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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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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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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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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1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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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The Killing Road. (4)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올 해는 영화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다.

이 기념비적인 한 해를 대한민국 영화계는 뜨겁게 맞이했다.

이전까지는 영화를 여가시간을 보내는 여흥거리로 여기던 풍조가 강했다.

9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영화를 예술로 또 영상문화를 대중문화의 총아로 바라보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서 개성적인 영화잡지들이 탄생했다.

이미 5월에 주간지 ‘씨네마21’이 창간했다.

또 영화평론 특화의 ‘키노‘도 탄생했다.

‘씨네마21’은 저널리즘적인 감각으로 영화매체를 분석하게 된다.

그간 한국영화계는 영화배우만 주목 받았다.

‘씨네마21‘은 감독과 제작자를 대중문화 스타로 부상시키는데 역할을 하게 된다.

프랑스의 ‘카이에 뒤 시네마 한국판‘이란 야심만만함으로 무장한 ‘키노’는 상업영화와 타협하지 않는 작가주의 성향을 한껏 드러내며 씨네필들을 열광시킨다.

12월에는 한국 유일의 라이선스 영화잡지 ‘프리미어’가 첫 호를 낼 예정이다.

할리우드에서 직송된 기사를 실을 예정이다.

어떤 매체보다 빠르게 할리우드 영화계 소식을 전하게 된다.

전하영이 <Collapse> 기사가 실린 영화잡지들을 들춰보며 입을 열었다.


“이제 기자들이 우리에게 할리우드 소식을 물어오는 일은 줄어들겠네요?”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와 정보를 공유하는 WaW 픽처스다.

한국과 미국 영화계를 충무로에서 가장 빨리 또한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이 WaW란 의미다.

전하영의 말을 오동석이 받았다.


“잘 됐지 뭘. 극장 업무에 치어 다른 건 엄두도 못 내고 있는데, 이제 기자들하고 술 먹을 일 없겠다.”

“없긴 왜 없어요?”

“영화 잡지가 두 개씩이나 창간되고, 한국판 ‘프리미어’가 창간하잖아. 이제 기자들도 최신 영화정보 수급이 원활해지겠지.”

“안 그럴걸요?”

“안 그래?”

“아휴. 본부장님이 기자들보다 정보가 많은데 가만 놔두겠어요?”

“내가 무슨 기자들보다 정보가 많아?”

“하루에 한 번은 컬버시티와 전화통화 하잖아요. 자신들이 발로 뛰어 취재하는 것보다 본부장님과 술 한 잔 하는 게 더 빠르고 편리하지 않겠어요?”

“우리 WaW가 그저 그런 영화사일 때나 그렇지. 매번 술만 얻어 처먹고 우리 영화를 위해 해준 것도 하나도 없는 주제에...”


오동석이 진저리쳤다.


“안 해! 이제!”

“본부장님이 안 하면 누가 해요?”

“앞으로 피디들이 해야지. 난 G.O.M 업무만으로도 벅차.”

“우리야 기자 상대하는 게 기본이고요. 과연 본부장님 생각대로, 그렇게 될까요?”

“감독님 말 못 들었어?”

“무슨 말이요?”

“기레기란 말.”

“기레기?‘

“기자와 쓰레기를 합친 말이래.”

“호호. 그거 말 되네요.”

“연예부 기자들이 갑이 되는 시대도 얼마 안 남았대.”


이 당시까지만 해도, 연예인들이 신문사로 직접 찾아가 인터뷰를 했다.

기자들이 오라고 하면 오고, 가라고 하면 가는.

연예부 기자가 갑이다.

또한 연예부 기자가 취재를 하고 싶다면 이에 응해야 했다.

어떤 불이익을 줄지 알 수 없기에.

2000년대로 넘어가면서 양자 간의 관계가 조금은 달라진다.

스타들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늘어날수록, 또 그들이 소속돼 있는 연예기획사들이 대형화될수록, 기자들이 일일이 쫓아다니지 않으면 취재하는 것 자체가 힘들어진다.

특히 사생활 침해를 부담스러워하는 슈퍼스타들이 기자와의 접촉을 상당히 꺼리게 된다.

일부에서 그들을 향해 신비주의 콘셉트라고 규정한다.

