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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연화26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 이렇게 천마가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공모전참가작

장연화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5.08 11:58
최근연재일 :
2024.06.27 22:20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58,337
추천수 :
1,966
글자수 :
262,810

작성
24.06.04 19:05
조회
863
추천
38
글자
11쪽

하늘에서 내려온(天) 악마처럼(魔).

DUMMY

내리치는 검에 앞서 주먹이 닿았다.


그 순간, 남궁학은 자신의 흉강이 우그러지는 감각을 느꼈다.


무언가 소리가 났다.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불분명했다. 단지 인체 간의 충돌이 이만한 소리를 빚어낼 수 있다곤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를 이해하기 전에, 파동이 퍼진다.


두 사람의 충돌, 그를 중심으로 대기가 종잇장처럼 구겨지는가 싶더니··· 파열한다.


대량의 화약이 일제히 터진 듯한 폭압이 작렬한다.


그 압력은, 파동의 형태로 퍼져나가는 압력은 모든 것을 관통했다.


건물을 받치던 암석도.


칼을 이루던 금속도.


맞물려 서 있던 목재도


그리고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인체도.


전부, 여지없이 관통했다.


동시에.


불사르는 화염도, 두들기는 참격도 버텨내었던 전각이 마침내 무너졌다.


힘없이, 제자리에서 허물어진다.


쇠해버린 기둥이 제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부러진다.


바닥과 천장이 차례로 맞부딪치며, 그 틈새에 존재했던 모든 것을 짜부라뜨린다.


끝내 기울어지는가 싶던 건물이 대지에 주저앉으며, 비참한 단말마를 내었다.


연기와 재, 먼지, 그 외에 다양한 것이 일제히 허공으로 솟구쳤다. 느지막이 달려오는 굉음과 함께, 지상에 거무튀튀한 안개를 빚어냈다.


그때.


그 광경을 목격한 모든 이들은 이해해버렸다.


멸문(滅門).


영원하리라 믿었던 이 땅의 지배자가 이 순간, 역사 너머로 사라졌음을.


***


남궁학의 의식이 돌아온 것은 기적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허나 그 기적은 결코 그에게 있어 좋은 것이 못 되었다.


겨우 깨어난 정신은 그에게 다양한 사실을 알려주었다.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가슴께가 거진 함몰된 것처럼 뭉개졌다.


자신은 지금 죽음에 직면했다.


‘뭐···.’


결국, 자신은 패배했다.


기적으로도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분명하게.


‘뭐··· 라고···.’


한 박자 늦게 당혹감이 느껴졌다. 여기가 어디인지, 지금이 언제인지 따위의 의문은 그 당황스러운 마음 앞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다만 그는.


망연했다.


얼떨떨했다.


경악과 초조함, 충격 따위가 머리와 가슴을 동시에 꿰뚫었다.


남궁학은 아연실색했다. 그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순간 무엇이 벌어졌는지를,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를 곧바로 받아들이질 못했다.


그래서 그는 일어나려고 했다.


다리를 굽히고, 팔로 땅을 짚었다. 힘을 주고서 쓰러진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자.


- 온 세상이 시뻘겋게 변한다.


“···우어어억!”


간신히 일어서려던 몸이 앞으로 고꾸라진다.


안구에 혈관이 돋아오르는 듯한 감각이 치밀더니, 속이 뒤틀렸다. 어지러웠다.


잔에 가득 찬 물이, 가까스로 평형을 유지하고 있던 그것이 확 쏟아져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컥, 커헉, 우워어억!! 커, 허어···.”


남궁학은 주체하질 못하고 격하게 토혈했다.


얼굴 가죽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았다.


입뿐만이 아니었다. 눈과 귀, 코, 얼굴에 난 모든 구멍에서 혈액이 흘러나왔다.


철퍽.


그는 곧장 땅바닥에 엎어졌다.


어떻게든 자세를 고치려 했으나, 그 시도 일체가 헛된 것이었다. 거진 땅 위를 헤엄치듯 허우적대는 꼴에 불과했다.


이어서 자각했다.


전신의 맥이 끊겼다.


단전이 파열되었다.


자신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어떤 도움의 손길이 지금 자신에게 찾아오더라도, 죽음은 피할 수 없다.


“커, 허어, 헉, 컥···.”


숨이 제대로 쉬어지질 않았다. 짧게 끊어 겨우 내쉴 뿐 도저히 들이킬 수가 없었다.


분명, 아직 낮일 텐데.


아직 태양은 저물지 않았을 텐데.


세상이 너무 어두웠다.


너무나도 추웠다.


“허, 허어, 큭, 으으···.”


그럼에도.


남궁학은 어떻게든 일어서려 했다. 제 핏물이 스며들어 검붉은 진흙탕이 된 땅바닥을 짚고서, 기어이 몸을 일으켜 세우려 했다.


봐야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봐야만 했다.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반드시 보아야 할 것이 있었다.


이 파괴를 일으킨 흉수가 어찌 되었는지.


그것을 제 눈알 안에 담아야, 그제야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


시야 한구석에 그 모습이 잡혔다.


