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새글

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최근연재일 :
2024.07.05 09:05
연재수 :
901 회
조회수 :
3,838,202
추천수 :
118,862
글자수 :
9,980,317

작성
22.11.09 09:05
조회
4,464
추천
145
글자
23쪽

Big Shot.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작년부터 중견기업들이 연쇄부도를 맞이하고 있다.

그로 인해 중소기업들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게다가 9월부터 환율도 크게 뛰어오르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중소기업들이 쓰러지고 있다.

구로공단도 마찬가지다.

나뭇잎을 보면 이제 막 단풍철이 시작될 시기다.

공단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한 겨울처럼 차고 시렸다.

활기가 뚝 떨어진 구로공단의 한 공장에 류지호와 수행원들이 도착했다.

공장 입구 현판에 적힌 상호가 ‘SPECTRUM DVD'다.

(주)가온 계열의 DVD 타이틀 제작 및 유통회사다.

류지호는 미국에서는 IVE Entertainment를 통해, 한국에서는 스펙트럼DVD를 통해 DVD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회사 주인의 첫 방문을 환영하기 위해 사장을 비롯해 임원진 전부가 본관 앞마당까지 마중 나와 있다.


넙죽.


사장과 임직원들이 차에서 빠져나오는 류지호를 향해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김 실장, 첫 방문이라 넘어갑니다.”

“죄송합니다.”


나이 지긋한 임원들이 새파랗게 젊은 사람에게 허리를 바짝 숙여 인사하는 모습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재벌 놀이를 할 것도 아니고.

없어져야 할 의전이다.

어쨌든 류지호는 마중 나온 임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본관 회의실로 향하기 전에 공장 시설을 둘러봤다.

실제 DVD 타이틀을 복사하는 시설은 별 것 없다.

대부분의 시설은 컬러 연쇄, 조립, 포장, 검수, 보관, 하역 등의 공간이 차지하고 있다.


“표지나 속지는 외주를 주지 않고 자체적으로 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패키지에 들어가는 종이는 외주 업체에서 납품을 받고, 공CD나 DVD 앞면에 들어가는 빠다를 바르는... 그러니까 필름에 4도 인쇄를 한 후 DVD 표면에 입히는 공정을 자체적으로 합니다.”


류지호의 물음에 대답하는 스펙트럼DVD 사장은 젊었다.

30대 후반 나이에 사장이 된 우남혁은 1988년 CIC비디오코리아에 근무하면서 처음 영상사업과 인연을 맺었다.

CIC비디오는 할리우드 직배사로는 최초로 설립된 비디오 업체다.

유니벌스와 패러마운틴이 제작한 영화를 비디오로 출시해온 국내 대표적인 비디오 제작·유통사다.

이후 92년부터 콜롬비아스 코리아로 옮겼다가, 95년 WaW 픽처스에 영입되었다.

지난 1년 간 IVE Entertainment에서 연수를 받고 돌아왔다.


꿀꺽.


우남혁은 연신 입술에 침을 발랐다.

입이 바짝바짝 마르는 기분이다.

나이 마흔도 되지 않은 자신을 사장자리에 앉힌 장본인이다.

게다가 할리우드 최상위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 바로 자신의 눈앞에 있는 청년...


‘아니 감독... 이사회 의장... 암튼 빅보스시지.’


식은땀까지 흘리는 우남혁이다.


“죄 지은 거라도 있습니까? 왜 긴장을 하고 있어요?”

“아, 아닙니다.”

“중요한 이슈 중심으로 전망에 관해서 설명해 봐요.”

“일본전자산업협회가 추산한 2000년 DVD 시장규모는 15조원입니다. DVD플레이어 카오디오 게임기 등 약6 ,000만대의 DVD관련 하드웨어 시장이 형성될 전망입니다.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가전시장에 이만한 효자도 없지요.”


나쇼날은 DVD의 양쪽 면을 활용하는 기술을 밀었다.

반면에 소닉의 독자기술 핵심은 안쪽 면에만 이중으로 데이터를 저장하는 방식이다.

CD 역시 한 면에만 자료가 입력된다.

