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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사비칰의 이야기

남만야수왕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와사비칰
작품등록일 :
2022.05.11 22:17
최근연재일 :
2022.08.31 08:38
연재수 :
6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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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139
글자수 :
263,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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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28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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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국을 향한 여정 (3)

DUMMY

'빌어먹을! 점창파의 무공은 커녕 거력남기공이라는 해괴망측한 내공심법 말고는 아무것도 배운 적이 없는데 대체 무엇을 알아보겠다는 거야? 이런 곳에서 허비할 시간이 없는데! 할아버지와 한 시라도 빨리 대리국으로 가서 왕궁 지하에서 주술사가 펼치고 있는 사술을 멈춰야만 한다고!'


갑작스런 점창파 장문인 양조익의 추궁에 삼 백 명의 점창파 무인들 앞에서 또래 아이와 대련을 하게 된 반웅. 이지노괴 가천일을 비록 사부로 모시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체술과 내공 심법만 죽어라 익히고 있었던 터라 그 어떠한 근거도 없이 점창파의 무공을 익힌 것이 분명하다면서 억지를 부리는 늙은 장문인의 말에 따라 이 어이없는 시험에 임하게 되었다.


"그럼, 한 수 부탁드립니다."

"한 수 부탁드립니다."


마주본 상태에서 포권지례를 나누는 반웅과 점창파의 이름 모를 아이. 그 이유가 어떻든 이렇게 겨루어 보게 되었으니 최선을 다해야만 할 것이다.


'반격할 틈을 주지 않겠어!'


먼저 몸을 움직인건 일전에 북룡산맥에서 반고르를 가볍게 제압하여 자신감이 물씬 오른 반웅이다. 예전에는 한 번 시전하기 위해서 젖 먹던 힘까지 모두 끌어올려야만 했던 기술을 제법 여유롭게 펼쳐 보인다.


"옳거니! 저건 야수신궁의 적응비권(赤鷹飛拳)이 아닌가? 움직임이 마치 사냥감을 낚아채기 위해 날아드는 한 마리의 매처럼 날카롭기 그지없구나! 게다가 주먹이 상대방의 몸에 닿는 순간에만 적절히 내공을 실은 것으로 보아 기력을 보존하면서 싸우는 데 익숙한 모양이로구나!"


반웅이 매끄럽게 선보인 만야지세권(萬野之勢拳)의 세 번째 초식에 큰 소리로 감탄하는 양조익. 맹웅에게 과거에 일방적으로 패배한 이후로 반웅이 가장 열심히 수련한 기술이 빛을 발하고 있다. 그 기세를 몰아 끊임없이 다음 초식들을 선보이는 반웅은 이미 승기를 잡은 사람처럼 전력으로 상대방을 밀어내고 있다.


"탐화봉권(探花蜂拳)에 이어 아래에서 파고드는 야서등권(野鼠登拳)이라니. 게다가 상대방이 여전히 버티고 있는 것을 확인한 뒤에는 과감하게 네 번째 초식인 자미중권(刺尾中拳)을 펼치는구나! 어린 나이에 성취가 제법이구나!"


상대의 급소를 노리는 전갈의 꼬리처럼 재빠르게 또래 아이의 복부를 가격하는 반웅의 주먹질을 오히려 큰 소리로 칭찬하는 양조익. 점창파의 어린 문하생이 밀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도 순수하게 이 싸움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에 반해 가천일과 아망은 그저 진지한 표정으로 조용히 이 비무를 지켜보고 있다.


'젠장. 늙은이의 유희거리로 이용 당하는 기분이네. 이쯤에서 끝내야겠어!'


거듭되는 반웅의 맹공에도 급소만은 어떻게든 막아내고 있던 또래 아이도 달라진 기운을 느꼈는지 뒤로 물러나 거리를 벌린 뒤 자세를 다잡는다.


'아직 수련중인 기술이지만...이걸로 반드시 쓰러뜨리고 말겠어!'


반웅의 단전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이 온 몸을 지나 양팔을 휘감으며 손끝으로 나아가 소용돌이 친다. 그 기운을 담은 양손을 상대에게 내지르자 작지만 확연한 형태를 갖춘 두 마리의 뱀이 회오리치며 허공을 날아간다.


