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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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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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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1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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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쪽

괴짜 같은 녀석.....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1997년 3월 26일.

LA의 웨스트 제퍼슨 대로에 위치한 슈라인 대강당(Shrine Auditorium).

이곳에 류지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제 6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아카데미 시상식 행사는 배우가 매스컴에 첫 번째 취재 대상이다.

그 다음이 유명한 감독이다.

영화팬 누구나 알고 있는 프로듀서들도 언론의 주요 타깃이 된다.

평소 매스컴에 노출이 안 되는 유력한 할리우드 인물도 마찬가지다.


- 미스터 류, 처음으로 오스카 시상식에 참석했는데 심정이 어떻습니까?

“매우 매우 영광입니다. 초청해주신 아카데미 위원회에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군요.”


매해 아카데미 시상식에 초대를 받고도 류지호는 참석을 못했다.

그 기간 군복무를 해야 했고, 영화를 찍었으며, 학업에 집중했다.

자신의 작품이 후보에 오른 적도 없다.

작품상 부문에서는 모리스 메타보이나 제휴 영화사 제작자들에게 크레디트를 양보해 왔다.

사실은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남의 잔치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동물원 원숭이가 될 것 같았다.


- 일부러 아카데미 시상식을 피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 그 사정이란 것이 도대체 뭡니까?

- 아시아계라고 홀대 받는 것에 대한 항의였습니까?


자극적인 질문을 던지는 기자들이 몇 명 있었다.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날 수 있어 지금 매우 행복합니다.”


JHO Company 산하 영화사 작품들이 무더기로 아카데미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심지어 수상 가능성도 높게 점쳐지고 있다.

이번만큼은 류지호로서도 초청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 작년 박스오피스 탑 10에 JHO 영화들이 네 편이나 랭크됐습니다. 이번 아카데미도 JHO의 파티가 될 것 같다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한 말씀 해주시죠?

“모두가 행복한 밤이 되길 기원합니다. 특히 고언형제가 수상에 실패했다고 해서 또 다시 미네소타로 돌아가 은거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참. 아니군요?”

- .....?

“고향으로 돌아가야 프랜시스의 뱃속에 둘째 아이가 들어서겠군요.”


하하하.


류지호와 함께 인터뷰를 하고 있던 모리스 메타보이와 알버트 마샬이 웃음을 터트렸다.


- 또 다시 임신한 상태에서 아내를 영화에 출연시켜야 하는 겁니까?

“만류하겠습니다. 무조건. 그런 일은 더 이상 하지 말아야겠죠.”

- 태런티노는 작년 한 해 별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그 말에 동의하지 못합니다. 퀸은 매우 특별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 뭡니까?

“오스카 주연상을 노릴 만한 연기를 선보이지 않았습니까?”


쿠엔 태런티노는 <걸 식스> 특별출연을 시작으로 <황혼에서 새벽까지>에서는 주연까지 소화했다.


- 래지상(Razzies)을 노려볼 만했다는 걸 잘못 말한 거 아닙니까?


래지상은 골든래즈베리를 이르는 말이다.

1981년부터 시작된 시상으로 골든래즈베리 재단이란 단체에서 그 해 최악의 영화와 배우들에게 수상하는 조롱과 경멸을 담은 상이다.

매년 아카데미 시상식 전 날 열린다.


“나의 친구는 더욱 분발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래지는 아무나 받는 상이 아니잖습니까?”


하하하.

이번에는 기자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 <스트립티즈>가 최악의 영화 6개 부문을 수상하는 불명예를 안았습니다.


작년 개봉한 <스트립티즈>는 데미 가인스가 알몸을 공개하는 조건으로 1,200만 달러(96억)의 출연료를 받아 화제가 되었던 영화다.

<사랑과 영혼> 이후 뚜렷한 흥행작이 없었던 데미 가인스가 마음먹고 출연한 영화였다.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가 투자·배급을 맡고 제휴영화사 Rock Castle에서 제작했다.


“스트립 댄서들과 동고동락하며 배역을 연구하는 등 영화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상을 보여줬습니다. 흥행 결과는 다소 기대에 못 미쳤다고 봅니다만. 세상의 모든 영화가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흥행으로만 모든 것을 재단할 순 없습니다. 그녀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습니다. 운이 좋지 않았을 뿐입니다.”


가인스는 페미니스트들로부터 옷을 벗는 대가로 엄청난 돈을 받고 있다면서 그것은 몸을 팔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등의 비난에 시달렸다.

