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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사비칰의 이야기

남만야수왕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와사비칰
작품등록일 :
2022.05.11 22:17
최근연재일 :
2022.08.31 08:38
연재수 :
6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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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글자수 :
263,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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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15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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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서막 (3)

DUMMY

"젊은 녀석이 결국 스스로 죽음 자초하는구나! 염라대왕을 만나면 대신 안부 인사나 전하거라!"


원형의 거대한 두 개의 기운이 이진괴의 검지 끝을 떠나 아망에게 쇄도한다. 허나 아망 또한 얌전히 이를 기다리고만 있던 것은 아니다. 그의 손가락 끝에서도 크기는 작지만 마찬가지로 고강한 내공이 담긴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


콰콰쾅.


평범한 사람이라면 단 일격으로 목숨을 앗아갔을 이지노괴의 탄지공이 정순하면서도 압축된 아망의 기운을 허공 한복판에서 만나자 일순간 눈부신 빛과 함께 공간이 폭발한다.


터져나오는 엄청난 굉음과 함께 자욱하게 날리는 모래 먼지가 마침내 걷히자 그 안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아망. 당당히 대리국의 승려라 밝힐만한 실력은 있었는지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햇빛을 받은 그의 반들반들한 머리가 더욱 강렬하게 빛나고 있다.


"아미타불. 아무래도 불도를 걷는 이들에게는 자연스레 위험이 비껴가나 봅니다. 분명 눈으로 보았을 때에는 버티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였으나 이리 멀쩡히 서 있는 것으로 보아 천운이 따른 것이겠지요."


천운이라 말하면서 환한 미소를 짓는 아망. 하지만 이 자리에서 그의 신위를 직접 목격한 이들은 쉽게 웃어넘길 수 없으리라. 그 누가 남만 십괴 중에서도 한 점을 꿰뚫는데 특화된 탄지공을 연마한 이지노괴 가천일의 공세를 이렇게 정면에서 받아낼 수 있으랴.


"제법 유쾌한 땡중이로구나! 내가 마지막에 기운을 거두지 않았다면 분명 지금 이리 멀쩡히 서있는 것은 물론, 입도 뻥긋할 수 없었을 것을..."


한 때 남만은 물론 무림 전체에서 등한시 하였던 외문기공만을 고집스럽게 익히는 대리국의 수행자들. 그들 중에서 화경의 경지에 다다른 이는 대리국 불교의 긴 역사를 통틀어도 여섯이 채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고작 불혹(不惑)​의 나이로 이지노괴 가천일의 탄지공을 온전히 받아낼 수 있을 리가 없다. 그의 말처럼 마지막에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더라면 이미 천도(天道)하였을 것이다.


"아미타불. 소승은 그저 남들보다 조금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어쩌면 타고난 자질이 불도(佛道)에 어울렸을지도 모르지요. 이 또한 하해와 같은 부처님의 은혜 아니겠습니까."


합장을 올리며 예를 표하는 아망의 얼굴에는 방금 전까지 상대방을 도발하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오히려 그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평온한 기운은 마치 방금 전에 일어났던 두 사람 간의 충돌 따위는 망상이었던 것처럼 느껴질 지경이다.


"아미타불. 무공 실력을 통하여 신원을 다시금 확인하기 위하여 불가피하게 심기를 건드리고 말았으니 부디 화를 거두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부터 일러드릴 내용은 모두 대월국의 존망과 관련이 있으니..."


"대리국에서 대월국을 침공하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다는 내용 말이더냐?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니 썩 물러가거라! 우리는 그에 얽힐 생각이 추호도 없거늘!"


대리국의 승려가 이지노괴 가천일의 뒤를 몰래 밟은 뒤 신원을 확실하게 확인한 이후에야 털어놓을 만한 이야기는 아마 이것밖에 없으리라. 가천일은 진즉 아망의 어설픈 연기를 꿰뚫어 보고 있었지만 그 노력이 가상하여 어울려 주고 있었을 뿐이다.


"아미타불. 이미 상황을 파악하고 계셨다니 다행입니다. 그렇다면 혹시 닷새 이내로 이곳에 당도할 대리국의 삼천 병력에 맞설 방도 또한 이미 생각해 두셨습니까? 모두 잘 훈련된 정예병들이니..."


"삼천 병력이라니! 이게 대체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냐?"


화들짝 놀란 가천일이 젊은 승려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을 되묻자 아망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현재 대리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하나 둘 차근차근 털어놓았다.


=====================


"그러니까, 대리국으로 쫓겨난 리 인종의 서자가 끝내 왕위를 욕심내고선 적국과 손을 잡고 그에게 주어진 삼천 병력을 이끌고 대월국을 침범하려 하고 있다고? 게다가 주술사 출신인 그 놈의 어미가 배후에서 리 인종에게 온갖 저주를 내리면서 전두지휘하고 있고?"


