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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사비칰의 이야기

남만야수왕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와사비칰
작품등록일 :
2022.05.11 22:17
최근연재일 :
2022.08.31 08:38
연재수 :
6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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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53
추천수 :
139
글자수 :
263,461

작성
22.05.23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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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비동의 회의 - 억취소악 (憶吹簫樂)

DUMMY

티엔은 맹웅을 석실로 돌려보낸 뒤 긴급 회의를 소집하고 암굴에서 벌어진 일을 비동에 모인 다른 감독관들에게 폭로했다. 하지만 세상 일이란 뜻한 바와 다르게 흘러가는 법이다. 회의 막바지에 이르러 필사적으로 항변하고 있는 티엔. 그녀의 표정이 어둡기만 하다.


"무진만 처벌해! 반웅은 왜 내보내자는 거야?"


답답한 마음에 자신의 의견에 동의하는 이를 물색해 보지만 아무도 없다.


"티엔. 너는 암굴에서 무진의 이상 행동을 목격했다고 했지? 무진은 개입한 사실을 인정했고. 그럼 전통대로 무진은 징계를 받고 반웅은 탈락 시키면 끝나는 일이잖아?"


덤덤하게 철선을 쓰다듬던 간소소는 간단히 사안을 정리했다. 가파르게 영향력을 늘리고 있는 성호단(城狐団) 출신인 그녀는 8인의 감독관 중에서 가장 냉철한 판단력을 지녔다.


"여기까지 버틴 것만으로 기적이야. 티엔의 증언만 들어보면 무진이 개입해서 반웅의 기감을 억지로 열어주었을 가능성도 있어. 그러니 지금이라도 반웅을 운귀고원(云贵高原)으로 보내주자."


운귀고원을 거론하는 강휘의 말에 티엔은 자신의 성급한 판단으로 인해 반웅이 정말 쫓겨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진실을 알리고 그에 걸맞은 처분이 내려지기를 바랐건만 오히려 간소소의 간계로 처음부터 재능이 없던 아이를 무진이 올려준 것처럼 회의가 흘러가 버렸기 때문이다.


"무진이 퍽이나 그러겠다! 오히려 수작을 부려서 반웅의 선천지기를 일부러 손상시킨 거라고! 재능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게 만든 거라니까?"


"그건 아닐걸. 지금도 꼴찌잖아."

"그건 아니지. 지금도 꼴찌인데."


사전에 약속이라도 한 듯 원일·원이 형제가 입을 모아 티엔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반웅이 꼴찌라는 건 이미 감독관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할 말을 잃은 티엔은 그저 주먹으로 탁자를 치며 무진을 노려보았다.


"그 날 허약해져 있던 반웅에게 추궁과혈(推宮過穴)을 시전했을 뿐. 기감을 열어주지는 않았다. 선천지기는 멋대로 내공을 사용한 맹웅에게 다친 것이라고 몇 번을 말하나?"


반웅이 복용한 오독환의 효과가 미미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비동 안의 감독관들은 무진의 항변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티엔은 가부좌를 틀고 선천지기를 끌어올리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선명하다.


'저 세치 혀를 검으로 잘라버려야 되는데.'


이 상황에서도 맹웅의 탓으로 돌리고 있는 무진을 지금이라도 바깥으로 끌어내 제압하고 싶지만 그녀에게는 명분이 없다.


"반웅에게 암굴에서 어떤 문제가 생겼던 게 분명해. 무진이..."


"대체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하는 거야? 네가 봤다고 주장하는 건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선천지기를 끌어올리는 모습인데 이건 보통 치료를 위한 행위잖아. 선천지기를 일부러 소진시키고 다시 치료해주었다는 너의 주장은 어불성설이야. 차라리 몸이 너무 허약해져서 구해주었다고 보는 편이..."


티엔의 발언을 지적하던 간소소가 잠시 멈칫한 뒤 말을 이어나갔다.


"생각 좀 해봐. 오독환을 복용하고 누워있는데 선천지기가 소모될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 어떻게 벌어져. 게다가 수시로 다른 감독관들도 확인하러 오잖아. 정황적으로 반웅은 맹웅과 대련하다가 다친 게 맞다니까? 증명해 줄 수 있는 아이들도 많고."


간소소는 오독환의 효능에 이상이 생겼을 일말의 가능성이 잠시 떠올랐지만 경쟁자를 한 명이라도 제거할 수 있는 기회를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무려 작년 최고 수련생을 배출한 무진이다. 관리 태만으로 인한 가벼운 제재 보다는 꼴찌인 반웅과 엮어서 무거운 징계를 내리는 편이 구미가 당긴다. 어차피 재능이 미천한 아이에게 깊게 신경 써줄 사람은 없다.


