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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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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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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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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0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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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난 꿈꾸는 사람을 좋아해.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네가 그 유명한 류지호구나? 난 윌이야.”


까무잡잡한 피부, 170대 중반 정도의 신장, 짙은 쌍꺼풀, 치렁치렁한 헤어스타일.

UC버클리의 체육 장학생으로 입학해 Cal 태권도팀에 소속되었다가 현재는 배우의 길에 들어선 교포 배우 윌 욱 리(Will Wook Lee)다.


“가끔 사우스센트럴 지역의 청소년 센터에서 애들을 가르친다며?”

“EBAYC 일원으로 빈민가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적이 있었거든.”

“태권도?”

“응.”


East Bay Asian Youth Center는 1976년 버클리에서 만들어진 아시아계 미국인 청소년들의 봉사단체다.


“본부를 오클랜드로 옮길 계획이라고 들은 것 같아.”

“네가 LA 빈민가에 설립한 아동청소년센터에서 영감을 받았나봐. 아마도 오클랜드시에서 지원 법안이 정식으로 제정이 된다면 원활한 프로그램 진행을 위해서 본부를 옮길지도 모르겠어.”

“잘됐으면 좋겠다.”


183Cm의 훤칠한 신장, 쌍꺼풀 없는 눈, 어릴 때 좀 놀아봤을 것 같이 무게를 잡고 악수를 건네는 청년.

작년 UCLA를 졸업한 정 강(Jung Kang)이다.

학교를 다닐 때부터 이미 더스틴 린과 친분이 있었던 모양이다.

류지호는 군대에 다녀왔기 때문에 학기가 겹치지 않았다.


“난 강정호. 정호라고 해도 되고, 정이라고 해도 되고 편한 대로 불러.”

“한국말 좀 하네?”

“어떤 분이 한국 사람이 한국어를 해야 옳다고 해서. 지금은 많이 미숙하지만, 노력하고 있어.”


그 어떤 분은 바로 대선배 오순탁이다.


“그 정도면 훌륭해.”


마지막은 UC버클리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있는 존 주(John Joo)다.

공부를 잘하게 생긴 모범생 타입의 외모다.

전공의 영향 때문인지 영어 발음이 굉장히 귀에 쏙쏙 박혔다.


“할리우드에서 요즘 가장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는 슈퍼스타를 보게 돼서 영광이야.”

“슈퍼스타는 아닐걸? 그저 트라이-스타 정도?”


되도 않는 말장난이다.


하하하.


존 주가 과장되게 웃었다.


“마가렛과 친하거든. 그녀에게서 유머를 배워볼래?”

“기회가 된다면 기꺼이.”


존 주가 언급한 마가렛은 최근 미국에서 큰 주목을 끌고 있는 코미디언 겸 배우 마가렛 미란 김(Margaret Miran Kim)을 일컫는다.

여성이자 소수 인종 출신으로 성, 인종과 관련된 정치 풍자 코미디와 함께 대담한 섹스 코미디를 하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사실상 여성으로써 해당 스탠드업 코미디 분야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류지호가 카투사 복무 중에 쿠엔 태런티노와 사귄 적이 있다.

현재는 친구로 지내는 모양인데, 남의 연애사까지 관심을 둘 정도로 류지호가 한가하진 않아서 사연은 잘 모른다.


“별실로 옮기는 게 어때?”

“친구들이 불편할 수도 있겠네요.”


한식당 사장이 류지호를 배려해서 별실을 내주었다.


“......”


이들이 영화를 하는 한 언제고 만나게 될 줄은 알았다.

다만 이렇게 빨리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다들 서로 친분이 있었어?”

“그렇진 않아. 우리가 알게 된 건 올 초였어.”


류지호가 이 시기에 할리우드에서 활동하지 않았다면, 이렇듯 친분이 있을 수 없는 한국계 배우들이다.

특히 윌 욱 리는 이들하고 활동하는 분야가 달랐다.

어쨌든.


“Jay, 잠시만.”

“응?”

“저기 멤버가 한 명 더 왔어.”


역시 동양인이다.


“하이. 지호!”


청년이 다짜고짜 류지호를 덥석 껴안았다.

순간 류지호는 청년과 이미 잘 알고 있던 사이인가 고민했다.


“난 쿠엔틴 리. 저기 더스틴과 같은 대학원에 다닐 예정이야.”

“TV·영화?”

