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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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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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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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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0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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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4쪽

Collapse. (6)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삼봉백화점은 오늘도 수많은 고객들로 붐볐다.

회장과 사장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어째 썰렁하다?”


이마가 시원하게 벗겨진 이사가 쩔쩔매매 보고했다.


“요새 평균 방문객 수가 조금 줄었습니다.”

“뭐라? 방문 고객이 줄어?”

“네. 회장님!”

“왜?”

“그것이... 말입니다.”


성격이 급하고 불같은 회장이 버럭 소리쳤다.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

“요즘 극장에서 상영하는 미국영화가 있는데, 그게 백화점이 무너지는 영화랍니다.”

“뭐, 뭐! 백화점이 무너져?”


회장도 찔리는 바가 없지 않았다.

백화점 건물 곳곳에서 이상 징후가 발견되어 급하게 땜질식 보수공사를 하고 있으니까.

게다가 설계회사에서 툭하면 경고를 보내온다.

2층에 무거운 책들을 진열하고 쌓아놓아서 건물 하중에 심각한 무리를 주고 있다는 경고다.

하도 귀찮게 굴어서 지난달에는 대형서점을 지하로 이동시켰다.


“그게 우려되는 것이 그 영화 속 쇼핑몰이 저희 백화점과 거의 비슷... 아니 똑같다고 합니다.”

“야! 이 새끼야! 그런 일이 있었으면 영화가 상영되지 못하게 막았어야지!”

“그, 그것이... 한국영화가 아니라 미국영화라서....”

“미국영화든 방화든 그걸 상영하는 극장은 조선놈일 거 아냐! 공무원을 구워 삼든 겁을 주든 했었어야지. 지금까지 보고만 있었단 말이야!”

“......”

“당장 영화 못 틀게 해!”

“건물 외양만 같을 뿐 장소도 미국이고...”

“미국영화에 왜 우리 백화점이 나와? 말이 돼?”

“그 영화 시나리오 쓴 사람이 한국인이랍니다.”

“그 개자식은 우리와 무슨 원수가 졌기에 그 따위 영화를....!”

“.....”

“극장이 어디야?”

“제일생명사거리에 이번에 오픈한... 최신 공법과 건물 디자인으로 유명한 건물 있잖습니까?”


그때 직원 한 명이 땀을 뻘뻘 흘리며 달려왔다.


“회, 회장님!”


회장의 짜증 섞인 불호령이 터졌다.


“또 뭐야?”

“빨리 가보셔야겠습니다.”

“오늘따라 왜들 그래?”

“지금 케이블TV 뉴스에서 우리 백화점이 나오고 있습니다.”


회장과 임원들이 가까운 매장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대형TV 브라운관에서는 24시간 뉴스채널 YnTV가 나오고 있다.

삼봉백화점 불법 개축 및 냉각탑 공사, 곳곳에서 암암리에 진행되고 있는 보강공사가 생방송 뉴스로 방송되고 있다.

회장의 호통이 백화점을 쩌렁쩌렁 울렸다.


“이 새끼들이! 뭐하자는 수작이야!”


임원들이 자라목처럼 움츠려들었다.


“당장 회의 소집해!”


❉ ❉ ❉


류지호는 삼봉백화점 참사를 막아보기 위해 여러 조치들을 취했다.

그런데 일련의 조치들이 엉뚱한 방향으로 튀었다.

그 중 하나가 전국 대형 쇼핑몰의 고객이 갑자기 줄어든 것이다.

영화의 내용이 입소문을 타면서 널리 퍼져나갔다.

케이블 뉴스채널은 물론이고 지상파 뉴스에서 계속해서 다뤄졌다.

많은 사람들이 불안감을 느꼈다.


“진짜 이번에는 고층빌딩이라도 무너지는 거 아냐?”

“다리도 무너졌는데, 빌딩이라고 무사하겠어?”

“설마....”

