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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연화26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 이렇게 천마가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공모전참가작

장연화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5.08 11:58
최근연재일 :
2024.06.27 22:20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58,346
추천수 :
1,966
글자수 :
262,810

작성
24.05.30 19:05
조회
900
추천
31
글자
11쪽

해(害), 이어서 해(邂)

DUMMY

사람이 죽었다.


한 명의 생이 끊겼다. 흐르지 말아야 할 피가 흘렀다.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 잠에 빠졌다.


날붙이에 가슴팍이 베였다면, 그리되어야 마땅했다.


‘어···.’


넘어가는 동료의 시신을 보며, 수위무사 명휘는 그리 생각했다. 생각한 그대로를 입 밖으로 내뱉으려 했다.


- 그르륵.


허나 낼 수 있었던 것은, 단지 그 끓는 소리뿐이었다.


그것이 그의 유언이 되었다.


쿵.


남궁의 대문을 지키는 두 문지기가 죽었다.


뒤이어.


“으아아악!”


“사, 살인이다!”


“모두 도망쳐, 당장!”


한 박자 늦게, 소란이 피어난다.


양민들이 흩어진다. 두려움에 떠는 하인들이 혼비백산한다.


수십 가량의 인영(人影)이 어지러이 움직인다. 그들을 뒤로하고서,


사박.


강우는 대문을 넘었다.


문턱을 넘어, 남궁의 땅에 피 묻은 발자국을 찍었다.


“멈춰라!”


“웬 놈이냐!”


그 한 발짝을 뗀 직후, 급박한 고함이 들려온다.


오대세가 중에서도 으뜸이다. 남궁의 대응은 절대 느릴 수가 없다. 결코 당황하지도, 어쩔 줄 모른 채 굳어버리지도 않는다.


갑작스레 벌어진 난리에, 대기하고 있던 청룡대 둘이 튀어나온다.


대주의 시신을 지키고자, 더불어 이와 같은 기습을 막고자 남아있기를 자청한 자들이었다.


흉수가 두려워 숨은 게 아니냐는 비아냥을 암암리에 들었다. 그것이 거짓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그들은 용기를 품고서 기어이 쳐들어온 자를 향해 검을 뽑아 들었다.


허나.


“커··· 억!”


다음 순간, 칼날은 이미 도래해 있었다.


직각으로 쑤셔박힌 겸의 인(刃), 그것이 복부를 꿰뚫는다.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당겨낸다. 우두둑, 등골이 꺾이며 절명한다.


남은 한 명은 그 처참한 꼴에 순간 넋을 빼앗긴다. 그것이 실책이었다.


참수.


···남궁의 푸른 무복을 휘날리며 나타난 두 명은, 그렇게 채 삼 초를 버티지 못했다.


- 두근.


피를 보자 심장이 크게 울었다. 그를 중심으로 전신에 내공이 돌았다.


그 흐름에, 증오가 한층 짙어진다.


살의가 부풀어 올랐다.


공포에 사무쳐 정신없이 뛰어가는 사람들 사이로 설핏, 공헌명의 모습이 어른거린 듯했다.


그 사실이···.


“흐, 하하.”


더없이 즐거웠다. 그때.


“누구냐!”


불쾌감이 끼어든다.


- 멍청한 놈들.


벌써 세 번째 똑같은 소리를 들었다. 역시 무인이라 그런지 머릿속에 든 것이 없는 모양이다.


슥, 뒤편에서 찔러 들어오는 일격. 단지 반걸음 남짓 움직이자, 허무하리만치 쉽게 빗나간다.


“어, 어떻게···!?”


“알 것 없어.”


쌔액!


공기와 더불어 살갗을 갈라낸다. 썩어들어가는 칼날을 크게 휘두르자, 등 쪽을 노려온 무사의 머리가 수평으로 찢겨나간다.


“쯧.”