대강 서너 척(尺)가량 떨어진 장소였다.


남궁학의 눈에 가까스로 들어온 강우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의 행색 또한 만신창이였다.


멱리는 어디론가 날아갔다. 덕분에 그 창백한 낯빛이, 너저분한 머리칼이 숨김없이 드러나 있었다.


방금까지 벌였던 사투 탓일까. 짙파랬던 장포도 자줏빛으로 변색된 채 곳곳이 찢어져 너덜너덜했다.


전신의 상처, 그에서 흘리던 피가 벌써 굳어버린 모양이다. 검붉은 혈흔이 잿가루와 섞여 그 몰골이 참으로 엉망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강우는 서 있었다.


엎드린 채 간신히 상반신만 들어 올린 남궁학과 달리, 그는 똑바로 서 있었다.


검왕(劍王).


오대세가 중 으뜸인, 남궁세가의 가주.


무의 정점이라 칭하기에 조금의 부족함도 없는 존재.


그러한 존재를 기어이 쓰러뜨렸음에도, 그는 자신이 패배를 안겨준 상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어딘가 후련한, 마치 탈각의 경지에 이른 듯한 표정을 지은 채··· 어딘지 모를 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사실이···.


“무···.”


남궁학을 분노케 했다.


“-무엇 때문이야!!!”


허공이 요동쳤다.


다 죽어가는 사람이 낸 것이라곤 믿을 수 없는 성량(聲量)이오, 피맺힐 정도로 처절한 대갈이었다.


“무엇 때문이냐, 이 미친 자야! 도대체 뭣 때문에!”


묻지 않고선 견딜 수가 없었다.


이 물음으로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남궁은 패배했다.


그 사실에 변명의 여지는 없었다. 현판은 꺾였다. 가인(家人)들 대부분이 살해당했다. 전각이 담아두던 비급서와 재물들, 귀중한 영약과 병장기들, 그들 모두가 파괴당했다.


우리가 쌓아온 모든 것이,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럼에도···.


“어째서 이런 일을 벌었느냔 말이야!!!”


남궁학은 도저히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를 거듭하여 쌓아 올렸다. 아비가 아들에게, 그 아들이 손자에게. 한평생 지켜온 성화를 대대로 물려주며 그를 잇게 하였다.


부와 명예.


자부심.


권위.


무엇이라 불러도 좋다. 우리가 세대를 거듭하여 쌓아온 노력의 결정. 그것이 단 한 순간에 말소당했다.


무(武)로 벼려낸 모든 것이, 무(無)로 전락하였다.


너무나 어처구니없게도.


기원조차 알 수 없는 절대적인 악의에, 침범당했다.


정체는 모른다. 역사 또한 없었다. 도대체 저자는 누구인가, 저자를 따르는 저 밖의 치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세가는 모든 수를 깊이 생각하고 움직인다. 지방의 유지로서, 한 지역을 관리하고 지배하기 위해선 마땅히 그리해야만 한다.


‘정체불명의 적수’ 따윈 나타날 수 없도록. 그렇게 이 땅의 전부가 우리 손안에 있다는 믿음을 사람들에게 심어줄 수 있도록.


신중을 거듭한 끝에 판단을 내리고 움직인다. 그것은 상식이었다. 세가만이 취하는 별난 방침이 아니었다. 그야 이 무(武)의 세계에서 힘이라는 것은 너무나 귀중하니까.


그렇기에 천하의 모든 고수가, 무릇 스스로를 아끼는 것 아니겠나.


절대 함부로 목숨을 내던지지 않는다. 자신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알기에. 그렇지 않고서야, 한낱 촌구석 도장 깨기조차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화젯거리가 될 리 없지 않나.


그런데··· 지금 벌어진 일은 무어란 말인가.


‘차라리.’


남궁학의 머릿속에 짧은 생각이 스친다.


차라리 새로운 문파나 세가가 궐흥한 것이었다면.


남궁의 모든 힘을 끌어모아 맞섰음에도, 결국 그 신흥 세력의 도전 앞에 패배한 것이었다면.


그러면 차라리 나았을 거라고.


받아들일 수 있었을 거라고.


쌓아 올린 우리의 힘이, 솟구치는 저들의 힘에 비해 단지 모자랐을 뿐이니까.


우리의 업이 곧 신세대의 밑거름이 되어, 우리가 지켜온 무의 가치만큼은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은.


이 순간 벌어지고 있는.


그 무엇도 남기지 않고 싸그리 불살라버린 이 악의 서린 파괴에는···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도대체 거기에 어떠한 가치가 있는가.


그것이···.


“말하란 말이다, 이 방만한 자야!!!”


온 사력을 다하여 묻도록 만들었다.


허나.


“······.”


그 처절한 외침조차 강우에게는 닿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단지 꿈꾸듯 웅얼대었다.


불씨가 휘날리는 열감이 서린 공기.


피부를 스치고 지나가는, 그 공기의 흐름을 느끼며···.


“···이리 건조한 날에는, 불이 잘 붙는다고 하지.”


