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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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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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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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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2.08.0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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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Collapse. (7)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WaW 픽처스는 일찍부터 천리안, 하이텔, 나우누리에 게시판을 열었다.

UPI와 함께 한국의 영화배급사로서는 유일한 영화정보 게시판을 운영했다.

G.O.M Cinemas가 멀티플렉스를 개관하기 전까지 PC통신 WaW 게시판에는 많은 글이 올라오지 않았다.

하지만 G.O.M강남점이 개관한 첫 주말이 지나고 상황이 달라졌다.

게시글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한꺼번에 10편의 영화가 한 공간에서 상영되었기 때문이다.


“인터넷 인구가 10만 명 선이라고 하지 않았나....?”

“무슨 소리야? 작년에 이미 PC통신 가입자 수가 78만 명을 돌파했다고 보도가 나왔구만.”


PC통신 가입자는 1993년에 불과 3만 명이었다.

불과 3년 만에 15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이용자층은 주로 20~30대 대학생 및 직장인 중심이었다.

점자 청소년과 중장년 층 및 여성에 이르기까지 전 국민적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매달 폭발적인 가입자 수를 갱신하고 있다.

PC통신에는 최신 트렌드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각종 정보를 얻는 수단은 PC통신에서 기본이다.

광고, 홍보, 때로는 여론 형성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종합미디어다.


“영화가 8편이 되니까 게시글 올라오는 속도가 장난 아니네.”

“대체로 리뷰와 질의응답 같은 소소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어.”

“문제는 <Collapse>야.”


PC통신 각각의 WaW 게시판에는 <Collapse>와 관련해 의견 충돌과 논쟁이 벌이지고 있다.

제일 민감한 논쟁은 ‘한국 비하‘다.


- 과연 영화가 노골적으로 한국과 한국인을 비하한 것인가.

- LA 또 샌프란시스코는 다양한 인종이 살고 있는 대도시다. 영화는 그런 현실을 충실히 반영했다.

- 솔직히 LA폭동 때 한국인들에 대한 미국인들의 부정적인 평가를 보면 납득이 가는 면도 없지 않다.

- 류지호에게 실망이다. 어떻게 같은 한국인을 나쁘게 영화에서 묘사할 수가 있나.

- 영화는 영화로 봐라.

- 류지호가 뭘 잘못했나. 잘못한 건 한국인이다.


PC통신의 뜨거운 논쟁은 WaW 픽처스 입장에서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동시에 가져다줬다.

좋은 점은 관객수가 꾸준하게 유지된다는 것이다.

PC통신에 붙은 논쟁이 지상파 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이 진짜 한국 비하가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 했다.

원래라면 3~4주차에 관객수가 눈에 띠게 줄어들 법도 했다.

그런데 꾸준히 나쁘지 않은 관객수를 유지했다.

하이텔 영화동호회 '시네마 천국'과 영화시사 동호회 '시네드림' 그리고 나우누리 “빛그림 시네마‘ 게시판에서도 <Collapse>에 관한 다양한 리뷰가 올라왔다.

일반인들은 주말을 맞아 영화나 한편 보자고 마음을 먹어도 후회 없는 선택을 하기는 쉽지 않다.

영화잡지로 정보를 얻기에는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고, 지나간 신문의 영화란을 뒤져보는 것은 번거로웠다.

그래서 대안이 되는 것이 PC통신 영화동호회 게시판이다.

다양한 게시글을 통해 회원들의 영화 정보가 교환된다.


- 꼭 보세요. 볼 만 합니다.

- 내 돈 돌리도.

- 잼 없슴.

- 안 보면 후회함.

- 절대 보지 마세요.

- 돈 많고 시간 남아돌면 안 말림.


영화 관객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연령은 대학생이나 20~30대 직장인들이다.

그들 다수는 PC통신에 능통했다.

게임, 판타지 소설, 자동차, 애니메이션 등과 함께 영화 관객에게 PC통신이 미치는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때문에 WaW 픽처스 홍보팀은 PC통신을 매우 꼼꼼히 모니터하고 있다.


