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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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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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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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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3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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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6쪽

그건 당신들 착각이고....!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박건호!”


박건호 대표는 상종할 가치를 못 느껴 가만히 있었다.


“너! 말 좀 해봐! 이 배신자 새끼야! 엉! 이 사태를 어떻게 할 건지 말을 하란 말이야!”


박건호 대표는 점잖은 목소리로 운영자 측을 향해 입을 열었다.


"세미나가 엉망이 된 것 같습니다. 얼마나 더 이런 모습을 지켜봐야 합니까?"


주최 측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진흥공사 직원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괜히 끼어들었다가 공사 사장이나 문체부장관에게 불똥이 튀면 안 되니까.

애초에 저런 이들을 걸러내지 못한 책임을 피하긴 어렵겠지만.


“어린놈 밑이나 닦고 앉아있으니 뭐라도 막 된 것 같지?“


박건호 사장이 더는 참지 못하고 발끈했다.


“어린놈이라니....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뭐야? 새끼야!”

“류지호 감독님은 사석에서도 존중받을 위치에 있는 분입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놈저놈이라니. 사과하십시오.”

“요즘 충무로가 애새끼들이 나대면서 거꾸로 돌아간다고 하더니. 아주 꼴이 가관이구만.”


박건호는 한심해 미칠 지경이다.

우물 안 개구리.

아집에만 사로잡힌 늙은 기생충들.

류지호가 어린 나이에 얼마나 대단한 성과를 이뤄내고 있는지 이제는 웬만한 국민들도 안다.

다만 반도체나 자동차, 조선처럼 대규모 생산시설을 소유하지 않고 저작권과 서비스 위주의 사업을 영위하다보니, 류지호가 소유한 기업의 규모를 가늠하지 못할 뿐.

올해 시가총액 8위 경일건설의 매출이 대략 4조 원이다.

JHO Company 산하 기업들의 연결 매출과 비슷한 규모다.

물론 매출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금융부문과 영화 및 TV부문이긴 하지만.

어쨌든 대중문화콘텐츠를 생산하는 기업은 사업규모가 숫자로 다 드러나지 않는다.

저작권이라고 하는 무형자산이 상당수를 차지하기도 하고.

게다가 류지호는 한국 쪽에 많은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JHO Company와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의 관계를 잘 모르는 이들도 많다.

‘씨네마21’ 창간호 기획기사에 실체 일부가 드러나면서 재평가가 이루어지긴 했지만.


‘무지도 죄인데...’


박건호는 화가 나진 않았다.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이곳에 모여 있는 영화인 가운데 류지호가 얼마나 대단한 도전을 하고 있고, 할리우드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는지 아는 사람은 극소수다.

오로지 한국에서 접할 수 있는 극히 일부의 정보로 한국 사이즈에 대입해 상상한 것들로 류지호를 재단했다.

자신도 나이와 짬밥이 계급장이었던 시절을 겪었다.

아직도 그 과거 속의 망상에 사로잡혀 빠져나오지 못하는 추한 노인네들.

영화인으로서 자긍신과 자존심을 가지는 것은 나쁜 게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집이 되는 순간 자격지심이란 수렁에 빠지게 된다.

박건호는 류지호에 대해서 5대 기업 총수들만큼의 대접 같은 것은 애초에 바라지도 않았지만, 이곳에 모인 인사들의 행태를 보니 대기업이건 토착 영화인이건 글렀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직배사 임원들이 참석했다면 이 모습을 보고 비웃음을 참을 수 없었을 터.


“미국놈 똥구녕 빨아서 한국영화 망치는 저 놈이 뭐가.....”

“이보세요! 구 상무! 보자보자하니까 지나칩니다!”


박건호 사장이 더는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서서 따졌다.


꽝!


송영석이 의자를 박차고 일어서서 소리쳤다.


“언제까지 이런 격 떨어지는 이야기들을 듣고 있어야 합니까? 여기 참석한 분들은 모두 바쁜 분들입니다. 특히 대유나 오성에서 오신 분들이 얼마나....”


영진공 직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영화진흥공사 사장에게 모였다.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영진공 사장이 부하직원들에게 고개 짓을 했다.

