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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연화26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 이렇게 천마가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공모전참가작

장연화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5.08 11:58
최근연재일 :
2024.06.27 22:20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58,354
추천수 :
1,966
글자수 :
262,810

작성
24.06.15 20:55
조회
646
추천
23
글자
11쪽

순례(巡禮) ※23/06/20(목) 수정※

DUMMY

며칠 전, 선성.


“헉··· 헉···.”


화씨세가 소가주, 화진윤.


연신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그는 결코 장원 안뜰로 향하는 발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어머니와 어린 동생, 객인들을 비롯하여 당장 싸울 수 없는 자들은 전부 장원 밖으로 방금 대피시킨 참이었다.


‘어차피 세가로서의 직위를 내려놓을 예정이었던 만큼, 이제 와서 귀한 대접 받는 도련님 역할은 맡을 생각 없습니다.’


어딜 가느냐 급히 묻는 어머니 말씀에, 진윤은 그리 답하며 끝내 일행에게서 등을 돌렸다.


‘제 나이 어느덧 약관입니다. 한 명의 협객으로서, 적어도 제 피붙이는 지키다 가려 합니다.’


돌아오라는 동생의 울음 섞인 외침에, 그는 미련에 발목 잡히지 않고자 전력을 다해 뛰어갔다.


- 진성 형도 분명 그랬을 테지.


두려움은 없다. 그건 거짓말이었다.


백주대낮에 가내로 침입해선, 일가식솔들을 무차별적으로 때려죽인 괴한. 그가 벌인 처참한 살육의 현장을 보고도 공포를 느끼지 않을 자는 없으리라.


그러나.


더불어 그럼에도.


진윤은 마음을 다잡았다. 자신은 더 이상 어머니의 아침상이나 받아먹을 어린아이가 아니라고.


일각, 아니. 한순간이라도 좋다. 시간을 벌어야 한다.


“나도 이젠 어엿한 한 명의 무인이다!”


안뜰의 도착할 무렵.


진윤은 제 안의 망설임을 몰아내고자 큰 소리로 외쳤다.


“내 가족은! 내 손으로 지킬 것이다!”


우레와도 같은 고함, 그와 더불어 검격을 날리려던 그 순간.


빠-악!


둔탁한 소리.


무언가 단단한 것이 으깨지는 소리.


동시에, 진윤의 시야가 홱 돌아갔다. 격하게 비틀린 고개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얼굴에 가해진 강렬한 충격.


온 세상이 핑글핑글 회전하는 것 같았다. 몇 차례 비틀거리던 진윤. 넘어지기 직전 가까스로 자세를 되잡았다.


이윽고 치밀어 드는 얼얼한 고통에, 제 턱을 만지려던 그때.


“···아, 쪼끔 더 위를 노려야 캤는데.”


그의 손에 닿은 것은 제 자신의 입천장이었다.


- 그흐으아아악!!!


아래턱이 통째로 찢겨나갔다.


피와 침이 뒤섞이며 비명과 함께 흩뿌려졌다.


“내 아직 멀었구마. 손에 익으려면 더 써야긋다.”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까.


전력으로 휘두른 편곤(鞭棍). 그걸로 진윤의 하관을 파괴한 괴한은 그저 아쉽다는 듯 태연하게 중얼거렸다.


손수 만든 듯한 대충 엮은 초립(草笠)과 목에 감은 수건.


양 소매를 찢어낸 차림에, 햇볕에 그을린 피부.


언뜻 보기엔 평범한 농사꾼이나 다름없었다. 방금까지 타작 일을 돕다가 온 듯한 모습이었다.


그 행색 일체가 시뻘건 핏물로 뒤덮이지만 않았더라면, 분명 누구든 그리 생각했을 것이다.


“가만히 좀 있으라. 니 그리 허우적대면은 편하게 해줄 수 없지가 않니?”


붕, 붕. 두어 차례 편곤을 휘둘러 치아 조각을 털어내고서, 괴한은 그제야 격통에 꿈틀대는 진윤을 바라보았다.


당연하게도, 진윤은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충격으로 급사하지 않은 것만 해도 기적이었다.


“사내 새끼가 말이야. 좀 참을 줄도 알아야 하지 않긋나. 그렇지 않으면은,”


그러거나 말거나.


