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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사비칰의 이야기

남만야수왕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와사비칰
작품등록일 :
2022.05.11 22:17
최근연재일 :
2022.08.31 08:38
연재수 :
62 회
조회수 :
8,284
추천수 :
139
글자수 :
263,461

작성
22.06.19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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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9쪽

하니 마을의 준예(哈尼儁乂) (2)

DUMMY

일각이 지나고 나서야 눈을 뜬 반웅은 자신을 껴안고 있는 낯선 여인의 얼굴에 화들짝 놀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아무리 아리따운 여인이더라도 지척지지(咫尺之地)에서 본 다면 누구라도 놀랄 수밖에 없다.


‘이건 대체...’


“이놈아! 당장 일어나서 내가 네놈의 단전을 폐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말해 보거라!”


호들갑을 떠는 반웅의 모습에 혀를 차는 이지노괴 가천일. 그의 음성에 정신을 차린 반웅은 주점에서 벌어진 사단을 떠올렸다. 비록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하여 행한 일이지만 문책을 피할 수 없다.


‘노괴 앞에서 결국 음양조화신공을 펼치고 말았지. 대체 어떤 변명을 해야...’


후유증으로 낯빛은 물론 전신마저 파래해진 반웅은 가천일이 납득할 만한 핑계 거리를 생각해내려 애를 쓰지만 빠져나갈 구멍은 없다. 그의 부족한 언변으로 가천일을 속이는 건 불가능하다. 막대한 양의 음기를 아란에게서 흡수한 것을 그냥 넘어갈 리가 없다.


“네놈이 대체 무엇을 익힌 건지 샅샅이 털어놓거라! 네놈의 단전이 달려있으니 허튼 수작은 부리지 않는 게 좋을 게다!”


“...누가 들을까 두렵습니다. 지척에 아무도 없는 게 확실합니까?”


“노부가 진즉 장가(庄家)에게 방 근처에는 얼씬도 거리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 이 가천일의 기감을 속일 수 있는 사람은 무림을 통틀어서 열 명 정도 밖에 없으니 괜한 걱정 말거라! 순순히 털어놓지 않으면 네 놈을 불구로 만들어 주마!”


‘젠장. 역시 괴팍한 늙은이 답네. 빠져나갈 방법이 없어.’


결국 반웅은 가천일에게 운귀 고원에서 새벽안개 속에서 낯선 노인을 만나 겪은 일들을 이실직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이야기를 마칠 때까지 조용히 듣고만 있던 가천일이 입을 열었다.


“...네게 일러준 심법의 이름이 무엇이더냐?”


“음양조화신공이라 하셨습니다. 그 이외에는 저도 아는 게 없습니다.”


음양조화신공(陰陽造化神功)이라니. 분명 60년 전에 득세했던 흡성대법과는 달리 도가적인 향기가 가득한 이름이다. 무공의 이름에는 이를 창안한 사람의 마음가짐과 깨달음이 담기기 마련이다. 흡성대법의 대가였던 최흉(最兇)의 사내와는 분명 다른 인물일 것이다.


가천일은 나직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고 하여 반웅이 앞으로 겪어야만 할 험난한 미래가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채기법은 여전히 악명이 자자한 무공이 틀림없다.


“채기법을 익혔다는 사실만으로 무림 공적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것을 정녕 몰랐느냐?”


“...알고 있었습니다. 허나 제게도 사정이...”


고개를 숙인 채 대답하는 반웅. 무공을 배우는 이가 이러한 기본적인 사실을 몰랐을 리가 없다. 반웅이 오히려 모른다고 거짓말을 했다면 가천일은 그의 무공을 단숨에 폐하였을 것이다.


“알고 있었다고? 그렇다면 대체 왜 그런 사술을 익힌 것이냐! 네놈이 그걸 익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네놈은 물론이거니와 무진 녀석도 위험해진다는 걸 몰랐던 게냐!”


“그저 강해지고 싶었습니다! 어차피 한낱 기운일 뿐인데 무엇이 그리 잘못이라는 겁니까! 자연의 기운을 흡수하든 살아있는 짐승이나 인간의 기운을 흡수하든 대체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만물에 깃들어 있는 기(氣)를 조금 나누어 받겠다는데, 그게 그리 잘못입니까!”


