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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연화26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 이렇게 천마가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공모전참가작

장연화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5.08 11:58
최근연재일 :
2024.06.27 22:20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58,349
추천수 :
1,966
글자수 :
262,810

작성
24.05.31 19:05
조회
888
추천
32
글자
11쪽

회(徊)를 딛고서 회(䝇)

DUMMY

“당신이 왜 여기에···.”


강우의 황망한 물음에,


“말하지 않았나.”


노인은 언제나 그랬듯 인자한 목소리로 답했다.


“우리는 어둠을 몰아낼 곳에서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


갑작스러운 해후(邂逅), 그 예상치 못한 만남에 전에 없이 놀라는 강우를 보며.


“흠···.”


남궁후는 다만, 미간을 좁힌 채 생각했다.


‘저 흉수에게 원군이 있었나.’


본래라면 곧바로 선공을 가져갈 생각이었다.


기다림을 감수할 이유는 없었다. 이런 전례 없는 위기 속에서 벌어지는,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고수와의 싸움.


수없이 쌓아온 경험이 을러주었다. 이럴 때 망설임을 내비친다면 곧 패배로 직결될 것이라고.


허나 상황이 바뀌었다. 저 노인의 힘이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나, 예사 인물이 아니란 것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인정했다. 지금의 형국은 명백한 열세.


다만 저쪽에서 먼저 다가올 낌새는 없다.


전신을 긴장시킨다. 언제든 검격을 내지를 수 있도록 준비하며, 남궁후는 잠시 상황이 어찌 흘러가는지를 지켜보기로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서 가게.”


자신에게 온 정신이 팔린 강우를 향해, 노인은 다그치듯 입을 열었다.


“자네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지 않나.”


더불어, 스르릉 하고.


“자네의 걸음은 이 자리에서 멈춰선 안 돼.”


더없이 가라앉은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며, 노인은 제 허리춤의 검을 뽑아 들었다.


“이곳의 일은 내게 맡기고, 자네의 책무를 다하게.”


“하지만···!”


반사적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강우의 목소리는 거진 비명 같았다.


노인의 힘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었다. 애당초 강우 자신의 강함이 노인에게서 비롯되었으니까.


자신 이상이라면 모를까, 결코 그 이하는 아니리라. 그러니 그가 패배할 것을 걱정하는 것 또한 아니었다.


그러나··· 이전보다 훨씬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는 그의 시야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 노인의 전신은 거무스름했다.


시체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그의 몸은 이미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오직 가슴 속에 남은 잔불의 온기에.


얼마 남지 않은 내공의 힘에 빌어··· 간신히, 당장이라도 꺼질 듯한 생명을 지탱하고 있었다.


이기고 지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 지경이 된 이상 승패 같은 것은 상관없었다.


설령 싸움에서 승리하더라도, 그 불이 사그라드는 일은 피할 수 없다.


여기서 싸움이 벌어진다면 노인은 반드시 죽을 것이다.


그 사실에··· 강우는 노인의 결단을 말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기억 속에 영원토록 새겨진 그 천붕의 순간에 더해··· 은인의 죽음까지 겪고 싶진 않았으니까.


허나.


“······!”

“흠!”


카-앙!


거칠게 터지는 금속음이, 선택의 기회 따윈 없음을 알려주었다.


순간 치밀어 드는 전조에 두 사람 모두 반응했다. 다만 강우가 겸을 들기 전에 노인의 검이 앞서 나갔다.


“으음···.”


기습적으로 날린 공격이 막혔으나, 남궁후에게 낙담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노인과 검을 맞대고서, 상대의 실체를 읽어내고자 심혈을 기울일 뿐.


충분히 예상하였다. 되려 방금 행한 검격이 막히지 않았다면 더욱 놀랐으리라.


‘그렇지만 직전에 보인 그 움직임은··· 매우 요사스러운 것이 아니던가.’


전조가 없었다.


검로를 읽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애당초 없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직감한다. 세태가 최악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서둘러 토벌대가 귀환하지 않으면···.


남궁후는 제 상상에 몸서리쳤다. 그 상상 속 사달이 현실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자신은 목숨을 걸고 이들의 발목을 붙잡아놔야 한다.


“알고 있지 않나.”


남궁후가 그러하듯, 노인 또한 각오를 싣고서 강우에게 말을 전한다.


“자네가 마땅히 해야만 하는 일을 하게.”


그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혹여, 이 상황에서 살아나갈 방법을 알고 있는 걸까.


그럴 리가.


타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존재. 그를 통해 앞으로 닥칠 운명을 예견할 수 있는 존재.


그만한 힘을 가진 자가··· 스스로의 운명을 모를 리 없겠지.


그럼에도 이 자리에 선 것이리라.


- 내게 기대를 걸고 있기에.


일찍이 노인은 말했다.


원망하라고.


증오하라고.


부디 이 세상 전부를 뒤덮을, 재앙이 되어달라고.


그 말에 담겼던 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그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까지 바칠 수 있었다. 지금 두 발로 딛고 서 있는 이곳이, 자신이 누울 자리가 되어도 좋았다.