이어 공사 직원들이 난동을 피우던 남자를 강제로 장내에서 끌고 나갔다.

이어 박건호 사장까지 데리고 나가려고 했다.


허허.


그저 헛웃음만 흘리는 박건호 사장이다.

그때였다.


“사장님, 저희도 퇴장할까요?”


류지호가 세미나실 통로로 걸어 나와 영진공 사장에게 물었다.


“미안합니다. 류 회장.”


그제야 영진공 사장이 나서 장내를 정리했다.

사실 오늘 이 자리에서 안면을 트고 인맥을 쌓아야 할 인물은 대기업 계열의 영화사업부 고위직도 오성가문의 직계 손녀도 아니었다.

오로지 류지호 뿐이다.

정치인 출신 문제부장관까지도 은근히 류지호의 심지를 살피는 눈치다.

그런 류지호가 특별히 지금의 소란에 대해 반응을 보이지 않아서 가만히 있었을 뿐.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로 보인다.'


지금까지는 그 꼴이었다.

헌데 류지호가 나서자마자, 곧바로 소란이 정리되었다.

그 같은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가 지켜보았다.

각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상관없이 남아있는 행사가 진행되었다.

한국영화 현실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류지호의 예상대로 스크린 쿼터, 극장 배분율, 영화법 개정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그 가운데 대유 영화사업본부가 향후 사업방향을 설명하기도 했다.

발표는 김자영 실장이 했다.

대유전자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씨네마하우스 영화관을 300억 원에 인수키로 영화관 소유주인 우준필름과 계약을 맺었다.

이미 6월에는 서울 종로3가 서울시네마 타운을 장기임대 형태로 수용한 바가 있다.

대기업 최초로 극장 사업을 본격화 한 것이다.


“우리 대유 영화사업본부는 케이블TV사업 및 영상서비스사업의 활성화를 위해 전국에 영화관 네트워크를 구축키로 결정함에 따라 극장 인수와 장기임대를 계속해서 늘려갈 계획입니다. 우리는 2015년까지 1조 6천억 원을 투자해 세계 10위권 내의 영상정보 업체로 도약하는 장기 플랜을 마련했습니다.”


대유그룹은 케이블TV사업 및 멀티미디어 기기 시장의 확대를 위해 영화관 설립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백설식품이 DreamFactory에 투자한 것을 계기로 대유그룹의 행보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영화관 소유업체가 현행 외화직배 제도상 외국 영화를 수입하는데 유리하단 점이다.

마치 한국영화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인 것처럼 포장했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한국영화 투자·제작보다 외화 배급·상영으로 돈을 벌겠다는 속셈이다.

마지막으로 WaW 픽처스에게도 발언 기회가 주어졌다.

박건호 대표는 단상에 서자마자 돌직구 같은 묵직한 질문을 날렸다.


“할리우드 10억 달러 클럽이라고 아십니까?”


젊은 축에 드는 제작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가 좀 있는 영화인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10억 달러 클럽은 <쥬라기공원>이 전 세계 10억 달러에 가까운 매출이 발생하면서 비평 쪽에서 쓰이기 시작한 용어다.

단일 영화로 10억 달러를 달성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처럼 여겨지던 시절이다.

과연 그런 영화가 나올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다.

참고로 제이미 캐머론이 현재 준비 중인 <타이타닉>이 그걸 달성해 내고 만다.

주요 투자자는 Garam Invest와 JHO-트라이스텔라 펀드, 패러마운틴이다.

패러마운틴은 북미와 아시아를 제외한 세계 배급을 맡을 예정이다.

트라이-스텔라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프로젝트다.

2억 달러가 넘어가는 투자도 감당이 안 되지만, 트라이-스텔라 자체 배급력이 아직은 빅6에 미치지 못했다.

때문에 패러마운틴과 UPI의 글로벌 배급력을 기대하고 있다.


“할리우드에서 단일 영화로 매출 10억 달러를 올린 것을 10억 달러 클럽에 들었다고 표현한답니다. 10억 달러라면 감이 좀 안 잡히죠? 우리나라 돈으로 1조에 가까운 돈입니다. 그걸 류지호 회장님이 미국에서 도전하고 있습니다. 백인들이 100년 간 꽉 잡고 있는 할리우드 영화판에서 25살 한국청년이 3년 연속 13억 달러 매출을 내는 영화사의 오너란 말입니다.”