류지호는 영화의 엉터리 같은 완성도를 지적하는 것은 수용할 수 있었다.

데미 가인스가 돈을 밝히는 것도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페미니스트랍시고 같은 여성인 데미 가인스를 공격하는 이들에게는 짜증이 치밀었다.

그들의 비난과 조롱은 바보 같은 짓이고 위선이라고 생각했다.

마녀사냥이기도 했고.


- 영화 자체는 문제가 없었다는 뜻입니까?

“<스트립티즈>는 아카데미 노미네이트 영화가 아닙니다. 오늘 같은 날 다른 영화를 계속해서 언급하는 건 적절치 못한 것 같습니다.”


곧이어 <GI 제인>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 류지호는 화제를 돌렸다.


- 곧 학교를 졸업합니다. 가장 먼저 무엇부터 할 생각입니까?

“공부 빼고 전부.”

- 경영입니까? 영화입니까?

“사랑입니다.”


정식 인터뷰에서는 정제된 질문과 답이 오간다.

이렇게 무작위로 취재진들이 섞여 있을 때는 자극적인 질문이 수시로 튀어나온다.

게다가 아카데미 데뷔나 마찬가지다.

기자들이 작정하고 류지호를 곤란하게 만드는 질문을 준비해 왔다.

자신들 딴에는 신고식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실수라도 하게 되면 당하는 당사자는 지옥을 경험하게 된다.


✻ ✻ ✻


이번 아카데미상 시상식은 유례없는 이변을 예고했다.

많은 독립영화들이 두각을 나타냈던 것.

무려 12개 부문 후보에 독립영화들이 올랐다.

이전의 11개 부문 후보 기록을 갈아치웠다.

또한 ParaMax Films와 사울 젠츠가 공동으로 제작한 <잉글리쉬 페이션트>는 무려 12개 부문에서 후보에 올랐다.

매스컴에서는 <잉글리쉬 페이션트>가 사상 세 번째로 주요 5개 부문 석권이 가능할 것인가에 관심을 집중했다.

주요 5개 부문은 작품상, 감독상, 남녀주연상, 각색상을 일컫는다.


“헤이~”

“반가워.”

“오랜만이야.”


강당으로 들어온 류지호는 오랜만에 지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제대로 된 인사를 나누지 못했는데 곧바로 시상식이 시작됐다.


짝짝짝.


올해 아카데미는 <잉글리쉬 페이션트>와 <파고>의 잔치였다.

사실상 JHO Company의 잔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먼저 <잉글리쉬 페이션트>는 작품상, 감독상, 여우조연상 외에 촬영상, 편집상, 의상상, 작곡상, 미술상, 음향상 등 9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파고>는 7개 부문 후보에 올라 기대를 모았지만, 두 개 부문 수상에 그쳤다.

그나마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프랜시스 맥도먼으로 인해 자존심을 지킬 수 있었다.

독립영화들의 잔치가 된 이번 아카데미에서 그동안 독립 영화를 꾸준히 지켜온 프랜시스 맥도먼의 주연상 수상은 의미가 깊었다.

고언형제 주변에 모여 열렬히 박수를 보내고 있는 독립영화 거장들의 흐뭇한 표정들을 보면 얼마나 각별한 의미인지 알 수가 있다.

아카데미의 보수성과 엄숙주의, 특권의식이 비판을 받고 있지만, 때로는 독립영화까지 아우르는 파격(?)을 종종 보여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철저히 백인중심이긴 하지만.

프랜시스 맥도먼은 이미 뉴욕 비평가 협회, 텍사스 비평가 협회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오스카 트로피의 주인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암튼 <파고>는 각본상, 여우주연상을, <제리 맥과이어>는 남자조연상을, <너티 프로페서>는 분장상을 수상했다.

<The Killing Road>는 남녀 주연상, 촬영상 후보에 올랐다.

모두 수상에는 실패했다.


“축하합니다. 작품상은 <잉글리쉬 페이션트>!”


벌떡.


류지호와 모리스 메타보이, 알버트 마샬이 동시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짝짝짝.


노장 프로듀서에게 아낌없는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류지호 옆자리에 앉아있던 사울 젠츠가 ‘허허‘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아마데우스> 등을 제작한 제작자이자, 미국 독립영화의 표본으로 불리는 인물이 사울 젠츠다.

많은 할리우드 영화인들이 인정하는 존경받아 마땅한 할리우드의 거목.

