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새글

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최근연재일 :
2024.07.05 09:05
연재수 :
901 회
조회수 :
3,838,357
추천수 :
118,862
글자수 :
9,980,317

작성
22.08.16 09:05
조회
5,177
추천
151
글자
22쪽

The Killing Road. (5)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몰라 나도.”

“네가 모르면 누가 알아?”

“난 한국 사업만 챙겨. 자세한 것은 LA에 있는 총비서가 알아.”

“지호보고 나한테 투자 좀 하라고 해.”

“네가 직접 해.”

“치사한 자식들.....”

“뭘 할 건지 사업계획서 만들어서 가져 와. 검토해 보고 지호한테 투자 건의 정도는 해 줄게.”

“네가 좀 도와주면....”

“바빠.”

“야, 공대생이 무슨 사업계획서를 만들어. 그런 건 경영학과생이 해야지.”

“그 따위 마음가짐이라면 창업은 꿈도 꾸지 마. 그냥 공돌이로 평생 살어.”

“내 핵주먹에 한 방 맞는 수가 있다?”


황재정이 김석민의 희고 가냘픈 손을 보며 비웃음을 날려줬다.


“딴 소리 하지 말고.”


황재정이 옆길로 샌 대화를 다시 돌려놨다.


“어때 할 수 있어?”

“웹사이트 만드는 건 누워서 떡 먹기야. 근데 기본 데이터는 어디서 가져 오냐?”

“영화진흥공사와 논의 해봐야지. 일단 WaW 영화부터 시작해야겠지.”

“그런 것은 민간영역이 아니라 공공기관 영역 아니냐?”

“지호가 그러더라. 이왕 할 거면 포털 개념으로 접근해 보라고.”

“포털?”

“엔터테인먼트 전 분야를 다 다루는 웹사이트.”

“미친 놈! 그게 말이야 방귀야?”

“영화 소개부터 예고편, 크레디트, 박스오피스, 전국 상영관 안내, 영화 잡지 기능, 일반인들의 리뷰, 영화 평점, 차후에는 WaW 극장 체인의 인터넷 예매까지. 나중에 포털을 통해 음악도 듣고 영화도 보고, 책도 읽고, 만화도 보고 할 것까지 멀리 보고 기획하라고 하더라.”

“고등학교 때 SF소설 읽지 못하게 지호한테 수학을 더 열심히 가르칠 것을 그랬어.”

“10년 후든 20년 후든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지 않겠냐?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는 네가 나보다 더 잘 알아야 하는 거 아냐?”

“그렇긴 하겠지만, 자금이 어마어마하게 들 텐데.....”

“당장 하겠다는 게 아냐. 일단 데이터베이스 서비스와 잡지 기능을 갖춘 영화 전문 사이트부터 시작하려고 해.”

“사이트만 만들어주면 돼?”

“회사 하나 만들어 주래.”

“무슨 회사?”

“이 사이트 만들고, 관리하고, 운영하는 회사.”

“나한테?”

“응. 너한테.”

“왜?”

“아까 투자해 달라며?”

“네가 회장이냐? 마음대로 결정하게.”

“싫으면 말고.”

“차라리 검색 사이트를 만드는 게 낫지 않겠냐?”

“나도 Yaaho나 라이코스 같은 걸 만들자고 했지.”

“근데?”

“싫대. 한 우물만 파겠대.”

“‘워크래프트‘ 만든 회사도 가진 놈이 한 우물은.... 다 큰 놈이 코딱지 파먹는 소리하고 자빠졌어.”

“다 연관이 있단다. 앞으로 OMDb는 국적 상관없이 거의 모든 영화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 시킬 거래. 애니메이션, 드라마, TV 프로그램, <에반게리온> 같은 OVA, 컴퓨터 게임 심지어 포르노 정보도 찾을 수 있게 할 생각이란다.”

“.....!”


황재정의 말을 들은 김석민이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한국은 IT분야에서 이제 막 첫발을 떼고 있다.

헌데 자신의 친구는 영상 콘텐츠 전 분야를 아우르는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꿈꾸고 있단다.