맹웅이 나날이 성장하여 또래들과 확연히 차이가 벌어지고 있는 지금. 그녀가 데려온 간씨세가 아이들에게 더 많은 시간을 쏟지 않는다면 강휘가 내기에서 이기고 말 것이다. 올해 최고 수련생은 오독문의 후예인 간씨 아이들 중 한 명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좋아. 그렇다고 치자. 그럼 대체 왜 반웅의 말은 들어보지도 않는 건데?"


무진의 미지의 악행을 밝히는 것을 포기한 티엔은 이번에는 반웅이 직접 그 당시에 대해 얘기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고자 했다.


"답답해 죽겠네. 우리 야수신궁은 전통에 따라 스스로 기감을 일깨운 아이만 전사로 길러내 왔어. 그럼 지금까지 무진이 개입했다는 사실을 숨겨왔던 아이가 어떻게 나올까? 남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겠지? 그냥 무진은 징계를 받고 아이는 실격 처리하는 게 깔끔하다고. 넌 마...'


"거기까지만 해."


간소소가 큰 실수를 범하기 전 가까스로 강휘가 끼어들었다. 억지스러운 전통을 들먹이는 것도 모자라 마교를 언급하려 하다니. 말 없이 살기를 끌어올린 티엔은 폭발하기 일보직전이다.


"내가 봤을 땐 반웅이 내공을 다른 아이들의 반절도 쌓지 못해서 내상을 입은 거야. 앞으로 내공의 격차가 벌어지면 더욱 심하게 다치겠지. 그 아이의 안전을 위해서 보내주자."


강휘는 자신의 생각을 여과 없이 티엔에게 전했다. 이대로 간다면 가까운 미래에 반웅이 크게 다치리라 판단한 것이다. 다른 감독관들도 그의 말에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슬슬 투표를 해볼까? 무진은 개입한 것에 대해 처벌하고 반웅은 내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수! 뭐야, 벌써 결론이 났네?"


간소소가 말을 마치자 티엔과 무진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이 모두 손을 들었다.


'결국 저 여우가 몰아가는 대로 되어버렸군.'


반웅의 처우가 결국 퇴출로 정해지자 무진은 속으로 혀를 찼다. 구명 활동이었다는 점을 감안하여 그에게 내려진 처분은 4개월 정직(停職) 및 '봉소 마을을 위협하는 흑철웅 무리 토벌' 임무였다.




다음날 아침. 티엔은 선천지기를 회복한 반웅을 은월랑(銀月狼)에 태우고 길을 나섰다. 아무런 반응도 없이 그저 묵묵히 따르는 아이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산더미처럼 많았지만 티엔은 이내 입을 굳게 다물었다. 이미 끝난 일이다.


늑대 등에 올라타 고개를 숙인 채 침묵하고 있는 반웅과 앞만 바라보고 있는 티엔. 수련동이 위치한 송금림을 벗어나자 먼저 말문을 연 것은 반웅이었다.


"...저는 이제 전사가 될 수 없겠죠?"


"무슨 소리야. 반웅, 넌 이미 충분히 훌륭한 전사야."


"...하지만 수련동에서 퇴출 되었잖아요. 제가 꼴찌라서 그런 거죠?"


자조 섞인 반웅의 물음에 티엔은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무진의 행위를 모른 척 했다면 수련동에 남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만 고개를 든다.


허나 어제 열린 회의의 목적은 작년 최고 수련생을 배출한 무진을 배제하는 것이었다. 강휘가 회의 끝 무렵에 내뱉은 '반웅이 다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는 허울 좋은 이유를 진심으로 공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전통을 빌미로 반웅은 감독관들 사이의 신경전에 희생 당한 것이다.


한나절 동안 거친 돌길을 따라 나아가던 둘의 고요한 동행은 먼 발치에서 초목이 우거진 주양산(朱楊山) 봉우리가 보이면서 끝을 고했다. 운귀 고원 초입에 다다른 것이다. 산 어귀로 마중을 나온 백발 노인이 이들을 반긴다.


“이 아이가 기감을 얻고 나서도 수련동의 비정함을 겪게 된 아이로구나.”


“다시 데리러 올 겁니다. 고산선의(高山善醫) 거야휘님께서 잠시만 맡아주십시오.”


티엔의 답변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운귀가의(云贵假醫)로도 불리우는 노인의 이마 주름이 더욱 깊어졌다.


“그런 무책임한 말이 아이의 마음을 더욱 심란하게 하는 것이거늘. 허황된 꿈을 꾸게 하지 말거라.”


