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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사비칰의 이야기

남만야수왕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와사비칰
작품등록일 :
2022.05.11 22:17
최근연재일 :
2022.08.31 08:38
연재수 :
62 회
조회수 :
8,303
추천수 :
139
글자수 :
263,461

작성
22.06.19 00:52
조회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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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0쪽

다시 만난 스승과 제자 (3)

DUMMY

“쌍수난무(雙手亂舞)로 시작해 보자꾸나!”


양손으로 마치 파도를 그리듯 너울대며 무진을 노리는 거야휘. 무공을 모르는 이들에게는 춤사위처럼 아름답게 비춰질 그의 초식에 당한 무림 고수가 세 자릿수가 넘어간다.


“회가추로 막아보겠습니다!”


무진은 팽이처럼 제자리에서 회전하며 그의 전신을 쳐 내리는 수도를 피하면서 가장 자신 있는 초식으로 반격했다.


“이번에는 저의 잠룡승천(潛龍昇天)을 받아보시지요!”


혼원야수공의 핵심인 혼원칠영보를 공격적으로 재해석한 잠룡승천. 무진의 신형이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아간 뒤 반원을 그리며 거야휘의 뒤를 노린다. 여기서부턴 거야휘도 힘에 부치는 지 초식을 미리 알려줄 겨를이 없는 모양이다.


‘형님의 쌍룡출두(雙龍出頭)로구나!’


양 손으로 태극 문양을 그리며 응수하는 거야휘의 손놀림에 조용히 지켜보던 가천일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저 손에 스러져간 후지기수들이 몇 명이던가. 하지만 여기에 당할 무진이 아니었다.


‘저게 탐화봉권이라니! 믿기지가 않는다!’


무진의 수련법대로 굼벵이처럼 앞으로 나아가던 반웅은 그의 사부가 펼치는 탐화봉권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수 백 마리의 벌떼가 사방에서 쏘아대는 현란한 손놀림을 모두 쳐내는 거야휘가 더욱 괴물처럼 보일 뿐이었지만 말이다.


‘여기까지 왔으니 형님도 슬슬 속이 탈 게 분명하다. 과연 어떤 초식을 펼칠지...아!’


가천일의 예상대로 무진의 손놀림에 조급해진 거야휘가 광시쌍식(光矢雙式)을 펼친다. 마치 빛나는 화살처럼 무진의 목과 비장을 노리는 거야휘의 손. 이대로 직격한다면 비록 내공이 실리지 않았더라도 치명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사부님!’


눈으로 쫓기 힘들 정도의 속도로 무진에게 쇄도하는 거야휘의 손에 놀라 무릎에 얹혀있던 돌을 떨어뜨리고만 반웅. 그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무진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자연스레 이를 흘려보냈다.


‘네놈이 벌써 유수난화(流水亂花)를 이리 완숙하게 다루다니. 재능이 정말 뛰어나구나!’


부드럽게 몸을 놀리며 뒤로 빠져나온 무진. 물 위에서 어지러이 춤을 추며 잡으려는 손길을 뿌리치는 꽃잎처럼 유려하다.


약이 잔뜩 올랐는지 결국 무언가 결심한 거야휘. 숙취에 찌들었던 그의 얼굴이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다.


“여기서부터는 정신 바짝 차리거라. 평소 펼치지 않았던 초식이다.”


경고와 동시에 학처럼 양 손을 높게 드는 거야휘. 그의 두 손이 천천히 날갯짓을 하며 무진에게 날아든다.


‘저건 대체 무엇이기에 저리 화려하면서도 빈틈이 없단 말이냐!’


허공을 유영하는 힘찬 날갯짓에 마치 수십 쌍의 날개가 펄럭이는 환상이 펼쳐진다.


‘쯧쯧. 저건 막지 못하겠구먼. 형님께서는 무진이라는 아해가 저걸 받아낼 수 있으리라 보신 것이오?’


가천일은 두 번째 정사대전 이후 처음으로 목격하는 거야휘의 만학쌍비(萬鶴雙飛)의 모습에 혀를 찼다.