“...확실히 난 놈은 난 놈이다.”

“그게 끝이 아니야.”

“또 있어?”

“영상분야 만큼은 Yaaho 못지않은 검색 기능도 탑재시키고 싶단다. 배우, 감독, 제작진, 영화 음악, 옥에 티, 수상 내역, 비슷한 장르의 다른 작품, 연관된 사이트, 키워드 검색, 솔직히 나도 그 자식이 말하는 걸 다 알아들을 수 없어.”

“잠깐만!”


김석민이 몸을 돌려 다시 컴퓨터 모니터로 향했다.

분주하게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을 놀려댔다.

모니터에 아마조니아닷컴(Amazonia.com) 사이트가 열렸다.


“아마조니아네?”

“알아?”

“응.”


김석민의 맥이 탁 풀렸다.

처음 아마조니아닷컴 사이트가 열렸을 때 많은 네티즌들이 멋진 디자인에 좋은 평가를 내렸다.

김석민은 다소 난잡한 형태의 OMDb 사이트 대신 아마조니아닷컴 웹사이트를 보여줌으로서 황재정에게 우쭐대려고 했다.

여담으로 아마조니아닷컴은 설명이 필요 없는 온라인 쇼핑몰이다.

물론 현재는 단순한 온라인 서점일 뿐이지만.


“마지막으로 물어 본다. 생각 있어?”

“회사 만드는 것 말이지?”

“응.”

“졸업하려면 아직 세 학기나 남았는데....”

“지호는 고등학교 때 창업했어.”

“우리 애들은 프로그램이나 짤 줄 알지 경영은 쥐뿔도 몰라.”

“걱정하지 마. 우리 회사에 경영 전문가 많아.”

“그럴 거면 그냥 너희 회사에서 만들면 되잖아?”

“지호는 웬만하면 계열사 체제보다 독립회사를 좋아해. 이런 것도 일종의 사내 벤처라고 해야 하려나.....?”

"산학협력이겠지."


기업이 커질수록 주목을 받게 된다.

그 만큼 견제도 심해질 터.

권력은 물론이고 재벌이 기침만 해도 휘청거리는 것이 현재 (주)가온웨딩이다.

언젠가 그룹 체제로 개편될 것이긴 하겠지만.

급격한 확장보다는 느리더라도 탄탄하게 기초를 다지며 나아가는 것이 좋다.


“투자만 하고, 간섭은 안 하겠다는 거지?”

“응.”

“이걸로 돈을 벌 수 있을까?”

“당장은 적자만 볼 거야. 아직은 수익모델이 없어.”

“그런데도 하겠다고?”

“응.”

“차라리 김창진 선배를 찾아가는 건 어때?”

“한글과소프트?”

“응.”

“야, 괜히 지호를 신포고와 엮지 마. 그 놈은 신포고 졸업생도 아닌데 온갖 파리들이 꼬여서 골치 아픈 상황이다.”

“그래도 학교 선배들인데 파리는 좀 그렇지 않냐?”

“있어. 그런 선배들이.”

“그럼 나도 파리냐?”

“넌 지호한테 얼마 없는 어릴 적 친구잖아.”

“눈물 나게 고맙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할래 말래?”

“보채지 좀 마. 생각 좀 해 보고.”

“그럼 생각 없는 걸로 안다?”

“야!”


황재정이 제안을 거둬들이자, 김석민이 몸이 달았다.


“애들하고 의논할 시간은 줘.”

“일 주일?”

“방학이라 집에 내려가 있는 애들이 많아.”

“알겠어. 대신 선배는 끌어들이지 마.”

“왜?”

“족보 꼬여.”

“지호는 서울대도 아닌데 무슨 족보?”

“사회생활에서 한두 살 나이 차이가 제일 애매하더라. 그냥 너하고 동기들 위주로 시작하고, 나중에 본격적으로 회사가 돌아가면 직원 채용하는 걸로 하자.”


김석민이 고개를 끄덕이고, 소파로 걸어갔다.


툭툭.


잠든 학생을 발로 건드렸다.


