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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사비칰의 이야기

남만야수왕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와사비칰
작품등록일 :
2022.05.11 22:17
최근연재일 :
2022.08.31 08:38
연재수 :
6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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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97
추천수 :
139
글자수 :
263,461

작성
22.07.1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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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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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적야 노인의 친정댁 (1)

DUMMY

"가 아저씨, 가 아저씨!"


"끌끌. 네놈은 징그러우니 할아버지라고 부르거라!"


밀교 객실에서 반웅이 가천일을 애타게 부르던 금령의 목소리를 따라하자 하나 남은 손가락으로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얼굴을 붉히는 가천일.


'이지노괴에게 저런 모습이?'


십괴중 이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부끄러워하는 노인네의 모습에 아란은 사뭇 충격을 받은 것 같다.


"우리 금령이 언제 저리 컸을꼬. 불과 20년 전만 해도 작은 살쾡이처럼 귀여웠는데 어느새 성장하여 임신까지 하였으니. 지아비되는 놈이 누군지는 몰라도 복 받은 놈이구나!"


우수에 젖은 눈으로 과거를 떠올리는 노인. 허나 그를 마냥 기다려줄 아란이 아니다. 그녀는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점이 많다.


"네, 네. 손녀처럼 귀여워하던 아이를 만나셨으니 무척이나 기쁘시겠죠. 근데 저희가 당도한 곳이 어디이며 대체 노야와 어떤 연이 있는지 슬슬 설명해주셨으면 좋겠네요."


당돌하게 들릴수도 있는 그녀의 신경질 섞인 물음에 가천일은 회상에서 빠져나온다. 목숨을 위협받으면서 함께 이곳에 당도한 어린 아해들에게 설명해야만 하리라.


가천일은 침을 삼키며 30년전 벌어진 일에 대한 긴 회상을 시작했다.


===========================


"적야! 자네가 밀교인과 결혼이라니! 정녕 정신이 나갔는가?"


화려한 객잔 안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구릿빛 피부의 장년 남성에게 일갈을 던지는 중년인. 30년 전의 적야와 가천일이다.


"살아생전 이렇게 현명한 여인과 사랑에 빠지게 될줄은 몰랐소. 가천일 형님께서 기쁘게 주례를 서주신다면 더욱 기쁠 것 같으니 부디 거절하지 말아 주시오. 곧 그녀가 이곳으로 올 것이니 직접 만나보고 편견을 거두는 것이 어떻겠소?"


방중술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밀교. 그 안에서도 장로급 위치에 이른 여성을 아내로 맞이하려 하다니. 아무리 아름다운 여성이더라도 평범한 정조 관념을 지니고 있는 가천일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 문란한 집단에서 자라온 여인이 대체 어디가 그리 좋다는 것인가.


의형제가 사랑이라는 미약에 눈이 멀어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것을 어찌 가만 둘 수 있으랴. 가천일은 마음 속은 자신의 아우가 마음을 빼앗긴 여성에게 직접 엄포를 늘어놓아 내쫓을 생각으로 가득하다.


"협객들께서 이미 기다리고 계셨군요. 제가 바로 적야를 지아비로 맞이할 우란이라 합니다."


청아한 목소리가 뒤에서 울려퍼지자 일제히 뒤를 돌아보는 적야와 가천일.


마침내 오늘의 주인공인 우란과 그녀의 호위가 함께 객잔에 당도하였다.


겉보기에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두 사람. 그들이 밀교의 장로와 호위라는 사실은 아마 객잔 내에서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리라. 가천일은 곧바로 그녀에게 매몰찬 말들을 쏟아붓는다.


"허! 적야와 혼인한다하여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도 될 것이라 여겼거늘! 외모는 저잣거리의 아낙네와 별반 다를게 없구먼. 밀교 여인들은 다들 꾸밀줄도 모르는가 보지?"


허나 그의 공격적인 언사에도 오히려 웃으며 화답하는 우란. 가천일의 정체를 모르는 것도 아닐텐데 그 행동거지는 당당하기만 하다.


