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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사비칰의 이야기

남만야수왕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와사비칰
작품등록일 :
2022.05.11 22:17
최근연재일 :
2022.08.31 08:38
연재수 :
62 회
조회수 :
8,248
추천수 :
139
글자수 :
263,461

작성
22.06.19 00:45
조회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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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9쪽

두 번째 시련 - 혼원야수공의 정수 (3)

DUMMY

“맹웅, 제발 정신 좀 차려봐! 언제까지 자고 있을 건데?”


“...뭐, 뭐야? 대체 무슨 일이야?”


반고르가 볼기짝을 손바닥으로 때리며 이름을 부르자 마침내 정신을 차린 맹웅.


“대체 무슨 생각으로 발가벗고 화표 옆에서 자고 있던 건데? 아무리 무공 증진에 미쳐있다고 하지만 본인 목숨 정도는 소중하게 여겨야 되는 거 아닌가? 그대로 표범 밥이 되는 게 잘나신 네놈 계획이냐?”


“...아? 그건 말이지...”


주변을 둘러보니 아직 송금림 안이다. 맹웅은 어딘가에 부딪혔는지 아직도 얼얼한 머리를 쓰다듬으며 놀란 반고르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니까, 네 말은 화표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따라 하기 위해서 옷까지 벗고 그러고 있었다고? 게다가 화표는 네가 다가오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었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맹웅의 말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던 반고르. 그는 친우가 드디어 정신이 나가서 헛소리를 늘어놓는다고 생각했다.


“반고르. 네 말대로 난 한 달 동안 광인에 가까운 생활을 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다시 말짱해졌어. 내 말이 헛소리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아직 그 정도로 미치지는 않았으니 제발 믿어줘. 이제는 나도 네가 제안한 대로 비약을 먹이고 그만 편해지고 싶어.”


옅은 미소를 보이며 반고르에게 비약을 먹이자고 하는 맹웅.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아 다행히 제정신으로 돌아온 듯하다. 하지만 이내 한 가지 사실이 반고르를 괴롭혔다.


‘표범은 야행성 동물이 아니던가?’


어쩌면 맹웅의 말대로 화표는 더 이상 자신들을 위협으로 인지하지 않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보면 서로가 서로를 길들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시간을 벌었다면서 맹웅이 원시적인 삶으로 회귀할 지도 모른다.


“반고르, 비약을 먹이러 가자. 슬슬 종지부를 찍어야지.”


해맑게 웃으며 다시 화표에게 돌아가자고 제안하는 맹웅. 아직 이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한 그에게 화표가 일부러 자신들을 보내주었다는 걸 일러준다면 비약을 먹이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반고르를 엄습한다.


“그래, 돌아가자. 오늘 모든 걸 끝내야 겠어.”


차가운 밤공기를 만끽하며 반고르는 앞장서서 길을 나섰다.




"반고르. 내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상한 점이 하나 있어. 한 번 들어볼래?"


"또 무슨 얘기를 하려고?"


맹웅의 말에 반고르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다행히 맹웅은 어둠 속에서 그의 얼굴을 보지 못한 모양이다.


"아까 전에 네가 나를 화표에게서 구해냈다고 했잖아? 그때 분명 네 입으로 화표가 잠들었다고 말했고."


"그랬지. 그게 왜?"


역시 허투루 넘길 맹웅이 아니다. 반고르는 그가 비약을 먹이지 말자고 주장할 것이 두려워 발걸음을 재촉한다.


"뭐, 뭐야! 왜 갑자기 그렇게 빨리 걷는 건데! 내 말 좀 들어봐. 표범은 말이야, 무려 야행..."


"쉿. 도착했으니까 조용히 좀 해. 이러다 들키겠어."


불과 일각 전에 도망쳐 나온 곳으로 돌아온 맹웅과 반고르. 그들은 어둠이 자욱하게 자리 잡은 송금림에 비추는 한 자락 달빛 덕분에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었다.


‘저 놈이 배가 부른 암컷이었구나!’


익히 알려진 것보다 덩치도 커다랗고 식탐이 많았던 이유가 있었다. 두 아이는 숨을 죽이고 격렬한 산통에 신음하는 화표를 그저 구석에서 조용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생명의 탄생은 언제나 경이로운 법이다.


