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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사비칰의 이야기

남만야수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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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사비칰
작품등록일 :
2022.05.11 22:17
최근연재일 :
2022.08.31 08:38
연재수 :
6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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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72
추천수 :
139
글자수 :
263,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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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21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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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봉소, 대월, 그리고 주술 (3)

DUMMY

'명장(名將)이란 대체 무엇일지...천명(天命)이란 무엇일지...이번 전쟁에서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 기필코 당신을 끌어내리고 말겠습니다, 아버지. 당신의 처분은 어머님께 맡길 생각이지만 그 앞까지 당도하는 칼날은 제가 될 것 입니다.'


진지 막사 안에서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리 단양. 그가 대월국의 국왕이자 자신의 아버지인 리 인종에게 쫓겨나 대리국에 몸을 의탁한지 벌써 3년의 세월이 흘렀다. 정신없이 흘러간 시간들이지만 왕족으로서 신분을 감추고 대리국에 충정을 맹세하고 쉴틈없이 공적을 쌓다보니 어느덧 삼천 군사를 호령하는 장군이 되었으니 인생만사 새옹지마 아니겠는가. 물론 방심은 금물이다.


'어머니...당신의 주술이 완성되어야 비로소 편히 잠들 수 있으시겠지요...그 비원을 이루어드리기 위하여 여기까지 달려왔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비록 첩의 자식이라 하여도 왕가의 핏줄이 흐르는 자신을 그리도 무정히 죽이려 들었던 아버지 리 인종의 눈빛이 불현듯 떠오른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얼마든지 비정해질 수 있는 것이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대월국을 나설 무렵 밤낮 가리지 않고 눈을 붉히며 달려들었던 자객들의 모습과 더불어 별궁까지 침투한 그의 수하들이 음식에 몰래 넣어두었던 온갖 독극물에 시달렸던 기억들을 가슴 속 깊이 새겨둔 리 단양은 결코 자신의 아버지를 용서할 생각이 없다. 적어도 이번 생에서는 무리다.


'그 와중에도 자신의 손은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 수하들만 보내시다니. 정말 비겁하기 짝이 없습니다. 한 나라의 국왕으로서 부끄럽지 않으십니까? 사내라면 모름지기 직접 나서야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삼 년전에 벌어졌던 일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두 손을 강하게 쥐는 리 단양. 무릇 짐승들조차 자식 새끼들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걸고 막아서거늘. 대월국에 100년 만에 출현한 현명한 왕이라 불리우는 리 인종은 오히려 자신의 혈육에게 서늘한 칼날을 들이밀었다. 그 이유는 단 한 번도 직접적으로 일러준 적이 없지만 쉽게 유추할 수는 있다.


'결국 그 갓난아이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서 그런 선택을 하셨겠지요. 그저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으셨다면 이런 사달이 나지는 않았을 것을. 이 모든 것은 당신이 자초한 일입니다.'


정비(正妃)에게서 마침내 아이가 태어났기 때문인걸까. 만약 그러한 문제라면 애당초 권력은 커녕 왕위에도 관심이 없었기에 그저 세자의 자리에서 폐위시키면 그만이었다. 첩의 자식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기에 어쩔 수 없이 도맡은 직위가 아니던가. 어릴적부터 산과 바람을 벗 삼아 풍류를 읊고 자유롭게 세상 속에서 표류하고 싶었기에 얼마든지 내려놓을 수 있었던 족쇄 때문에 오히려 목숨을 잃을뻔 하다니,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하, 이미 지난 일 때문에 이리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다니. 나도 아직 갈 길이 멀구나. 이번 전쟁만 치르고 나면 완전히 불가에 귀의할 생각이었건만...이 심란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다면 이후에도 결코 열반에 이르지 못하겠지. 더욱 조심해야...'


"장군, 수상한 무리들을 붙잡아 왔습니다! 노인 한 명, 중년인 한 명, 소년 한 명이 각각 검은 물소를 타고 이동하던 모양인데 대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행색으로 보아 늪지대를 통과하여 이곳까지 당도한 촌부들이 분명하나 그 와중에 어떤 짐승들에게도 습격당한 흔적이 없기에 이상하기 짝이 없습니다. 직접 살펴보셔야만 할 것 같습니다."


대월국과 대리국 사이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산맥이자 운남 지역까지도 끝없이 이어지는 천연지물이자 요새인 북룡산맥. 비록 오르기에 힘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리지만 상대적으로 위험요소도 적고 기후도 온화한 탓에 이쪽을 마다하고 서쪽으로 길게 이어지는 육악늪을 따라 이동하는 이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적국의 허를 찌르기 위하여 은밀히 작전을 수행하고 있는 자신과 병사들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런곳에 갑작스레 사람이 나타나다니. 미심쩍은 냄새가 난다.


