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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사비칰의 이야기

남만야수왕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와사비칰
작품등록일 :
2022.05.11 22:17
최근연재일 :
2022.08.31 08:38
연재수 :
62 회
조회수 :
8,285
추천수 :
139
글자수 :
263,461

작성
22.07.26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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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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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북룡폭포에서 벌어진 접전 (2)

DUMMY

북룡폭포 안쪽에 숨겨진 비동에서 가천일이 반웅과 아란을 양쪽 옆구리에 끼고선 바깥 세상을 향해 허공답보를 펼치며 날아오른다. 그 과정에서 떨어지는 폭포를 정통으로 맞고 모두 흠뻑 젖고 말았지만 말이다.


"할아버지! 옷이 다 젖었잖아요!"


"이놈아, 네놈이 제대로 물살을 피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 아니더냐!"


반웅을 꾸짖는 가천일은 옷은 물론 몸 그 어디에도 젖은 기색이 없다. 이것이 바로 무공 고수가 지녀야 하는 품격이리라.


그에 반해 몸은 물론 머리마저 마치 물에 빠진 새앙쥐처럼 젖은 꼴로 허우적대는 반웅은 아직 갈 길이 멀다.


가천일의 반대편 옆구리에 대롱대롱 메달려 있는 아란 또한 비슷한 몰골인 것은 매한가지 였지만 말이다. 의복 아래로 비춰 보이는 밀교 교주가 하사한 푸른 색 무구만이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물기를 빠르게 흡수하고 있을 뿐. 착용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그 안에 입은 속곳이 드러났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그럼 이제 여기서 어디로 가죠? 다시 봉소 마을로 돌아가나요?"


"아서라. 지금 아란의 상태가 안 보이느냐? 이 아해가 겪은 심적 고통이 얼마나 컸으면 아직도 일어나지 못하고 있겠느냐. 그 마음의 병을 온전히 극복하고 다시 일어서는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모르나 우리가 옆에서 지켜봐 줘야 하지 않겠느냐. 이곳까지 함께한 그녀의 여행을 타의로 갑작스레 마치는 것도 도리가 아니다."


가천일의 말대로 운귀 고원 근처에 위치한 홍허 마을에서 이 먼 봉소까지 도달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던가. 거의 반 강제로 이곳까지 끌려온 아란을 정신을 잃었다는 이유만으로 내버려 두고 떠난다면 이는 무림의 협(俠)은 물론이오 세간의 이치에 어긋나는 일이리라.


'에휴. 결국 또 내가 업게 되는구나.'


그녀의 젖은 몸을 다시 들쳐업고 길을 나서려던 반웅과 이지노괴 가천일.


"멈추시오! 당신들이 혹시...바, 반웅?"


그들 앞에 갑자기 나타난 두 명의 사내 아이들.


입을 크게 열고 경악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있는 맹웅과 반고르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


"사내 놈들은 어여 물러가거라! 깊은 잠에 빠진 이 아해는 이래뵈도 아직 시집도 못 간 처자이니 외간 남자들에게 쉽사리 이런 부끄러운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여인으로서 반드시 지키야만 하는 지조와 절개를 너희가 욕보일 생각이 아니라면 길을 트거라. 어차피 아직 약관이 채 되지 못한 나이들 아니더냐."


성호단 의복을 입은 두 아이들과 반웅의 관계를 아직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이지노괴 가천일는 공력을 담아 일갈을 날렸다. 아란을 빌미로 불필요한 대립을 멈추고 황급히 마을로 내려갈 생각이다. 약방에서 제대로 치료를 받지 않는다면 그녀의 병세가 더욱 깊어질 지도 모른다.


'허허. 밀교에서 호법을 서면서 그냥 치료를 맡겼어야 하는 것인가...'


그녀가 밀교에서 겪은 충격적인 기억으로 인하여 혹여 깨어난 뒤 다시 쓰러지지 않을까 염려하던 가천일. 그는 밀교의 주 의원에게는 응급처치만을 부탁한 뒤 봉소 마을에서 촌장을 하고 있는 자신의 옛 아우인 적야에게 아란을 보일 생각이었다.


