자 하는 듯한··· 그 지독한 혈투 속에서.


“이보라고, 강 아우.”


문득, 강우의 환상 속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자네 얼굴이 다 죽어가. 무슨 일 있나?”


공헌명.


언제나 그랬듯 능글맞고도 뻔뻔한 태도였다.


“일없소.”


입을 열지도 않았는데, 환상은 제멋대로 자신의 대답을 지어냈다.


“단지 잠을 잘못 자서 그렇소. 그뿐이오.”


지난 칠 년 동안 그러했듯, 환상이 빚어낸 대답은 별일 아닌 것처럼 넘어가려 했다.


“잠을 잘못 잤다고? 이런, 이런. 그러니 밤이슬 맞을 일 좀 적당히 하라고 말하지 않았나.”


그러자 공헌명 또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변함없이 말을 이었다.


그는 상대가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기색을 낼수록, 더욱 집요하게 말을 걸곤 했다. 함부로 대화를 거부할 수 없음을 깨닫도록 해주려는 듯.


“아니면, 혹시 악몽에 시달리기라도 한 건가? 혹시 날 죽인 것 때문에?”


피식, 공헌명은 짧게 코웃음 쳤다.


“어이쿠, 만약 그렇다면 정말 웃지 않고선 못 베기겠구만.”


“퍽이나.”


날카로운 대답이 절로 튀어나왔다.


“죽었다 깨어나도 그럴 일은 없소.”


“하긴, 그러시겠지. 나라도 분명 그랬을 거야.”


큭큭, 몇 차례 잘게 끊어진 웃음을 흘린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보라고, 강 아우.”


그는 다시금 운을 뗐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가?”


한층 진중해진 어투.


마치, 책망하는 듯한 말투.


눈에 핏발이 돋아오르는 것 같았다. 살의가 치밀어 들고, 증오가 격렬히 끓어오른다.


“어이쿠, 진정하시게. 알고 있으니까.”


공헌명은 곧장 손사래를 쳐왔다.


“알다마다. 자네가 날 죽도록 미워한다는 걸 어찌 모르겠나.”


그와 동시에.


모습이 뒤바뀐다. 사선으로 그어진 자상에 왼쪽 안구가 파열되고, 찢어진 바짓단은 흘러나온 피로 붉게 물든다. 허리는 갈라져 무려 등골이 보일 지경이다.


그날, 살해당했을 적 모습 그대로.


처참한 꼴로 전락한 공헌명은 “하지만”, 하고 물음을 이었다.


“말해보게. 저들하고 자네는 도대체 어떤 은원이 있는 건가?”


- 난 자네가 누군지 알지도 못해!


며칠 전 들었던 신천후의 목소리가 강우를 스쳐 지나갔다. 그 또한 목소리를 들은 걸까.


“자네는 단지 나만을 죽였어야 했어.”


공헌명은 핀잔을 주듯 그리 입을 열었다.


“연 소저부터 시작이었지. 자네는 죽이지 말아야 할 자들을 죽였다고.”


진절머리 난다는 듯이 이마를 짚고서.


“그 연 씨네 소가주와 가주 부자는 무슨 잘못인가. 적사회는··· 그래, 사특한 놈들이긴 했지. 그래도 자네가 굳이 신경 쓸 바는 아니었잖나.”


그리고 남궁세가까지···.


“솔직히 한낱 무지렁이에 불과했던 자네가 이렇게 맞선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긴 하지. 경악을 금할 수가 없다고.”


그러나.


더불어, 그래서.


“더욱 묻지 않을 수가 없는 거야. 도대체 자네는 저들을 왜 그렇게 파괴하려고 드는 건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해보자. 그런 느낌으로 두런두런 말하던 공헌명은,


“아.”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그리 목소리를 내더니.


“혹시 그 계집한테 반하기라도 한 건가?”


설마 그런 거냐, 하고. 창연을 운운하며 은근한 투로 떠보았다.


강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어라 대꾸할 가치를 느낄 수 없었다. 다만 ‘무슨 개소리냐’, 그리 말하는 듯한 표정과 함께 쳐다봤을 뿐.


“농담일세. 단순히 그런 마음일 리가 없지.”


풋, 그리고 “여전히 딱딱하시군그래.”


너스레를 떠는 건지, 넌더리를 내는 건지.


“만일 그랬담, 자네가 이리 악귀 같은 모습일 리 없었을 테니.”


그 순간.


강우는 스스로의 상태를 자각했다.


피부가 성한 곳이 없었다.


그간 얼룩 하나 없던 장포는 곳곳이 찢겨나가, 짙푸른 원단이 피와 섞여 보랏빛으로 변색된 상태였다.


