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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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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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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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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0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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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3쪽

도전은 좋은 겁니다.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충무로.

미국의 할리우드처럼 한국영화를 부르는 하나의 고유명사처럼 여겨지는 명칭.

충무로가 영화의 거리가 된 것은 영화관이 이곳에 몰려 있었기 때문이다.

단성사, 피카디리, 서울극장, 국도극장, 명보극장, 스카라극장, 대한극장에 이르기까지.

역사성과 규모를 자랑하는 극장이 모여 있다.

종로와 퇴계로를 가로지르는 돈화문로 인근에서 가장 교통량이 적고 땅값이 싼 곳이 충무로 일대였다.

자연스럽게 영화사들이 밀집하기 시작했다.

영화사들이 자리 잡게 되면서 영화인과 지망생들로 넘쳐나는 건 당연한 일.

80년대까지만 해도 충무로 청맥다방이나 스타다방에 들르면 어렵지 않게 유명 영화배우나 영화감독과 마주칠 수 있었다.

충무로에 개봉관이 들어서고 영화사가 모여들고, 영화 소품을 운반하다가 오토바이 가게가 자리 잡게 되고, 배우 지망생의 프로필 사진을 찍다보니 사진관이 번성하게 됐으며, 영화 포스터와 홍보전단지 때문에 인쇄소들이 많아지게 되었다.

물론 촬영장비 렌탈숍 역시 충무로에 자리를 잡았다.

그 같은 충무로 영광의 시대도 올해까지다.

충무로에 있던 영화사들이 본격적으로 강남으로 옮겨가고 있다.

새롭게 부상하는 영화인들이 옮겨간 곳은 바로 도산대로.

한국영화의 1번지를 도산대로가 넘겨받게 됐다.

영화사들이 강남으로 옮겨간 가장 중요한 이유는 돈줄인 벤처캐피탈과 스타들의 매니지먼트 회사가 모두 강남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국내 최대 영화 투자·제작사 WaW pictures가 강남에 위치해 있는 이유도 한몫했다.

충무로는 협소한 주차 공간 문제와 최신 트렌드에서 다소 동떨어져 있기도 했고.

트렌드에 민감한 영화사 입장에서 거리와 건물의 분위기가 밝고 모던한 강남을 선호할 수밖에.

사실 한국영화계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면서 젊음의 거리로 영화사들이 옮겨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렇다고 충무로가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니다.

퇴계 지하차도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흥X빌딩.

많은 영화사들이 강남으로 이주함에도 93년부터 이곳에 터를 잡고 있는 강은석 프로덕션.

올 여름에 강은석 감독은 프로덕션을 (주)무비서비스로 확대 개편했다.

이 건물에는 무비서비스를 제외하고도 5개의 영화사가 상주하고 있다.

때문에 영화인들 사이에서 이 빌딩을 무비서비스 타운이라 부른다.


“누추하지만 들어오세요.”


서울극장의 박종환 회장이 강은석 감독의 안내를 받아 대표이사실로 들어왔다.


“돈도 많이 벌었다면서 대표이사방 꼴이.... 소박하구나.”


한국영화계의 거물 박종환 회장은 체격은 다소 왜소했지만, 깊은 눈을 가지고 있다.

야비함이나 심술보단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날카로운 눈이다.

일각에서는 백년 묵은 여우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제가 무슨 돈을 많이 벌어요. 재주만 실컷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챙겨 가는데.”

“원래 유통이 돈을 버는 법이니까.”


강은석 감독은 <투캅스>, <마누라 죽이기> 등 흥행성공작을 연이어 내놓았다.

그런데 강은석의 제작사가 벌어들인 수입은 기대에 훨씬 못 미쳤다.

배급사와 극장만 배를 불렸던 것이다.

결국 극장 배급과 제작 편수 확대가 대안이라고 판단하고, 박종환 회장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강은석 감독은 흥행 영화를 제공하고 박종환 회장은 전국적인 극장 배급망을 제공하기로 합의를 보게 됐다.

이 인연을 통해서 강은석이 박종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됐다.

이후로 부자(父子)간의 관계를 형성하게 되며 끈끈한 유대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와우의 류지호란 아이가 투자부터 극장까지 거 뭐시냐 허리우드식 스타디오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고?”


상석에 자리 잡은 박종환의 물음에 강은석이 대답했다.


“그런 걸 수직계열화라고 해요, 아버지.”