소닉의 표준을 채택하게 되면 기존제품과 호환성을 높일 수가 있다.

개발이 용이하니 생산단가를 낮출 수 있다.


“가전과 컴퓨터 업체의 승부는 본격적으로 DVD대중화가 실현될 4~5년 후에 갈릴 것이라는 게 중론입니다.”

“미국의 DVD 플레이어 보급률은 어떤가요?”

“MPAA의 최근 보고서를 보면 DVD 플레이어의 출고량이 작년 12만대에 이어 올해 35만대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년 110만대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21세기가 오기 전에 400만대 수준으로 급속하게 증가할 것으로 보고 이에 대한 부가시장이 어떻게 형성될 것인가에 대해 고심하는 걸로 압니다.”

“DVD 타이틀 출시 현황은 어떻죠?”

“작년 60개가 출시된 것에서 올해 600개에 이를 것으로 보입니다. 내년에는 1,200개, 2000년 전후로 7,000개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영상산업뿐만 아니라 게임 및 음악 산업에서의 디지털화도 형태를 갖추고 있다.

게임 산업에서는 아케이드게임과 비디오게임이라는 전통적인 축이 점점 다목적 디지털 기능을 구비한 비디오게임과 온라인 게임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음악 산업에서는 일찌감치 MP3 등 디지털 음악의 소비가 진행되고 있다.


“올해 WaW 영화는 몇 편의 타이틀을 출시한답니까?”

“10편으로 알고 있습니다.”

“북미에서 DVD 타이틀 반응은 어때요?”

“압도적입니다. 다른 영화들은 영화의 화질과 음향에만 신경을 썼지만, IVE에서 출시하는 타이틀에는 서플먼트가 포함되어 있으니까요.”


DVD는 화질과 음질의 혁신을 위한 것에서 출발했다.

당연히 초창기 DVD 타이틀에는 부록인 서플먼트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오로지 IVE Entertainment 타이틀에만 서플먼트가 포함되어 있다.

사실 처음으로 부록을 시도한 것은 아니다.

이미 The Stein Collection이 1984년 LD로 발매된 오슨 웰스의 <시민 케인>에 오디오 코멘터리를 최초로 도입한 바 있다.

또한 프레임별 감상이 가능한 LD의 특성을 활용해 정지 화상 갤러리나 텍스트 자료를 추가했다.

다른 출시사로부터 ‘미친 짓’이라는 야유를 받았다.

결과적으로 마니아가 이끌고 있던 LD시장에서 압도적인 반응을 얻었다.

IVE Entertainment의 목표 역시 모든 영화팬들이 소장하고 감상할 만한 엄선된 작품을 최상의 사양으로 출시하는 것이다.

어차피 1~2년만 지나면 판매촉진을 위한 서플먼트가 등장할 터.

21세기로 넘어가면 내용도 다양해지면서 영화제작의 모든 것을 담게 된다.

제작현장을 담은 다큐멘터리, 감독과 제작진의 장면해설, 헌팅과 세트디자인 과정, 특수효과의 비법, 배우 인터뷰, 삭제된 장면, 스토리보드, 시나리오 등.

영화를 보고나면 궁금증을 하소연할 곳을 찾지 못하던 관객에게 축복 같은 일이 된다.


“The Stein Collection은 어떻게 하고 있죠?”

“여전히 LD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DVD 콜렉션을 선보이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습니다.”

“The Stein Collection을 인수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IVE에서 근무할 때 관계자들을 만나본 적 있습니다. 프라이드가 굉장했습니다. 쉽게 회사를 넘기지 않으려 할 것 같습니다.”

“미리부터 포기하진 맙시다.”

“죄송합니다.”

“좋은 건 배워야 합니다. The Stein Collection이 시도한 서플먼트 개념이 DVD 구성의 기본이 될 겁니다.”


The Stein Collection은 DVD의 기본적인 구성 틀이 자리 잡히기 전에 처음으로 시도한 것 말고도 자칫 잊힐 수도 있는 고전 명작과 외면당하기 쉬운 예술 영화를 보존하는 데에 역할을 한다.

손상된 필름을 디지털로 복원하여 그 작품을 재조명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한다.