운귀가의로도 알려져 있는 거야휘에게서 젊을 적 의술을 전수 받은 적야. 그의 아내 또한 비록 극음지체는 아니었으나 강한 음공을 익힌 고수였으니 아란의 상태를 보고 적절한 진단을 내려줄 것이다. 가천일의 품 안에는 밀교에서 어렵게 얻어온 (강탈해온) 천년화리의 내단도 있으니 어쩌면 그녀의 선천적인 병세 또한 차도가 있을 지도 모른다.


"노야께서는 저희와 함께 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쓰러진 처자는 저희 성호단에서 성심성의껏 치료할 것이니 염려치 마십시오. 저희 간소소 사부께서는 의술에도 조예가 뛰어나시니 믿으셔도 됩니다. 반웅, 너도 수련동 출신이니 우리들의 조사에 협조해 줄 것이라 믿는다. 네가 퇴출된 이후로도 항상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했는데, 이렇게라도 만나게 되어 참으로 기쁘다."


내공이 담긴 노인의 일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반웅에게 다가오는 맹웅. 아무리 내력을 많이 실지 않았다고 하여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는 사내 아이의 모습에 가천일의 호기심이 일었다. 마치 먹이를 노리는 듯 번들거리는 호박색 눈동자로 보아 그를 시험해볼 심산이다.


'이 녀석 좀 보게. 아직 어린 나이에도 벌써 단전의 형태가 뚜렷하고 몸 안에서 흐르는 십이경맥은 물론 기혈마저 깔끔하게 다듬어져 있는 것이 마치 수년간 석공이 연마한 옥석 같은 녀석이로구나. 어디 실력 좀 봐야겠는데...올커니, 저 놈을 자극하면 되겠구나.'


반가워하는 맹웅과 달리 어두운 안색으로 고개를 바닥에 떨군 반웅. 수련동에서 겪었던 억울한 일들이 파도처럼 밀려와 그의 뇌리를 가득 채운다. 근래 무진을 만나면서 조금은 사그라 들었다고 생각하였지만, 함께 동거동락하던 친구들이 성호단의 의복을 걸친 모습을 막상 보게 되니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거무튀튀한 감정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수련동에 남을 수 있었더라면 어쩌면 나도 저 옷을 입을 수 있지 않았을까.'


붉은 실로 수놓은 아름다운 여우 한 마리가 뛰노는 성호단의 잿빛 의복. 그 모습을 본 반웅의 눈은 이미 초점을 잃은 채 깊은 심연으로 떨어지고 있다.


'나도 누구보다 열심히 할 수 있었어. 분명 다른 아이들처럼 나만의 힘으로 기감을 일깨웠었지. 하지만 그 끝이 결국 이렇다니.'


고개를 숙인 채 자조 섞인 미소를 짓고 있는 반웅. 그에게 있어 한때 동경의 대상이었던 맹웅과 같은 마을 출신의 반고르가 나란히 성호단에 입단한 모습을 보는 것은 그저 가슴을 시큰하게 만드는 고통스러운 광경일 뿐이다.


'받지도 못한 무진의 도움을 받았다고 주장하고...그에 대한 합당한 이유도 없이, 변변한 나 자신에 대한 변론도 못하게 막은 채, 일방적으로 몰아세우며 나를 내쳤던 것이 바로 성호단의 간소소 사부였지? 대체 나와 무슨 원수를 지었길래 이렇게 된 걸까. 내가 대체 무엇을 잘못했길래...'


조용히 깊어져만 가는 반웅의 슬픔어린 분노. 그 감정의 변화와 깊이를 눈치챈 가천일은 자신의 흥미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평상시에는 항상 유지하고 있었던 뒷짐을 몰래 풀고 하나 남은 검지 손가락에서 무형의 기운을 실타래처럼 뻗어 맹웅과 반고르를 압박한다.


'이건 대체 무슨...'

'이게 뭐야?'


갑작스레 자신들에게 쇄도하는 노인의 손가락에서 뻗어나온 실처럼 가늘면서도 날카로운 기운에 곧바로 뒤로 물러선 맹웅과 반고르. 비록 살기가 담겨 있지는 않지만 그 패도적인 기운을 조금이라도 늦게 발견하였다면 살점이 잘려나갔을지도 모른다.