그 뜻을, 강우는 이해했다.


여기서 머뭇거리는 것이야말로 그의 마음을 무시하는 것이며, 그의 마음을 헛되게 만드는 일임을 이해했다.


더 나아가···.


창연을 비롯하여, 그날 자신에게 머리를 숙이면서까지 기존 세계의 종말을 빌었던 수많은 이들의 바람을 헛되게 만드는 것이라고.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며, 내 가슴 속을 지피는 이 원한 또한 오롯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고.


그 사실을 이해하고서,


“······.”


강우는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 어떠한 말도 남기지 않고, 단지 침묵한 채 전각을 향해 진격한다.


“멈춰라!”


그 모습에, 남궁후가 외친다.


자루를 악쥐고서 한 차례 힘을 싣는다. 서둘러 노인을 밀쳐내고선 강우를 따라잡으려 한다.


그러나.


- 카각!


“큭···!”


채 두어 걸음도 떼지 못하고 가로막혔다.


이번에도 전조는 없었다.


그 어떠한 기척도 없이 다가온 노인은, 다시금 남궁후에게 검격을 날렸다.


흉수는 돌아보지 않았다.


방금까지 보였던 황망한 모습. 그것이 거짓으로 꾸며낸 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그마한 망설임 한 조각 내비치지 않고 나아갔다.


“후우···.”


초조함이 차오른다.


깊게 숨을 내쉬어 그를 억누른다. 제 마음을 꾸짖는다. 조급함에 휩쓸려 경거망동해선 안 된다고.


남궁후는 노련한 무인이었다. 심신을 통제하는 것은 익숙한 일이다.


침착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서, 차가워진 머리로 생각했다.


‘지금 눈앞의 상대에게 전력을 다해야 한다.’


섣불리 의념이 나뉘면, 결국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차근차근, 한 명씩 쓰러뜨린다.


그 무엇도 아끼지 말고, 이곳이 최후의 전장이라는 결의 아래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한다.


“-흠!”


카앙!


힘을 가해 거리를 벌려낸다.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다.


널브러진 시체, 저 멀리 뛰어가는 흉수, 귓전에 들려오는 수많은 소란. 그 모든 존재를 의식 속에서 지워낸다.


오직 눈앞의 상대만을 남긴다.


일념일로(一念一路).


일찍이 닿았던 무(武)의 극의를, 이 순간 다시금 꺼내 든다.


그 모습을 보며···.


“······.”


노인은 검을 들었다.


진기를 돌린다.


이 다 망가진 몸을, 더는 아낄 이유가 없었다.


눈을 감는다. 오래전 파괴된 단전을 대신하여, 심장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기의 흐름을 느낀다.


음과 양의 순환.


그간 역으로 돌렸던 그것을, 올바르게 되돌린다.


“···저것은!”


그 순간 남궁후가 경악한다.


가라앉은 마음에 더 이상 놀랄 것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흉수의 기습에 객식구가 죽어 나가도, 예상치 못한 원군의 존재에도 동요하지 않던 그였다.


그렇기에 더욱, 그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제 스스로의 모습에.


그리고 이토록 자신을 동요하게 만든 눈앞의 상대에.


- 저자의 정체는 무엇인가.


저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그 의문을 품고서, 남궁후는 외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상대가 행하려는 무공은···.


“태극검(太極劍)인가···!?”


***


강우는 뛰었다. 남궁세가의 심처, 그 무엇보다도 높은 전각을 향해서.


계속해서 따라붙으려는 일말의 미련, 그를 어떻게든 떨쳐내고자 달음박질쳤다.


뒤에서 무엇이 벌어지든 간에, 절대 돌아보지 않았다.


그 대신, 제 앞의 전각에 시선을 고정한다.


장원 중심, 합비에 있는 다른 모든 누각보다도 드높은 그 건물에는 이름이 없었다.


이름이 필요 없었다.


남궁이라는 이름 자체가 곧 정점을 상징하기에, 스스로를 과시하고자 별도로 건물에 붙일 이름 따위 필요 없었다.


사라지는 모든 것에는, 일찍이 자신이 존재했음을 증명하기 위해 ‘남길 수 있는’ 이름이 필요했기에··· 그 자체로 영원할 남궁의 터에는 별도의 이름이 필요 없었다.


그 무명(無名)의 전각은, 무(武)의 정점에 선 오대세가의 으뜸이 드러내는 자부심의 상징이었다.


‘그러니···.’


강우는 생각했다.


‘오늘 이후, 남궁의 존재는 이 전각과 함께 영원히 사라지리라.’


그는 품속에서 창연이 준비한 기름병을 던졌다.


“나는 끝을 닫는 것이 아니오.”


뒤이어 화섭자(火攝子)를 꺼내 들었다.


“다만 시작을 여는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불을 붙였다.


그러자.


화악-!


폭음이라 칭하기엔 느지막한 소리.


그러나 결코, 한낱 소음으로 치부할 순 없는 불길한 소리.


