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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사비칰의 이야기

남만야수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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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사비칰
작품등록일 :
2022.05.11 22:17
최근연재일 :
2022.08.31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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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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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18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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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소, 대월, 그리고 주술 (2)

DUMMY

대월국의 존망을 걸고 벌써 삼일째 봉소에서 적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 성호단 단원들과 마을 주민들. 마을 외곽에 도랑을 파고 목책을 세우며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는 그들을 바라보던 간소소가 인근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문득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맹웅, 혹시 칠종칠금(七縱七擒)에 대하여 들어보았느냐?"


조금 민감한 주제일 수도 있는 칠종칠금을 맹씨 일가의 후손이자 백화궁의 후예인 맹웅에게 직접적으로 묻다니. 그녀의 입에서 이 단어가 나오자 맹웅은 물론,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맹저마저 반사적으로 얼굴을 찡그리는 것으로 보아 역시 알고 있는 모양이다.


"예...저희 맹씨 일가의 무장들 중에서 독보적인 무예와 용병술로 남만 일대를 장악하셨던 맹획(孟獲) 선조님의 용맹무쌍한 투쟁을 촉한(蜀漢) 놈들이 자신들의 입맛대로 뜯어고쳐 중원 널리 퍼뜨린 무근지설(無根之說) 아닙니까. 정말 한탄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순식간에 붉어진 얼굴로 분을 삭히며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는 맹웅. 맹웅뿐만이 아니라 맹씨 성을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비슷한 반응을 보이리라.


"그래, 진실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헛소리란 사실을 우리 남만인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는 유명한 일화지. 허나 역사란 모름지기 승자에 의해 다시 쓰여지는 법이다. 중원 놈들은 맹획이 공명에게 무려 일곱 번이나 치뤄진 전투에서 매번 패배하여 사로잡힌 뒤 겨우 풀려났다고 알려져 있는 거짓된 역사다. 비록 촉한의 책사였던 와룡(臥龍) 선생이 뛰어났던 것은 사실이나, 어찌 운남 지역의 장(長)이자 뛰어난 전술가였던 맹획이 어찌 그리 속수무책으로 당했겠느냐. 모두 중원 놈들이 뿌린 거짓부렁일 뿐이다."


간소소의 말에 조금은 분이 사그러 들었는지 평상시 모습으로 돌아온 맹웅과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맹저. 무언가 덧붙이고 싶어 안달이 난 것처럼 아랫 입술만 빼꼼히 내밀고 있다.


"오죽하면 옆 나라 대리국에서는 압도적으로 적은 병력으로 무려 일곱 차례나 이들을 막아낸 맹획과 당시 영웅호걸들을 높게 평가하여 오히려 승리하였다고 평가하겠느냐. 하지만 결국 진실은 묻히게 될 것이고, 아마 세월이 더욱 흐르고 나면 그의 분투를 제대로 기억하는 것은 아무도 없게 되겠지."


그녀의 말에서 무언가 느끼는 바가 있었는지 고개를 숙인 채 무언가 골돌히 생각하는 맹웅. 간소소의 말처럼 지금은 비록 그에 얽힌 비사(祕事)를 제대로 아는 이는 없어지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이 곳에 당도할 적군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결국 우리 대월국의 역사 또한 잊혀지고 말 것이다. 지금도 이 기록을 빌미로 중원 놈들이 우리를 야만인 취급하지 않느냐. 그러니 아무리 어려운 일이더라도 우리는 여기서 그들을 막아내야만 한다."


지금껏 아이들에게는 직접적으로 무엇을 대비하고 있는지 일러주지 않았던 간소소. 그녀에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마침내 진실을 털어놓을 생각이다.


"대리국의 병사들이 이곳으로 오고 있다. 이곳에서 뼈를 묻을 각오를 하고 단원들에게 철저히 준비하라 일러두었으나 너희들마저 승산 없는 싸움에 임하게 할 수는 없다. 이대로 얌전히 송금림 수련동으로 돌아가 힘을 기르고 후일을 도모하는 것은 어떻겠느냐?"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아이들을 한 명씩 찬찬히 바라보며 말을 이어가는 간소소. 그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 속에 진심이 담겨 있다. 허나 아무리 10살 밖에 되지 않은 아이들이라 하여도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 이런 사달을 알아챌 눈치 정도는 지니고 있는 법이다. 찰나의 침묵을 깨고 마치 미리 입이라도 맞춰본 것처럼 네 아이가 동시에 소리친다.


