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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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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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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술사의 한 획! (3)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동생을 배웅하고 돌아온 류지호가 서재 겸 오피스룸으로 들어갔다.

널찍한 실내에는 온갖 서적들이 빼곡히 꽂혀 있는 책장이 두 면을 차지하고 있다.

모던한 디자인의 책상에는 Abid 편집기가 세팅되어 있다.

편집기 앞에 자리 잡은 류지호가 <Dream Come True> 가편집본을 확인했다.

아쉬웠다.

작품 때문이 아니다.

애초에 그 부분은 기대가 없었으니 실망할 일이 없다.

기술적인 부분 때문이다.

가야할 길이 멀었다.

사실 2000년대 중반도 아니고, 아직 90년대 후반이다.

디지털 카메라 분야에서 가장 앞서있다는 소닉 제품으로 촬영했음에도 문제들이 많았다.

색정보 부족 등으로 인한 고채도에서의 계단현상.

붉은 색 계통의 특정 색에 대한 과도한 반응으로 화면에 붉은 기가 번져 보이는 현상.

최대 광각에서 지글거리는 현상.

대낮 촬영에도 암부에서 노이즈가 발생하는 것 등.

가정용 모니터로 보면 크게 느끼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영화용 카메라는 극장 스크린에서 상영을 목적으로 만든 제품이다.

현재 한국에서 가장 큰 스크린 사이즈를 보유한 곳은 대한극장이다.

70mm 영화 상영을 위한 가로세로 22*11.

63빌딩의 Eye-MAX관은 24*18이다.

현재 시판 중인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한 데이터를 35mm 필름으로 키네스코핑(Kinetoscope Recording)할 경우 16mm 필름의 질감과 색감에도 못 미치는 것이 현실이다.


‘연구원과 개발자들이 나아갈 방향, 문제점을 명확하게 인식했다는 것이 소득이지.’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라는 말이 있다.

조바심 낼 필요는 없다.

소닉의 디지털 시네마 카메라 브랜드는 씨네알타다.

대략 2000년대 초중반에 출시됐던 것으로 기억했다.

J&J Digitald의 레드 원은 2007년 즈음, ARiCH의 알렉사는 그보다 더 늦다.

DALLSA Origin은 절대 늦지 않았다.

게다가 DALLSA Corp.의 CCD 이미지 센서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소닉은 국제표준보다 자체 규격을 고수하기 때문에 논외로 치고, DALLSA와 Vision Analysis가 가전업체들의 캠코더와 비교해 어떤 부분에서는 앞선 것도 있다.

진짜 경쟁은 영화 필름에 근접한 4K부터다.


“근데! 진짜! 아무리! 프로토타입이라고 해도 두 회사 디자인은 너무 구려....!”


Origin도 그렇지만, 팬텀 카메라 역시 디자인은 정말 별로다.

류지호는 연구개발 인력 외에 유명한 산업디자이너를 스카우트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영화 제작비는 아꼈다.

헌데 엉뚱한 곳에서 더 큰 비용을 쓰게 되는 류지호다.


‘영화도 장비빨이니까.’


✻ ✻ ✻


류지호가 UCLA 졸업학기를 맞이했다.

마지막 학기에는 예술대학 4학년들이 졸업 작품의 마무리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4년 내내 아무리 학업 성적이 우수해도 졸업작품이 형편없으면 소용이 없다.

영화과는 졸업을 위해서는 무조건 졸업 작품에 참여해야 한다.

그 결과물이 교수들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

류지호는 이미 졸업 작품으로 출품할 영화의 촬영을 마쳤다.

한창 포스트프로덕션 중이다.

사실 할리우드 현역 영화인이자 국제영화제 수상 전적이 있는 류지호가 졸업을 하지 못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UCLA 영화과에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태연하게 할 수 있는 교수들이 널렸다.

때문에 류지호는 <Dream Come True>의 포스트 프로덕션을 허투루 할 수 없었다.

어린 나이에 너무 큰 중압감에 시달린 나머지 삐뚤어진 것은 아닌지 의아해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가령 맥도웰 교수가 그랬다.

