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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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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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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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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2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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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아무 것도 안 해도 잘만 돌아간다.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인천에 내려간 김에 사인방 부모님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인사를 드렸다.


“바로 서울로 올라가야 돼?”

“왜요?”

“혹시 시간 좀 내줄 수 있냐?”


김준우의 아버지 김철민이 류지호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저녁 먹고 올라갈까요?”

“바쁜 너를 그렇게 오래 붙잡아 둘 순 없고. 나와 잠시 어디 좀 가자.”

“어디요?”

“자가용 여러 대 우르르 몰고 갈 건 없고. 네 차 좀 얻어 타자.”


부자는 망해도 삼대는 간다는 말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사람이 김철민이다.

김철민은 사업 대부분을 정리했다.

어차피 사양산업들이었다.

류지호의 조언을 받아들여 사업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김철민은 금융투자에는 관심이 없었다.

따라서 인천과 경기도 일원의 부동산 위주로 투자했다.

훗날 땅값이 폭등할 지역들이다.


“신흥동이네요?”

“저쪽 창고지역으로 들어가 보자.”


김철민이 류지호를 신흥동 삼익아파트 길 건너의 적산 건물 밀집구역으로 데리고 갔다.


“여기 기억해?”

“제가 중학교 다닐 때 롤러스케이트장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것까진 나도 잘 모르겠다. 여기 창고지대에서 드라마나 영화도 많이 찍었다더라.”


류지호는 아트플랫폼 지역만 붉은 벽돌로 지어진 창고건물이 남아 있는 줄 알았다.


“이쪽에 일제강점기 지어진 창고가 남아있을 줄 몰랐어요.”


인천부두와 가까워 개항 때부터 창고들이 모여 있는 동네다.

남아있는 건물이 한 동이 아니다.

크고 작은 벽돌 건물이 다섯 채가 넓은 마당을 중심으로 흩어져있다.

어림잡아 3천 평은 될 듯싶었다.


“내가 작년에 여기를 매입했다.”

“재정이가 말씀 안 드렸어요?”

“터미널이 구월동으로 이사 가면, 신포동이 죽는다는 이야기 말이냐?”

“예.”

“그건 그거고.”


류지호는 이해가 가질 않았다.

김철민은 사업적으로 수완이 뛰어났다.

구월동이 뜰 것을 알고 15년 전 넓은 마당이 있는 주택과 땅을 사두었던 인물이다.

현재 땅값이 몇 배가 올랐다.

앞으로 얼마나 더 오를지 모른다.

반면에 신흥동 일대는 구도심으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부자들만 살았던 삼익아파트도 예전만 못했고.

굳이 이 지역에 투자를 할 이유가 없었다.


“이곳에 준우의 스튜디오를 만들어주고 싶구나.”

“.....?”

“꼭 서울에 스튜디오가 있어야 하는 거냐?”

“어떤 작업을 하는가에 따라 다르겠죠. 준우는 뭐라던가요?”

“준우는 몰라.”


일종의 깜짝 선물.

혹은 유산상속을 미리 해주는 것일 수도 있고.


“3,600평정도 돼.”


아파트 단지로 개발할 수도 있는 면적이다.


“준우가 쓸 스튜디오 건물 빼고 남는 땅에는 예식장을 지어도 될 것 같고. 아니면 건물을 지어서 준우가 세를 받아먹어도 되겠지.”

“대로에 붙어있으니까 건물을 올리는 것도 좋은 생각이긴 한데요.....”


류지호가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마당 중앙으로 걸어가 한때 창고임대를 했던 건물들을 슥 훑어보았다.

군산의 적산가옥 같은 느낌을 주진 않았다.

향후 중구에 들어설 인천아트플랫폼 풍경과도 달랐다.

다만 서대문 형무소 느낌이 일부 풍겼다.

따라서 시대극 분위기를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너무 왜진 곳일까? 아무래도 스튜디오는 서울에 내는 것이 좋겠지?”

“경인고속도로 종점과 가깝긴 한데...... 문화재나 유산으로 지정된 건 아니죠?”