신인시절 일명 ‘기레기’ 들에게 수없는 ‘갑질’과 부적절한 요구를 당해야만 했던 슈퍼스타들이 기자를 피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갑을의 지위가 바뀌겠어요? 걔들이 독한 마음먹고 악의적인 기사 한 줄 내보내면 독박 쓰는 건 우리들인데....?”

“그래서 이번 삼봉백화점 건을 잘 해결해야 하는 거야.”

“갑자기 삼봉이 왜 나와요?”

“명예훼손, 영업방해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기타 등등. 다온 법률사무소가 우리 쪽에 좋은 방향으로 선례를 남겨둬야 하지.”

“미국처럼 소송을 건다는 거예요? 언론사를 상대로?”

“감독님은 그럴 생각인가 봐.”

“그게 될까요?”

“승소하지 못해도 상관없다고 하시네. 명예훼손 소송의 위험부담을 안고 내용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소설 쓰는 일은 줄어들지 않을까 기대하는 거지. 소송과정이 번거롭고 짜증나는 일이잖아. 사측에서 기자에게 소송비를 지원해줄 것 같지도 않고.”

“우리는 기자나 언론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입장이잖아요. 소송을 건다는 건 좀.....”

“그렇지. 우리처럼 기자 상대를 많이 하는 입장에서는 곤란한 점이 많지.”

“대기업이야 언론사에 광고를 주니까. 서로 주고받는 게 있다고 해도 우리처럼 딴따라들은 애매한 면이 없지 않아 있어요.”

“그래도 꼭 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시더라.”

“명예훼손이요?”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불리한 기사를 쓰는 기미가 보이면 기사 쓰기 전부터 엄포에 가까운 소송 압력을 넣으라는 거야. 그럼 찔리는 자들이 많을 거라면서. 실제로 소송을 제기하면 법적으로 걸리는 문제가 반드시 있기 마련이긴 해. 가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마치 사실인 양 기사 내는 기자들도 있잖아.”

“감독님은 단순한 엄포를 넘어서 실질적인 행동을 하길 바라는 거네요?”

“그렇지. 우리가 법적으로 걸고넘어지면 지들이 어떻게 하겠어. 언론사에서 명예훼손 소송비를 대줄 것도 아니고. 그러면 완전 무시하기도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고, 자연스럽게 취재도 안하고 상상으로 기사 쓰는 일은 없겠지.”

“본부장님도 류지호 감독님 닮아가요?”

“뭐가?”

“이렇게 긍정적이지 않은 걸로 아는데.....?”

“항상 강조하는 말이 뭐야?”

“된다고 믿고 실행해도 될까 말까 인데 시작하기도 전에 의심부터 하면 될 일도 안 된다.”

“의심하지 말자, 우리.”

“우리 감독님은 세상에 무서울 게 없나... 이제 하다하다 언론하고도 맞짱 뜨려고 하시네.”


오동석이 영화잡지를 집어 들고는 흔들어 보였다.


“어떻게 봐?”

“충무로에겐 좋은 일이죠. 영화를 깊이 더 디테일하게 관객에게 소개시킬 수 있게 되었어요. 특히 ‘키노‘를 잘만 이용하면 예술영화에 갈증을 느끼는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들일 수 있는 좋은 기회예요.”

“맞아. 우리 극장의 아트하우스관하고, 동숭 아트센터, 백두대간까지 하면 적어도 서울에서는 아트필름을 좀 더 많이 관객에게 소개할 수 있을 거야.”

“해외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으시는 이명수 감독님 같은 분들이 재평가 되는 기회도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남자는 괴롭다>를 아트하우스관에서 상영하는 거야. 관객들에게 일반적인 상업영화 선입관을 가지고 영화 관람을 하지 않도록 유도하려고.”

“손님은 들어요?”

“첫 달은 죽 쒔는데, 장기상영 들어가니까 그런대로....”


올 11월에 예술영화전용관 백두대간과 동숭아트센터가 개관할 예정이다.

일반 극장에서 외면 받는 해외영화제 수상작이나 영화사적 의미가 있는 작품들을 관객들이 좀 더 다양하게 만날 수 있게 됐다.

비록 10년이 흐르면 사라지게 되겠지만.

오동석이 ‘키노’를 들춰보며 중얼거렸다.


“우리도 영화제 하나 만들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영화제요?”