졸업작품에 임하는 모습이 류지호 답지 않다나.

진지하게 대화를 나눠보자는 제안을 해왔다.


“비록 <Dream Come True>가 영화의 주제의식, 미학, 완성도에 의문이 생기더라도 D-Cinema를 실험하는 영화라는 사실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겠지. 그렇다고 해도 영화의 본질을 무시하면 자네 실험의 의도가 훼손 될 거야.”


가벼운 영화라고 해서 장난처럼 찍지 않았다.

류지호는 기획 의도에 부합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다.

정줄 놓고 마냥 즐겁게 찍은 것처럼 보이긴 한다.

그럼에도 평소 작업할 때와 달리 엄청난 양의 커트 촬영했다.

모두 디지털 카메라의 휴대성과 편의성 덕분이다.


“필름 영화가 아닌 디지털 영화가 하찮게 여겨지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디영화 감독들의 시도는 수긍하면서 영화학도인 저에 대해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것에는 동의하기 힘듭니다.”


뉴욕의 어떤 독립영화 감독은 소닉의 VX-1000보다도 훨씬 싼 홈비디오 캠코더로 촬영하기도 한다.

할리우드 상업영화계에서는 영화로 쳐주지 않는다.


“자네를 더 이상 영화학도라고 할 수 있을까?”

“교수님도 디지털 장비로 작업하는 이유를 경제성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수억 원이 넘는 35mm 필름 카메라는 한번 빌려 쓰기에 렌탈비가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니까. 게다가 현상부터 프린트 비용까지. 제작비를 획기적으로 줄여줄 수 있겠지.”


디지털 카메라는 개인이 아예 사서 소유할 수도 있다.

게다가 크기도 작고 가벼워 촬영장에 많은 스태프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기동성 또한 뛰어나다.

이른바 원맨쇼 영화도 가능하다.

필름에 비해 테이프의 가격이 훨씬 저렴하다.

때문에 디지털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은 많은 분량을 촬영한다.

이번 영화에서 류지호는 무려 50시간 분량을 찍었다.

35mm 필름 촬영의 경우, 러닝타임 대비 많아야 10:1의 비율로 촬영한다.

비교하면 엄청난 분량이다.


“디지털의 발전은 특별한 훈련을 받은 사람들만 영위할 수 있었던 영화제작의 장벽을 일반대중에게 허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줍니다. 디지털 카메라의 조작은 필름 메커니즘에 비해 최소한의 교육과 경험만으로 누구나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쉽습니다. 그 의미를 간과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영화가 탄생한 후로 영화 미학이 발전해 왔네. 카메라를 조작할 줄 안다고 또 손쉽게 촬영했다고 해서 모두 영화가 되는 것은 아니야. 명색이 영화감독이라면 자신이 무엇을 찍어야 할지 알고 있어야 하네. 마구잡이로 찍어서 이어붙인다고 해서 영화가 될 순 없어.”

“일반대중들이 손쉽게 영화를 만들어선 안 되는 걸까요? 어떤 어린이가 디지털 캠코더로 홈비디오를 찍다가 재능을 발견할 수도 있고, 영화감독이 되고자 했지만 대학에서 혹은 직업학교에서 교육을 받지 못하고 다른 업종에서 일 하던 누군가가 뒤늦게 소박한 디지털 영화를 찍다가 재능을 꽃 피울 수는 없는 걸까요? 디지털 캠코더로 촬영하고 편집한 영화를 인터넷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 보여줄 수도 있잖습니까? 저는 디지털 영화가 필름 영화가 가진 태생적인 장벽을 허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디지털 영화가 보편화되면 생기는 변화 중에 감독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해 봤나?”


생각해 본 정도가 아니라 류지호는 직접 경험해 봤다.


“나는 두 가지 큰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하네. 첫 번째가 감독이나 혹은 제작자가 구체적인 콘티작업 없이도 촬영에 임할 수가 있다는 점이네. 비싼 필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 꼼꼼하게 콘티를 하고 때론 스토리보드를 그렸고 그 자체가 연출력의 척도이기도 했던 것과 달라지겠지. 필름 낭비 걱정 없는 디지털 영화는 이렇게도 해볼 수 있고 저렇게도 해볼 수 있다고 착각해서 자칫 직감에 따라 영화를 찍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드네.”