“이런 건물도 문화재가 돼?”

“원래는 되어야 하는데....”


시와 구청의 관련 공무원들은 그 같은 개념이 없다.

심지어 문화유산을 관리해야 하는 문화재청까지도.

이미 개발이 되고 난 후에나 후회하는 척 할 뿐.


“명의는 완전히 준우 것으로 하실 생각이세요?”

“유학 마치고 들어오면.”

“준우가 이곳에서 무얼 하든 상관없으시고요?”

“응.”

“제가 투자 좀 해도 될까요?”

“무슨 투자?”

“이곳을 헐어버리고 새 빌딩을 올리는 것보다 촬영지로 활용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얼핏 봐도 건물 한 채는 보존가치가 있을 정도로 오래되어 보였다.

역사가 묻어있는 느낌이 물씬 풍겼다.

일제강점기 배경이나, 6~70년대 분위기의 드라마나 영화에서 써먹을 수 있을 듯싶다.


“가온에서 임대를 할게요.”

“준우 스튜디오는 어떻게 하고?”

“이곳으로 주안 스튜디오를 옮겨오고 싶네요.”

“.......?”

“준우에게 일반적인 결혼사진은 찍지 않게 할 생각이었어요.”

“경영은 하지 않으려고 할 걸?”

“저도 잘 알죠. 유명인이나 VIP 웨딩 사진만 찍게 하려고 했어요. 졸업하고 돌아오면 상업광고 사진이나 화보촬영도 해야겠죠. 준우가 예술사진만 찍으면서 살 수도 있겠지만.... 한량밖에 안 될 것 같아요.”


김철민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온 스튜디오가 이곳을 임대해서 사용하면서, 상업광고와 화보 촬영 스튜디오로 확대하면 좋을 것 같네요.”

“준우와 상의해 봐라. 여기는 준우 것이니까.”

“준우가 싫다고 하면 뜻을 접을 생각이니까 걱정 마세요.”

“둘이 잘 상의해서 이곳을 사용하도록 해.”

“그나저나, 완전히 사업은 접으셨어요?”

“그냥 네 아버지가 하는 다울재단 일 좀 돕고, 골프나 치러 다니련다.”

“친목계는 매달 모이시고 계시구요?”

“아무리 바빠도 한 달에 한 번은 꼭 모이고 있다. 네 아버지더러 라이온스나 로터리 클럽에 들라고 설득 좀 해라. 추천자도 많고, 회원들 만장일치로 가입 승인이 날 텐데, 가입을 안 해.”

“봉사활동은 다울에서 충분히 하고 계시잖아요.”

“그런 클럽이 꼭 자원봉사만 하냐? 인맥을 쌓을 수 있잖아.”

“자선재단 이사장이 인맥 넓어서 뭐에 쓰겠어요. 이상한 사람들이나 꼬이지.”

"그래도 그런 게 아니야. 인맥은 넓을수록 좋아. 네 아버지가 회비가 없냐 시간이 없냐?“

“아버지와 이야기는 나눠볼게요.”


국제적인 봉사단체는 좋은 설립취지와 달리 ‘귀족 사교클럽’이란 비난에 시달린다.

한국에서 역사가 오래된 클럽들의 경우 가입은 자유로운 편이다.

그러는 한편 충족되어야 할 조건이 까다롭다.

일단 매주 모임에 참석한다.

수시로 자원봉사 활동을 해야 한다.

적지 않은 회비와 성금을 내야 한다.

때문에 일반 월급쟁이들은 열정이 있어도 회원이 되는 것이 쉽지 않다.

로터리 클럽 같은 경우에는 동일한 직업은 회원이 못 된다.

의사의 경우 내과, 외과처럼 전문과목이 다르거나 변호사도 전문 분야가 다르면 되지만, 그것 역시 회원 전체가 만장일치로 가입을 허락해야 한다.

한국의 로터리 클럽 같은 경우 기업체 대표, 고위직 관리, 변호사, 의사, 교수, 부유한 자영업자 등 이른바 ‘상류층’ ‘특권층’으로 분류되는 이들이 많다.

