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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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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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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1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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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5쪽

The Killing Road. (8)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헌데, 리차드슨이 수첩을 펼치고 펜을 들어올렸다.

류지호의 대답을 메모라도 하려는 듯.

류지호는 <The Killing Road>에서 하고자 하는 바를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던진 질문임을 알아차렸다.


“......”


류지호는 입을 다물고 가만히 생각을 정리했다.

그림 감상이 문제가 아니다.

이 그림이 영화에 왜 필요한가.

혹은 왜 필요하지 않은가.

그것에 대한 정리된 생각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


“검은 하늘, 불길한 까마귀, 끝이 보이지 않는 세 갈림 길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아마도 고흐가 품은 절망을 보겠죠? 근데 저는 그가 가진 분열과 그 분열마저 막지 못한 그만의 삶을 향한 어떤 확신? 희망? 의욕을 봐요. 고흐는 태양을 좋아했다고 알고 있어요. 저 폭풍우 칠 것 같은 밤이 스러지고, 태양이 떠오르게 되면 찬란한 황금빛 밀밭이 펼쳐지겠죠. 저 검은 하늘에 태양이 떠오르면 바람에 흔들리는 밀밭은 금빛으로 물들 테고, 그건 곧 그의 생 또한 바뀔 수 있다는, 고흐가 스스로에게 거는 최면 같은 삶의 의지 아니었을까 하네요.”


두 베테랑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영화에는 도무지 희망이란 게 들어있지 않아. 물론 그것이 잘못되었다거나 감히 내가 참견할 사항은 아니야. 이 영화는 온전히 자네의 것이니까. 하지만, 난 그런 자네 영화에 작은 희망, 의지, 생명의 고귀함을 묻히고 싶네. 비록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거나 메타포가 아닐지라도.”


리바의 말을 리처드슨이 받았다.


“노란색과 저 불길한 검은 색은 걱정하지 마.”

“......?”

“자네가 원치 않는다면 노랑의 색감과 채도를 떨어뜨려서 촬영하겠네.”


류지호는 두 사람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서 고흐의 그림이 실사로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림과 다른 점은 검고 불길한 하늘 때신 뭉게구름이 피어있는 캘리포니아의 푸른 하늘과 밀밭 대신 펼쳐져 있는 에인절스 캠프의 녹색 식물들로 가득한 구릉이다.

그리고 불길한 까마귀 대신 새 몇 마리.

검은색은 파랑색으로 노란색은 녹색으로 검은 까마귀는 알록달록한 작은 산새로.

그런 농장지대 사이에 교차로가 있다.

교차로로 티아라 이브가 운전하는 캠핑용 트레일러가 천천히 접근한다.

<The Killing Road>의 엔딩 장면이다.

티아라의 눈앞에 놓인 세 갈래의 갈림길은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 아니다.

이 길은 그녀가 어릴 때부터 지나쳤던,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쯤은 반드시 지나쳤던 길이다.

왼쪽 갈림길은 매춘부가 아님에도 마을 청년들에게 몸을 팔았던 지난 과거의 길.

가운데 길은 벤 사이퍼라는 살인마와 함께 한 짧지만 위대한 여정(?).

마지막으로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불확실한 미래를 두고 아직 녹색 풀조차 완전히 나지 않은 오른쪽 갈림길.

티아라가 어떤 갈림길에 들어서도 그녀의 삶은 평탄하지 않을 것이다.

뱃속에 누군가의 아이까지 잉태하고 있는 마당에.

특히 그녀의 성이 이브라는 것은 더욱 의미심장하다고 할 수 있다.


‘이 그림이 메타포가 되어 에필로그의 의미가 더욱 살아날까?’


류지호는 자신이 쓴 <The Killing Road>의 주요한 장면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빈센트 반 고흐의 권총 자살도 함께 떠올렸다.

고흐가 리볼버 방아쇠를 자기 심장을 향해 당겼을 그 순간.

절망과 좌절.

그것의 상징이 된 까마귀.

사납게 일렁이는 밀밭은 불안과 공포.