“응.”

“그랬구나. 내 이름은 이미 알거고. 암튼 반갑다.”


앤드류 한이 잠시 인사를 나누며 어수선한 장내를 정리했다.


“인사 끝났으면 일단 자리에 앉자.”


화제의 중심은 류지호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누구하나 불만을 가질 수 없었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인은 코미디언이자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마가렛 킴이다.

그녀조차 류지호에게는 비할 바가 못 된다.


“프로덕션을 설립하긴 했지만, 투자를 받기가 너무 막막해.”


쿠엔틴 리는 아시아출신이 할리우드에서 영화작업 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한참을 이야기 했다.

그래서 제작비를 지원해달라는 줄 알았다.


“뭐라고? 나 더러 출연을 해 달라고?”

“솔직히 아시아계가 만든 영화는 전혀 주목을 끌지 못해. 하지만 너라면 달라.”


쿠엔틴은 단정적으로 말했다.


“나도 아시안이야.”

“트라이-스텔라 스튜디오의 오너지. 이미 여러 영화에서 프로듀서 크레디트도 가지고 있고. 거기에 각본 크레디트까지.”

“난 배우가 아니야. 연기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심지어 난 내 영화에도 출연한 적이 없어.”

“더스틴에게 들었어. 영화에 출연하는 걸 별로 즐기지 않는다고.”

“그런데도 내게 그런 부탁을 하는 거야? 차라리 영화사를 소개시켜줄까?”


류지호는 제작비를 대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영화사를 소개시켜주겠다고 말했다.


“그것도 고마운 일이지만, 더 좋은 것은 네가 우리의 영화에 나오는 거야.”

“설마 배역을 맡기려는 건 아니겠지?”

“그러면 좋겠지만, 넌 바쁜 사람이잖아. 아주 잠깐의 시간만 우리를 위해 내줬으면 고맙겠어.”

“카메오로 출연해 달라는 거야?”

“응.”

“혹시 숨은 그림 찾기?”

“그게 될까?”

“당연히 안 되지. 내가 할리우드와 LA 지역에서는 나름 유명인사이긴 해도, 북미 영화팬들에게까지 임팩트가 큰 유명인사는 아니야.”

“화제성은 있을 거야.”

“난 브루스 리도 리 안도 아니야. 응위쌈도 아니라고. 심지어 소닉-콜럼비아스에서 트라이-스텔라로 옮긴 프로듀서 크리스찬 리조차 할리우드 전체로 따지면 수많은 프로듀서 가운데 한 명일 뿐이잖아. 그조차 대단하게 느껴지지 않는데... 그에 비해 커리어가 부족한 나는 애송이나 마찬가지일걸.”


류지호가 군복무 중일 때 트라이-스텔라에서는 많은 인력들이 들어오고 나갔다.

그때 영입한 프로듀서 중에 중국계 미국인 크리스토퍼 리(Christopher Lee)가 있다.

<제리 맥과이어>와 <이보다 좋을 순 없다>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두 영화에는 리치 사카이(Richie Sakai)이란 프로듀서도 참여하고 있는데. 일본계 미국인이다.

스승격인 브룩스 감독과 함께 유명한 <심슨> 시리즈를 만들었다.

그 두 명이 지금까지 류지호가 만난 가장 잘 나가는 아시아계 할리우드영화인이라고 할 수 있다.

더스틴 린이 애처로운 눈으로 물었다.


“정말 안 될까?”

“속내를 털어놔봐. 날 카메오로 출연시키고 싶은 진짜 이유를.”


더스틴 린이 몹시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올해 필름 스쿨 졸업생 논문 중에 할리우드의 비백인 배우와 크루의 활동현황을 분석한 것이 있어. 할리우드 영화의 감독과 제작자는 90% 이상이 백인이야. 아시아계 감독과 프로듀서는 할리우드에서 거의 일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되었어. 전체 할리우드 영화에서 3%에도 미치지 못한대.”


쿠엔틴이 말을 받았다.


“아시아계 감독들에게 주어지는 기회들은 영화 속 캐릭터와 배우의 인종과는 큰 관련이 없었어. 아시아계 감독이 연출한 영화의 크레디트 상위에 위치한 주조연 배우들 중 4분의 3은 아시아계 배우가 아니야.”


다시 더스틴 린이 말을 이었다.