괜히 ‘귀족 사교클럽‘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다.


“남들은 서로 들어오려고 난리인데, 네 아버지는 왜 빼는지 모르겠다.”

“시간 내기 어려워서 그러시겠죠.”

“너 따라서 미국에 이민 갈 생각은 아니지?”

“그럴 생각은 없으신 것 같아요.”

“너는 골프 좀 치냐?”

“몇 번 골프 클럽 잡아보긴 했어요.”

“쳐봤다는 이야기지? 언제 네 아버지와 공 한 번 치자.”

“시간 내 볼 게요.”


류지호가 김우영 실장을 향해 물었다.


“지금까지 이야기 모두 들었죠?”

“예. 의장님.”

“지붕까지는 모르겠고. 안전에 문제만 없다면 붉은 벽돌과 연식이 오래된 구조도 살리면서 이곳을 웨딩스튜디오와 뮤직비디오 촬영지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서 기획서 만들어보세요.”

“알겠습니다.”

“이곳의 돌멩이 하나라도 영상기록이나 최소 사진기록으로라도 남겨두고요.”

“......?”

“일제강점기에 지어졌다고 단언할 순 없지만, 적어도 70년대 이전에 지어진 건물일 겁니다. 문화재는 될 수 없어도 당시 시대적 자료로 남겨둘 필요가 있겠죠.”

“향토역사를 연구하는 인천의 사학자들과 접촉해 보겠습니다.”

“그러세요. 어차피 김준우 작가한테 허락을 구해야 해서 당장 시행할 순 없을 겁니다.”

“예. 의장님.”


김준우가 독일로 유학을 가기 전에는 가온웨딩을 맡길 생각이었다.

사진작가로서 명확한 진로가 정해지면서 그 생각을 버렸다.

사진예술가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향으로 생각을 정리 중이다.

마침 부친이 뮤직비디오 및 CF를 촬영할 수 있을 정도 규모의 오래된 창고회사를 물려주겠다고 한다.

김준우의 스튜디오와 묶어서 다른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류지호가 주머니에서 작년 연말 출시된 플립형 애니폰을 꺼냈다.

생각난 김에 숙제 하나를 해치우는 것이 좋을 듯 싶었다.

가온웨딩으로 전화를 걸어 최준영의 연락처를 물었다.

과거로 돌아오기 전 인연 중에서 깊은 관계를 쌓지 못한 사람이 최준영이다.

오동석처럼 자주 마주쳐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특히나 가온 이사회 의장과 일개 웨딩 촬영기사의 신분으로 거리감까지 있었다.


- 여보세요?

“류지홉니다.”

- 안녕하십니까. 의장님!

“바빠요?”

-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아르바이트로 가끔 홍보영상이나 뮤직비디오 찍고 있다면서요?”

- 저어, 그, 그게....

“혼내려는 게 아니에요.”

- 죄송합니다. 의장님. 본연의 업무는 소홀히 하고 있지 않다는 걸 알아주십시오.

“홍보영상이나 광고촬영, 뮤직비디오 어때요?”

- .....네?

“할만 해요?”

- ......

“최 기사님을 곤란하게 하려는 의도 없어요. 나쁜 일 아닙니다. 솔직히 말해 봐요.”

- 솔직히.... 재밌습니다.

“적성에 맞는 것 같아요?”

- 그것까지는 잘....

“독립해 볼 생각 없어요?”


이번 여름에 실장으로 승진했다.

갑자기 독립이라니.

그것도 무려 오너가 그런 제안을.....


“웨딩비디오 말고 광고·홍보 프로덕션 해볼 생각 없어요?”

- ....?

“가온 산하에 광고회사 설립하면 그 쪽에서 일 해볼래요?”

- .....?


갑자기 전화해서 광고홍보 회사라니.

게다가 자신보고 그 곳으로 가서 일을 해보라니.

의장이 자신에게 장난을 칠 리는 없고.


“외주로 해결하고 있는 영화예고편이나 기업홍보 영상이 마음에 안 들어서 광고기획사를 자회사로 만들까 생각 중이에요.”