“IVE와 스펙트럼은 그들이 가지지 못한 훌륭한 시설과 인프라를 가지고 있습니다. 스펙트럼DVD 역시 IVE처럼 최상의 화질과 음질을 위해 DVD 제작용 마스터를 직접 뽑아야 합니다. 가장 상태가 좋은 필름을 찾아내 고퀄리티를 추구해야 합니다. 우 사장은 영화판에서 뭐라고 하든 상관하지 마세요.”


(주)가온은 홈비디오 부문에서 후발주자다.

기존 비디오는 과감히 포기하고 새로운 시장인 DVD를 밀고 있다.

한때 비디오 보급이 늘어나면서 극장 매출이 감소했다.

DVD가 보편화 되면 그 같은 과정을 똑같이 겪을 수도 있다.

그런데 (주)가온은 멀티플렉스까지 공격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그로인해 극장주들은 혼란을 금치 못했다.


“항상 극장에서 보는 것과 똑같이 한다라는 마음으로 DVD타이틀을 만들어야 합니다. 오래 전에 상영했던 한국영화 DVD 타이틀을 출시할 때는 전국을 이 잡듯이 뒤지는 한이 있더라도 최상의 프린트를 찾아서 마스터를 뽑으세요. 심지어 사운드를 디지털로 새롭게 편집해도 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DVD타이틀의 서플먼트는 영화 홍보용 영상으로 채워져선 안 됩니다. 타사 영화타이틀을 제작하더라도 실제 영화를 완벽히 이해하고 제작에 들어가세요. 제작 과정의 실질적인 뒷이야기를 알 수 있도록 때에 따라서는 새롭게 제작된 오리지널로 서플먼트을 채워야 합니다다.”

“기본 DVD타이틀부터 여러 장의 컬렉션 패키지까지 다양한 제품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좋은 생각입니다.”


류지호가 말하는 바를 충실히 따르면, DVD 타이틀의 가격이 비싸지는 단점이 있다.

상관없다.

서플먼트가 충실하다면 팔리게 되어있다.

조금 비싸더라도 두어 시간 정도 서플먼트가 포함된 타이틀보다 최장 20여 시간에 이르는 전체 서플먼트가 수록된 타이틀을 사게 되는 것이 소비자의 심리.

DVD 타이틀 구성이 확립되지 않은 시기에 IVE와 스펙트럼DVD가 타사보다 한 발 앞서 트렌드를 선도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의장님.”

“뭐가 궁금합니까?”

“서플먼트가 충실해지면 질수록 영화촬영의 신비감이 사라지지 않겠습니까?”

“그게 뭐가 어때서요?”


류지호는 뭐가 문제냐는 표정을 우남혁을 쳐다봤다.


“할리우드에선 ‘영화의 죽음’을 초래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상당합니다. 영화를 보고 궁금할 것이 하나도 없다면 그때 영화는 무슨 매력을 갖는가라고 말입니다.”

“홈비디오가 가정에 보급되는 순간부터 이미 영화와 방송 촬영이 신비하고 궁금한 것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케이블TV는 어떻고요.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는 이제 더 이상 영화인만 출입가능한 성역의 비밀이 아닙니다.”


영화가 ‘활동사진‘이라고 불린 지 100년이 다 되어가는 시기에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이 신비해 봤자다.

그보다는 극장에서 본 현란한 장면이 실제로는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호기심을 충족했을 때 느끼는 만족함이 더 클 것이다.


“처음 LD, DVD를 개발한 사람들은 그것들이 영화교육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키리라 예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감독과 배우들은 어떻게 영화를 해석하고 접근했는가, 스태프들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는가, 카메라나 녹음 기재는 무엇을 썼기에 저런 효과를 내는 걸까, 제작비는 얼마며 어떻게 충당했는지, 기획에서 홍보 카피까지도 영화학도는 물론 일반인도 많은 호기심을 가지고 지켜보게 될 겁니다. 제작 다큐멘터리는 기록물로서의 가치 못지않게 그 자체로 한 편의 영화적 완성미를 기대할 수도 있습니다.”