누굴 흉내 내기라도 하는 걸까. 엉터리 사투리를 쓰는 그 괴한은, 설레설레 고개를 흔들며 진윤의 머리칼을 틀어쥐었다.


그리고.


“···기어이 이리 손을 쓰게 되잖니. 응?”


콰직.


찢겨나간 턱 아래 훤히 드러난 목구멍.


통쇠로 된 편곤 자루를 그 안에 쑤셔 박았다.


“브그르륵···!”


부드득.


순간적으로 격렬하게 경련한다. 허나 그조차도 얼마 가지 못했다.


감지 못한 눈에 빛이 사라졌다. 힘이 바짝 들어간 탓에 경직되었던 사지가, 이내 추욱 늘어지고 만다.


“하아···.”


괴한은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여름은커녕 아직 겨울 가지도 않았는데, 쬐끔만 움직여도 이리 땀이 줄줄 난다. 성가시게.”


북, 북. 수건으로 제 얼굴을 닦았다. 이미 절여지다시피 핏물에 젖은 탓에, 땀을 훔치는 건지 아니면 낯빛을 불그스레 물들이는 건지 분간이 안 될 지경이었다.


견지(堅智).


그것이 괴한의 이름이었다. 이제 겨우 소년에서 벗어난 열아홉 남짓의 청년이었다.


“아무튼···.”


한 차례 매무새를 정리하고서, 견지는 제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산혈해(屍山血海).


거진 폭풍이 휩쓸고 간 꼴이었다.


화씨세가의 장원, 그 안뜰의 광경은 지옥도나 다름없었다.


열다섯 가량의 시체가 조각조각 분해된 채 온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그나마 부러진 검 몇 자루가 땅바닥에 나뒹구는 덕에, 이 시체들이 본디 경비를 서던 무사였음을 알 수 있었다.


고작 편곤 한 자루로 벌였다곤 믿기 어려운, 끔찍한 파괴의 현장.


견지는 별 감흥 없이 그 전경을 눈에 담았다.


“그래, 이게 내공이라는 긴가.”


이어서, 그는 제 가슴팍에 손을 얹었다.


평소보다 묵직하게 두근대는 심장.


그 심장을 중심으로 하여, 전신을 질주하는 기감.


뜨거운 느낌.


“생각보다 쓸만하구마. 이딴 거, 사람 죽이는 데 티끌만큼도 필요 없다 생각캤는데.”


피식, 하고.


여태껏 표정 없던 얼굴에 짧게 웃음이 스쳐 지나가며, 견지는 진윤의 목에서 제 편곤을 뽑아 들었다.


살인귀(殺人鬼).


그 세 글자 단어는 오직 견지 한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것 같았다.


평생토록 몇 명을 죽였는가. 스무 해를 간신히 채울 그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자의 목숨을 앗아갔는지, 견지 자신조차 알지 못했다.


이유 또한 알 수가 없었다. 애당초 생각해보질 않았다. 그저···.


눈앞에 사람이 있다면.


인간의 모습을 한 존재가 있다면.


‘죽일 수 있겠다.’


그런 마음이 들었다.


그 마음에 몸을 맡기면, 죽일 수 있었다.


언제부터 그랬을까. 머릿속을 아무리 뒤져본들 소용없었다.


누군가 일부러 지우기라도 한 건지, 아무리 애를 써도 떠오르는 건 단편적인 장면 몇 개가 전부였다.


초가집 지붕, 다락만도 못한 그 조그마한 틈새에 숨어 있던 기억.


숨쉬기 갑갑한 와중에도 똑똑히 눈에 담았던, 칼을 든 자들이 사람들을 끌어내는 모습.


왜 죽였느냐는 외침에··· 참수로 답했던 누군가.


그 목소리, 분명 익숙했는데. 누군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다만 그 순간 심장이 뽑혀 나간 듯 가슴이 아팠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했다.


- 갑갑하다.


기원을 알 수 없는 살의. 제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는 그 혹독한 마음이 답답했다. 굶주림보다도 지독한 그 충동은, 끝끝내 피를 봐야만 잠시나마 가셨다.


살인의 자질.