- ......

“내가 그쪽 분야에 아는 사람도 없고. 또 믿을 수 있는 사람도 없고. 최 기사는 가온 창업멤버나 마찬가지니까. 신뢰를 하기 때문에 제안하는 겁니다.”


누군가가 신뢰한다고 하면 감동까지는 아니어도 고마움을 느낄 터.


“광고기획사를 만든다면 최 기사를 책임자로 생각하고 있으니까 생각 있으면 비서실 김우영 실장에게 말하세요.


류지호는 반응을 보이지 않는 최준영에게 충분히 고민해보라는 말을 남기고 통화를 끊었다.


“광고기획사 설립하실 생각이십니까?”

“사무실로 복귀하면 TF 만들어서 검토해 보세요.”

“김준우 작가님은 어떻게.....?”

“이곳은 온전히 김 작가 것이고. 가온 산하에 광고기획사가 생기면 주로 이곳에서 촬영을 하게 되겠죠. 앞으로 뮤직비디오 수요도 크게 늘어날 겁니다. 서울 강남의 광고 스튜디오들은 임대료 부담 때문에 일산이나 파주 같이 외곽 쪽으로 빠지게 될 거고. 이곳에 광고·뮤직비디오 스튜디오가 생긴다면 일산이나 파주 가느니 이곳으로 올 것 같네요.”


김우영은 광고업계도 경쟁이 치열하다고 조언하려다 말았다.

의장이 그 같은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게다가 이곳에 스튜디오를 지어놓고 영업이 안 되어도 김준우 작가에겐 별 타격이 없다.

김준우 작가 집안의 재력도 상당했으니까.


“혹시 모르니까 학익동 연하대 정문 앞에 오성모직 공장 터도 한 번 알아봐요.”

“오성모직 공장 말이십니까?”

“매물로 나와 있나 확인해 보고 시세도 체크해 놔요.”

“예. 의장님.”


연하대 정문 길 건너의 옛 오성모직 터는 예능부터 영화는 물론 광고와 뮤직비디오 촬영지로 각광을 받았던 곳이다.

류지호도 그곳에서 촬영했던 경험이 있었다.


‘나중에 밀어버리고 아파트 단지를 건설해도 되고.’


김준우의 포토스튜디오를 메인으로 해서 웨딩포토존을 곳곳에 조성해도 된다.

남은 창고건물 안에 스테이지를 만들어 광고 및 뮤직비디오 세트로 활용하고, 오피스 건물에는 향토역사연구센터로 지역 학계에 제공해도 된다.

스튜디오를 만들어도 크게 손해 볼 것 같진 않았다.

김준우는 독일로 유학을 떠나기 전에도 차세대 포토그래퍼로 인정받았던 작가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포토그래퍼들과도 친분이 두터웠다.

유명 연예인의 화보촬영을 진행할 때 그들을 초청해서 작업해도 된다.

인천이란 지리적인 한계는 있다.

스케줄이 바쁜 연예인들이 인천까지 왕복 3시간여를 쓰는 걸 달가워하지 않을 수도 있다.


‘화보촬영이나 광고를 수주 못하면 뮤직비디오를 찍지 뭐.’


서대문 형무소 분위기를 풍기는 붉은 벽돌은 뮤직비디오의 배경으로 써먹기 좋다.

거기에 화학공장 느낌의 파이프, 배관, 철망 등의 구조물을 건물들 사이에 설치하면 꽤 그럴듯한 그림이 된다.

꼭 웨딩촬영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방식으로 이용할 수 있다.


‘슬슬 영화판에 나올 때가 되었구나.’


이전 삶의 인연부터 이어진 최준영의 살 길을 마련해 두었다.

오동석의 경우는 야망까지 실현할 수 있는 발판을 닦아주었다.

영화판에서 깊게 인연을 맺었던 몇 명이 더 남아있다.

그들을 WaW 픽처스로 데려올 수도 있고, 그들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줄 수도 있고.


‘먼저 녀석들이 영화판에 나와 있는지 확인해 보고.’


