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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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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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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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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0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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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3)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류지호는 특별한 외부활동 없이 한남동 집에서 보고서를 보며 빈둥거렸다.

삼일이 지나고 나서야 집을 나섰다.

제일생명사거리에 위치한 가온 빌딩 의장 비서실에 출근했다.

투자사업 부문에서 주요 안건을 올렸기 때문이다.

여의도에서 이사 올 때만 해도 신탁투자회사는 두 개 층만 사용했다.

현재는 다섯 개 층을 임대해 사용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가온GP투자신탁은 5팀, 10부, 1실로 구성되어 있다.

주식운용, 실물자산운용, 투자풀운용, 경영지원, 리스크관리팀과 감사실이 주요 조직이다.

CEO 노아 시거를 필두로 부사장인 진성문, 황원탁 등 초창기 멤버들이 여전히 회사를 이끌고 있었고, 꾸준한 실적과 함께 전문 인력을 많이 보강했다.

회의실에 가온GP투자신탁 주요 임원진뿐만 아니라 전략기획실 팀장들까지 모여 있다.

투자관련 부문 총괄 부사장 진성문이 입을 열었다.


“인천방송에서 지분 투자 의향을 문의해 왔습니다.”

“지상파에 대기업은 못 들어가는 거 아닙니까?”

“가온은 대기업이 아닙니다.”


류지호가 북미에 벌여놓은 사업을 생각하고, 잠시 착각했다.

대기업의 가장 기본적인 기준은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이다.

이는 2015년 즈음 10조원으로 상향된다.

현재 가온은 중견기업 범주에 들어갔다.

물론 법률적인 것은 아니다.

아직은 한국의 기업 구분은 중소기업과 기업집단으로만 분류하고 있다.


“올해가 지나면 더 이상 중소기업 혜택을 받지 못하겠군요?”

“2000년이 오기 전에 완전한 그룹체제로 개편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새로운 정부에서 회사법도 손을 보게 될 겁니다.”

“예. 미국의 입김이 센 IMF라면 충분히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미리부터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검토하세요.”

“예. 전략기획실에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금산분리법에 의해 산업자본은 금융자본의 소유 및 지배에 제한을 받는다.

(주)가온웨딩이 미국식 지주회사 체제로 개편하게 되면 한국의 금산분리법을 피하면서 지배할 수 있는 구조를 미리부터 고안해 놔야 했다.


“현재 가온은 대한상의와 중소기업중앙회 두 곳에 가입되어 있지요?”

“그렇습니다. 전경련과 경영자총협회에도 가입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서구권에선 오랜 역사에 걸쳐 상공회의소가 일국의 명실상부한 단일 경제단체로 활동하고 있다.

반면에 한국은 전 세계에서 유래가 없을 정도로 각종 경제단체가 난립하고 있다.

30대 재벌기업 총수를 주축으로 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 법정단체인 대한상공회의소, 수출입국 시대에 위상이 크게 높아진 한국무역협회, 사회적 약자 배려가 고려된 중소기업중앙회, 1970년 전경련이 따로 설립한 사용자단체인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전국 수준의 대표적 경제단체가 5개에 이른다.

이에 더해 한국중견기업연합회까지 법정단체로 전환할 계획이다.

이 가운데 10만 회원사를 거느린 대한상의가 가장 규모가 크다.

실제 힘은 재벌 중심의 전경련이 크다.

경제구조가 얼마나 비정상적인지 알게 해주는 부분이다.

게다가 한국의 경제단체는 업종별·산업별로 나뉘어 불가피하게 여러 개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형국도 아니다.

각 단체마다 모든 산업을 망라한다.

즉 재벌기업을 정점으로 수직적 위계관계로 형성된 기업 간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중견기업연합회에서 의장님을 영입하고 싶어 합니다.”


중견기업연합회는 1992년에 설립된 한국경제인동우회가 그 뿌리다.

중소·신흥 재벌들이 전경련을 비판하며 따로 단체를 조직했다.

암튼 많은 경제단체들이 난립하지만, 재벌 중심으로 돌아가기에 각 단체들이 일치단결할 때가 많다.

그렇다고 한 마음 한 뜻은 아니다.

갈등도 종종 일어난다.

경총의 경우는 전경련의 회원사이지만, 종종 이견을 보이기도 한다.


“혹시 난립하는 경제 단체를 통합하자는 이야기는 없어요?”

“제가 알기로는 한 번도 그런 이야기가 나온 적은 없습니다.”

“재벌들로서는 한 목소리를 내는 게 좋지 않나....?”