참고로 매출규모로 1조 2천억의 한국 재계 23~24위권의 한보그룹과 맞먹는다.

한보그룹은 계열사만 15개로 자산과 부채 모든 면에서 JHO Company보다 규모가 크지만, 매출은 차이가 거의 없다.

JHO의 금융사업과 기타 사업 부문의 매출을 모두 포함하면 한국 재계 10~12위권이다.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박건호 대표가 답답해 할 수밖에.

오늘 이 자리의 모인 사람들이 과연 재계 15위 권의 태림산업이나 동하건설 회장 앞에서도 지금과 같은 행패를 부릴 수가 있을까.

당연히 아니다.

그 정도로 류지호는 어린 나이, 정확하게 산정할 수 없는 사업 규모, 적은 언론노출 탓에 한국에게 다소 저평가되어 있다.


“류지호 의장님이 각본을 쓰고 투자와 제작에도 참여한 <Collapse>가 지금까지 얼마의 매출을 올렸는지 아십니까? 전 세계 1억 2천만 달러입니다. 영화 한편으로 무려 1,000억 원의 매출을 벌어들인 겁니다. 지금 한국영화 극장 매출 규모가 3천억도 안 됩니다. 뭘 알고 까부세요.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박건호 대표가 드물게 화를 내고 있었다.

영화계 원로들과 일부 양아치보다 못한 영화인들에 대한 분노가 아니다.

혹시 류지호 의장이 충무로에 정나미가 떨어진 나머지 한국영화판에서 철수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자신들이 직장을 잃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사안이다.

WaW 픽처스는 토착 영화인들과 재벌 및 금융자본의 완충 역할을 해줄 훌륭한 중재자다.

제 밥그릇 챙기기에만 급급한 영화인들과 류지호는 차원이 다른 이상과 비전을 가지고 있다.

박건호 대표는 판이 벌어진 차에 기존 영화인들과 WaW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명확히 하고 싶었다.


“보세요. WaW는 매년 한국영화 3~5편을 미국에 판권을 팔거나 직접배급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어딜 통해서요? 바로 류지호 의장님이 소유한 ParaMax를 통해서란 말입니다. 그 대열에 자기 영화가 끼지 못해 배가 아픕니까? 그렇다면 미국에도 통할 영화를 만들어 가져오십시오. 의장님과 WaW는 북미뿐만 아니라 아시아와 유럽에도 여러분 영화를 팔아 드리겠습니다.”

“.....”

“여러분 중 누구도 감히 해볼 생각도 하지도 못했던 일입니다. 영화인들의 감사 같은 건 바라지도 않는 분입니다. 한국영화의 인프라를 위해서 뭐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고 돈도 안 되는 VFX 분야까지 투자를 하고 있어요. 적어도 염치가 있으면 격려와 칭찬을 해도 모자란 것 아닙니까? 응원을 못해줄망정 선배로서 무슨 추태입니까?”


세상은 인터넷이 발전하기 전이다.

한국에 앉아서 세상을 다 아는 것처럼 하는 지식인들이 많다.

확인할 길이 없다.

제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시야가 좁을 수밖에 없다.

독일에서 활약한 전직 축구선수 겸 감독이 한창 때 유럽무대에서 연속 골을 멋있게 넣었든 얼떨결에 주워 넣었든, 어떻게든 골을 넣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모른다.

또 메이저리그에서 투수로 활약하는 야구선수 역시 그가 따낸 1승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도.


‘그런 이들을 방구석 X문가라고 했지.... 어쩌면 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싶지 않는 것일 지도....’


자기보다 잘되는 꼴 못 보는 사람들이 득실대는 세계가 소위 ‘딴따라판’이다.

남의 성공을 배 아파하고 질투하기에 앞서 그의 성공을 분석하고 벤치마킹해서 따라잡을 생각을 해야 할 텐데.

그 시간에 남을 험담하고 깎아내리기 바쁘다.