이미 세 번이나 오스카 작품상을 수상한 바 있다.

사울 젠츠가 류지호와 악수를 나누며 물었다.


“같이 올라 갈 테냐?”

“아니요. 이 영광은 오로지 사울의 것이에요.”

“고맙구나.”

“제가 뭘 한 게 있다고요.”


사울 젠츠가 류지호의 어깨를 한 번 짚어주고는 천천히 무대로 향했다.


‘사울! 제발 그만 튕기고, <반지의 제왕> 내 놔요. 오랜만에 오스카도 받는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와 상관없이 열렬히 박수를 치는 류지호의 모습이 전파를 타고 전 세계에 생방송으로 나갔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생방송이 나가고 있는 한국에서는 난리가 났다.

류지호의 가족뿐만 아니라, (주)가온의 직원과 가족들이 생중계를 지켜보다 류지호가 화면에 잡힐 때마다 환호성을 터트렸다.


짝짝짝!


올림픽 메달이 걸린 결승전이 아니다.

그럼에도 류지호를 향해 열렬히 박수를 쳤다.

류지호가 아카데미에서 수상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주)가온의 직원들은 가슴이 벅차오르는 걸 느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류지호는 한국인 최초로 아카데미 시상식 공식 초청자인 동시에 참석자다.

심지어 <The Killing Road>가 두 개 부문에서 후보에 올랐다.

비록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한국에서는 케이블 영화채널 DCN에서 생중계했다.

시상식을 해설하는 영화평론가가 류지호가 화면에 잡힐 때마다 그의 할리우드에서의 행적을 설명했다.

영화평론가는 사전에 WaW 픽처스로부터 자료를 넘겨받았다.

꼼꼼하게 준비를 하고 방송에 임했다.

지금까지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는 류지호의 할리우드에서의 행적들이 많이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류지호 감독님의 할리우드에서 위상은 어느 정도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한국의 모 영화잡지에서 매년 충무로 파워랭킹을 발표하지요?”

“거기서는 2년 연속 파워랭킹 1위를 차지하고 계시더라구요.”

“할리우드에도 그와 비슷하게 영향력을 알려주는 지표들이 몇 개 있습니다.”

“트라이-스텔라가 메이저 스튜디오 말석 정도라고 설명해주셨는데, 그럼 한 7~8위정도 될까요?”

“그렇지는 않아요. 류지호 감독 주변에 앉아있는 사람들 보셨죠? 모리스 메타보이 회장도 영향력에서 톱급이라고 보기 힘들어요. 류지호 감독은 대략 100위권인 것으로 평가를 하더군요.”

“트라이-스텔라를 소유한 JHO Company 소유주 인데도요?”

“스튜디오를 소유했다고 권력자는 아니죠. 아직은 커리어도 조금 부족하고. 모리스 메타보이 회장만 해도 할리우드에서 경력이 30년입니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아카데미 수상작을 제작했죠. 오늘 작품상 수상자인 사울 젠츠는 미국 독립영화계에서 존경받는 제작지요. 그들조차 톱 10 안에 못 들지요.”

“아! 영향력이라는 것이 메이저 영화사를 소유하고 있는 걸로는 부족하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매체에서 평가하는 랭킹이 그렇다는 것이지, 류지호 감독은 누가 뭐라고 해도 무시하지 못하는 할리우드의 톱급 프로듀서이자 감독입니다. 흥행작들이 말해주죠.”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개인적으로 류지호 감독이 아카데미 무대에서 수상하는 걸 꼭 보고 싶습니다.”

“영화팬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게 아닐까요?”

“그렇죠. 한국 영화인들 모두가 바라는 겁니다.”


과연 그럴까.

할리우드로 꺼지라고 말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지금도 고깝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외국에서 영화 공부하고 온 감독과 스태프들도 은근히 따돌림 당하는 게 현실이다.

본토에서 노는 류지호에게 들이대는 잣대는 말할 것도 없다.

한국에서의 평가가 어떻든 제69회 아카데미 시상식 주인공 중에는 류지호도 포함된다.

그것이 중요하다.

메인이나 공동 프로듀서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리지 않아 시상식 무대에 직접 설 수 었었다고 하더라도.

<잉글리쉬 페이션트>와 <파고> 그 외 JHO Company 계열 영화사 아카데미 수상작들에 류지호가 직간접적으로 관여를 했기 때문이다.


[지호 류의 다섯 장의 영화선택권리가 옳았다는 것이 이번 아카데미에서 다시 한 번 증명됐다.]


