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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사비칰의 이야기

남만야수왕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와사비칰
작품등록일 :
2022.05.11 22:17
최근연재일 :
2022.08.31 08:38
연재수 :
6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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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51
추천수 :
139
글자수 :
263,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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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2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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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0쪽

적야 노인의 친정댁 (2)

DUMMY

큰 변고를 당할 뻔한 아란을 가까스레 구해낸 반웅. 아란을 업고 다시 객실로 돌아왔지만 그 끔찍한 기억은 한동안 그녀를 괴롭힐 것이다. 자초지종을 들은 가천일이 이를 알리기 위하여 시종과 함께 곧바로 밀존에게 향하였으나 모두 없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찢어진 그녀의 옷을 이불로 덮어준 뒤 옆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반웅 또한 끔찍한 경험을 한 것은 매한가지이다. 떨리는 손으로 누워있는 아란의 손을 꼭 붙잡고 있는 모습이 애처롭기만 하다.


비록 아란을 구하기 위해서였지만 자신의 손으로 누군가의 생명을 앗아간 것은 처음이다. 불과 10살 밖에 되지 않은 아이를 덥쳐오는 복잡한 감정들은 한 평생 뇌리에 남을 것이다.


아란을 덥치려 하였던 괴한을 보고 순식간에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새빨간 분노와 적개심. 다급한 마음에 탁자 위에 놓인 촛대로 그대로 그의 머리를 짓이겨 버린 뒤 찾아온 죄책감과 불안함. 여전히 그를 괴롭히는 손에 묻은 검붉은 피의 끈적한 감촉. 이 모든 것들이 불과 반 시진 전에 벌어진 일이라니 믿을 수가 없다.


가천일 앞에서는 강한 척을 하였지만 결국 반웅 또한 아직 10살 아이일 뿐이기에 쉽사리 떨쳐낼 수 없으리라.


조금이라도 이 감정들을 토해내고 싶었던 걸까.


반웅은 정신을 잃고 누워있는 아란에게 가슴 속에 담아두었던 얘기들을 하나 둘씩 꺼내놓았다.


"아란 소저. 당신을 처음 봤을 때 전 심장이 멎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 이후로 당신처럼 아름다운 여인을 본 것은 처음이었으니 말이죠. 그런 당신과 함께 망각행승을 찾는 여정에 떠나게 되어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조금이라도 당신을 붙잡아 둘 수 있다면 그것이 비록 거짓일지라도 기꺼이 행할 정도였죠. 허나 이번 일로 그것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위험한 일인지 깨달았습니다."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손으로 아란의 손을 단단히 붙잡고 있는 반웅. 검게 질린 얼굴에서 흘러나오는 눈물과 함께 가슴 속에 담아두었던 진심을 뱉어낸다.


"낭자를 처음부터 이 여정에 끌고 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치명적인 비밀을 알고 있다고 하여도 그리하면 안되는 것이었지요. 게다가 음양쌍고를 먹였다고 속여 억지로 동행하게 하다니. 천인공노할 짓입니다. 비록 가 노야께서 노발대발 하시더라도 저는 이제 마음을 굳혔습니다. 당신이 깨어나면 오직 진실만을 말할 것을. 그 이후에는 결국 떠나겠지만 말이죠. 가 노야는 제가 열심히 설득하겠습니다.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습니다."


눈가를 소매로 훔치며 온몸을 휘몰아치는 격정의 파도를 힘겹게 억누른 반웅. 부어오른 그의 눈동자는 이미 무언가 결심한 것처럼 보인다.


침상 위에 얌전히 쓰러져있는 아란은 이를 알 수 없을 테지만 말이다.


=====================================


"금령! 밀교가 대체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것이냐!"


"가 아저씨..."


"어서 대답하거라! 대체 언제부터 이리 난잡하게 변한 것인지 묻지 않았느냐!"


가천일의 거듭되는 비난에 아무런 대답도 없이 고개만 숙이고 있는 금령.


알현실 안에서 그 누구보다 절대적인 존재감을 뿜어내야만 하는 밀존이 이렇게 힘없이 움츠러든 모습은 밀교의 역사 이래 처음일 것이다.


"전대 교주...이신 아버지께서 떠나신 이후로 밀교는 더 이상 제대로 통제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가천일은 밀교가 이 정도로 추락하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몇년 전에 벌어진 마교와의 분쟁 이후로 조금씩 변질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적야의 서신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으나, 그 결과가 이것이라니. 그가 찾아오지 못한 지난 5년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서로 합의가 이루어진 교인들끼리 운우지락을 나누면서 깨달음을 얻고자 하던 밀교가 이제는 상대방의 의사도 묻지 않고 아란처럼 어린 아해를 덥치다니. 사교 무리로 전락할 조짐이 보인다. 이대로라면 자신과 형제들이 다시금 나서야 할지도 모르리라.