고개를 빳빳이 치켜들고 궤변을 늘어놓는 반웅의 눈에 독기가 어려 있다. 얼핏 들으면 이치에 맞는 것 같지만 채기법을 익힌 이들이 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지 제대로 배우지 못한 모양이다.


“이놈이 무얼 잘했다고! 알량한 깨달음으로 지금 만물의 기를 논하는 게냐?”


이지노괴는 눈을 부라리며 당당히 대드는 반웅을 공력을 한껏 끌어올린 뒤 힘으로 짓누른다. 그 천근 같은 공세에 반웅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가 없다.


“만물의 기운이라고 하여 모두 같은 게 아니거늘! 이놈아, 의념을 지닌 짐승이나 인간이 쌓아둔 기운을 흡수하게 되면 그 기운에 섞여있는 사념에 오염되어 심마(心魔)에 빠지게 된다는 걸 대체 왜 모른 채 하는 게냐! 60년 전 벌어진 혈겁에 대하여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게냐?”


“그걸 조절할 수 있을 정도로만 적당히 흡수하면 되잖아요! 무조건 안 된...”


“네 놈은 인간의 욕심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게냐?”


“그건...”


“내공이란 모름지기 무학을 펼쳐내기 위한 밑천일 뿐이거늘! 내공의 양이 아니라 수련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 너를 더욱 높은 경지로 이끌어 주는 것이다!”


가천일의 일침은 정론을 담고 있다. 채기법의 위험성을 미처 깨닫지 못한 60년 전. 그 간편함과 빠른 내공 증진 속도에 수많은 무림인들이 각기 다른 채기법을 창안하여 서로 경쟁하듯 익히던 때가 있었다. 허나 그에 따른 치명적인 부작용이 알려지게 된 건 수많은 이들이 이미 목숨을 잃은 뒤였다.


다른 기운을 흡수하면서 반탄지기가 일어나 주화입마에 빠지거나 기맥이 뒤틀려 죽음을 맞이한다면 차라리 다행이이리라.


모든 생명은 살아가면서 자신이 쌓은 기운을 통하여 무언가 이루고자 한다. 단순히 생존이나 번식이 목적일 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경우 더욱 복잡하다.


끝없는 탐욕. 무엇이든지 남들보다 더욱 많이 얻고 풍족하게 누리려는 게 바로 인간이다. 그것이 권력이든, 재물이든, 사랑이든 간에 말이다.


살아있는 생명의 기운을 흡수한다는 건 이러한 생(生)으로서 지닌 욕망들을 이어받는 행위이다. 결국 이들에게 잠식되어 이성을 잃고 내공만을 끝없이 갈구하는 괴물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 놈의 목을 무단 형님이 베지 못하였다면 여전히 그 놈의 천하였을 터.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결국 끝없는 허기를 달래기 위한 먹잇감으로 전락하였을 것이다.’


60년 전 정사 구분 없이 수많은 무림 고수들이 모여 그 정점이었던 흡성대법을 대성한 흡마 적우총을 척살하고 채기법은 물론 그 비스 무리한 무공을 익힌 사람들의 단전을 폐한 건 당연한 조치였다. 이는 정사 구분 없이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채기법 자체가 금지된 연유이기도 하다. 시간이 흘러 마침내 채기법 자체에 대한 혐오감으로 발전했지만 말이다.


근래에 들어서야 만야환상대법처럼 야수의 기운을 최소한으로 흡수하면서 그 안에 담긴 사념을 정제하는 심법들이 재해석 되고 있는 추세다.


‘이놈이 채기법을 익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후사를 보지도 못하고 죽고 말테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하는 반웅은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는 꼴이다. 그 어리석은 모습에 가천일은 마음이 심란했지만 그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힘으로 몰아붙여도 어차피 그 아이를 설득할 수 없으니 다른 방법을 동원해야만 한다. 납득할 만한 그럴싸한 이유를 붙여 속이는 수밖에 없다.


결국 가천일은 미리 준비해 두었던 수를 쓰기로 결심하였다.


