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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연화26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 이렇게 천마가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공모전참가작

장연화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5.08 11:58
최근연재일 :
2024.06.27 22:20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58,363
추천수 :
1,966
글자수 :
262,810

작성
24.06.08 19:05
조회
750
추천
28
글자
11쪽

“옛날 옛날, 한 옛날에.”

DUMMY

옛날 옛날, 한 옛날에.

···아니.

어쩌면 그렇게 먼 옛날이 아닐 적에.


무당산에 살았던, 세상 무서운 줄 모른 남자가 있었다.



1.

무당파의 일대제자, 장환.


부모의 낯도 모른 채 어렸을 적 거둬졌다. 그때부터 뛰어난 역량을 보였다. 가르침을 받으면 남들의 배 이상의 성취를 보였다. 끝내 약관(弱冠, 20세)이 채 되기도 전에 절정의 영역을 넘었다.


천무지체(天武肢體).


극음, 극양, 삼재, 오행, 태극, 모든 기운이 깃들어 있는 몸. 그 어떤 무공이라도 익히고 행할 수 있는 몸.


축복.


스승의 총애를 받고, 동문의 질투를 샀으며, 사제(師弟)들의 우상이었다. 그에게 있어 두려운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단련을 거듭하여 자신을 쌓아 올리는 시간, 그 자체만으로도 즐거웠다. 하지만 가슴 한쪽에는 내심 자신의 힘을 세상에 내보이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다.


누구보다도 뛰어난 이 힘을, 세상을 위해 쓰고 싶었다.


스승과 동문의 입으로 전해 듣던 저 아래 강호의 이야기. 힘을 통해 의로움을 관철하는 협객들의 이야기. 자신도 그들처럼 되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다리던 때가 찾아왔다.


비밀스럽게 전해진 장문인의 호출.


비로소 너의 쓰임이 생겼다고 말해주면서, 장문인은 지금껏 그가 알지 못했던 세계를 소개해주었다.


삭명대(削名隊).


‘이름을 깎아낸 자들’. 그 뜻에 걸맞게, 이 강호의 안녕을 위해 그 어떤 일이라도 불사하는 기밀 부대.


너의 실력은 그곳에 쓰여야 함이 옳다고, 너라면 충분히 그에 속할 자격이 충분하다고.


이 무림을 지탱하는 대들보가 되어달라고. 그날, 장문인은 그리 말했다.


그는 순수했다. 자신의 이름을 떨치지 못한들 상관없었다. 그만한 야망이 없었던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때는 단지 자신의 무(武)를 통해 협(俠)을 이룰 기회가 생겼음이 기뻤다.


장문인께서 직접 명하셨다는 사실에 인정받았다는 만족감도 있었다.


마침내 저 강호라는 곳에 직접 내려가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설렘도 느껴졌다.


어리석게도.


아무것도 몰랐던 그때는, 단지 그리도 기뻤다.


그렇게 유성검이란 이름의 어느 협객이 남긴 비보가, 사파의 손아귀에 들어간 규촌(葵村)이란 곳에 있다고. 빼앗기기에 앞서 그 비보를 회수해 오라는 임무를 받고서.


장환은 처음으로, 그 두려움 없던 세상의 너머로 향했다.



2.

“끄아아악!”


비명이 울렸다. 동시에 툭, 무언가 땅바닥에 떨어졌다.


피 끓는 울부짖음이 잔향(殘響)처럼 퍼졌다. 허나···.


“다음.”


그 처절한 광경에도, 방금 비명을 토해낸 이의 손을 절단한 자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


장환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차마 무어라 말하진 않았으나, 얼굴 가득 지은 심란한 표정은 도저히 숨겨지지 않았다.


동문 장리(張離).


같은 항렬임에도 불구하고 장환보다 앞서 삭명대에 들어온 그는, 규촌의 사람들을 잡아다 대원들과 함께 심문을 벌이고 있었다.


그의 솜씨는 일품이었다. 잘린 단면이 겨울날 얼어붙은 강물의 빙판처럼 매끈했다. 흙바닥을 뒹구는 저 오른손 토막을 주워다 붙이면 깔끔하게 접합될 수 있을 듯 보일 정도로.


그러니 자기보다도 먼저 이곳에 속해, 대주 자리까지 받은 걸 테지. 하지만···.


‘과연 이리하는 것이 맞는 건가.’


장환은 의심하고 있었다.


그의 시야에 사람들이 잡혔다. 두려움에 떠는 얼굴들. 땅 갈고 씨 뿌리는 일에, 땡볕 아래 까맣게 탄 농사꾼들의 행색.