마이너에서 영화하는 걸 후회하지 않은 후배도 있었다.

그런 후배까지 오동석이나 최준영처럼 삶을 완전히 바꾸는 문제는 고민해봐야 했다.

본인이 생각하는 행복과 그들은 다를 수 있으니까.


❉ ❉ ❉


(주)가온은 법적으론 중소기업이다.

아직 중견기업이라는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기업 규모면에서는 능히 중견기업이라고 할 만했다.

현재는 대기업에는 미치지 못하고 중소기업 혜택을 못 받는 애매한 입장에 놓여 있다.

어쨌든 한국의 기업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계열사를 관리하는 ‘기조실’을 둘만도 했다.

혹은 회장 비서실을 강화하거나.

(주)가온은 공식적으로 회장이 없다.

각 사업별로 최고경영자와 이사회가 분리되어 있다.

의장 비서실이 있지만, 다른 중견기업 회장 비서실과 비교해 기능과 규모가 크지 않다.

이사회는 1년에 두 차례 열린다.

간단한 업무보고 형식일 뿐, 중요한 이슈가 논의되진 않는다.

사실 각각의 사업 부문은 경영의 독자성을 갖고 있다.

오너인 류지호는 중장기 비전만 제시할 뿐.

류지호가 아네모네 프랜차이즈와 나래안전 시스템의 최대 주주이기 때문에 그들 회사가 (주)가온의 계열사인줄 아는 이들도 꽤 많다.

엄밀히 말하면 법적으로 어떤 관련성도 없는 독자회사들이다.

그럼에도 류지호가 지분만 보유하고 있는 회사들은 (주)가온과 공동으로 펀드를 조성한다든가 보조를 맞추는 등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특히 2년 전부터 한국의 외환위기를 대비해 (주)가온과 보조를 맞춰오고 있다.


척.


건물 현관까지 마중 나온 나래안전 임원들이 류지호를 향해 거수경례를 했다.

내심 한숨을 쉬며 류지호가 거수경례를 받아줬다.

민간기업에서 거수경례하는 것에 거부감이 들었지만, 사원들도 그런 기업문화를 군소리 없이 받아들인다고 하니 바꾸라고 할 수도 없다.

군·경·관·조폭 출신들이 다양하게 뒤섞인 나래안전은 회사 내에서 직급에 따라 거수경례로 인사법을 통일했다.


“어서 오십시오.”


류지호는 마중 나온 임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LA에서 뵙고 간만이네요.”

“건강해 보이십니다.”

“덕분이죠. 회사 구경 좀 시켜주세요.”

“저를 따라 오십시오.”


임건희 사장의 안내로 회사 곳곳을 돌아봤다.


“관제실이나 콜센터는 안내할 필요 없어요.”


방해가 될 것 같아서 업무 중인 곳은 제외했다.

직원들의 체력단련실, 휴게실, 출동대기실, 탈의실, 샤위실 같은 복지 및 지원시설만 주로 돌아봤다.

미국의 Pinkerton Corp.도 그렇지만, 경호경비회사는 직원들의 육체적·심리적 컨디션 유지에 꽤나 공을 들였다.


“지방 관제센터는 몇 곳이나 있죠?”

“대구, 부산, 광주, 전주, 대전 다섯 곳에 있습니다. 모두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김우영 실장 말 들어보니까, 일만전자를 인수한다고요?”

“전체는 아니고, VCR부문과 광학기기 부문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만전자는 2세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면서 망하게 된 기업 중에 하나다.

창업주가 일선에 물러난 후 장남이 회장이 되면서 정보통신, 비메모리 반도체, 오디오 부문 강화 등으로 사업을 확장해 올해 최초로 공정거래위원회 지정 30대 기업집단에 포함되었다.

자산 기준 재계 21위까지 오르게 된다.

문제는 곧 외환위기가 닥치게 된다는 점.

다수의 재벌기업과 마찬가지로 무리한 투자로 급속히 자산을 불리다가 외환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워크아웃에 들어갔다가 그룹이 해체가 된다.