“흑인 감독이 연출한 사례는 전체 대상 영화의 5% 정도로 집계됐거든. 근데 흑인 감독의 영화에서는 주조연배우들이 대부분 흑인이었어.”


참고로 이 연구는 인종과 성별을 섞은 기준에서도 전체 대상 영화에서 여성이 연출을 한 영화는 4%에 불과하며 아시아계 여성 혹은 흑인 여성 감독이 연출을 한 사례는 한 편도 없었다는 것을 보여줬다.


“논문의 결론은 매우 명확해. 할리우드의 감독의자는 백인 남성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내용이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잖아?”

“나와 쿠엔틴은 모든 배우와 크루를 아시안으로 구성할 생각이야.


류지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능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우는 어떻게 구성한다고 하더라도 모든 스태프까지 아시아계로 채울 수는 없을 터.

아시아에서 제작한다면 또 모를까.


“물론 촬영과 프로덕션 디자이너는 백인이겠지. 적어도 배우만은 모두 아시아 출신을 캐스팅할 생각이야.”


류지호가 윌과 정을 돌아봤다.

둘은 류지호와 눈이 마주치자, 눈을 찡긋거렸다.


“여기 이 친구들이 모두 출연하는 건가?”

“아쉽지만 윌과 정은 이번에는 함께 하지 못해.”

“그래서?”

“만약 우리가 영화를 제작하게 된다면, 비디오 출시 기회조차 잡지 못할 것 같아.”

“영화에 자신이 없어?”

“나와 쿠엔틴이 찍을 영화가 동성애를 다루고 있어.”

“뉴욕 퀴어영화제에 출품하면 되겠네....”

“그랬다고 쳐. 하지만 아시안들만 나오는 영화를 누가 봐주겠어. 내 생각에는 아주 극소수의 아트하우스에서나 상영할 수 있을 거야.”


빙빙 돌려 말하고 구구절절 늘어놓는 말에 류지호는 슬슬 흥미를 잃어가고 있다.

류지호가 냉정하게 충고했다.


“프로듀서와 대화할 때 지금처럼 하지 마. 매순간 그들의 주의를 끌지 않으면 네 영화에서 금방 관심을 거두어들일 테니까.”

“아, 미안.”

“아시안만 나오는 영화를 누가 봐주겠냐고? 리 안의 영화들 <결혼피로연>, <음식남녀>... ParaMax가 수입해서 배급한 한국 오리지널 영화들. 바보 같이 굴지 마.”


더스틴 린의 얼굴이 조금 붉어진 것 같았다.

무안함을 감추기 위해 얼른 화제를 돌렸다.


“우리가 1학년 때 찍은 단편 있지?”

“한 두 편이 아니잖아.”

“<테일러>.”


류지호가 쓴 시나리오를 쉘라가 각색하고, 더스틴이 연출했던 단편영화다.

촬영은 류지호가 직접 했다.


“그 영화의 에피소드와 네가 촬영한 몇 개의 쇼트를 이번 영화에 넣고 싶어.”

“그 씬에 나를 출연시키고 싶은 거고?”

“응.”

“설마 날 게이 남자친구로 출연시키겠다는 거야?”

“응.”


하하하.


류지호가 배꼽을 잡고 웃었다.

더스틴 린은 게이가 아니었다.

최근까지도 아시아계 여성과 데이트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남은 한 사람이 게이란 뜻이 된다.


“일단 그렇다고 치고. 단편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고, 수상도 했었지... 아마?”

“응.”

“에피소드만 차용한다는 걸 보니 완전 다른 영화인 모양인데.... 내가 카메오로 나온다고 해서 뭐가 도움이 된다는 거지?”

“예산이 10만 달러야.”


이런 예산이 정상적인 것이다.

류지호가 <Life Goes On>에 100만 달러 이상 쓰고, <The Killing Road>에서 300만 달러를 쓴 것은 일반적이지 않은 예산이었던 거다.


“나와 쿠엔틴은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 오너의 유명세가 필요한 것이 아니야. 넌 1억 달러 박스오피스 영화의 각본을 쓴 아시아 출신의 작가잖아.”

“.....?”

“내가 연출하고 네가 <테일러>에서 만들어 찍었던 미장센을 그대로 재현한, 바로 그 장면에 네가 출연하는 것만으로 아시아계가 만든 저예산의 시시한 영화가 아니게 된다는 거지.”


작가영화 흉내를 내면서 영화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모양이다.