“단체가 하도 난립하다보니 대통령 해외순방 때 경제사절단을 꾸릴 때마다 어느 단체가 외국 경제 단체와 파트너 역할을 할 것인지를 놓고 논란이 빚어집니다. 관행적으로 어느 정도 구획이 정해져 있긴 합니다만.”

“주로 전경련이 하겠죠, 아마?”

“미국, 일본을 비롯해서 선진국은 전경련이 파트너 역할을 합니다.”


덩치나 대표성이나 대한상의나 무역협회가 파트너가 되어야 하는 것이 맞다.

미국의 경우 정통 경제 단체는 미상공회의소다.

상대 파트너에 대한상의가 되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임의단체에 불과한 전경련이 미상공회의소 파트너로 순방 때마다 따라간다.


“이미 오래전부터 한미 양국 주요 자본가들의 회합인 ‘한미재계회의’가 있어왔습니다. 미국 재계 창구를 전통적으로 전경련이 맡아왔기 때문에 순방마다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전경련 소속 재벌기업 오너 상당수가 미국 유학파이기도 하죠.”

“주한미상공회의소조차도 대한상의보다는 전경련과 더 긴밀한 파트너십을 맺고 일을 진행합니다.”


반면에 자수성가한 중견·중소기업들이 주축인 대한상의는 주로 신흥국을 담당하고 있다.

대통령 해외순방국이 많아 전경련과 대한상의가 다 맡기 벅찰 경우에 국가 한 곳을 떼어내 무역협회가 맡도록 넣어주기도 한다.

해외 네트워크가 강력한 전경련이 국가적인 비즈니스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도 좋지만, 한국 경제인 및 기업인 전체를 대변하는 단체도 아니고 재벌의 이익을 위한 모임이 국가적 비즈니스 전반을 좌우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었다.

그 재벌에 끼게 되면 생각을 달리하겠지만.


“한국의 재벌들이 나이가 많아서 섞이기 불편하네요. 젊은 회장들도 많이 포진한 대한상의에 가끔 얼굴을 비추는 정도로 정리합시다.”

“알겠습니다.”


류지호는 경제인 모임까지 들락거리는 것이 귀찮았다.

영화 한 분야만 열심히 파도 될까 말까한 상황이다.

일반적인 기업인이라면 끼지 못해 안달이 날 테지만.

류지호는 그들 속에서 얻을 것이 없다.

그들이 류지호를 통해 얻을 것이 있다면 모를까.


‘생각해보니, 완전한 지주회사가 체제가 되어 회장을 선임하면 되는 문제잖아.’


류지호는 경영일선에서 직접 뛸 생각이 전혀 없었다.

대외활동은 지주회사인 (주)가온의 CEO가 하게 될 터.

그룹개편과 함께 의사결정 부담이 줄어줄 수가 있다.


“인천방송 주주현황은 어떻게 됩니까?”

“네. 의장님.....”


진성문이 대답을 먼저 던져 놓고, 열심히 서류철을 뒤적였다.


“대주주는 아시아화학, 2대 주주는 한국제분 그 외에 인천 지역 기업 몇 곳과 시민 등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어느 정도나 내놓겠답니까?”

“17%입니다. 대략 3대 주주 포지션입니다.”

“됐어요. 인천방송은 신경을 끕시다.”


1대 주주가 되어 경영권을 쥐는 것이라면 모를까.

몇 년 후 벌어지게 될 소위 ‘인천방송사태‘로 골치만 썩게 될 수도 있다.

인천방송은 전파 송출문제로 소송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그 잡음이 줄어드나 싶어지면 방송사상 초유의 직장폐쇄, 노사 갈등, 방송위원회의 재허가 심사 불투명 등 온갖 분란이 끊이지 않게 된다.

말도 안 되는 정치권의 정책으로 방송국에 족쇄를 채운 점, 방송위원회와 기존 방송 3사의 보이지 않는 압력 등, 외부적 압력도 거세다.

그런 와중에 대주주는 방송사를 살리기보다 수백억 원의 임대료와 장비를 임대해주고 리스료만 챙기는 나 몰라라 방식으로 어려운 방송사를 더 어렵게 만든다.

게다가 정치인이 공익방송을 자기 물건처럼 이용하고 잇속을 챙기기에 바쁜 것들까지 겹치면서 방송국이 너덜너덜해진다.

애초에 수도권에 허가를 내주지 말았어야 할 방송국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의장님이 한국과 미국 양쪽에서 소유한 기업들의 콘텐츠를 싼 값에 타 회사에 넘기는 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음.”


맞는 말이다.

미국 영화 사업체들이 보유한 영화·TV 라이브러리만 수백 편이다.

지금도 계속해서 늘고 있다.

