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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연화26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 이렇게 천마가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공모전참가작

장연화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5.08 11:58
최근연재일 :
2024.06.27 22:20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58,341
추천수 :
1,966
글자수 :
262,810

작성
24.06.05 19:05
조회
818
추천
30
글자
12쪽

대물림

DUMMY

남궁의 전각이 끝내 무너지기 직전.


토벌대의 상황은 처절했다.


“뭉쳐라! 방진을 짜라!”


“부상자를 중앙에 두고, 싸울 수 있는 자는 바깥으로 나서라!”


“오라버니, 뒤를!”


쐐액, 기습적으로 단검이 짓쳐든다.


가까스로 검신으로 받아낸다. 날카로운 금속음과 더불어 꽤 묵직한 충격이 어깨로 치밀어 들었다.


퍽, 자루로 가슴팍을 쳐 쓰러뜨린다. 억 하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단검을 든 추종자가 나동그라진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죽음의 위기, 남궁경은 이마의 땀을 훔칠 여유조차 없었다.


“수가 너무 많습니다! 소가주님, 물러나야 합니다!”


무사 중 한 명이 그리 외쳤다. 하지만, 어디로.


도대체 물러날 곳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남궁경의 머릿속에 반사적으로 그 생각이 꽂혔다.


자신들을 향해 밀려오는 인간의 파도를 보며,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상황이 이리 처참하진 않았다. 예상과 달리, 흉수의 추종자들은 각오한 것보다 훨씬 소극적으로 움직였다.


부지깽이나 삽, 쇠스랑 따위를 들고 공격해온다. 정직하다 못해 허술한 궤적, 손쉽게 막을 수 있었다.


허나, 그 어설픈 초격으로 끝이었다.


공방이 이어지는 일은 없었다. 합이라는 것을 제대로 나누기도 전에 끊긴다.


궤적이 막히는 순간 앞사람이 물러나고, 뒷사람이 나서서 다시금 공격을 날린다.


그것이 끝없이 반복된다.


마치, 원치 않은 놀음판에 강제로 어울리게 된 것처럼.


이것이 창연의 계략이었다.


목숨 바쳐 싸우라 명한들 그 누구도 쉬이 따르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 살신을 따르는 이들은 제대로 된 조직이 아니오. 단지 무림에 원한을 가진 자, 지금까지의 세상에 불만을 가진 자들끼리 모인 것에 불과했으니.


그렇기에, 창연은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여 명령을 내렸다.


‘세 명을 한 개 조로 묶는다.’


‘한 조 당 단 세 합만을 받아내어라.’


‘목숨을 아끼며 싸우고, 부상자가 발생하면 곧바로 후방으로 이탈하라.’


철저하게 시간 벌이만을 노린다.


어떻게든 토벌대의 발목을 붙잡아, 장원으로 돌아가는 길에 일 초라도 더 허비하도록 만든다.


오직 그것만을 염두에 두었다. 애당초 이 싸움은 단지 살신과 남궁의 가주, 그 둘의 싸움이 어떻게 되느냐에 모든 것이 달려 있으니.


추종자들이 적극적으로 싸울 필요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토벌대의 복귀를 늦추기만 한다면, 그래서 강우가 싸우는데 방해되는 일만 없도록만 하면 차고 넘치는 일이었다.


토벌대 또한 추종자들을 함부로 벨 수 없었다.


같은 지역에서 살며 서로 얼굴 볼 일이 잦았다. 칼부림을 벌였다간, 당장 길을 틀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적잖은 후폭풍을 각오해야만 했다.


상대가 먼저 작정하고 죽이려 들지 않는 한, 이쪽도 허투루 살초를 쓸 처지가 못 되었다.


이런 연유 탓에, 장원으로 돌아가는 토벌대의 발걸음은 지지부진했다. 급한 마음과 달리 걸리는 장애물들이 너무 많았다.


그러다 끝내 사달이 나고 만다.


“이··· 작작 하고 물러나지 못해!”