"아미타불. 현재 병력을 이끌고 국경을 넘고 있는 리 인종의 서자와 그의 병사들은 분명 큰 위협임에는 이견이 없으나 현재로서는 대리국 궁궐 지하에 마련된 비밀 제단에서 사이한 주술을 펼치고 있는 그 어미가 더욱 위험하다 볼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위협은 막아내기 더욱 어려운 법이지요."


미리 피하거나 무력으로 막아낼 수 있는 무공 고수들과는 달리 만물의 영혼을 다루는 주술사들은 재료만 충분히 갖추어 진다면 거리에 무관하게 자신들만의 독특한 주술로 상대방을 저주하여 궁극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데 특화된 이들이다. 그들이 사용하는 주술의 형태도 무궁무진하거니와 이를 완벽하게 막아낼 수 있는 것은 같은 주술사 밖에 없기에 가급적 그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 현명하리라. 그들을 모종의 이유로 증오하는 가천일은 그럴 수 없을 테지만 말이다.


"그녀는 대리국 선인황제(宣仁皇帝) 주변의 신료(臣僚)들을 미색으로 홀려 수족처럼 부리는 것은 물론이고, 썩은내가 진동하는 음험한 재료들을 구하여 솥에 넣고 밤낮으로 끓이면서 리 인종을 향해 온갖 저주를 퍼붓고 있습니다. 그녀가 시전하려고 하는 사이한 주술이 완성되도록 내버려 둔다면 분명 대월국의 황실에는 큰 재앙이 들이닥치게 되겠지요. 근래 건강이 악화된 리 인종의 소식은 이미 백성들 사이에서 만연히 퍼져 있다고 들었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병마 때문에 몸져 누운 대월국의 황제 리 인종. 그 원인이 대리국으로 도망친 첩과 그 자식이 여태 퍼부은 저주 때문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아마 다섯이 채 되지 못할 것이다.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우면서도 묘하게 설득력이 있는 아망의 말을 듣고선 벌써 일각 동안 멍하게 제자리에 앉아 내용을 복기하고 있는 가천일조차 여전히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침묵만이 흐르는 고요한 적막 속에서 불현듯 반웅이 입을 열었다.


"아니, 대체 리 인종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무서운 여인이랑 한 침대에 누울 수 있었던 거죠? 주술사라니! 상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하네요!"


귀를 쫑긋 세우고 아망과 가천일의 대화를 흥미진진하게 듣고 있는 반웅. 아직 10살 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언제 어디서든 상대를 저주하여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여인과 아름답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한 침대에 눕는 것도 모자라 아이까지 낳은 대월국의 황제 리 인종을 이해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여색을 밝히기로 유명한 리 인종 또한 이번에는 필시 후회하고 있으리라.


"끌끌. 이놈아, 여인의 한은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리게 한다는 이야기를 모르느냐! 네놈도 평소 행실을 바르게 하여 여인이 밤낮으로 저주를 퍼붓지 않도록 조심하도록 하거라! 이 할애비 말을 명심하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하게 될 것이야!"


아직 남녀 관계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반웅을 놀리면서 장난을 치는 가천일.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그 속내는 이미 수많은 정보과 가정들로 인하여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는 머릿속을 어떻게든 정리하기 위해 노력중이다.


"아미타불. 시주는 피부가 하얗고 전체적으로 선이 가늘고 미려하니 장성하면 분명 뭇여인네들의 가슴을 설레게하는 미공자로 자라나겠구려. 노부의 말씀을 새겨듣고 부디 주색을 멀리하시오. 부처께서 말씀하시길..."


가벼운 얘기를 통해 분위기를 전환하려 노력하였던 가천일의 노력이 무색하게 아망은 부처의 가르침을 하나 둘씩 반웅에게 설명하느라 여념이 없어 보인다. 일전에는 살계 운운하면서 가천일을 도발하기 위하여 분발하였던 모습은 진즉 잊은 것처럼 보인다. 덕분에 가천일은 다시 생각에 잠길 시간을 벌었지만 말이다.


'염병할...자신을 내친 아비에게 복수를 하는 것이 목적이더냐, 아니면 뒤늦게 태어난 혈육으로부터 왕위를 되찾으려는게냐. 어느 쪽이든 타국의 병사를 이끌고 자신의 모국으로 쳐들어 오는 것은 천륜을 저버린 것과 다를 바 없는 행보라 볼 수 있거늘. 지금은 비록 네놈 어미의 주술을 막는 것이 더욱 시급하여 내버려 두어야만 하겠지만, 반드시 돌아와 네놈의 잘잘못을 따져봐야겠구나!'


서자를 조우하게 된다면 그가 끌고온 병사들에 의하여 죽음을 맞이하게 되더라도 반드시 길동무로 삼으리라 다짐하는 가천일. 삼 천의 병사들이라면 예상하였던 것보다 월등히 적은 숫자이기에 조금은 버틸 수 있을 것 같은 생각마저 든다.


