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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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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최근연재일 :
2024.07.0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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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1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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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4쪽

영화 기술사의 한 획!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사인방의 처음이자 마지막 영화가 될지도 모르는.

류지호의 연기를 마지막으로 보게 될 수도 있는.

그런 기념할 만한 영화의 크랭크인 날이다.

디지털 6mm 캠코더는 필름 로딩이 필요 없다.

테이프만 넣으면 된다.

복잡한 조명도 없다.

스태프라고는 4학년 다섯 명, 더스틴 린과 김윤희 그리고 여배우로 출연할 2학년 생 두 명이 전부다.

사인방도 한때 류지호의 단편영화 작업을 도운 적이 있다.

출연도 하면서 스태프로 한손 거들 수 있다.

원래 이런 모습이 대학 영화과 학생들의 촬영현장이다.


“Cue sign은 윤희가 주도록 해.”

“네! 선배.”


고뇌하고 진지하고 그런 거 없는 촬영이다.

더스틴 린이 카메라를 들이대면 곧바로 촬영시작이다.


[고등학생하고 사귄다고? 정말?]

[그 여자 어떤데?]

[고등학생이면 몇 살이야? 열여섯? 열일곱?]

[나는 스물 하나야. 여자 친구와 네 살 차이밖에 안 나.]

[고등학생이라.... 나쁘지 않아.]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다.]

[너... 했어? 그거?]

[많은 걸 했지.]

[....?]

[버스도 같이 타고, 깊은 대화도 나누고, 디아블로도 함께 하고. 알지 디아블로? Snowstorm이 만든 게임. 워크래프트도 끝내주지.]

[난 그 게임이 무슨 호러 게임인 줄 알았어. 어둡고 무서운 건 딱 질색이야.]

[그 말은 됐고. 키스는?]

[손잡으려고 하니까, 엄청 놀래더라.]

[주먹이 날아오진 않았어?]

[그 애가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데.]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 Jay의 17살 여자 친구가 찾아온다.

얼떨결에 모두가 함께 Jay와 스티븐이 촬영한 호러영화를 보게 된다.

일단 커트.

이 장면 다음에 Jay가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엉성한 호러영화가 이어진다.

Snowstorm의 초창기 게임 ‘블랙쏜’ 화면 같은 영상에 류지호가 좀비에게 쫒기는 모습이 묘사될 예정이다.

좀비의 속도는 <Help Me, Please>보다 빨라서 류지호를 지나쳐 버릴 정도다.

‘영구 없다‘표 슬랩스틱 코미디다.

촬영 첫 날은 사인방이 나오는 장면 위주로 몰아서 찍었다.

카메라는 류지호와 더스틴 린이 번갈아 가면서 잡았다.

영화가 진행되는 중간 중간 수많은 패러디와 카메오 출연자들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사인방이 <저수지의 개들>의 레스토랑을 빠져나와 걸어가는 장면을 흉내 낸다.

화면에 ‘뻥빵‘ 경적소리 컴퓨터 그래픽이 뜬다.

운전석에서 쿠엔 태런티노가 모습을 드러내고는, 맛깔 나는 욕설을 한 사발 쏟아낸다.

<The Killing Road>에서 조앤으로 출연한 바 있는 로즈 맥루한은 신문기사 속 사진으로 간접 출연한다.

남자친구인 인더스트리얼 록 밴드 리더 마릴린 존슨과 데이트하는 광경을 파파라치가 찍은 사진이다.

마릴린 존슨의 사진은 모자이크 처리해서 내보낼 예정이다.

모리스 메타보이 회장은 호러영화 제작자로 출연한다.

그는 트라이-스텔라가 제작한 영화중에서 류지호가 영화권리를 행사한 영화 위주로 신나게 비판하고 조롱한다.

그걸 듣는 류지호의 머리 위로 말풍선이 뜨는데, 주로 할리우드를 풍자하는 말들이다.


[제대로 된 스크립트를 가져오란 말이야.]


Jay는 모리스 메타보이로부터 미션을 받는다.