“천리안 영화 동호회 한 곳에서 감독님을 초청하겠다고 문의를 해왔대.”

“감독님은 미국으로 돌아가셨는데?”

“한국 비하와 관련해서 속 시원하게 해명할 기회를 주겠다고 하더라.”

“규모가 큰 동호회야?”

“2~3위권일 걸.”

“그런 동호회 운영진과 관계를 잘 맺어두어야 하는데....”

“나중에 감독님이 연출한 작품 개봉할 때 PC통신 동호회와 콜라보를 한 번 고민해 보자고.”


PC통신 사용자가 10만 명이든 100만 명이든 상관 없다.

PC통신의 영화 이슈를 <Collapse>가 모조리 빨아들였다는 거다.

영화에서 논란이 있다는 것은 문제작이란 의미다.

뭐가 문제인지 확인해보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작동한다.

흥행에 청신호가 켜진 것이다.


❉ ❉ ❉


상영금지가처분 소송.

문민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는 유명무실했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사전에 문제가 될 만한 것들을 삭제하거나 상영 자체를 못하게 만들었다.

검열제도 때문이다.

만약 그 시절에 <Collapse>를 개봉했다면 한국인 비하문제가 관객들 사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검열당국에서 먼저 지적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어쨌든 사전검열이 사실상 폐지됐다.

점차 등급심의로 넘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등급심의를 무사히(?) 통과한 영화의 극장 상영은 문제될 것이 없다.

다만 민사로 진행되는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은 다른 문제다.

박건호 대표가 드물게 화를 냈다.


“영화를 관객의 선호와 판단이 아닌 법원에 맡기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Collapse>의 상영으로 백화점 영업에 심각한 손해를 초래했다.

따라서 영화상영을 금지해달라.

그 같은 소송이 법원에 접수되었다.

백화점연합회에서 제기한 이 상영금지가처분 소송에 하도 어이가 없어 평소 화를 잘 내지 않는 박건호까지 성을 냈다.


“흥분하지 마세요. 대표님.”


다온 법률사무소의 변호사의 말에 박건호 사장이 금방 흥분을 가라앉혔다.


“아, 못난 모습을 보였습니다.”


실화를 다룬 영화는 사건 당사자, 피해자, 유족 등이 민감하게 대응할 수 있다.

영화가 사실을 왜곡했다거나 당사자의 명예를 훼손했다면, 당연히 법적 대응도 불사하는 것이 맞다.

이런 경우 손해배상 청구뿐만 아니라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법원의 판례에 비춰 봤을 때 일부 내용을 수정하는 경우는 있어도 영화 상영 자체를 하지 못하게 하는 건 매우 드물다.


“표현의 자유’와 인격권 침해 등의 가치가 충돌했을 때, 법원은 주로 표현의 자유 쪽에 서기 때문입니다.”


오동석이 끼어들었다.


“그럼 기각될 거란 말이죠?”

“법원에서 예술적 창작물인 영화의 상영 자체를 금지하거나 혹은 그 영화 내용을 직접적으로 수정 및 삭제해 달라는 취지의 피해자 청구를 인용하는 것은, 사법 절차를 통해 예술의 자유를 직접적으로 제한하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또 상업적 흥행이나 관객의 감동 고양을 목적으로 하는 상업영화의 특성을 보았을 때, 의도적인 악의 표출에 이르지 않는 한 사실을 다소 각색하는 것은 용인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손해배상도 하지 않아도 되겠군요?”

“그렇습니다. 특정되지 않은 것으로 인해 <Collapse>가 인격적 법익을 침해한 바도 없고, 영화가 직접적으로 백화점 영업에 지장을 초래했다고 증명할 수도 없습니다. 영화가 개봉한 후 백화점 방문 고객이 줄었다는 것만으로 영화 상영을 금지해야 할 정도로 중대하지 않습니다.”

“삼봉백화점 회장의 명예훼손 소송도 성립하지 않겠죠?”