‘왜 하필 노란색일까....?’


적어도 고흐가 ‘까마귀가 나는 밀밭’을 그릴 당시에는 더 강렬하게 살기 위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난 말이야.”


마이크 리바의 말에 류지호가 머릿속으로 그렸던 영상들이 사라졌다.


“이 그림에서 으레 많은 사람이 이야기하는 추락하는 절망으로 보지 않아. 불길한 까마귀 떼가 품고 있는 비극 또한 느끼지 않아.”


류지호가 정신을 차리고 마이크 리바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 그림에서 내가 느끼는 것은 오직 고흐가 품었을 생명을 향한 의지와 이를 위한 투쟁뿐. 황금빛 밀밭은 휘날리는 붓 터치 안에서 마치 움직이는 듯 한 생명력을 얻었어. 이는 점차 검은 하늘로 흩날리는 것처럼, 그래서 얼마 시간이 지나면 불안정한 하늘을 가득한 금빛 활기로 물들일 것처럼 보이기도 해. 물론 그림은 각자 자신이 보는 대로 느끼고 감상하는 것이지만 말이야.”


글쎄.


류지호의 생각은 달랐다.

고흐의 그림 해석이 다른 것이 아니다.

이 그림을 <The Killing Road>에서 어떻게 쓸 것인가에서 달랐다.

엔딩에서 티아라 이브는 자신의 배를 슬쩍 쓰다듬는다.

임신했음을 암시한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 그림을 영화 엔딩과 대구(對句法)시켜 묘사한다면, 마이크 리바의 생각처럼 보일까....‘


절망과 좌절의 ‘까마귀가 나는 밀밭’으로 알고 있는 관객들은 티아라의 미래가 결코 아름답지 않을 것이라 생각할 터.

한편으로 ‘권선징악‘이라는 면에 부합해 안도할 것이다.


‘살인마와 범죄자들이 상잔했는데, 연쇄살인범 벤의 살인행위에 동조하고 실제 스스로 자행하기까지 한 티아라만 살리는 것에서 관객은 거부반응을 일으킬 수도 있어.’


그런데 에필로그를 보게 되면 관객들의 뒤통수가 얼얼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결정을 내려야 했다.


“좋아요. 대신 그림은 그 위치가 아니라, 넓은 창문 정 반대편에 위치했으면 좋겠어요. 창문 너머로 보이는 타운의 풍경과 그림이 대비되게요.”

“....음!”


마이크 리바가 팔짱을 끼고, 보안관 사무실 조감도가 붙어 있는 벽 앞에 섰다.

조감도와 콘셉트 아트들을 다시 한 번 꼼꼼하게 눈으로 훑었다.

류지호가 리차드슨을 향해 입을 열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이 이 그림에 닿을 때마다 인물과 그림이 함께 담길 수 있을까요?”

“딥 포커스로 인물의 뒤에 둘 것인지, 풀 쇼트에서 보여줄 것인지에 따라 달라지겠지.”

“둘 다...겠죠. 아마도.”

“문제없네.”

“남발할 생각은 없어요. 몇 장면을 골라봐야겠네요.”

“좋을 대로. 다만 이것은 명심하게. 시네마스코프로 드라마를 찍게 되면 지루해 질 수도 있다는 걸.”

“당연하죠.”


시네마스코프 화면비는 양쪽 가로 길이가 넓어지는 장점이 있다.

그 만큼 영화적 체험의 폭을 넓힐 수 있다.

딥포커스와 롱테이크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면서 넓은 화면에 깊이를 부여할 수도 있다.

비어있는 그 구도를 채우기 위해서 감독들로 하여금 많은 상상력을 발휘하게 만드는 것이 시네마스코프다.

시각적 볼거리와 스토리텔링을 결합하면 이야기를 더욱 깊이 있게 만들 수 있다.

다만 어설픈 와이드스크린 미학은 관객에게 지루함을 선사할 수도 있고, 몰입을 방해할 위험성도 함께 가지고 있다.