그때부터 현실과 상상이 마구 교차되기 시작한다.

꿈속에서 만난 여자(아이보리)와 현실에서도 마주치게 된다.

때로는 패스트푸드점 점원으로, 때로는 탱크탑을 입고 공원을 조깅하는 여학생으로, 때로는 버스 앞자리에 앉은 여자로.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안 되는 상황에서 닿을 듯 말 듯 두 사람이 엇갈린다.

마침내 현실에서 마주하게 그녀 아이보리.

두 사람은 상상인지 현실이진 모를 하룻밤을 보낸다.


[나와 다시 데이트 하려면 도전을 받아들여야 해. 그리고 승리해야만 해.]


뚱딴지같은 말만 남기고 아이보리가 공간의 문을 열고 사라진다.

공간의 문이라 이름 붙인 문은 실제로는 평범한 문짝이다.

마치 방에 달려 있는 문짝을 그대로 떼어내어 가져다 놓은 것 같이 영화 내내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한다.

도로 한복판에 나타날 때도 있고, 강의실 복도에 나타날 때도 있다.

현실과 공상사이를 이어주는 일종의 통로 같은 장치다.

류지호는 각기 색깔과 디자인이 다른 세 가지 종류의 문짝을 가지고 다니면서 장면에 맞게 문을 배치했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제작비도 없을뿐더러 일부러 싸구려 태를 내려고 했다.

번거롭지만 문짝을 가지고 다니며 촬영했다.

첫 번째 도전자(전 남친)가 나타난다.

화면이 게임 ‘스트리트 파이터’처럼 변하면서...


[Round One.]

[Fight!]


Jay와 도전자의 결투가 벌어진다.

상당히 어설픈 액션 연출이 펼쳐진다.

Vic & Jay 스터트팀을 불러오면 훨씬 훌륭한 액션을 선보일 수 있다.

류지호는 그러지 않았다.

한국인들이 본다면 <우뢰매>를 연상시킬 수 있는 조악한 액션이다.

그런데 화면 연출은 또 최첨단으로 연출된다.

대전격투게임의 화면처럼 HP, MP 게이지와 기술을 쓸 데 터져 나오는 각종 이펙트들이 Hues & Rhythm Studios의 기술력으로 화려하고 세련되게 구현될 예정이다.

레벨 업 시스템.

Jay는 아이보리의 전 남자친구들과 대전에서 승리하면 승급을 한다.

실력이 향상된다는 설정이다.

최종 보스(?)를 만나기 전까지 류지호의 액션도 조금씩 세련되게 다듬어진다.

심지어 Jay의 감정이 증폭될수록 격투 능력에 버프를 받는다는 설정도 있다.

액션 장면에서 Vic & Jay 스턴트맨이 더블을 해주었다.

대결이 계속될수록 류지호의 태권도 실력을 조금씩 드러냈다.

박은상 감독의 <내 이름은 쌍다리>라는 영화가 있다.

류지호는 박은상 감독에게 대결 장면 연출을 맡겼다.

최대한 당시 액션 디자인을 그대로 재현해달라고 부탁했다.

일명 ‘발따귀‘ 액션을 오마주했다.

도전자를 물리친 Jay는 아이보리와 데이트할 기회를 한 번씩 얻게 된다.

그런데 아이보리와의 데이트 장소에 여고생 여자 친구가 등장한다.

삼각관계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사인방은 어이가 없다.

게이 친구 스티븐에게는 배를 잡고 웃을 정도로 재밌기만 하고.


“이딴 허접한 스토리를 누가 봐.”

“내 말이.”

“지호를 몰라? 그래서 D-Cinema라는 거창한 프로젝트로 포장하는 거잖아.”

“웨딩비디오 찍을 때도 그랬지만, 지호 저 놈은 잘 풀려서 망정이지 잘 못 풀렸으면 무조건 사기꾼으로 빠졌어.”


사인방이 몰라서 하는 생각이다.

미국의 다이렉트 비디오 시장과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하는 영화 중에는 <Dream Come True>보다 더 유치한 이야기의 영화가 널리고 널렸다.

