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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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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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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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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0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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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선택과 집중. (4)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할리우드 지인들이 류지호에게 충고하곤 한다.


“영화에 낭만을 담아봐. 그래야 돈이 되잖아.”


류지호도 안다.

부정적인 문제의 제기보다 긍정적인 이야기를 관객들이 더 찾는다는 걸.

한편으로는 긍정적인 이야기가 위선적이라고 생각했다.

할리우드 영화가 가족으로 시작해서 가족으로 끝나는 것은 모든 사회적 관계의 기본이 가족이기 때문이다.

인간 존재의 가장 기본적 조건이라는 측면에서 모든 영화는 가족 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다만 할리우드 영화가 유독 ‘가족주의‘과 관련한 스토리텔링이 많은 것은 미국 사회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보수적이기 때문이다.

예전의 미국인들은 가족중심의 삶과 종교 단 둘만으로 행복했었다.

자본주의가 극도로 발전하고, 가족은 해체되고 있으며, 대안가족들이 등장하고 있는 시대에서.

미국적 가치라고 믿어왔던 ‘가족주의’가 위기를 맞이했다.

그래서 더더욱 ‘가족주의‘를 찾게 된다.


- 현대 예술은 관습에 문제를 제기하는 능력이며, 부당한 합의에 반대하는 능력이고, 새로운 가치관을 받아들이는 능력을 지닌 반문화적 힘이다.


그렇게 미셸 푸코가 말했다.

예술의 역할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정치의 역할은 답을 찾는 것이고.

그러니 ‘가족주의‘를 찬양만 할 것이 아니라.

또 모든 문제를 가족주의가 허물어졌기 때문이라고 탓할 것이 아니라.

왜 그렇게 되었는지 원인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그 원인을 대중들이 공감할 수 있게 쉽게 풀어내면서 철학을 담는 것이 예술의 영역이다.

현대 예술가들은 끊임없이 탐욕을 멈추고 성장 중독에서 벗어나라는 충고를 하고 있다.

그 같은 이야기가 귀에 들리지 않는 것은 인간의 이기심이고, 그 이기심을 재생산하는 체제의 기초에 가족(이기)주의가 있다.

과거 가족주의는 민족이라는 유사가족주의 개념으로 몸집을 키우기도 했다.

그로인해 가족주의가 전쟁과 살육의 연료가 되기도 했다.

전체주의, 제국주의처럼.

심지어 인종갈등, 부의 독점, 양극화 같은 사회적 문제의 근저에 가족주의 이데올로기가 자리 잡고 있다.

그 같은 주장이 근본주의적 주장처럼 들리긴 하지만.

그럼에도 미국영화가 지나치게 ‘가족’을 강조하는 것은 자기변명 같은 작위적인 냄새가 풍긴다는 사실이다.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에는 가족주의 메시지가 늘 분명하게 들어가 있다.

물리적인 위기상황에 처했거나 또는 심정적으로나 뿔뿔이 흩어졌던 가족 구성원들이 재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한 마음 한 뜻을 이루며 진정한 가족을 이룬다는 내용이다.

특히 스티븐 아들러 감독의 전매특허다.

이런 종류의 가족주의는 당연히 보수적이다.

가족이 바로 서야지만 국가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이다.

재난이라는 스펙터클에 정신을 잃은 관객들에게 은연중에 전달된다.

미국은 내부의 힘을 결속하기 위해 할리우드를 활용해 왔다.

가족주의는 국가적인 단합이 필요로 할 때 가장 큰 힘을 얻는다.

류지호는 대중문화예술가다.

지금 당장 세상을 이타주의로 가득 채울 수는 없다.

그러나 덜 찬미하고 더 경계하도록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가능하다.

‘가족만세’를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미국영화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과는 별개로 류지호는 가족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긴 하지만.

<불길한 청춘>에 등장하는 주인공 청소년들은 다양한 사연을 가진 가족의 구성원들이다.