“PC통신 영화동호회 규모가 생각보다 크더라고. 기획실에서도 그들을 위한 맞춤식 마케팅을 고민하고 있어. 단편영화 수요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더라. 문제는 영화아카데미와 영상원에서 배출되는 졸업 작품들이 소개될 만한 기회가 그렇게 많지 않다는 거야.”

“우리 극장에서 틀면 안 돼요?”

“이명수 감독님 영화 내리면, 웡자웨이 영화들을 연속해서 상영하기로 잡혀 있어서.”


올 하반기부터 웡자웨이 감독의 <중경삼림>을 시작으로 <동사서독>, <타락천사> 등이 연속적으로 G.O.M 강남점에서 개봉할 예정이다.

여담으로 이 영화들은 20만 이상을 동원해 웡자웨이 붐을 일으키게 된다.

그에 반해 국내 극장가에서 홍콩영화의 하락세는 확연해진다.

웡자웨이 영화를 제외하면 <옥보단>이 유일하게 흥행에 성공하게 된다.


“그냥 처음부터 12개관으로 시작했어야 했는데....”


전하영이 매우 아쉽다는 듯 말끝을 흐렸다.


“하고 싶어도 못 했잖아. 영화진흥법이 문제가 아니라 건축법과 소방법에서 걸리니 원....”


G.O.M Cinemas가 탄생하기 전에는 8개관 이상 멀티플렉스 관련법이 없었다.

지난 80년대 말, 미국 영화관 브랜드가 한국 진출을 준비하면서 관계당국에 많은 로비와 통상압박을 가했다.

때문에 멀티플렉스 사업 자체는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한 건물에 8개관 이상의 상영관이 들어가는 부분에서 공연장·건축·소방 관련 통합 법률이 미비했다.

WaW 픽처스는 다온 법률사무소의 협조를 통해 관련 입법을 청탁해서 영화진흥법 개정안에 복합상영관 내용을 포함시킬 수 있었다.

본래는 백설제당 미디어사업부가 했던 일이다.

G.O.M Cinemas가 몇 년 앞 서 출범하면서 사전 작업을 대신 처리했다.


“영화잡지, PC통신, 케이블 채널 같이 새로운 미디어 환경이 조성되고 있어. 10대~20대 초반에 편중된 영화관객들도 40대까지 확장시켜야 해. 전 피디도 알겠지만, 이제 30~40대 관객들을 위한 영화를 적극적으로 발굴할 필요가 있어.”

“씨네-누보와 열심히 기획하고 있어요. 이르면 내년, 늦어도 내후년부터는 그런 영화들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좋은 영화는 WaW로 가져와 딴 데 빼앗기지 말고.”

“WaW는 다수의 영화사들과 제휴계약을 체결하고 있잖아요. 우리는 좋은 기획만 골라잡으면 돼요.”


끄덕.


오동석이 격하게 공감했다.

재벌 대기업과 금융기관인 창투사들이 영화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한편 충무로에서는 강은석 감독이 ‘무비서비스’로 우영택이 ‘필름2000’으로 각각 기존 영화사 상호를 바꾸며 본격적으로 배급사업에 뛰어들었다.

대기업 자본에 대항하는 하나의 세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할리우드 직배사에 유일한 대항마로 여겨지는 WaW 픽처스는 씨네-누보 같은 기획자 중심의 영화사들과 제휴계약을 체결해 안정적인 한국영화 수급을 구축했다.

기획사로 출발한 영화사들은 기획과 제작을 겸하는 한국적 프로듀서 역할을 정착시킨 상황이다.


“이제 영화인들도 어디로 줄을 댈 건지 잘 선택해야 할 순간이에요.”

“줄?”

“기존 영화계 어른들 쪽에 설 것인가. 일찍부터 할리우드의 합리적인 시스템을 장착한 WaW와 함께 할 것인가. 그도 아니면 새로 충무로에 들어오는 대기업이나 금융자본과 손을 잡을 것인가.”

“괜히 편 가르지 마.”

“편 가르는 게 아니에요. 요새 충무로 나가보면 프로듀서나 감독들 중에서 갈피를 못 잡는 분들 꽤 많아요.”