경우에 따라 다르다.

작가주의 감독들은 그 같은 모습이 더욱 심화된다.

반면에 상업영화는 더욱 콘티나 스토리보드에 민감해진다.

D-Cinema가 보편화 된다고 해서 제작비가 내려가는 일은 절대 없다.

티켓파워가 있는 스타가 순종적이고 이타적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온갖 변덕이 들끓는 영화판에서 무계획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둘째는 편집의 중요성이 더 커지게 된다는 점일세. 내가 듣기로 자네의 이번 영화에서 50시간 촬영분량이 나왔다면서? 그 엄청난 소스들을 가지고 100분으로 압축하게 되면 아무도 최종영화가 어떤 모습일지 확신을 할 수 없게 되겠지. 촬영 분량이 많을수록 편집으로 재탄생할 가능성이 그 만큼 늘어나서 예측 불가능이 증폭되는 셈이니까.”


그 같은 이유로 마지막 최종 편집을 결정하기 전에 여러 가지 다양한 편집을 마음껏 시도해 볼 수 있다.


“영화감독이 자기 콘티 없이 현장에 나가서는 이것도 찍고 저것도 찍고 이걸 찍으면 어떤 게 나올라나, 한 번 찍어볼까? 또 편집에서 의도치 않은 영화가 만들어지고. 결국 자신만의 영상 언어를 만들어갈 수 없게 될 가능성이 커지지 않겠나?”


이전 삶에서 실제 한국영화가 그런 식으로 돌아가다가 여러 신인감독을 망쳤다.

결국 기성감독을 선호하는 풍조로 바뀌면서 신인감독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치기도 했다.


“편집을 마음껏 시도해 볼 수 있다는 말은 창작자와 스튜디오 간의 연출의도와 상업성 사이에서 갈등이 더욱 심화될 수도 있다는 걸 의미하네. 어쩌면 지금보다 더욱 스튜디오의 편집권한이 강화될지도 모르지.”


할리우드에서 편집권이 스튜디오로 넘어간 지 오래다.

감독의 권한이 컸던 한국영화가 맥도웰 교수가 우려했던 대로 변한다.

대기업 투자배급사들이 자신들 입맛에 맞는 편집본을 따로 만든다.

자체적으로 블라인드 시사를 한 후 관객들에게 통한다며 감독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멍청한 짓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가 흥행에 성공할 리가 없다.


“개나 소나 영화를 하게 될까봐 우려하시는 군요?”

“전문가는 존중받아야 하네. 누구나 영화를 제작할 수 있다는 것은 아주 바람직한 일이겠지만. 예술로서의 영화가 종말을 고하게 될까봐 심히 우려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일세. 레저와 예술이란 영화의 양면성에 대한 논쟁은 21세기를 코앞에 둔 현재도 진행 중이니까,”


류지호로서는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다.

다만 영화과 교수로서는 충분히 우려할 만하다는 점은 인정했다.

실제로 디지털 영화로 인해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도 나타나니까.


‘겸손해야지.’


까불다가 혼자만 망치면 상관없다.

어설픈 권력이 판을 잘못 흔들면 업계 전체가 퇴보할 수도 있다.

류지호는 조금은 신중하게 D-Cinema를 다루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다고 속도를 늦출 생각은 전혀 없었다.

달리는 말에 고삐를 쥐지도 않겠지만, 채찍질도 하지 않는 정도.


✻ ✻ ✻


<Dream Come True> D-Cinema 프로젝트는 산학협력으로 UCLA 공대, GMG Lab 등 15개 연구소와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프로젝트의 기술 부문을 총괄하고 있는 인물은 GMG Lab의 수석연구원 밥 세이먼드(Bob Saymond)다.

류지호는 틈날 때마다 그와 만나 프로젝트 진행 상황을 점검했다.

연구팀들의 합동 회의도 자주 참석했다.