카메오(Cameo).


저명한 인사나 인기 배우가 극중 예기치 않은 순간에 등장해 아주 짧은 동안만 하는 연기.

이것이 사전적 정의다.

한국에서는 이를 더 세분화해서 특별출연, 우정출연 등으로 나누기도 한다.

한국에서 극 속에서 비중은 작지만 특별한 의미를 지닌 배역에 유명한 배우가 출연한 경우를 ‘특별출연’이라 하는데, 감독 혹은 출연진과의 친분과 의리를 앞세워 출연하는 경우도 있고, 감독이나 제작자가 반드시 영화에 출연시키고 싶은 배우에게 직접 제의해 소정의 개런티를 지불하고 출연시키기도 한다.

그와 달리 극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 배역에 단순히 친분만으로 출연하는 걸 우정출연이라고 표현한다.

일종의 깜짝 이벤트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구분을 모두 포함한 카메오는 할리우드의 영화감독 알프레드 히치콕이 자신의 영화마다 깜짝 출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는데, Timely의 정신적 지주 스탠 리버가 영화마다 출연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쿠엔 태런티노 같은 경우는 자신의 영화뿐만 아니라, 자신이 재미있게 본 시나리오의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하는 걸 즐기기까지 한다.


“그러니까 정리를 해보자면, 너에게 특별한 영화였던 <테일러>의 오리지널 스크립트를 쓰고, 촬영을 했던 내가 네 영화에 잠깐 얼굴을 노출함으로해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는 거지? 너 개인에게나 영화 자체로나.”


아시아 출신으로 할리우드에서 가장 출세한 인물이 류지호다.

심지어 최연소 억만장자라는 소리까지 돌고 있다.

화제성으로 큰 주목을 끌 수 있다.


“난 태런티노가 아니야.”

“태런티노는 오스카를 노릴 순 없지만, 넌 가능하지 않을까?”

“흑인들도 못 받는 오스카를? 난 생각도 안 해.”


앞으로 10년 후 리 안 감독이 아시아계 최초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기는 한다.

더 많은 시간이 흐르면 한국인 최초 아카데미 시상자도 탄생하고.

현재는 꿈도 못 꿀 일이다.

류지호는 트라이-스텔라 영화가 아카데미 수상에 있어서 불이익을 받을까봐, 작품상 수상 대상자가 되는 제작자 크레디트를 모리스 메타보이를 비롯해 다른 프로듀서에게 양보하고 있다.

아카데미 시상자가 되지 못하는 협력(Associate) 프로듀서에 이름을 올리는 정도다.

참고로 공동 프로듀서(Co- Producer)는 아카데미 시상 후보가 될 수도 있다.

류지호가 공동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린 영화는 상당히 많다.

대부분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로 손색이 있는 상업영화들이다.

어쨌든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가 메이저 스튜디오가 되고, 6개의 메이저 스튜디오로 구성된(과거에는 8개) 영화협회(MPAA)의 회원이 된 후에, 모두가 인정할 만한 영화를 내놓으면 류지호로서도 당당하게 프로듀서 부문에 이름을 올릴 수도 있다.

다만 리 안 감독처럼 모두가 인정할 만한 영화를 찍어놓고도 번번이 노미네이트에 머물 수도 있다.

결국 류지호가 아카데미에서 수상하는 방법은 영화 안팎의 인종차별 여론을 등에 업는 방법 밖에는 없다.


“내가 카메오로 출연하는 게 너희가 생각하는 만큼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게다가 겨울학기 전 브레이크 타임까지 난 시간을 낼 수 없어.”

“그건 걱정하지 마. 당장 촬영에 들어가는 건 아니니까.”

“스크립트 줘봐.”

“고마워.”

“고마워하긴 일러. 난 아직 결정 안했으니까.”


류지호의 시큰둥한 대답과 상관없이 더스틴 린의 표정이 밝아졌다.

류지호의 입에서 저 정도 말이 나왔다는 건 어느 정도 마음에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니까.


“제작은?”

“쿠엔틴의 프로덕션에서.”

“투자는?”

“쿠엔틴과 내가 절반씩 부담할 거야.”

“10만 달러 가지고 충분해?”

“부족하지만 어떻게 하겠어. 그 정도가 한계인 걸.”

“....음.”


류지호는 자신 주위의 프로듀서들을 떠올려봤다.