“수직계열화?”

“펀딩, 제작, 배급, 비디오, 케이블 TV까지 마치 재벌 대기업처럼 계열사로 밑에 두고 소유하고 컨트롤하는 거죠.”

“걔들은 케이블 테레비는 없잖아?”

“또 모르죠. 나중에라도 케이블 회사 하나 인수할지.”

“처음 박건호하고 미국영화를 걸고 싶다며 머리에 피도 안마른 어린놈이 극장으로 찾아왔을 때는 어디 재벌 아들인 줄 알았는데. 그때 그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이.... 자수성가해서 큰 인물이 되었다니, 참.... 난 놈은 난 놈이야.”

“할리우드를 일찍 경험해서 그럴 겁니다. 전하영이라고 아시죠?”

“신 피디 내자? 일영에 있던?”

“네. WaW 창립멤버인 전하영 피디요."

"알지. 걔가 피카디리 기획실에 있을 때 우리 극장에도 자주 들락날락했어.“

“전 피디가 그러는데, 류 감독이 미국에서 영화만 하는 것이 아니랍니다.”

“아직 대학생이라고 하지 않았어?”

“월스트리트에서 투자회사도 운영하고 있고, 게임회사와 컴퓨터 그래픽 회사도 운영하고, 탐정회사도 가지고 있답니다.”

“LA에서 지진 났을 때 무료로 경비도 서고 순찰도 돌고 했다는 그 회사 말하는 거지?”

“예. 아버지.”

“기부도 많이 한다면서? 돈을 얼마나 많이 벌기에......”

“한국에서 벌이는 사업만 따져도 3,000억이 넘는다니까 뭐.....”


한국의 사업에서도 주로 금융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G.O.M Cinemas 극장사업이 자리를 잡게 되면 달라지겠지만.


“부러우냐?”

“안 부럽다면 거짓말이죠.”

“네가 한국영화판의 1인자가 되면 된다.”

“그게 어디 쉬워요? 재벌까지 영화판에 들어온 마당에.”

“내가 전폭적으로 밀어준다니까.”

“지방 극장들 단도리 잘 하셔야 됩니다. WaW가 워낙 조건을 잘 걸어줘서 이탈하는 극장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

“내가 먹여 살린 놈들은 배신 안 해.”

“의리가 밥 먹여주진 않아요.”

“걱정 말래도. 넌 돈 될 영화만 잘 만들어서 가져와 봐. 내가 알아서 다 할 테니까.”


강은석은 박종환의 호언장담에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프린트 수 제한이 풀렸다고 해서 당장 개봉극장을 몇 배로 늘릴 수 없다.

배급사보다 극장의 힘이 더 세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급라인도 중요하지만 극장을 늘리는 것이 급선무다.

박종환 회장의 양아들 노릇을 하면서 극장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

그런데 경쟁사들의 규모가 만만치 않았다.


“결국 배급력이라는 것이 라인업이 말해주잖아요.”

“직배체제가 자리 잡으면서 돈 되는 블록버스터는 직배사들과 WaW가 주로 공급하고 있으니까. 극장 입장에서는 양질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확보하는 것이 예전하고 다르긴 하다만.”

“아마도 프린트 벌수 제한 완전 풀리고, 멀티플렉스도 늘어나게 되면 극장에 고개 숙이며 하던 배급이 거꾸로 배급사가 배짱 튕기면서 장사할 수도 있어요.”


박종환 회장의 입에서 못마땅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쯧.


수요와 공급에 있어 공급하는 배급사는 그대로 인데, 영화를 받아야 하는 개봉극장은 계속 늘고 있으니 배급사 파워가 당연히 세질 수밖에.


“WaW처럼 중앙에서 직접 지방까지 배급을 할 경우 중간 유통을 끼지 않기 때문에 수수료를 절약할 수 있지요. WaW나 재벌들이 하는 것처럼 개별 극장의 임대운영을 하거나 각 극장과 직접 계약을 하게 되면 입장 관객숫자 집계를 정확하게 할 수 있고, 수익 분배도 좀 더 합리적으로 할 수 있죠. 결국 전국 직접배급 또 와이드릴리즈는 수익을 극대화시켜주고, 제작사에게 수익을 더 많이 가져다 줄 수 있어요.”

“정말 WaW 놈들이 난 놈들이다 싶다.”


칭찬이 아니다.

못마땅한 투다.