그런 영화들은 돈을 벌진 못하지만, 완전히 망하지도 않는다.

가끔 대박이 터지는 영화도 탄생한다.

<클루리스> 같은 경우처럼.


“아무리 스토리가 유치찬란하다고 해도 퀸카가 지호를 좋아하는 게 좀 그렇지 않냐?”

“고등학교 때 다연이랑 소연이랑 잠시 야리꾸리 했던 걸 망상적으로 재해석한 거야.”


친구들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실제 류지호를 두고 삼각관계가 있었다는 것을 모른다.

어쨌든 망상 속 그녀일지 모르는 아이보리는 어린 시절부터 퀸카가 아닌 적이 없을 정도로 잘 났다.

3명의 전 남자 친구들 역시 모두가 대단한 남자들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만나야 할 남자는....


[그는 정말 무시무시한 남자야. 지금이라도 겁나면 포기해도 돼.]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난 이상형이다.

Jay는 절대 포기할 수 없다.

<Dream Come True>에서는 삼류 청춘·연애·액션·판타지 같은 전개 사이사이 온갖 패러디들이 넘쳐난다.


[Show me the money!]


<제리 맥과이어>의 유명한 대사라던가.


[I'll be back.]


<터미네이터>의 시그니처 대사도 패러디한다.


대놓고 패러디 하는 것도 있고, 은근슬쩍 언급하고 넘어가는 것도 있다.

다른 스튜디오 작품의 명대사를 쓰진 않는다.

오로지 JHO Company 계열 영화사가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는 영화만 패러디 했다.

타 스튜디오와 분쟁이 무서워서가 아니다.

<Dream Come True>의 허접함 속에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로 구현하고 싶은 류지호의 야망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패러디가 넘친다고 해서 <못 말리는....> 시리즈처럼 막장까지는 아니다.

온갖 패러디와 난데없는 장면이 연출되지만, 어쨌든 Jay의 사랑이야기 즉 로맨스가 메인 이다.

사랑싸움도 있고, 연애에는 영 소질이 없는 남자의 혼란도 있다.

질투심을 유발하기 위해 다른 이성과 친한 척 하는 장면도 넣었다.

코믹북 연출 같은 CG와 배우들의 과장된 연기들로 인해 류지호와 사인방의 어설픈 연기는 차라리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엉성함에 어설픔을 한 스푼 더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으니까.


✻ ✻ ✻


<Dream Come True> 촬영팀이 Timley Comics 실사화 영화 <블레이드> 촬영 현장에 나타났다.

물론 촬영이 없는 날과 점심 식사 시간에 잠시 다녀갔다.

남의 촬영장에 함부로 외부인이 출입할 수 없다.

류지호와 친구들은 무리 없이 드나들었다.

<블레이드>의 프로듀서가 류지호였기에 가능했다.

은근슬쩍 <블레이드> 촬영현장도 촬영했다.

초상권과 여러 이유로 분위기 정도만 스케치 했다.

디컨 프로스트 역할로 출연하는 대니 베른하르트의 캠핑 트레일러에서 촬영했다.


“번거롭게 해서 미안합니다.”

“정말 이렇게 찍어도 되는 겁니까?”

“나중에 영화를 보면 압니다.”


대니 베른하르트는 류지호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출연을 결심했다.

막상 카메오 출연을 하긴 했는데, 소문과 영 달랐다.

엉터리로 영화를 찍는 것 같았다.

출연을 취소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대니 베른하르트 분량은 철저히 액션 위주로 찍었다.

Jay는 아이보리와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간다.

극장에 걸려있던 포스터 속 주인공이 대니 베른하르트다.

대니 베른하르트가 포스터에서 튀어 나와 Jay를 습격한다.

그는 거만하고 까다로운 할리우드 탑배우의 모습을 연기한다.

그러다가 장면이 실제 <블레이드> 촬영 현장으로 바뀐다.

할리우드를 풍자하는 실제 촬영장면 패러디가 담겨 있다.