“앞서 설명한 이유로 인격권 침해 내지 명예훼손의 성립을 인정하려면 구체적이고 명확한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건물 외양 색이 분홍색이란 것으로 연관성을 짓기에는 무리가 따릅니다. 영화 내용 중 문제되는 부분이 진실이라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또한 영화는 역사와 현실을 동시에 담고 있는 이상 표현 및 창작의 자유가 위축 돼 부당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판결을 낼 수 없습니다.”


다온 법률사무소 변호사의 설명을 듣고 나서 WaW 픽처스 임원들은 안심할 수 있었다.

아무리 간단한 소송이라도 최소 한 달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최종 판결이 나기까지 3개월이 걸릴 터.

그 시간이면 이미 영화는 극장에서 상영이 끝나 있을 상황이다.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은 손해배상 외에는 크게 실익이 없다.

여담으로 1995년부터 20여 년간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이 제기된 영화 22건 중에서 원고가 승소한 경우는 4건에 불과했다.

그 4건마저도 일부 승소에 그치게 된다.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이 도리어 영화의 노이즈마케팅에 도움을 주는 경우까지 벌어진다.


“소송은 아무 걱정 마십시오.”

“부탁합니다.”

“법적인 트러블이 생기면 중간에서 조정하는 것이 저희 역할입니다.”

“믿습니다.”

“그리고 영업방해 등을 저지른 사람들 자료 지금 바로 준비해서 보내주세요. 빠른 시일 내로 그들을 만나 보겠습니다. 협상이 여의치 않으면 당연히 이 또한 소송이 진행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리 알고 있도록 하겠습니다.”


볼일을 마친 변호사들이 사무실을 빠져 나갔다.

그들은 백화점연합회의 소송과 극장에서 영화상영을 방해한 양아치들 그리고 G.O.M강남점 앞에서 시위를 벌였던 시민단체와 관련된 협상과 소송을 진행하게 된다.


❉ ❉ ❉


MBS 9시 뉴스와 YnTV가 경쟁적으로 삼봉백화점 관련 뉴스를 내보냈다.

영화가 개봉한지 한 달째가 될 시점.

주요 일간지들이 새로운 삼봉백화점 비리 의혹을 터뜨렸다.

결국 삼봉백화점에서 내부고발이 터졌다.

작년에 퇴사한 직원이 모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백화점의 부실시공을 폭로한 것.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와 저명한 건축가들의 인터뷰가 YnTV 전파를 탔다.


“제가 본 최초 도면과 이후 개축되고 변경된 도면이 사실이라면 한 달 안에 건물이 붕괴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합니다.”

“지금이라도 건물을 폐쇄하고 정밀안전진단을 시행해야 합니다.”


삼봉백화점이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말에 대중들이 깜짝 놀랐다.

그 보도가 나가고 전국 백화점 고객이 더 줄어들었다.

그 외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시설 역시 인적이 뜸해졌다.

이쯤 되면 관계당국에서 나서야 할 텐데, 도리어 언론사의 보도태도를 문제 삼았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덮으려고 했다.

백화점 입주 점포 상인들이 대책을 요구했다.

상영금지가처분 신청 소송을 제기한 백화점 연합회는 더 이상 영화상영 문제에만 매달릴 수 없었다.

문제의 삼봉백화점과 관계당국을 압박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때 삼봉백화점 입주상인 모임이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 불안해서 도저히 장사를 못하겠어요.

- 백화점 영업시간이 끝나면 인부들이 백화점으로 들어와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 어떤 날은 천막으로 가리고 공사를 하는 날도 있었습니다.

- 백화점 영업을 전면 중지하고 보수공사를 하던지, 정밀 안전진단을 받아보던지 뭔가 조치를 취해주시기를 요구합니다.


삼봉백화점 측에서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작은 하자가 발생하긴 했다.

하자보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대형시설에 대해 전면적인 안전진단을 실시하라!”

“실시하라!”


시민단체와 일반 국민들의 시위가 국회의사당 앞에서 연일 벌어졌다.

그제 서야 정부가 움직였다.

건물붕괴 위험성에 대한 조치는 없었다.

백화점 경영진에게 원상복구 명령을 내릴 뿐.