============================


"아이고, 장군! 이렇게 만나게 되어 어찌나 반가운지 모르겠습니다! 큰 돈도 벌고 상인으로서 마땅히 지녀야할 덕목들을 길러주기 위하여 아들내미와 손주놈을 데리고 행상에 나섰는데 중간에 도적 무리를 만나 본국에서 가져온 모든 물건들을 모조리 내주고선 목숨만을 부지한채 이리 볼품없이 귀국하고 있습니다. 부디 도와주십시오!"


뻔뻔하기 그지없게 대리국 사람인냥 억양과 말투마저 변조하여 너스레를 떨어대는 가천일. 무공을 모조리 갈무리하고 평범한 상인의 모습을 연기하며 바닥에 넙죽 업드려 절을 하고 있는 그의 모습에는 오랜 세월 남만 각지에서 살아오면서 다양한 민족들의 말과 문화를 익혀온 백전노장의 지혜가 베어있다.


"喝! 어찌 대리국의 국민이 군세를 이끄는 장군 앞에서 허락 없이 입을 연다는 말이냐! 기필코 군법으로 다스려야!..."


"그쯤 해두거라. 여기서부턴 내가 직접 심문할 것이니 나가보거라."


젊은 병사의 말을 가로막고 되레 밖으로 내보내려하는 리 단양. 그의 갑작스런 대응에 순간적으로 당황하여 입만 벌리고 있던 병사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선 천천히 막사 밖으로 나선다.


"소개가 늦었습니다. 대리국의 병사들을 이끌고 대월국으로 남하하고 있는 리 단양이라 합니다. 임시로 장군직을 맡고 있지요. 이 막사 안에는 저만 있으니 편하게 계셔도 됩니다."


병사가 밖으로 나가자 정중히 예를 갖추어 가천일과 일행에게 인사를 하는 리 단양.


"그...장군께서 이리 미천한 필부와 혈육들에게 친절을 베풀어 주시니 그 은혜에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얘들아, 뭣들 하는게냐! 어서 리 장군께 다함께 절을 올리자꾸나!"


어디선가 실수를 하였는지 정체가 탄로난 것처럼 보이는 상황 속에서도 침착하게 말을 이어가면서 눈으로는 반웅과 아망에게 함께 절을 할 것을 권하는 가천일. 절을 한 상태에서도 눈앞의 리 단양 몰래 안광을 뿜어내면서 연신 바닥을 흘겨보는 것으로 보아 이대로 자연스레 넘길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듯 하다.


"리, 리 장군께 인사드립니다! 늪지대에서 구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장군!"


거의 동시에 바닥에서 쿵 소리가 날 정도로 빠르게 머리를 조아린 반웅과 아망. 만약 머리에 쓴 죽립이 흘러내렸다면 그 아래에 감춰진 아망의 민머리를 보고 승려라는 신분을 알아차렸을 지도 모르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지만 정작 당사자는 아무런 생각도 없는 모양이다. 옆 쪽으로 눈을 쏘아붙이며 그를 바라보는 반웅만 어딘가 불안해 보인다.


넙죽 업드린 세 사람의 모습에도 리 단양의 눈빛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지만 말이다. 차분한 눈빛으로 이들을 찬찬히 살펴보던 리 단양의 시선이 제법 오랜 시간 동안 바닥에 넙죽 업드린 가천일의 뒤통수에 머물다 갑작스레 웃음을 터트린다.


"푸..푸하하하하! 대체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속여넘기시려고 하셨습니까? 제가 아무리 대리국의 왕실에서 지난 삼년 동안 생활하였다고 한들 어찌 대월국의 왕실과 밀접한 연을 맺고 계신 남만의 자랑이자 무력의 상징인 십괴중 한 분을 잊겠습니까. 오랜만에 뵙습니다, 가천일 노야."


"허허,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저 지나가는 무지렁이 농부일 뿐인것을. 어떤 연유로 고명하신 십괴중 한 분으로 오해를 받았는지 모르나..."


이름까지 밝혀진 마당에도 여전히 연기를 이어나가는 가천일. 이쯤되면 아둔하게 보일 지경이다. 자신의 정체를 밝히기를 극도로 꺼리는 그의 모습에 이들 사이에 무언가 비밀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내 이어지는 리 단양의 말을 통해 낱낱이 밝혀졌지만 말이다.


"사부...사부님께서 이리 농을 하시니 저도 어느 정도는 장단에 맞추어 드리려고 하였습니다. 허나 이 정도로 허술하게 준비를 하시면 저 또한 그 장난에 어울려 드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대체 무슨 연유로 이곳에 오셨습니까?"


"아미타불, 결국 들킨 모양이로군요. 본인만 믿으면 된다고 하시더니, 결국 이 사달이..."