기껏 좋았던 기분이 확 엉망이 되었다. 줄행랑을 치던 공헌명의 뒤꽁무니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호흡과 더불어 마음을 가라앉혔다. 조급할 필요는 어디에도 없었다.


강우는 침착하게, 제 앞의 누각까지 얼마나 걸릴지를 계산했다.


걸리적거리는 인간이 많을 뿐, 길은 똑바른 직선이다. 아무리 늦어도 반 각이면 도착하리라.


시끄럽게 울리는 비상종.


처절하게 도망치는 사람들.


그리고 이 순간에도, 어떻게든 자신을 막아보겠다 달려오는 남궁세가의 무사들까지.


“마침 잘 되었군.”


씨익.


휘날리는 멱리 사이로 비릿한 웃음이 떠올랐다.


“너희 전부를 베고 나면, 기분이 한결 낫겠어.”


나지막한 중얼거림.


그를 신호로 강우가 움직였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하나.”


그 말에 두 팔이 잘려 나간다.


가장 먼저 다가와 초식을 날리려던 자가, 양팔을 잃고서 비명을 지른다. 고통에 사무쳐 허우적댄다.


“둘.”


이어서 나타난 자는, 아무래도 앞서 울부짖던 자가 시선을 끌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나름대로 사각을 노리려던 걸까. 좌측 후방, 담장을 타고 와 위에서 아래로 내리찍고자 했다.


그러나 그에 앞서, 콰직!


- 끄아아아악!


굽어진 칼날이 낭심을 사선으로 걸어냈다. 으깨지는 감각에 절규가 저절로 튀어나왔다. 그에 그치지 않고, 강우는 힘을 더해 끝내 상대의 왼쪽 다리까지 통째로 절단하고 만다.


그 궤적에 흔들림은 없었다.


어지러운 변화나 화려한 기교 또한 없었다. 살신이 낫을 통해 그려내는 것은 오직, 단순하기 그지없는 곡선과 직선.


살인의 궤적.


허공에 그어지는 그 경로를 따라 휘두를 뿐이다. 그저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셋을 셀 때까지만 해도 다가오는 걸음들은 멈추지 않았다.


다섯을 셀 때까지도 그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죽음의 길을 가로막고자 했다.


그러나 일곱이 되던 순간, 머뭇거림이 피어났다.


여덟에 닿자 그 기세가 꺾였다. 아홉에 경악이 번졌고, 끝내.


“열.”


강우의 입에서 그 말이 떨어지자, 무사들이 뛰어가는 방향은 반대가 되었다.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곳에 살아날 길은 없다는 것을.


그 모든 일이 벌어지는 동안.


- 사박.


강우의 걸음은 단 한 순간도 그치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느린 그 진격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헉···!’


그 순간.


슬쩍 그 광경을 살펴본 누군가가 숨소리를 죽였다.


그는 이제 막 이립이 된 무인이었다. 본가의 눈에 들어 방가에서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얼마 전 겨우 일류의 영역에 걸어들어온 참이었다.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다짐하던 때, 불청객이 침범했다.


정체 모를 존재. 하지만 불평은 그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절정, 분명 그조차도 아득히 초월한 고수.


그 불청객은,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 이길 수 없는 자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청룡대가, 수위무사들이 허무하게 죽어 나가는 꼴을 보았다. 그 시점에서 전의를 상실했다.


몸을 숨기는 데 급급했다. 입을 틀어막고 숨을 참는다. 새어 나가는 호흡조차 붙잡으려고 애쓴다.


질끈 눈을 감는다. 떠오르는 신, 기도 드릴 수 있는 존재, 그것이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애원한다.


‘천존이시여···.’


눈을 뜨면, 무섭다.


눈을 감아도 무섭다.


아득히 들려오는 소란, 그리고 괴이할 정도로 크게 느껴지는 발소리.


그에 덧붙여, 하나 더.


“크릅···!”


짧게 끊어지는 단말마.