‘십괴(十怪)의 이름이 허명이 아니었구나!’


그의 전신을 노리듯 다가오는 거야휘의 손놀림에 무진은 서둘러 자신의 절초(絶招)를 준비했다.


‘묵룡출회(默龍出廻)!’


가천일은 자신의 탄지공 제 삼초식을 막아낸 무진의 묵룡출회에 경악했다. 눈앞에 적을 물리치기 위해 오로지 공세(攻勢)에 치중한 혼원야수공의 마지막 초식이다. 마치 거대한 이무기가 먹이를 노리 듯 거야휘의 만 마리의 학에 정면으로 맞선다.


‘역시 핵심은 회(迴)에 있구나!’


그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회전하며 다시 돌아온다는 묵룡출회의 정수가 눈앞에서 펼쳐진다. 이무기는 머리만이 아니라 꼬리로도 과감히 공격하는 법이다.


‘훌륭하구나! 과연 사형께서 제자로 삼을 만 하다. 허나 아직 무늬만 따라하니 아쉬울 따름이구나.’


거야휘는 사질의 손에서 사형의 비기가 세상의 빛을 보자 뿌듯한 마음이 들었지만 비무에서 손속에 사정을 두면 안되는 게 상대에 대한 예의다.


‘저건 대체 뭐지?’


무진은 처음 보는 거야휘의 초식에 공세를 다시 불러들일 수밖에 없었다. 더욱 가까이 다가가면 피를 보게 되고 말 것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저 초식에 무모하게 돌진하여 패배하고 말았지. 역시 형님의 만야다라장(曼野茶羅掌)은 대단하오!


거대한 원 속에 연꽃을 담은 만야다라장. 그 아름다운 공방일체의 초식이 거야휘가 십괴중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게 해주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비슷한 경지에 이른 이들 밖에 없다.


‘이게 마지막 초식이다. 손을 거두어도...’


무진은 무리하게 거야휘의 품속으로 돌진하기 보단 여기서 멈춰야 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다. 허나 무공의 극의를 추구하는 무림인으로서 어찌 이를 피하겠는가. 무진은 만개한 연꽃 무리 속으로 무모하게 파고들었다.


‘저런 멍청한 놈! 결국 며칠은 앓아눕겠구나!’


사지로 목을 들이미는 무진의 모습에 이지노괴 가천일은 쓴웃음을 지었다. 무진이 볼품없이 바닥에 나뒹군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네놈 사부가 바보같이 달려드는 바람에 병상에 누워서 하늘만 보고 있으니, 어찌 이 할아비가 너를 가만 두겠느냐. 강하게 키워 달라 하였으니 앞으로 일주일 간 배운 걸 평생에 걸쳐 연습하면 언젠가 네놈도 능히 고수 소리는 들을 수 있게 될게다.”


갈빗대가 부러져 침상에서 신음하는 무진. 이대로 꼼짝없이 요양만 하다가 수련동으로 복귀할 수밖에 없다. 그의 진중한 부탁이 아니었다면 가천일이 반웅의 수련을 돕는 기연(奇緣)은 없었을 것이다.


“네놈이 무공 수련을 하는 건 관여하지 않겠다만 농장일은 모두 마치고 하거라. 사질의 사정은 모르나 네게 빚이 있다 하니 그 정도는 허락해주마.”


지금껏 반웅이 무공을 수련하는 걸 탐탁지 않게 여기던 거야휘도 무진에게 큰 부상을 입힌 게 미안했는지 결국 이지노괴 돕는 걸 수락하였다. 허나 무림인이라면 모름지기 무릎을 꿇고 찾아온 기회에 머리를 조아려도 부족할 터인데 반웅의 생각은 조금 다른 모양이다.


‘망했다. 안 그래도 수련하느라 몸이 남아나지를 않는데 이상한 할아범의 수련까지 더해지다니!’