“태경아, 일어나. 재정이가 술 사준대.”

“내가 언제?”

“재욱이도 불러. 오랜 만에 방배동 락카페 놀러 가자.”

“세수는 하고 와.”

“모자 쓰면 돼.”


황재정은 김석민과 후배 이태경을 데리고 신림동 녹두거리로 향했다.

이 거리 사방 200미터도 채 되지 않는 거리에 술집과 당구장, 오락실 등이 몰려있다.

90년대 후반에는 ‘녹두 라스베가스’로까지 불리게 되는 동네다.

황재정 일행이 주점 태백산맥으로 들어갔다.

방학기간이서인지 아니면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주점은 한산했다.

학기 중에는 하루 1,000명의 손님을 받을 정도로 성업 중인 주점이다.

한창 바쁠 때는 서울대생이 아닌 타 대학 학생들의 예약을 받지 않을 정도다.


“지호는 방학인데 한국 안 들어와?”

“못 들어와. 영화 찍어.”

“걔는 만날 단편영화로 연습만 한대?”

“이번에는 장편영화야.”

“할리우드에서 입봉인가 하는 거야?”

“입봉이 될지 개뻥이 될지 누가 알겠냐.”

"그래도 지금까지 보여준 게 있잖아."

"충무로라면 어떻게 비벼볼 텐데, 미국이라 조금 걱정이다."

"잘하겠지. 그나저나 이번에 한국 들어오면 술 한자 진하게 얻어먹으려고 했더니.”

“내가 대신 사잖아.”

"오늘 찐하게 사는 거야?"

“너 하는 거 봐서.”


오후에 시작한 술자리는 김재욱이 합류하면서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1995년 겨울.

서울대학 컴퓨터공학과 졸업반인 김석민을 주축으로 하는 90~92학번 세 명이 IT벤처 기업을 창업하게 된다.

국내외 영화뉴스에서부터 한국영화 데이터베이스, 영화 예매까지 가능한 영화전문 포털사이트 씨네필(CineFeel.com)의 시작이다.

씨네필(Cinephile).

영화광을 의미하는 프랑스어다.

21세기는 영화에 대한 담론을 말하는 것이 우스워지는 시대가 된다.

따라서 영화에 대한 진지함을 잃지 않겠다는 류지호의 다짐이 들어있는 웹사이트가 CineFeel.com이다.

구골(Googol)도 검색의 제왕이 되기 전인 1996년에 작은 웹페이지에 불과했다.

시네필 역시 종이 영화잡지를 웹사이트로 옮기고, WaW 픽처스의 영화를 홍보하는 사이트에서 출발한다.

구골이 검색엔진의 제왕이 되는데 10년이 걸리지 않는다.

씨네필이 영화분야 최고 사이트가 될 수 있을지 현재로서는 단언할 수 없다.

다만 투자자이자 오너인 류지호가 초심을 잃지 않는 한 사이트 폐쇄는 없을 것이다.


❉ ❉ ❉


캘리포니아 주간고속도로 5번(Interstate Highway 5) 도로.

태평양과 접해있는 캘리포니아주, 오리건주, 워싱턴주를 모두 통과하는 이 도로를 쉐비 익스프레스가 달리고 있다.

한국에서는 차량개조 전문회사 ‘스타크래프트‘라는 이름이 더욱 친숙한 승합차다.

차량 안에는 류지호를 비롯해 중년의 백인 사내들이 동승하고 있다.

JHO Pictures가 배기량 5000CC가 넘는 장거리 이동용 호화 밴을 렌트한 이유가 있다.

이 차량을 이용하는 인물들은 <The Killing Road>의 현장을 이끌어가는 주요 인물이기 때문이다.

류지호는 물론이고 롭 리차드슨 촬영감독, 프로듀서 게리 켐프 마지막으로 프로덕션 디자이너 마이크 리바가 동승하고 있다.

할리우드 현장은 감독과 촬영감독과 프로덕션디자이너, 셋이 모든 걸 이끌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에서 프로덕션 디자이너는 미술, 세트, 의상, 대도구 및 소도구, 분장 등을 모두 아우르며 영화 한 편이 드러내는 세계를 순수하게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다.