"배부른 소리야. 5년 전까지만 해도 영화제작비 구하러 발에 땀나듯이 뛰어다니고, 집까지 팔아가며 영화 찍었어. 영화판으로 돈이 모이면 좋은 거지. 물론 여전히 이놈의 영화판은 성공과 실패를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도박판 같지만.....“


그 같은 한국영화계 태풍의 중심에 WaW 픽처스가 위치했다.

애매한 부분도 있다.

기존 기득권(극장주, 지방흥행업자, 전통의 제작사)은 WaW 픽처스를 재벌과 다를 것이 없다고 성토했다.


- 트라이-스텔라 영화를 한국에서 독점적으로 공급하고 있잖아.

- 미국자본으로 충무로를 잠식하려는 야욕을 곧 드러낼 거야. 내말이 맞나 틀리나 보라고!


반면에 제휴영화사들은 WaW 픽처스를 경계해야 할 대기업 자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미국의 트라이-스텔라와 때려야 땔 수 없는 위치라고 하더라도.

트라이-스텔라 영화로 벌어들이는 수익금을 본국(?)으로 보내지 않고, 한국영화에 재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100석 미만의 아담한 상영관이지만, 1년 내내 아트필름과 한국영화만을 상영하겠다고 천명하기도 했다.

오로지 이익만 뽑아가는 직배영화사나 대기업, 금융자본과는 다르다고 보고 있다.

WaW 픽처스 임직원들은 외부 상황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에게 월급을 주는 류지호가 어떻게 생각하는지와 상관없이 한국영화계를 걱정할 처지가 아니었다.

업무량이 상당해서 남 일에 관심을 기울일 틈이 없으니까.

올해 케이블TV 영화전문 채널 DCN이 출범하면서 캐치원과 함께 영화 부가판권을 팔 수 있는 매체가 한 곳 더 늘어났다.

본래 할리우드 영화와 한국영화의 판권가격이 꽤 차이가 심한 편이다.

WaW 픽처스는 트라이-스텔라의 한국 배급권으로 인해 타 한국배급사보다 좀 더 비싼 가격에 방영권리를 팔고 있다.

TV와 홈비디오에서도 약간의 패키지 딜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때문에 WaW 픽처스와 투자·배급 계약을 맺고 싶어 하는 영화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영화 르네상스의 도래라는 영화산업 지각변동의 흐름에 WaW 픽처스가 가속도를 보태는 것은 틀림없다.

다만 모든 것들이 다 순조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시대가 바뀌었다.

그럼에도 새로 제정된 영화진흥법은 큰 문제다.

올 한해 공연윤리위원회 심의에 걸린 영화만 500여 편에 달했다.

1962년 제3공화국 초에 제정된 영화법을 대체하는 새로운 영화진흥법이라고 하지만, ‘눈 가리고 아웅‘식의 검열은 여전했다.

게다가 단편, 소형영화 심의 강화 조항이 포함되어 있어 영화계의 큰 반발을 샀다.

문제는 정부와 영화계가 반목해야 하는데, 영화인들 사이에서 불화의 골이 파였다는 점이다.

어쨌든, 충무로는 60~70년대 누렸던 한국영화 황금기를 다시 맞이하기 직전이다.

지금까지 가져보지 못한 변혁과 변화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그런 시대의 중심에 류지호의 WaW 픽처스가 자리하고 있다.


✻ ✻ ✻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의 컴퓨터 동아리방.


똑똑.


황재정이 컴퓨터공학과 동아리 방의 문을 두드렸다.


벌컥.


부스스한 몰골의 김석민이 얼굴을 드러냈다.

고등학교 때와 마찬가지로 뽀얀 피부에 금테 안경을 쓴, 전형적인 모범생 모습 그대로다.

다만 언제 감았는지 모를 떡진 머리와 입고 있는 목이 늘어날 대로 늘어난 셔츠로 볼 때 일상생활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왔냐?”

“집에는 들어 가냐?”

“엉.”

“꼴 하고는.....”

“시끄럽고! 들어와라.”


김석민이 슬리퍼를 질질 끌며 안으로 사라졌다.

전에도 자주 들락거렸다는 듯 황재정이 거리낌 없이 따라 들어갔다.

동아리 방은 대체로 깔끔했다.

최신 컴퓨터가 대 여섯 대 놓여있고, 한편에 관련 부품과 서적들이 수북이 쌓여있다.