전남편으로부터 생활비 한 푼 지원 못 받는 편모가정의 자녀라든가, 보육원 출신이라든가, 동남아시아계 혼혈 다문화 가정 자녀라든가, 부모로부터 방치되었다든가, 외환위기로 인해 가정이 해체되었거나 그럴 위기에 처했다든가, 오로지 돈에만 관심이 있는 부모 밑에서 자라고 있다든가.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가족 관계에 있어 절름발이다.

각기 다른 개성을 뽐내면서 내면에는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그런 주인공들에게 암투장은 놀이터이자 해방구다.

그곳에서 피 튀기는 대결을 통해 각자가 가진 문제를 극복하려고 한다.

그러나 암투장 대결로 최고를 가린다는 치기어린 생각만큼이나 행동도 서툴다.

그래서 어른들에게 실컷 이용만 당하면서 망가진다.

<불길한 청춘>의 주요 배경은 인천의 변두리 락카페다.

인천은 과거부터 거친 뱃사람들이 들락거렸던 항구도시다.

인천의 구 유흥가라면 왠지 고등학교 주먹꾼들이 모여 비밀스러운 싸움판을 벌였을 것 같다.

개항기 이전부터 부두하역노동자들을 괴롭혔던 폭력배의 역사라든가.

높은 범죄율로 인해 ‘마계인천’이란 오명을 썼던 것이나.

그 같은 영화적 상상이 그럴 듯해 보인다.

사실 90년대 들어서면서 당국의 유흥업소 탄압이 강화됐다.

게다가 세금까지 높게 책정됐다.

그 여파로 중소형 나이트클럽이 문을 닫게 되었다.

인천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클럽 하데스(Hades)의 사장은 높은 세율을 피하기 위해, 그리고 유흥업소에 끼어드는 조폭 등의 이권개입을 피하기 위해, 또 경찰의 지속적인 개입과 간섭을 피하기 위해, 일반음식점으로 분류가 되는 카페를 차려 유사 나이트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국내에 생소했던 갱스터 랩이나 하우스 장르를 틀어줘 청소년들에게 주로 인기가 많다.

바로 락카페란 이름의 클럽이다.

락카페 하데스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암투장이란 비밀 격투모임이 행해진다.

영업이 종료되면 시내의 내로라하는 학생주먹들이 모여 대결을 통해 서열을 정한다.

어찌 보면 최초로 고등학교 폭력서클들이 운영하는 암투장이라고 할 수 있다.

어둠만 있는 이 세계에 모든 걸 집어삼킬 짙은 먹구름까지 몰려온다.

일부 폭력서클 멤버에게 조폭들이 마수를 뻗치기 시작한 것.


[식구가 되는 거야. 같이 밥 먹는. ]

[싫어요.]

[가좆이 아니라 가족이 되는 거라니까. 이 좆같은 새끼야....!]

[건달 안 합니다.]

[네 꼬라지 바라~ 나이 처먹고 뭐 할 건데?]

[어른 하겠죠.]


그들만의 놀이터이자 서열정리의 시합장이었던 암투장이다.

어른들의 탐욕이 끼어들게 된다.

순수(?)했던 폭력서클의 모임은 타락하고 망가진다.


[영글지도 않은 어린 애들 푸닥거리로 돈벌이가 되겠어?]

[아따, 도박에 푸닥거리가 뭐시 중한디. 돈 넣고 돈 묵어불고. 그거시 장땡 아니여?]

[프로도 아니고 아마추어 개싸움에 누가 큰돈을 걸어...?]

[가난한 것들이나 드라마니 명승부니 찾는 거여. 돈 쪼까 있는 사람들은 막장을 좋아한당게. 아주 거시기.... 잉, 야만적인 걸로다가!]


클럽 하데스는 온갖 더러움으로 얼룩지게 된다.

폭력서클의 암투장은 어른들의 내기도박, 승부조작, 개싸움판으로 전락하고 만다.