주요 미국 언론이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을 논평하며 덧붙인 말이다.

가볍게 넘길 수 없는 표현이다.

‘옳았다’ 같은 표현은 엄청난 찬사다.

게다가 이런 식의 문구는 스티븐 아들러 같은 이들에게나 따라다닌다.

특히 TV와 신문 모두에서 사용된 사진은 사울 젠츠, 모리스 메타보이, 알버트 마샬 같은 할리우드 거물 프로듀서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류지호의 모습이다.

그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언론에서 쓰이는 사진 하나하나가 의미가 없지 않다.

류지호를 추켜세우는 동시에.


- 백인 너희들 뭐하고 있는 거냐? 아시안이 할리우드에서 날 뛰고 있는데....


어쨌든 아카데미 시상식이 끝이 나면 수상자뿐만 아니라, 공식초청자들을 근처 호텔 연회장으로 초대해 뒤풀이파티를 개최한다.

류지호 역시 파티에 참석했다.

초청장이 없거나 기자는 출입이 불가능한 파티다.

불청객으로 인해 자칫 분위기를 망칠 수도 있다.

때문에 참석자를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


하하.

호호.


모두가 밝고 유쾌했다.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대단한 영광이고 명예다.

수상에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다들 분위기가 좋았다.

그런데 류지호의 눈에는 뭔가 미묘한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독립영화 무리들, 유색인종 배우와 감독들, 아카데미 위원회 상층부의 꼰대들과 거리감이 느껴지는 비평가들, 류지호처럼 젊고 패기 넘치는 무리들.

넓은 연회장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서로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것 같지만, 어딘지 보이지 않게 장벽들이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류지호만의 착각은 아닌 모양이다.

<제리 맥과이어>에 출연한 마크 구딩스가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아카데미 파티가 원래 이래?”

“몰라. 나도 처음 참석해서.”

“처음 참석했다고?”

“응. 그 동안 아카데미 시즌마다 LA에 없었거든.”


류지호는 마크 구딩스를 시작으로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친절하게 구는 사람, 잘난 척 하는 사람, 아부하는 사람,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내는 사람, 예만하게 구는 사람, 무시하는 사람, 아닌 척 하면서 인종차별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사람, 깔보는 사람 등.

배척하지도, 그렇다고 열렬히 환영하지도 않는 파티다.

한편으로 할리우드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았다.

아카데미 노년층 위원회 멤버들과 담소를 나누고 홀로 떨어져 나온 사울 젠츠에게 류지호가 대뜸 말했다.


“이제 저 좀 믿어 보세요.”

“늙은이하고 놀지 말고, 저기 예쁜 여자 애들하고 놀아.”

“제가 못 미더워요? 올해 오스카를 휩쓸었는데?”

“정신 사나우니까 요점을 말해 주겠어?”

“트라이-스텔라는 <반지의 제왕>을 아카데미 시상대에 세울 수 있어요.”

“또 엉뚱한 짓을 하겠다고?”

“사울에게는 아무 짓도 안 했잖아요.”


아직까지는.

사울 젠츠는 <반지의 제왕>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 화제를 돌렸다.


“괴짜 같은 놈. 요새 뭔 짓을 하고 있는 거야?”

“졸업 작품에만 매달려 있어요. 그 외에는... 딱히.”

“디지털 영화를 찍는다며?”

“그게 뭐 어때서요?”

“컴퓨터 그래픽도 많이 넣을 생각이냐?”

“하나는 꽤 많이 들어가고 다른 하나는 거의 안 들어갈 것 같아요.”


류지호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사울 젠츠가 툭 말을 내뱉었다.


“차라리 네가 해보는 건 어떠냐?”

“......?”

“네 녀석이 장대한 서사를 소화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줄 의향이 있다.”

“로비 잭슨이 저 보다 훨씬 더 잘해낼 수 있어요.”

“남에게 줄 거면서 왜 그리 집요하게 구는 건지... 나는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다.”

“로비 잭슨에게 피칭할 기회를 주세요. 자리를 마련해 볼게요.”

“호러영화나 찍던 감독이 그런 엄청난 영화를 감당할 수 있다고 보는 거냐?”

“네.”

“허허. 그 놈 참....!“

“제가 손대서 잘 안 된 영화 없었어요. <반지의 제왕>도 잘 될 거라고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어요.”

“돈은 나나 너나 충분하지 않더냐?”