질투가 분노로 마지막에는 자격지심으로.

그렇게 패배자가 되는 것이다.

이전 삶에서 류지호가 그랬던 것처럼.


“마지막으로 류지호 의장님 하실 말씀 없습니까?”

“......”

“한국영화업계 부동의 1위 업체의 오너이시잖습니까.“


박건호 대표가 유독 업계 1위를 강조했다.


핏.


류지호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억지로 삼켰다.

평소 점잖은 성격의 박건호 대표가 오늘은 작정을 한 모양이다.

과거로 돌아온 후로는 할 말을 정리하고 차분하게 말하기 위해 노력하는 류지호다.

오늘은 입에서 나오는 대로 쏟아내 볼 생각이다.

조금 과격하더라도.


“앞 서 선배님들 말씀 잘 들었습니다.”


류지호가 여러 선배 영화인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신 영화진흥공사 사장님과 관계자분들께도 감사하단 말씀 드립니다. 특별히 업계 현안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시는 문체부장관님께서 참석해 주셔서 오늘 행사가 더욱 뜻이 깊다고 생각합니다.”


류지호의 눈빛을 받은 인사들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좋은 분위기는 그것으로 끝이다.


“한국영화를 위해 그렇게 목청을 높이셨던 선배님들께서 UPI직배가 시작될 때 무슨 일을 하셨는지, 스크린쿼터 사수 궐기 대회에 몇 번이나 참석하셨는지 묻고 싶습니다.”


장내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요 몇 년 사이에 할리우드 직배사가 독점하고 있는 작품을 제외하고 블록버스터 평균수입가가 100만 달러(8억)에 육박하고 있다지요? 그 부분에서 WaW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는 따로 말 하지 않겠습니다.“


WaW 픽처스는 제휴계약을 통해서 한껏 거품 낀 수입가격의 절반 수준으로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 영화를 수입하고 있다.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 내부적으로 재계약 시기에 가격 재협상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럼에도 거품이 잔뜩 낀 현재의 가격보다는 훨씬 쌀 것임에는 틀림없다.


“WaW는 트라이-스텔라의 대행사도 아니고 한국지부도 아닙니다. 당연히 직배사가 아니기 때문에 한국에서 얻은 수익을 미국으로 보낼 이유가 없습니다. 대부분 한국영화에 재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나는 군복무 3년 포함 총 4년 간 WaW에서 배당금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 돈은 여기 참석하신 몇 분 선배님들이 제작하신 영화에 고스란히 투자되었습니다. 거기서 나온 수익은 또 다른 영화에 투자하고 있지요. 내가 나라를 팔아먹을 상놈인지 묻고 싶습니다.”

“......”

“미국 영화를 우리보다 두 배 이상의 가격으로 사오는 분들은 그 돈을 뽑기 위해 어떤 일을 하고 계십니까?”

“......”

“겉으로는 스크린쿼터 지지하는 척 하면서 한국영화 상영일수를 채우기 위해 온갖 편법을 다 쓰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 배를 불리는 것이 애국이었으면 나 또한 그럴 걸 그랬습니다.”

“저, 저....!”


극장연합회 회장과 제작자협회 회장이 당장 분노를 폭발시킬 듯 얼굴을 붉혔다.

류지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싸움을 걸어오면 더 좋다.

그것을 계기로 충무로를 한 번 크게 뒤집어엎어 놓을 수도 있을 테니까.


“WaW 만큼 한국영화에 투자하고 있는 분.... 요즘 오성과 대유, 경일, 선경이 꽤 적극적이죠?”

“마치 한국영화를 위해 돈을 쓰는 것처럼 말하는데, 다 돈 벌어먹자고 한 거잖아!”

“자선사업을 목적으로 영화업에 종사하십니까?”

“.....!”

“G.O.M 강남점은 개관 이후 지금까지 3개관을 한국영화를 위해 상시 열어놓고 있습니다. 그 중 한 개 상영관은 365일 한국영화만 상영하겠다고 이미 입장을 밝혔습니다. 스크린쿼터도 별로 개의치 않습니다. 왜? 앞으로 돈 되는 한국영화가 많이 만들어질 테니까요. 누구에 의해서? WaW 픽처스의 자본과 노하우로.”