"아버지께서는 마교 무리에게 수만 명의 교인을 잃고 나서 과도하게 무공에 집착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자신의 무공 수위가 높았다면 능히 그때의 참사를 막아낼 수 있었으리라 자책하셨죠. 그리하여 본교의 주술을 변형하여 성별의 차이를 통해 살아있는 생물의 선천지기를 흡수할 수 있는 비술을 창시하셨습니다."


이어지는 그녀의 설명은 더욱 놀랍기만 하다. 마교에 복수하기 위하여 내공 증진에만 집착하게된 전대 교주이자 자신의 친우였던 남자가 결국 타락하여 짐승만이 아니라 인간의 기운을. 나아가 무공 고수의 기운을 탐하게 되었다니. 이를 통해 절정 고수에 걸맞은 그릇을 지닌 교인들을 대거 양산하였다는 건 도무지 믿기 힘든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천일은 눈 앞의 밀존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덤덤히 이야기를 털어놓는 그녀의 눈동자는 한 치 흐트러짐도 없다.


"그리 심각한 상황이 되었다면 적야를 통해 십괴들에게 도움을 청하여도 되었지 않느냐! 왜 혼자서 모든 것을..."


"그리하여 적야 삼촌을 통해 가장 가까운 곳에 계셨던 망각행승께 서신을 보내었던 것입니다. 그분께서 적어도 5년간 봉문하면서 자정에 힘쓰면 다시금 도약할 수 있으리라 일러주셨습니다."


가천일은 망각행승의 이름을 듣고 나서야 봉소까지 찾아오게된 이 긴 여정의 목표가 다시금 떠올랐다.


"지금 망각행승은 어디로 갔느냐? 그의 도움이 필요하거늘!"


"그분께서는 하루 전에 이미 본교를 떠나셨습니다. 다음 행선지는 저희도 모릅니다."


아뿔싸. 진즉 물어보았더라면 그의 행적을 조금이나마 쫓을 수 있었을 것을. 금령과의 재회로 들떠서 결정적인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아란이 정신을 잃은 것 또한 치명적이다. 그녀가 겪었을 두려움과 절망감은 가천일의 상상을 우습게 뛰어넘으리라. 허나 곧바로 망각행승을 쫓지 않는다면 넓은 남만 땅에서 그를 찾아내는 것은 모래알 속에 섞여든 좁쌀을 찾는 것보다 어려우리라.


"금령. 밀교를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릴 수 없다면 무(無)로 돌려야 할 것이다. 노부가 지금은 비록 아해들을 위하여 망각행승을 쫓을 수밖에 없으나 반드시 돌아올 것이니 그때까지 밀교를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리거라!"


엄포를 늘어놓은뒤 석실을 나서는 가천일. 그 당당한 발걸음을 갑자기 멈춰세운 뒤 노인은 다시 밀교의 교주를 뒤돌아 본다.


"...금령아, 혹시 극양의 기운을 지닌 영약은 없냐? 쓰러진 아해에게 큰 도움이 되는 물건인데..."


극양의 기운을 지닌 영약이라니. 금령은 가천일의 급작스런 요구에 웃어야할지 화를 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오묘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


"하, 하...간소소 사부님, 마침내 봉소에 도달한 것 같습니다!"


멀리서 보이는 봉황의 둥지(鳳巢)라 적힌 현판을 보고 이구동성으로 소리를 지르는 네 명의 아이들. 사부라 불리운 여인은 가만히 손을 들어 이들의 웅성거림을 멈추었다.


밤낮으로 쉴새없이 경공을 펼쳐가면서 마침내 봉소에 도착한 간소소와 맹웅 일행이다.


"그래. 이곳이 바로 마을의 크기는 비록 작으나 남만과 운남 지역의 상인들은 물론 페르시아 지역에서 오는 상단들도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요충지다. 사건 당일 거검문에서 묵은 창백한 소년과 적발 처녀 일행이 망각행승을 쫓고 있다면 분명 객잔에 있을 것이다! 성호단 소속이라는 것을 밝힌 뒤 샅샅이 뒤지거라! 증인을 확보해야만 한다! 그들을 납치하여 강제로 끌고 다니는 노인은 고수일 수 있으니 조심하도록!"


"예, 사부님! 그들을 찾아내어 반드시 신변의 안전을 지키겠습니다!"


일심천리를 펼쳐 순식간에 봉소 마을 안으로 사라지는 맹웅을 필두로한 네 명의 아이들. 혀를 깨물고 자결한 북란성 흑도 무리의 수장처럼 두 목격자들에게 어떠한 변고가 닥친다면 거검문에서 벌어진 사달에 대한 진실을 밝혀내는 것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이들을 조속히 찾아내어 억울하게 죽은 망자의 원한을 풀어주는 것은 물론, 애당초 계획했던 대로 죽은 전대 소문주 추허와 마교와의 연결점을 밝혀내 거검문의 영향력을 억누르는데 사용해야만 한다.


'거검문도 슬슬 자신들의 입지를 일깨워 줄 필요가 있다.'