일단 트라이-스텔라와 JHO Pictures는 제외하고, 디멘션 필름은 공포·스릴러 영화 전문 브랜드로 키우고 있었기 때문에 제외.

남은 것은 ParaMax Films이다.

하나 걸리는 것은 이 둘이 찍을 영화가 게이 영화라는 것.

다양성 영화 측면에서 보면 문제될 것은 없어 보인다.

다만 각본을 보지 않은 상황에서 알버트 마샬에게 소개를 시켜줘도 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정말 뛰어난 각본이 아니라면 알버트가 선뜻 그린라이트를 켤 것 같지 않으니까.


“ParaMax에 스크립트 보여줘 봤어?”

“응.”


ParaMax에게 거절당했다는 의미.


“그랬구나. 암튼 가장 최근에 작성한 것으로 줘봐. 읽어볼 게.”

“오케이.”


류지호는 선뜻 투자약속을 하지 않았다.

이제는 섣불리 투자약속을 남발해서는 안 된다.

할 수도 없다.

예전처럼 지인들에게 이런 저런 투자를 해주다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류지호의 투자를 바랄 것이고, 조금이라도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 시도 때도 없이 부탁할 가능성이 높았다.

일론 리브스처럼 투자를 통해서 좋은 인연을 맺을 수도 있지만, 보통은 그렇지 않은 것이 세상사다.

일론 리브스 투자 건도 보우먼 팀장에게 일임했다.

비즈니스적인 부분에서 류지호 본인이 끼어들지 않겠다는 의사표현이다.

다른 속셈도 있었다.

아무에게나 투자하지 않는다는 이미지를 만들 생각이다.

그래야 류지호의 투자가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 있을 테니까.

물론 류지호는 진짜 투자전문가가 아니다.

그렇기에 투자가 흉내를 내지 않고 기억을 써먹을 수 있는 방법을 찾다보니 궁여지책으로 생각해낸 이미지 메이킹이다.

앤드류 한이 지겨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이제 영화 비즈니스 이야기 끝났어?”

“대충....”

“비즈니스는 이런 자리가 아니라 할리우드에 가서 해.”


투덜거리는 앤드류를 향해 류지호가 물었다.


“그 동안 어떻게 지냈어?”

“매일 똑같아. 거리를 배회하고, 해가 지면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여자를 만나고, 가끔은.....”


류지호는 앤드류와의 대화를 시작으로 다른 한국계 배우들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계 배우는 물론이고, 아시아 배우들에게 주로 의뢰가 오는 역할은 매우 전형적인 역할들뿐이야. 미국에서 한국인과 일본인의 고정 이미지라는 것이 계산적이고 반듯하며 준법정신이 투철하다 못해 피해망상 같은 게 있는 듯한 모습이거든. 짜증나 죽겠어.”


존 주의 말을 정 강이 받았다.


“한마디로 너드지.”


너드(nerd).

한국말로 풀이하면 괴짜, 공부벌레라고 할 수 있다.

비하의미로 통하는 표현이다.

전문지식은 많지만 사회성이 부족한 부류.

즉 자기가 하고 싶은 일 밖에 하지 않고 남과 어울리지 못하거나 4차원적인 모습을 보이면 미국에서 nerd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젊고 어린 아시아계 배우들, 특히 한국이나 일본계 배우들에게 들어오는 역할이 이런 캐릭터가 많았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동양인은 거의 십중팔구 여성이야. 그것도 별로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오지도 않아. 남자의 경우는 갱단, 무술가, 나이가 좀 있는 배우는 상점주인이 단골역할이지.”

“아프리카계 흑인 감독이 연출하는 영화에서는....”


윌 욱 리가 킥킥 웃으며 말했다.


“쫀쫀하고 돈만 밝히는 캐릭터. Jay가 단편영화에서 아주 멋지게 그걸 뒤집었지.”

“<Life Goes On>의 할머니?”


끄덕.


한국계 미국인 중에서도 성공한 이들이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도 현대일상을 배경으로 그린 영화나 드라마에서 한국계가 미국 시민으로 살아가는 모습과는 거리가 먼 모습들이 정형화되어 있다.


“시나리오에서부터 아시아계 미국인을 염두에 두고 설정된 배역이 아닌 이상, 아시아 배우들이 활약할 수 있는 무대가 없다고 할 수 있지. <Collapse>에서 한국인 백화점 매장 여직원처럼.”