청룡대 부대주 남궁호산.


끝없이 이어지는 방해에 마음이 조급해졌던 걸까. 그는 끝내 다가오는 추종자를 향해 검격을 날렸다.


누구 한 명 피를 본다면 겁을 먹겠지. 그러면 더 이상 길을 막지 않겠지.


그리 생각하고 행한 공격이었다. 적절한 치료만 받으면 칠주야도 채 안 되어 나을 자상, 단지 그 정도를 노리고 날린 참격이었다.


그러나.


촤악!


핏물이 흩뿌려진다. 그와 동시에 사람이 쓰러진다.


직후, 불길한 정적이 사람들을 짓눌렀다.


이제 지학(志學, 열다섯 살) 언저리 즈음 되었을까.


농기구는커녕 굵기 있는 나뭇가지를 들고 달려들던 남자아이가, 그 칼침에 맞고 절명한다.


무슨 사연이 있었길래 그가 흉수의 추종자가 되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부모를 잃었을까. 먹이고 입힐 형제자매가 있었을까. 아니면 단지 신공을 빌어 강해지고 싶었던 걸까.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알 길은 영원히 사라졌다.


“아···.”


검을 뽑아 든 호산 본인조차,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를 깨닫고 충격에 빠져 얼어붙는다.


그것이 기폭제였다.


뜻 모를 아우성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졌다.


수많은 목소리, 고함과 비명 따위가 한데 섞여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누군가 삽날로 호산의 머리를 후려쳤다. 피할 생각도 못 하고 얻어맞은 그가 고꾸라진다. 땅바닥에 엎어진 그를 향해 수많은 이들이 발길질을 날렸다.


토벌대 중 누군가가 그를 말리려고 했다. 얼굴로 주먹이 날아들었고, 순간 끓어오른 열불에 몸싸움이 일었다.


구타의 세례가 옮겨졌다.


피를 본 사람들 사이에서 흥분이 번져갔다. 공황에 빠진 토벌대는 급작스럽게 변하는 상황에 제때 대처하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아아아악!”


기합이 아니었다. 그것은 비명이었다.


악을 쓰며 내지르는 횡 베기. 사람들끼리 뒤엉키며 죽고 죽이는 인외마경 속에서, 남궁란은 처참히 검풍을 날렸다.


칼날이 지나간 길에 인간의 목이 있었다. 혈액이 터져 나오며, 수급이 땅을 구른다.


살인.


처음으로 저지른 그것을, 란은 뒤늦게 자각한다. 저도 모르게 숨이 거칠어진다. 시야가 경련한다.


그 머뭇거림을 노리고, 어느 아낙이 호미를 내리치려 들었다.


“정신 차려라!”


남궁경은 소리쳤다. 카칵, 위태로운 금속음과 함께 가까스로 막아냈다.


이어서, 서걱.


빠르게 이어내는 이격(二擊). 안에서 바깥으로 크게 휘두르는 궤적이, 아낙의 팔을 절단한다.


알고 있었다. 살초, 함부로 써선 아니 되는 것. 특히 힘없는 자들의 명을 거두는, 사특한 일에 써선 더욱 아니 되는 것.


그래도.


그치만.


답이 없었다. 남궁경은 이를 악물었다. 빌어먹을 정도로, 이 난관에 해답 따윈 없었다.


두 팔 잃은 자를 걷어차 떨쳐내며 동생을 지켰다. 알 수 없는 감정에 눈가가 이글거리는 것 같았다. 쓰라린 마음이 방울져 흐르는 것 같았다.


이쪽의 숫자가 얼마 남지 않았다.


죽음이, 자신들을 죽음으로 끌어내리려는 손아귀가 사방에 가득했다.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증오가 온 천지에 들끓었다.


살기 위해서 검을 휘둘러야 했다. 삶을 앗아가야 했다.


그간 배운 것, 협객으로서 함부로 살생을 저질러선 안 된다는 가르침을 배반한다.


