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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사비칰의 이야기

남만야수왕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와사비칰
작품등록일 :
2022.05.11 22:17
최근연재일 :
2022.08.31 08:38
연재수 :
6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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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65
추천수 :
139
글자수 :
263,461

작성
22.08.09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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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전쟁의 서막 (2)

DUMMY

묵호단으로 자신이 맡은 아이들을 인도한 뒤 쓸쓸히 다시 송금림 수련동으로 복귀한 무진. 안타깝게도 그곳으로 다시 복귀하는 데에는 실패한 모양이다.


"하...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대체 왜 너가 뒤에서 나오는 건데?"


"기감이 많이 죽었군. 이곳에 허겁지겁 당도했을 때부터 진즉 뒤를 쫓고 있었다. 만약 내가 타국의 간자였으면 이미 죽은 목숨이다."


티엔의 신경을 태연히 긁는 무진. 비록 그가 바라던 대로 다시 묵호단에서 활동하지는 못하게 되었지만 그의 자존심마저 꺾인 것은 아니다.


"너랑 기싸움 할 겨를 없으니까 얌전히 물러나 있어. 궁주님을 뵈러 가야만 해."


"무단 사부님을? 네가 갑자기 나타나도 썩 좋아하실 것 같지는 않다만..."


무진의 말처럼 무단은 평소에는 폐관 수련에만 힘쓰고 있기에 어지간한 일이 아니라면 그를 찾아가는 건 그의 심기를 심히 거스르는 일이다. 허나 그럼에도 무언가 단단히 결심한 것처럼 보이는 티엔의 눈에는 물러섬이 없다. 그만큼 중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대월국의 존망이 걸려있을지도 모르는 중대사야. 빨리 비키기나 해."


그런 티엔이 서두르는 모습에 호기심이 동한 무진. 이대로 그녀를 얌전히 보내줄 그가 아니다.


"대체 무슨 일인데? 내게 순순히 털어놓지 않는다면 한 발자국도..."


"짜증나게 하지 마. 급하다고!"


과묵한 것처럼 보여도 친한 이들에게는 미주알 고주알 털어놓는 무진에게 대리국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면 삽시간에 전혀 상관없는 외곽 마을의 촌부들마저 이에 대하여 떠들어댈 것이 뻔하다. 애초에 이러한 성격 때문에 묵호단에서 퇴출되었던 남자다. 아직 확실하지도 않은 일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남만의 백성들을 혼란스럽게 만들 것이 벌써부터 눈에 선하다. 그러니 아무리 촌각을 다투는 일이더라도 그에게는 말할 수 없다.


티엔이 허리춤에 찬 검을 향해 손을 뻗는다.


"몇 번이나 말해야 알아들을 거야? 비키라고!"


허나 한 번 호기심에 불이 붙은 무진은 검까지 꺼내든 그녀의 모습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그에게는 오랜만에 티엔과 무예를 겨룰 수 있는 좋은 구실이 되어줄 것이다.


"그럼 실력으로 밀고 나가던가. 제대로 설명해줄 생각이 없다면 그 방법 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텐데?"


항상 애지중지하던 묵철 거부는 어디에 두었는지 처음 보는 청색 도끼를 등에서 꺼내드는 무진. 단전에서 기운을 끌어올리는 것으로 보아 손속에 사정을 둘 생각은 없어 보인다.


티엔이 말없이 검으로 호를 그리면서 혼원야수공을 접목시킨 그녀의 독문무공인 혼원검의 기수식을 펼쳐낸다. 마교의 무공과 야수신궁의 무공의 정수만을 접목하여 자연스레 살인에 특화된 그녀의 살검(殺劍)에 정사대전때 별다른 저항도 못 한 채 목이 베인 무인의 수만 백이 넘는다.


"너 이번에는 진짜 실수하는 거야. 급하니까 빨리 끝내줄게."


규헐단의 가장 뛰어난 살수이자 남만 최고의 여검객의 살초가 가느다란 연검에서 펼쳐진다.


마치 한 마리의 전갈이 먹잇감을 향해 꼬리를 내지르듯 재빠르게 쇄도하는 그 검끝에 자비란 없다.


"하, 일초식 규헐미(刲蠍尾)에 당할 거라고 생각했나? 우습기 짝이 없구나!"


규헐단의 이름의 유래가 되어준 그녀의 첫 초식을 가소롭다는 듯이 비릿한 웃음을 흘리면서 여유롭게 청색 철부로 막아낸 무진. 그 반동을 이용하여 제자리에서 팽이처럼 회전하여 반격한다.


"회가추라니! 네놈에게 그 초식의 약점을 몇 번이고 일러주었던 것 같은데? 나를 너무 얕잡아 본 거 아냐?"


도끼를 들고 빠르게 회전을 하더라도 그 중심축은 그대로 공격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통로 벽을 가볍게 딛고 허공을 날아오른 티엔이 그의 머리를 향해 무자비한 칼날을 뻗는다.


챙.