마이크 리바(Mike Riva)는 할리우드에서 명성이 높은 프로덕션 디자이너다.

UCLA 출신인 그는 트라이-스텔라와 <어 퓨 굿맨>을 함께 했었다.

현재 윌튼 마샬 감독이 연출하는 <콩고>를 작업하고 있다.

첫 장편영화를 찍는 류지호로서는 대학 동문과 일하는 것이 마음이 편했다.

할리우드 업계 A-List 상위에 랭크된 스태프와는 한 번도 일을 해보지 않은 류지호다.

롭 리차드슨, 마이크 리바 두 사람 모두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유명한 감독이다.

마이크 리바는 혼자 오지 않았다.

한나 쉐릴이라는 아트디렉터가 함께 왔다.

이전 삶에서 충무로 미술감독이 하는 일을 그녀가 하게 된다.


“Jay?”

“예. 마이크.”

“우리와 일하는 게 불편하지 않아?”


뜬금없는 마이크 리바의 물음에 류지호가 되물었다.


“왜 불편해요?”

“우리가 주로 일하는 사람들이 누군지 몰라?”

“잘 알죠.”

“젊은 감독들은 경력이 오래된 이들을 선호하지 않던데?”

“트라이-스텔라와도 작품을 하셨잖아요.”

“내 말은 우리 같은 베테랑보다 조금 더 젊은 친구들과 작업하는 것이 편하지 않겠냐는 뜻이야.”

“베테랑과 일하는 게 좋은 거지. 나이가 무슨 상관인데요.”


나이를 따지는 것 같지는 않다.

추측하기로, 마음대로 부리기 힘든 자신 같은 베테랑을 선택한 이유는 묻는 것 같았다.


“진짜 묻고 싶은 게 따로 있나 봐요?”

“왜 예산을 300만 달러로 제한을 두었냐는 거야. 자네는 3,000만 달러 영화도 찍을 수 있어. 자신이 없나?”


처음 계획은 200만 달러였다.

촬영과 미술에 힘을 주게 되면서 제작비가 상승했다.


“아니요.”

“그런데 왜?”

“겉 멋 들까봐서요.”

“겉 멋?”


예상치 못한 답변이어서 일까.

마이크 리바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까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3,000만 달러 이상 쓰고, 비싼 개런티를 받은 배우들과 일을 하게 되면 저는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연히 그런 생각으로 달려들어야지.”

“제겐 조금 달라요.”

“......?”

“여러분들은 원하는 걸 뭐든 만들어 주겠죠. 그렇다면 저는 뭘 하죠? 까딱하다가는 여러분들이 하는 영화에 휩쓸려 갈 것 같아요. 그래서 신중해지려고요.”


풍성한 수염이 인상적인 롭 리차드슨이 어림없다는 듯 말했다.


“전혀 그래 보이지 않은데?”

“아시다시피 돈의 힘으로 영화를 찍을 순 있어요. 그런데 그런 할리우드 맛에 길들여지지 않으려고요.”

“할리우드 맛?”

“달달하잖아요. 세상 어떤 초콜릿보다 더.”

“쓴 맛도 그 만큼 강해.”

“그렇죠. 입맛은 버릇이라잖아요. 단맛, 짠맛에 길들여지면 나중에 그 맛을 느끼지 못해요. 너무 이른 나이에 할리우드 맛에 중독되어버리면 점점 더 자극적인 맛을 찾다가 결국에는.....”


개성 없는 공장제 영화를 찍는 직업 감독으로 전락.

류지호가 우려하는 미래다.

많은 감독들이 몰락 직전에 받는 유혹이기도 했고.


“허. 신중하군.”

“애늙은이 소리 많이 듣고 자랐어요. 하하.”


류지호는 전부를 말하지 않았다.

충분히 몇 천만 달러 예산 영화를 찍을 수 있다.

준메이저 스튜디오를 소유하고 있고, 며칠 만에 1억 달러를 조달하는 것도 문제없다.


‘그러다 망하면?’