“작년 말인가 ‘피디수첩’에서 삼봉백화점 벽에 금갔다고 했던 것 같던데....”

“성수대교 끊어지고 전국 다리 조사한다고 난리 피우지 않았나?”

“그러면 뭐해? 또 유야무야 넘어가겠지.”


연이어 터지는 대형 참사들로 인해 국민들의 공포심이 극에 달한 상황이다.

그런 참에 삼봉백화점을 연상시키는 쇼핑몰이 무너지는 영화가 상영되었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 너무 공교로웠다.

때마침 현실에서 삼봉백화점 불법개축과 온갖 비리가 하나둘 드러났다.

백화점으로 향하던 손님들이 발길을 끊어질 수밖에.


“와우인지 바우인지 손해배상 청구라도 해야 하는 거 아냐!”

“이러다 다 망할 판이야!”


이에 백화점연합회에서 <Collapse>에 대한 상영금지가처분신청을 법원에 제출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런 현상은 백화점 업계에만 해당되지 않았다.

실내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행사들의 예약취조가 줄을 이었다.

며칠 간 교육청 전화통도 불이 났다.

학부형들이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 건물은 이상 없는지 문의했다.


“어머님, 영화는 영화일 뿐입니다.”

- 아파트가 무너지고 다리가 꺼지고, 지하철에서 사고가 나는 판국에 그런 말이 나옵니까!

“미국 영화이지 않습니까? 우리나라 학교는 아무 문제없습니다.”

- 그래도 교육청에서 안전검사라도 해 주세요!

“곧 정부에서 발표가 있을 겁니다. 기다려 주세요.”

- 무슨 만날 기다려달라는 말만 해요. 당장 안전검사 해 보세요!

“후우. 그게....!”


학부형들은 전국 학교에 대한 안전진단을 즉각 실시해 줄 것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교육청의 답변은 알겠다는 말 뿐이다.

그처럼 <Collapse> 극장 상영으로 촉발된 문제의식이 사회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바로 야구장이다.

야구팬들은 야구장에 천장이 없다는 사실에 안심하는 것 같았다.

지방 몇 곳의 야구장은 상당히 노후화 되어 있음에도.

언론은 신이 났다.

영화 <Collapse>로 인해서 한국사회가 요동을 쳤다.

그에 따라서 뉴스거리가 매일매일 튀어나왔다.

이 정도 되면 정부에서 뭔가 움직임이 있어야 했다.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최근에 벌어진 대구지하철가스폭발 사고를 채 수습하기도 전이다.

문민정부 출범 이후 벌어진 대형 사고가 한 둘이 아니다.

괜히 나섰다가는 불난 집에 기름 붓는 격이다.

게다가 전국적으로 고층건물에 대한 안전진단을 실시하기도 힘들다.

예산도 없고, 반발이 상당할 것이기에.

며칠 시끄럽다가 영화 상영이 지지부진하면 자연스럽게 사그라질 사안이라고 애써 외면했다.


“영화 상영을 중지하라!”

“중지하라!”

“국민 불안감 조성하는 와우는 반성하라!”

“반성하라!”

“사회불안 조장하는 영화 상영을 당장 중지하라!”


G.O.M강남점 앞에서 시민단체의 시위가 벌어졌다.

자신들을 나라안전시민본부라고 소개했다.

한눈에 봐도 급히 동원된 어용단체다.


“대구에서 참사가 벌어져 국민들이 불안해 떨고 있는 이 때. 근거 없고 허무맹랑한 내용의 영화를 상영해 국민들에게 공포와 불안감을 확산시키는 영화사는 각성하라!”

“각성하라!”


나래안전시스템에서 파견 나온 직원들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경찰에 신고를 했기에 전경도 출동했다.

가람웨딩에서 파견 나온 직원들이 그들을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했다.

나래안전시스템의 조사부는 자신들이 시민단체라고 주장하는 주동자의 뒷조사를 시작했다.