품 안에서 작은 손도끼를 꺼내들어 티엔의 공격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막아내는 무진. 이 상황이 즐거운지 아이처럼 순수한 미소를 띠고 있다.


"흐하하! 네가 이렇게 나오리란 것을 설마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했나? 너야말로 너무 무르다! 오늘에서야 비로소 너를 꺾을 수 있겠구나!"


아무래도 상대의 실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건 티엔인 듯 하다.


그 누구도 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우물 아래의 비밀 통로에서 벌어지고 있는 두 사람의 비무는 한동안 계속될 예정이다.


------------------------------


"그만 모습을 드러내거라! 대체 이 노인네에게서 빼앗을 것이 무엇이 있다고 그리 몰래 쫓아오는 것이냐! 네놈처럼 집요한 녀석은 처음 보았다!"


벌써 한 시진이나 쫓아온 낯선 추격자에게 마침내 일갈을 던지는 이지노괴 가천일.


아침부터 이어진 강행군에 탈진하여 길바닥에 주저앉아 아란을 돌보고 있는 반웅은 더 이상 그녀를 업고 나아갈 여력이 없어 보인다. 그를 사전에 일러둔 대로 자신의 아우이자 봉소 마을의 촌장인 적야의 집으로 돌려보내려고 하였으나 작은 빈틈조차 없는 미지의 적의 추적술에 결국 이런 상황에 당도하고 말았다.


허나 정면 돌파하기로 마음을 먹은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이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으리라.


"아미타불. 소승의 기척이 그리 거슬리셨다면 진즉 일러주셨다면 좋았을 것을. 대리국의 수행자 아망이 명성이 자자한 남만의 이지노괴 가천일께 인사 올립니다."


대리국을 상징하는 거대한 붉은색 천과 노란색 조끼가 인상적인 승복 차림의 남자. 누가 보아도 승려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 수 있는 민머리 사내가 나무 위에서 몸을 날려 가뿐히 바닥으로 내려온다.


"하하하! 요즘 승려들은 다들 네 녀석처럼 멀쩡한 길을 놔두고 원숭이처럼 나무 위에서 이동하는 모양이구나! 석가에 가르침을 따르고 백성들에게 이를 전파하여야 할 놈들이 대체 무슨 볼 일이 있다고 나를 쫓는 것이냐! 자꾸 따라붙는 통에 마음 편히 제자와의 여행을 즐길 수가 없으니 냉큼 떠나거라!"


허탈한 표정으로 실소를 흘리며 자신을 아망이라 밝힌 승려에게서 가볍게 몸을 돌린 가천일. 불가의 귀의한 이라면 큰 위협이 되지 못하리라 판단한 것이다. 허나 상대는 그가 알고 있는 평범한 수도승들과는 다르다.


"아미타불. 적에게 이리 쉽게 뒤를 보이시다니. 십괴라는 이름은 이제 허명에 불과한 모양입니다."


"네...네놈이!"


갑작스레 신형을 날려 가천일의 어깨에 손을 얹은 아망. 그가 목숨을 취하고자 하였다면 십괴의 일원이자 이미 절정의 경지를 아득히 초월한 가천일은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럼 소승이 한 수 무르어 드렸으니 지금이라도 진지하게 임해주시지요. 여기서부터는 살계를 열 것입니다."


대리국의 일원으로서 자국을 지키기 위하여 끊임없이 스스로를 단련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 승려들의 무공 실력이 이 정도일 줄이야. 아무리 방심하였다고 하여도 이리도 쉽게 가천일의 몸에 손을 댈 수 있는 것은 그의 의형제들 외에는 지금껏 없었다.


"그래, 한 수 무르어 주었으니 목숨만은 보존할 수 있도록 해주마! 어디 땡중 녀석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자꾸나!"


비록 상대의 실력이 자신 못지 않다는 사실을 이미 파악하였으나, 가천일은 자신의 속내를 드러낼 생각이 없다. 적으로 나선 이상 불리해질 수 있으니 속전속결로 결판을 내야만 한다.


가천일이 뒷짐을 풀고 검지 끝에 자신의 내공을 집중한다. 탄지공을 쏘아보낼 생각이다.


허나 이에 대응하는 상대방의 모습이 어딘가 이상하다.


"이게 대체 무슨 짓거리냐! 겨우 두 손가락만 앞으로 내밀다니! 설마 네놈도 탄지공으로 승부를 볼 생각이냐?"


평생을 두 손가락에 바친 이지노괴 가천일과 똑같은 자세를 취하는 아망.


검지 손가락을 앞으로 뻗은 채 기운을 그 안에 갈무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 또한 탄지공을 시전할 생각으로 보인다. 탄지공을 연마하면서 나머지 손가락을 모두 잃고 나서야 지금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었던 가천일과 나머지 손가락이 모두 온전히 남아있는 아망. 두 사람이 쌓아놓은 내공에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같은 무공으로 겨룬다면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애초에 이지노괴라는 별호로 벌써 수 십년간 활동해온 가천일이 아니던가. 아망의 행위는 자살에 가깝게 보일 지경이다.