대니 베른하르트는 아이보리의 전 남자친구는 아니다.

정체가 불분명하다.

영화에서 명확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Jay는 대니 베른하르트에게 신나게 얻어터진다.

할리우드 탑배우들의 갑질에 시달리는 감독을 풍자.... 했다고 생각들 하겠지만.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영화의 톤 앤 매너 자체가 엉망진창이었으니까.


[넌 여자 친구를 사귈 자격이 없다, 꼬마야.]


뭐가 현실이고 무엇이 Jay의 망상인지 모를 정도다.

영화는 맥락을 무시한다.

정신없이 전개된다.

서사의 기본도 모르는 사람이 찍을 법한.

한마디로 엉터리다.

한편 삼각관계의 한 축인 Jay의 여고생 여자 친구는 큰 상처를 받는다.

Jay를 저주한다.

그녀의 아버지가 Jay의 앞에 나타난다.

도무지 개연성을 밥 말아 먹은 전개다.

아버지 역할에는 빈센트 부셰미가 특별출연해줬다.

섬뜩한 연쇄살인범을 연기한 경험이 있다.

영화팬들에게 빈센트 부셰미는 범죄자 이미지가 강렬했다.

한동안 Jay는 연쇄살인범 모녀의 위협에 시달린다.

이 시퀀스 또한 망상과 현실이 마구 뒤섞여 보이게 연출된다.

마침내 최종보스가 등장한다.


[넌 한 번도 차인 적이 없어? 단 한 번도?]

[난 만나는 남자마다 최선을 다했어. 열렬히 사랑했지. 하지만 이젠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LA로 이사 온 것이고.]


미국인들이 좋아할 사각 턱에 턱보조개.

192Cm가 넘는 훤칠한 키와 탄탄한 체격.

최종보스격인 아이보리의 전 남자친구는 벤틀리 애플렉(Bentley Affleck)이 출연해주었다.

나름 주연급인 그를 데려올 생각은 없었다.

벤틀리가 먼저 출연을 자청했다.

<굿 윌 헌팅>이 표류하고 있을 때 류지호가 ParaMax를 설득했다.

그 모습에 감명을 받아 출연을 결심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다.

그의 입장에서 할리우드 파워맨인 류지호와 친분을 쌓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덕분에 벤틀리 애플렉과 JHO pictures 및 Timely Studios는 <데어데블> 출연을 물밑에서 논의 중이다.

류지호는 이전 삶과 다른 방향으로 <데어데블>을 제작할 생각을 하고 있다.

따라서 밴틀리 애플렉의 출연이 성사될지 알 수 없다.


‘굳이 벤처럼 몸값 비싸질 배우를 캐스팅할 필요는 없지.’


벤틀리 애플렉이 아이보리를 데리고 떠나버린다.

Jay는 실연의 아픔을 겪는다.

실의에 빠져서 게이 친구 스티븐을 찾아간다.

스티븐은 그의 연인(남자 친구)과 알몸으로 침대에 누워있다.


[정말 그 여자가 너의 짝이라고 생각했어?]

[완벽한 내 이상형이었어.]

[나도 샘과 침대에 있으면 항상 날아갈 것만 같아.]

[그녀와 있을 때는 마치 날아갈 것만 같았어. 지금은 이렇게 의자에 엉덩이를 걸치고 있지만.]

[4명의 도전자를 모두 무찌르면 그녀를 차지할 수 있다고 했잖아.]

[모르겠어.]


게이가 이런 말을 할 입장일까 마는.


[이대로 포기할 셈이야? 용기 있는 남자가 미인을 얻는다고 했어.]


Jay가 실연의 아픔으로 방황하고 있을 때, 여고생 여자 친구가 아이보리를 찾아간다.


[넌 내 첫사랑의 마음을 아프게 했어. 정의의 심판을 받아랏!]

[가슴도 없는 아기 주제에! 어른들 일에서 빠져.]


유치한 대사를 남발하며 두 여자가 싸움을 벌인다.

Jay는 신구 여자친구의 대결을 멈추게 만든다.