“누구 생각이죠? 혹시 의장 비서실에서.....?”


공연히 바람을 잡은 것 아니냐.

임건희 사장이 곧바로 부인했다.


“아닙니다. 전적으로 나래안전의 뜻입니다.”

“뜬금없이 전자회사를 인수하고 싶다고 하니, 조금 당황스럽네요.”


임건희 사장은 황당해하는 류지호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차분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사실 경호·경비로는 돈이 되질 않습니다. 결국 기계식 첨단 경비시스템으로 가야하죠. CCTV와 같은 감시카메라와 무인경비시스템, 출동 서비스 역량을 강화해야 합니다.”

“전국적인 출동 인프라 구축이 우선되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 문제는 단시일 내에 되지 않습니다.”


류지호가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성시큐리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보안업체들은 CCTV업체로부터 세트를 구매해 운영하고 있다.

CCTV부문 글로벌 시장의 강자는 이미지센서를 직접 제조하는 소닉과 나쇼날이다.

나래안전에서는 앞으로 CCTV 수요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LA에서 열린 가람 컨벤션에서 뭔가 얻은 게 있었던 모양이죠?”

“그곳에서 DALLSA 사장과 소그룹 미팅을 자주 가졌습니다. 그들이 만드는 이미지센서 기술이 상당하다고 하더란 말입니다. 가온에서 그렇다고 확인해주었지요.”


류지호는 말을 자르지 않고 가만히 듣기만 했다.


“의장님이 실리콘밸리 벤처기업들에도 많은 투자를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IT기술과 결합한 동작감지, 지문인식, 홍채인식 기술 등이 보안장비와 결합한다면 경쟁력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지금 CCTV 기술은 어느 정도까지 와 있죠?”


나래안전에서 기술부문을 책임지고 있는 노영래 이사가 나섰다.


“흑백에서 컬러 카메라로 확산되는 추세고, 야간과 지하 같이 어두운 곳에서도 피사체 식별이 가능한 저조도 기술과 역광의 문제점을 보완한 광역역광보정 기술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줌인 기능이 강화되고 있습니다. 1~2년 전까지 6~8배에 그쳤으나 최근 200배 수준으로 대폭 향상됐습니다.”

“200배 줌이면... 대략 아파트 옥상에서 도로 위에 있는 사람이 들고 있는 물건을 알 수 있는 정도? 맞습니까?”

“정확하게 알고 계십니다. 줌인 250배 정도면 20층 높이에서 도로 위에 있는 사람이 들고 있는 담뱃갑의 종류까지 식별 가능합니다.”

“저장장치는요? 아직도 비디오테이프에 녹화하는 아날로그 VCR이 대세겠죠?”

“예.”

“디지털 저장 방식이 곧 나올 시점이긴 하네요. 몇 년 안에 별도의 케이블 없이 인터넷망 등 네트워크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설치할 수 있는 네트워크 카메라가 대세를 이룰 겁니다. 아날로그 방식이 디지털로 바뀌게 되면 시간·날짜·상황별 장면을 손쉽게 검색할 수도 있을 거고.”

“저희도 그렇게 예상하고 있습니다.”


류지호가 임건희 사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내가 알기로는 나래안전이 흑자로 돌아선 것도 작년부터이고, 한국경제 상황이 좋지 못해 매출 전망도 밝지 않은데, 인수해서 어떻게 버티려고요.”

“지난 2년 간 대규모 투자를 하지 않아 유보금도 많이 쌓여 있고, 달러도 많이 비축하고 있어서 충분히 감당 가능합니다.”


임건희 사장이 자신감을 드러냈다.

증자를 하자는 이야기는 아닌 모양이다.


“이미 소닉이 꽉 잡고 있지 않아요?”

“국내 업체들은 소닉, 나쇼날, 오성에서 생산하는 세트를 구입해 설치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향후 시장규모는요?”

“단기적으로는 최대 6,000억 원 규모. 10년 후 1조 5천억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나래안전의 예상은 거의 근접한 수치다.