“돈 버는 건 두 번째 문제고요.”

“첫 번째 문제는 뭔데?”

“프로도의 모험 그리고 절대반지가 파괴되는 걸 영화로 보고 싶으니까요. 모르긴 몰라도 전 세계 1억 명의 영화팬 모두가 저와 같은 생각일걸요.”

“혓바닥에 버터라도 발랐냐? 말은 잘한다.”

“사울도 그걸 보고 싶어서 판권을 산 거 아니었어요?”

“알았다, 이놈아! 피칭 한 번 해보라고 해.”

“넵! 사울! 존경합니다!”

“됐고. 올 때 빈손으로 와라. 네 녀석이 좋아 할 만 한 위스키 한 병 구해 놨다."

“넵!”


사울 젠츠에게 <반지의 제왕> 영화 제작을 반쯤 허락 받았다.

나머지는 로비 잭슨의 몫이다.


“로비 잭슨이 LA에 머물고 있는지 뉴질랜드로 돌아갔는지 확인해 보세요.”


뒤풀이 파티가 끝나기도 전에 도널드 제이콥에게 지시를 내렸다.

서둘러서 될 문제는 아니지만, 마음이 급했다.


❉ ❉ ❉


아카데미 편집상을 <잉글리쉬 페이션트>가 차지했다.

편집은 Abid MediaComposer로 작업했다.

비록 극장 상영은 전통적인 필름 프린트로 이루어졌지만, 편집 과정은 텔레시네→Abid edit →키네스코핑을 거쳤다.

디지털 편집 된 영화에 수여 된 최초의 오스카 수상 기록까지 남겼다.

본의 아니게, 류지호에게 최초 수식어 하나가 추가됐다.

<잉글리쉬 페이션트>는 네거티브 필름 커팅을 했다.

완전한 디지털 포스트프로덕션은 아니다.

아직은 키네스코핑 작업을 할 경우 화질이 떨어졌다.

키네코(kineco) 혹은 키네스코핑(kinescoping)은 키네스코프 레코딩(kinescope recording)의 줄임말로 텔레비전 카메라로 촬영했거나 텔레시네 한 화상과 음성을 영화 필름에 기록하는 것을 말한다.

컴퓨터 데이터 신호를 필름을 옮기는 것까지 포괄해서 쓰인다.

할리우드 영화의 디지털 편집을 선도하는 기업은 Abid Digital Technology다.

특히 사운드 분야에서 Pro Tools는 독보적이다.

문제는 편집 장비구축이 들어가는 비용이 꽤나 비싼 편이란 점.


‘어차피 영화 편집 툴은 미국에서만 사용하게 될 텐데.....’


류지호가 변두리 영화로 밀려날 때 즈음부터 Abid MediaComposer는 미국에서만 사용하는 편집 툴로 전락했었다.

당연히 류지호는 Abid Digital Technology 인수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색보정 분야의 절대강자인 Da Vinci에 기본적인 컷 편집 기능도 추가할 예정이고, Hues & Rhythm Studios의 경우도 자체적인 편집 툴을 개발해서 사용하고 있다.


‘앞으로 파이널 컷, 프리미어 등 좋은 편집 툴이 나오기도 하고.’


다만 류지호가 영화기술 관련 기업에 관심이 많은 것을 잘 알고 있는 GARAM Invest가 Abid가 나스닥에 공개된 후 주식을 사들였다는 사실.

언제든지 적대적 인수합병 할 수 있도록 적정 지분을 유지하고 있다.

류지호는 별다른 참견을 하지 않았다.

투자금도 그리 크지 않았고.

일찍이 디지털 영화세상을 예견한 조지프 루카스가 주류 영화 쪽에서 가장 활발하게 D-Cinema를 준비하고 있다.

그 뒤를 바짝 추적하는 것이 류지호다.

계획대로 된다면, 독립영화 쪽보다는 1년을, 주류영화 쪽보다는 2년을 앞당겨 D-Cinema를 세상에 선보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D-Cinema는 파일형식으로 제작 및 배급, 상영의 전 과정을 처리하기 때문에 화질의 열화가 없고, 운송 및 저장 비용을 줄일 수 있어 경제적 측면에서의 효율성을 높여 줄 수 있다.

때문에 2000년대 들어서면 메이저 스튜디오 중심으로 D-Cinema가 활발하게 연구 개발되게 된다.

하지만 만만한 연구가 아니다.

기술의존도가 높아 기술 투자에 대한 비용이 많이 투입되는 문제가 있다.