현재 UCLA에서는 RMI(Remote Media Immersion)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D-Cinema 데이터 전송을 위한 전용 서버를 개발하는 동시에 D-Cinema 테스트 베드를 구축해 장비 시험 및 압축실험을 실시하고 있다.

밥 세이먼드가 자신감을 드러냈다.


“완벽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순 없지만, 보스의 졸업작품 상영회에서 시험 전송을 해볼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와 있습니다.”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있는 UCLA 연구팀은 상당히 고무되어 있다.

D-Cinema 연구를 진행 중인 경쟁대학들보다 개발 속도가 빨랐기 때문이다.


짝짝짝.


류지호가 그 동안 수고한 UCLA 연구진과 GMG Lab 측 관계자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모두 고생이 많았습니다.”


컴퓨터 공학과 교수가 현실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수준이야. 갈 길이 멀어.”

“그래도 다른 대학이나 연구소보다 앞 선 건 맞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졸업작품 상영회 마지막 날, 영화를 성공적으로 상영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해주세요. 지금까지 온갖 고생은 다 했는데, 시험이 실패하면 허무하잖아요.”

“망신이지.”


본래 역사에서는 1999년 <스타워즈 EP1: 보이지 않는 위험>이 상업영화로서는 처음으로 D-Cinema 시험에 성공했다.

그 후 니폰덴덴샤(NT&T Corp.)가 2001년 11월 국제 심포지엄에서 <툼레이더>를 800만 화소/300Mbps로 전송하는 실험을 성공했다.

Internet2 환경에서 3,000km 떨어진 시카고와 LA를 연결했다.

또 2003년 6월에는 ATM기반의 일본 기가비트 네트워크(JGN)와 IP기반의 네트워크로 중계망을 구성하여 일본 전국에 전송하기 위한 실험을 시행했다.

이를 통해 SHD(Super High Definition) 디지털 시네마 시스템을 개발했다.

그들의 개발 속도가 좀 더 빨라질 것으로 예상되었다.

류지호가 이른 시간에 치고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 몇 개 극장에 전송하게 되는 건가?”

“4개 극장입니다”

“4개라.....”

“그 4개도 미국 전역을 뒤져 겨우 모아온 겁니다.”


현재 미국에서 구할 수 있는 DLP 프로젝터는 4대가 전부다.

일본 회사까지 전부 수소문하면 더 나올지도 모르지만, 경쟁자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꺼려졌다.

그것도 댈러스 인스트루먼츠(DI)에 2대, 중부의 모 대학 연구소가 보유하고 있는 프로토타입 1대, 영국 기업 Cristie가 테스트 중이던 1대를 공수해 왔다.


“마지막으로 확인하겠네. LA 선셋스트립, UCLA 예술대 극장, 텍사스, 캔자스시티 이렇게 4개 지역이 확정된 것이지?”

“네.

“최대 1,600 마일 떨어진 곳으로 전송하겠군.”

“마음 같아서는 뉴욕까지 해보고 싶지만, 안전하게 가는 것이 좋겠죠.”

“GMG와 비공개 테스트할 때는 시카고까지 성공했다네.”

“보고는 들었어요.”


참고로 LA에서 시카고까지 거리는 2,000 마일(대략 3,200Km) 떨어져 있다.


“실험실 테스트에서는 여러 차례 성공했으니까 별 문제 없겠죠.”

“반드시 성공해 보여야지.”


연구팀 모두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이젠 실전이다.

만약 성공만 한다면 역사적인 사건이 될 터.

학교의 명예를 높이는 것은 물론이고 연구진 개인의 엄청난 성과가 된다.


“오늘도 늦게까지 연구실에 계실 겁니까?”

“하루하루가 시간이 모자란 상황일세.”

“오늘 하루는 머리 좀 식히죠.”

“쉴 틈이 있겠나? 두 달도 안 남았는데.”

“하루쯤은 쉬면서 스트레스를 풀 필요가 있어요. 너무 혹사당하고 있는 것 같던데.”


흠.

에험.


연구원들이 저마다 헛기침을 하며 은근히 류지호에게 힘을 실어줬다.


“저녁 살게요. 오늘 하루 정도는 컴퓨터 전원을 꺼놓자구요.”