그럴 줄 알았다.

밑천이 드러났다.

온갖 비아냥거림과 조롱이 난무할 터.

할리우드는 제 아무리 단편영화로 주목을 받았다고 해도 몇 천만 달러 예산 영화의 연출을 선뜻 맡기지 않는다.

단편은 단편, 장편영화는 장편영화니까.

물론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 인하우스로 작업하게 되면 좋은 점이 많다.

배우 잘 붙지, 예산 빵빵하지, 영화가 폭삭 망하지 않도록 마케팅 잘 해주지.

그런데 스튜디오 영화를 연출한다는 것은 거대한 공장 시스템의 부품 중 하나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스튜디오 시스템에서 자유로운 감독은 스티븐 아들러, 리드 스콧 같은 극소수뿐이다.

메이저 스튜디오 영화를 연출한다는 의미는 영화공장에서 찍어내는 규격화된 제품의 생산관리자가 된다는 것이다.

과거에도 그랬던 것은 아니다.

80년대만 해도 감독의 역할이 지대했다.

프로듀서의 권한과 역할이 증대되고 입김이 커지면서 감독의 운신의 폭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그에 반해 독립영화는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만드는 수제품이라 할 수 있다.

대중에게 작품성을 인정받든 못 받든,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작품을 기대해 볼 수 있다.

물론 투자와 배급이 무척 어렵다.

영화를 제작하고도 극장 상영을 못할 수도 있다.

류지호에게는 남의 이야기다.

ParaMax의 투자·배급으로 제작되는 영화이기에.

암튼 그러저러한 이유들로 류지호가 첫 영화부터 고예산 영화로 호기를 부릴 이유가 없다는 거다.

필모그래피가 쌓여갈수록 저절로 그 같은 영화를 찍게 될 테니까.


‘<그래맨땅에헤딩> 같은 영화를 찍지 않은 이상은.....’


✻ ✻ ✻


류지호 일행을 태운 스타크래프트가 스톡턴 표지판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무려 6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에인절스 캠프(Angels Camp)라는 소도시다.

애너하임을 연고로 하는 메이저리그 팀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촌동네다.

‘골든 러시‘ 시절 조성된 도시 가운데 한 곳인데, 인구가 2,000명 남짓한 작은 타운이다.

메인 도로 주변으로 상가들이 모여 있었는데, 1860년에 개업한 가게 주변으로 옛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전반적으로 한국의 시골 읍내를 연상시켰다.

먼저 타운에 와 있던 터커 레이튼이 일행을 맞이했다.


“헤이. 험프리.”

“어서 와요. 디렉터.”


류지호가 카우보이 모자를 쓴 멋들어진 힙스터 스타일의 수염을 기른 백인남자와 악수를 나눴다.

험프리 톰슨(Humphrey Thompson)이란 이름의 남자는 <The Killing Road>의 로케이션 매니저(또는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터커 레이튼이 류지호에게 물었다.


“먼 길을 달려왔는데, 일단 식당으로 안내할까?”

“식사와 차를 마시면서 숨 좀 돌리는 것이 좋겠어.”


일행은 1860년에 개업했다는 오랜 전통의 펍에 자리를 잡았다.

류지호와 터커 그리고 험프리는 맥주를, 다른 이들은 배를 채울 수 있는 간단한 음식을 주문해서 먹었다.

<The Killing Road> 초고를 쓸 당시에는 단편영화 <내 삶의 물고기>를 촬영했던 파커 가문 소유의 농장캠프를 떠올렸다.

윤색작업을 할 때는 파커농장을 다시 방문해 주말 동안 머물며 작업을 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게리 캠프와 터커 레이튼이 합류하면서 달라졌다.

풍부한 경험을 가진 두 사람으로 인해 미국 시골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게다가 로케이션 매니저 험프리가 미국 각지의 촌동네들을 고르고 골라 가져왔다.

LA에서 너무 먼 곳은 곤란했다.

캘리포니아주 위주로 장소를 고르다가 ‘골드러시‘ 시대 만들어진 도시를 살피다가 에이전스 캠프를 알게 되어 찾아오게 됐다.