거기에 콘텐츠의 보고인 Timely Entertainment까지.


“요즘 대유미디어사업부는 어떻습니까?”

“내부적으로는 여전히 인사발령으로 어수선하지만, 외적으로는 지방 배급망 확충과 해외 합작을 추진하는 등 분주합니다.”


류지호가 전략기획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문 실장....!”

“예!”

“우리가 케이블로 진출하면 어떻겠습니까?”

“케이블 채널 말씀이십니까?”

“새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규모의 케이블 채널을 인수하는 겁니다. 가령 대유의 DCN같은.”

“자금난을 겪고 있는 케이블 채널에 의사타진을 해볼까요?”


전략기획팀으로서는 반대할 이유가 없다.

아니 성사만 된다면 환영할만한 일이다.

콘텐츠 제작사·유통, 극장, 홈비디오, 영화전문채널까지.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수직계열화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전략이다.


“케이블 채널 쪽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 중에서 가온의 기업문화에 잘 녹아들 수 있는 사람들을 알아보세요.”

“영화전문채널 이상을 생각하십니까?”


척하니 착이다.


“한국의 경제위기가 케이블TV 사업에도 영향을 미칠 겁니다. 가장 먼저 인수합병을 시도할 것은 DCN 그리고 종합오락채널, 게임채널 정도로 케이블TV에도 진출해 봅시다. 꼭 해당 채널이 아니어도 됩니다. 추후 프로그램 변경을 하면 되니까.”

“스포츠 중계도 생각하십니까?”

"PC게임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채널을 만들어 볼까 합니다.”


현재 MBS, 투니버스, 인천방송 등에서 게임 방송을 하고 있긴 했다.

단순히 신작게임을 소개하는 수준이다.

올해 북미에서 ‘스타크래프트’가 발매된다.

내년 3월에는 한국에서 발매된다.

ADSL이 서비스되면 PC방 열풍이 불어 닥친다.


“미국의 Snowstorm과 한국의 NEC가 곧 기대작을 출시합니다. 올 초 북미 게임쇼에서 큰 호응을 얻었죠.”


잊고 있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바로 ‘e-스포츠‘다.

차기 정부에서는 온라인 시대의 잠재력을 확신한다.

게다가 IT 거물 두 사람이 대통령에게 브로드밴드를 조언한다.

그로 인해 전국에 초고속통신망 연결을 위한 10년 계획을 세우게 된다.

문민정부에서도 정보통신 산업을 미래 산업으로 봤다.

그러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구체적인 정책이 수립되거나 집행되지는 못했다.

세계적인 IT화 조류에 편승해 정보통신 정책을 추진한 면이 강했다.

반면, 국민의 정부는 출범할 때부터 IT 선진화의 청사진을 그리게 된다.

정책을 구체화 한다.

이전 정부와 다른 모습을 보인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1998년 뜨거운 PC방 창업 열기와 더불어 ‘스타크래프트’라는 걸출한 게임이 더해져 e-스포츠가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마련된다.


“게임 시장의 확대 그리고 보는 게임으로의 가능성!”


2000년 중반(2004년) 광안리 10만의 신화.

세계 최초의 게임전문 채널.


“e스포츠는 신세대들의 새로운 스포츠 콘텐츠가 될 수 있었지.”


류지호는 Snowstorm Entertainment를 소유하고 있다.

‘스타크래프’ 및 ‘워크래프트’ 리그에 Snowstorm 본사가 처음부터 깊숙이 관여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다.

저마다의 생각을 가진 당사자들이 중구난방으로 e-스포츠 이벤트를 진행했던 이전 삶의 혼란을 초기부터 조정할 수가 있다는 의미가 된다.


“저... 의장님?”


문지열 실장이 생각에 잠겨 비 맞은 중처럼 중얼거리는 류지호를 일깨웠다.


“아, 미안합니다.”


류지호는 ‘스타크래프’라는 게임에 대한 설명과 함께 e-스포츠에 대한 개념을 설명했다.


“....?”


모두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컴퓨터 게임 대결이 케이블TV 콘텐츠가 된다는 상상을 할 수 없었다.

상금이 걸린 대회까지 열 수 있다는 말을 믿기 힘들었다.

그럴 만도 했다.

방구석 폐인들이나 하는 PC게임 따위를 가지고 한국이 만들고 전 세계가 즐기는 문화가 되어, e-스포츠가 글로벌 비즈니스로 성장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게임채널은 내년 ‘스타크래프’가 출시되면 그때 가서 다시 논의하는 것으로 하고, DCN은 성급하게 인수합병을 타진하진 마세요. 미리 준비만 해두고, 기회가 오면 놓치지 않도록 합시다. 종합오락채널도 마찬가집니다. 전략기획실에 관련 TF를 하나 만듭시다. 우리는 급할 것이 없어요. 어쩌면 매물이 여러 개 나올 수도 있으니까.”