“그게 다 자본의 힘이죠. 돈이 받쳐주니까 동시에 세 작품을 돌릴 수 있는 겁니다.”

“5월에 개봉한 <Collapse>가 극장이 40개였다고?”

“그렇다고 하더군요.”


처음 <Collapse>는 서울 6개관, 지방 12개관에서 동시 개봉했다.

그랬던 것이 삼봉백화점 붕괴사고와 함께 전국적으로 입소문이 터졌다.

방송에서도 자주 언급되다보니 여름방학이 시작할 즈음에는 서울 12개, 지방 28개 극장까지 늘어났다.


“내가 영화밥 먹으면서 우리나라에서 40개 극장에서 영화를 거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어디 박종환 회장뿐이었을까.

영화인들은 ‘이게 가능해‘ 라며 매우 놀랐다.

그럴 만도 했다.

그 대단하다는 할리우드 직배사들도 아직 시도하지 못한 배급이다.

참고로 1999년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스크린 수가 서울 19개, 전국 61군데 극장에서 개봉해서 기록을 세운 후로 같은 해 11월에 <텔미 섬띵>이 또 다시 기록을 깼다.

<텔미 섬띵>은 서울 33개 극장에서 시작해 이후 41개까지 늘어나고, 전국 상영관 기준 107개, 그리고 프린트 하나로 두 개 극장에서 상영하는 가게모치 극장이 3개, 총 합해서 110개 상영이 90년대 한국영화 최다 상영관을 기록하게 된다.

그런데 G.O.M Cinemas라는 강력한 변수가 등장했다.

그 같은 기록이 훨씬 앞당겨질 가능성도 있다.


“앞으로 WaW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 같아요. 드러난 실적만 봐도 어마어마하지만 충무로에 도는 소문의 절반만 믿는다고 해도 걔들이 한국영화 전체를 사고도 남을지도 몰라요.”

“재벌기업도 못 해. 전국의 극장이 몇 개인데?”

“암튼, 아버지도 WaW 애들과 잘 지내세요. 우리에게도 도움이 되니 각별하게 여겨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긴 하다만, 사업은 결국 인맥싸움이야.”


강은석 감독이 씁쓸한 어조로 말했다.


“인맥도 재벌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법입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대기업 우선 정책을 펴는 정부.

극소수가 자본과 정보, 인재를 독점하고 있는 경제생태계.

게다가 거대한 해외 금융자본까지.

이런 상황에서 영세한 토착기업이 살아남기란 여간 힘겨운 것이 아니다.


‘내가 예전 신필름의 신화를 재현할 수 있을까?’


광복 이후 한국 영화의 제작·투자·배급 등을 아우르는 영화업 기업화의 모태가 된 영화사가 신필름이다.

신필름은 수십 편의 영화를 제작하고 여러 감독과 배우를 배출한 한국형 영화 스튜디오였다.

강은석 감독은 영화 연출보다 기획과 제작 능력이 더욱 뛰어난 인물이다.

그의 야망은 류지호의 꿈 못지않게 거대했다.


“이제 그만 가봐야겠다.”


강은석이 박종환을 배웅하기 위해 사무실을 나섰다.


띵.


때마침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문이 닫히기 전에 1층 버튼을 누른 박종환이 입을 열었다.


“놈들을 믿어도 되겠냐?”

“뒤통수라도 칠 것 같습니까?”

“솔직히 놈들이 일방적으로 약속을 깨 버린다면 딱히 하소연할 곳도 없지 않겠냐?”


강은석이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

현재 지방극장 한 곳과 새로운 배급라인 편입을 논의 중에 있다.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극장 수익률이 계속 떨어지고 있는데 계속 붙잡고 있어 봤자 득 될 것이 없는 데다 어찌 됐건 오성영상사업단을 중간에 끼웠으니까, 그들도 섣불리 경거망동하지는 못할 겁니다.”

“혹시 모르니까 다들 당분간은 긴장을 풀지 말도록 해야겠어.”

“충무로 사람들이 유통망을 쥐고 있어야 직배영화 공세로부터 국내 시장을 방어할 수 있어요. 그런 면에서 류지호의 행보는 본받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곰인가하는 요새 뜨는 복합극장 말이냐?”

“네. 충무로 사람들이 배가 아파 그들을 욕하는데, 한심한 짓거리입니다.”

“양수리 세트장에서 몇몇 노인네들이 망신을 톡톡히 당했지.”