이들이 정녕 사파의 끄나풀들이란 말인가.


‘속지 마라.’


심문을 벌이기 전, 그런 말을 들었다.


‘우리는 분명 사흘 말미를 주었다. 유성검에 대해 아는 자가 있는지를 물었고, 무엇이든 유용한 정보를 제보하는 자에겐 큰 상을 내릴 거라 전했다.’


그럼에도 저들은 거부했다, 라면서.


‘충분한 시간과 보상을 약속했음에도 이리 거부했다는 것은, 이 마을 전체가 이미 사파의 하수인으로 전락했다는 뜻이다. 겉으로는 한낱 무지렁이처럼 보일지 모르나, 속으로는 사특한 마음을 품고 있음이 분명하다.’


장리는 대원들을 풀었다. 마을 전체를 들쑤시며 중앙의 넓은 터에 사람들을 한데 모았다.


그 뒤로 벌어진 게 이 꼴이었다.


한 명씩 끌어내어, 유성검에 관하여 묻는다. 답하지 않으면 죽인다.


그렇게 절명한 자가 벌써 아홉이었다.


그리고, 뒤이어 열 번째.


“살,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끝내 장환의 낯빛이 일그러졌다. 이번에 끌려 나온 것은, 지학을 겨우 넘은 소녀.


“유성검에 대해 네가 아는 것을 말하라.”


허나 리의 물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검 또한 마찬가지였다. 칼날을 목에 겨누고 대답을 독촉했다.


“이 여식이 아니어도 좋다. 너희 중 누구 한 명이라도 입을 연다면, 이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 은자 한 냥씩을 내려주마.”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이 침묵이, 과연 매수나 충성에서 비롯될 수 있는 걸까. 혹여 무지에서 비롯된 건 아닐까.


“제발···.”


소녀가 처절하게 애원한다. 과연 누구를 향한 것인가.


“산령님···.”


“잠깐.”


결국, 촌민들을 대신하여 장환이 입을 열었다.


“잠시만 기다려주게. 내가 해보지.”


리가 보내오는 의아한 눈빛. 장환은 그 눈빛에 말로써 답했다.


다행스럽게도 짧게 끄덕이며 물러났다. 무릎을 굽혀 눈높이를 맞추고서, 장환은 소녀에게 묻는다.


“침착해. 내가 묻는 말 몇 가지만 답해주렴. 그럼 다치지 않을 거라 약속할게.”


소녀는 겨우 끄덕이는 것으로 답했다.


“네가 말한 그 산령이라는 분은 어떤 사람이니?”


산령.


심문이 벌어질 적, 몇몇 사람들이 입에 올리던 단어. 기도의 대상. 단순한 토속신이 아닐까 싶다가도, 거기에 단서가 숨겨져 있을지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흑, 사, 산령님은··· 강하시고, 그, 저희를··· 지켜주세요, 끅.”


“그분이 어찌 생겼는지 말해줄 수 있어?”


“머, 머리에, 관을 쓰고, 칼을 차고···.”


“칼을 차고 계신다고?”


계속 새어 나오는 울음에, 입을 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장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녀를 무리로 돌려보내곤, 동문에게 귀띔한다.


“아무래도 이 자들이 말하는 산령이, 우리가 찾던 유성검인 것 같아.”


“확실한가?”


“우리 조사님 또한 몇몇 곳에선 검선이라 모셔지고 있잖아. 똑같아. 아무래도 우리가 쉬이 알아차릴 수 없도록, 그런 식으로 일종의 암호 내지 피휘를 한 모양이지.”


흐음.


리는 납득한 듯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며, 장환은 턱 끝까지 차올랐던 말을 꾹꾹 눌러 삼켰다.


‘이들은 단지 속은 거야.’


넌 무고한 자들을 베었다고, 그리 힐난하는 말을 애써 목 아래로 삼켰다.


“이 근처 산중에 그 산령이란 것을 모시는 사당이 있다고 했지. 즉시 수색을 개시하라.”


즉각적으로 내려지는 명령. 단원들은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포에 질린 사람들도, 땅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들도.


전부 방치하고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환, 너도 따라와라. 한 시진 후면 해가 질 테니 서둘러야 한다.”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장환에게, 리는 그리 재촉했다. 그렇게 씁쓰름한 마음을 겨우 추스르고 발걸음을 떼려던 순간.


“왜···.”


문득,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죽였어요?”


그 목소리에.


그 물음에.


겨우 떼려던 발걸음이 그쳤다.


장환은 고개를 돌렸다. 거진 무의식적으로, 아니. 거부할 수 없는 어떤 절대적인 힘에 의해 그의 시선이 옮겨지는 듯했다.


