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와사비칰의 이야기

남만야수왕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와사비칰
작품등록일 :
2022.05.11 22:17
최근연재일 :
2022.08.31 08:38
연재수 :
62 회
조회수 :
8,257
추천수 :
139
글자수 :
263,461

작성
22.05.16 23:02
조회
401
추천
11
글자
9쪽

수련과 생사기로(生死岐路)

DUMMY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반웅은 어둠이 만연한 공간 속에서 연신 살려달라는 말을 되뇌이지만 도우러 오는 이는 아무도 없다. 아혈(啞穴)이 제압된 그의 마음 속 외침이 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였기 때문이다. 앞서 지급된 오독환을 복용하고 오감(五感)이 한없이 약해진 채 광장 밑 암굴 바닥에 누워 고열에 시달리고 있는 아이가 그를 포함하여 마흔 명이 넘는다.


다섯 가지 독을 조합하여 만들어진 오독환은 각각 대응하는 감각을 한시적으로 마비시키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 운기조식을 하면 쉽게 해독되는 독이지만 기감 수련에는 이보다 좋을 수가 없으리라. 다만 평소라면 적당한 기간을 두고 투약과 해독을 반복하며 진행되었겠지만 이들을 지켜보는 무진은 그럴 생각이 없다.


‘역시 기(氣)를 느끼는 데 이만한 방법이 없지. 이번이 서른 한 번째였나.’


무려 한 달째 이들을 살피는 중이던 그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기감(氣感)이 열린 아이의 혈도를 풀어주고 해독환을 먹인다. 달리 말하면 긴 기간 동안 식음을 전폐한 채 방치된 아이를 단전에 내기가 쌓이려는 기미가 보이자 치료해준 것이다. 이런 극단적인 방식을 처음에는 반대하던 다른 감독관들은 작년에 비해서 두 배나 빨라진 진행 속도를 보고 나서는 그의 편을 들어줄 수 밖에 없었다.


사용되는 약재를 아낄 수 있다는 점도 분명 큰 수확이지만, 이 과정을 거친 아이들의 기감이 매우 날카롭다는 점이 특히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굶주림과 목마름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 내공에 대한 갈망(渴望)으로 이어져 기초를 다지는데 크게 기여한 것이다.


벌써 서른 명의 아이들이 다음 단계로 나아갔다. 오독환을 남들보다 빠르게 받았던 맹웅을 필두로 이들은 자연과 야수의 기운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만야환상대법(萬野喚相大法)을 강휘에게 전수 받고 있으리라. 암굴에서 누워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들과의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말 것이다.


‘성공률은 대략 반반이군.’


땀에 흠뻑 젖은 채 신음을 흘리고 있는 반웅은 사경을 헤매고 있다. 무진은 이처럼 체력적 한계에 다다른 아이들은 해독환을 먹인 뒤 과감히 탈락시켜왔다. 성과를 보이지 않는다면 남은 이들도 결국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근데 이 녀석 방금 눈을 뜬 것 같은데?’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아는지 반웅은 어느새 두 눈을 부릅뜬 채로 정확히 무진을 노려보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헛것을 본 것이라 생각한 무진은 연신 눈을 비비며 서둘러 그에게 다가선다.


‘설마···’


움찔.


눈앞에서 손을 휘젓자 반사적으로 눈을 움찔거리는 반웅을 보고 깜짝 놀란 무진은 그를 안아들고 황급히 환약을 입 안에 밀어 넣었다.


'살려...주세요...'


겨우 해독환을 삼킨 반웅은 이내 정신을 잃었다.