칼날에 피를 먹일 때마다, 자신을 이루던 무언가가 잘려 나가는 것 같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쿵 하고.


천지가 뒤흔들리는 소리가.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가 귓전에 들려왔다.


“뭐···.”


저도 모르게 입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딱딱하게 굳은 목이 삐걱댔다. 남궁경은 애써 그를 돌려 제 시야를 옮겼다.


목숨이 오가는 사투 중에 한눈파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 자그마한 실수로 목숨을 빼앗길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눈을 돌릴 수가 없었다.


돌이킬 수가 없었다.


고개 돌아가는 움직임이 뚝뚝 끊기면서도 기어이 눈에 담고자 했다.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두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선 믿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아버지···?”


그리고.


남궁경은 보았다.


본가의 중심, 합비의 그 어떤 건물보다도 드높았던 전각이··· 무너지고 있었다.


뒤이어.


“아버지···!”


무언가 사라졌다.


무의 정점에 도달한 존재가 내뿜는 짙은 무게감.


자신의 세계를 지키고자 하는 치열한 의념.


그 모든 기운이··· 지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처음부터 존재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아···.””


남매 모두 같은 것을 느꼈다. 그래서일까.


두 목소리가 동시에 탄식을 흘렸다.


그 순간, 남궁란은 쓰러졌다.


소리 없이 제자리에 허물어졌다. 견디지 못한 충격에, 끝내 정신을 놓고 말았다.


“란아!”


기절한 동생의 모습에, 남궁경은 정신을 붙들었다. 아직 지켜야 할 존재가 남아 있단 사실이 그를 일깨웠다.


“뭣들 하는가, 란이를 중심으로 옮겨라! 어, 서···.”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고, 깨닫는다.


더 이상 그의 명을 들을 이는 아무도 없었다.


언제 그리된 걸까. 모두 땅바닥에 눌어붙은 신세로 전락했음을 뒤늦게 눈치챈다.


제 주위에 있는 것은 오직 적개심 어린 시선뿐.


증오를 태운 끝에 기어이 재앙이 되어버린, 원한에 사무친 악귀들.


해답은 없었다.


해결할 방법 따윈, 완벽히 사라졌다.


그저··· 죽을 수밖에 없다.


“큭···!”


그때.


남궁경의 뇌리에 무엇이 스쳐 갔는지는 그 자신조차 알지 못했다. 그게 무엇인지 자각하기에는, 지극히 짧은 한순간에 불과했기에.


찰나.


눈 한 번 깜빡일 틈보다도 짧은, 더없이 자그마한 찰나.


그 찰나가··· 이어진다.


포위한 추종자들이 움직이지 않는다.


무엇 때문인가. 혹시 나를 조롱하고자 하는 것인가?


그러나 곧, 그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사람들의 낯빛에 당혹감이 스쳤기에.


누구 하나 가릴 것 없이, 제자리에 못 박힌 듯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정지해 있었기에.


그리고.


――――――――.


나지막하게.


➖➖➖➖➖➖➖.


더불어 뚜렷하게.


현과 활이 마찰하며 내는 미음(美音)이, 공기를 꿰뚫었기에.


음공(音功).


허공에 퍼져나가는, 진기를 실은 그 파동에··· 추종자들 전원이 못 박힌 듯 정지한다.


“너, 네가···.”


더듬더듬, 남궁경이 입을 열었다.


차츰 짙어지는 그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칠 척(尺) 가까이 되는 거한이 그 자리에 있었다.


황보나 팽가, 하다못해 당가의 사람이었다면 그 거대한 몸집이 그렇게까지 인상적이진 않았을 것이다.


허나 그는 제갈이었고, 그 점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처음 만났을 적부터 그리 생각했고, 지금도 그러했다.


어깨를 넘어 슬슬 등판을 덮을 만큼 자란 머리칼을 대충 묶어 올린 꼴에, 황토색 유삼(儒衫) 위에 쇄자갑(鎖子甲)을 덧입은 괴상한 차림새.