한 곳에서 아무런 경쟁 없이 영향력만 비대해진 집단은 결국 안으로 고이고 썩기 마련이다. 끝없는 견제를 통해 새로운 세력 구도를 만들고 이들 사이에서 팽팽한 균형을 유지하여 백성의 평온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성호단의 방식이다.


앞서간 아이들과는 달리 여유롭게 걸어오던 간소소가 입구 앞 만두 가게에서 멈춰선다. 낯익은 인물의 등짝이 보였기 때문이다.


"티엔, 안 따라올 것처럼 말하더니 결국 미리 와있었구나?"


"크흠. 무슨 소리야, 난 그냥 봉황 만두 먹으러 온건데!"


봉황 만두를 게걸스럽게 흡입하고 있는 티엔. 아무리 이 만두가 유명하다 하여도 북란성에서 먼 길을 찾아올만한 별미는 아니다. 그녀도 네 아이들이 내심 걱정되어 따라온 것이리라.


"여기 봉황 만두 하나!"


간소소는 티엔 왼쪽에서 봉황 만두를 먹고 있는 평범한 외모의 승려 옆에 앉아 봉소의 별미를 함께 즐기기로 하였다.


작가의말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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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대리국을 향한 여정 (2) 22.08.26 35 0 9쪽
59 대리국을 향한 여정 (1) 22.08.23 25 0 9쪽
58 봉소, 대월, 그리고 주술 (3) 22.08.21 26 0 10쪽
57 봉소, 대월, 그리고 주술 (2) 22.08.18 29 0 9쪽
56 봉소, 대월, 그리고 주술 (1) 22.08.17 33 0 9쪽
55 전쟁의 서막 (3) 22.08.15 36 0 9쪽
54 전쟁의 서막 (2) 22.08.09 33 0 9쪽
53 전쟁의 서막 (1) 22.08.07 37 1 9쪽
52 불협화음 (3) 22.08.04 40 1 10쪽
51 불협화음 (2) 22.08.02 33 1 9쪽
50 불협화음 (1) 22.07.31 38 1 10쪽
49 북룡폭포에서 벌어진 접전 (3) 22.07.28 50 1 9쪽
48 북룡폭포에서 벌어진 접전 (2) 22.07.26 39 1 9쪽
47 북룡폭포에서 벌어진 접전 (1) 22.07.24 43 1 9쪽
» 적야 노인의 친정댁 (2) 22.07.21 44 1 10쪽
45 적야 노인의 친정댁 (1) 22.07.19 43 1 9쪽
44 망각행승 (2) 22.07.17 45 1 10쪽
43 망각행승 (1) 22.07.14 57 1 10쪽
42 북란성을 떠난 이들 22.07.12 54 1 10쪽
41 진실을 찾아서 (3) 22.07.10 51 1 10쪽
40 진실을 찾아서 (2) 22.07.07 57 1 10쪽
39 진실을 찾아서 (1) 22.07.06 67 1 9쪽
38 거검문의 진짜 소문주 (2) 22.07.05 75 1 10쪽
37 거검문의 진짜 소문주 (1) +2 22.07.04 76 1 10쪽
36 여인을 설득하는 방법 (2) 22.06.29 87 1 9쪽
35 여인을 설득하는 방법 (1) 22.06.28 87 3 10쪽
34 야수신궁의 5대 단체 22.06.28 98 2 10쪽
33 세 번째 시험 - 뜻밖의 기연과 새로운 약조 22.06.27 108 1 10쪽
32 세 번째 시험 - 호랑이 가죽에 남겨진 실마리 22.06.23 90 1 10쪽
31 세 번째 시험 - 다시 도채밀림으로 22.06.22 88 1 10쪽
30 하니 마을의 준예(哈尼儁乂) (2) 22.06.19 100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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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두 번째 시련 - 혼원야수공의 정수 (2) 22.06.19 93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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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무진이라는 사내 (4) +2 22.06.03 156 3 11쪽
13 무진이라는 사내 (3) 22.06.01 164 3 10쪽
12 무진이라는 사내 (2) 22.06.01 175 2 10쪽
11 무진이라는 사내 (1) 22.05.31 201 3 9쪽
10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3) +1 22.05.28 206 2 10쪽
9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2) +1 22.05.27 234 2 9쪽
8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22.05.25 260 3 9쪽
7 비동의 회의 - 억취소악 (憶吹簫樂) +1 22.05.23 300 3 9쪽
6 첫 비무 - 선발제인(先發制人) +2 22.05.20 317 6 11쪽
5 영웅협객(英雄俠客) +4 22.05.18 325 7 10쪽
4 수련과 생사기로(生死岐路) 22.05.16 401 11 9쪽
3 야수신궁의 역사 22.05.13 466 13 9쪽
2 여정의 시작 +2 22.05.11 688 18 11쪽
1 프롤로그 +4 22.05.11 666 18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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