한국영화 의무상영 일수 부분을 짚으면, 편법 상영부터 매표부정 등 찔리는 것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흥행업자와 극장업주들은 논점을 흐려야 했다.


“계약을 왜 그 따위로 하느냔 말이야?”

“맞아. 충무로 관행이라는 게 있어!”

“니들이 다 해먹을 작정이야!”


WaW 픽처스는 할리우드 계약서를 참조해서 만든 자체적인 표준계약서를 사용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모든 조항이 법적으로 규정된 것은 아니라는 것.

아직까지는 영화진흥법에 들어가 있지 않은 부분이 많았다.

다만 개별계약, 최대 근로시간, 최저 임금 수준 등.

독자적인 원칙을 세워서 실행하고 있다.

많은 영화계 인사들이 특히 개별계약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기존에는 팀 단위의 계약이었다.

감독이 대표로 계약을 하고, 돈을 자신이 먼저 떼어간다.

남은 돈에서 1st 어시스턴트가 떼어 간다.

또 2nd가 떼고.

욕심이 많은 기사는 가령 3,000만 원에 계약하면 무려 2,000만 원을 챙겨가는 경우도 있다.

남은 1,000만 원의 절반인 500만 원을 1st가, 또 그 절반 250만 원을 2nd가.

결국 막내는 많이 받으면 100만 원.

실상은 50만 원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가 수두룩했다.

WaW 픽처스가 제작하는 영화에서 스태프별 개별계약이 기본이다.

그렇게 해도 기사급이 가져가는 금액은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

대신 조수들 개런티가 조금 올랐다.

적은 돈을 나눠가질 필요가 없으니까.

3rd 어시스턴트와 인턴 급 막내들의 최저 임금 역시 보장해주고 있다.


“선배님들은 도제 시스템의 피해자이면서 수혜자입니다. 후배들에게 우리도 그런 피해를 입었으니 너희들도 똑같이 당해보라고 하는 것은 무슨 심보... 지나친 것 아닙니까? 투자제작사가 조수들의 임금을 조금이라도 더 챙겨주겠다는데 선배로서 좋아해야할 일 아닙니까? 후배들이 차비조차 없어서 충무로까지 걸어다는 꼴을 언제까지 봐야 합니까?”


자신이 챙길 돈이 줄어든다고 내놓고 따질 철면피는 없다.

이 자리를 벗어나 충무로 술집에 모여 앉으면 열심히 씹어대겠지만.


“제작비가 상승하면 누가 한국영화에 투자를 하겠어?”


말투가 누그러들었다.


“여기 대기업 관계자들이 나와 계신데, 한 번 물어보세요.”

“.....”


아무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다.

영화진흥공사 사장이 나섰다.


“나도 하나만 물어봄세.”

“대답할 수 있는 사안이면 뭐든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자네 영화사는 미국영화 계약서를 계속해서 사용하겠다는 건가? 법적인 효력과 상관없이.”

“미국에서 쓰는 계약서와 많이 다릅니다. 그들은 일반 스태프 계약서도 100페이지가 넘습니다. WaW는 겨우 30페이지 정도입니다. 여기 직배사 영화를 자주 다뤄본 사람들은 그들의 계약서가 얼마나 꼼꼼한지 알겁니다.”

“업계 관행이란 게 있고, 형평성이란 게 있지 않겠나?”

“사장님은 WaW가 올바르지 않은 방법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 WaW가 사용하고 있는 표준계약서는 확인해보셨습니까?”

“잘 알겠네. 계속 이야기 해보게.”


뭘 알아야 질문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영진공 사장은 대기업 관계자를 대신해서 은근슬쩍 류지호를 찔러 본 것뿐.

본전도 못 찾을 뻔 했다.


“영진공 관계자분들께도 청이 있습니다.”

“.....”

“극장의 입장권 통합전산망을 마련해주십시오. WaW는 무조건 협조하겠습니다.”


허.


여기저기서 황당하다는 반응이 터져 나왔다.


오오.


현장 영화인들은 격하게 환영하는 분위기다.