"아미타불. 길고 짧은 건 직접 대봐야 알 수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비록 노야께서 탄지공으로 지금의 명성을 이루셨으나 저희 대리국의 탄지공 또한 뒤쳐지지 않으니 안심하고 겨루어 주시기 바랍니다."


대체 무슨 의도를 갖고 가천일을 자극하는지 알 수 없지만 아망의 말은 가천일의 자존심을 제대로 긁은 모양이다.


이지노괴 가천일의 손 끝에서 반웅이 지금껏 보았던 그 어떤 기운보다 강대한 탄지공이 민머리 사내에게 쏘아져 나간다.


작가의말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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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대리국을 향한 여정 (3) 22.08.28 29 0 9쪽
60 대리국을 향한 여정 (2) 22.08.26 35 0 9쪽
59 대리국을 향한 여정 (1) 22.08.23 25 0 9쪽
58 봉소, 대월, 그리고 주술 (3) 22.08.21 26 0 10쪽
57 봉소, 대월, 그리고 주술 (2) 22.08.18 29 0 9쪽
56 봉소, 대월, 그리고 주술 (1) 22.08.17 34 0 9쪽
55 전쟁의 서막 (3) 22.08.15 36 0 9쪽
» 전쟁의 서막 (2) 22.08.09 34 0 9쪽
53 전쟁의 서막 (1) 22.08.07 37 1 9쪽
52 불협화음 (3) 22.08.04 41 1 10쪽
51 불협화음 (2) 22.08.02 33 1 9쪽
50 불협화음 (1) 22.07.31 39 1 10쪽
49 북룡폭포에서 벌어진 접전 (3) 22.07.28 50 1 9쪽
48 북룡폭포에서 벌어진 접전 (2) 22.07.26 39 1 9쪽
47 북룡폭포에서 벌어진 접전 (1) 22.07.24 44 1 9쪽
46 적야 노인의 친정댁 (2) 22.07.21 44 1 10쪽
45 적야 노인의 친정댁 (1) 22.07.19 43 1 9쪽
44 망각행승 (2) 22.07.17 45 1 10쪽
43 망각행승 (1) 22.07.14 57 1 10쪽
42 북란성을 떠난 이들 22.07.12 55 1 10쪽
41 진실을 찾아서 (3) 22.07.10 51 1 10쪽
40 진실을 찾아서 (2) 22.07.07 57 1 10쪽
39 진실을 찾아서 (1) 22.07.06 67 1 9쪽
38 거검문의 진짜 소문주 (2) 22.07.05 76 1 10쪽
37 거검문의 진짜 소문주 (1) +2 22.07.04 76 1 10쪽
36 여인을 설득하는 방법 (2) 22.06.29 87 1 9쪽
35 여인을 설득하는 방법 (1) 22.06.28 87 3 10쪽
34 야수신궁의 5대 단체 22.06.28 98 2 10쪽
33 세 번째 시험 - 뜻밖의 기연과 새로운 약조 22.06.27 109 1 10쪽
32 세 번째 시험 - 호랑이 가죽에 남겨진 실마리 22.06.23 90 1 10쪽
31 세 번째 시험 - 다시 도채밀림으로 22.06.22 89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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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운귀고원(云贵高原)을 오르는 사내 (2) +3 22.06.19 106 1 10쪽
23 운귀고원(云贵高原)을 오르는 사내 (1) 22.06.19 96 1 9쪽
22 두 번째 시련 - 혼원야수공의 정수 (3) 22.06.19 100 1 9쪽
21 두 번째 시련 - 혼원야수공의 정수 (2) 22.06.19 93 1 10쪽
20 두 번째 시련 - 혼원야수공의 정수 (1) 22.06.19 105 1 10쪽
19 운귀고원(云贵高原)으로 보내진 아이 (4) 22.06.11 132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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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운귀고원(云贵高原)으로 보내진 아이 (1) 22.06.07 159 1 10쪽
15 무진이라는 사내 (5) +3 22.06.05 159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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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무진이라는 사내 (3) 22.06.01 164 3 10쪽
12 무진이라는 사내 (2) 22.06.01 175 2 10쪽
11 무진이라는 사내 (1) 22.05.31 201 3 9쪽
10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3) +1 22.05.28 206 2 10쪽
9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2) +1 22.05.27 234 2 9쪽
8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22.05.25 260 3 9쪽
7 비동의 회의 - 억취소악 (憶吹簫樂) +1 22.05.23 301 3 9쪽
6 첫 비무 - 선발제인(先發制人) +2 22.05.20 317 6 11쪽
5 영웅협객(英雄俠客) +4 22.05.18 325 7 10쪽
4 수련과 생사기로(生死岐路) 22.05.16 402 11 9쪽
3 야수신궁의 역사 22.05.13 466 13 9쪽
2 여정의 시작 +2 22.05.11 688 18 11쪽
1 프롤로그 +4 22.05.11 666 18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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