"여인이란 항시 두 가지 이상의 얼굴을 지닌 채 상황에 맞게 이를 드러낼줄 아는 것이 도리지요. 비록 여염집 여인네들처럼 화려하게 꾸미고 오지는 않았으나 그 어떠한 허례허식도 없이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는데 제격 아니겠습니까? 휘황찬란하게 치장하지 않았다고 하여 옥석이 광채를 잃는 일은 없지요."


그녀의 현명한 답변을 듣고 가천일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여인의 진정한 매력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갈무리되어 있다는 것을. 짧은 언변에도 현기가 흐르는 것이 보통내기가 아니다.


허나 가천일은 자신이 지니고 있던 밀교에 대한 편견을 쉽사리 버릴 수 있는 위인은 아니었다. 결국 그들을 자극하여 사달을 일으키기 위해 본심에도 없는 말을 내뱉고 말았다.


"하. 어차피 아비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천애고아들로 가득한 곳에서 자라나 언변만 화려할게 분명한 것을. 내 아우는 절대 내어줄 수 없소!"


다짜고짜 자라온 곳을 헐뜯으며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는 이와 웃으면서 겸상할 수 있는 이는 없으리라. 애초에 가천일의 발언을 웃어 넘긴다면 그것이야말로 이치에 어긋나는 일이다.


"적야의 형님이시라고 들었지만 경솔한 언행과 편협한 사고는 오히려 동생이라 하여도 믿겠군요. 오늘 만남은 없던 것으로 하겠습니다."


곧바로 뒤돌아 선 뒤 바람처럼 객잔을 나서는 두 여인. 적야는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가천일을 쏘아본 뒤 그들을 따라 나섰다.


이것이 가천일과 훗날 적야의 아내가 된 우란의 첫 만남이었다.


===========================================


"그때는 노부가 아직 배움이 미천한 편견 덩어리였기에 밀교에 대하여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평생 상처가 될 만한 말들을 퍼부었지. 모든 밀교인이 교접을 통하여 진리를 추구하던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추후 이를 사죄하기 위해 매년 적야와 우란 부부에게 온갖 영약과 남만의 진귀한 술을 가져다 주었으나 끝내 그 상처가 아물지 못하였다. 밀교를 자주 방문하면서 오히려 금령 부녀와 친해졌지만 말이다. 너희들은 부디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이전에 편견만으로 사물에 대하여 판단하지 않기를 바란다."


설명을 마친 뒤 먼 곳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 가천일. 허나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담을 수 없듯 그가 적야 부부에게 그날 행한 잘못은 평생 뇌리에 남아 그를 괴롭힐 것이다.


이럴땐 모름지기 홀로 내버려 두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노야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저희는 직접 밀교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해 이곳을 살펴보겠습니다. 반웅! 너도 나랑 같이 가자!"


자연스레 졸고 있던 반웅의 손을 잡고 방을 나서는 아란. 밀교라 불리는 비밀스러운 집단은 남녀간의 교접을 통하여 진리를 얻고자 하는 곳이라 하니, 혹시 모를 불상사에 대비하여 그를 데리고 나서는 것이 좋을 것이다.


미로처럼 얽혀있는 통로들을 걸어가면서 각양각색의 방식으로 음양합일을 연구하고 있는 교인들이 눈에 띤다. 방문을 훤히 열어두고 행하는 그 남사스러운 모습들에 화들짝 놀란 아란은 양손으로 붉어진 얼굴을 가리는 척을 하고 있지만 그 틈새 사이로 검은 눈동자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제법 호기심이 동한 모양이다.


그렇게 여러 방을 지나자 오히려 텅 비어있는 석실이 유독 관심을 끄는 것은 당연한 일이리라. 아란은 잠시 휴식이라도 취할 겸 그 안으로 조심스레 들어섰다.


벌개진 눈으로 이 방 저 방 뚫어져라 쳐다보던 반웅과는 이미 갈라진지 오래다.