심지어 서클멤버들은 유한마담의 성노리개가 되기도 한다.

반칙으로 심각한 부상을 당한 폭력서클 멤버는 제때 병원으로 후송되지 못한 채 방치된다.

끝내 식물인간 신세가 되기도 한다.

점차 폭력서클 멤버들은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에 빠져든다.

재빨리 조폭의 편에 서서 똘마니를 자처하는 폭력서클 멤버도 나타나기 시작한다.


[우리끼리 잘 놀고 있는데, 왜 어른들이 끼어드는 겁니까?]

[건전하게 놀고 싶었으면 콜라텍에서 놀았어야지 존만아....!]

[기성 사회의 여가 문화에서 주류만 뺀다고 해서 청소년 문화가 된답니까?]

[청소년 문화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언제부터 폭력서클이 청소년 문화였는데?]

[......]

[까불지 말고, 니들은 개처럼 싸워.]

[......]

[내가 주는 돈으로 사람답게 살아 보든가. 이 개가튼 새끼덜아~ 킥킥.]


폭력서클의 맏형이었던 락카페 사장은 이전에 푼돈을 받고 암투장을 제공했다.

조폭과 도박꾼들이 돈을 풀기 시작하자 욕심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결국 자신의 탐욕 때문에 조폭에게 가게를 빼앗긴 채 쫓겨난다.

벼랑 끝에 몰린 주인공들은 반란을 꿈꾼다. 고등학생 폭력서클이 조직폭력배를 무력으로 이길 수 없는 노릇.

주인공은 마지막 방법을 쓸 수밖에 없다.

경찰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게 된다.

공권력에 의해 암투장이 폐쇄되는 것처럼 보였으나....

얼마나 후 조폭들이 다시 락카페에서 암투장을 재개한다.


[나이트처럼 유흥업소 등록하고 영업하면 되지 않아?]

[김형사, 뭘 몰라도 한참을 모르네. 그러면 종업원들 다 등록시키고 세율적용 받고 때마다 벌어지는 사회정화 캠페인에 된서리 맞고. 별의별 태클이 다 들어오는데 버터날 수 있겠어?]

[걸리는 놈만 병신이요.]

[상부상조 해야지. 우리 밥 자주 먹었잖아. 식구 아냐 식구.]

[동네방네 소문내면서 영업하지 말고, 해먹으려면 조용히 해먹읍시다.]


형사와 조폭 두목이 영화 속에서 나누는 대화다.

다 한통속이다.

사회가 급격히 변화하던 시대의 단편이기도 하고.

주인공이 조폭의 마수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다.

정말 최후의 수단이 남아 있다.

주인공의 선택은 클럽 하데스를 불태우는 것.

클럽 하데스가 사라지면 조폭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순진한 생각이다.

마침내 락카페에 불을 지르고 달아나는 주인공들의 앞을 경찰들이 막아서고.

주인공의 스톱 모션에서 내레이션이 깔린다.


[영원히 잠들 것 같지 않은 내 안의 폭풍도 어른이 되면 언젠가는 사라질 거다. 어른이 되는 게 싫다. 솔직히 말해 어른이 되는 게 두렵다. 근데 빨리 어른이 되보고 싶어졌다. 왜냐고? 어른이 돼서 맞이하게 되는 사회가 진짜 X같은지 확인해 보고 싶으니까.]


주인공이 바이크를 몰고 도로를 막아선 경찰차들을 향해 돌진한다.

그들의 뒤로는 활활 타오르는 클럽 하데스가 보이고.

하늘 높이 바이크가 날아오르면서....

힘차게 날아오른 바이크에 올라탄 주인공의 얼굴 너머로 펼쳐진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

그나마 비극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걸 암시해줄 뿐.

영화 <델마와 루이스>의 엔딩을 연상시킨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아메리칸 뉴웨이브 시네마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나 <내일을 향해 쏴라>까지도 떠올릴 수 있다.

열린 결말이다.