거야휘로 불린 노인이 점잖게 티엔을 꾸짖자 조용히 포권을 취한 그녀는 다시 은월랑에 오른 뒤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분명 그녀는 전력을 다해 아이를 데려갈 방법을 찾을 것이다.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우두커니 서있던 반웅. 그를 안아 든 노인이 능공허도(凌空虛道)를 펼쳤다.


--


어둑해지고 나서야 고원 농장에 도착한 반웅은 노인을 따라 다른 아이들이 이미 곤히 잠들어 있는 침소에 들어섰다. 마른 짚 냄새가 진동하는 빈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해보지만 우울한 기억들이 덮쳐올 뿐. 무림에 나가 아버지를 찾겠다는 꿈과 마을에서 기다리고 계실 어머니가 떠오르자 어린 소년은 결국 울음을 터트릴 수 밖에 없었다.


낯선 기척에 깨어나 조용히 귀를 기울이던 다른 아이들은 이미 겪어본 일이었기에 그 들썩임을 애써 모른 채 하며 다시 눈을 감았다. 암굴에서 기감을 일깨우지 못해 탈락한 이 아이들은 자신들과 같은 곳에 당도한 반웅에게 묘한 동병상련을 느꼈으리라.


그를 데려온 장본인이라 할 수 있는 거야휘는 우는 소리를 피해 마당에 나와서 자미두수(紫微斗数)라 적힌 서책을 읽고 있다. 천기를 읽는 모양이다.


'역마살을 타고난 아이로구나. 게다가 조만간 먹구름에 뒤덮이는 삶이라니...'


고원 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별들을 향해 조금씩 다가오는 불길한 흑운(黑雲)을 바라보며 노인은 쓴웃음을 지었다.


작가의말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억취소악(憶吹簫樂) -  자신이 아는 것 만으로 멋대로 추측하다.


성호단(城狐団) - 성의 여우라는 뜻을 지닌 야수신궁의 5대 단체 중 하나.


추궁과혈(推宮過穴) - 안마 및 지압을 통한 응급처치술


고산선의(高山善醫) - 의술로 남만을 돕고 있는 과거 중원 무림 요직에 있었던 고수.


자미두수(紫微斗数) - 10세기 송나라의 점성술. 본 작에서는 이를 담은 서책.


반웅은 과연 수련동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저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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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봉소, 대월, 그리고 주술 (1) 22.08.17 33 0 9쪽
55 전쟁의 서막 (3) 22.08.15 36 0 9쪽
54 전쟁의 서막 (2) 22.08.09 33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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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적야 노인의 친정댁 (2) 22.07.21 44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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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망각행승 (2) 22.07.17 45 1 10쪽
43 망각행승 (1) 22.07.14 57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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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세 번째 시험 - 다시 도채밀림으로 22.06.22 89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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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운귀고원(云贵高原)을 오르는 사내 (3) +1 22.06.19 99 1 9쪽
24 운귀고원(云贵高原)을 오르는 사내 (2) +3 22.06.19 106 1 10쪽
23 운귀고원(云贵高原)을 오르는 사내 (1) 22.06.19 96 1 9쪽
22 두 번째 시련 - 혼원야수공의 정수 (3) 22.06.19 100 1 9쪽
21 두 번째 시련 - 혼원야수공의 정수 (2) 22.06.19 93 1 10쪽
20 두 번째 시련 - 혼원야수공의 정수 (1) 22.06.19 105 1 10쪽
19 운귀고원(云贵高原)으로 보내진 아이 (4) 22.06.11 132 1 10쪽
18 운귀고원(云贵高原)으로 보내진 아이 (3) 22.06.09 148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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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운귀고원(云贵高原)으로 보내진 아이 (1) 22.06.07 159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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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무진이라는 사내 (3) 22.06.01 164 3 10쪽
12 무진이라는 사내 (2) 22.06.01 175 2 10쪽
11 무진이라는 사내 (1) 22.05.31 201 3 9쪽
10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3) +1 22.05.28 206 2 10쪽
9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2) +1 22.05.27 234 2 9쪽
8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22.05.25 260 3 9쪽
» 비동의 회의 - 억취소악 (憶吹簫樂) +1 22.05.23 301 3 9쪽
6 첫 비무 - 선발제인(先發制人) +2 22.05.20 317 6 11쪽
5 영웅협객(英雄俠客) +4 22.05.18 325 7 10쪽
4 수련과 생사기로(生死岐路) 22.05.16 401 11 9쪽
3 야수신궁의 역사 22.05.13 466 13 9쪽
2 여정의 시작 +2 22.05.11 688 18 11쪽
1 프롤로그 +4 22.05.11 666 18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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