어지러웠다.


처참하리만치 상처투성이인 것은 양쪽 모두 똑같았다. 허나···.


뚜렷한 차이.


따라잡을 수 없는 외공의 격차, 그로 인해 발생하는 ‘버틸 수 있는 출혈량의 격차’에··· 이쪽이 속절없이 밀리고 있었다.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그러니 대답해주게.”


푸욱, 하고. 공헌명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뭣 때문에 그러는 건가.”


진심으로 안타까운 것처럼, 그리 물었다. 곧이어.


다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왜, 왜 이러는 거요! 도대체 뭣 때문에!


공포에 질려 발버둥 치던 양비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네가 그런 거냐? 네가 죽였느냔 말이다, 이 악적 놈!


이유 없는 살인을 추궁하던 연정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한낱 운과 한낱 감 따위로··· 감히 무림에 발을 들일 자격이 생겼다 믿었느냔 말이다!


참척의 원한을 부르짖으며 일갈하던 연도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도대체 무엇을 바라고 날 이리 처박으려 드는 거야!


억울함에 사무쳐 울부짖던 신천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남궁의 검은··· 물러나선 아니 되니까.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남궁진성의 목소리까지.


지금껏 들어온 모두의 단말마가, 강우를 스쳐 지나갔다.


그 내용도, 어투도 전부 달랐으나··· 그들 모두 같은 뜻을 담고 있었다. 알아챌 수 있었다. 지금에서야, 혹은 오래전에 이미.


너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러는 거냐고.


‘그야···.’


잔불이 꺼지질 않으니까.


공헌명을 죽여도, 이 가슴 속을 짓무르게 하는 잔불은 꺼지지 않았으니까.


아무리 사람을 죽여도, 아무리 피를 들이부어도 이 갈증이 사그라지지 않으니까.


그야.


‘내가 잃은 것은 돌아오지 못하니까.’


칠 년이라는 시간.


아버지와 어머니.


단지 도기 공방 집 자식으로 평범하게 살 수 있을 기회.


거대한 야심도, 쓰라린 비탄도 없는··· 별것 아닌 삶.


아무것도 아닌 그것이··· 내게는 영원히 사라져버려서.


그래서.


‘너희 모두를 죽이면 괜찮아질까.’


그리 생각했다.


‘네가 생전에 바랬던 경지, 평생토록 동경했던 목표이자 우상을···’


- 한낱 무(無)로서 끌어 내리면 괜찮아질까.


그렇게 없었던 것이 되어버린 내 본래의 삶처럼, 너희 삶 또한 철저히 없었던 것이 된다면.


‘그것으로, 괜찮아질까.’


그리하면··· 이 문드러진 마음이 비로소 편안해질까.


그 순간.


빠각!


“······큭.”


결정적인 소리.


더불어, 치명적인 소리.


그간 남궁학의 검격과 거듭하여 합을 맞추던 낫이··· 부러진다.


칼날이 깨져버린다.


놓쳐버린 자루가 허공을 돌다가, 와당탕.


허무한 소음과 함께 땅바닥에 떨어진다.


가시지 못한 충격에 몇 발짝, 허우적대듯 뒷걸음질 쳤다.


그러다, 털썩.


땅바닥이 가까워지는가 싶더니, 그 소리와 함께 그친다. 힘이 빠진 나머지 무릎을 꿇고 만다.


그제야, 잊고 있던 고통이 밀려왔다.


뜨겁다.


그보다는, 차갑다.


얼어붙은 강물 속에, 그보다는 바닷물에 빠진 것 같다.


쓰라리고도 차가운 감각이 온몸을 죄어왔다.


그런 그를 향해서.


“흡!”


남궁학은 최후의 일격을 준비한다.


그의 몸 또한 성치 못했다. 통째로 뜯겨나간 소맷단 아래, 양팔 전체가 피투성이였다.


복부도, 얼굴에도 자상이 깊었다. 모든 것을 뒤로하고 회복에만 전념해도, 결코 이전 같은 수준으론 돌아갈 수 없으리라.


하지만, 그리고 여전히.


그는 서 있었다.


남궁의 기둥은 쓰러지지 않았다.


- 발을 뗀다.


내공을 실은 보법이 파동을 일으킨다. 감아쥔 자루를 치켜든다. 접근한다.


이 한 번의 내리침으로, 일련의 사변을 끊어내고자.


“-이걸로 끝이다!!!”


남궁학은 선언한다. 바로 그때.


강우는 고개를 들었다.


현실과 환상 사이가 모호했다.


방금까지 공헌명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째서 이토록 무림인을 죽이려 드느냐는 물음에 답을 건네고 있었다.