"마지막 초식이자 절초인 묵룡출회(默龍出回)로구나! 비록 뻗어나가는 속력이 느리고 위력 또한 본래 발휘해야할 힘의 십분지 일로 줄었다고 하여도 형상을 내비치는 것만으로 성공이라 할 수 있을 터. 가천일 네놈의 제자도 재능이 제법 출중하구나."


자신의 문하생에게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될지도 모르는 와중에 오히려 반웅에 대한 평가만 늘어놓는 양조익. 그 여유로우면서도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모습에 무언가 잘못 되었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반웅의 뇌리를 파고든다.


'설마...'


"상대가 차기 장문인이자 본좌의 유일한 진전 제자인 양일이 아니었다면 애를 먹었겠지."


의심이라는 한 자루의 비수가 싸늘하게 심장에 꽂혀 전신으로 퍼져 나가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타앗!"


기합을 지르며 한 자루의 검처럼 하늘 높이 세운 오른팔을 위에서 아래로 천천히 그어내리는 점창파의 문하생.


일견 단순해 보이는 그 몸짓에 승패가 갈렸다.


무형의 기운에 머리를 정통으로 얻어 맞아 정신을 잃은 반웅이 힘없이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


"아니, 언제는 사일검법의 절초 후예사일이 실전되었으니 비급을 내놓으라면서! 순사기꾼이 다 되었구나, 양가 놈아!"


"무슨 소리. 사일검법을 극성으로 익힌 저 어린 놈이 혼자서 마지막 초식을 깨우친 것을. 태양을 향해 쏘아올린 기운이라는 이름만 듣고도 저리 완벽하게 재현해 내었으니 하늘이 내린 신동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겠지."


자신의 제자가 비무에서 승리하여 기분이 좋은 지 점창파 안뜰에 열린 술판에서 거나하게 취한 얼굴로 언성을 높이는 양조익. 허나 이따금씩 얼굴에서 슬픈 기색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아직 가슴 속에 담아둔 응어리가 완전히 풀리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래도 네놈이 어딘가 숨겨놓은 비급이 여전히 필요한 상황이다. 아무리 저 녀석이 뛰어나다고 하여도 타인을 가르치는 재주가 없어 나는 물론 나머지 문하생들은 여전히 마지막 초식을 익히지 못하고 있으니...후예사일 없는 사일검법이라니, 상상이 가냐? 이 얼마나 우습고 어이가 없는 일이냐고!"


"그딴 건 없다고 몇 번을 말하냐! 만약 그런게 있었다면 내가 진즉 익혔겠지!"


강하게 부정하는 가천일을 바라보며 무언가 알고 있다는 듯 쓴웃음을 흘리는 양조익. 이내 표정을 바꾸어 가천일의 손가락을 가리키며 과장된 목소리로 호통을 친다.


"겨우 두 개 남은 손가락으로 무슨 검법을 익힌다고 그러냐!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이놈이!"


불과 몇 시진 전만 하여도 서로 죽일 듯 노려보면서 대협곡에서 결투를 벌인 사이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는 가천일과 양조익. 오히려 술잔을 나누고 서로 농이나 주고 받는 모습은 막역지우(莫逆之友)처럼 보일 지경이다.


"...그래도 네 놈이 사형의 목숨을 앗아간 것은 아직도 용서하지 못하였다. 아무리 정당한 비무라 하여도 형님께서는 그리 빨리 세상을 떠날 인재가 아니셨다는 것을 네 놈도 알고 있지 않느냐! 나는 여전히 네놈을..."


가천일을 노려보면서 술잔을 탁자에 강하게 내려놓는 양조익. 지금껏 멀쩡해 보였던 그의 신형이 기울어 내려놓은 술잔을 향해 철퍼덕 엎어진다.


'...그의 목숨을 취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죽었을 것을. 손속에 사정을 둘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음을 알면서도 여전히 모르는 채 하는구나. 그 원망, 죽을 때까지 짊어지겠다.'