강은석 감독이 박종환 회장에게 힘주어 말했다.


“WaW 애들에게 배울 건 배워야 합니다.”


박종환의 표정에 불만이 스쳤다.


“지금까지 하던 대로 하다가는 격량에 휩쓸려 사라질지 몰라요.”

“그거야 어설픈 놈들의 사정이고. 네겐 해당 사항 없다.”


박종환 회장은 시류를 읽는 눈이 탁월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멀티플렉스도 일찍부터 도입했고, UPI 직배가 밥그릇을 빼앗을까 우려해서 반대하다가 판도가 변할 것을 간파하고 곧바로 태세를 전환했다.

나름 인맥도 탄탄했다.

다른 이들은 다 급류에 휩쓸린다고 해도 자신만은 튼튼한 동아줄을 잡고 있기에 안전하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었다.


“그나저나 그 어린놈은 재벌총수도 아닌데 만나기가 이리 어려워서야.”


강은석 역시 마음 같아서는 류지호와 소주 한 잔 하며 진솔한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다.

쉽게 만날 수가 없다.

미국에서 지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 들어온 김에 만나자고 했더니, 너무 바빠 시간을 낼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괘씸한 마음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는 면도 있다.

자신도 충무로에서는 영세한 제작사들을 상대로 그와 비슷한 ‘갑’의 입장이니까.

충무로가 격랑에 휩싸일 조짐이 보인다.

신진자본의 유입에 따른 기존 체제의 붕괴.

정부의 간섭과 사정정국의 외압도 우려된다.

강은석 감독은 정통 영화인으로써 살아남기 위해 20여년을 몸부림쳐보지만.

결국 시장 1위였던 무비서비스의 배급은 BS그룹에 넘어간다.

덩달아 충무로 배급사들이 하나 둘 몰락하게 된다.

1위가 넘어갈 정도니 다른 배급사는 오죽할까.

결국 20년 후 살아남은 배급사는 BS과 오리온 그리고 광성 단 세 곳.

모두 대기업뿐이다.

강은석과 박종환은 이때는 꿈에도 몰랐다.

자신들의 영화인생이 류지호라는 충무로 이방인에 의해서 어떻게 흘러갈지.


❉ ❉ ❉


90년대 들어서면서 한국 영화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92년 이탈리아 페사로 영화제 이후 프랑스·영국·독일·미국·호주 등 각국에서 한국 영화 주간을 마련하기도 했다.

80년대 중반 중국 영화가 세계무대에 등장하던 과정과 비슷했다.

WaW 픽처스의 오동석은 일찍부터 해외영화제를 다니며 한국의 우수한 단편영화를 소개했다.

현재는 WaW 픽처스 해외영업팀에서 유명한 영화제 필름마켓에서 부스를 열어 한국영화 세일즈에 나서고 있다.

또한 미국의 ParaMax Films과 연계해 매년 평균 3편의 한국영화를 미국 아트하우스 영화관에서 상영하고 있다.

WaW 픽처스와 ParaMax Films이 공동으로 미국에서 비디오로 출시하거나 케이블 채널에 팔린 한국영화가 10여 편에 이르고 있다.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생각지도 못한 수익을 거두고 있다.


“미안합니다. 오랜만에 서울시내에서 차량으로 움직이다보니 차가 좀 막히네요.”


류지호가 강남의 한 호텔 카페에서 30대 후반의 사내들에게 사과했다.


“아닙니다. 저희도 금방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모두 앉으시죠.”


류지호와 사내들이 착석했다.

먼저 말을 걸었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강지석이라고 합니다. 대학에서 영화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김양호입니다. 항공사에 근무하다가 영화밥을 먹게 되었고, 이 친구들과 뜻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승당대학 영화과에서 강의하고 있는 이관용입니다.”


이들은 부산국제영화제를 출범시킨 멤버 가운데 중요인물 삼인방이다.

WaW 픽처스는 부산국제영화제 개최에 자금을 지원할 계획이다.

영화제를 꿈꾸던 오동석이 그 꿈을 접고, 이들을 류지호와 연결 시켜주었다.


“세분 모두 만나서 반갑습니다. WaW의 류지호입니다.”


류지호가 삼인방과 차례로 악수를 나눴다.

강지석이 대표로 대화를 이어갔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충무로에서 욕을 좀 많이 먹고 있죠.”