주인공의 행동 즉 어른들(기성세대)에 대한 반항(저항)은 끝맺어지지 않는다.

단지 지연될 뿐이다.

주인공의 반항과 저항이 옳고 그르냐는 문제를 관객에게 강요하지 않으면서 유보하는 방식이다.

송진한 작가는 류지호의 초고를 읽고.


“기성세대와 사회가 말썽꾸러기의 정서를 포용하지 못한다는 것을 극명하게 암시한 <400번의 구타> 엔딩과 닮아있는데?”


라고 감상을 말한 적이 있다.

류지호는 부정하지 못했다.

오마주는 아니지만,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으니까.

게다가 청춘은 현재진행형이란 메타포가 있다.

청춘의 방황을 그리는 많은 영화는 대체로 열린 결말을 선호하기도 하고.

암튼 거창하게 영화를 규정한다면.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세상과 그 세상을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가 만나 충돌을 일으키고 상처만 남겼지만 여전히 세상은 살만한 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영화라고 할 수 있죠.”


원래 상업 영화를 설명함에 있어서 혀가 길면 좋지 않다.

류지호가 복잡하게 설명한 것만 봐도 풍자의 범벅이란 예상을 해볼 수 있다.

영화 속에서 묘사하는 폭력은 주인공들이 넘어야 할 시련이다.

동시에 성장의 과정이 되기도 한다.


[X같지? 니들 나이 땐 원래 뭐든 다 X같은 거야. 사회 나와 봐라~ 니들 나이 때 X같아 보이던 것 그 이상으로 훨씬 더 X같을걸.]


절도, 폭력, 마약(본드), 섹스 등 청소년 비행의 끝을 보여주는 영화다.

때리고 부수고 달리고 피 터지는 하드보일드 스타일리쉬 학원 액션물이다.

한편으로 본보기가 되어야 할 어른들은 과연 자격이 있는가를 질문하게 되는 영화다.

겉으로는 ‘상남’ ‘크로우즈 제로’ ‘워스트’ 같은 학원폭력물이다.

주요 공간만 락카페 하데스일 뿐이다.

폭력을 미화한다는 말을 들 수도 있다.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긴 했다.

결국 주인공이 학교로 돌아가는 결정을 한다거나, 부모와 화해를 한다거나, 우정에 관한 약간의 오글거리는 신파도 들어가 있다.


[후회 없습니다.]

[뭐에?]

[청춘에... 후회 없습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보는 전형적인 킬링타임 액션영화보다는 조금 진지하고.

<400번의 구타> 같은 영화와 비교하면 껍데기가 무척 화려한.

B Movie 타입의 영화다.

비록 절망의 리얼리티가 영화에 담겨있다고 하더라도.

영화 엔딩에서 결국 너희에게 미래를 걸어 보겠노라는 부탁도 담겨있기도 하고.


“학원 폭력물이어도 좋고, 이 사회의 짙은 그림자가 담겼다는 평가를 받아도 좋고.”


류지호는 기본적으로 한국의 평론가들에 대한 불신이 있었다.


“작가와 감독이 제 아무리 고급스러운 풍자와 은유를 해도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면 저급이 되어버리기 일쑤지.”

“시간이 흘러 재평가를 받게 되면 그때 가서야 슬쩍 숟가락을 얹지요.”


류지호가 최초 설정한 인물 하나하나에는 <넘버 쓰리> 이상의 풍자와 은유가 담겨 있었다.

어른들이 청소년들에게 제시하는 미래란 결국 돈과 부패로 이뤄낸 부유한 쾌락일 뿐.

그런 사회에서 살고 있는 청춘의 미래는 불길할 수밖에 없다.

결국 영화 엔딩에서 기존 관습, 사회 질서에 저항하는 듯한 모습을 암시하지만.


“코미디를 많이 넣긴 했는데, 박 선배가 영화를 너무 어둡게 찍으시는 것 같아.”


송진한이 우려를 드러냈다.


