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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사비칰의 이야기

남만야수왕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와사비칰
작품등록일 :
2022.05.11 22:17
최근연재일 :
2022.08.31 08:38
연재수 :
6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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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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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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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9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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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다시 만난 스승과 제자 (2)

DUMMY

‘이건 이제 글렀다. 단전을 이 꼴로 만들다니.’


하필 은월랑의 기운을 흡수하여 심법을 완성시키다니. 무진은 변질된 반웅의 단전에 한탄을 금치 못하였다.


음기로 가득한 은월랑의 기운으로 심법을 완성할 경우 여성은 더욱 강한 음기를 지니게 되지만, 남성은 음기와 양기가 섞여 이도저도 아닌 기운으로 변하게 된다. 이론상 음기와 양기 모두 흡수할 수 있지만, 그 효율이 극도로 낮아 영약이 넘쳐나는 명문세가의 자제가 아니라면 밑빠진 독을 채우는 것보다 어려우리라.


대체 누가 이런 고약한 짓을 벌인 것일까. 고원 농장에서 몰래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는 사람을 아무리 떠올려 보아도 결국 한 명 밖에 없다.


‘운귀가의 거야휘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벌인거지?’


무진은 긴 세월 동안 기이한 궤적만 걸어온 거야휘의 기행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무리 짐승을 인간보다 아끼는 노인이라지만 한 아이의 미래를 이리 망쳐놓다니. 물론 실상은 반웅이 익힌 음양조화신공 때문에 이런 사태가 벌어졌을 뿐이지만 말이다.


“반웅. 본래라면 네게 만야환상대법을 완성시키는 방법을 일러주려 하였으나, 그러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그러니 이 영약이라도 받아라. 내가 당장 해줄 수 있는 건 이 정도 밖에 없다.”


무진은 두 노괴로부터 내기를 통해 얻은 주과라도 반웅에게 주어 조금이나마 내공 증진을 도울 생각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신의 죄책감을 이겨낼 수 없으리라.


“사부님, 하늘과 같은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허나 이리도 먼 운귀 고원까지 직접 행차하신 연유가 진정 그것 뿐입니까?”


호들갑을 떨며 연신 고개를 숙이는 반웅의 표정이 어딘가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주과가 영약이기는 해도 고작 3년치 내공을 올려줄 뿐이다. 수련동에서는 8명의 사부에게 직접 무공을 전수 받으며 실력을 쌓을 수 있고, 그 과정을 모두 거친 이후에는 정식으로 야수신궁의 다양한 조직에 들어가 온갖 비약과 비술을 지원 받게 되니 당연히 그에 비할 수는 없다.


‘설마 주과 한 알로 무진 사부는 자신의 과오를 퉁치시려는 건가. 그건 계산이 맞지 않는데...’


“처음에는 수련동에서 퇴출 당한 것이 딱하여 무공을 전수해주고 추후 수련동으로 다시 돌아올 방도를 일러주려 하였으나, 네 단전의 상태로 보아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오랜 시간 각고의 노력과 천운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송금림으로 돌아오기는 커녕 일류 고수조차 될 수 없을 터. 그럼에도 내 제안을 들어보겠느냐?”


진지한 무진의 표정으로 미루어 보아 수련동으로 직접 데려가지는 못하여도 돌아갈 방도는 있는 모양이다. 반웅은 희박한 가능성이더라도 기회를 잡기 위해 고개를 끄덕였다.


“내년 봄에 열리는 마지막 시험은 남만 전역에 존재하는 수많은 수련동에서 무공을 익힌 아이들을 초빙하여 비무 대회를 열게 된다. 참가 제한 자체는 없으니, 네가 만약 여기서 두각을 드러낸다면 야수신궁의 최정예 고수들의 제자가 될 수 있다.”


결국 내년 열리는 비무 대회에서 수련동 출신 아이들을 이겨보라는 얘기다. 반웅은 무진의 말도 안되는 제안에 헛웃음만 터져나왔다. 각종 비술을 익히고 영약을 지원 받는 아이들을 대체 어떻게 이길 수 있겠는가. 아버지를 직접 찾아 나서기 위해서 수련동에서 고수가 되고 싶었지만 역으로 고수가 되어야 수련동에 들어갈 수 있다니. 주객전도(主客顚倒)가 따로 없다.


“그래, 내 제안이 얼마나 허황되게 들리는지 잘 안다. 그러니 네게 죽기 살기로 노력할 계기를 만들어 주도록 하마.”


무진은 아무리 희박한 가능성에 불과하더라도 반웅에게 불씨를 지펴주고 싶었다. 맹웅과의 대련에서 보여준 철옹성 같은 의지로 수련한다면 한 명 정도는 이길 수 있지 않겠는가. 이대로 주저앉는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막대한 지원이 필요한 반웅의 단전으로는 격차만 더욱 벌어지고 말 것이다. 단기간 안에 성과를 내야만 한다.