접객당에서 일하던 가노들, 술잔을 나누며 무에 대한 열변을 토하던 객인들. 이따금 목검을 맞부딪치던 본가 사람들.


그들 모두가··· 한 명씩 사라지고 있었다.


‘부처님···!’


떨리는 턱을 악쥐었다. 치아가 맞부딪치는 일이 없도록 입 안에 손가락을 쑤셔 넣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그는 애원했다. 누구든 상관없었다. 제발.


살려줘.


누구 없어?


제발.


아무나 좋으니, 제발!


그러나, 사박 하고.


“여기 있었구나.”


낮게 깔린 목소리가 귓전에 닿았다. 곧이어.


“-구, 그르흑!!”


그의 가슴팍에서, 칼날이 자라났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바로 이해하질 못했다.


굽어진 칼날이 폐를 꿰뚫었다. 둑이 터진 것처럼 혈액이 흘러넘친다. 살점이 삐져나와 있다.


등 뒤편을, 낫으로 관통당했다.


“커, 허, 어어어억···.”


아프다기보단, 뜨겁다.


뜨겁다기보단, 차갑다.


너무나도 춥다.


순식간에 온몸에서 온기가 사그라든다. 그 감각과 더불어 마지막 숨을 게워낸다.


그 감각을 견뎌내며, 뒤를 돌아본다.


최후의 순간,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공허.


안구를 파내고, 그 자리를 단지 빈 공간으로 방치한 듯한··· 공허한 눈동자였다.


추욱 늘어지는 시신. 순식간에 자루에 무게감이 걸렸다.


후우.


짧게 한숨을 쉬며, 강우는 죽은 무인의 등판에서 칼날을 비틀어 빼내려 했다. 바로 그때.


“그쳐라!”


뒤에서 들려오는, 벼락같은 목소리가 있었다.


- 피식.


그 우레와 같은 대갈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가슴 속이 뜨거웠다. 원한이 갈증을 호소했다.


이곳에는 그를 달래줄 장작이 많았다. 하나하나 담기 좋게 널려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인데, 이렇게 직접 태워달라 끊임없이 다가오니.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가 있겠나.


“그래.”


파샥.


낫을 뽑아내고서, 강우는 뒤쪽을 돌아보았다.


“···내가 선조께 대죄를 지었구나.”


그 끔찍한 광경에, 시선을 마주한 노사(老師)가 침통히 탄식한다.


하늘처럼 푸르른 무복에, 구름 같은 수염이 인상적이었다.


남궁후.


일찍이 검왕이라 불렸던, 남궁세가의 장로원주였다.


***


남궁후, 그는 내년에 칠순을 맞이할 노인이었다.


협객에게 있어 나이라는 것은 많으면 많을수록 대단한 것이었다. 일 년에 하나씩 쌓여가는 상패였다.


칼과 주먹으로 생사를 가르는 이 강호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지금껏 치른 결투, 그 모든 대결에서 승리했다.


그 길을 걸으며 일찍이 검의 정점에 닿았다. 가주 자리와 함께 별호는 아들 학에게 물려주었으나, 그 업적의 존재만은 오롯이 그 자신의 것이었다.


그러한 자에게도···.


‘이 자는··· 정녕 사람이 맞는가?’


눈앞의 흉수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였다.


한바탕 피보라를 일으켰음에도, 짙푸른 장포와 새하얀 멱리에는 여전히 붉은 얼룩 한 점 묻어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전신을 감돌고 있는 시뻘건 기운은 무엇이란 말인가.


나름대로 단정한 차림새에 어울리지 않는, 저 부패한 칼날은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무릇 무사라면 자신의 병장기를 생명만큼이나 중히 여겨야 한다. 헌데, 저 방만한 태도는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그 방만한 태도로··· 벌써 수십에 이르는 가인(家人)을 살해한 저자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흐으음···.”


침음한다. 손에 쥔 검자루에 힘을 가한다.