애매한 표현이다.

원상복구라 함은 설계대로 만들어놓으라는 뜻.

그렇다면 건물을 헐어버리고 새로 지어야 했다.

그 같은 시정명령을 삼봉백화점 측이 따를 리가 없다.


“영업정지라도 내리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경고와 시정 명령이라니!”


류지호는 공무원들이 일하는 걸 보며 답답하고 한심했다.


“폭탄설치 했다고 112에 신고전화라도 해야 할까?”


정확한 붕괴날짜를 모르니 시도할 수도 없다.

자칫하면 양치기 소년의 우화처럼 될 수도 있고.

더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영화는 영화대로 이슈몰이와 함께 흥행가도를 달렸다.

6월 말까지 삼봉백화점에는 별다른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다.

긴장감도 떨어졌다.

다시 예전의 안전불감증으로 돌아가는 분위기다.

PC통신 게시판에서는 새로운 이슈가 불 붙었다.

영화 흥행을 위해 무리한 노이즈마케팅을 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혹이 제기 때문이다.

그때 삼봉백화점에서 WaW 픽처스에 대해 손해배상 소송을 걸어왔다.

언론에 대고 미국 변호사를 고용해 트라이-스텔라 픽처스에도 소송을 걸겠다고 선포했다.

방귀 뀐 놈이 성내는 꼴이다.

다온 법률사무소가 즉각 대응에 나섰다.

YnTV는 끈질기게 삼봉백화점을 물고 늘어졌다.

회사의 운명을 걸었다고 할 정도다.

서초구청은 쏟아지는 민원에 항복 선언을 할 수밖에 없었다.

감리회사, 건축설계를 담당한 건축사무소, 전문가들로 구성된 전문가들이 삼봉백화점에 대한 정밀안전진단을 실시했다.


“한 달 간 영업정지. 신공법에 의한 보강보수공사 명령.”


6월 셋째 주.


마침내 삼봉백화점은 영업을 정지했다.

손님을 받지 않고, 한 달 간 공사에 들어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실제 역사에서 삼풍백화점이 붕괴되는 바로 그 주가 시작되었다.

붕괴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전 삶과 역사가 달라질 줄 알았지만.....


6월의 마지막 날.


마치 역사는 되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서초동 삼봉백화점에 나와 있습니다. 이곳은 현재 마치 거대한 폭격을 맞은 듯이 많은 먼지와 건물 잔해 더미가 그대로 깔려 있습니다. 오늘 오후 6시 경 서울 서초동에 있는 삼봉백화점 5층 건물 약 100미터 가운데 중심부 부분 50여 미터가 완전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삼봉백화점이 끝내 무너지고 말았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대규모 인명사고는 벌어지지 않았다.

영업을 중지하고 보강공사 중이었기 때문에.

그렇다고 희생자가 완전 없을 수는 없었다.

매장에서 물건을 빼던 점포 주인과 지하에서 보강공사를 하던 인부 몇 명.

사무실에서 근무하다가 미처 대피하지 못한 백화점 직원 등.

12명이 무너진 건물에 매몰되었다.


“우리도 돕게 해주세요.”

“저는 UDT 출신입니다!”

“하이텔 영화동호회에서 왔어요. 피 안 모자라요? 우리 모두 헌혈 할 수 있어요!”

“김밥 좀 싸왔는데 드시고 하세요! 구조하다가 먼저 쓰러지겠어요.”

“소방관 아저씨 시원한 물 좀 드세요.”

“여기 우유랑 빵도 있어요.”


건물이 붕괴되자마자, 인근 주민들이 한 손이라도 거들기 위해 모여들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자 전국 각지에서 매몰자 수색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다며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첫날 두 사람이 구조된 걸 제외하고, 삼일 째까지 큰 성과가 없었다.

영화 <Collapse>가 도움이 되었던 걸까.

구조작업에 약간의 체계가 만들어졌다.

이전 삶에서는 붕괴 초반 가스폭발로 화재가 발생했다.

매몰되었던 생존자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바로 그 유독가스로 사망했었다.