극장과 배급사는 입장권을 정부 관리 하에서 집계하는 걸 달가워할 리가 없다.

각종 매표 부당행위로 세금회피를 할 수 없을 테니까.

반면에 제작사 입장에서는 무조건 환영이다.

정확한 매표집계로 인해 암암리에 누락되었던 수익을 제대로 정산 받을 수 있을 테니까.

참고로 영화진흥위원회 입장권 통합전산망은 2003년 오픈하여 2004년에는 극장 가입율 50%를 달성하였으나 가입율 99%를 달성한 것은 2011년 이후에 가능해졌었다.

100% 가입은 류지호가 얼어 죽기 직전 즈음이었다.

2003년 전까지는 매표집계, 관객수 그 외 다양한 지표들을 제작, 수입, 배급사의 일방적인 발표를 통해 얻을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한국의 영화업계는 물론이고 할리우드 직배사까지 부정행위를 벌였다.

편법, 불법을 저지르지 않으면 그 사람이 바보였다.

2010년 이전 1,000만 영화 몇 편은 실제보다 적게 통계가 잡히기도 했다.

개봉 당시에는 1,090만여 명이라고 애매하게 집계된 어떤 작품은 실제 1,300만여 명을 동원한 것으로 나중에 다시 집계되기도 했다.

그 오차와 관련해 사후 조치는 아무 것도 없었다.

명백히 잘못된 행위였지만 누구도 바로잡지 못했다.


“세금탈취를 막는다는 것. 아주 일차원적인 생각입니다. 입장권 통합전산망이 정확하고 신속하게 제공되면 극장·제작사·배급사 모두 좋습니다. 왜냐. 연령, 성별, 계절별, 월별 관객의 관람경향을 분석할 수 있는 기초 자료가 됩니다. 영화를 기획함에 있어 좀 더 풍부하고 확실한 통계적인 데이터를 제공해 줄 겁니다. 그리고 어디로 세는지 모르는 돈을 좀 더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습니다. 매번 극장에서 문예진흥기금을 인하해달라고 요구합니다. 무엇을 기준으로 합니까? 정확한 근거를 가지고 정부와 협상을 해야지. ‘힘드니까 좀 봐 주세요’ 하면 공무원들이 들어주기나 한답니까?“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그렇지.


“내년부터 WaW는 한국영화 투자와 제작편수를 늘릴 계획이 있습니다. 앞으로 5년 간 편수를 계속해서 늘려 새천년에는 15편까지 늘릴 계획입니다. 그리고 향후 10년 안에 한국영화 편수를 30편까지 늘릴 계획입니다. 물론 인하우스 영화는 10편 내외일 겁니다. 나머지 영화는 제휴영화사나 독립영화, 저예산영화로 라인업이 구성될 겁니다.”

“오오!”


장내에 탄성이 터졌다.

누군가 뜨거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갑자기 영화를 늘리면 시장이 그걸 수용 할 수 있겠습니까?”

“못합니다.”

“장난 하나?”

“인프라가 따라줘야 합니다. WaW는 자사 상영관을 계속해서 늘릴 예정입니다. 또한 숙련된 스태프와 감독을 양성하려고 합니다. 그 일환으로 영화 아카데미와 영상원 졸업 작품 상영회를 지원해 규모를 키울 생각이고, 매년 총 상금 1억 원의 시나리오 공모전, 아네모네 청소년영화제. 독립영화제 등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스태프 재교육을 위한 아카데미 설립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사업에 투입하게 될 최초 자금규모는 200억 원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물론 향후 진행되는 상황을 봐서 더 늘어나게 됩니다. 여기에 입장권 통합전산망 구축 지원 비용은 빠져있습니다.”

“미, 미친....!”


류지호는 대기업이나 기존 기득권들과 달리 매우 구체적인 WaW의 청사진을 내놓았다.

영화진흥금고 자본금이 겨우 100억 원이다.

영화산업 발전과 영화인 복지사업에 20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그것도 시작하는 예산이다.

앞으로 더욱 늘어날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사실 류지호가 내놓은 청사진 대부분은 영화진흥공사 사업이 되어야 하는 것이 맞았다.