곧, 시야 속에 목소리의 진원지가 들어왔고.


“-”


그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반사적으로 입을 벌렸으나, 그 어떤 소리도 내지 못했다.


저 모습을 앞에 두고서, 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 슬픔.


납득할 수 없는 비탄.


그리고···.


“왜 죽였어요.”


원한.


그 자신도 감당할 수 없는, 격렬한 원한.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머리로는 이해했다.


몇 마디 질문, 그것만으로 충분히 해결될 문제였는데 왜 칼부림을 벌였느냐.


왜 굳이 사람들을 죽여야만 했느냐.


저 소녀는 지금, 그걸 알고 싶은 걸 테지.


그 순간이었다.


그것을 겪는 것이 처음이었던 탓에, 장환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정확히 무엇인지 곧장 알아채질 못했다.


다만 숨 쉬는 것이 갑갑하게 느껴졌다.


다만 태산이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사람의 얼굴로 어찌 저런 표정이 지어질 수 있는가. 그러한 의문이 머릿속에서 흘러갔다.


“왜 죽였냐고요.”


세 번째.


풀려난 소녀가 질문을 세 번째 거듭하던 그때, 장환은 다양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소녀의 주변으로 다양한 얼굴이 보였다. 그 얼굴들은 제각기 다양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무사들의 화를 살까 두려워하는 마음.


기껏 살아났나 싶었는데 왜 쓸데없이 화를 자초하느냐 힐난하는 마음.


그들 중 몇몇은 급기야 소녀의 입을 틀어막으려고 손을 뻗고 있었다. 허나, 그런 것보다도.


장환을 진정으로 경악케 한 것은 따로 있었다.


-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다.


자신 외에는, 그 누구도 돌아보지 않았다.


철저하게. 모래 알갱이만 한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어떠한 판단하에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무시하는 기색조차 없었다. 단원들의, 리의 멀어져가는 뒷모습. 그것은 꼭···.


저 목소리가, 애당초 들리지 않는 듯 보였다.


그 순간.


“-왜 죽였냐고!”


마침내.


소녀가 움직였다.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싸늘함을 넘어 차디찬 그 반응에.


소녀는 극적으로 움직였다. 말리고자 하는 사람들의 손을 뿌리치고, 저지하려던 단원들의 움직임을 뿌리치고···.


심지어 소녀를 지키기 위해 가로막고자 했던 장환 자신조차 뿌리치며.


장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무방비하게 드러난, 흑복을 두른 그 등판을 향해.


그러나.


- 서걱, 하고.


“뭐···.”


장환은 뒤늦게 목소리를 내었다. 더없는 망연함이 허공을 향해 새어 나왔다.


섬광이 번뜩였다.


맹수의 이빨처럼 칼집에서 검이 튀어나왔다. 지평선 근방에 놓인 붉은 태양, 그것이 내뿜는 빛이 순간 검신에 반사되었고.


그 빛을 베어낸 것처럼.


소녀의 목에서 혈액이 쏟아졌다.


풀썩.


머리가 땅을 굴렀다. 몸통은 바닥에 엎어졌다. 그렇게 비로소, 흙 묻은 시신이 열을 채웠다.


그리고.


그제야.


“함정이었나.”


돌아보지도 않고서.


리는 그렇게 뇌까렸다.


한없이 자그마한 그 중얼거림이, 확 깔려 든 이 정적 속에서 소녀의 외침보다도 크게 들렸다.


이어서.


“멸하라.”


한마디.


리의 입에서 나온 그 한마디에, 흩어지던 단원들이 모여들었다.


···소리가 잘게 끊겨 들렸다. 귀를 다치지 않았음에도. 저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악다구니, 발버둥, 애원, 기도.


그리고 날붙이에 인간의 신체가 훼손되는 소리.


그들 전부가 뒤섞여, 잘게 저며진 것 같았다.


더불어.


“이것이 사파의 방식이다.”


발등에 못이 박힌 듯 움직일 수 없던 장환에게, 리는 그리 말했다.


“결코 마음을 놓지 마.”


그 말에, 장환은 이해했다.


자신이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가까스로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은 두려움이었다.


지금껏 자신이 살던 세상에는 없었던··· 그간 알지 못했던 무지의 세계 너머에서 찾아온 존재였다.


작가의말

규(葵): 해바라기, 접시꽃

규(叫): 부르짖다, (큰소리로) 울다

장환의 과거는 다음 화에 마무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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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악(惡)이 벼려낸 악(鍔) +1 24.06.01 863 3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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