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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사비칰의 이야기

남만야수왕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와사비칰
작품등록일 :
2022.05.11 22:17
최근연재일 :
2022.08.31 08:38
연재수 :
6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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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68
추천수 :
139
글자수 :
263,461

작성
22.08.07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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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전쟁의 서막 (1)

DUMMY

새들만이 부지런히 지저귀는 이른 새벽부터 봉소 마을 어귀를 떠나는 이들이 있다.


'분명 망각행승이 봉소 마을로 돌아갔다고 하였으니 멀리 가지는 못 하였을 터...허나 방향을 잘못 잡는다면 더욱 멀어지고 말 것이다. 그가 남겼을 흔적을 어떻게든 찾아야만 하겠구나. 아란의 극음지체는 천년화리의 내단과 백화단을 복용하였으니 이제 몸 속의 기운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면 온전히 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터. 이 또한 아해의 천운이겠구나. 반웅은...'


이른 시각부터 아란을 업은 채 묵묵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반웅과 그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는 가천일이다.


'녀석, 충분히 욕심을 부릴 수도 있는 사안이었건만! 너무도 쉽게 양보하였구나. 그릇이 크다고 해야 할지, 욕심이 너무 없다고 보아야 할지...'


본래라면 자신이 익힌 채기법 때문에 음기도 양기도 아닌 애매모호한 기운만을 쌓아나가고 있는 반웅에게 가뭄의 단비처럼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비약들이었지만 한시가 급한 상황 속에서 결국 아란이 복용하게 되었다.


무공을 익힌 사람에게는 비약적인 내공 증진을 이루어주는 놀라운 효용의 영약들을 오직 그녀의 극음지체를 치료하기 위하여 사용하게 되었으니 조금 아쉬워하는 기색을 보일 법도 하다.


중원 무림은 물론 주변 국가들로부터 온갖 영약을 긁어모으고 있는 무림맹과 구파일방이라면 모를까, 일반인들은 이들을 구입하기는 커녕 구경하는 것조차 한 평생 있을까 말까한 물건들이다. 그러한 효능을 지닌 영약들을 찾기 더욱 어려운 남만에서 그 가치를 매기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 것이다.


"할아버지, 뭘 그리 뚫어져라 보고 계세요? 제 잘생긴 얼굴 처음 보시는 것도 아니고. 자꾸 쳐다보시니까 부끄럽잖아요!"


미안함과 대견함이 뒤섞인 가천일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천일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고개를 갸우뚱 거리고 있는 반웅. 그가 양보한 물건들이 어떠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아무리 나이가 어리더라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허나 본신의 내공 수준을 끌어올리기 보다는 한 아녀자의 목숨을 구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것에 전혀 주저함이 없던 그의 모습은 무(武)를 숭상하며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한 평생을 바치는 무도가에게는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이라 할 수 있으리라. 그 선한 성품으로 보아 오히려 타인의 삶을 구제하는데 힘쓰는 의원으로 살아가는 것이 반웅에게 더욱 걸맞을 지도 모른다.


'거야휘 형님께 이 아해의 미래에 대하여 조금 더 진지하게 논할 필요가 있겠구나. 탐욕으로 일그러진 강호에서 살아남기에는 그러한 성정이 되레 발목을 잡을 것이 눈에 훤하구나. 게다가 괴상한 사술로 이도저도 아닌 기운만 쌓이게 되어버린 네놈의 단전 때문에 남들보다 몇 배는 더 노력하고 영약을 입에 달고 살아야 겨우 상승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게 되었거늘...이쯤되면 무공을 익히지 말라는 하늘의...'


"아, 할아버지! 빨리 여정길에 오르지 않으면 곧 해가 뜰거에요! 더워 죽을거라구요! 기껏 일찍 일어났는데...후, 저는 먼저 갑니다!"


이지노괴 가천일이 어떠한 생각으로 그를 안쓰럽게 쳐다보고 있는지 전혀 알아채지 못한 반웅. 그가 밝은 목소리로 앞서나가며 노인의 발걸음을 재촉하자 결국 가천일은 마지못해 헛웃음을 들이키며 길을 나선다.


'그나저나 일 장 밖에서 계속 쫓아오는 녀석은 대체 어떤 놈인지 모르겠구나. 적절한 시기에 붙잡아 경을 쳐야겠구나.'


그들 뒤로 낯선 인기척이 따라 붙었다는 것을 눈치챈 가천일. 성공적으로 미행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을 추격자를 조만간 손봐줄 생각이다.


그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조금 다른 선택을 하였겠지만 말이다.


---------------


'하, 이건 또 뭐야?'