그것으로 문제가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인다.

난데없이 나타난 벤틀리 애플렉에 의해 죽음을 맞기 전에는.

화면이 화이트 아웃되면서 자막이 뜬다.


GAME OVER.


게임만 끝났다.

영화는 아직 안 끝났다.

클라이맥스로 향하기 전 숨을 고르는 구간이다.

모든 것이 하얀 공간.

Jay는 그곳에서 외로움을 느낀다.

한편으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다.


[사랑은 어떤 호러영화보다 무섭고 끔찍한 것이야.]


그렇게 사랑에 대해 회의감을 품게 되었을 때, 아이보리와 여고생이 하얀 공간에 나타난다.

Jay는 두 여자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만화라도 이 정도면 말도 안 된다고 욕먹지 않을까?”


시나리오로 읽을 때는 그래도 이야기라는 것이 있었다.

막상 촬영을 하면서 보니 스토리가 자꾸 산으로 가는 것 같았다.


“지호야.... 삐뚤어지려고 작정이라도 했어?”

“웬 개소리야?”

“진짜 이렇게 영화를 찍어도 되는 거야?”

“내 평생 또 언제 이렇게 의식의 흐름대로 영화를 찍어보겠냐.”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거지?”

“영화 찍을 때의 내 머리가 가장 차가워. 걱정 마.”


전 비서실장으로써 황재정은 근심이 가득했다.

류지호가 자기 돈으로 어떤 영화를 찍든 무슨 상관일까 싶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실수하기만 바라며 눈이 벌게진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특히 매스컴이 문제다.


“날린 영화라고 해서 작업까지 날리지는 않아.”

“......?”

“D-Cinema 프로젝트 맞춤 영화야. 디지털 촬영과 그에 따른 노출 데이터 수집, VFX 프로세스의 효용성, 편집, 색보정, 데이터 압축과 백업, 배급에서는 암호화와 위성송출, 극장 상영에서 스크린 밝기와 콘트라스트까지 확인해 보려는.”

“......”

“유치한 액션장면도 표현의 한계를 실험하고 있는 중이야. 아직 디지털 영화의 한계가 불분명한 데가 있어서.”

“그럴수록 서사와 드라마에 집중해야 하는 거 아니야?”

“서사가 살아있는 영화를 찍으려면 필름으로 제대로 찍지 뭐 하러 고생을 해서 디지털 영화를 찍겠어. 형식이 달라지면 그 내용도 달라져야 하지. 안정화되기 전까지는.”

“어련히 알아서 할까마는....”

“영화 흥행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야. D-Cinema가 성공하면 그것이 성과일 뿐.”


지인들의 우려와 상관없이 촬영속도는 무척 빨랐다.

신구 두 여자친구가 사라진 자리에 문짝이 덩그러니 남아있다.

Jay는 뭔가 결의가 느껴지는 표정으로 문고리를 잡는다.

하얀 공간을 빠져 나가서 다시 문을 열고 나온 화면은 횡스크롤(사이드 뷰) 게임이다.

언덕을 넘고, 사다리를 오르고, 위층으로 올라가고, 굴러오는 드럼통을 피하고, 때로는 몬스터도 처치한다.


Level UP.


중간에 야한 장면도 나온다.

물론 게임 화면 속 야한 장면이다.

온갖 역경을 뚫고 층의 마지막에 도달하면 여성 NPC가 대기하고 있고, 키스를 하거나, 게임 머니를 주거나, 섹스도 한다.

그렇게 Jay의 레벨이 계속 오른다.


“이게 어딜 봐서 레벨 업이야. 타락이지.”


킥킥.


배우 겸 스태프로 참여한 졸업반 친구들이 웃었다.

워낙 진지함과 거리가 먼 영화라서 촬영 내내 분위기는 유쾌했다.

NG가 나면 나는 대로.

촬영이 뜻한 대로 안 풀리면 그런 대로.

류지호는 힘을 뺀 정도가 아니라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이기까지 했다.

결국 게임 속 캐릭터 Jay가 마지막 구간을 깨고 게임에서 나간다.