그래서, 다르게 들렸다.


남궁학의 선언, 그 우레와 같은 목소리가··· 공헌명의 것으로 들렸다.


이제 그만두라고.


포기하라고.


일찍이 나를 죽음 저편으로 보냈던 것처럼, 이제 네가 건너올 차례라고.


그렇게 들렸다. 그래서 보았다. 고개를 들고, 다가오는 누군가를 확인하려 했다. 그러자.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죽은 공헌명이 칼을 들고서, 자신에게로 달려오고 있었다.


한 발짝.


그 모습이 변한다. 그날, 노인과 함께 애월객잔에 쳐들어갔을 적. 한쪽 눈을 잃고서 처절하게 달려들던 그 모습이다.


두 발짝.


그 모습이 변한다. 그날, 공씨세가 내 감옥에서 빠져나왔을 적. 짐짓 당황한 척 여유롭게 자신을 쓰러뜨렸던 그 모습이다.


세 발짝.


그 모습이 확 어려진다.


오래전 그날, 누가 더 나은지 다시 한번 붙어보자고.


한 번 져주면 되겠지, 싸움을 포기하면 가족은 건드리지 않겠지. 그리 믿고서 둘이서 비무를 벌였을 적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끝내 네 발짝.


그때 그 시절.


아무것도 몰랐던 열다섯 살 시절.


단지 누가 무관에서 으뜸가는지를 가리고자 했던··· 그 모습이 보였다.


“하.”


강우는 웃었다.


“하하···.”


힘없이, 소탈하게 웃었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그 모습을 향해 웃어주었다.


은(恩)과 원(怨), 그 모든 굴레를 벗어던진 것처럼.


그저 오랜 친구, 실로 그리운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운 웃음을 지으며.


“기쁘다.”


강우는 말했다.


너를 다시 볼 수 있어서.


그래서.


“-너를 다시금 죽일 수 있어서,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그러자.


시간이 정지한다.


세계가 붕괴한다.


극에 달한 감각이 인지를 초월한다. 그렇게 도달한 세상은, 마치 모든 것이 멈춘 듯하다.


매 찰나를 조각내어 받아들인다.


그 조각된 세상에서, 흐름을 감지한다.


온 세상의 기운이 어찌 흘러가는지, 그 궤적이 그려진다.


내공이라는 이름으로 명명된 생명의 기운이, 존재의 죽음까지 어찌 도달하는지··· 그 모든 경로가 안구에 새겨진다.


선과 선이 겹쳐진다. 세상이 갈라지는 것처럼, 균열이 퍼져나가는 것처럼 그것들은 거침없이 뻗어간다. 맞닿는다. 그렇게, 끝내 온 세상을 뒤덮는다.


이 세상 전부가 어둠 속에 휩싸인 것처럼.


모든 것의 종착지는, 결국 죽음이라는 것을 알리듯.


그렇게 거무스름한 재로 가득 찬 세상 속에서, 유일하게 밝게 타오르는 것이 있었다.


남궁학의 생명.


혹은, 공헌명과의 인연.


이 검은 대지 위에 유일하게도 하얗게 타오르는 그것을 보며, 강우는 주먹을 쥐었다.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그 백염(白炎)을 향해.


이 정지된 순간을 헤쳐오는 그것을 향해.


강우는, 주먹을 내질렀다.


그것은 사람의 경지가 아니었다.


그 무엇보다도 순수한 일념. 하늘을 거스르는 귀신의 것.


마(魔)의 경지.


공상 저편에 있어야 마땅한 그것을 현실의 영역으로 끌어내린다.


절대적인 한계, 불가능의 경계를 파괴하는 그 힘에··· 올바른 이름을 붙이니.


그것은.


“-신권(神拳).”


그 직후.


내리치는 검에 앞서 주먹이 닿았고.


그때, 남궁학이 마지막으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흉강이 우그러지는 감각이었다.


동시에.


그 충돌이 빚어내는 기파에.


불사르는 화염도, 두들기는 참격도 버텨내었던 전각이··· 마침내 무너졌다.


작가의말

破: 깨트릴 파

드디어 이 작품의 천마신권을 여러분께 내보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 올 수 있게 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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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퇴락한 꿈 +1 24.06.06 814 28 13쪽
31 대물림 24.06.05 819 3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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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로소, 파(破) +2 24.06.03 861 34 12쪽
28 몰(歿)할 때까지 몰(沒) 24.06.02 867 3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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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회(徊)를 딛고서 회(䝇) +3 24.05.31 889 32 11쪽
25 해(害), 이어서 해(邂) +1 24.05.30 901 3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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