뜨거운 분노를 차갑게 제련한다. 오래도록 거듭한 일이었다.


상대는 진즉 연씨 방가를 파괴했다. 적사회조차 끌어내렸다.


그에 더해, 세가에 남았던 경비 병력을 단신으로 돌파했다.


전력을 다해야 마땅하다. 진노를 다스려 그 어느 때보다도 예리하게 갈아내야 한다.


스르륵···.


팔을 들어 올린다. 취하는 것은, 고혼일검(孤魂一劍)의 자세.


그 순간.


- 어···?


마음 없던 흉수의 눈동자에, 황망함이 서린다.


두 눈이 커진다.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린다.


방금까지 자아내던 살기가 거짓말인 것처럼, 더없이 흐트러진 모습.


혹여 초절정의 고수 앞에서 뒤늦게 두려움이 든 걸까.


그러나, 남궁후의 머릿속에 떠오른 그 가능성은.


- 사박.


“음···?”


갑작스레 난입한, 또 다른 발소리에 지워진다.


- 사박.


물기 어린 흙바닥에 신발 밑창이 끌리는 소리.


누군가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소리.


어째서일까.


강우에게 있어, 그 소리는 이상하리만치 익숙했다.


천천히, 그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그러자.


“당신이···.”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어째서 여기에···?”


두근, 하고 가슴이 뛰었다.


심장이 고동쳤고, 혈관이 맥동했다. 그야···.


눈에 들어온 그 모습은, 너무나도 익숙한 것이어서.


너덜너덜해진 외투에 다 망가진 삿갓.


그리고 그 삿갓으로도 가릴 수 없는 너저분한 백발까지.


전에 보이지 않던 낡은 장검 한 자루가, 그 허리춤에 매달려 있었다.


“왜···.”


강우의 그 황망한 물음에.


“말하지 않았나.”


하성에서 만났던 그 노인은, 언제나 그랬듯 인자한 목소리로 답했다.


“우리는 어둠을 몰아낼 곳에서 다시 만날 거라고.”


작가의말

害: 해할 해.

邂: 만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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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순조(順潮) ※24/06/20(목) 수정※ +3 24.06.16 489 23 14쪽
40 순례(巡禮) ※23/06/20(목) 수정※ +3 24.06.15 646 2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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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교(交), 교(敎), 그리고 교(矯) +2 24.06.12 745 33 13쪽
37 맹(盟), 맹(盲), 그리고 맹(儚) 24.06.11 724 29 13쪽
36 "그대는 그저,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길을 나아가주게." +3 24.06.10 732 33 11쪽
35 “···이리하여 나의 고난이 시작되었고.” 24.06.09 758 31 13쪽
34 “옛날 옛날, 한 옛날에.” +1 24.06.08 750 2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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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퇴락한 꿈 +1 24.06.06 814 28 13쪽
31 대물림 24.06.05 819 30 12쪽
30 하늘에서 내려온(天) 악마처럼(魔). +1 24.06.04 864 38 11쪽
29 비로소, 파(破) +2 24.06.03 860 34 12쪽
28 몰(歿)할 때까지 몰(沒) 24.06.02 866 30 13쪽
27 악(惡)이 벼려낸 악(鍔) +1 24.06.01 862 30 12쪽
26 회(徊)를 딛고서 회(䝇) +3 24.05.31 888 32 11쪽
» 해(害), 이어서 해(邂) +1 24.05.30 901 31 11쪽
24 재(災), 이어서 재(齎) +3 24.05.29 953 31 11쪽
23 업(業), 더불어 업(嶫) +1 24.05.28 949 28 13쪽
22 절(切), 더불어 절(折) +2 24.05.27 995 30 14쪽
21 전(前), 혹은 전(戰) +1 24.05.26 1,035 29 12쪽
20 신(神), 혹은 신(信) +2 24.05.25 1,105 36 12쪽
19 린(躪) +3 24.05.24 1,089 3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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