밝혀진 사실은 어이가 없었다.


“뭐? 단체가 3일 전에 만들어져?”


임건희 사장의 물음에 박영규 이사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나 원 참!"

“재미있는 사실은 단체 회장이라는 자가 삼봉건설 퇴직자라는 겁니다.”

“어이가 없는 사람들이군.”

“이런 짓을 벌이려면 냄새를 지우고 해도 모자란데, 하는 짓이 영락없는 아마추어입니다.”


임건희 사장이 헛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안기부 출신이라더니....”


아무리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고 하더라도 조금만 조사하면 나오는 사람을 시위 주동자로 내세우다니, 삼봉그룹의 대처는 한심한 수준이다.


“안기부 인맥은 정치권에 주로 쓰고 있는 모양입니다. MBS를 제외하고 두 개 공중파에서 삼봉 관련 뉴스가 이전보다 절반 이하로 줄고 있습니다. 내용도 백화점의 불법보다 매출 감소, 입주 상인들의 불만 등으로 논조가 바뀌는 추세입니다. 그리고 다른 백화점 업계 상황으로 물타기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임건희 사장이 한심하다는 투로 혀를 찼다.


“쯧. 사람들이 참 딱하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야지.”

“우리가 의도한 것이기도 합니다. 증거는 MBS와 YnTV에게만 제공했으니까 말입니다.”

“5대 일간지는?”

“텔레비전에 특종을 빼앗겨서 인지, 적극적으로 삼봉백화점을 파고 있습니다. 곧 주요 일간지에서도 뭔가 터져 나올 것 같습니다.”

“빠른 시일 안에 삼봉백화점이 영업을 할 수 없게 만들어야 할 텐데 말이지.”

“온 언론이 달려들어야 하는데, 벌써부터 이탈하는 곳이 생겨서....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장문식 이사는 뭐하고 다녀?”

“글쎄요. 자신은 회장님께서 시키신 일이 있어서 이번 일에서 빠진다는 말 밖에는.”

“양아치는 장 이사가 전문인데 아쉽게 되었군.”


따르릉!


임건희 책상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박영규가 수화기를 들어 귀에 가져다댔다.


“여보세요? 박영규 이사입니다.”

- 이사님, 신촌 신영극장에서 양아치 몇 놈이 행패를 부리는 바람에 한 회 상영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몽타주 따 놨어?”

- 비디오카메라로 얼굴 찍어놨답니다.

“극장에는 환불을 WaW에서 해준다고 해. 양아치들 미행 붙여놨어?”

- 혹시 몰라 직원 한 명을 붙여놨습니다.

“계속 수고해.”


전 정권에서 ‘범죄와의 전쟁‘ 선포와 그에 따른 범죄조직 소탕이 있었다.

그 결과 전국적으로 수많은 조직폭력배들이 검거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조직폭력배들은 대부분 양아치 수준이다.

혹은 정재계와 연줄을 대고 있는 조직 혹은 전국구 조직 한 둘 뿐이다.

임건희 사장이 담배를 입에 물며 물었다.


“또 영업방해야?”

“네.”

“가지가지 한다....”

“삼봉 쪽에서 용돈 받고 일하는 놈들 같은데, 계속 보고만 있어야 합니까?”


삼봉그룹은 건설사를 자회사로 두고 있다.

건설업에는 철거용역깡패가 직간접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경찰은 아니잖아. 놈들을 잡아 처넣을 순 없어.”

“잡아 족칠 순 있죠.”

“인력이 모자라잖아.”

“군대 후임들 모으면 2개 분대는 당장 모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조폭인가? 쇠파이프 들고 양아치들과 드잡이하게.”

“방어만 하는 게 열불이 터져서 그럽니다.”

“어쩌겠어. 나래안전은 합법적이고 정상적인 기업이야. 우린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폭력조직이 아니란 걸 항상 잊지 말게.”