“한국영화는 할리우드 영화보다 제작과정이 그리 재미있지 않습니다. 과연 통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꿈의 예술이라고 불리는 영화의 제작 이면을 들여다보는 것은 판자로 지은 TV드라마 세트를 확인하는 것처럼 허망한 일이 될지도 모른다.

특히 충무로처럼 열악한 환경이라면 영화 그 자체로 만족해야 할지도 몰랐다.

부록을 채울 만한 콘텐츠가 사실상 부실하기 그지없기에.


“WaW처럼 몇 년 전부터 준비하지 않았다면 말이죠. 다른 곳에서 출시하는 DVD타이틀의 경우 서플먼트에 수록되는 감독이나 배우의 회고가 영화 제작단계부터 영화 잡지 등을 통해 익히 들어왔던 예상 가능한 이야기들로 채워져 흥미를 유발시키기보다 사적인 회고 수준을 넘지 못할 겁니다. 구체적인 해석이나 정보보다 일반인의 호기심에 대한 맛 뵈기 정도에 머물겠죠. 하지만 WaW는 다르지 않습니까?”


초창기 <하얀전쟁> 제작 시기부터 코멘터리부터 제작과정 다큐멘터리까지 DVD 부록을 위한 콘텐츠를 마련해 두었다.

<은행나무 침대>의 경우는 컴퓨터 그래픽이나 분장, 의상 등에 대해 비교적 상세하게 언급하고, 그 부분이 실제 영화에서 어떻게 나타나는 지까지 보여준다.

<퇴마기록>부터는 조금 더 풍부한 서플먼트가 담길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문팀을 구성해 DVD 타이틀 기획부터 홍보마케팅까지 전 과정에 관여할 예정이니까.


“영화촬영이라고 하는 제작공정이 관객들에게 스며들 필요가 있어요. 곧 한국영화는 야구, 축구 같은 스포츠뿐만 아니라, 놀이공원, 비디오 게임과도 경쟁해야 합니다. DVD 타이틀에 담기는 여러 가지 부록들로 배우뿐만 아니라 감독도 스타가 되고 더 나아가 메인 스태프 역시 관객들에게 널리 알려져야 합니다. 그래서 상업영화가 일반인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해야 하는 겁니다. 관객들이 돈 주고 영화를 볼 가치를 느끼도록 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럼 본격적으로 타이틀 기획팀 구성과 시설 확충을 해도 될까요?”

“그렇게 하세요. 2000년까지 준비하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필름 복원이나 디지털 색보정에 관해서는 미국의 GMG Lab의 기술 도움을 받아야 할 겁니다. 엔지니어 파트는 가능한 영어가 되는 직원을 채용하고. 그 외 다른 부분은 우 사장이 알아서 하세요.”

“네!”


영화는 항상 새로운 매체의 등장으로 위협을 받아왔다.

텔레비전, 비디오, DVD, 인터넷 스트리밍.

영화산업은 계속해서 이를 타개할 방법들을 찾아냈다.

일반 제조업과는 달리 엔터테인먼트는 대박 아니면 쪽박인 ‘고위험 고수익’ 사업이라는 인식이 많다.

시스템화를 통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도 얼마든지 ‘리스크’ 관리를 통해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

한 편의 영화가 흥행할지를 점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접근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Tentpole movie’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과거에는 ‘감’의 산업이었다.

점차 ‘확률’ 비즈니스로 변하고 있다.

류지호는 그 확률 비즈니스에서 매우 높은 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 ❉ ✻


한국에서 G.O.M 강남점에서 영화를 가장 많이 본 사람이 누굴까.

당연히 WaW 픽처스와 G.O.M Cinemas 직원들이다.

그 다음이 연예부 기자들이다.

WaW 픽처스 외에도 한국의 어지간한 영화사들은 시간만 맞으면 기자시사만큼은 G.O.M 강남점에서 하려고 했다.

특히 THX 인증을 유지하고 있는 1관은 새벽시간에 주로 시사회 일정이 빡빡하게 잡혀 있다.

미국 극장에 대한 오랜 콤플렉스를 불식시키진 못했지만, G.O.M Cinemas의 세련된 인테리어와 영사 시스템, 결정적으로 화질과 음향에서 영화를 볼 맛나게 하기에 충분했다.