할리우드는 착한 스머프들이 모여 사는 아름다운 동네가 결코 아니다.

텃새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거기에 유색인종은 인종차별까지 당한다.

아시아계 배우들은 연기력도 뛰어나고 심지어 액션 연기와 다국어 구사 능력까지 갖추고 있지만, 할리우드에서 성공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솔직히 내가 아는 한국계 배우들은 중국인, 일본인 심지어 필리피노까지 연기하는 경우가 많아서 영어 외에 두 세 개 언어를 구사하는 경우가 많거든.”

“살아남으려면 뭐든 해야만 하니까.”


단 한국계이지만 한국어가 서투른 건 함정이다.

정 강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스타가 되려는 꿈은 없어. 어떻게 살아남느냐. 오로지 그것뿐이야.”


윌 욱 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배우가 되는 것이 이렇게 힘든 길인지 몰랐어. 일 년에 대여섯 번 정도, 아시아계 배우가 응모할 수 있는 좋은 역할의 오디션에 매번 노심초사하고 있지.”


그간의 어려움을 슬쩍 내비쳤지만, 인상을 쓰거나 진지한 얼굴은 아니다.

장난기어린 표정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천성이 그런 것인지 웃기도 잘 웃었다.


“CAPE를 통해 캐스팅 도움을 받을 순 없어?”


더스틴 린이 말한 CAPE(Coalition of Asian Pacific in Entertainment)은 91년에 만들어진 할리우드에서 일하는 아시아인들의 모임이다.

정 강이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별 도움이 안 돼.”


존 주가 말을 보탰다.


“그저 저녁식사와 파티일 뿐. 말이 아시아계 영화인들의 모임이지. 대학 사교클럽과 다를 것이 없어.”


류지호가 전부터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Collapse> 오디션은 왜 다들 안 봤지?”

“오디션을 본 줄도 몰랐어.”

“난 그때는 배우가 될 생각이 없을 때였어.”


일찍부터 배우를 꿈꿔왔던 정 강과 달리 존 주와 윌 욱은 배우의 길로 들어선지 얼마 되지 않았다.

만약 이들이 오디션에 참가했다면, 자신이 그대로 넘어갔을 리가 없다.

작은 역할이라도 하나씩 맡겼을 터.


“윌은 어디에서 운동해?”

“그냥 아는 태권도 센터에서.”

“난 매주 토요일마다 전 사범님 도장에서 수련해.”

“전용운 사범?”

“응.”

“몇 단인데?”

“3단.”

“오! 나도 3단이야.”

“다른 격투기도 배우고 싶으면 말해. 꽤 유능한 스턴트맨들과 친하니까.”

“오케이!”


류지호는 오순탁을 중심으로 한국계 배우들이 똘똘 뭉쳤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한국계 배우들이 하나로 뭉쳐 목소리를 내는 것도 중요하다.

이전 삶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한국계 배우가 당당하게 주인공을 차지하고, 월드스타가 되길 기대해보는 류지호다.

그 같은 일은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배우에게만 좋은 것이 아니다.

한국영화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줄 것임을 류지호는 확신했다.


작가의말

태풍에 피해가 없으시길 기원드립니다. 안전하고 평안한 하루 되십시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5

  • 작성자
    Lv.78 ki******
    작성일
    22.09.06 10:28
    No. 1

    감독놈들이 이때부터pc질을한건가

    찬성: 0 | 반대: 1

  • 작성자
    Personacon 霧梟
    작성일
    22.09.06 11:19
    No. 2

    요즘 세대는 유투브로 데뷔하거나 필모를 쌓는 경우도 많아서 참 격세지감. 은근히 서로 교류도 많이 하는 것 같고 그렇더군요.

    여하튼 최근에는 구니스에서 나왔던 배우가 그 이후 자기를 써주는 사람이 없어서 화면에 안나오는 역할만 하다가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보고 용기를 얻어 everything everywhere에 나왔다는 인터뷰를 봤었는데 참 힘들었을 듯.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22.09.06 13:20
    No. 3

    잘 봤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무한땅꼬마
    작성일
    22.09.06 15:01
    No. 4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5 하몽즈
    작성일
    23.11.02 16:28
    No. 5

    주변 바운더리 내 인물도 아니고 사실상 초면인데 무례하고 억지 아닌가..

    찬성: 2 | 반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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