“알고 있습니다. 답답해서 말씀드려 본 겁니다.”

“영업방해, 시설 훼손, 삼봉그룹과의 연관성.... 모조리 증거 확보해 놓아야 해. 그래야 나중에 우리가 이번에 입은 손실 다 메우지.”

“여부가 있겠습니까? 이번에 짝짝꿍한 놈들 아주 빤스까지 털 겁니다.”

“다온과 긴밀하게 협조하는 것도 소홀히 하지 말고.”

“네. 합법적으로 조져야 하니까요.”


그 합법이란 것도 결국은 힘의 논리다.

WaW 픽처스가 삼봉백화점보다 힘이 없으면 반대로 당한다.

때문에 나래안전과 다온 법률사무소는 물밑에서 가용한 수단을 총동원하고 있다.

정치권이 개입하지 않도록.


✻ ✻ ✻


미국으로 출국전 YnTV에 출연했다.

류지호는 영화 <Collapse>와 삼봉백화점의 연관성 질문을 절대 받지 않기로 했다.

어길 경우에는 곧바로 스튜디오를 박차고 나갈 것임을 분명히 했다.

YnTV는 그것 말고도 물을 것이 너무나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제게 투자비결을 물어요. 정말 죄송한 말씀인데 저는 투자전문가가 아니에요.”

- 지금까지 투자한 것들이 모두 성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닙니까?

“과장된 이야기에요. 신도 아닌데... 어떻게 모든 것에서 성공을 이룰 수 있겠어요.”

- 미국의 투자회사가 월가에서도 꽤 큰손으로 알려져 있지요? 어떻게 그 어린 나이에 투자회사를 설립할 생각을 했을까요?

“11살 때 우선주 개념을 알아서 투자한 분도 계시잖아요. 심지어 그 분은 12살 이전에 공매도까지 하셨죠.”

- 혹시 버펫?

“오마하의 현인에 비하면 저는 그저 개미일 뿐이죠.”

- 고등학교 시절부터 타임이나 월스트리트 저널, 파이낸셜 타임스를 읽었다고요?

“읽었다기보다는 영어 교재로 삼았었죠. 파이낸셜 타임스는 헌책방에서 구하기 쉽지 않았어요. 대학에 진학하고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 이미 고등학교 때부터 투자가로서 준비가 되어있었던 거로군요?

“어릴 때 내가 오성이나 경일 같은 대기업의 주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해봤어요. 그러다가 주식회사의 개념을 알게 됐죠. 즉 제가 어떤 회사의 주인이 되고 싶다면 그 회사의 주식을 사면되는 거였어요. 비록 엄청난 주식을 보유할 순 없겠지만 어쨌든 단 한 주를 보유하고 있어도 주인인 것은 맞잖아요. 주식을 보유함으로써 그 회사의 주인이 되어서 기업이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며 성취감을 느끼는 거죠.”

- 성취감을 느낀다는 말이 얼핏 이해가 잘 안 가는데.....

“지금까지 긴급하게 자금이 필요해질 때를 빼고 주식을 가능한 처분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그런 기업들이 커가는 걸 지켜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죠. 제가 주식을 보유한 기업들이 모두 잘 됐으면 좋겠네요.”

- 그래야 주가도 오르고 행복하겠군요?

“부인하지 않습니다. 하하.


한동안 주식투자와 한국과 미국에서 벌이는 사업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류지호는 미국의 금리인상 릴레이에 따른 충격파가 아시아로 향하고 있다는 경고를 슬쩍 언급했다.


“우리나라 역시 넋 놓고 있으면 안 될 거라고 생각해요. 경제 분야 전문가들이 어련히 대비를 하고 있을까 싶지만.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 금융시장이 개방되었다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됩니다. 경제 분야 관료분들이 외환관리에 대해 학교에서 배운 적은 있지만 실제 국제금융시장의 플레이로 제대로 뛰어본 적이 없어요. 제발.... 지나친 기우이길 바랍니다.”