더 이상 한국영화는 극장에서 찬밥 신세가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WaW 픽처스가 배급하는 영화가 그렇다.

초기에는 한국영화가 주로 가장 작은 스크린에서 상영되었다.

이제는 예술영화, 작가주의영화, 제3세계 영화들에게 가장 작은 관을 양보했다.

그로 인해 98석의 8관은 PC통신 영화 동호회의 사랑방 노릇을 하고 있다.

할리우드 영화 전용관이었던 1관에서 <비트>, <접속> 같은 한국영화도 상영된다.

영화의 기술적 완성도면에서 THX를 온전히 충족시키지는 못하는 것이 아쉽지만.


“대사가 웅얼거리게 들리는 건 정말 지긋지긋하네.”


류지호의 짜증에 수행하고 있던 오동석과 강남점 매니저가 움찔거렸다.

극장에서도 어쩔 도리가 없다.

배급사에서 넘어오는 프린트의 사운드가 그런 걸 어쩌랴.


“우리 극장에는 직배영화는 안 들어오죠?”

“소닉-콜롬비아스, PARKs 영화는 받아주고 있습니다.”

“부율은 어떻게 하고.”

“아쉬운 건 걔들이죠.”


영화제작가협회를 비롯한 영화계에서는 꾸준히 수익분배율 조정을 요구해오고 있다.

통상 영화사와 상영관의 수익분배율은 관행적으로 5:5를 유지해왔지만, 1980년대 미국 할리우드 영화의 대유행으로 상영관 사이에 외화 유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외국영화만 6:4의 수익분배율을 적용받아 왔다.

이런 불공정한 관행을 시정해야했다.

그런데 극장이나 직배사들이나 요지부동이다.

안타깝게도 직배사가 갑이다.

할리우드 흥행작 라인업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으니까.

G.O.M Cinemas에게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이다.


“계속 5:5를 유지하도록 합시다. 솔직히 멀티플렉스는 매표수입보다 그 외의 것들로 돈 버는 거잖아요.”

“.....예.”

“북미 극장처럼 부율을 유동적으로 하는 것은 시기상조겠죠?”

“아무래도 스크린을 500개 이상 확보하지 않는 한 어려울 것 같습니다.”

“10년 후에나 가능하겠네.”

“예정대로 지점을 확장한다면 그렇게 될 겁니다.”


북미의 경우 배급사와 극장사이에 정해진 분배율이 없다.

개별 영화별로 배급사와 극장이 수익분배의 비율을 그때그때 정한다.

평균적으로 배급사가 55%를 가져가고 극장이 45%정도를 가져간다.

흥행 성공이 예상되는 블록버스터의 경우, 이 비율이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

5월에 개봉한 <쥬라기 공원2 : 잃어버린 세계>의 경우 유니벌스가 티켓 수입의 60% 이상을 가져갔다.

이 비율이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통상 영화가 개봉 3주차까지 배급사가 티켓 수익을 훨씬 많이 가져간다.

그 시기까지 극장이 늘거나 빠지기 때문이다.

이후부터는 서서히 수익분배율이 극장이 높아지는 쪽으로 조정 된다.

그래서 영화 개봉할 때에 맞춰서 큰돈을 들여 홍보에 최대의 노력을 기울인다.

개봉하는 첫 주에 최대한 많은 수익이 나도록하기 위해서.

북미에 엄청난 팬덤을 가진 <스타워즈> 시리즈의 경우처럼 일단 개봉하면 절대적인 수입이 보장되는 영화는 수익분배율에서 배급사에게 유리하게 조정되는 것이 관례다.

보통 영화를 얼마동안 극장에 걸 것인가 하는 것은 개봉하기 전에 조정이 된다.

통상적으로는 3주가 기본이다.

흥행이 보장되는 영화에 있어서는 배급사가 주도권을 쥐고 기본 4주를 요구하게 된다.

극장은 대체로 받아들이는 편이다.

그렇다면 왜 북미 극장들은 메이저 배급사에게 수익배분율을 양보할까.

여기에도 다 이유가 있다.