낡은 소파에는 러닝셔츠 차림의 남학생 한 명이 배를 까고 낮잠을 자고 있다.

김석민이 방금까지 작업을 했는지, 모니터가 켜져 있다.

김석민이 까칠하게 물었다.


“웬 일? 술 한 잔 사게?”


황재정 역시 까칠하게 대꾸했다.


“요새 뭐 하고 노냐?”

“별 거 없어.”

“재밌게 해줄까?”

“싫어.”

“이거 봐봐.”

“안 봐.”


황재정이 가방에서 프린터로 출력된 문서를 다짜고짜 내밀었다.


“귀찮아.”

“그럼 도로 넣어?”


칙.


김석민이 담배를 피워 물었다.


“담배 좀 작작 펴.”

“남이 사.”


시종일관 까칠하게 대하는 김석민이다.

그럼에도 황재정은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리지 않았다.

하루 이틀 경험한 것이 아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그러려니 하며 지내고 있다.

황재정이 문서를 김석민 앞에 던져놓고는 옆자리에 컴퓨터 하나를 켰다.

김석민이 심드렁하게 종이를 집었다.


“.....?”


황재정이 익숙하게 넷스케이프로 인터넷에 접속했다.

얼마 안 가 PS의 익스플로러와 넷스케이프의 브라우저 전쟁이 벌어진다.

먼 나라의 남의 일 사정일 뿐.

황재정은 주소창에 직접 주소를 입력했다.


WWW.OMDb.com.


“그 사이트는 뭐야?”

“미국의 영화 정보 사이트. 정확하게는 영국 사람이 만든 사이트지.”


황재정이 열어놓은 사이트는 수년 후가 되면 세계 최대 영화 데이터베이스 사이트가 되는 OMDb(On-line Movie Database)다.

1990년 영국의 폴 니드햄(Paul Needham)이라는 프로그래머가 개설한 사이트다.

그는 스티븐 아들러의 <죠스>를 본 뒤에 영화광이 되었는데, 이미 봤던 영화를 기억하지 못해 같은 영화를 두 번 이상 보는 일이 반복됐다.

자신이 본 영화와 그에 대한 간략한 정보를 어딘가에 기록해야 했다.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그는 어렵지 않게 방법을 강구할 수 있었고, 다른 이들과 영화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사이트를 개설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심드렁하던 김석민이 급격히 관심을 드러냈다.


“영화 정보?”

“이 사이트를 지호가 샀다고 하더라.”

“사이트를 사?”

“서비스하는 업체를 인수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겠지.”


GARAM Ventures가 발굴한 사이트다.

류지호로서는 모르려야 모를 수 없는 영화 정보 사이트다.

당연히 영국으로 비서실의 데니스 정과 투자팀의 데이브 보우먼을 파견했다.

첫 개설 당시만 해도 주목을 받지 못하던 OMDb는 인터넷 네트워크가 확산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GARAM Ventures가 접촉할 때가 넷스케이프가 브라우저를 무료로 배포하는 시기 즈음이었다.

큰 어려움 없이 OMDb를 인수했는데, 최근 방문자가 대폭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2주에 한 번 서버를 확장할 정도다.


“영화 평점이라도 조작하려고?”

“아직도 지호를 모르냐?”

“뭘?”

“이 사이트가 정보의 보물창고란다.”

“영화 데이터베이스가 무슨 보물씩이나.....”

“이 사이트를 방문하는 유저들이 남기는 흔적들 즉 영화팬의 취향, 클릭 수, 영화평, 평점 등을 통해서 트라이-스텔라 경영 전략을 세울 수 있대. 4년 전부터 쌓이기 시작한 그 같은 정보가 앞으로도 어느 정도까지 쌓일지 너는 상상이나 가냐?”

“오오! 그러니까 오랜 시간 축적된 방문자 정보와 그에 따른 알고리즘으로 영화팬들의 취향을 분석하고 반영할 수 있다는 거 잖아?”

“특히 인터넷쇼핑 사이트 같은 비즈니스 모델에서는 굉장한 도구가 될 것 같지 않냐?”

“지호가 우리 친구이긴 하지만.... 진짜 난 놈은 난 놈이야. 그치?”

“칭찬은 집어치워. 차라리 욕을 해.