이번에는 초등 대처가 대체적으로 빨랐다.

화재부터 제압했다.

그런 후에 구조작업을 시작했던 것.

경찰 통제선(폴리스 라인)은 1996년부터 도입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즉각 도입되었다.

자원봉사자들이 너무 많이 삼봉백화점 사고 현장으로 운집했다.

원활한 구조작업과 자원봉사자들의 안전을 위해 통제선을 쳐야했다.

영화 <Collapse>로 인해 재난대비책에 관한 논의가 한 달 넘게 이어졌다.

그 등쌀을 이기지 못한 공무원에게 변화가 생겼다.

한국의 공무원은 일단 시키면 누구보다 잘한다.

안 시키면 아무 것도 안한다.

대충 시키면 대충한다.

꼼꼼하게 지시하고 결과까지 확인하면 진짜 꼼꼼하게 일한다.

이번에도 그런 공무원의 자세를 여실히 증명했다.

비교적 긍정적인 모습으로.

삼봉백화점은 완전히 무너졌다.

그 여파는 생각보다 컸다.

보험회사가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다.

명백한 불법과 비리가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입주 상인들 역시 가만있지 않았다.

재산을 붕괴사고로 모두 잃었으니까.

당연히 손해배상 소송을 걸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영화 <Collapse>가 재조명 되었다.

연일 매진 행진을 기록했다.

삼봉백화점 붕괴 후에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자원봉사자들과 시민들이 연대했던 기억을 다시 한 번 곱씹어보기 위해서.


✻ ✻ ✻


삼봉백화점 사건이 전 세계로 타진됐다.

세계 주요 외신들이 초유의 대형 사고를 실시간 뉴스로 전하는 것과 동시에 비판을 내놓았다.

한국에서는 외신보도가 전해지진 않았다.

그런데 해외에서도 삼봉백화점 붕괴사고가 큰 뉴스였다.


[한국 정부가 잇따른 대형사고로 부실공사 추방을 강력히 천명한 상태에서 발생한 이번 사고로 국민들의 불신이 더욱 심화 됐다.]

- CNN.


[한국에서는 최근 다리 붕괴(성수대교)와 가스폭발(대구) 등 수십 명 규모의 희생자가 나는 대사건이 잇따르고 있으며 대부분의 사고가 시공이나 관리상의 허점 때문이라고 지적되고 있어 고도성장의 여파가 아닌가 하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

- 도쿄아사히신문.


독일 언론들도 삼봉백화점 붕괴사건이 구조적 부실공사병폐. 눈가림식 처벌, 국민의 안전의식 결여 등 복합적 원인에서 발생한 것이라며 신랄히 비판했다.


[한국에서 공사규칙은 허울에 불과해 철근은 장부에만 기록하고 실제는 눈가림식으로만 집어넣으며 기본적인 안전시설조차 마련해놓지 않고 있는 현실이 이런 재난을 불러오고 있다.]

-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


대형 참사는 막았다.

그럼에도 아까운 생명이 쓰러졌다.

매몰자 가운데 여섯 명은 끝내 살아서 구조되지 못했다.

한 사람의 생명이든 수백만의 생명이든.

그 생명의 무게는 같은 것이다.


"죄송합니다. 여러분 모두의 운명과 맞짱 떠서 승리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저 멀리 태평양 건너, 대한민국 방향을 향해 류지호가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단순히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못 살리고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 끊겼을 운명을 되살려 이어줬다.

끊기지 않아도 되었을 운명을 끊어놓았을 수도 있다.

좀 더 치밀하고 치열했다면.

과연 모두를 구할 수 있었을까.

의미 없다.

부질없는 가정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슬퍼하거나 멈춰서 있어선 안 된다.


후우웁.


류지호가 크게 심호흡을 했다.

뭔가 또 하나가 정리가 된 것 같다.

살아남은 자들은 죽은 사람들의 삶을 나눠 짊어져야 한다.

그들의 몫까지 두 배 세 배 더욱 열심히 살아야 한다.

류지호는 그렇게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가슴을 누르고 있던 돌덩이가 조금은 작아진 것 같았다.