반웅은 오독환을 삼키고 나서 겨우 사흘이 지나자 서서히 감각이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바닷가에서 독충과 해파리에 한 번 쏘이고 나면 필사적으로 피해 다니는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호기롭게 대치하면서 조금이나마 독에 내성이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혈도가 제압되어 별다른 방도가 없었던 반웅은 가만히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닷새 째 되던 날. 하루 종일 가만히 누워만 있던 반웅은 완벽하게 감각을 회복했다. 허나 오독환의 역할은 오감을 마비시키는 것만이 아니다. 신진대사를 극단적으로 낮추어 기력을 보존하고 배고픔, 목마름, 배뇨욕구 등의 원초적인 욕망들을 견딜 수 있는 수준으로 완화해 주었지만 반웅은 이 효과를 전혀 누리지 못하고 말았다. 다른 감각들을 죽이고 기감을 얻기는커녕 날 것 그대로의 기아(饑餓)에 온몸이 제압된 채로 노출된 것이다. 약해져만 가는 육체에 고통받던 반웅은 결국 결사항전을 시작했다.


살기 위해선 먼저 혈도를 풀어내야만 하지만 제압된 혈도를 자력으로 푸는 건 내공을 익히지 않은 이들에게 극히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던 반웅은 사부들이 이론으로 알려준 자연의 기운을 느끼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감긴 눈으로 인해 봉쇄된 시각을 제외한 나머지 감각들이 요동치며 시시각각 그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무진이 탈락한 아이를 어깨에 메고 걸어 나가는 소리, 불현듯 떠오르는 어머니의 음식의 맛과 향기, 전장으로 떠나가던 아버지의 기억, 등으로 느껴지는 서늘하고 딱딱한 바닥의 감촉. 이 모든 것들이 휘몰아치면서 그의 수련을 방해하자 겨우 다잡은 마음과 감각은 부지불식(不知不識) 사라졌다.


그렇게 엿새가 지나자 반웅은 다른 방식으로 이 상황을 타개할 계획을 세웠다. 전혀 모르는 새로운 감각을 찾아내는 것보다 이미 존재하는 감각들 하나하나에 집중하여 현재를 잊는 것이다. 미각, 후각, 청각, 촉각에 차례대로 집중하고 원하지 않는 감각을 잠시 배제하는 법을 익히자 열넷째 날이 밝았다.


날카롭게 곤두선 그의 촉각은 더 이상 바닥에 연연하지 않았고 오히려 맞닿아 있는 피부와 순환하는 대기를 통해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바람의 방향, 습기, 온도를 느끼게 되자 이윽고 암굴 안의 모습은 물론 그 속에서 숨 쉬고 있는 아이들과 무진을 머릿속에서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이 중에서 무공을 익힌 무진의 숨결이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반웅은 본능적으로 그를 따라하면서 느리지만 깊게 숨을 쉬면서 호흡을 제어하는 법을 익혀나갔다. 다시 아흐레 동안 이를 반복하자 반웅은 이윽고 폐부 깊은 곳을 지나 아랫배 안쪽을 간질이는 기운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기감이 열린 것이다.


하지만 이 기운을 느끼는 것과 운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스스로의 의지로 자연의 기운을 정제하는 것이니 어려운 것이 당연하다. 제대로 된 내공 심법조차 아직 익히지 못한 반웅은 결국 생각을 바꾸어 다른 아이들처럼 단전에 쌓는 것이 아니라 피부로 이 기운을 직접 흡수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마침내 서른째 날을 맞이한 반웅은 피부를 통해 흡수한 내기로 혈도를 풀어내는데 성공하였다. 허나 기쁨도 잠시.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 약해진 눈꺼풀을 가까스로 들어 올리자 극도로 민감해졌던 그의 다른 감각들이 본래대로 돌아왔다. 굶주림과 갈증 같은 생리 현상들이 다시 10살 아이의 몸과 마음을 강타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잃어버린 감(感)에 대한 아쉬움은 결국 생존에 대한 두려움에 밀려났지만 장시간 아혈이 제압되어 말라버린 그의 목에서는 어떠한 소리도 나지 않았다. 반웅은 사력을 다해 무진을 쏘아보았다.


'살려...주세요...'


반웅은 다가오는 무진을 보고 나서야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있었다.




‘내 수련법에 오점이 남을 수는 없다!’


무진은 쓰러진 반웅의 몸 상태를 살피고 나서야 자신의 실책을 깨달았다. 극심히 소모된 선천지기(先天眞氣)와 사라져버린 오독환의 독기가 이 아해(兒孩)에게 벌어진 일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대체 며칠이나 혈도만 제압된 상태로 버틴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문책을 받는 것은 피해야만 한다. 다른 감독관들에게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어떤 사단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여기서 끝날 수는 없다.’