“하하하. 남 잘되는 꼴 못 보는 사람들이 원체 많은 곳이 충무로입니다. 개의치 마십시오.”


커피를 주문하고 잠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눴다.

분위기가 무르익을 즈음 류지호가 본론을 꺼냈다.


“집행부 구성을 마쳤다고 들었습니다.”

“8월에 집행부를 구성했고, 내년 2월 창립총회를 가질 예정입니다.”


이들은 이미 80년대 말부터 국제영화제를 준비해 왔다.

당연히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서울에서 국제 영화제를 열려고 했었다.

계획을 문화체육부나 한국영화진흥공사에 여러 차례 입안했었다.

번번이 수포로 돌아갔다.

세 사람의 사회경험이 너무 부족했다.

게다가 정치권과의 맥락을 지나치게 의식했다.

국제영화제에 무관심한 영화계 기득권층에 지나치게 의지했다.

원대한 계획은 닻조차 올리지 못하고 수년 간 표류하는 신세가 됐다.

그러던 차에 작년 한 세미나에서 서울이 아닌 부산에서 국제영화제를 열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뜻을 모았다.

의견일치를 본 가장 큰 이유가 조금 웃긴다.

부산에서는 정치권을 비롯해 영화인들까지 소위 ‘사공’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에 ‘영화를 조금 아는’ 전 문체부 공무원 출신의 김성호와 손을 잡았다.

이후로 사업이 급진전되기 시작했다.

구세주까지 나타났다.

충무로 메이저 영화사가 스폰서를 하겠다고 자원했다.

10년 가까이 꿈꾸던 국제영화제가 점점 현실화되어 가고 있다.


“내년에 제1회 국제영화제를 개최할 수 있는 겁니까?”


강지석이 힘주어 말했다.


“지구가 멸망하는 일이 있어도 영화제는 열릴 겁니다.”

“아무것도 없는 말그대로 맨땅에서 시작하는 거 아닙니까. 쉽지 않을 겁니다.”

“술술 일이 풀릴 거라고 기대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몇 년 전보다는 상황이 매우 긍정적입니다.”

“WaW가 자금 지원 말고 따로 해줄 건 없습니까?”

“저....”


김양호가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나 역시 여러분과 한 배를 탄 사람입니다. 허심탄회하게 말해보세요. 도울 수 있는 게 있으면 돕겠습니다.”

“혹시 부산에 WaW가 극장을 가지고 계신지.....”

“소유한 극장은 없는 것으로 알아요. 황 비서?”


황재정이 얼른 대답하고 설명했다.


“10년짜리 장기운영 계약을 체결한 극장 하나와 직배라인 극장 한 곳이 있습니다.”

“그렇다는 군요.”


김양호는 좀처럼 말을 꺼내지 못했다.


“영화제 기간 동안 극장을 열어달라는 부탁을 하고 싶은 거죠?”

“염치없지만.....”

“비록 장기운영 계약을 맺은 극장이라고 하더라도 소유주와 협의를 해야 할 것 같네요. 일단 부산시와 협의한 결과가 나오면 WaW와 논의해 보세요. 2주 극장 열어주는 것이 크게 문제될 것 같진 않네요.”

“감사합니다!”


세 사람이 동시에 류지호에게 고개를 숙였다.

오너가 허락한 사안을 WaW 픽처스가 없던 것으로 할 리가 없다.


“감사는요. 도리어 WaW가 국제영화제에 한 손 거들 수 있어 영광이죠.”


이로써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가 해결됐다.

이관용이 너스레를 떨었다.


“1회를 멋지게 성공해서 그간 비웃었던 사람들에게 멋지게 복수하려고요. 하하하.”


류지호가 삼인방을 격려했다.


“뭐든지 시작이 어려워서 그렇지 한 번 굴러가기 시작하면 어떻게든 되더라고요. 그러니 힘들더라도 뚝심 있게 추진해 보세요.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강지석이 조심스럽게 류지호의 말을 받았다.


“조금 성급한 제안이긴 합니다만.... 감독의 영화를 영화제에서 상영하고 싶은데....”

“내 영화요? 미국에서 장편영화를 찍은 건 또 어떻게 알고?”

“<Collapse> 말고 장편을 또 찍으셨습니까?‘

“예?”

“단편영화 섹션에 감독님 특별전을 넣어볼까 기획중입니다.”