"이게 대체 무슨...노야께서는 저희와 어떤 원한이 있으시길래 이리 매서운 수를 펼치십니까! 부디 조용히 조사에 협조하여 거검문에서 벌어진 일에 대하여 증언해 주십시오! 반웅, 너도 그 당시 현장에 있었으니 진실을 알 것이다! 수련동 출신이니 간소소 사부께서도 네 말을 믿어주실 것이다!"


단 한 수만으로 정면에서 노인과 맞붙는건 승산이 없다는 것을 파악한 맹웅과 반고르. 수련동과 간소소 사부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거검문에 대하여 추궁하기 위해 필요한 반웅을 설득하는 것으로 노선을 바꾸었다. 처음에는 손속이 악랄하기 짝이 없는 간소소의 마수로부터 이들을 멀리 떨어뜨리기 위해서 먼저 산에 올랐지만, 일면식이 있는 반웅이라면 조사 과정 또한 공정하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 열쇠를 쥔 채 고개를 여전히 떨구고 있는 반웅은 그리 생각하고 있지 않았지만 말이다.


'...간소소...그래, 당신이 나의 인생을 이렇게 만들었지. 당신이 무진 사부를 견제하기 위해서 이런저런 이유를 엮어가면서 어렵게 합격한 수련동에서 퇴출시키지만 않았더라면. 당신이 내게 단 한 번이라도 변론할 기회를 주었더라면. 그 이후 내가 실력이 부족하여 퇴출 당하였다면 당신을 이토록 원망하지는 않았겠지.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


드디어 고개를 치켜든 반웅. 차갑게 가라앉은 그의 눈은 이미 무언가 결단을 내린 모양이다.


'당신은 스쳐지나가는 저잣거리의 행인보다 못한 존재로 전락했어. 오히려 원수처럼 취급 당하여도 당신은 할 말이 없어야겠지? 그땐 비열한 간계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지만...앞으로는 그럴 일 없어. 당신이 나를 필요로 한다면 더욱 철저히 그 손아귀에서 벗어날 것이고, 당신에게 도움이 된다면 죽더라도 절대 행하지 않을 것이야. 어차피 당신은 나와 의형제를 맺은 추결 형님이 계신 거검문을 난처하게 만들 생각이겠지. 근데 이걸 어쩌나? 유일한 목격자인 나를 찾지 못할 텐데.'


마침내 속내를 정리한 반웅. 그가 재빨리 가천일과 눈빛을 교환한 뒤 신형을 날린다. 온힘을 다해 혼원야수공을 펼치면서 달아나는 그의 등에는 여전히 아란이 업혀있다.


작가의말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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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대리국을 향한 여정 (2) 22.08.26 35 0 9쪽
59 대리국을 향한 여정 (1) 22.08.23 26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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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봉소, 대월, 그리고 주술 (2) 22.08.18 29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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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전쟁의 서막 (3) 22.08.15 36 0 9쪽
54 전쟁의 서막 (2) 22.08.09 34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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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불협화음 (3) 22.08.04 41 1 10쪽
51 불협화음 (2) 22.08.02 33 1 9쪽
50 불협화음 (1) 22.07.31 39 1 10쪽
49 북룡폭포에서 벌어진 접전 (3) 22.07.28 51 1 9쪽
» 북룡폭포에서 벌어진 접전 (2) 22.07.26 40 1 9쪽
47 북룡폭포에서 벌어진 접전 (1) 22.07.24 44 1 9쪽
46 적야 노인의 친정댁 (2) 22.07.21 44 1 10쪽
45 적야 노인의 친정댁 (1) 22.07.19 43 1 9쪽
44 망각행승 (2) 22.07.17 45 1 10쪽
43 망각행승 (1) 22.07.14 57 1 10쪽
42 북란성을 떠난 이들 22.07.12 55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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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거검문의 진짜 소문주 (2) 22.07.05 76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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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두 번째 시련 - 혼원야수공의 정수 (2) 22.06.19 94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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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무진이라는 사내 (2) 22.06.01 175 2 10쪽
11 무진이라는 사내 (1) 22.05.31 202 3 9쪽
10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3) +1 22.05.28 206 2 10쪽
9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2) +1 22.05.27 234 2 9쪽
8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22.05.25 261 3 9쪽
7 비동의 회의 - 억취소악 (憶吹簫樂) +1 22.05.23 301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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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영웅협객(英雄俠客) +4 22.05.18 325 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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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야수신궁의 역사 22.05.13 467 1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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