“팝콘은 세 종류죠?”

“거래처에 계속해서 종류를 늘려줄 것을 요청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사람 입맛에 맞는 걸 찾는 게 그리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미국의 멀티플렉스처럼 10가지가 넘는 종류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5가지는 되면 좋겠는데.....”

“거래처에서 열심히 개발 중이니 좋은 소식이 있을 겁니다.”


남는 것 없이 판다.

사람들이 장사꾼의 말 가운데 뻔히 거짓말인줄 알면서도 모르는 척 넘어가는 말이다.

극장들은 티켓 수입보다 더 확실한 수입원을 가지고 있다.

바로 극장의 구내매점에서 파는 팝콘과 청량음료, 핫도그 같은 간식거리이다.


“마진율이 어떻게 되지요?”

“간식거리는 70~80%대, 음료는 85~90%라고 보시면 됩니다.”


류지호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전체 수익에서 몇 퍼센트를 차지합니까?”

“20%선입니다.”

“아직 관객들이 관람시 주전부리를 많이 하지 않나 보네.”

“오징어나 팝콘 냄새가 관람에 방해가 된다고 항의하는 고객도 있습니다.”

“아이비리그 경제학자가 영화관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는 티켓값을 내리고 팝콘값을 올려야 한다는 연구결과도 내놓았는데.... 딜레마네.”


북미 극장들이 구내매점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이 극장 전체 매출의 약 35%정도다. 그렇기 때문에 배급사에게 좀 더 많은 티켓 수입을 배분하더라도 일단 그 영화로 인해 극장에 더 많은 사람이 몰리면 포기한 티켓값보다 훨씬 높은 마진율을 가진 매점 매출로 수익을 거두게 되는 것이다.

극장 입장에서는 괜히 메이저 배급사와 기싸움 할 필요가 없다.

그 때문에 극장은 외부음식 반입금지를 기를 쓰고 유지하려고 한다.

미국에서는 팝콘과 음료 파는 것을 별도로 묶어서 '팝콘 사업'이라고 부른다.

영화 관객 숫자는 밝혀도 팝콘 매출은 절대로 공개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광고매출은 어때요?”

“강남점을 제외하고 여전히 단가는 저렴합니다.”


멀티플렉스 사업의 핵심은 매점도 아니고 영화 흥행도 아니다.

바로 광고다.

광고수익은 특별히 원가가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영업비용도 없고 매출이 거의 그대로 순이익이 되니까.


“제휴영화사 사정은 좀 나아지고 있어요?”

“제가 유림에 있을 때만 해도, 서울에서 20만 들면 제작사가 많이 벌어봐야 2~3억이었는데, 지금은 최소 5억은 법니다. 거기에 비디오 판권료도 많이 올랐고, TV판권, 케이블 채널 판권까지 하면 흥행에 성공만 하면 10억은 기본으로 벌어갈 수 있게 됐습니다.”

“아직도 그 모양 그 꼴이야?”


류지호는 다시 한 번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다고 느꼈다.

한국 영화는 개봉하고 정산이 이루어지기 까지 최소 6개월 최대 2년까지도 걸린다.

영화 한편 근근이 제작하는 영화사는 버티기가 쉽지 않다.

아시아권에서는 북미의 박스오피스 성적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박스오피스 수입 자체가 해당 영화의 수익성을 보여주는 건 아니다.

할리우드 영화의 미국을 제외한 세계 시장의 수입의 경우, 보통 할리우드 배급사가 미국 내보다 더 작은 파이를 가져가기 때문에 오히려 박스오피스 성적은 나중에 홈 엔터테인먼트의 수익을 예측할 수 있는 지표로 작용하는 측면이 더 컸다.

항공사 판권, 방송 판권, 케이블 채널 판권료 등에 영향을 미치면서 관련 상품의 판매를 예측해 볼 수 있는 지표가 바로 박스오피스 성적이다.

즉, 박스오피스 성적이 좋았던 영화들은 나중에 홈엔터테인먼트나 관련 상품의 판매도 호조를 보일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에 이에 맞춰 부가시장 전략을 펼치게 된다.