과거로 돌아온 것이 축복이자 시험이고 형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역사를 알고, 일어날 사건을 안다는 것.

특히나 불행한 사건일 경우.

행운이자 불운이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뒤섞인 삶을 산다는 것.

자칫 정신이 무너질 수도 있다.

류지호는 자신이 영화업을 직업으로 삼은 걸 다행이라 생각했다.

영화를 포함한 예술 활동이란 것이 맨 정신으로 버틸 수 없는 분야이니까.

뭔가 명확한 목표가 없었다면.

다시 맞이한 과거 속에서 정신이 표류할 수도 있었다.


“소설속의 회귀자들이 돈을 벌려고 애쓰고, 정의를 구현하려고 애쓰고.... 때로는 복수라는 행위에 집중하기도 하고. 어쩌면 미치지 않기 위한 발버둥 일지도.....”


한국의 외환위기를 떠올리면 감히 끼어들 엄두가 안 난다.

국가 단위를 넘어 글로벌 경제와 탐욕스러운 자본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에.

그럴 때면 무력감도 느낀다.

과거로 돌아와 대단한 인물이 된 것 같다.

그럼에도 속 시원하게 해결 할 수 있는 문제는 결국 개인적인 것들뿐이다.


‘모른 척하고 꿀만 빨아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지만....’


회귀자로서의 양심 문제가 아니다.

트라우마와 관련되어 있다.

90년대 이후 삼봉 붕괴, 대구가스폭발, 외환위기, 여객선침몰사고, 대통령 탄핵 기타 등등.

더 거슬러 올라가서 백여년 간 한국사회가 겪은 수많은 일들은 피해자만의 고통이 아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 크든 작든 트라우마를 남겼다.

류지호라고 해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한국의 영화감독들이 보여주는 감성과 공감력이 한국현대사의 버라이어티한 사건들에서 비롯된 트라우마가 원천일지도....’


트라우마를 가진 창작가가 사회적 트라우마를 건드려 감동을 이끌어내는 것.

그것이 대중예술가인 영화감독의 역할 중에 하나가 아닐까.

그 같은 생각을 해 보는 류지호다.

암튼 광복이후 쉼 없이 달려온 대한민국은 정치·경제·사회 전 분야에서 바닥을 찍고 있다.

불행하게도 완전한 바닥은 아직 닥치지 않았다.

십년을 백년처럼 살아가고 있는 한국인들이다.

과거로 돌아온 류지호는 한 술 더 떠서 일 년을 백년처럼 살아가고 있다.

정신이 온전한 것이 기적에 가까울지도.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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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 다들 수고가 많다....? (1) +5 22.08.29 5,104 158 23쪽
261 누가 자네를 말릴 수 있겠어. +8 22.08.27 5,177 168 26쪽
260 The Killing Road. (14) +12 22.08.26 5,002 170 29쪽
259 The Killing Road. (13) +5 22.08.25 4,789 160 25쪽
258 The Killing Road. (12) +7 22.08.24 4,817 161 26쪽
257 The Killing Road. (11) +4 22.08.23 4,886 154 26쪽
256 The Killing Road. (10) +9 22.08.22 4,891 148 23쪽
255 The Killing Road. (9) +6 22.08.20 5,006 152 26쪽
254 The Killing Road. (8) +5 22.08.19 5,053 144 25쪽
253 The Killing Road. (7) +12 22.08.18 5,014 156 23쪽
252 The Killing Road. (6) +7 22.08.17 5,118 162 25쪽
251 The Killing Road. (5) +4 22.08.16 5,177 151 22쪽
250 The Killing Road. (4) +5 22.08.15 5,161 163 21쪽
249 The Killing Road. (3) +4 22.08.13 5,302 167 22쪽
248 The Killing Road. (2) +12 22.08.12 5,334 161 22쪽
247 The Killing Road. (1) +16 22.08.11 5,815 173 26쪽
246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영웅놀이....! +17 22.08.10 5,583 200 27쪽
» Collapse. (7) +8 22.08.09 5,295 168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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