류지호는 그런 걸 따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사업비에 몇 천억 원이 소요되는 것도 아니고.

설령 그 정도 필요하다고 해도 WaW 픽처스가 휘청거릴 정도는 아니다.

부족하면 자신이 채워주면 된다.

류지호는 최연소 억만장자다.

공식적으로 인증된 것은 아니다.

포춘이나 포브스의 재산 확인을 해주고 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JHO Company의 M&A 시장의 평가가치는 50~60억 달러로 추정된다.

실제 그 사이 액수에서 오퍼가 있기도 했고.

그런 대기업의 지분 75% 이상을 소유한 것이 류지호다.


“오늘 말한 것들이 지켜지는지 아닌지 지켜봐 주십시오. WaW는 누구처럼 말만 앞세우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그래 왔고 앞으로 그럴 것입니다. 앞으로 동료 영화인 여러분 또 영진공 관계자분들과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지길 기대합니다. 이상입니다.”


형식적으로라도 박수가 나와야 했다.

헌데 장내는 조용했다.

종합촬영소 남양주 이전 설명회를 겸한 한국영화 발전 방향 모색.

그 같은 주제로 열린 세미나의 주인공은 WaW였다.

아니다.

류지호였다.

WaW와 류지호를 씹고 뜯고... 못 잡아먹어서 안달 나 있던 이들.

사납게 으르렁대었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대신 참석자들은 WaW가 전개할 사업에 어떻게 하면 참여할 수 있을까 머릿속으로 주판알을 튕길 뿐.

일부 사업은 어떻게 참여하는가에 따라 눈먼 돈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스태프 재교육 아카데미가 그랬다.

돈 빼먹기 딱 좋은 사업이다.


‘그건 당신들 착각이고.’


류지호는 요주 인물들의 생각을 이미 꿰뚫고 있다.

그들은 영원히 WaW와 함께 할 수 없을 것이다.

방해가 된다면 영화판에서 치워버릴 생각도 있다.


‘일단 양아치 몇 명 치워버리고 시작하는 게 맞으려나....?’


류지호와 수행원들이 주최 측이 마련한 연회를 마다하고 종합촬영소를 나섰다.

박건호 대표와 WaW 관계자들이 남아서 배웅했다.


“그렇게 다 알려줘도 되겠습니까?”

“어차피 연말에 기사 뿌릴 예정이었잖아요. 그걸 조금 앞당겼다고 생각해 주세요.”

“속은 시원하군요. 멋도 모르고 짖고 까부는 사람들에게 한 방 먹여준 것 같습니다.”

“오늘은 잽만 던졌죠.”

“허허. 그렇긴 합니다.”

“나 때문에 괜히 뒤풀이에 참석하는 WaW 식구들이 시달리게 생겼네요.”

“아닙니다. 일정이 매우 타이트하다고 들었습니다. 얼른 출발하시죠. 차 안에서 잠시 눈이라도 붙이시죠.”

“나중에 회사에서 봐요.”


올 때마와 마찬가지로 대형세단 세 대가 종합촬영소를 나서 강변길을 따라 달랐다.

서울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장문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요새 한가하죠?”

- 바빠.

“미국 돌아가기 전에 얼굴 좀 봐요.”

- 나만?

“임 사장하고 박 이사랑 함께 봐도 되고요.”

- 또 뭔데? 이번에도 나쁜 놈들 혼내주는 거냐?

“장 이사가 활약할 시간이 찾아왔어요.”

- 나래안전 이사로 움직이는 건 합법이지만, 건달 장문식이 움직이는 건 불법이야. 그건 잊지 마.

“내가 언제 부당한 일 부탁하는 거 봤어요?”

- 앓느니 죽는다, 내가.

“앓지 말고 병원 가 봐요. 나하고 오래 일해야 하니까, 꼬박꼬박 건강검진 받고. 끊어요.”


깜도 안 되는 영화인 몇 명이 자꾸 WaW 픽처스를 도발하고 있다.

영화계 선배들이라고 명예롭게 퇴장하길 내심 기대했다.

구제불능인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는 말처럼.

강제로라도 물러나게 할 수밖에.


작가의말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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