일순간 몰아치는 돌풍과 더불어 불길이 치솟는다.


기름을 빨아들이며 순식간에 부풀어 오른다. 나무를 타는 뱀처럼, 솟구치는 화마가 전각을 뒤덮는다.


대화재.


하나의 역사가 단지 재와 먼지로 화하는 광경을, 강우는 그 누구보다도 앞서 시야에 담았다.


태양보다도 붉게 타오르는 전각, 그러나 그의 시야에서는 정반대였다.


청명한 기운으로 반짝였던 탑이, 검게 썩어 문드러지고 있었다.


그 푸르른 생명을, 시커먼 죽음이 먹어 치우고 있었다.


그 사실이,


“하.”


기꺼웠다.


치밀어 든 희열에 순간, 짧게 웃음이 나온다.


그때.


“-네 이놈!!”


하늘에서 우레와 같은 대갈이 울려 퍼진다.


강우는 시선을 옮겼다.


직전에 느껴졌던 전조, 전각의 반대편에서 다가오는 그 강인한 기운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그러자.


“감히, 네가! 네놈 따위가!”


사람이 벼락이 되어 내리쳐오고 있었다.


남궁학.


그는 허공을 가르며 추락해오고 있었다. 뽑아 든 검을 겨누고서, 그대로 찍어누르고자 들이닥쳐 오고 있었다.


온몸을 토대 삼아 분노를 토로한다.


“지금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고 있는 것이냐!!!”


경천동지의 포효를 내지르는 그를 향해.


“그래.”


강우는 겸을 쥐었다.


“너만 없어진다면.”


안광을 번뜩이고, 지독한 웃음을 낯가죽에 새긴다.


“비로소 이 세계가 변한다.”


이 원한이.


이 증오가.


비로소, 재앙이 될 수 있다.


그 나지막한 선언과 동시에, 내리치는 검격에 맞서 올려 베기를 작렬한다.


두 병장기가 맞부딪치는 바로 그 순간.


콰-앙!


장원 전체에 충격파가 터져나갔다.


서로 다른 두 금속의 충돌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장대한 굉음을 발했다.


분명, 그 충돌의 순간에 비명을 지른 이들이 있었다.


아직 세가에 남은 사람들이, 서둘러 장원으로 복귀하려던 토벌대가, 심지어 그들을 저지하던 흉수의 추종자들조차도 이 순간 모두 똑같이 비명을 질렀다.


허나 그 비명 중 어느 것도 다른 누구에게 닿지 못했다.


이 대지 위에서 가장 강력한 두 존재의 충돌이 발한 굉음은, 그 외의 소리를 전부 학살했다.


무의 정점에 선 검왕과 개화 직전의 마(魔).


이들의 격돌이, 개전(開戰)을 알렸다.


작가의말

徊: 머뭇거릴 회

䝇: 맞부딪칠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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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순차(順差) +1 24.06.21 378 15 11쪽
42 순리(殉利) ※24/06/20(목) 수정※ +1 24.06.18 392 22 13쪽
41 순조(順潮) ※24/06/20(목) 수정※ +3 24.06.16 489 23 14쪽
40 순례(巡禮) ※23/06/20(목) 수정※ +3 24.06.15 646 23 11쪽
39 순복(馴服) +4 24.06.14 735 27 13쪽
38 교(交), 교(敎), 그리고 교(矯) +2 24.06.12 745 33 13쪽
37 맹(盟), 맹(盲), 그리고 맹(儚) 24.06.11 724 29 13쪽
36 "그대는 그저,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길을 나아가주게." +3 24.06.10 732 33 11쪽
35 “···이리하여 나의 고난이 시작되었고.” 24.06.09 758 31 13쪽
34 “옛날 옛날, 한 옛날에.” +1 24.06.08 750 28 11쪽
33 회한의 종막, 혹은 재탄 24.06.07 786 31 11쪽
32 퇴락한 꿈 +1 24.06.06 814 28 13쪽
31 대물림 24.06.05 819 30 12쪽
30 하늘에서 내려온(天) 악마처럼(魔). +1 24.06.04 864 38 11쪽
29 비로소, 파(破) +2 24.06.03 860 34 12쪽
28 몰(歿)할 때까지 몰(沒) 24.06.02 867 30 13쪽
27 악(惡)이 벼려낸 악(鍔) +1 24.06.01 862 30 12쪽
» 회(徊)를 딛고서 회(䝇) +3 24.05.31 889 32 11쪽
25 해(害), 이어서 해(邂) +1 24.05.30 901 31 11쪽
24 재(災), 이어서 재(齎) +3 24.05.29 953 31 11쪽
23 업(業), 더불어 업(嶫) +1 24.05.28 949 28 13쪽
22 절(切), 더불어 절(折) +2 24.05.27 995 30 14쪽
21 전(前), 혹은 전(戰) +1 24.05.26 1,036 29 12쪽
20 신(神), 혹은 신(信) +2 24.05.25 1,105 36 12쪽
19 린(躪) +3 24.05.24 1,089 3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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