Jay가 모습을 드러낸 장소는 LA 부촌의 고급 주택 뒷마당이다.

류지호가 이사 오기로 한 벨에어의 메가 맨션이다.

한창 내부 공사 중이었다.

이번 영화 촬영을 위해 잠시 공사를 멈췄다.

영화에서는 벤틀리 애플렉의 집으로 설정되어 있다.

넓은 뒷마당에서 Jay와 벤틀리의 최종 결투가 벌어진다.


“고마워. Ben.”

“너무 날림으로 출연한 거 아닌가? 진짜 이대로 가도 돼?”

“카메오 출연인데 뭐. 출연해준 것만도 고마워. 나중에 이 신세는 톡톡히 갚을게.”

“캐나다에서 보자.”


벤틀리 애플렉은 <굿 윌 헌팅> 촬영을 위해 캐나다로 출국해야 했다.

다이얼로그와 얼굴이 노출되는 쇼트만 따로 모아서 찍었다.

액션 장면은 대역이 소화했다.

류지호는 태권도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각종 게임 이펙트 CG를 듬뿍 바를 예정이다.

태권도 실력이 부각될 일은 거의 없다.

최종 보스까지 물리친 Jay는 두 여자 사이에서 한 명을 결정해야 한다.

여고생이 Jay에게 고백한다.


[내게 진짜 남자 친구가 생겼어.]

[.....?]

[호드의 영웅.]


고우찬이 게임 ‘워크래프트’의 호드 영웅 오그림 둠해머를 분장하고 출연했다.

고우찬이 팔짱을 끼고 고릴라처럼 웃었다.

그의 발치에는 깨알 같이 둠 해머가 놓여있다.

의상과 분장은 매우 조악했다.

아트디렉터 한나 쉐릴이 굉장한 코스튬을 제작해 줄 수 있음에도 엉성하게 제작했다.

그럼에도 고우찬의 무섭게 생긴 인상과 당당한 체격으로 인해 어설픈 분장과 의상에도 상당한 일치율을 보여주었다.


‘어쩌겠어. 제작비가 없는데...’


영화가 공개되면 Snowstorm 개발자들에게 좋은 소리 못들을 걸 알면서 오크의 대족장을 출연(?)시켰다.

Jay와 여고생이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는 광경을 지켜본 아이보리가 조용히 돌아선다.

여고생에게 Jay를 양보하려는 것이다.


[가는 거야?]

[이제 사라질까봐. 난 새로운 인생이 필요해. 도망치려고 여기 왔지만 자꾸 과거가 붙잡잖아. 나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다치는 걸 보고 싶지 않아.]

[내가 모든 걸 끝냈어. 넌 이제 자유라고.]

[너무 고마웠어.]

[.....?]

[내가 사귄 남자 중 네가 최고였어.]

[슬퍼지려고 하네. 안녕... 그리고 함께한 추억들도....]

[그래 추억들도...]


매우 오글거리는 청춘 신파다

뻣뻣한 류지호의 연기를 아이보리를 연기한 UCLA 영화과 연기지망 친구가 덮어주었다.

여고생이 Jay를 채근한다.


[가서 붙잡아. 저 여자를 위해 계속 싸웠잖아. 죽을 걸 알면서도.]


Jay는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복잡한 Jay 표정에서 텅 빈 거리로 디졸브(Dissolve) 된다.

쓸쓸하게 걸어가는 아이보리를 어느 새 나타난 Jay가 불러 세운다.


[우리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어떨까?]


아이보리가 가만히 손을 내민다.

Jay가 그녀의 손을 붙잡고, 나란히 텅 빈 거리를 걸어간다.

둘의 앞에 문짝이 나타난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영화가 끝이 난다.

마지막은.

대전격투 게임의 문구.


CONTINUE?

5. 4. 3. 2. 1......


포스트프로덕션에서 쿠키 영상이 삽입될 예정이다.

영화 속에서는 인터넷이 자주 등장한다.

각종 게임 인터페이스, 코믹북 커트편집, 난잡한 CG, 영화 패러디까지.