- 최근 그와 관련해 한국경제에 경각심을 주문하고 있죠?

“다른 나라의 케이스를 유심히 살피는 것이 중요해요. 최근에도 몇 개 국가가 IMF로부터 달러를 조달 받았어요. 만약 중남미 국가들처럼 환율 상승이 가파르게 진행되고 보유하고 있는 외환도 거의 없다면 어떻게 우리 정부가 환율방어를 할 수 있겠어요. 위기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외환 유동성 위기로 치닫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외환보유액이 필요하다고 봐요. 물론 누구는 GDP 대비 몇 퍼센트를 정해서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또 다른 누구는 무작정 외환보유고를 늘리는 것은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다고 주장하죠. 중요한 것은 수출중심의 산업구조와 취약한 금융산업을 봤을 때 밀레니엄 전에 외환관리에 관해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정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외환위기를 대비하라고 아무리 떠들어도 안 먹힌다.

문민정부는 연이은 초대형 사건사고로 곤궁에 처해있다.

때문에 류지호와 같이 경제위기설을 주장하는 이들을 강도 높게 비난하고 있다.

한마디로 닥치고 가만있으라는 거다.


- 감독이 아니라 왜 작가로 데뷔를 하게 됐지요?

“아직 학생이잖아요.”

- 학생이지만 트라이-스텔라라는 할리우드 영화사를 소유하고 있어요. 영화 선택권리... 맞나요, 표현이? 암튼 자신의 영화에 그 권리를 쓰면 되지 않나요?

“그런 바보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길 바라고요. 우리의 의사결정 구조가 그렇게 허술하지도 않다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 강남에 오픈한 멀티플렉스 극장에 대해 일각에서는 자본의 횡포 내지는 시장질서 파괴라는 말도 나와요.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에서는 시장 안에서 경쟁이 벌어지고 그에 따라서 자체적으로 혁신이 일어나고 변화가 발생하잖아요. 복합상영관은 영화산업의 미래의 한 부분입니다. 이미 서울극장을 비롯해서 멀티플렉스 사업이 수년 전에 시작이 됐어요. 이제 와서 시장질서를 파괴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합니다."


류지호는 기존의 극장업계를 비판하려다 참았다.


- 충무로에서는 그런 말이 있어요. 우리가 돈이 많아서 영화를 만드는 게 아니다. 그냥 영화 자체에 애정이 있을 뿐이다.

“앞으로는 바뀌어야죠. 언제까지 대기업과 금융자본이 영화산업에 관심을 가져줄지 확신할 수 없지만, 그들과 함께 선진적인 산업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하는 것이 죄가 아니잖아요. 영화업에 종사한다는 이유만으로 신부 부모님이 결혼을 반대하는 일은 없어야죠. 모두가 잘 먹고 잘 살순 없다고 해도 최소한의 밥벌이를 할 수 있도록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대담을 지켜보는 황재정이 고래를 절레절레 저었다.


“평소에는 말장난도 좀 하는 놈이 이럴 때는 엄청 진지만 빤단 말이야.”


나란히 서 있는 최영미 비서가 고개를 푹 숙였다.

류지호의 이미지 마케팅 전반을 책임지고 있기에.


✻ ✻ ✻


류지호가 3박 5일간의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미국으로 돌아간 후로 관련자들 사이에서 숨 가쁜 움직임 이어졌다.

삼봉백화점은 호떡집에 불난 집처럼 시끄럽고, 어수선했다.

백화점 관리부 김부장이 시설관리 이사에게 채근했다.


“이사님, 지금 모두 회의실로 모인다고 합니다. 같이 가시죠.”


후우.


깊은 한숨을 내쉰 시설관리 이사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두 사람이 떠난 자리.

균열이 발생한 건물 벽면에 시멘트를 바르는 인부들만 남아 작업을 계속했다.