거기에 손에 들린 난후(南胡)까지. 결코 작은 악기가 아님에도 연주자의 체격 탓에 대단히 자그맣게 보였다.


그 악기를, 거한의 청년은 온 사력을 다해 연주하고 있었다.


이 싸움을 그치게 하려고.


이 싸움에서, 남궁경을 구하려고.


“네가 왜 여기 있는 거냐, 기의···!”


제갈기의.


경의 동생 란의 정혼자이며, 호북에서 괴상하기론 제일가는 기인.


더불어··· 누구보다도 먼저 흉수의 존재에 대해 경고했던 사람.


“허.”


그가 입을 열었다.


“벗이 걱정되어 먼 길 서둘러 달려왔건만, 가장 먼저 듣는 소리가 감사 대신 핀잔이라니.”


쯧.


“그 딱딱한 태도 좀 내려놓으면 어디 입에서 가시가 자라나던가? 이 지경이 되어서도 어찌 그리 말을 꼬아?”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 혀를 차고.


그렇게 평범한 날에, 평범히 친구를 만난 것처럼 말을 꺼낸다.


허나 남궁경은 알 수 있었다.


봐버렸기에, 알 수 있었다.


늘상 뜻 모를 장난기가 깃들어 있던 벗의 눈이··· 지금 더없이 가라앉아 있음을.


“서문 밖에 무사들을 대기시켜놨다.”


말투만큼은 간신히, 평소와 다름없었다. 그런 식으로나마 경이 마음을 놓을 수 있도록 배려한 걸까.


“란을 데리고, 서둘러 떠라. 곧 따라갈 테니까.”


그럼에도.


차마 숨기지 못하고, 끝내 그 한마디에 짙은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남궁경은 친구를 바라보았다. 뒤이어 제 품에 쓰러진 동생을 바라보았다.


이어서, 이젠 재와 먼지만이 가득한 자신의 본가를 바라보았다.


그곳에 있을 아버지를··· 바라보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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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순차(順差) +1 24.06.21 378 15 11쪽
42 순리(殉利) ※24/06/20(목) 수정※ +1 24.06.18 392 22 13쪽
41 순조(順潮) ※24/06/20(목) 수정※ +3 24.06.16 489 23 14쪽
40 순례(巡禮) ※23/06/20(목) 수정※ +3 24.06.15 646 23 11쪽
39 순복(馴服) +4 24.06.14 735 27 13쪽
38 교(交), 교(敎), 그리고 교(矯) +2 24.06.12 745 33 13쪽
37 맹(盟), 맹(盲), 그리고 맹(儚) 24.06.11 723 29 13쪽
36 "그대는 그저,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길을 나아가주게." +3 24.06.10 732 33 11쪽
35 “···이리하여 나의 고난이 시작되었고.” 24.06.09 758 31 13쪽
34 “옛날 옛날, 한 옛날에.” +1 24.06.08 750 28 11쪽
33 회한의 종막, 혹은 재탄 24.06.07 786 31 11쪽
32 퇴락한 꿈 +1 24.06.06 814 28 13쪽
» 대물림 24.06.05 819 30 12쪽
30 하늘에서 내려온(天) 악마처럼(魔). +1 24.06.04 864 38 11쪽
29 비로소, 파(破) +2 24.06.03 860 34 12쪽
28 몰(歿)할 때까지 몰(沒) 24.06.02 866 30 13쪽
27 악(惡)이 벼려낸 악(鍔) +1 24.06.01 862 30 12쪽
26 회(徊)를 딛고서 회(䝇) +3 24.05.31 888 32 11쪽
25 해(害), 이어서 해(邂) +1 24.05.30 900 31 11쪽
24 재(災), 이어서 재(齎) +3 24.05.29 952 3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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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절(切), 더불어 절(折) +2 24.05.27 995 3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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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신(神), 혹은 신(信) +2 24.05.25 1,105 3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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