류지호는 UCLA 연구팀을 데리고 한인타운으로 갔다.

한식당 하나를 통째로 빌려서 마음껏 먹고 마실 수 있도록 했다.

프로젝트가 끝나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깐깐한 교수의 눈치를 보는 것인지, 모두 적당한 선에서 식사와 술을 즐겼다.

이번 D-Cinema 프로젝트에서 가장 바쁜 사람은 JHO Pictures의 피터 사장과 GMG Lab의 수석연구원 밥 세이먼드다.

류지호는 전체적인 프로젝트 방향 설정과 비전만 제시할 뿐.

모든 D-Cinema 실무는 두 사람이 주도적으로 진행했다.

비즈니스와 함께 전문적인 영역을 컨트롤해야 했다.

따라서 류지호는 영화 제작에만 집중하기로 하고, 대부분의 권한을 두 사람에게 넘겼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업체와 연구소 숫자만 15개에 이를 정도다.

결코 작은 프로젝트가 아니다.

피터와 밥 두 사람은 연구팀 조율, 극장·디지털 영사기 수배·위성 사업자 수배, SGI(Silicon Graphics Inc.) 등 다양한 분야의 업체들을 조율해야 했다.

할리우드와 세계적인 가전업체들이 이번 프로젝트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메이저 스튜디오들은 이 프로젝트가 21세기 영화 시스템의 가능성을 확인시켜 주리라 기대하고 있다.

제작비용 감소와 영화 배급의 획기적인 혁명을 불러올 것이란 기대감으로 지켜보고 있다.

글로벌 가전업체들은 최고 수준의 CCD 기술력을 보유한 경쟁사의 기술 수준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로 여기고 있다.

기존 아날로그 시네마 시스템 제조사들은 실험을 다소 폄하하는 시선으로 보고 있다

저 마다 다른 생각과 시선으로 이번 프로젝트를 주시하고 있다.

류지호는 딱히 그 같은 시선을 의식하진 않았다.


‘이번에 안 되면 다음이 있으니까.’


이번 프로젝트에서 속편한 사람은 류지호뿐이다.

오늘이 아니면 내일 다시 시도하면 되니까.


✻ ✻ ✻


최근 할리우드에서 각광받고 있는 로저 A 딕스 촬영감독이 류지호의 두 번째 디지털 영화에 합류했다.

참여할 영화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꽤나 까다롭게 구는 편이다.

영국출신의 로저 A 딕스는 영국신사 이미지보다 깐깐한 대학 교수 같은 인상을 풍기는 중년 남자다.

겉으로 보기에 괴팍하고, 다소 재수가 없을 것 같은 인상을 팍팍 풍긴다.

친해지기 무척 힘든 사람이긴 했다.

그런데 친해지면 상당히 말이 많아지는 사람이다.

그럴 정도로 친해지는 과정이 쉽지 않아서 문제지.

류지호는 처음 <바톤 핑크>를 제작하면서 로저 A 딕스와 인연을 맺었다.

고언형제의 모든 영화를 그가 도맡아서 촬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꾸준히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로저 A 딕스는 류지호에 대해 후한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영화적 표현에 있어서 매우 스타일리시하면서도 완급조절을 잘하는 것이 신기했다.

때마침 디지털 영화에 대한 가능성도 확인해볼 겸 참여하기로 했다.


“4주 가지고 충분해?”

“밤 촬영 이틀 빼고는 모두 스테이지에서 촬영하잖아요. 가능해요.”

“카메라 테스트를 겸하는 것이라면서? 로케이션 낮 촬영은 왜 없지?”

“DALLSA가 낮 촬영 데이터는 꽤 많이 가지고 있더라고요. 물론 비전문가들이 데이터 수집 목적으로 테스트 촬영한 것이지만.”

“여유 있게 작업하지 그래.”

“그러고 싶은데, 졸업 후에 영화들이 줄줄이 계약되어 있어서요. 이때 아니면 디지털 카메라를 테스트해 볼 기회가 없겠더라고요.”

“단편영화도 다작을 하더니, 할리우드에서도 다작을 할 모양이지?”