다만 그에 의지하여 살아온 나날이었다.


‘극악무도한 악적 놈! 네 만행도 오늘로써 끝이다!’


어느 날, 누군가 그리 말했다. 멋들어진 영웅건을 매고 근사한 보검 한 자루를 갖고 있었다.


가소로운 소리를 지껄였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회음부에 검을 쑤셔 넣은 채, 그 영웅건을 빼앗아 목을 옭아매 죽였다.


‘같은 칼이라 할지라도 누구의 손에 들려 어찌 쓰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네 그 힘을 협을 위해 쓰지 않겠느냐?’


또 어느 날엔, 다른 누군가가 그리 말했다. 가사(袈裟)를 말쑥이 차려입은 그 도인은, 칼을 든 사내 여럿을 대동하고서 견지를 찾아왔다.


안구를 으깨고 다리를 부러뜨려 주었다. 점잔 빼는 말씨에 쌍욕이 뒤섞이자 강물에 빠트려 죽였다.


신이든, 부처든, 눈앞에 있다면 얼마든지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생각했다. 무공 따위 거추장스럽다고.


그래서 비웃었다. 어려운 말이나 줄줄 읊으며 휘적휘적 칼 휘두르는 꼴을.


확실히, 무림인을 죽였을 땐 이 갑갑한 마음이 좀 더 오래도록 가셨다. 잘난 체하는 문사나, 뱃심 두둑한 금군도 좋았지만, 무림인만큼이나 만족감을 주는 상대는 없었다.


너희의 그 무예가.


백날 외우고 다니는 협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그딴 게 없어도 사람 따위 얼마든지 죽일 수 있다고.


몸소 깨닫게 해주었을 때, 그 낯빛에 좌절감이 새겨지는 꼴이 보기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신공?’


그는 시전에 떠도는 책 한 권을 주웠다.


저 북쪽 합비, 남궁인지 뭔지 하는 세가 하나가 몰락했다는 소식. 그와 함께 거리를 떠돌던 책이었다.


워낙 많은 사람이 돌려본 건지, 그 책은 쓰인 지 얼마 안 된 듯 보이면서도 구석구석 잔뜩 닳아 있었다.


무슨 재미난 내용이라도 적힌 걸까. 무림인들의 그 내공이라는 게, 다른 사람들한텐 그토록 탐나는 힘인 걸까.


까막눈이나 진배없음에도, 견지는 호기심에 펼쳐보았다.


글씨보다 그림이 더 많았다. 정확히 무슨 내용인진 몰라도, 따라 하기만 하면 누구나 그 내공이라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 밑져야 본전이겠지.


특별한 생각이나 뜻을 품고 한 것이 아니었다. 그 잘난 사람들이 무엇을 휘두르고 다니는지, 그 실체나 한번 알아보자. 단지 그 정도 마음으로 행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래서 다들 원했구마. 드디어 이해가 간다.”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넘치는 힘.


온몸을 일깨우는 열감.


그동안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혔던 갑갑함, 갈증처럼 시달렸던 그 감각이 한결 가셨다.


그 대신 느낄 수 있던 것은, 새로운 장난감을 손에 넣은 듯한 설레고 즐거운 기분.


시험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폼 좀 잡아볼까 하는 마음으로 무기 될 것을 찾았다. 때마침 눈에 적당한 것이 들어왔다. 어느 빈 초가에 걸려있던 편곤 한 자루.


자루까지 전부 쇳덩이로 된 그것에서, 어쩐지 그리운 느낌이 들었다.


연습 삼아 닥치는 대로 휘둘러보았다. 무작정 사람 있는 곳으로 걸음했다. 운 좋게도 적당한 곳을 금방 찾을 수 있었다.


화씨세가의 장원.


터벅 터벅, 정문으로 걸어들어오면서도 수위들은 제지할 생각을 못했다. 그 얼빠진 낯짝을 뭉개주고 나서야 뒤늦게 소란이 일었다.


그렇게 수십을 죽였다.


그러고도, 여전히 힘이 남아돌았다.


“천마라캤나. 그 마교인가 뭔가 하는 인간들 대가리.”


편곤 자루를 지팡이 마냥 땅에 찍으며, 견지는 퍼뜩 떠오른 듯 그리 읊었다.