“정서적으로만 그렇고 톤 앤 매너는 블링블링 할 걸요.”

"<비트> 아류라는 말을 듣는 것도 짜증날 것 같고.....“

“결이 많이 다르죠.”

“일반 대중들은 깊은 인상을 받은 영화와 비교하게 되어 있어.”

“일본폭력 만화에 영향을 받은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걸요?”

“일본만화?”

“<크로우즈 제로>나 <워스트> 같은 만화요.”

“내가 일본만화를 안 봐서 잘 몰라”

“혹시 한국만화 <짱>은 아세요?”

“그것도 학원 폭력물이야?”

“한국 만화인데, 코믹챔프라는 만화잡지에서 작년부터 연재를 하고 있어요. 물론 <크로우즈 제로>는 90년인가 91년부터 연재를 시작해 지금도 일본에서는 계속 나오고 있는 만화고. 아마 비평 쪽은 몰라도 관객들 상당수는 일본 만화를 떠올리기 쉬워요.”


비밀 격투클럽이라는 암투장은 이 시기에는 조금 앞선 설정이다.

이전 삶에서 잠시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어쨌든 학원 폭력물에는 묘한 판타지를 내포하고 있다.

현실에서는 그저 개싸움에 화려함이라고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양아치들의 드잡이이지만, 그걸 추억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왜곡되고 과장되어진다는 사실이다.

영화에서 폭력은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폭력은 어떤 명분을 가져와도 옳지 못하다.

그러나 당사자가 아닌 구경꾼의 입장이라면 폭력만큼 짜릿한 쾌감을 선사하는 훔쳐보기도 없다.


“사실 <불길한 청춘>의 주요 관객층은 청소년이 아니죠.”

“대학생과 20~30대 연령의 남성이지.”

“그들은 해적판으로 일본 만화를 봤기 때문에 학원폭력물이 낯설지 않아요. 하지만 그림으로 보던 잔인하고 잔혹함은 독자에게 큰 감흥이 없어요. 실제 그런 폭력을 경험해서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영상으로 보여주면 폭력이 가진 그 잔혹성을 더욱 크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불길한 청춘>에서는 폭력의 반대급부를 적나라하게 표현하려고 했고.”

“적당히 신파도 들어가 있고요.”


락카페 하데스에서 벌어지는 내기 게임에서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서클 멤버를 할머니가 찾아온다.

할머니가 입은 조끼 등판에는 ‘예수 믿고 천국 갑시다‘란 문구가 적혀있다.

손주를 위해 간절히 기도한다.

할머니가 믿는 종교는 가짜일지 모른다.

그러나 기도만큼은 진심이다.

잘못된 종교에 빠진 할머니의 잘못일까.

그런 할머니의 약점을 잡고 이용해 먹는 종교인의 탈을 쓴 탐욕자들이 잘못된 것일까.


[할머니... 왜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 거야? 왜 아무 감각이 없지?]

[오~ 주여. 흑흑.]

[....할머니 미안해. 울지 마. 내가 잘못했어. 앞으로는 할머니 말 잘을 게. 내 다리... 걷게만 해 줘. 제발....!]


그 같은 광경을 지켜보는 주인공의 감정은 분노, 후회, 자책 등 복잡하다.

이 장면 뒤로 주인공이 반란을 결심하는 모습이 이어진다.

조폭들과 한바탕 큰 싸움을 벌이게 된다.


“하이틴 무비도 아니고, 청춘영화라고 하기도 힘들고. 정의하기 힘든 영화가 되겠어.”

“그냥 청춘액션느와르라고 하죠 뭐.”

“청춘느와르액션이라고 하면 안 될까?”


90년대 중반까지 하이틴영화는 꽉 막힌 입시지옥에 대한 항변이 주를 이뤘다.

사회성 짙은 영화도 간간이 만들어졌다.