“지가 모시고 있는 사람을 욕하라고 부추기는 거야?”

“욕을 많이 먹으면 오래 산다잖아. 지호가 오래 살아야 우리가 행복해지 않겠냐?”

“나는 왜 행복해지는데?”

“네가 이 사이트를 만들 거니까.”

“내가?”

“너와 네 친구들이.”

“왜?”

“WaW가 전개하는 사업에 도움이 될 테니까.”

“그게 내 행복과 무슨 상관이야?”

“네가 한국판 OMDb 벤처회사를 창업할지도 모르니까.”


김민석이 황재정을 밀쳤다.


“비켜봐!”


황재정의 자리에 앉은 김석민이 한 동안 사이트를 살펴보았다.


“오오!”


3년 전까지만 해도 전 세계가 연결되는 전용 네트워크도, 전용 브라우저도 없던 한국이다.

작년에 한국통신 인터넷 데이터 센터가 개관한 후로 전국 주요 11개 도시에 전용 교환망을 설치하고, 미국의 인터넷 본부와 해저 광케이블로 연결했다.

그 동안 대학과 일부 기관에서 연구목적으로 사용되던 인터넷서비스를 국내 일반인들도 이용하게 된 것이다.

서울대에서는 훨씬 이전부터 연구목적으로 사용하고 있었지만.


“어때?”

“그냥 이거 한국어로 번역해서 서비스를 하면 안 돼?”

“한국영화는 해외영화제 수상작하고, WaW가 미국에 수출했던 영화 밖에 정보가 없어. 그것도 박스오피스 수입은 공란이야.”

“이걸로 돈 벌 수 있겠냐?”

“없어.”

“근데 왜 해?”

“아까 말했잖아.”


김석민이 사이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얘들은 영어권 사람들 전부를 상대하니까 수집되는 데이터도 방대하겠지만, 한국에서는 얘들이 수집하는 데이터의 발가락의 떼만도 못 모을 걸? 그걸 어따 써?”

“적어도 박스오피스 수입은 투명하게 발표되고 같잖은 평론가들의 평점 장난에 관객들이 놀아나지 않겠지. 그리고 영화잡지 로드쇼 알지?”


끄덕.


“폐간했거든. 거기 출신 기자와 편집자들을 스카우트했어. 인터넷 영화잡지를 구상 중이야. 한국판 OMDb와 연계를 고민하고 있다.”

“데이터베이스와 잡지는 콘셉트가 영~ 매치가 안 되는데?”

“영화만 종합적으로 다루는 사이트를 만들어보려고. Yaaho 같은.”

“그것도 지호 생각이냐?”

“아니. 내 생각.”

“지호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질러도 돼?”

“이미 허락 받았어. 적극적으로 밀어 줄 테니 마음껏 해보래.”

“지호 그 놈.... 진짜 돈 많아? 진짜 억만장자야?”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활기차게 한 주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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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 누가 자네를 말릴 수 있겠어. +8 22.08.27 5,178 168 26쪽
260 The Killing Road. (14) +12 22.08.26 5,003 170 29쪽
259 The Killing Road. (13) +5 22.08.25 4,789 160 25쪽
258 The Killing Road. (12) +7 22.08.24 4,817 161 26쪽
257 The Killing Road. (11) +4 22.08.23 4,887 154 26쪽
256 The Killing Road. (10) +9 22.08.22 4,893 148 23쪽
255 The Killing Road. (9) +6 22.08.20 5,008 152 26쪽
254 The Killing Road. (8) +5 22.08.19 5,054 144 25쪽
253 The Killing Road. (7) +12 22.08.18 5,015 156 23쪽
252 The Killing Road. (6) +7 22.08.17 5,119 162 25쪽
251 The Killing Road. (5) +4 22.08.16 5,177 151 22쪽
» The Killing Road. (4) +5 22.08.15 5,162 163 21쪽
249 The Killing Road. (3) +4 22.08.13 5,302 167 22쪽
248 The Killing Road. (2) +12 22.08.12 5,334 161 22쪽
247 The Killing Road. (1) +16 22.08.11 5,816 173 26쪽
246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영웅놀이....! +17 22.08.10 5,583 200 27쪽
245 Collapse. (7) +8 22.08.09 5,295 168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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