표범의 꽁무니에서 뒷다리만 내밀고 대롱대롱 매달린 채 앞뒤로 연신 흔들리던 검붉은 핏덩이들이 마침내 온전히 풀밭에 떨어져 세상에 첫 울음 소리를 내었다. 무려 두 마리의 새 생명이 처음으로 밤공기를 들이마시고 있다.


가르릉.


아직 눈도 제대로 못 뜨는 새끼들을 혀로 정성스레 핥아주다 보니 어느새 태반까지 온전히 바깥으로 배출되었다. 어미 화표가 출산을 무사히 마친 것이다.


“반고르. 하루 더 기다려주어서 고맙다. 덕분에 진귀한 광경을 볼 수 있었어.”


“그래, 이런 게 기연이겠지. 나도 오늘 밤 이런 장면을 목격하게 될 줄은 몰랐네.”


만약 비약을 먹였다면 임신 중이었던 암표범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 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두 아이는 이 순간만큼은 자신들이 올바른 선택을 하였다고 굳게 믿고 있다. 인간에게 강제로 친밀감을 느끼도록 하는 약이라면 분명 태아에게 악영향을 미쳤을 테니 말이다.


두 아이가 자신을 몰래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걸까. 어미 표범이 두 아이가 숨어있던 방향을 지긋이 쳐다보더니 아이 둘을 데리고 최대한 은밀한 곳으로 몸을 피한다.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반웅이 아니다.


“맹웅, 화표의 태반이면 대체 얼마나 진귀한 영약의 재료가 될까?”


자나 깨나 간약에게 미처 받아내지 못한 은자 40냥에 혈안이 되어 있는 반고르. 그는 잽싸게 달려 나가 태반을 수거한 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어미 표범은 놀랍게도 자신의 태반을 낚아채는 반고르에게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하다. 멀리서 자신의 새끼들을 핥느라 여념이 없다.


“...반고르, 난 가끔 네가 나보다 더 광증에 가까운 게 아닐까 싶어.”


“그건 칭찬인거지?”


마주보며 웃는 반고르와 맹웅. 비록 무공에 대한 깨달음을 얻지는 못하였지만 귀한 영약의 재료를 얻었으니 미련 없이 비약을 먹일 수 있을 것이다.


“아, 맞다. 수련동의 두 번째 시험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아냈어. 간약이 진작 실마리를 두고 갔더라. 공(空)이래. 믿어지냐?”


비워낸다는 의미의 공(空)이라니. 맹웅은 간약과 맹저가 자주 방문하던 시절 장난스레 내뱉은 말이 떠오른다.


‘마음을 비워! 난 분명 알려줬어!’


원일이 처음 두 번째 시련에 대해 설명하던 날.


분명 마음을 비우고 야수들과 생활하기만 하면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비약이 이번 시험을 통과하는데 핵심이라고 이미 일러주었다.


간단하면서도 주변을 둘러보면 알 수 있다는 말은 아마 다른 아이들을 살펴보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얻을 수 있을 지 없을 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깨달음에 집착하여 시간만 허비하기 보다는 확실한 현상에 집중하여 결단을 내리라는 의미였다니.


쓸데없이 두루뭉술하게 늘어놓던 문장들 속에 비밀이 숨어있었다.


맹웅은 허무한 결말에도 반고르와 함께 바보처럼 연신 웃어댈 수밖에 없었다.




“형, 아무리 생각해도 강휘가 항의하면 상부에서 우리한테 뭐라고 할 것 같은데?”


수련동 석실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원일·원이 형제. 동생인 원이는 원일이 헷갈리는 언변으로 두 번째 시험을 쓸데없이 어렵게 만든 것에 대하여 다른 감독관들이 항의하는 통에 불안했다. 원래라면 그냥 포획한 짐승에게 비약을 먹이고 길들이면 끝났을 시험을 애매모호한 말로 혼란을 초래하다니. 그럴싸한 이유를 붙인 건 덤이다. 가히 악질이라 말할 수 있다.