“그래서 디지털 영화가 빨리 발전했으면 좋겠네요.”

“필름을 따라가기는 쉽지 않을 거야.”

“당장은 그렇죠.”

“나야 신기한 장난감 만져보는 기분으로 작업한다고 치부하면 그만이지만, 디렉터는 입장이 조금 다르지 않아?”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지 신경 안 써요. 조지는 이미 20년 전부터 필름 종말과 디지털 시대를 주장하고 있잖아요.”

“그는 VFX를 사랑하는 감독이니까.”

“만약 디지털 영화가 필름 영화를 어느 정도 따라잡는다면 고언형제 같은 감독들에게는 매우 행복한 일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독립영화와 다른 영역 간의 차이, 기술이나 자본의 차이는 점점 줄어들고, 오직 콘텐츠의 차이로 구분 될 테니까. 우리가 하는 이런 시도들은 필름과 디지털의 경계를 허물고 영화와 방송, 나아가 미디어 전반에 기술 평등을 가져올 겁니다. 그런 변화는 콘텐츠를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내겠죠. 평등해진 기술 위에서 누릴 제작의 자유로움을 통해 영화의 저변이 더욱 확대될 거라고 봐요.”

“그래도 필름으로 이룩한 미학은 쉽게 흉내 낼 수 없어.”


한국영화계는 디지털 영화를 별 저항 없이 받아들였다.

할리우드는 역사도 오래되고 산업 규모가 커서 생각 이상으로 저항감이 크게 다가왔다.

류지호가 밖에서 보던 것과 달리 미국의 영화산업 관계자들은 상당히 보수적이었다.


“디지털 영화가 보편화 되는 시대가 온다면 그에 걸맞은 새로운 미학이 생기겠죠.”

“부디 디렉터의 이런 시도가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미디어 운동이 되길 바라네.”

“독립영화의 건투를 빌어보자고요.”

“고언형제 못지않은 괴짜라니까. 스튜디오를 보유한 자본가가 독립영화의 건투를 빌다니 말이야.”

“1,000 달러짜리 영화든, 1억 달러짜리 영화든, 영화의 가치는 돈으로 매겨지는 것이 아니니까요.”

“좋았어. 그럼 800만 달러짜리 영화를 8억 달러 영화로 만들기 위해 촬영을 시작해 볼까?”

“스탠바이 중이었어요.”


첫날 촬영은 라스베이거스에서 진행됐다.

현장에는 촬영팀 숫자만큼 엔지니어와 연구실 직원들도 많았다.

로저 A 딕스가 멋대가리 없는 디자인의 DALLSA Origin을 손바닥으로 쓰다듬으며 말했다.


“가볍고 콤팩트 할 줄 알았더니 그렇지도 않아.”


DALLSA Corp.에서 파견 나온 카메라 개발부 직원이 설명했다.


“매거진 대신 하드 드라이브가 내장되어 있다는 것만 다를 뿐입니다. 아직까지는 부피를 줄이기가 여의치 않습니다. 이 문제는 대용량 하드 드라이브 기술이 발전하면 저절로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DALLSA Origin 디지털 카메라의 구조는 굉장히 단순하게 디자인 되었다.

수십 개의 버튼과 설정이 필요한 기존의 디지털 방송 카메라와는 달랐다.

필름 룩처럼 보이게 한다거나 아니면 효과를 넣는다거나 하는 그 어떤 특별한 기능이 없기 때문이다.

버튼을 누르면 바로 찍히는 구조다.

이런 직관적인 디자인은 2006년부터 출시되는 레드 원과도 닮아있다.

레드 원은 마치 레고를 조립하는 것 같은 모듈형식의 카메라고, DALLSA Origin은 매거진을 장착한 필름 카메라처럼 디자인된 일체형이었지만.


“카메라 바디가 컴퓨터와 똑같았다고 보시면 됩니다. on하는데 부팅시간이 걸리고, 카메라가 켜있는 상황에서의 과도한 충격에 조심해야 합니다. 가능하면 카메라를 끄고 이동할 것을 권유 합니다.”