따라서 비용문제를 고려했을 때 안하느니만 못할 수도 있다.

시네마스코프는 화면 자체가 광활한 느낌이 든다.

여러 명의 인물을 함께 담으면서도 배경의 공간감을 살리는 데 유용하다.

류지호는 롱쇼트와 롱테이크에 대해 집착이라고 할 만큼 많이 연출해 본 경험이 있다.

스릴러나 공포영화 장르에서 시네마스코프를 쓰지 않는다.

주로 1.85:1 화면비의 비스타비전을 택한다.

좁은 화면 안에서 느껴지는 집중력과 긴박감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비스타비전은 블록버스터보다는 드라마나 스릴러 등 인물의 심리 묘사가 주를 이루는 영화에 주로 사용된다.

반면에 시네마스코프의 광활한 캔버스는 한 화면에 풍부한 의미를 담아낼 수 있고, 영화적 움직임이라 할 수 있는 좌우의 운동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

블록버스터나 SF장르, 사극 등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가 있다.


“자네가 롱테이크 촬영경험이 많으니까 큰 걱정은 들지 않는군.”

“촬영을 책임지는 것은 롭이죠.”

“그런데 모든 씬을 다 스토리보드 작업한다고?”

“예.”

“왜?”

"완벽한 스토리보드가 나와 있지 않으면 현장에서 불안해서 견디지 못해요. 제가 구상한 모든 것을 배우와 스태프들이 공유하길 원해요. 논리정연한 말로도 전달이 되지 않는 것도 있잖아요. 준비가 철저하면 만약을 대비한 여분의 장면을 찍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사전 준비로 인해 그걸 더욱 공들여 찍는 데만 집중하면 되니까요.“


할리우드에서 풀스토리보드로 작업하는 감독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감독들은 완성된 장면이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스탠리 큐브릭, 구로사와 아키라 같은 거장 감독들도 자신을 학대하던 때가 있었다.

그 정도로 고통스러운 작업이 영화연출이다.

영화는 혼자 보기 위해서 찍는 게 아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만드는 것이다.

때문에 감독은 그저 묵묵히 견디며 불안과 공포를 이겨내야만 한다.


토닥토닥.


롭 리차드슨이 영화감독의 운명적 동반자인 ‘공포‘와 싸우고 있는 어린 영화감독의 어깨를 부드럽게 다독거렸다.


✻ ✻ ✻


스토리보드에 표준화된 양식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애니메이션, 광고, 영화에서 각기 다른 방식을 쓰고 있다.

류지호는 이전 삶에서 충무로에서 많이 쓰던 양식을 채택했다.

익숙하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미국식 스토리보드는 그림 콘티에 가까워서 메모를 많이 넣기 어렵다.

류지호는 디테일한 스토리보드를 이미 단편영화 <영정사진>부터 꾸준히 해오고 있다.

여러 편의 단편영화 작업을 통해 스토리보드 양식도 제법 체계가 잡혔다.

영화에서 와이드 스크린이 등장한 것은 텔레비전 때문이다.

텔레비전 등장에 위기감을 느낀 할리우드가 좌우 화면비를 늘려 차별점을 주려고 했던 것.

비평계는 그 같은 와이드 스크린이 선사하는 미학을 크게 환영했다.

감독들은 더 커진 화면비에서 더 영화적인 것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어떤 때는 한 영화 안에서 다양한 화면비를 보여주기도 했다.

심지어 화면 중앙에 위치하는 정 사각형 레터박스의 화면비를 보여주다가 주인공이 양 옆 레터박스를 열어젖히면서 비스타비전 화면비의 장면을 만들어낸 영화도 나온다.


“......!”


이전 삶을 돌아보던 류지호의 인상이 구겨졌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시네마스코프 영화를 비교적 제대로 감상할 수 있었다.

그런데 2013년부터 극장에서 시네마스코프 영화를 제대로 즐길 수 없었다.

대기업 극장체인들의 무개념 행태 때문이다.