게다가 독자적인 디지털 배급망을 확보하지 못한 영세한 중소배급업체의 배급권이 대기업에 종속되는 부작용을 양산하기도 한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꼴이지....’


류지호는 선행적인 조치로 D-Cinema에 관한 표준화 작업과 기술선점에 주목하고 있다.

기존의 빅 식스의 견제와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은 새로운 기술 환경을 선점하는 것이다.

또한 소닉이 홈비디오 디지털 시장에 몰두하고 있을 때, 영화 및 방송 분야에서 압도적으로 기술 선점을 해야 했다.

현재 아날로그와 디지털 양 분야에서 가장 많은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필름을 만드는 이스트만 코작이다.

그 다음이 소닉이다.

디지털 분야의 기본이 되는 몇 개 원천 기술을 제외하고 후발주자들에게 무궁한 가능성이 열려 있다.

그렇기 때문에 류지호가 기업 규모에 어울리지 않는 막대한 R&D 자금을 디지털 분야에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은 후발주자인 JHO Company에게 기회의 땅이기에.


❉ ❉ ❉


<Escape>가 한창 포스트프로덕션을 하고 있을 때, 쿠엔 태런티노가 연락도 없이 찾아왔다.

다짜고짜 류지호에게 성을 냈다.


“네가 하고 있는 일은 영화에 대한 모독이야.”


류지호의 디지털 작업을 비판하는 말이다.


“위선자! 너도 어쩔 수 없는 자본가와 다를 것이 없었어.”

“새로운 기술혁명을 시험하는 것이 왜 위선인데?”

“시끄러워! 네 의도가 순수하다고 믿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게 됐어. 순전히 경제적인 이득을 위해 디지털 영화를 실험하는 것이잖아!”

“경제적인 이득이 나쁜 거야? 비용을 줄일 수 있다면 독립영화나 스튜디오 둘 모두에게 이익 아닐까?”

“필름이 아닌 영화는 텔레비전과 뭐가 다르지?”

“극장에서 상영하는 모든 포맷이 영화가 아닌가? 필름만이 영화라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려운데?”

“네가 소유한 회사들의 이익을 위해 필름을 거부하고 디지털 영화를 꿈꾸는 거야. 내 말이 틀려?”


후우.


잔뜩 성이 난 쿠엔 태런티노를 보며 류지호는 이전 삶의 기억을 떠올렸다.

미국의 극장에서 필름으로 자신의 영화를 상영할 수 없다면 은퇴하겠다고 선언했던 인간이다.

디지털 영화에 대해 반대편에 있던 인물임을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극렬한 반대자임은 미처 몰랐다.


“실험이야 실험. 앞서 가지마."

"내가 걱정하는 거로 보여? 충고하는 거야."

"퀸이 우려할 정도로 그렇게 빨리 필름이 사라지지는 않을 거야.”

“영화를 대하는 태도의 문제야.”

“단순히 테스트라니까. 앞으로 내 영화는 필름으로 찍을 거야.”

“내가 지켜보겠어.”

“지켜보긴 뭘 지켜봐!”


류지호 역시 한 때 필름 영화 신봉자였다.

태런티노와 마찬가지로 디지털 영화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태런티노나 에드워드 놀란 같은 감독들에 비하면 영화판의 영향력이라곤 쥐뿔도 없는 삼류였지만.

어쨌든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는 그랬다.

지금 시기의 영화계는 꿈에도 모른다.

디지털 영화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전통적인 영화 배급의 경쟁력은 OTT, 게임, VR, 심지어 홀로그램에까지 위협을 받게 된다.

디지털 영화는 21세기 영화의 종착점이 아니다.

개념이 완전히 달라질 미래영화로 향하는 길목에 잠시 스쳐가는 과도기일지도 모른다.


‘20년이 과도기라고 할 순 없겠지만.’


DALLSA Origin의 테스트 촬영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류지호가 기대했던 딱 그 정도 수준을 충족했다.

물론 끝이 아니다.

앞으로도 수많은 테스트와 연구개발이 계속되어야 한다.

D-Cinema의 갈 길은 아직 멀었다.

빨라야 2002년 전후.

분명한 사실은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을 것 같던 세계영화계에 류지호의 시도가 새바람을 일으킬 것이란 사실이다.

두 편의 졸업작품이 <스타워즈> 같은 폭발력 있는 영화는 아닐지라도...


작가의말

활기차게 한 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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