고산선의 거야휘가 대단한 고수라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노인까지 가세해 그에게 가르침을 주려 하다니. 안 그래도 39명의 의형제들에게 눈치가 보이는 상황이다. 사부들이 떠난 뒤 자신이 배운 수련법을 그들과 나누기 위해서 대체 얼마나 더 고생해야 할지 모르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반웅은 눈앞이 깜깜해졌다.


“노부의 수련법은 간단하니 걱정 말거라. 반 시진 동안 두 손으로 네놈의 발이 지금까지 해오던 모든 것들을 대신 수행하고 반 시진 동안 무진이 가르쳐 준 방식대로 수련한 뒤 이를 무한히 반복하거라.”


손으로 발을 대체하라니. 역시 제정신이 아닌 노인네다. 괜히 두 손가락에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이지노괴라는 이름이 붙은 게 아니다.


반웅은 물구나무를 선 채 짐승 우리에서 젖을 짜고, 빨래를 널고,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오면서 아래로 피가 몰리는 통에 몇 번이나 혼절할 뻔 했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그의 얼굴이 잘 익은 홍시처럼 보이는 건 필연적이었다.


‘이러다 무림에 나가기는커녕 머리가 터져 죽을 지도 모른다.’


반웅은 반 시진이 흐른 것을 확인한 뒤 바닥에 주저앉으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처음에는 호기심에 그를 따라하던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 괴랄함에 떨어져 나간 건 당연하리라. 옆에서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올돌궈와 하후진을 제외하면 말이다.


“와, 이거 조금 더 할 수 있겠는데?”


서로 경쟁하듯 아직도 물구나무를 선 채로 담소를 나누는 두 아이의 모습에 반웅은 기가 찼다.


“너희는 물구나무만 서면되니까 그렇지! 나는 이제 무릎이랑 어깨에 돌까지 얹고 십 리나 걸어야 한다고!”


“그건 우리도 할 건데?”


낯빛이 분홍색으로 가라앉은 반웅이 발끈하자 올돌궈와 하후진은 자세를 풀고 당연하다는 듯 화답했다. 그들의 활기찬 모습을 보며 괜히 무공을 전수해 주었다고 후회하는 반웅이었다.


‘저 두 명뿐만이 아니라 고원 농장에 머무는 전원이 조금씩 무공을 익혔구나. 거야휘 형님께서도 결국 생각을 바꾸신 모양이로구나.’


천고기재가 아니라면 무공을 익히면 안 된다고 주창하던 거야휘가 아니던가. 가천일은 수십 년간 이어져온 자신의 생각을 바꾼 의형제가 내심 대단하게 보였다. 나이가 들고 자신의 생각에 변화를 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중원 무림에서 작은 의방을 운영하던 거야휘가 처음부터 아이들이 무공을 익히는 것에 부정적인 건 아니었다. 그저 30년 전에 벌어진 첫 정사대전 때 수많은 생명을 살린 자신의 제자들이 적으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 무공을 익힌 것이 혈겁(血劫)으로 이어진 것에 깊은 회의감을 느꼈을 뿐. 지금까지 살아남은 제자가 단 한 명이라도 있었더라면 조금 다른 생각을 지니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


‘무공을 익히는 것 그 자체가 죄악이 아니라 이를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한 법이지.’


무공을 익혔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제자들을 무림인으로 간주한 뒤 무자비하게 몰살한 마교 무리를 탓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싶은 가천일 이었다. 거야휘가 제자들의 복수를 마치고 운귀 고원에 틀어박힌 이후로 가천일이 매년 찾아와 술잔을 나누었던 건 십괴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변화의 바람이 운귀 고원에 불어오는구나.’


가천일은 고원에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만끽하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경사스러운 날에는 술이 필요한 법이다.


작가의말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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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무진이라는 사내 (3) 22.06.01 165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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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무진이라는 사내 (1) 22.05.31 202 3 9쪽
10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3) +1 22.05.28 207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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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22.05.25 261 3 9쪽
7 비동의 회의 - 억취소악 (憶吹簫樂) +1 22.05.23 301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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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영웅협객(英雄俠客) +4 22.05.18 326 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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