2013년 즈음 대한민국 최대 극장체인의 몇몇 지점에서 마스킹(레터박스를 가려주는) 없이 영화를 틀기 시작했었다.


‘세상에...! 21세기 영화관에서 레터박스를 보게 되다니!’


많은 관객들이 황당해 했다.

류지호는 환불소동을 벌이는 관객들과 함께 했던 기억이 있다.

상영되는 영화의 규격과 스크린 사이즈가 맞지 않을 때, 위 아래로 검은 여백을 넣는 걸 레터박스라고 한다.

마스킹은 스크린의 바로 그 레터박스를 암막 등으로 가리는 것을 일컫는다.

그래서 영화관에선 시네마스코프 화면비의 영화가 상영될 때는 공중에서 암막을 내려서 스크린의 화면비를 맞춰준다.

영화관을 아무리 자주 가지 않더라도 누구나 한번쯤 겪은 경험일 것이다.

이것은 영화를 전문으로 상영하는 영화관이라면 기본이다.

비디오테이프나 DVD에도 레터박스가 있는데 무슨 대수냐고 할 관객은 세상에 없다.

그런 불편함이 없이 제대로 영화를 즐기기 위해 극장을 찾는 것이니까.

영화관에서 관객이 보는 영화 속의 검은색은 다 같은 검은색이 아니다.

암막으로 가려진 부분은 영화 스크린의 밝기와 상관없이 영화 내내 계속 어둡다.

그런데 스크린에 레터박스가 생기면 영상의 밝기에 따라서 가장 어두운 검은색에서 적당히 어두운 검은색까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심지어 화면 밝기에 따라 레터박스가 회색으로 보일 수도 있다.

이는 관객을 온전하게 영화에 몰입할 수 없게 만든다.


[마스킹 고장으로 영사사고가 발생할 시 빠른 조치가 불능함을 양해바랍니다.]


당시 영화감독의 항의에 대한 극장체인 측 답변이었다.

처음에는 몇몇 지점의 일탈이었다.

곧 전체 체인으로, 업계 전체로 번지게 되었다.

마스킹 없는 영화상영이 당연시 되는 풍조가 되어버렸다.

심지어 대기업 극장체인은 시네마스코프 화면비의 좌우를 잘라 비스타비전 사이즈에 맞추는 짓도 서슴없이 저질렀다.

또 다른 경쟁 극장체인은 신설 상영관 천장에 영사기를 설치(Ceiling)해 영사실을 폐쇄했다.

당연히 화질의 손실이 있을 수밖에.

독점에 의한 폐해다.


“세계적인 트렌드입니다.”


영화인들과 관객의 항의에 대한 극장 측의 답변이었다.

물론 한국 멀티플렉스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비슷한 트렌드가 있긴 했다.

하지만 주로 후진국이나 권위주의 정부가 통치하는 국가에서나 그렇다.

질 떨어지는 화면을 순순히 받아들일 선진국의 영화팬은 없으니까.

류지호가 소유하고 있는 극장체인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있어서는 안 되는 짓이다.

명색이 영화감독이 운영하는 극장에서는 절대 안 될 말이다.


‘DreamFactory 삼인방을 설득하기 위해 늘어놓았던 비전들은 다 어디가고, 왜 그들은 초심을 잃고, 저급한 장사꾼으로 전락해버렸을까?’


류지호는 그들이 처음 영화판에 들어왔을 때와 이후 한국 시장을 잠식한 후 벌인 행태의 괴리에 대해 생각해봤다.

마스킹의 설치와 활용은 영화관 운영의 기초 중 기초다.

백번 양보해서 고전영화를 틀 때 제대로 된 마스킹을 하지 못하는 것은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런데 21세기에 들어서며 비스타비전과 시네마스코프 화면비로 어느 정도 표준이 정리된 상황에서 기본조차 무시해버리다니.

그것은 게으름을 넘어 변명의 여지가 없는 얄팍한 장삿속이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영화를 좀 더 영화적으로 만들 의무가 있다.

관객은 그들이 만든 영화를 좀 더 영화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 둘 사이를 연결해주는 것이 배급과 상영이다.