다소 정신없는 영화가 탄생할 것이다.

마치 청춘의 내면과 방황이 그렇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또한 이제 막 불이 붙고 있는 아날로그 영화와 디지털 영화가 충돌하는 것처럼.


‘때로 영화는 꿈보다 해몽이기도 하니까.’


보름간의 강행군이 끝이 났다.

독일로 떠나기 전 김준우가 걱정스레 물었다.


“영화를 그렇게 마구잡이로 찍어도 돼?”

“될 걸?”

“진짜?”

“아마도....”


황재정이 냉소적으로 말했다.


“아직 최종 결과물은 보지 못해 속단할 순 없지만, 솔직히 돈 받고 극장에서 튼다면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 것 같다.”


고우찬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뭘 미안해? 졸업작품을 위해 찍는 영화인데. 그리고 재밌었잖아.”

“그 여고생으로 출연한 배우하고 야리꾸리 했다고 민아한테 이른다?”

“야. 자꾸 민아한테 이른다는 말 좀 하지 마! 내가 노이로제에 걸릴 판이다!”

“평소에 행실을 똑바로 하란 말이야.”

“난 아무 짓도 안 했어.”


촬영이 끝나자 비로소 친구들이 예전 모습으로 돌아왔다.


✻ ✻ ✻


<Dream Come True> 촬영을 마친 사인방은 2월말까지 웨스트우드에서 머물다 떠났다.

김준우는 독일로, 고우찬과 황재정은 한국으로 돌아갔다.

황재정의 경우는 스탠퍼드 대학원 과정 때문에 여름에 돌아올 예정이다.

LACC에 다닐 예정인 류순호는 졸업 때까지 형과 함께 생활하기로 했다.


“벨에어의 저택으로는 언제 이사가?”

“아버지어머니가 오실 때 즈음.”

“그 동안 그 집을 비워놓고 있는 거야?”

“공사가 그 정도 걸린데.”

“새로 집을 짓는 것도 아니고...”


벨에어의 주택은 5월 말에 리모델링이 끝날 예정이다.

가족들이 졸업식 참석을 위해 다시 LA로 오는 날짜로 입주 날을 정해놓았다.


“위험한 동네 가지 말고. 이상한 애들하고 어울리지 말고.”

“내가 애야?”

“애가 아니라서 잔소리하는 거야. LA 생활이 적응되기 전에는 조심해서 다녀.”


차라리 어리기라도 하면 경호원을 붙여주겠지만.

류순호가 강력하게 거부해서 뜻을 접었다.


“어차피 어학원하고 라이브 카페만 왔다 갔다 하는데 뭘.”


류순호는 락 밴드들이 라이브공연을 하는 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그 펍에 들락거리는 뮤지션 애들 중에 문제아들이 많아서 그렇지.”

“힙합하는 애들보다는 착하거든.”

“곤란한 일 발생하면 무조건 비서실 데니스에게 연락하고.”

“알았다니깐!”


아무리 군대까지 다녀온 동생이라지만, 류지호로서는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LA 시민 모두가 류지호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동생에게 해코지 하는 이상한 인간이 없으리란 법도 없다.


“너무 늦게 들어오지 말고.”


오늘도 형의 잔소리를 들으며 어학원으로 향하는 류순호다.

그럼에도 발걸음은 무척 경쾌했다.


작가의말

1. 습작을 읽은 신 분들은 주인공이 장난처럼 찍는 영화가 코믹스를 원작으로 한 2010년 개봉영화 <스콧 필그림 vs 더 월드>를 패러디한 것임을 아실 겁니다. 첫 구상 때 뮤직비디오와 또 다른 영화도 참조했었는데, 잊어먹고 말았습니다. 

2. 박우상 감독의 <내 이름은 쌍다리>는 X튜브에 영어더빙판이 올라와 있더군요. 무려 43년 전 영화라서 패스트서치로도 보기 힘들지만 왜 당시에 박우상 감독이 액션영화 장인으로 인정을 받았는지 추측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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