그 안에서 나는 미묘한 향내음을 맡으면서 아란이 빈 침상 위에서 잠에 빠져들 무렵. 낯선 괴인이 밤꽃 냄새를 풍기면서 방 안으로 들어선다.


"흐흐흐. 처음보는 어린 처자로군! 의식의 방에서 자리를 잡고 기다리는 것으로 보아 나이에 비해 꽤나 음탕한 년이구나! 밤새 운우지락을 나누어 보자꾸나!"


괴인의 음습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에 온몸에 소름이 돋은 아란. 그녀가 눈을 부릅뜨고 비명을 지르려 하지만 잠긴 목에서는 어떠한 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어느새 방 안을 가득 채운 미향 때문인걸까?


축 늘어진 몸에는 이제는 힘조차 들어가지 않는다.


스르륵.


괴인이 허물을 벗어내듯 옷을 벗어 던지자 그 안에서 드러난 흉물스러운 물건에 당황하여 두 눈을 질끈 감는 아란. 어린 처자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끔직한 광경이리라.


자신에게 벌어질 일을 본능적으로 직감하였는지 그녀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만 연신 흘러내린다.


'흑...제발 도와주세요! 어머니! 이런 곳에서 순결을 잃기는 싫습니다! 누구라도 좋으니 제발 저 괴한을 죽여주세요! 반웅!!!'


일촉즉발의 상황.


그녀의 뇌리에서 거검문에서 벌어졌던 일이 불현듯 떠오른다.


소문주 추결이 다짜고짜 밤시중을 들으라면서 협박하지 않았던가. 그때 만약 반웅이 필사적으로 막아서지 않았다면 진즉 여인으로서 소중한 것을 잃고 말았으리라. 무림에서 무공을 익히지 않은 여인의 말로는 어찌 이리도 비참한 것인가!


한없이 부족한 무공 실력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위해 나선 반웅. 그 어린 소년의 얼굴이 떠오른 건 아마 이 상황에서 그녀를 구해낼 수 있는건 오직 그뿐이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라락.


어느덧 다가온 괴인의 난폭한 손길이 그녀의 옷을 우악스럽게 벗겨낸다. 자신의 혀를 깨물고 자결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지만 아란의 입에는 어느새 재갈이 물려있다. 이대로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일까.


콰쾅.


"이런 미친 놈을 봤나! 아란 소저! 정신 좀 차려봐요! 아란!!!"


핏발 선 눈으로 마지막까지 강하게 저항하던 아란은 자신의 옷을 벗기던 괴인의 신형이 바닥으로 쓰러지고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반웅의 얼굴이 다가오는 것을 마지막으로 정신을 잃었다.


작가의말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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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불협화음 (1) 22.07.31 39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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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북룡폭포에서 벌어진 접전 (2) 22.07.26 40 1 9쪽
47 북룡폭포에서 벌어진 접전 (1) 22.07.24 44 1 9쪽
46 적야 노인의 친정댁 (2) 22.07.21 44 1 10쪽
» 적야 노인의 친정댁 (1) 22.07.19 44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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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망각행승 (1) 22.07.14 57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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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세 번째 시험 - 다시 도채밀림으로 22.06.22 89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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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무진이라는 사내 (3) 22.06.01 165 3 10쪽
12 무진이라는 사내 (2) 22.06.01 176 2 10쪽
11 무진이라는 사내 (1) 22.05.31 202 3 9쪽
10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3) +1 22.05.28 207 2 10쪽
9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2) +1 22.05.27 234 2 9쪽
8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22.05.25 261 3 9쪽
7 비동의 회의 - 억취소악 (憶吹簫樂) +1 22.05.23 301 3 9쪽
6 첫 비무 - 선발제인(先發制人) +2 22.05.20 318 6 11쪽
5 영웅협객(英雄俠客) +4 22.05.18 326 7 10쪽
4 수련과 생사기로(生死岐路) 22.05.16 402 11 9쪽
3 야수신궁의 역사 22.05.13 467 13 9쪽
2 여정의 시작 +2 22.05.11 688 1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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