그에 반해 한국의 부가시장에서의 수익은 거의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오로지 극장 매표수입에 의존하는 형편이다.

미래에도 개선되지 않는 한국영화산업의 커다란 문제다.


“우리는 언제 쯤 영화 한편으로 원소스멀티유즈가 될까?”

“한 500만은 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PPL 말고. 라이선스 로열티 수익.”

“글쎄.... 한 800만....?”


할리우드는 영화 한편이 초대박을 치면 부가시장 외에 소설, 코믹북, TV드라마, 음반, 게임, 장난감, 의류, 인테리어 소품 등 범위가 확장된다.

심지어 영화에 쓰였던 소품을 경매에 내놓기도 한다.

한정판 포스터가 거래되는 시장도 따로 존재한다.

특히 할로윈을 앞두고 빅 식스의 라이선스 로열티가 갑자기 늘어나기도 한다.

각종 어린이용 캐릭터 상품들이 많이 팔려나가기 때문이다.


“800만이라....”


류지호가 한국영화 시장규모를 떠올리며, 갈 길이 멀었음을 절감했다.

많은 것을 바꾸었고, 또 바꿔나가고 있다.

혼자서 산업 전체를 끌고 가는 것은 쉽지 않다.


작가의말

잡설 : 영화관 티켓값이 무섭습니다. 한 번 올린 티켓값은 당연히 내릴 리가 없겠죠. 아마 앞으로는 극장은 잘 안 가게 될 것 같습니다. 어중간한 블록버스터까지도 OTT로 볼 것 같네요.

활기찬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Mr. 할리우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34 우리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6 22.11.14 4,371 143 26쪽
333 Big Shot. (5) +5 22.11.12 4,361 142 22쪽
332 Big Shot. (4) +6 22.11.12 4,143 134 26쪽
331 Big Shot. (3) +7 22.11.11 4,409 139 25쪽
330 Big Shot. (2) +16 22.11.10 4,408 143 23쪽
» Big Shot. (1) +10 22.11.09 4,465 145 23쪽
328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3) +9 22.11.08 4,286 141 22쪽
327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2) +2 22.11.08 4,071 133 22쪽
326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1) +9 22.11.07 4,358 138 21쪽
325 사회생활은 인맥이야...! +9 22.11.05 4,491 138 26쪽
324 선택과 집중. (4) +9 22.11.04 4,469 138 22쪽
323 선택과 집중. (3) +10 22.11.03 4,366 148 22쪽
322 선택과 집중. (2) +7 22.11.02 4,728 148 24쪽
321 선택과 집중. (1) +5 22.11.01 4,597 148 24쪽
320 아무 것도 안 해서, 안 돌아가는 일도 있더라. +5 22.10.31 4,578 144 30쪽
319 아무 것도 안 해도 잘만 돌아간다. (3) +10 22.10.29 4,569 146 27쪽
318 아무 것도 안 해도 잘만 돌아간다. (2) +8 22.10.29 4,304 131 22쪽
317 아무 것도 안 해도 잘만 돌아간다. (1) +9 22.10.28 4,564 153 27쪽
316 Celebrity. (2) +8 22.10.27 4,529 148 28쪽
315 Celebrity. (1) +10 22.10.26 4,605 144 27쪽
314 지적인 액션영화는 망할 걸? +4 22.10.25 4,639 155 26쪽
313 엄마는 여한이 없어..... +11 22.10.24 4,572 144 29쪽
312 세계 최초의 D-Cinema! +5 22.10.22 4,513 154 25쪽
311 환경이 아닌 인식의 문제. (4) +4 22.10.21 4,457 143 24쪽
310 환경이 아닌 인식의 문제. (3) +11 22.10.20 4,372 160 22쪽
309 환경이 아닌 인식의 문제. (2) +8 22.10.19 4,470 132 22쪽
308 환경이 아닌 인식의 문제. (1) +6 22.10.18 4,568 155 22쪽
307 괴짜 같은 녀석..... +7 22.10.17 4,512 150 25쪽
306 영화 기술사의 한 획! (5) +13 22.10.15 4,534 162 20쪽
305 영화 기술사의 한 획! (4) +5 22.10.15 4,270 129 2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