어제 난생 처음 만나게 되었던 십괴와의 만남을 회상하면서 아침을 먹기 위하여 객잔 처소의 방문을 거세게 열어재낀 간소소. 손가락이 두 개 밖에 남지 않았던 노괴가 뿜어내던 살기가 문득 생각나 조심스레 주변을 살핀다. 반고르를 제압한 반웅 또한 이대로 성장한다면 그녀에게 언젠가 위해를 가할 지도 모르니 조심하여야만 하리라. 다행히 그들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지만, 바닥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낯선 천 조가리가 눈에 박힌다. 눈을 여러 차례 깜박이던 간소소가 이윽고 눈을 가늘게 뜨고 주변을 연신 살피다가 어딘가 익숙해 보이는 물건을 허겁지겁 주워든다.


[대리(大理). 대월(大越). 침공(侵攻). 증거(證據). 필요(必要). - 티엔(天)]


'이게 대체 무슨...'


눈을 크게 뜨고선 그 안에 적힌 내용을 거듭 확인하는 간소소. 간밤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갑작스레 대월국에 너무도 중요한 내용을 티엔에게 전달 받고선 당황하고 말았다. 아직 완전히 깨지 않은 정신으로 이를 온전히 이해하는데 조금 시간이 걸려버린 것이다.


'티엔, 넌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중요한 내용을 바닥에 내팽겨치고 사라진거야! 만약 다른 사람이 이걸 읽었으면 어쩌려고! 게다가 갑자기 증거가 필요하다니!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필요한 건지 말을 해줘야...'


속으로 티엔을 욕하려다가 멈칫하는 간소소. 만약 이것이 정녕 사실이라면 티엔이 자신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줄 수 없었던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녀의 성격을 고려하면 아마 타인에게 맡기기 보단 직접 야수신궁으로 복귀하여 야수왕 무단에게 보고할 생각일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맡겨진 일은 너무도 막중한 일이다. 한시라도 지체할 겨를이 없다. 전쟁을 막기 위해서. 하다못해 그 피해를 최소화 시키기 위해서라도.


'아이들을 깨워야만 해. 지금 당장 대리국이 침공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나를 믿고 돌아간 티엔을 도와 다른 이들을 설득할 수 없다. 그들의 공세에 대비하여 주요 거점들에도 연락을 해야 하고...으아! 해야 되는 일이 너무 많잖아! 빌어먹을...'


눈을 비비면서 부리나케 아이들의 처소로 향하는 간소소. 그녀의 발걸음이 그 어느 때보다 다급해 보이지만 이미 해가 중천에 떠있다.


서둘러야만 한다.


---------------------


밤을 새워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본신의 내공은 물론 진기마저 소모하면서 계속 야수신궁을 향해 남하하고 있는 티엔. 베일에 쌓여 있는 비궁(秘宮)을 자유롭게 드나들수 있는 사람은 감독관들 중에서도 그녀와 무진을 제외하면 강휘 밖에 없다. 이는 절정 수준에 이른 실력자들 중에서도 야수왕 무단의 인정을 받은 이들만이 그 성역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기에 평소에는 온갖 진법과 기관진식에 뒤덮여 있기 때문이리라.


그렇기에 비궁이 송금림 동쪽 끝자락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더라도 평범한 이는 절대 다다를 수 없는 곳이다. 허나 티엔이 이 모든 것들이 온전히 발동하고 있는 상태에서도 이들을 모조리 파훼하고 그 중심부로 향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녀가 무단의 직속 제자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태극팔괘의 정수는 물론, 야수왕 무단이 즐겨읽는 구장산술을 응용하여 짠 기괴한 진식들을 이리도 쉽게 꿰뚫어 볼 수 없었을 것이다.


'후, 이게 아마 진을 유지하는 핵심이겠지. 다음에는 더 복잡한 녀석으로 바꾸시라고 일러드려야겠어.'


마지막 진법을 지탱하는 자그마한 돌덩이 하나를 옮기자 그녀의 눈앞에 펼쳐졌던 초목이 울거진 숲 한 켠이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그 뒤에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초연히 나타난 조그마한 우물. 그 안으로 티엔이 몸을 던진다.


메마른 우물 바닥에 발을 딛고 손으로 사방의 어둡고 서늘한 석벽을 짚어가면서 걸음을 옮기는 티엔. 빛 한줌 들어오지 않는 이 긴 통로 끝에 오직 선택 받은 이들만이 드나들 수 있는 야수신궁의 심장부가 나타나리라.


허나 이 어두운 공간 속에 그녀 혼자 당도한 것이 아닌 모양이다. 그녀가 미처 눈치채지 못한 인기척이 그녀의 뒤에서 느껴진다.


당황한 티엔이 곧바로 품에서 비수를 날리지만, 침입자는 암습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너무도 쉽게 이를 쳐낸다.


"거기서 멈춰! 정체를 밝히지 않으면 사생결단을 내야만 할 것이다! 네놈은 성역에 발을 들였다!"


"흠...여전히 성격이 급하군. 네게 이 통로를 사용할 때 반드시 조심해야 하는 것이 있다고 일러주었거늘...대체 언제쯤 정상적인 방법으로 야수신궁을 드나들 생각이냐? 정해진 절차대로 따르지 않으면..."


낮게 울려퍼지는 남자의 굵직한 음성에 티엔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그녀와 함께 동고동락한 친우이자 사제(師弟).