“내 단편영화....? 나는 세계적인 단편영화 감독이 아닙니다만?”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단편영화 감독인지는 저도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한국인으로 가장 유명하고 가장 뛰어난 단편영화 감독님이시긴 하잖습니까?”


류지호가 오랜 만에 검지손가락으로 볼을 긁적거렸다.

왠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이관용이 말을 보탰다.


“국제영화제라고 해도 좋은 자국 영화가 출품되고 상영되어야 영화제가 빛나지 않겠습니까?”

“좋은.... 영화입니까?”

“<Life Goes On>은 샌프란시스코 국제영화제에서 꽤나 떠들썩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수의 영화들이 3대 단편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고. 학생 아카데미 금메달 수상자이시지 않습니까? 하길종 감독님 이후로 유일하지 않나 싶은데.”

“그게 언제 적 이야기인데.....”

“우리나라 영화팬들에게도 우리나라 감독이 연출한 이런 단편영화도 있다 하는 걸 알려주고 싶습니다.”

“특별전은 좀 과한 것 같네요.”

“명칭을 뭐라고 붙이던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영화를 소개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지요.”

“고마운 제안이긴 한데.... 생각 좀 해보겠습니다.”

“천천히 고민해 보십시오. 올해 안에만 알려주시면 주요 섹션에 포함시키겠습니다.”


이후로 1시간가량을 삼인방과 영화제 관련 대화를 나눴다.

류지호는 국제영화제에 대해 기억나는 대로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다소 중구난방의 이야기가 됐네요. 나보다 우리 회사 오동석 본부장이 국제영화제에 대해 해박합니다. 오 본부장과 따로 의견을 나눠보세요.”

“감사합니다. 감독님.”


영화제 삼인방과 미팅을 마치자 어느덧 해가 저물었다.


“저녁은 가족들과 먹고 싶네요. 오늘은 이만 일정을 마무리합시다.”


황재정과 경호원을 제외하고 수행원들과 헤어졌다.


“재정아.”

“응?”

“내가 한국에서 입봉도 안 했는데, 다들 감독이라고 부른다? 요새 단편영화감독도 대접을 좀 받아?”

“그럴 리가 없잖아.”

“근데 왜 다들 감독이라고 하지?”

“의전 비서가 미리 귀띔을 해주니까.”

“그런 것도 하냐?”

“널 만나는 사람들은 대체로 원하는 것이 있거나 뭔가 아쉬운 사람이잖아. 잘 보여야 하니까 비서들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물어보기도 해. 특히 공무원이나 대기업 관계자들은 민감하지.”


예절은 의전업무에 있어서 가장 근본이 되는 분야다.

아직 한국의 대기업 회장실에서도 의전만 전문으로 하는 비서는 없다.

가온 의장 비서실은 매우 특이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다음부터는 수행원 숫자 좀 줄여. 너무 요란스러운 것 같다.”

“모두가 반대할 걸?”

“왜?”

“사람들이 사인해달라고 몰려들면 비서들이 몸으로라도 막아야지.”

“내가 연예인이냐 사인을 해달라고 하게?”

“네가 웬만한 연예인보다 인기순위가 높아. 널 롤모델로 삼은 청소년들이 한 둘인 줄 아냐?”

“태지가 아니고?”

“작년에 국민학생 장래희망 1위가 부자야.”

“의사가 아니고?”

“류지호처럼 멋지고 세련된 부자가 되고 싶대. 미래의 새싹들이.”

“영화감독도 아니고... 부자냐?”

“학부형들이 아주 세뇌수준으로 애들에게 잔소리를 하니까. 매스컴에서도 널 연예인급으로 취급하고 있기도 하고.”


류지호로 인해 국민학생의 장래희망이 과학자와 의사에서 부자로 바뀌었단다.

정확하게는 ‘Young & Rich'다.

엄밀히 말하면 장래희망이라기 보다는 선망의 대상이다.

좋아해야 할지 안타까워해야 할지.

고마운 한편 부끄러움이 마음 한편을 간질거렸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한다.

자신이 내리는 모든 선택과 결정에 대해 완전한 책임을 져야 한다.

실제로 현실에서는 선택보다 선택 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류지호는 선택 당하는 삶이 아니라 선택하는 삶을 살기 시작했다.

더불어 다른 사람에 대해 책임을 지는 태도도 요구받고 있다.

어떤 이들의 롤모델이자, 리더이기 때문이다.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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