새 수련법의 성과가 윗선에 보고되면서 감독관 신세를 벗어나 다시 묵호단(嘿虎团)에서 활동할 생각에 부풀어 있던 무진은 빠르게 마음을 굳혔다. 이 아이의 선천지기를 회복 시키기 위해서 자신의 선천지기를 사용하기로.


아껴둔 단약을 복용하고 한 달 이상 휴양해야 했지만 무림행을 갈구하고 있는 무진은 그만큼 필사적이었다. 어차피 수련동은 언제나 평화로웠고 그 또한 강함이라는 불꽃에 현혹되어 무림으로 달려드는 불나방이었기에.


‘단약 따위 무림에는 차고 넘친다. 운 좋은 줄 알아라.’


체구도 빈약하고 선두 조와 큰 격차가 벌어져 있는 이 아이를 유심히 살펴보지 않는 이상 무진의 개입을 눈치챌 수는 없을 것이다. 애초에 소모되는 기운의 양도 예상보다 적었고 만약 이목을 끌더라도 이미 회복이 끝난 뒤일 터.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리기에는 결국 시간마저 그의 편이라는 얘기다.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재차 확인한 뒤 무진은 반웅의 선천지기를 수복하기 시작했다.


‘네가 기어코 일을 벌이는 구나.’


이런 무진을 어둠 속에서 몰래 응시하고 있는 은형술(隱形術)의 대가 티엔. 가장 유심히 지켜보던 반웅이 기감을 일깨우는 게 늦어지자 몰래 살펴보러 온 그녀는 가부좌를 튼 무진의 모습을 보고선 큰 변고가 생겼다는 걸 직감했다. 어쩌면 내기에서 이기기 위해서 무진이 처음부터 개입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싸늘해진 규헐단(刲蠍团) 살수의 눈이 다가올 파란을 예고하고 있다.


작가의말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석을 다는 방법을 몰라서 이렇게 첨부해 보았습니다.


단약 - 내공 증진에 도움이 되는 약


환약 - 둥그런 약 (내공 증진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아혈(啞穴) - 제압되면 말을 하지 못하게 되는 혈도


만야환상대법(萬野喚相大法) - 모든 자연과 야수의 기운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심법