카메라의 부피와 무게도 문제지만, 이런 부분은 기동성이 필요한 경우에 문제가 될 수 있다.

당연히 핸드헬드 촬영에 있어서 큰 문제다.


“아직 냉각부분 즉 쿨러 기능이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카메라 기동 시에 열이 많은 편이라 신경을 써야 합니다. 배터리 가동시간도 짧은 편입니다. 배터리 충전표시가 한 개 줄어들면 어떤 상황이 될지 모르니까 미리 갈아서 촬영하실 것을 권합니다.”

“얼마나 촬영 가능합니까?”

“약 1시간 반 정도, 2시간이 최대입니다. 1시간 반 정도가 되면 배터리를 교체할 것을 추천합니다.”


카메라 오퍼레이터와 촬영팀이 개발부 직원의 설명을 꼼꼼히 체크했다.

미국의 상업영화는 DP(Director of Photography) 시스템이다.

무조건 조합에 가입해 있는 카메라 오퍼레이터를 고용해야만 한다.

촬영감독 즉 DP가 카메라를 잡는 경우도 있다.

멀티 카메라를 가동하거나 저예산 영화일 때만 가능하다.

촬영현장에서 실제 카메라를 조작해 촬영하는 것은 오퍼레이터가 담당한다.

류지호의 이번 영화에는 두 개의 촬영팀이 참여했다.

4주 동안 촬영과 테스트, 데이터 수집 등을 모두 해야 했기에 모든 씬을 카메라 두 대로 촬영할 예정이다.


작가의말

즐겁고 신나는 불금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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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 우리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6 22.11.14 4,371 143 26쪽
333 Big Shot. (5) +5 22.11.12 4,361 142 22쪽
332 Big Shot. (4) +6 22.11.12 4,143 134 26쪽
331 Big Shot. (3) +7 22.11.11 4,409 139 25쪽
330 Big Shot. (2) +16 22.11.10 4,408 143 23쪽
329 Big Shot. (1) +10 22.11.09 4,465 145 23쪽
328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3) +9 22.11.08 4,286 141 22쪽
327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2) +2 22.11.08 4,071 133 22쪽
326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1) +9 22.11.07 4,358 138 21쪽
325 사회생활은 인맥이야...! +9 22.11.05 4,491 138 26쪽
324 선택과 집중. (4) +9 22.11.04 4,469 138 22쪽
323 선택과 집중. (3) +10 22.11.03 4,366 148 22쪽
322 선택과 집중. (2) +7 22.11.02 4,728 148 24쪽
321 선택과 집중. (1) +5 22.11.01 4,597 148 24쪽
320 아무 것도 안 해서, 안 돌아가는 일도 있더라. +5 22.10.31 4,578 144 30쪽
319 아무 것도 안 해도 잘만 돌아간다. (3) +10 22.10.29 4,569 146 27쪽
318 아무 것도 안 해도 잘만 돌아간다. (2) +8 22.10.29 4,304 131 22쪽
317 아무 것도 안 해도 잘만 돌아간다. (1) +9 22.10.28 4,564 153 27쪽
316 Celebrity. (2) +8 22.10.27 4,529 148 28쪽
315 Celebrity. (1) +10 22.10.26 4,605 144 27쪽
314 지적인 액션영화는 망할 걸? +4 22.10.25 4,639 155 26쪽
313 엄마는 여한이 없어..... +11 22.10.24 4,572 144 29쪽
312 세계 최초의 D-Cinema! +5 22.10.22 4,513 154 25쪽
311 환경이 아닌 인식의 문제. (4) +4 22.10.21 4,457 143 24쪽
310 환경이 아닌 인식의 문제. (3) +11 22.10.20 4,372 160 22쪽
309 환경이 아닌 인식의 문제. (2) +8 22.10.19 4,470 132 22쪽
308 환경이 아닌 인식의 문제. (1) +6 22.10.18 4,568 155 22쪽
307 괴짜 같은 녀석..... +7 22.10.17 4,512 150 25쪽
306 영화 기술사의 한 획! (5) +13 22.10.15 4,534 162 20쪽
305 영화 기술사의 한 획! (4) +5 22.10.15 4,270 129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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