‘Doldy Atmos니, DTSS 64채널 입체음향을 자랑스럽게 홍보하기 전에 기본부터 지켜주길....’


대기업에서 영화인과 소비자인 관객의 요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무시한다면, 방법은 하나 밖에 없다.

류지호가 소유한 극장체인이 기본을 지키며 시장 점유율을 높여야 한다.

그렇게 해서 경쟁자들도 기본을 지킬 수밖에 없도록 시장을 이끌어야 한다.

기본을 지키며 돈을 버는 것은 어렵다.

반면에 편법이라는 쉽고 편한 방법은 많다.

굳이 어려운 길을 가려하지 않는 습성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오래갈 수 없다.

소비자들은 기업의 과장 광고와 변명을 더 이상 믿지 않게 되니까.


❉ ❉ ❉


Independent Film(독립영화).

줄여서 인디 영화라고 한다.

독립이란 자본과 배급망으로부터의 독립을 말한다.

거대 자본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 영화인 스스로 만든 영화다

즉 이윤 창출이 최대 목표인 상업 영화와 달리 창작자의 의도가 우선시 되는 영화다.

주제와 형식, 제작 방식 등에 있어서 제작자의 의향에 따라 많은 차별화가 일어난다.

미국에서는 메이저 스튜디오가 투자·제작하지 않는 모든 영화를 독립영화로 분류한다.

심지어 빅6가 투자하지 않고 오로지 배급만 진행한 영화도 미국에서는 독립영화로 분류된다.

전위 영화, 실험 영화, 언더그라운드 영화 등을 망라해서 사용되던 용어에서 21세기에 이르러 개인이나 동호회 등에 의해 후원과 제작이 행해지는 모든 영화까지 개념이 확장된다.

그래서 대부분 저비용으로 만들어진다.

당연히 할리우드 시스템에서 자유롭다.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가 투자·제작하는 영화도 미국에서는 독립영화라고 할 수 있다.

트라이-스텔라를 준메이저 스튜디오라고 따로 분류하긴 하지만, 명백히 메이저 스튜디오는 아니니까.

예컨대 억만 장자가 영화를 한 편 찍고 싶어서 자신의 돈으로 1억 달러를 들여 영화를 찍었다고 하더라도 빅6라 불리는 메이저의 손을 타지 않았다면 그것은 독립영화라고 볼 수 있다.

무조건 저예산영화라고 해서 독립영화에 범주에 드는 것도 아니고, 메이저 스튜디오의 시스템 밖에서 작업한다면 고예산영화도 독립영화라고 보기도 한다.

<The Killing Road>의 순제작비는 300만 달러다.

한화로는 대략 24억 정도다.

한국영화에서는 큰 예산의 영화다.

미국영화에서는 저예산영화 중에서도 꽤 적은 규모다.

상업 영화 제작에 반드시 따르는 제작비 회수 및 이윤 창출을 위한 자본의 압력을 배제한다는 것이 독립영화의 의의다.

다양한 예술적 시도들을 할 수 있다.

문제는 영화 제작에는 돈이 많이 든다는 점이다.

따라서 자본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경우는 거의 없다.

내 돈으로 내 맘대로 만드는 경우, 그리고 안 갚아도 되는 남의 돈으로 만드는 경우(국가지원)를 제외하면 거의 없다.

독립영화는 상업영화와 달리 작가주의가 두드러진다.

때문에 일반 장르 영화와 달리 어느 정도 장벽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의외로 상업영화 못지않게 재미있고 독특한 영화도 많다.

단적인 예가 쿠엔 태런티노, 고언형제의 영화들이다.

독립 영화는 관객들이 접해 보지 않아서 낯선 것이다.

결코 어렵지 않다.

지루하다는 것도 편견이다.

류지호가 구구절절 인디영화의 개념을 떠올린 이유가 있다.

그는 현재 베벌리힐스의 한 호텔에 와 있다.

오늘 이곳 리셉션 홀에서 대본 리딩, 할리우드에서는 테이블 리드(Table Read)를 진행할 예정이다.