항상 서로 티격태격하지만 그 실력만은 인정해온 남자.


흑철웅 무리를 사냥하느라 무려 몇 달을 봉소에서 허비한 남자.


무진이 이곳에 나타난 것이다.


작가의말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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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봉소 마을로 모여드는 이들 (1) 22.08.31 44 0 10쪽
61 대리국을 향한 여정 (3) 22.08.28 29 0 9쪽
60 대리국을 향한 여정 (2) 22.08.26 35 0 9쪽
59 대리국을 향한 여정 (1) 22.08.23 25 0 9쪽
58 봉소, 대월, 그리고 주술 (3) 22.08.21 26 0 10쪽
57 봉소, 대월, 그리고 주술 (2) 22.08.18 29 0 9쪽
56 봉소, 대월, 그리고 주술 (1) 22.08.17 34 0 9쪽
55 전쟁의 서막 (3) 22.08.15 36 0 9쪽
54 전쟁의 서막 (2) 22.08.09 34 0 9쪽
» 전쟁의 서막 (1) 22.08.07 38 1 9쪽
52 불협화음 (3) 22.08.04 41 1 10쪽
51 불협화음 (2) 22.08.02 33 1 9쪽
50 불협화음 (1) 22.07.31 39 1 10쪽
49 북룡폭포에서 벌어진 접전 (3) 22.07.28 50 1 9쪽
48 북룡폭포에서 벌어진 접전 (2) 22.07.26 39 1 9쪽
47 북룡폭포에서 벌어진 접전 (1) 22.07.24 44 1 9쪽
46 적야 노인의 친정댁 (2) 22.07.21 44 1 10쪽
45 적야 노인의 친정댁 (1) 22.07.19 43 1 9쪽
44 망각행승 (2) 22.07.17 45 1 10쪽
43 망각행승 (1) 22.07.14 57 1 10쪽
42 북란성을 떠난 이들 22.07.12 55 1 10쪽
41 진실을 찾아서 (3) 22.07.10 51 1 10쪽
40 진실을 찾아서 (2) 22.07.07 57 1 10쪽
39 진실을 찾아서 (1) 22.07.06 67 1 9쪽
38 거검문의 진짜 소문주 (2) 22.07.05 76 1 10쪽
37 거검문의 진짜 소문주 (1) +2 22.07.04 77 1 10쪽
36 여인을 설득하는 방법 (2) 22.06.29 87 1 9쪽
35 여인을 설득하는 방법 (1) 22.06.28 87 3 10쪽
34 야수신궁의 5대 단체 22.06.28 98 2 10쪽
33 세 번째 시험 - 뜻밖의 기연과 새로운 약조 22.06.27 109 1 10쪽
32 세 번째 시험 - 호랑이 가죽에 남겨진 실마리 22.06.23 90 1 10쪽
31 세 번째 시험 - 다시 도채밀림으로 22.06.22 89 1 10쪽
30 하니 마을의 준예(哈尼儁乂) (2) 22.06.19 100 3 9쪽
29 하니 마을의 준예(哈尼儁乂) (1) 22.06.19 91 1 9쪽
28 다시 만난 스승과 제자 (3) 22.06.19 90 1 10쪽
27 다시 만난 스승과 제자 (2) 22.06.19 91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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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운귀고원(云贵高原)을 오르는 사내 (3) +1 22.06.19 100 1 9쪽
24 운귀고원(云贵高原)을 오르는 사내 (2) +3 22.06.19 106 1 10쪽
23 운귀고원(云贵高原)을 오르는 사내 (1) 22.06.19 96 1 9쪽
22 두 번째 시련 - 혼원야수공의 정수 (3) 22.06.19 100 1 9쪽
21 두 번째 시련 - 혼원야수공의 정수 (2) 22.06.19 94 1 10쪽
20 두 번째 시련 - 혼원야수공의 정수 (1) 22.06.19 105 1 10쪽
19 운귀고원(云贵高原)으로 보내진 아이 (4) 22.06.11 132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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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무진이라는 사내 (3) 22.06.01 164 3 10쪽
12 무진이라는 사내 (2) 22.06.01 175 2 10쪽
11 무진이라는 사내 (1) 22.05.31 201 3 9쪽
10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3) +1 22.05.28 206 2 10쪽
9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2) +1 22.05.27 234 2 9쪽
8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22.05.25 260 3 9쪽
7 비동의 회의 - 억취소악 (憶吹簫樂) +1 22.05.23 301 3 9쪽
6 첫 비무 - 선발제인(先發制人) +2 22.05.20 317 6 11쪽
5 영웅협객(英雄俠客) +4 22.05.18 325 7 10쪽
4 수련과 생사기로(生死岐路) 22.05.16 402 11 9쪽
3 야수신궁의 역사 22.05.13 466 13 9쪽
2 여정의 시작 +2 22.05.11 688 18 11쪽
1 프롤로그 +4 22.05.11 666 18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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