과거 에인절스 캠프는 광산지역이었다.

당연히 산골에 위치했다.

파커 농장처럼 광활한 대지에 덩그러니 모여 사는 타운보다 폐쇄적인 느낌이 더 와 닿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서부시대 느낌을 타운 곳곳에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묘하게 중첩된.

미국인들에게는 향수를 자극하면서도 이질감을 느끼게 하는.

묘한 정서를 자극하는 풍경이 마음에 들었다.


“나쁘지 않네.”


롭 리차드슨 촬영감독의 마음에도 쏙 들었다.

1Km도 채 안 되는 주도로.

그 양쪽으로 늘어서 있는 골드러시 시대를 간직한 상가 풍경.

언덕과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일반 가정집들.

도시 근처에 거대한 호수도 있다.

스타니슬라리오 국유림과 험준한 산골짜기도 있다.

당연히 폐광도 여럿 존재한다.

수풀 속의 외딴 폐가도 있고, 호수와 계곡도 있고, 광활한 구릉지도 있고, 키 높은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찬 수림지역도 있다.


“내 눈에만 이국적으로 보이는 거야?”


류지호의 물음에 터커가 웃으며 대답했다.


“대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미국인들에게도 똑같이 이국적일 걸? 최근에는 서부시대 배경의 영화나 TV시리즈도 제작이 잘 안 되고 있어서..... 천 년 전 도시를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곳에서 온 Jay는 납득하기 쉽지 않겠지만.”


터커가 말한 도시는 경주다.

그는 <REMO> 리메이크를 준비하고 있는 잭 워든의 자료집을 본 적이 있다.

그때 불국사를 포함해 여러 건축물 사진을 보고 그 예술성에 놀란 바 있다.

사실 불국사는 지금까지 수차례 파괴되고 복구되는 과정을 거쳤다.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이 완료된 것도 50년이 채 되지 않는다.


“나는 과거부터 쭈욱 사용되고 있는 셰리프 오피스가 마음에 쏙 들어.”

“촌동네는 대체로 기존의 것들을 잘 안 바꾸니까.”


류지호에게는 셰리프(Sheriff)보다 보안관이라는 말이 더욱 익숙했다.

미국의 보안관은 한국에는 없는 치안조직이다.

보안관은 카운티(한국으로 치면 군 단위) 치안을 담당하는 치안 공무원이다.

경찰과는 달리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에서 출발했다.

따라서 경찰국장은 시장이나 경찰위원회가 임명하지만, 보안관 국장은 카운티 주민들이 직접 투표로 선출한다.

주로 시경찰을 운영할 수 없는 작은 규모의 시정부와 계약을 맺고 치안유지 임무를 대행하기도 하고, 법원과 구치소의 치안유지, 범죄인 이송 등의 업무도 맡았다.

경찰과 똑같이 교통위반 같은 단속도 할 수 있다.

영화 속에서 해리슨 노튼이 FBI 요원 행세를 하며 이 마을로 들어온다.

FBI(연방수사국) 요원은 연방정부가 관할하는 경찰조직이다.

그들의 주요업무는 테러방지, 적국의 정보활동 차단, 사이버 공격 예방, 화이트 컬러 범죄 퇴치 등이며 은행 강도, 마약, 우편사기 등의 범죄도 담당했다.

<The Killing Road>에서 FBI 요원이 이 작은 마을로 들어온 이유는 주 경계를 넘나들며 벌어진 연쇄살인 범죄 때문이다.

시골 마을 보안관보들은 대도시에서 오는 FBI 요원에 대한 동경과 환상을 품고 있다.

정식 보안관도 아니고 시골에서 근무하는 보안관 보들에게 연방수사국 요원은 꿈도 못 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FBI요원은 4년제 대학 출신에 연봉도 높고 다양한 보험혜택도 제공받는다.

한마디로 경찰조직에서도 귀족계급으로 여겨지는 신분이다.

그 같은 선망의 대상을 의심한다는 것은 순박한 시골 보안관보들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류지호가 촬영예정지를 바쁘게 옮겨다는 마이크 리바에게 다가갔다.