“...네놈 아랫도리를 한 번 살펴 보거라.”


‘갑자기 내 아랫도리는 대체 왜...어?’


그 곳에 달려 있어야만 하는 물건의 크기가 평소보다 의기소침하다. 의기소침하다는 말로도 사실 부족하다. 마치 소멸할 것처럼 작아진 반웅의 분신. 꼼꼼히 살펴보고 싶어도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소심한 모습이다.


“보다시피 네 놈이 익힌 심법은 그렇게 되는 게 부작용이다. 수련하면 할수록 음기에 잠식되어 그 기능을 잃게 될 터.”


‘아, 안 돼! 설마 내가...’


“음기를 흡수할수록 네 놈은 계집애에 가까워진다. 그래도 채기법을 익힐 생각이냐?”


‘...빌어먹을 매병 노인네! 이런 심각한 부작용이 있으면 미리 말을 해줬어야지!’


반웅은 자신에게 음양조화신공을 전수해준 정체모를 노인을 속으로 욕하면서 결단을 내렸다.


털썩.


“미천한 제자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부디 가르침을 베풀어 주십시오!”


무릎을 꿇은 반웅은 그렇게 반 시진이나 애걸복걸 한 뒤에야 부작용을 완화할 수 있다는 ‘거력남기공’을 가천일에게 배울 수 있었다. 앞으로는 음양조화신공을 쉽게 펼치지 못할 것이다.


‘끌끌끌. 네 놈이 익힌 건 전진파의 ‘현문정종’이다. 만야환상대법보다 효율은 떨어져도 그 정순함은 으뜸이니 열심히 수련하거라. 어차피 네 놈의 분신은 극양의 기운을 담은 영약이 없으면 화타(華佗)가 살아나도 치료할 수 없다. 다행히 10년 정도 뒤에는 자연스레 회복이 될 터이니 그때까지는 무공에만 전념하거라.’


그 어떤 심법과도 잘 어울리는 전진파의 비전 심법을 ‘거력남기공’이라는 이름으로 그 효능까지 속여서 가르치다니. 가천일의 계략에 반웅은 소멸하기 직전인 자신의 분신을 회복하기 위하여 남들보다 두 배는 더 많은 시간을 필사적으로 내공 수련에 쏟게 될 것이다.


‘난 대체 언제까지 자는 척을 해야 되는 거야...’


반웅과 가천일이 소란을 피우는 통에 진작 일어난 아란은 자신의 방에서 두 불청객이 한 시라도 빨리 나가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작가의말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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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북룡폭포에서 벌어진 접전 (2) 22.07.26 39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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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적야 노인의 친정댁 (2) 22.07.21 44 1 10쪽
45 적야 노인의 친정댁 (1) 22.07.19 43 1 9쪽
44 망각행승 (2) 22.07.17 45 1 10쪽
43 망각행승 (1) 22.07.14 57 1 10쪽
42 북란성을 떠난 이들 22.07.12 55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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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두 번째 시련 - 혼원야수공의 정수 (3) 22.06.19 100 1 9쪽
21 두 번째 시련 - 혼원야수공의 정수 (2) 22.06.19 94 1 10쪽
20 두 번째 시련 - 혼원야수공의 정수 (1) 22.06.19 105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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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무진이라는 사내 (3) 22.06.01 165 3 10쪽
12 무진이라는 사내 (2) 22.06.01 175 2 10쪽
11 무진이라는 사내 (1) 22.05.31 202 3 9쪽
10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3) +1 22.05.28 206 2 10쪽
9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2) +1 22.05.27 234 2 9쪽
8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22.05.25 261 3 9쪽
7 비동의 회의 - 억취소악 (憶吹簫樂) +1 22.05.23 301 3 9쪽
6 첫 비무 - 선발제인(先發制人) +2 22.05.20 318 6 11쪽
5 영웅협객(英雄俠客) +4 22.05.18 325 7 10쪽
4 수련과 생사기로(生死岐路) 22.05.16 402 11 9쪽
3 야수신궁의 역사 22.05.13 467 13 9쪽
2 여정의 시작 +2 22.05.11 688 18 11쪽
1 프롤로그 +4 22.05.11 666 18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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