"저희도 이곳에서 남아 뼈를 묻겠습니다!"


"아서라! 어찌 어린 나이에 죽음을 그리 가볍게 생각하느냐! 칠종칠금이라는 수치스러운 일을 당하였을 적, 분명 양측 모두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으나 아쉽게도 시간은 우리의 편이 아니었다. 압도적으로 부족한 물자와 나날이 떨어지는 사기로 더는 버틸 수 없을 지경이 되었기에 남은 병사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남만의 영웅이자 최초의 남만왕이라 불리던 맹획은 결국 촉한의 산하로 들어가 충성을 맹세할 수밖에 없었지. 뭇사람들은 귀순하였다고 손가락질을 할 지경이니 더 무슨 말을 하겠느냐..."


누군가에게 윽박지르는 것처럼 느껴지는 간소소의 외침을 듣고선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서로 눈빛만 교환하는 네 아이들. 항상 평정심을 유지하던 그녀가 이렇게까지 말한다면 현재로선 승리할 확률이 희박한 것이 분명하다.


"...그 이후로 운남 지역을 빼앗기고, 한족(漢族) 놈들의 전쟁을 위하여 수년간 우리 남만의 흑단(黑檀)과 물소뿔을 바치겠다는 굴욕적인 협약까지 맺었으니 이는 두고두고 기억될 것이다. 수련동으로 돌아가 힘을 기르거라. 힘이 있어야 우리 대월국의 백성을 지키고 나아가 남만인은 야만스러운 족속이라고 주창하고 다니는 지긋지긋한 한족 놈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녀의 외침 속에 바닥이 보이지 않는 어둡고 서늘한 한이 서려있다. 힘이 없기에 항상 북녘의 적들에게 멸시당하고 유언비어(流言蜚語)로 한 시대의 영웅이 패자(覇者)에서 패장(敗將)으로 기록되는 것조차 막아내지 못한 것에 대한 자괴감일지도 모른다.


간소소의 단단한 의지가 담긴 비명에 네 아이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 한채 그저 조용히 고개를 떨구고 바닥을 바라보았다. 마치 가랑비라도 오는 것처럼 이들 발 밑에 놓인 대지가 조금씩 젖어든다.


======================


"할아버지, 다른 탈것도 많은데 굳이 물소를 타고 가는 이유가 대체 뭐에요? 이러다가 대리국의 주술사를 미연에 저지하기는 커녕 길가에서 아사하겠어요!"


검은 물소의 등에 아란과 함께 올라타 과장된 몸짓과 목소리로 배가 고프다며 연신 하소연을 늘어놓으면서 늪지대를 건너고 있는 반웅. 그의 양 옆으로 덩치가 더욱 커다란 물소에 올라타 여전히 뒷짐을 지고 있는 이지노괴 가천일과 염불을 외우며 목탁을 두드리고 있는 아망이 눈에 들어온다. 기이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이놈아, 무사히 적지로 넘어가려면 이렇게 촌부처럼 다녀야 의심을 피할 수 있지 않겠느냐! 언제 어디서 대리국 병사들을 맞닥뜨릴지 모르는데 대체 뭐라고 둘러댈 생각이냐!"


가천일의 말처럼 머리에는 낡다 못해 해지기 일보 직전으로 보이는 오래된 죽립을 푹 눌러쓰고 흙바닥에 대차게 굴렀는지 온갖 진흙 덩어리와 오물로 범벅이된 옷을 입고 있는 이들의 모습은 인근 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의 모습와 거진 다를 바가 없다.


"아미타불. 물소떼가 비록 평상시에는 천천히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나 마음을 먹으면 그 어떤 맹수보다 날렵하게 움직입니다. 이들이 나서면 어린 사자무리도 쉽사리 덤벼들지 못하지요. 어린 시주께서는 아직 이들의 본모습을 보지 못한 모양입니다."