“이리 되니··· 직접 면상 보러 가지 않을 수가 없구마.”


신공.


자신이 얻은 그 힘의 주인.


그 사람은 어떻게 이만한 힘을 아낌없이 베풀 수 있는 걸까.


그 사람은 어떻게 이만한 힘을 손에 넣은 걸까.


그 사람은··· 얼마나 강할까.


강렬한 욕구가 견지의 마음속에 피어났다.


그를 만나고 싶다고.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어떤 성격인지,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 그래서 정확히 뭐 하는 사람인지를 알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도 그 힘을 갖고 싶었다.


자신도, 그 이름을 갖고 싶었다.


- 그런 마음도 있지만은···.


“왜인지, 죽이 잘 맞을 거 같단 기분이 든다.”


씨익.


견지는 얼굴 가득 웃음을 지었다.


처음으로 친구를 사귄 어린아이처럼, 잔뜩 기대감이 서린 웃음.


온몸에 피를 뒤집어쓰지 않았더라면, 분명 티 없이 맑아 보였을 웃음.


갈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시원한 얼음물을 들이킨 듯 기분이 상쾌했다.


“가보자, 합비로.”


그 웃음과 그 마음을 품고서, 견지는 달리기 시작했다.


찰팍, 하고.


짓밟힌 시체에서 살 조각이 튀었다.


작가의말

순례(巡禮): 여러 성지를 차례로 방문함.


기다려주신 독자 여러분께 지각에 죄송하단 말씀 올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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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3

  • 작성자
    Lv.76 무과전설
    작성일
    24.06.16 08:11
    No. 1

    잘보고가요
    혈마의 탄생인가?

    찬성: 2 | 반대: 0

  • 작성자
    Lv.36 날수낭낭
    작성일
    24.06.16 09:57
    No. 2

    갑자기 경상도 사투리는 좀 분위기 깨는데요 알간? 이건 이북쪽 아닌거요?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28 sa*****
    작성일
    24.06.16 10:51
    No. 3

    이건..좀 그래요. 밑도끝도 없이 힘생겼으니 다 죽인다는 건. 천마든 신공이든 개연성을 잃으면 지지하기 힘들어지는데 ..주인공이 빨리 수습해주길.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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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천마가 되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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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순치(脣齒) +2 24.06.25 259 14 13쪽
45 순율(恂慄) +1 24.06.23 292 18 11쪽
44 순연(恂然) +1 24.06.22 351 16 13쪽
43 순차(順差) +1 24.06.21 378 15 11쪽
42 순리(殉利) ※24/06/20(목) 수정※ +1 24.06.18 393 22 13쪽
41 순조(順潮) ※24/06/20(목) 수정※ +3 24.06.16 489 23 14쪽
» 순례(巡禮) ※23/06/20(목) 수정※ +3 24.06.15 647 23 11쪽
39 순복(馴服) +4 24.06.14 735 27 13쪽
38 교(交), 교(敎), 그리고 교(矯) +2 24.06.12 745 33 13쪽
37 맹(盟), 맹(盲), 그리고 맹(儚) 24.06.11 724 29 13쪽
36 "그대는 그저,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길을 나아가주게." +3 24.06.10 732 33 11쪽
35 “···이리하여 나의 고난이 시작되었고.” 24.06.09 758 31 13쪽
34 “옛날 옛날, 한 옛날에.” +1 24.06.08 750 28 11쪽
33 회한의 종막, 혹은 재탄 24.06.07 786 31 11쪽
32 퇴락한 꿈 +1 24.06.06 814 28 13쪽
31 대물림 24.06.05 819 30 12쪽
30 하늘에서 내려온(天) 악마처럼(魔). +1 24.06.04 864 38 11쪽
29 비로소, 파(破) +2 24.06.03 860 34 12쪽
28 몰(歿)할 때까지 몰(沒) 24.06.02 867 30 13쪽
27 악(惡)이 벼려낸 악(鍔) +1 24.06.01 862 30 12쪽
26 회(徊)를 딛고서 회(䝇) +3 24.05.31 889 3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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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신(神), 혹은 신(信) +2 24.05.25 1,105 3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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