“네가 수련동으로 돌아오는데 성공한다면 너와 네 의형제들의 단전을 폐하지 않겠다.”


무진의 청천벽력 같은 말에 반웅은 다리의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래. 갑자기 찾아와 수련동으로 데려간다니, 내게 그런 형편 좋은 일이 벌어질 리가 없지.’


반웅은 아둔하게 행운만을 바라던 자신의 얕은 생각을 비난하며 무진의 수련에 임하고 있다. 그의 성취에 40명의 아이들의 목숨과도 같은 단전이 달려있으니 아무리 무리한 요구더라도 따를 수밖에 없다.


“어디서 잡생각을 하느냐! 허리는 꼿꼿하게 펴고 균형을 유지하면서 움직여야만 한다!”


양쪽 어깨와 무릎 위에 각각 넙대대한 돌을 올려놓고 오리걸음으로 슬금슬금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반웅. 무진의 지독한 수련법을 따르는 중이다.


‘대체 왜 외문기공을 이렇게까지 단련해야 되는건데? 내공만 많으면 나중에 환골탈태가 일어나 자연스레 무공에 적합한 몸이 되는 게 아니었어?’


이리 무식하게 몸을 혹사시키면서 외공을 수련하는 방법은 그 위험성과 낮은 효율 때문에 사장된 지 오래다. 반웅은 뾰로통한 얼굴을 숨길 생각이 없어 보인다.


“볼까지 부풀린 네놈이 무슨 생각하는지 빤히 보인다. 허나 환골탈태에 이를 자신은 있느냐?”


자신의 얕은 생각이 무진에게 들키자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입만 내미는 반웅.


“거봐라. 네놈 자질로는 수십 년 다른 아이들처럼 수련해도 절대 닿을 수 없다.”


전신을 내공으로 재구성하여 자신이 익힌 무공을 펼치기에 가장 적합한 몸으로 바꾸어주는 환골탈태. 그에 수반하는 무학에 대한 깨달음이 없다면 의미가 없다.


게다가 환골탈태는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게 아니다. 다년간 훈련을 통해 일궈온 근육과 전신 기맥을 이상적인 형태로 변화시킬 뿐. 내공이 충분하여도 결국 적합한 그릇이 갖추어지지 않는다면 평생 이룰 수 없는 경지다.


‘슬슬 노괴들이 올 때가 되었군.’


무진은 아직 10리는 커녕 열 걸음도 옮기지 못한 반웅을 바라보며 조만간 당도하게 될 두 노인의 기척을 감지했다. 아마 오늘도 부상을 입지 않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쳐야 할 것이다.


“히끅. 이노마, 오느른 딱 다섯 초식만 겨뤄보자꾸나!”


“형님, 그만 양보 좀 하시오! 대체 며칠이나 혼자서만 재미 볼 생각이요?”


아침 댓바람부터 술판을 벌였는지 화조주 냄새를 풍기며 혀 짧은 소리를 내는 운귀괴의 거야휘와 이지노괴 가천일. 역시 고산선의(高山善醫)라는 자칭보다 운귀가의(云贵假医)가 어울린다.


“미천한 실력으로 같은 날에 연거푸 두 분과 비무를 치를 수 없어 죄송합니다.”


“히끅. 네놈이 언제 우리 중 한 명이라도 제대로 상대할 수 있었더냐! 그저 몇 초식 버티는 게 기특하여 어울려 준 것을 비무라 드높이는 걸 보니 금새 기고만장해 졌구나!”


“형님, 그러니 오늘은 이 아우가 저 놈의 콧대 좀 눌러주게 해주시오! 그리 거나하게 취했으면 잠이나 자는 게 낫지 않소! 내가 데려온 아해인데 형님만 재미 보는 게 섭하오!”


밀교에서 무력함을 뼈저리게 느꼈던 무진은 절정 고수라는 경지에 만족하여 수련을 게을리 한 자신을 자책하며 그 이후로는 끊임없이 사부의 무공을 연마하고 있었다. 그리해야 자신의 하나 남은 봉알이라도 지킬 수 있지 않겠는가. 전대 교주와 같은 상대를 또 다시 만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비록 반웅을 만나기 위해 운귀 고원을 오르는 동안에는 마땅한 비무 상대를 찾지 못하였지만, 여기서는 무려 두 명의 노괴가 번갈아 가면서 매일 같이 달려들지 않는가. 무림의 삼왕십괴(三王十怪)중 무려 두 괴(怪)가 초식의 우위만을 겨루기 위하여 내공을 배제한 채로 말이다. 무림 고수를 꿈꾸는 이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황이다.