반웅은 너무나 배가 고파서 푸념을 늘어놓은 것이지만 오히려 물소의 속도가 걱정되어서 그리한다 여기는 대리국의 승려 아망. 이미 주술사들과 타락한 승려들로 인하여 멸운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자신의 모국으로 반웅과 가천일을 이끌고 늪지대를 가로지르고 있다.


"하...네놈이 우리와 동행하는 탓에 이런 몰골로 다니고 있는 게 아니더냐! 대리국의 승려인 네놈을 알아보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우리 모두의 목숨이 위험하거늘!"


"아미타불. 그럼 제 도움 없이 대리국 왕실 지하까지 당도하실 수 있겠습니까? 아는 이가 몇 없는 비밀 통로를 제때 찾아내지 못한다면 쫓겨난 대리국 국왕의 처가 은밀히 행하고 있는 주술을 막아낼 수 없을텐데 말이지요. 대리국 국왕의 목숨은 별로 중히 여기시지 않으시나 봅니다?"


성을 내는 가천일의 말을 태연히 받아치는 아망. 그의 말대로 대리국 왕실 지하에서 펼쳐지고 있는 사악한 주술은 내부인의 도움 없이는 결코 막아내지 못할 것이다. 자신과 아들을 내친 지아비에게 품은 한없이 부정적인 마음은 가볍게 여기면 안될 것이다. 무려 사사로운 감정 하나 때문에 한 나라의 명운을 책임지고 있는 국왕의 목숨을 앗아가기 위해 온갖 금지된 술법들을 시전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 배고파 죽겠네 진짜. 먹으면서 좀 다니면 안되요? 잘 먹어야 저도 다른 아이들처럼..."


볼을 크게 부풀리며 다시 한 번 푸념을 늘어놓으려던 반웅은 말을 마치지 못하였다.


"멈춰라! 신분을 밝히고 제자리에 멈춰서지 않으면 적으로 간주하겠다!"


반웅 일행 앞에 자신의 몸에 맞지 않는 갑옷과 투구를 쓴 소년 병졸이 느닷없이 나타나 그들을 멈춰 세운다.


'젠장...어쩐지 너무 여정이 순탄하다 했어. 이쯤에서 이런 사달이 벌어질 것을 진즉 예상했어야 하는데...'


속으로 혀를 차며 소년 병졸의 말에 따라 늪지대 한복판에서 멈춰선 반웅.


무탈하게 대리국으로 가는 건 어려울 전망이다.


작가의말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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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대리국을 향한 여정 (2) 22.08.26 35 0 9쪽
59 대리국을 향한 여정 (1) 22.08.23 26 0 9쪽
58 봉소, 대월, 그리고 주술 (3) 22.08.21 27 0 10쪽
» 봉소, 대월, 그리고 주술 (2) 22.08.18 30 0 9쪽
56 봉소, 대월, 그리고 주술 (1) 22.08.17 34 0 9쪽
55 전쟁의 서막 (3) 22.08.15 36 0 9쪽
54 전쟁의 서막 (2) 22.08.09 34 0 9쪽
53 전쟁의 서막 (1) 22.08.07 38 1 9쪽
52 불협화음 (3) 22.08.04 41 1 10쪽
51 불협화음 (2) 22.08.02 33 1 9쪽
50 불협화음 (1) 22.07.31 39 1 10쪽
49 북룡폭포에서 벌어진 접전 (3) 22.07.28 51 1 9쪽
48 북룡폭포에서 벌어진 접전 (2) 22.07.26 40 1 9쪽
47 북룡폭포에서 벌어진 접전 (1) 22.07.24 44 1 9쪽
46 적야 노인의 친정댁 (2) 22.07.21 44 1 10쪽
45 적야 노인의 친정댁 (1) 22.07.19 43 1 9쪽
44 망각행승 (2) 22.07.17 45 1 10쪽
43 망각행승 (1) 22.07.14 57 1 10쪽
42 북란성을 떠난 이들 22.07.12 55 1 10쪽
41 진실을 찾아서 (3) 22.07.10 52 1 10쪽
40 진실을 찾아서 (2) 22.07.07 57 1 10쪽
39 진실을 찾아서 (1) 22.07.06 67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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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22.05.25 261 3 9쪽
7 비동의 회의 - 억취소악 (憶吹簫樂) +1 22.05.23 301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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