“어때요?”

“이 동네도 조금 변했어.”

“이곳에서 촬영한 경험이 있어요?”

“TV시리즈였을 걸? 벌써 10년 전이니까. 상점들이 많이 바뀌었구먼.”


마이크 리바가 뭔가를 이야기하면 한나가 수첩에 열심히 메모를 했다.


“디렉터, 실내 장면을 찍을 로케이션도 있나?”

“웨스트우드에서 이틀 정도 촬영할 것 같아요.”

“사운드 스테이지는 소닉-콜롬비아스 스튜디오 맞지?”

“다음 주부터 사용할 수 있어요.”

“티아라의 트레일러 내부는?”

“세트를 지어서 몰아서 찍어야죠.”


본래 티아라가 사는 곳은 INN(미국식 모텔)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마이크 리바와 토론 끝에 캠핑 트레일러로 변경했다.

주요 공간인 보안관 사무실 내부는 당연히 세트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어차피 모델 내부나 캠핑 트레일러 내부 세트 제작비용에 큰 차이가 없다.


“LA에서 봐.”


마이크 리바는 그 날 저녁 늦게 LA로 먼저 돌아갔다.

저녁을 먹은 일행은 에인절스 캠프 타운과 주변의 밤 풍경을 확인했다.


작가의말

편안하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Mr. 할리우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74 잘하는 팀과 작업하고 싶으니까. +9 22.09.13 4,859 159 30쪽
273 내키는 영화를 찍고 싶어요. +4 22.09.10 4,929 157 25쪽
272 난 꿈꾸는 사람을 좋아해. (5) +10 22.09.09 4,877 150 24쪽
271 난 꿈꾸는 사람을 좋아해. (4) +5 22.09.08 4,938 164 25쪽
270 난 꿈꾸는 사람을 좋아해. (3) +4 22.09.07 4,922 159 21쪽
269 난 꿈꾸는 사람을 좋아해. (2) +5 22.09.06 4,951 147 22쪽
268 난 꿈꾸는 사람을 좋아해. (1) +12 22.09.05 5,041 154 21쪽
267 전문가의 손을 타야 좋아져. +13 22.09.03 5,122 163 26쪽
266 도전은 좋은 겁니다. (2) +6 22.09.02 5,057 160 26쪽
265 도전은 좋은 겁니다. (1) +12 22.09.01 5,129 155 23쪽
264 그건 당신들 착각이고....! +9 22.08.31 5,055 171 26쪽
263 다들 수고가 많다....? (2) +10 22.08.30 5,082 167 26쪽
262 다들 수고가 많다....? (1) +5 22.08.29 5,105 158 23쪽
261 누가 자네를 말릴 수 있겠어. +8 22.08.27 5,178 168 26쪽
260 The Killing Road. (14) +12 22.08.26 5,003 170 29쪽
259 The Killing Road. (13) +5 22.08.25 4,791 160 25쪽
258 The Killing Road. (12) +7 22.08.24 4,819 161 26쪽
257 The Killing Road. (11) +4 22.08.23 4,888 154 26쪽
256 The Killing Road. (10) +9 22.08.22 4,893 148 23쪽
255 The Killing Road. (9) +6 22.08.20 5,008 152 26쪽
254 The Killing Road. (8) +5 22.08.19 5,054 144 25쪽
253 The Killing Road. (7) +12 22.08.18 5,016 156 23쪽
252 The Killing Road. (6) +7 22.08.17 5,119 162 25쪽
» The Killing Road. (5) +4 22.08.16 5,178 151 22쪽
250 The Killing Road. (4) +5 22.08.15 5,162 163 21쪽
249 The Killing Road. (3) +4 22.08.13 5,302 167 22쪽
248 The Killing Road. (2) +12 22.08.12 5,334 161 22쪽
247 The Killing Road. (1) +16 22.08.11 5,816 173 26쪽
246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영웅놀이....! +17 22.08.10 5,584 200 27쪽
245 Collapse. (7) +8 22.08.09 5,295 168 2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