그러다 한국 극장가의 단골 메뉴였던 홍콩 느와르의 비장미와 접목한 <비트>가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내년 WaW 픽처스가 투자·배급하는 <여고괴담>이 공포 장르와 결합해서 하이틴 영화의 또 다른 변형을 보여주게 된다.


“<불길한 청춘>은 사회성, 장르를 비튼 점, 방황하는 청춘의 상실감과 분노를 강렬한 영상으로 담아낸다는 점에서 90년대 청춘영화의 완결판이 될 것 같아. 영화의 흥행 여부와 상관없이.”

“글쎄요.”


2000년대로 넘어가면 충무로의 청춘영화 정사가 ‘명랑’으로 회귀하는 것을 류지호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좋게 보면 ‘얄개’ 시리즈로의 회귀 혹은 영원한 청춘의 정서를 회복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 말은 해피엔딩 일색의 전형적인 성장물로 돌아간다는 의미다.

이는 고달픈 시대에서 희망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때마침 그 시기 즈음 IMF체제에서 벗어나게 되는 건 우연의 일치일까....’


류지호와 송진한이 세트장 앞마당에 나란히 앉아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는 산을 바라봤다.

두 사람 사이에서 대화가 끊어졌다.

잠시 후 세트장 방향에서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잠시 쉴 모양이군.”


배우와 감독이 세트장에서 빠져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류지호가 자리를 털고 일어서서 그들을 맞이했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20대 초반 어린 축에 드는 출연진들이 허리를 접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배우들 입장에서 류지호는 슈퍼스타 그 이상이다.

할리우드 현역 영화감독인 것도 대단한데, 영 앤 리치의 표상이다.

배가 불룩하게 나온 중년의 아저씨도 아니고, 아직 서른도 안 된 나이다.

그들의 눈에는 캐주얼 평상복을 입은 모습까지 귀티가 줄줄 흘러넘쳐 보였다.


“어떡해! 나 몰라~”

“어머나!”

“류지호 감독님이야!”


여자 출연자들과 스태프들이 비명을 지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마치 평소 좋아하던 아이돌 스타를 만나기라도 한 것처럼.


“감독님, 사인 좀 해주세요!”

“일단 간식부터 먹어요. 사인은 천천히 해줄 테니까.”


10대~20대 후반의 남녀 출연진들이 우르르 간식차로 달려갔다.

배우와 스태프들이 류지호가 대절한 푸드트럭에서 떡볶이, 어묵, 각종 튀김 등 간식을 먹으며 잠시 휴식 시간을 즐겼다.

처음에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다니는 대학생들의 모습을 담는 TV드라마에 출연하게 될 배우들을 모두 출연시킬 생각을 했었다.

드라마가 제작되기까지 2년의 시간적 공백이 존재했다.

자칫하면 그들의 연기 인생이 심각하게 꼬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참았다.

대신 류지호가 이전 삶에서 조감독을 할 때 인상 깊었던 친구들을 떠올렸다.

실력이 있었지만 크게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졌던 배우들을 찾아내서 박은상 감독에게 추천했다.

대부분 오디션에 합격해 배역을 따냈다.


“....다들 기특하네.”


제작부가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전체회식을 공지했다.

오늘은 사전공지가 없었다.

대체로 제작자가 촬영현장에 나타난다는 것은 회식을 알려준다.


“충무로 스태프 기술이 몰라보게 발전했어.”


회식자리에서 박은상감독이 류지호에게 한 말이다.

그럴 만도 했다.

박은상 감독이 마지막으로 충무로를 경험한 것이 80년대 말이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영화에 돈 좀 들인다 싶으면 호주나 일본 등 시스템이 발달된 나라에 감독이 직접 가서 포스트프로덕션을 했다.

이제는 충무로의 기술만으로 국내에서도 원활하게 작업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다.

대표적인 분야가 특수분장 및 특수효과다.

이 시기부터다.

꾸준히 노하우를 축적한 스태프들이 미래 한국영화의 기술적인 완성도를 끌어올린 주역이자, 현대 한국영화의 ‘1세대 제작진’이라는 대접을 받게 된 것이.