‘앞으로 일주일은 더 머무를 수 있지만, 그 이상은 무리다.’


자신의 무공을 더욱 날카롭게 다듬기 위해선 운귀 고원에 남는 것이 좋겠지만, 무진은 수련동이 위치한 송금림(峰嶔林)에서 그의 지도를 기다리고 있는 다른 아이들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슬슬 끝이 다가오는 그의 징계 기간처럼 모든 일에는 마지막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오늘도 내가 이겼구나! 어서 내 일 초를 받아낼 준비나 하거라!”


"내가 가위바위보만 잘 했더라도! 형님은 정말 너무 하시는 것 같소!"


마치 동네 아이들처럼 가위바위보로 겨룰 사람을 정하다니. 고강한 무력에 비해 아이처럼 순수한 두 노인의 모습에 무진은 나직이 혀를 차며 거야휘와 아침 일과를 치르기 위해 자세를 잡았다.


벌써 스무 번째 치르는 비무지만 무공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한 무진은 마치 처음 맞붙는 것처럼 심장이 뜨겁게 뛰었다.


작가의말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객전도(主客顚倒) - 사물의 전후가 뒤바뀜.


삼왕십괴(三王十怪) - 현경에 이른 삼왕(무림맹주 검왕 적천욱, 마교 창왕 장선일, 야수신궁 궁주 무단)을 비롯해 바로 그 아래 화경에 이른 10인의 괴짜들을 통칭하는 말. 그 중에서 이지노괴와 운귀가의가 무진에게 가르침을 선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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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불협화음 (1) 22.07.31 39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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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북룡폭포에서 벌어진 접전 (2) 22.07.26 39 1 9쪽
47 북룡폭포에서 벌어진 접전 (1) 22.07.24 44 1 9쪽
46 적야 노인의 친정댁 (2) 22.07.21 44 1 10쪽
45 적야 노인의 친정댁 (1) 22.07.19 43 1 9쪽
44 망각행승 (2) 22.07.17 45 1 10쪽
43 망각행승 (1) 22.07.14 57 1 10쪽
42 북란성을 떠난 이들 22.07.12 55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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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거검문의 진짜 소문주 (2) 22.07.05 76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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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세 번째 시험 - 뜻밖의 기연과 새로운 약조 22.06.27 108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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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세 번째 시험 - 다시 도채밀림으로 22.06.22 89 1 10쪽
30 하니 마을의 준예(哈尼儁乂) (2) 22.06.19 100 3 9쪽
29 하니 마을의 준예(哈尼儁乂) (1) 22.06.19 91 1 9쪽
28 다시 만난 스승과 제자 (3) 22.06.19 90 1 10쪽
» 다시 만난 스승과 제자 (2) 22.06.19 91 1 9쪽
26 다시 만난 스승과 제자 (1) 22.06.19 96 1 10쪽
25 운귀고원(云贵高原)을 오르는 사내 (3) +1 22.06.19 100 1 9쪽
24 운귀고원(云贵高原)을 오르는 사내 (2) +3 22.06.19 106 1 10쪽
23 운귀고원(云贵高原)을 오르는 사내 (1) 22.06.19 96 1 9쪽
22 두 번째 시련 - 혼원야수공의 정수 (3) 22.06.19 100 1 9쪽
21 두 번째 시련 - 혼원야수공의 정수 (2) 22.06.19 93 1 10쪽
20 두 번째 시련 - 혼원야수공의 정수 (1) 22.06.19 105 1 10쪽
19 운귀고원(云贵高原)으로 보내진 아이 (4) 22.06.11 132 1 10쪽
18 운귀고원(云贵高原)으로 보내진 아이 (3) 22.06.09 148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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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운귀고원(云贵高原)으로 보내진 아이 (1) 22.06.07 159 1 10쪽
15 무진이라는 사내 (5) +3 22.06.05 159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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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무진이라는 사내 (3) 22.06.01 164 3 10쪽
12 무진이라는 사내 (2) 22.06.01 175 2 10쪽
11 무진이라는 사내 (1) 22.05.31 201 3 9쪽
10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3) +1 22.05.28 206 2 10쪽
9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2) +1 22.05.27 234 2 9쪽
8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22.05.25 260 3 9쪽
7 비동의 회의 - 억취소악 (憶吹簫樂) +1 22.05.23 301 3 9쪽
6 첫 비무 - 선발제인(先發制人) +2 22.05.20 317 6 11쪽
5 영웅협객(英雄俠客) +4 22.05.18 325 7 10쪽
4 수련과 생사기로(生死岐路) 22.05.16 402 11 9쪽
3 야수신궁의 역사 22.05.13 466 13 9쪽
2 여정의 시작 +2 22.05.11 688 18 11쪽
1 프롤로그 +4 22.05.11 666 18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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