두 사람은 남관 3층에 위치한 회의실로 향했다.

회의실 앞에는 건축사무소 소장과 구조기술자가 서성거리고 있다.


“안 들어가고 뭐 하십니까?”

“.....!


이사의 말에도 꿈쩍하지 않는 두 사람이다.


“들어갑시다. 회장님 기다리십니다.”


시설이사와 관리 부장의 채근에 할 수 없이 회의실로 들어가는 두 사람이다.

임원회의실 안에서는 대책회의가 벌어지고 있다.

회장이 건축사무소장에게 명령했다.


“앉지 말고, 설명부터 해봐!”


소장은 한쪽에 놓여있는 바퀴가 달려있는 대형 화이트보드를 끌고 왔다.

보드 마커로 화이트보드의 삼봉백화점 구조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설명을 시작했다.


“.....!”


설명이 이어지는 가운데 회장은 얼굴이 붉어졌다.

당장 폭발할 듯 엉덩이를 들썩였다.

임원들은 그런 회장의 눈치를 살피느라 건축사무소장의 설명은 귀에 제대로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래서 어쩌자는 거야! 허물고 다시 져?”

"건물의 안전에 중대한 이상이 발견됐으니 빨리 긴급보수를 해야 합니다.“


회장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고함쳤다.


“보수는 이미 하고 있잖아!”


건축사무소장은 임원들에게 설명하며 안정을 되찾은 것 같았다.

그는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또렷한 말로 경고를 날렸다.


“제 말씀은! 당장 백화점 영업을 중지하고 전면적인 보강공사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뭐? 그게 무슨 개소리야! 영업을 중지해?”

“신공법으로 보수하면 위기를 넘길 순 있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침하는 멈출 수 있긴 합니다만.....”


경영지원이사가 회장을 힐끔거리며 성을 냈다.


“이보게! 매장을 폐쇄한다는 게 가능할거라고 보나? 우리 백화점 하루 매출이 얼마인 줄 알아?”


그의 말을 시작으로 매장 폐쇄 여부, 보강 공사인지 전면 개보수인지를 놓고 편이 갈려 난상토론이 벌어졌다.

건축사무소장과 구조 전문가는 지지대를 받치고 보수를 하면 더 이상의 위험은 없다고 했다.

다만 옥상에 위치한 구조물들을 당장 철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영업 중지를 건의한 중역은 한 명도 없다.

대신 책임소재를 놓고 자기들끼리 싸웠다.


“그러게 내가 금융동을 1층으로 옮기고 서점을 그 자리로 옮기는 걸 반대했잖습니까?”

“아니, 은행들이 1층으로 옮기고 싶어 했던 걸 누구 책임으로 돌리는 겁니까?‘


1993년이었다.

2층에 위치하고 있던 한미은행, 조흥은행을 1층으로 옮겼다.

그 자리는 내부공사를 진행한 후 삼봉문고라는 이름의 대형 서점이 들어섰다.

1년 정도 서점을 운영했다.

그 기간 중앙홀 부분에서 균열이 셀 수 없이 늘었다.

건물 구조가 어마어마한 서적들의 무게를 버티지 못한 것이다.

그 이후로 건물의 위험 징후가 계속해서 늘어났다.

결국 관리부는 올 초에 서점을 철수했다.

그럼에도 이미 생긴 균열은 점점 늘어만 가고 있는 상황이다.


“5층 식당가 또한 심각합니다.”


급기야 회장이 완전히 폭발해 버렸다.


“심각! 심각! 그 놈에 심각 말고는 할 말이 없어!”


이야기를 들어보면 백화점이 당장 무너질 것만 같았다.

당장은 안 무너지지만 이대로 있다가는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모두가 설마 하는 분위기다.

건축설계사와 구조전문가조차도.


‘얼마나 돈을 퍼부어 만든 백화점인데! 한 달 매출이 얼마인데!’