“뭐 어때. 덕분에 맹웅이 선두 주자에서 꼴찌로 내려왔잖아. 다들 항의는 하고 있지만 진심으로 불만을 갖고 있는 사람은 몇 없을 걸?”


실제로 다른 아이들에 비해 월등히 치고 나가던 맹웅이 꼴찌가 되자 진심으로 항의하는 사람은 강휘 정도 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형, 그래도 이걸 빌미로 간소소가 또 이상한 꼬투리 잡고 회의 때 몰아가면 무진처럼 우리도 당할 수 있어.”


“...그건 맞지.”


이런 식으로 감독관들이 개입하여 각자의 잇속을 챙기기 위해서 조금씩 변화를 준다면 올해 최고 수련생을 선정하는 시험의 공정성은 물론 그 과정에서 희생당하는 아이도 늘고 말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앞으로는 모든 감독관들이 모인 자리에서만 시험을 공표하고 서로가 서로를 더욱 엄밀히 감시하게 되리라.


“어차피 이번이 변수를 만들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어. 게다가 내가 징계를 받더라도 네가 있으니 우리 원씨세가는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할 수 있지. 독단으로 저질렀는데 어떻게 너까지 처벌하겠어.”


다른 감독관들과는 달리 자신들은 두 명이나 있다는 사실을 최대한 활용하려는 원일. 그의 심계를 헤아리고 있던 원이였지만 이번만큼은 느낌이 좋지 않았다.


“만약 형이 무진처럼 징계를 받게 되면 왠지 나도 거기에 휘말리게 될 것 같은데...”


“기우야, 기우.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 어차피 강휘 혼자서 안건을 올려도 거기에 동조해 줄 사람은 없다니까? 애초에 누가 우리를 견제하겠어? 무진처럼 대단한 실적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 녀석이 워낙 기고만장해서 악감정 가졌던 사람이 어디 한 둘인가.”


태연하게 넘기는 원일은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서 후회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슬슬 무진도 돌아오겠네. 올해 네가 최고 수련생을 배출할 일은 없으니 꼴좋구나.’


그는 그저 누가 내기에서 이겨서 무진의 월급을 갈취하게 될지 궁금할 뿐이었다.


작가의말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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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불협화음 (2) 22.08.02 33 1 9쪽
50 불협화음 (1) 22.07.31 38 1 10쪽
49 북룡폭포에서 벌어진 접전 (3) 22.07.28 50 1 9쪽
48 북룡폭포에서 벌어진 접전 (2) 22.07.26 39 1 9쪽
47 북룡폭포에서 벌어진 접전 (1) 22.07.24 43 1 9쪽
46 적야 노인의 친정댁 (2) 22.07.21 43 1 10쪽
45 적야 노인의 친정댁 (1) 22.07.19 43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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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야수신궁의 5대 단체 22.06.28 98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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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세 번째 시험 - 다시 도채밀림으로 22.06.22 88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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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운귀고원(云贵高原)을 오르는 사내 (1) 22.06.19 96 1 9쪽
» 두 번째 시련 - 혼원야수공의 정수 (3) 22.06.19 100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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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무진이라는 사내 (4) +2 22.06.03 156 3 11쪽
13 무진이라는 사내 (3) 22.06.01 164 3 10쪽
12 무진이라는 사내 (2) 22.06.01 175 2 10쪽
11 무진이라는 사내 (1) 22.05.31 201 3 9쪽
10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3) +1 22.05.28 206 2 10쪽
9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2) +1 22.05.27 233 2 9쪽
8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22.05.25 260 3 9쪽
7 비동의 회의 - 억취소악 (憶吹簫樂) +1 22.05.23 300 3 9쪽
6 첫 비무 - 선발제인(先發制人) +2 22.05.20 317 6 11쪽
5 영웅협객(英雄俠客) +4 22.05.18 325 7 10쪽
4 수련과 생사기로(生死岐路) 22.05.16 401 11 9쪽
3 야수신궁의 역사 22.05.13 466 13 9쪽
2 여정의 시작 +2 22.05.11 688 18 11쪽
1 프롤로그 +4 22.05.11 666 18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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