무슨 독립영화가 대본 리딩을 거창하게 호텔에서 하냐고 따질 수도 있다.

독립영화라고 해서 호텔에서 테이블 리드를 하지 말란 법 없다.

구구절절 설명했듯이 영화 예산은 중요하지 않다.

메이저 스튜디오의 입김과 시스템에 따르느냐가 주요 구분 기준이다.

극단적으로 1억 달러 이상이 들어간 <터미네이터Ⅱ> 역시 엄밀히 분류하면 독립영화 범주에 넣을 수도 있다.

메이저 스튜디오의 자본과 시스템이 들어가지 않은 영화였기에.

어쨌든 대본 리딩 혹은 테이블 리드는 영화에 참여하는 배우들이 처음으로 맞춰보는 자리다.

감독은 이를 지켜보며 대사를 수정할 수도 있다.

오디오 감독은 배우들의 실제 목소리를 들으며 톤을 설계할 수 있다.

배우들은 서로의 얼굴을 익히고 촬영 전에 연기를 맞춰볼 수 있는 기회다.

이 단계에 들어섰다는 것은 <The Killing Road>가 본격적인 프로덕션 스케줄을 시작됐다는 의미다.

실제로 할리우드 영화에서 전체 배우 리딩을 진행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출연진 모두를 한 날 한 시에 모으는 것이 쉽지 않다.

일부 배우의 경우는 전체 대본 리딩을 하려면 계약서에 관련 조항을 넣어야 한다.

그런데 21세기가 되어 대본 리딩이 하나의 홍보수단이 되면서부터 바뀌긴 한다.

DVD의 부록에 프리프로덕션이 들어가게 된다.

따라서 테이블 리드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벤트가 된다.


“다큐멘터리 팀의 카메라 세팅이 끝났어.”


조감독 터커 레이튼이 메이킹 무비 촬영팀의 준비가 끝났다는 보고를 해왔다.

독립영화 작업과정을 기록해서 어디에 쓴다고.

하나하나가 억만장자의 돈자랑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데 로케이션 헌팅부터 스토리보드 작업, 대본 리딩, 메이킹 필름은 쓸 데가 많다.

당장 한국의 케이블 채널에 판매 할 수 있다.

아시아 배급 시에 홍보자료로 사용해도 된다.

영화가 유의미한 흥행성과를 낸다면 DVD 부록에 포함될 수도 있다.

향후 해리슨 노튼이나 마리아 베리는 할리우드 스타가 될 것이다.

그들의 초창기 모습이 담긴 영상부록은 DVD 수집가들 사이에서 큰호응을 얻을 수도 있다.

류지호가 시대의 트렌드 흐름을 꿰고 있기에 할 수 있는 것이다.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것도 아니다.

JHO Company의 미디어 전문가, ParaMax Films, IVE Entertament 관계자들과 관련 의견을 충분히 조율했다.

그리고 류지호의 계획을 실행하는 것은 ParaMax의 부가시장을 책임지는 이사가 하고 있다.

류지호가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하고 말했다.


“이제 슬슬 도착할 시간이네.”

“카페에서 기다리지 그랬어?”


터커의 말처럼 류지호는 카페에서 헤드 스태프들과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눌 수 있다.

가장 나중에 모습을 드러내야 폼도 나고.

류지호는 가만히 카페에 앉아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설레기도 하고, 약간의 기분 좋은 긴장감도 있고.


“헤이.”

“잘 지냈어. 디렉터?”

“나야 잘 지냈지.”


배우들이 속속 등장했다.

류지호와 반갑게 인사를 나눈 배우들이 자신의 자리를 찾아 앉았다.

특히 존 터튜와 보안관을 연기할 배우들의 행색이 재밌다.

마치 짜기라도 한 듯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나타났다.


“잘 어울리네요. 다들.”


류지호의 덕담에 각기 개성적인 방식으로 인사를 받아줬다.