그 가운데 정말 특출 나거나, 가진바 역량에 비해 운이 따라주지 않았던 이들을 류지호가 지원할 생각이다.

모든 충무로 사람을 류지호가 밀어주고 키워줄 수는 없는 노릇.

선택과 집중은 필수다.

‘당연히 나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 일 순위가 되겠지만.’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다.

게다가 잘나가는 스태프까지 도울 필요는 없다.

충무로에서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들 중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이들이 더러 있다.

안타깝지만 그 재능을 제대로 꽃피워보지도 못하고 다른 직업을 찾아 가는 이들이 꽤나 많다.

장인 대접을 받는 이들은 대체로 끝까지 버티고 버틴 이들이다.

재능보다는 인내가 실력을 키운 셈이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것으로 보였던 이들 가운데는 지독한 고집쟁이도, 심각하게 사교성이 부족한 인물도, 독불장군도 있었다.

류지호가 지원한다고 해서 모두가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다만 실력자들이 많아지고 또 그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구조가 만들어지면 영화 산업 발전에 나쁠 것이 없다.


‘나도 이 만큼 해냈는데, 그들이 못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돼.’


재능도 있고 노력까지 하는데 성공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부족한 것은 운뿐이다.

류지호가 그 운을 조금 보태줄 수 있다.


작가의말

한 주 잘 마무리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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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 Big Shot. (5) +5 22.11.12 4,361 142 22쪽
332 Big Shot. (4) +6 22.11.12 4,143 134 26쪽
331 Big Shot. (3) +7 22.11.11 4,408 139 25쪽
330 Big Shot. (2) +16 22.11.10 4,407 143 23쪽
329 Big Shot. (1) +10 22.11.09 4,464 145 23쪽
328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3) +9 22.11.08 4,285 141 22쪽
327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2) +2 22.11.08 4,071 133 22쪽
326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1) +9 22.11.07 4,358 138 21쪽
325 사회생활은 인맥이야...! +9 22.11.05 4,491 138 26쪽
» 선택과 집중. (4) +9 22.11.04 4,469 138 22쪽
323 선택과 집중. (3) +10 22.11.03 4,365 148 22쪽
322 선택과 집중. (2) +7 22.11.02 4,728 148 24쪽
321 선택과 집중. (1) +5 22.11.01 4,596 148 24쪽
320 아무 것도 안 해서, 안 돌아가는 일도 있더라. +5 22.10.31 4,578 144 30쪽
319 아무 것도 안 해도 잘만 돌아간다. (3) +10 22.10.29 4,568 146 27쪽
318 아무 것도 안 해도 잘만 돌아간다. (2) +8 22.10.29 4,303 131 22쪽
317 아무 것도 안 해도 잘만 돌아간다. (1) +9 22.10.28 4,564 153 27쪽
316 Celebrity. (2) +8 22.10.27 4,529 148 28쪽
315 Celebrity. (1) +10 22.10.26 4,605 144 27쪽
314 지적인 액션영화는 망할 걸? +4 22.10.25 4,639 155 26쪽
313 엄마는 여한이 없어..... +11 22.10.24 4,572 144 29쪽
312 세계 최초의 D-Cinema! +5 22.10.22 4,513 154 25쪽
311 환경이 아닌 인식의 문제. (4) +4 22.10.21 4,457 143 24쪽
310 환경이 아닌 인식의 문제. (3) +11 22.10.20 4,371 160 22쪽
309 환경이 아닌 인식의 문제. (2) +8 22.10.19 4,470 132 22쪽
308 환경이 아닌 인식의 문제. (1) +6 22.10.18 4,567 155 22쪽
307 괴짜 같은 녀석..... +7 22.10.17 4,511 150 25쪽
306 영화 기술사의 한 획! (5) +13 22.10.15 4,534 162 20쪽
305 영화 기술사의 한 획! (4) +5 22.10.15 4,269 129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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