회장은 마음 같아서 앞에 놓여있는 물컵과 커피잔을 밥만 축내는 간부라는 놈들에게 집어 던지고 싶었다.

하지만 꾹 참았다.

성질을 부린다고 해결책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간신히 화를 억누른 회장이 입을 열었다.


“5층 식당가도 폐쇄하고 공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 쪽도 지난달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해 꽤 곤란한 상황입니다.”


대구지하철가스폭발 사고가 벌어질 때 즈음, 5층 식당가 천장에서 균열이 발생해 모래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5월 중순부터 바닥까지 서서히 내려앉기 시작했다.

그때는 누구도 눈치 채지 못했다.

정밀한 안전진단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기....”


시설부장이 손을 들었다.

임원들의 시선이 그에게 쏟아졌다.


“사실 어제 중앙홀 쪽에서도 금이 간 걸 직원이 발견했습니다.”

“후우.”


회장은 급격하게 피곤이 밀려왔다.

결국 최종결정을 내려야 했다.


"당장 큰 위험은 없으니 영업을 계속하면서 보수공사를 하도록... 해.“

“.....”

“왜 대답이 없어!”

“넵!”


회장의 불같은 호통에 억지로 대답하는 임원들이다.

임원들이라고 해서 여유로운 것은 아니다.

왠지 불안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런 감정을 무시했다.

그들은 회장의 불같은 성질이 두려운 것이지, 건물의 위험성은 사실 안중에도 없다.

그저 누군가 책임을 져야하는 상황이 겁이 날 뿐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니까.


“모두 나가서 일 봐! 홍보실장은 남고.”


대표이사와 임원들이 우르르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홍보실장이 회장에게서 서너 발 떨어져 섰다.

혹시 정강이라도 걷어차일 것을 우려해 평소보다 조금 더 떨어졌다.


“일루 와. 왜 거기 서있어?”


회장이 손짓까지 동원해 홍보실장을 가까이로 불렀다.

마지못해 회장에게 다가와 두 손을 가지런히 포개 배에 대는 홍보실장이다.

한 대 쥐어터질 각오를 하고서.


“언론은?”

“두 개 방송사와 신문사는 일단 막았습니다마는....”

“겨우?”

“PD수첩에서 우리 백화점을 고발했던 MBS와 케이블 뉴스는 도무지 말이 안 통합니다.”

“내가 거기 사장들하고 밥도 같이 먹었는데도 그렇단 말이야?”

“뉴스 편집은 국장에게 있다고 하면서....”

“무슨 그런 개소리가 다 있어?”

“개편 때 국장들이 물갈이가 되서 그렇습니다.”

“그러게 내가 뭐라고 했어. 엉? 미리미리 약 처 놓으라고 했잖아!”

“죄송합니다. 회장님!”

“우는 애들 사탕 안 주면 나중에 어떻게 되는 줄 알아?”

“.....?”

“지금처럼 짱돌 던지는 거야. 그게 중요한 거야.”

“명심하겠습니다.”

“한 시간 후에 내 방으로 올라와.”

“예! 회장님!”


돈을 내주겠다는 의미다.

그걸 이용해 말 안 듣는 언론사들 구워삶으라는.


“....!”


사장과 건축사무소장, 구조 전문가가 이상 징후가 발견된 백화점 곳곳을 돌아봤다.

그리고 구체적인 보수 계획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그걸로 끝이다.

백화점 폐쇄나 영업정지는 없었다.

이곳저곳에서 위험한 징조가 있었으나 백화점은 영업을 강행했다.

이들은 꿈에도 몰랐다.

중앙홀과 건물 곳곳에서 균열과 뼈대 구부러짐 현상이 일어나면서 백화점 건물 전체가 서서히 기울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정확히 한 달 후 기울어짐이 최고정점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건물 전반에 걸쳐 대대적인 보강공사를 한다고 한들 이미 늦었다는 것을.


작가의말

편안하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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