더없이 자그마한 목소리로 답한다.


“불씨 하나. 눈에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자그마한 조각불도 확 번져서··· 온 수풀을 불사를 수 있는 화마로 거듭날 만큼.”


황색으로 뒤바뀐 하늘과 그 아래의 검은 대지.


지평선을 사이에 두고서···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둘로 나뉜 세상을 바라보며 강우는 답했다.


“그래서 그랬다.”


비로소, 패자를 바라보면서.


“단지 그뿐이야.”


아무런 감정도 실리지 않은, 탁한 눈동자로 내려다보면서.


“그···.”


그 대답이.


그 시선이.


“그게 무슨···!”


남궁학을 격노하도록 만들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저 말이 뭔 뜻인가. 무슨 의미가 담겨 있는가.


괴이하다. 또한 괴상했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그 뜻 모를 소리를 어찌 저리 진중하게, 진심을 다하여 지껄일 수 있는 거냐.


지금 이 상황에.


이 장소에.


이런 무도하기 그지없는 짓을 저지르고.


이 나를 앞에 두고···!


그러나 그때.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아.”


남궁학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우는 그를 가로막았다.


“애당초 불가능했으니까.”


자박.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겠지.”


자박.


“그래서 혀를 써서 말을 나누는 대신, 검과 권을 나누는 거지.”


몇 걸음 옮긴 끝에 다다른 곳은, 방금 놓쳐버린 겸(鎌)이 떨어진 장소.


“그래서 사람을 패고, 사람을 베며··· 죽이고, 또 죽는 거지.”


강우는 그것을 들었다. 그 순간.


남궁학은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너무나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 그 탓에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바로 떠올리지 못했다.


“인두겁을 쓴 채 사람 행세하는 금수들이 날뛰며···.”


그런 그를 앞에 두고서, 강우는 반쪽 남은 칼날을 치켜들었다.


“변명 어린 살생만을 거듭하는 인외마경.”


그제야 깨닫는다.


그것은 공포였다.


미지의 존재.


행동과 의미 모두 알 수 없는 존재.


그렇기에, 그 어떠한 간섭으로도 통제할 수 없는 존재.


“무법천지나 진배없는,”


자신에게 닥쳐오는 칼날을 보며.


“밀림이나 하등 다를 바 없는 그것이-”


자신에게로 무너져 오는 세계를 보며.


“-그대들의 무림(武林) 아니던가.”


남궁학은 생각했다.


죽음의 순간.


마지막으로 목격한 그 공허한 눈동자를 보며, 깨닫는다.


이 모든 일이 어찌할 수 없는 것이었다고.


이 존재는, 사람으로선 어찌할 수 없는 것이었다고.


그야말로··· 하늘에서 내려온 악마(天魔)처럼.


작가의말

마침내 천마에 도달했습니다.

추천과 댓글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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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36 날수낭낭
    작성일
    24.06.10 20:01
    No. 1

    다크나이트 알프레드 대사 생각나네요 누군가는 그냥 세상이 불타는걸 보고 싶어한다고

    찬성: 3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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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천마가 되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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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순조(順潮) ※24/06/20(목) 수정※ +3 24.06.16 489 23 14쪽
40 순례(巡禮) ※23/06/20(목) 수정※ +3 24.06.15 646 23 11쪽
39 순복(馴服) +4 24.06.14 734 27 13쪽
38 교(交), 교(敎), 그리고 교(矯) +2 24.06.12 745 33 13쪽
37 맹(盟), 맹(盲), 그리고 맹(儚) 24.06.11 723 29 13쪽
36 "그대는 그저,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길을 나아가주게." +3 24.06.10 732 33 11쪽
35 “···이리하여 나의 고난이 시작되었고.” 24.06.09 758 31 13쪽
34 “옛날 옛날, 한 옛날에.” +1 24.06.08 750 28 11쪽
33 회한의 종막, 혹은 재탄 24.06.07 786 31 11쪽
32 퇴락한 꿈 +1 24.06.06 813 28 13쪽
31 대물림 24.06.05 818 30 12쪽
» 하늘에서 내려온(天) 악마처럼(魔). +1 24.06.04 864 38 11쪽
29 비로소, 파(破) +2 24.06.03 860 34 12쪽
28 몰(歿)할 때까지 몰(沒) 24.06.02 866 30 13쪽
27 악(惡)이 벼려낸 악(鍔) +1 24.06.01 862 30 12쪽
26 회(徊)를 딛고서 회(䝇) +3 24.05.31 888 32 11쪽
25 해(害), 이어서 해(邂) +1 24.05.30 900 31 11쪽
24 재(災), 이어서 재(齎) +3 24.05.29 952 31 11쪽
23 업(業), 더불어 업(嶫) +1 24.05.28 949 28 13쪽
22 절(切), 더불어 절(折) +2 24.05.27 995 30 14쪽
21 전(前), 혹은 전(戰) +1 24.05.26 1,035 29 12쪽
20 신(神), 혹은 신(信) +2 24.05.25 1,105 3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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