애초에 가천일은 젊은 시절 아내와 자식을 원수에게 잃은 뒤 오로지 복수 하나만을 위하여 수십 년간 탄지공만 연마한 사람이다. 정당한 임자가 있는 왕좌에 눈이 멀어 천륜을 저버리고 타국의 병사를 이끌고 돌아오는 사내는 물론, 한때 지아비였던 사내를 쉬지 않고 저주하는 여인이 극도로 한심하게 보이는 것은 어쩔수 없으리라. 주술사의 저주에 처자식을 잃은 가천일이 어느 쪽을 우선시 할지는 보란듯 뻔한 일이지만 말이다.


작가의말

늦어서 죄송합니다.


다들 물난리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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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대리국을 향한 여정 (2) 22.08.26 35 0 9쪽
59 대리국을 향한 여정 (1) 22.08.23 25 0 9쪽
58 봉소, 대월, 그리고 주술 (3) 22.08.21 26 0 10쪽
57 봉소, 대월, 그리고 주술 (2) 22.08.18 29 0 9쪽
56 봉소, 대월, 그리고 주술 (1) 22.08.17 33 0 9쪽
» 전쟁의 서막 (3) 22.08.15 36 0 9쪽
54 전쟁의 서막 (2) 22.08.09 33 0 9쪽
53 전쟁의 서막 (1) 22.08.07 37 1 9쪽
52 불협화음 (3) 22.08.04 40 1 10쪽
51 불협화음 (2) 22.08.02 33 1 9쪽
50 불협화음 (1) 22.07.31 38 1 10쪽
49 북룡폭포에서 벌어진 접전 (3) 22.07.28 50 1 9쪽
48 북룡폭포에서 벌어진 접전 (2) 22.07.26 39 1 9쪽
47 북룡폭포에서 벌어진 접전 (1) 22.07.24 43 1 9쪽
46 적야 노인의 친정댁 (2) 22.07.21 43 1 10쪽
45 적야 노인의 친정댁 (1) 22.07.19 43 1 9쪽
44 망각행승 (2) 22.07.17 45 1 10쪽
43 망각행승 (1) 22.07.14 57 1 10쪽
42 북란성을 떠난 이들 22.07.12 54 1 10쪽
41 진실을 찾아서 (3) 22.07.10 51 1 10쪽
40 진실을 찾아서 (2) 22.07.07 56 1 10쪽
39 진실을 찾아서 (1) 22.07.06 67 1 9쪽
38 거검문의 진짜 소문주 (2) 22.07.05 75 1 10쪽
37 거검문의 진짜 소문주 (1) +2 22.07.04 76 1 10쪽
36 여인을 설득하는 방법 (2) 22.06.29 87 1 9쪽
35 여인을 설득하는 방법 (1) 22.06.28 87 3 10쪽
34 야수신궁의 5대 단체 22.06.28 98 2 10쪽
33 세 번째 시험 - 뜻밖의 기연과 새로운 약조 22.06.27 108 1 10쪽
32 세 번째 시험 - 호랑이 가죽에 남겨진 실마리 22.06.23 90 1 10쪽
31 세 번째 시험 - 다시 도채밀림으로 22.06.22 88 1 10쪽
30 하니 마을의 준예(哈尼儁乂) (2) 22.06.19 100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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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다시 만난 스승과 제자 (3) 22.06.19 90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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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운귀고원(云贵高原)을 오르는 사내 (2) +3 22.06.19 106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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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두 번째 시련 - 혼원야수공의 정수 (3) 22.06.19 99 1 9쪽
21 두 번째 시련 - 혼원야수공의 정수 (2) 22.06.19 93 1 10쪽
20 두 번째 시련 - 혼원야수공의 정수 (1) 22.06.19 105 1 10쪽
19 운귀고원(云贵高原)으로 보내진 아이 (4) 22.06.11 132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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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무진이라는 사내 (5) +3 22.06.05 158 2 11쪽
14 무진이라는 사내 (4) +2 22.06.03 156 3 11쪽
13 무진이라는 사내 (3) 22.06.01 164 3 10쪽
12 무진이라는 사내 (2) 22.06.01 175 2 10쪽
11 무진이라는 사내 (1) 22.05.31 201 3 9쪽
10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3) +1 22.05.28 206 2 10쪽
9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2) +1 22.05.27 233 2 9쪽
8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22.05.25 260 3 9쪽
7 비동의 회의 - 억취소악 (憶吹簫樂) +1 22.05.23 300 3 9쪽
6 첫 비무 - 선발제인(先發制人) +2 22.05.20 317 6 11쪽
5 영웅협객(英雄俠客) +4 22.05.18 325 7 10쪽
4 수련과 생사기로(生死岐路) 22.05.16 401 11 9쪽
3 야수신궁의 역사 22.05.13 466 13 9쪽
2 여정의 시작 +2 22.05.11 688 1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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