실제 국내 보안업 시장규모는 2010년 3조에 이르며, 이 가운데 CCTV 시장 규모는 1조 2천억 원에 이르게 된다.


“차라리 보안기술연구소나 직원 재교육을 위한 연수원을 설립하는 것이 나을 것 같은데.....”

“......”

“오성시큐리티 융합보안연구소에서 생체인증 기술, 행동인식 기술, 군사기술 기반의 침입감시 시스템 같은 첨단 보안 솔루션을 속속 내놓고 있다면서요?”


JHO 컨벤션이 부작용을 낳은 것 같았다.

CCTV 같은 자잘한 사업이 아니라 미래 첨단보안 분야에 발을 들여놓았어야 하는데.


“사업타당성 검토는 나래안전에서 했어요?”

“의장 비서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내가 따로 TF의 브리핑을 받아 봐도 될까요?”

“그러십시오. 꼭 일만전자가 아니어도 상관없을 것 같습니다.”

“일단 나래안전의 뜻은 알겠어요.”


나래안전의 임건희 사장은 알고 있었다.

(주)가온이 2년여 간 확장을 할 수 있음에도 잔뜩 움츠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의장이 학업을 마치고 돌아온 날부터 움츠렸던 몸을 서서히 일으키고 있다는 것도.

그런 상황에서 나래안전만 강 건너 불구경 하듯 가만있는 건 바보짓이다.

그래서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왠지 다시 앉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드는 나래안전 임원들이다.


작가의말

평안한 주말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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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 우리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6 22.11.14 4,371 143 26쪽
333 Big Shot. (5) +5 22.11.12 4,361 142 22쪽
332 Big Shot. (4) +6 22.11.12 4,143 134 26쪽
331 Big Shot. (3) +7 22.11.11 4,409 139 25쪽
330 Big Shot. (2) +16 22.11.10 4,408 143 23쪽
329 Big Shot. (1) +10 22.11.09 4,464 145 23쪽
328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3) +9 22.11.08 4,286 141 22쪽
327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2) +2 22.11.08 4,071 133 22쪽
326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1) +9 22.11.07 4,358 138 21쪽
325 사회생활은 인맥이야...! +9 22.11.05 4,491 138 26쪽
324 선택과 집중. (4) +9 22.11.04 4,469 138 22쪽
323 선택과 집중. (3) +10 22.11.03 4,366 148 22쪽
322 선택과 집중. (2) +7 22.11.02 4,728 148 24쪽
321 선택과 집중. (1) +5 22.11.01 4,597 148 24쪽
320 아무 것도 안 해서, 안 돌아가는 일도 있더라. +5 22.10.31 4,578 144 30쪽
319 아무 것도 안 해도 잘만 돌아간다. (3) +10 22.10.29 4,569 146 27쪽
» 아무 것도 안 해도 잘만 돌아간다. (2) +8 22.10.29 4,304 131 22쪽
317 아무 것도 안 해도 잘만 돌아간다. (1) +9 22.10.28 4,564 153 27쪽
316 Celebrity. (2) +8 22.10.27 4,529 148 28쪽
315 Celebrity. (1) +10 22.10.26 4,605 144 27쪽
314 지적인 액션영화는 망할 걸? +4 22.10.25 4,639 155 26쪽
313 엄마는 여한이 없어..... +11 22.10.24 4,572 144 29쪽
312 세계 최초의 D-Cinema! +5 22.10.22 4,513 154 25쪽
311 환경이 아닌 인식의 문제. (4) +4 22.10.21 4,457 143 24쪽
310 환경이 아닌 인식의 문제. (3) +11 22.10.20 4,372 160 22쪽
309 환경이 아닌 인식의 문제. (2) +8 22.10.19 4,470 132 22쪽
308 환경이 아닌 인식의 문제. (1) +6 22.10.18 4,568 155 22쪽
307 괴짜 같은 녀석..... +7 22.10.17 4,512 150 25쪽
306 영화 기술사의 한 획! (5) +13 22.10.15 4,534 162 20쪽
305 영화 기술사의 한 획! (4) +5 22.10.15 4,270 129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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