아직 취기가 부족하였는지 홀로 남은 가천일이 부산스레 잔을 채워가면서 계속 입 안에 술을 들이 붓는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아망이 슬며시 옆자리에 앉아 말동무가 되어주었지만 말이다.


"아미타불.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점창파와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계셨군요. 허나 그 반가움에 취해 계속 술잔을 비우시면 대사를 위해 나아갈 수 없습니다. 이쯤되면 가 노야께서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술이 당신을 집어 삼킨다고 하여도 믿겠습니다. 게다가 옆에서 자는 척을 하고 있던 아해도 때마침 잠들었으니 슬슬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직 갈 길이 멉니다."


비무에서 패배한 이후로 정신을 잃은 채를 하며 지금껏 옆에 누워만 있던 반웅이 드디어 잠에 든 모양이다.


자신이 이길 것이라 생각하여 상대방의 역량조차 제대로 가늠하지 못하고 성난 짐승처럼 달려들기만 하던 반웅. 오늘 양일이라는 진정한 신동을 만나 자신이 얼마나 자만하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었으니 이 경험을 곱씹고 앞으로 전심전력으로 노력하여 무공에만 매진한다면 분명 더욱 높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정중지와(井中之蛙)가 천재일우의 기회를 얻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물론 여기서 좌절하고 포기한다면 무림인으로서 그의 여정 또한 여기서 끝나겠지만 말이다.


단번에 내공을 끌어올려 몸속을 가득 채운 취기를 몰아낸 가천일이 바닥에 엎어진 반웅을 들쳐 업고 이미 어둑해진 밤 공기를 가르며 아망과 함께 점창파의 담벼락을 넘어서지만 이들을 막아서는 이는 누구 하나 없다.


비록 점창파의 장문인이자 자신들의 스승인 양조익이 항상 이지노괴 가천일에 대하여 부정적인 이야기만 늘어놓아 악인일 것이라는 편견을 지니고 있었으나, 오늘 그와 호탕하게 웃으며 술잔을 기울이던 모습을 통해 겉으로 드러난 것만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리라.


'쉽지 않은 상대였어. 다음에 또 겨루어볼 기회가 생기면 좋으련만.'


삼 백 명의 인원이 순식간에 떠나간 삼인방을 모른 채 하며 술판을 이어가고 있는 사이 반웅과 직접 비무를 치루었던 양일은 지금껏 뒷짐을 진 채 다른 이들로부터 숨기고 있었던 자신의 오른손을 쓰다듬으며 속으로 되뇌었다.


벌겋게 부어오른 그의 새끼 손가락만이 다들 그가 압도적으로 유리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비무가 사실은 녹사수수(鹿死誰手)였음을 일러주고 있다.


작가의말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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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대리국을 향한 여정 (2) 22.08.26 35 0 9쪽
59 대리국을 향한 여정 (1) 22.08.23 26 0 9쪽
58 봉소, 대월, 그리고 주술 (3) 22.08.21 27 0 10쪽
57 봉소, 대월, 그리고 주술 (2) 22.08.18 30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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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불협화음 (1) 22.07.31 39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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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북룡폭포에서 벌어진 접전 (2) 22.07.26 40 1 9쪽
47 북룡폭포에서 벌어진 접전 (1) 22.07.24 44 1 9쪽
46 적야 노인의 친정댁 (2) 22.07.21 44 1 10쪽
45 적야 노인의 친정댁 (1) 22.07.19 43 1 9쪽
44 망각행승 (2) 22.07.17 45 1 10쪽
43 망각행승 (1) 22.07.14 57 1 10쪽
42 북란성을 떠난 이들 22.07.12 55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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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두 번째 시련 - 혼원야수공의 정수 (2) 22.06.19 94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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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무진이라는 사내 (2) 22.06.01 175 2 10쪽
11 무진이라는 사내 (1) 22.05.31 202 3 9쪽
10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3) +1 22.05.28 206 2 10쪽
9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2) +1 22.05.27 234 2 9쪽
8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22.05.25 261 3 9쪽
7 비동의 회의 - 억취소악 (憶吹簫樂) +1 22.05.23 301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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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영웅협객(英雄俠客) +4 22.05.18 325 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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