부지불식(不知不識) - 생각하지도 알지도 못하는 사이


시시비비(是是非非) - 잘잘못


규헐(刲蠍) - 찌르는 전갈


파란(波瀾) - 큰 사건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남만야수왕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금일 연재 안내 22.08.16 7 0 -
공지 연재 주기 안내 22.06.28 16 0 -
공지 수정 안내 22.06.19 32 0 -
공지 한자 용어에 관한 질문입니다. 22.06.16 78 0 -
62 봉소 마을로 모여드는 이들 (1) 22.08.31 44 0 10쪽
61 대리국을 향한 여정 (3) 22.08.28 29 0 9쪽
60 대리국을 향한 여정 (2) 22.08.26 35 0 9쪽
59 대리국을 향한 여정 (1) 22.08.23 25 0 9쪽
58 봉소, 대월, 그리고 주술 (3) 22.08.21 26 0 10쪽
57 봉소, 대월, 그리고 주술 (2) 22.08.18 29 0 9쪽
56 봉소, 대월, 그리고 주술 (1) 22.08.17 33 0 9쪽
55 전쟁의 서막 (3) 22.08.15 36 0 9쪽
54 전쟁의 서막 (2) 22.08.09 33 0 9쪽
53 전쟁의 서막 (1) 22.08.07 37 1 9쪽
52 불협화음 (3) 22.08.04 40 1 10쪽
51 불협화음 (2) 22.08.02 33 1 9쪽
50 불협화음 (1) 22.07.31 38 1 10쪽
49 북룡폭포에서 벌어진 접전 (3) 22.07.28 50 1 9쪽
48 북룡폭포에서 벌어진 접전 (2) 22.07.26 39 1 9쪽
47 북룡폭포에서 벌어진 접전 (1) 22.07.24 44 1 9쪽
46 적야 노인의 친정댁 (2) 22.07.21 44 1 10쪽
45 적야 노인의 친정댁 (1) 22.07.19 43 1 9쪽
44 망각행승 (2) 22.07.17 45 1 10쪽
43 망각행승 (1) 22.07.14 57 1 10쪽
42 북란성을 떠난 이들 22.07.12 55 1 10쪽
41 진실을 찾아서 (3) 22.07.10 51 1 10쪽
40 진실을 찾아서 (2) 22.07.07 57 1 10쪽
39 진실을 찾아서 (1) 22.07.06 67 1 9쪽
38 거검문의 진짜 소문주 (2) 22.07.05 76 1 10쪽
37 거검문의 진짜 소문주 (1) +2 22.07.04 76 1 10쪽
36 여인을 설득하는 방법 (2) 22.06.29 87 1 9쪽
35 여인을 설득하는 방법 (1) 22.06.28 87 3 10쪽
34 야수신궁의 5대 단체 22.06.28 98 2 10쪽
33 세 번째 시험 - 뜻밖의 기연과 새로운 약조 22.06.27 108 1 10쪽
32 세 번째 시험 - 호랑이 가죽에 남겨진 실마리 22.06.23 90 1 10쪽
31 세 번째 시험 - 다시 도채밀림으로 22.06.22 89 1 10쪽
30 하니 마을의 준예(哈尼儁乂) (2) 22.06.19 100 3 9쪽
29 하니 마을의 준예(哈尼儁乂) (1) 22.06.19 91 1 9쪽
28 다시 만난 스승과 제자 (3) 22.06.19 90 1 10쪽
27 다시 만난 스승과 제자 (2) 22.06.19 90 1 9쪽
26 다시 만난 스승과 제자 (1) 22.06.19 96 1 10쪽
25 운귀고원(云贵高原)을 오르는 사내 (3) +1 22.06.19 99 1 9쪽
24 운귀고원(云贵高原)을 오르는 사내 (2) +3 22.06.19 106 1 10쪽
23 운귀고원(云贵高原)을 오르는 사내 (1) 22.06.19 96 1 9쪽
22 두 번째 시련 - 혼원야수공의 정수 (3) 22.06.19 100 1 9쪽
21 두 번째 시련 - 혼원야수공의 정수 (2) 22.06.19 93 1 10쪽
20 두 번째 시련 - 혼원야수공의 정수 (1) 22.06.19 105 1 10쪽
19 운귀고원(云贵高原)으로 보내진 아이 (4) 22.06.11 132 1 10쪽
18 운귀고원(云贵高原)으로 보내진 아이 (3) 22.06.09 148 1 9쪽
17 운귀고원(云贵高原)으로 보내진 아이 (2) 22.06.08 143 1 10쪽
16 운귀고원(云贵高原)으로 보내진 아이 (1) 22.06.07 159 1 10쪽
15 무진이라는 사내 (5) +3 22.06.05 158 2 11쪽
14 무진이라는 사내 (4) +2 22.06.03 156 3 11쪽
13 무진이라는 사내 (3) 22.06.01 164 3 10쪽
12 무진이라는 사내 (2) 22.06.01 175 2 10쪽
11 무진이라는 사내 (1) 22.05.31 201 3 9쪽
10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3) +1 22.05.28 206 2 10쪽
9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2) +1 22.05.27 234 2 9쪽
8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22.05.25 260 3 9쪽
7 비동의 회의 - 억취소악 (憶吹簫樂) +1 22.05.23 301 3 9쪽
6 첫 비무 - 선발제인(先發制人) +2 22.05.20 317 6 11쪽
5 영웅협객(英雄俠客) +4 22.05.18 325 7 10쪽
» 수련과 생사기로(生死岐路) 22.05.16 402 11 9쪽
3 야수신궁의 역사 22.05.13 466 13 9쪽
2 여정의 시작 +2 22.05.11 688 18 11쪽
1 프롤로그 +4 22.05.11 666 18 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