모자를 벗어 가슴에 댄다던가, 모자챙을 손가락으로 슥 훑는다던가, 모자를 벗어 옆으로 팔을 벌려 보인다던가.

ParaMax의 알버트 사장, 촬영감독, 의상 담당, 오디오 맨 등.

관계자들도 다수 참석했다.

자리가 채워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참석 인원 규모가 상당했다.

꽤 넓은 홀임에도 꽉 들어찬 느낌이다.

젊은 배우들은 부푼 기대감과 함께 긴장감을 감추지 못한 얼굴을 하고 있다.

엄마와 함께 참석한 래티 조핸슨은 처음 참여하는 대본리딩이 신기해서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아,아... 마이크 첵!”


류지호가 마이크를 잡았다.


“다들 안녕하세요. 저를 모르는 분은 없겠죠? 그래도 소개할 게요. 지호 류입니다.”


짝짝짝.


짧은 박수가 터졌다.


“영화를 촬영하기 전 부담감도 크고,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닙니다. 그런 한편으로 설렘이 가득합니다. 특히나 이번 영화는 더욱 그렇습니다. 제가 이번 인생에서 장편영화는 처음이거든요.”


류지호가 장난스러운 얼굴로 장내를 한차례 훑어보는 시늉을 했다.

다들 가볍게 웃음을 흘렸다.

순간 긴장한 표정의 젊은 배우들 테이블 분위기가 한결 가벼워졌다.


“다들 얼굴이 밝아서 좋네요. 저도 의욕이 마구 샘솟는 것 같습니다. 같이 잘 해 봅시다. 각자 한 마디 하시죠.”


류지호를 시작으로 메인 스태프의 인사말이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프로듀서 게리 켐프가 마이크를 잡았다.


“아프지 마세요. 배우는 아파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아프다면 미리 말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아픈 걸 숨기면 본인에게나 제작팀에게나 손해니까 말입니다.”


이어서 배우들의 간단한 자기소개가 있었다.

인사말에 유머를 다들 섞어서 장내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류지호로서는 당최 적응 안 되는 미국식 유머였다.


“프롤로그는 패스하고 첫 씬부터 해봅시다!”


자기소개로 약간은 들떠있던 홀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베테랑들은 베테랑답게.

젊은 배우들은 뭐랄까 다들 절박한 느낌이랄까.

시작부터 열의가 팍팍 느껴지는 분위기다.


[왜 항상 영화에서 인질범은 인질을 쉽게 죽이지 않을까? 리얼리티. 사실적이지 않아. 인질을 바로 죽여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어떤 자비심이나 연민 따윈 없이! 하나씩 차례로 죽이는 거야. 빵! 또 빵! 내가 감독이라면 협상을 하기 전에 인질을 죽이는 걸 보여주겠어. 잔인하게 빵! 또 빵! 그들에게 편안한 안식은 사치니까.]


183Cm의 신장에 허여멀건 하게 생긴 얼굴.

가름한 턱선, 짙은 눈썹, 왼쪽 입가 밑에만 있는 보조개.

개미 한 마리 죽일 수 없을 것 같은 선량한 인상.

하지만 살짝 갈리는 목소리로 대본 리딩을 시작했다.

우울하고 음산한 느낌마저 풍겼다.

그를 잘 아는 가족조차 마치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들릴 것 같았다.

해리슨 노튼은 많은 준비를 하고 왔다.


[내 이야기로 돌아가서. 내가 살해한 대상은 소아성애자, 동성애자 그도 아니면 그렇게 소문났던 자들이었어. 그 외에 장애인이나 마약중독자 또 노숙자도 있었던 것 같아.]

[.......]

[내 이야기로는 영화 흥행이 안 돼? 왜 안 되는데? 뭐라고? 관객은 해피엔딩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악당은 지게 되어 있다라.... 큭큭. 영화는 영화일 뿐이야. 실제 삶은 영화보다 훨씬 대단해. 자, 친구! 이제 가봐야겠어.]


그렇게 씬들이 빠르게 넘어갔다.


작가의말

한주 마무리 잘 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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