"빌어먹을. 못 알아본 척이라도 해주면 어디 덧나느냐? 네놈은 어찌 이리도 눈치가 없는게냐!"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묻는 리 단양의 말에 결국 자리를 털고 일어나 옷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내는 아망과 체념한 듯 일어서서 고개만 젓고 있는 가천일. 천천히 일어나 눈앞의 남자를 천천히 바라보는 반웅의 눈빛 또한 심상치 않다.


사부라니.


리 단양의 입에서 흘러나온 사부라는 단어가 반웅의 가슴을 간지럽힌 모양이다.


'그럼 저 사람은...내게는 사형(師兄)이 되는건가?'


오랫동안 강호에서는 탄지공의 대가로, 남만에서는 기이한 십괴 중 한 명으로서 이름을 떨치던 이지노괴 가천일에게 제자 한 둘 있어도 이상하지 않지만 이런 식으로 맞닥뜨리게 될 줄이야.


반웅은 편하게 흙바닥에 앉은 뒤 처음으로 조우하게 된 자신의 사형이라는 남자와 사부의 대화에 온 신경을 집중하였다.


작가의말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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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봉소 마을로 모여드는 이들 (1) 22.08.31 44 0 10쪽
61 대리국을 향한 여정 (3) 22.08.28 29 0 9쪽
60 대리국을 향한 여정 (2) 22.08.26 35 0 9쪽
59 대리국을 향한 여정 (1) 22.08.23 25 0 9쪽
» 봉소, 대월, 그리고 주술 (3) 22.08.21 27 0 10쪽
57 봉소, 대월, 그리고 주술 (2) 22.08.18 29 0 9쪽
56 봉소, 대월, 그리고 주술 (1) 22.08.17 34 0 9쪽
55 전쟁의 서막 (3) 22.08.15 36 0 9쪽
54 전쟁의 서막 (2) 22.08.09 34 0 9쪽
53 전쟁의 서막 (1) 22.08.07 38 1 9쪽
52 불협화음 (3) 22.08.04 41 1 10쪽
51 불협화음 (2) 22.08.02 33 1 9쪽
50 불협화음 (1) 22.07.31 39 1 10쪽
49 북룡폭포에서 벌어진 접전 (3) 22.07.28 50 1 9쪽
48 북룡폭포에서 벌어진 접전 (2) 22.07.26 39 1 9쪽
47 북룡폭포에서 벌어진 접전 (1) 22.07.24 44 1 9쪽
46 적야 노인의 친정댁 (2) 22.07.21 44 1 10쪽
45 적야 노인의 친정댁 (1) 22.07.19 43 1 9쪽
44 망각행승 (2) 22.07.17 45 1 10쪽
43 망각행승 (1) 22.07.14 57 1 10쪽
42 북란성을 떠난 이들 22.07.12 55 1 10쪽
41 진실을 찾아서 (3) 22.07.10 52 1 10쪽
40 진실을 찾아서 (2) 22.07.07 57 1 10쪽
39 진실을 찾아서 (1) 22.07.06 67 1 9쪽
38 거검문의 진짜 소문주 (2) 22.07.05 76 1 10쪽
37 거검문의 진짜 소문주 (1) +2 22.07.04 77 1 10쪽
36 여인을 설득하는 방법 (2) 22.06.29 87 1 9쪽
35 여인을 설득하는 방법 (1) 22.06.28 88 3 10쪽
34 야수신궁의 5대 단체 22.06.28 98 2 10쪽
33 세 번째 시험 - 뜻밖의 기연과 새로운 약조 22.06.27 109 1 10쪽
32 세 번째 시험 - 호랑이 가죽에 남겨진 실마리 22.06.23 90 1 10쪽
31 세 번째 시험 - 다시 도채밀림으로 22.06.22 89 1 10쪽
30 하니 마을의 준예(哈尼儁乂) (2) 22.06.19 100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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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다시 만난 스승과 제자 (3) 22.06.19 90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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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두 번째 시련 - 혼원야수공의 정수 (3) 22.06.19 100 1 9쪽
21 두 번째 시련 - 혼원야수공의 정수 (2) 22.06.19 94 1 10쪽
20 두 번째 시련 - 혼원야수공의 정수 (1) 22.06.19 105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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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무진이라는 사내 (3) 22.06.01 164 3 10쪽
12 무진이라는 사내 (2) 22.06.01 175 2 10쪽
11 무진이라는 사내 (1) 22.05.31 201 3 9쪽
10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3) +1 22.05.28 206 2 10쪽
9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2) +1 22.05.27 234 2 9쪽
8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22.05.25 260 3 9쪽
7 비동의 회의 - 억취소악 (憶吹簫樂) +1 22.05.23 301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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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영웅협객(英雄俠客) +4 22.05.18 325 7 10쪽
4 수련과 생사기로(生死岐路) 22.05.16 402 11 9쪽
3 야수신궁의 역사 22.05.13 466 1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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