“네.”

“오늘 내가 여러분께 이야기한 것들은 철저히 보안에 붙여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우렁찬 대답소리가 터져 나왔다.


‘미국으로 돌아가면 마이클과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눠봐야겠어.’


류지호가 미국으로 돌아가서 확인해야 할 것들을 궁리하는 사이에도 여러 논의들이 오갔다.

류지호가 끼어들만한 부분은 없었다.

한동안 전략기획실과 투자회사 임원들 간의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잠깐!”


류지호가 토론에 끼어들었다.


“상해영화유한공사건 다시 한 번 설명해줘 봐요.”

“중국 정부에서 민영화 가닥을 확실히 잡았습니다. 시기가 문제입니다. 2000년도에는 완전하진 않지만 민영화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상해영화유한공사는 양자강 이남 지역의 극장 다수를 보유하고 있다.

영화 제작·배급·극장 전 부문에서 인프라를 잘 갖춘 중국 최대 국영영화기업이다.

중국 내 원선 중에서 가장 많은 영화관 체인을 보유하고 있는 연화원선을 자회사로 두고 있다.

G.O.M Cinemas는 트라이-스텔라와 함께 상해영화유한공사와 합자회사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합작회사의 계획은 어떻게 됩니까?”

“2010년까지 중국내 80개 영화관, 264개 스크린을 건립할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중국의 정치·경제적 상황을 고려했을 때 장기적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사전작업 성격으로 WaW의 <풍운아>부터 협력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중국 개봉도 염두에 두다.

두 나라의 공통된 정서이자 감정을 자극할 수 있는 반일적인 내용이 추가되었다.

조연급 중에서 중국인 캐릭터 한 명을 전략적으로 분량을 키우기도 했고.


“G.O.M의 영화관 운영 노하우와 상해영화유한공사의 현지 인프라가 결합돼 최상의 시너지를 발휘하게 되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G.O.M에 멀티플렉스 운영노하우가 있어봐야 얼마나 대단할까마는.

어쨌든.


“상하이에 들어설 예정인 종합촬영소는 언제 완공된다고 합니까?”

“내년 말에 시설 일부를 개방할 것 같습니다. 듣기로는 99년 상반기에 전면적으로 가동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만약 합작회사가 중국으로 진출한다면 1호점은 상하이가 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중국은 절대 만만하게 보고 달려들어서는 안 됩니다. 꽌시 문화는 잘 몰라도, 중국인 특유의 만만디만큼은 여러분도 잘 알겁니다. 상해영화유한공사와 합작이 이루어졌다고 해서 급격하게 극장을 늘려서는 안 됩니다. 중국에서 잘못 사업을 펼치다보면 10년간 적자에 허덕일 수도 있습니다.”


백설그룹과 광성그룹의 멀티플렉스처럼.

절대 욕심 부리지 말고, 차분히 추진해 달라고 몇 번이고 신신당부했다.

임원들이 답답해하든 말든.

류지호는 단호했다.

중국시장은 빨리 들어가는 것은 좋다.

너무 빨라선 안 된다.

언제든 빠질 수 있도록 플랜B,C를 만들어두어야 한다.


‘역사대로 흘러간다는 가정 하에 꿀 빨 수 있는 기간이 최대 15년이겠지.....’


중국에서 영화관을 개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중국회사와 합작회사 형식을 취해야만 한다.

또한 합작의 지분율을 최대 40~50%로 제한을 두고 있다.

때문에 해외기업과 현지 합작회사 간 의견 충돌이 빈번하게 벌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자칫하면 중국 파트너에게 힘들게 일궈놓은 모든 것을 한순간에 빼앗길 수도 있다.


“남보다 일찍 발을 들이는 것과 함께 투자금을 회수하면 곧바로 발을 뺄 것까지 염두에 두길 바랍니다. 중국 시장은 여러분이 예측하는 것보다 훨씬 짜증... 복잡하니까.”


중국시장의 허실을 류지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적어도 영화 분야에 있어서는.

한국 연예계의 거물이 ‘아시아의 할리우드‘ 발언을 했던 것처럼, 너도나도 중국으로 달려갔다.

20년에 걸쳐 많은 것을 빨아들인 중국 시장에서 크게 성공한 한국 영화인이나 기업은 거의 없었다.

개인적으로 돈을 번 사람은 많다.

중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빅 비즈니스를 한 곳들은 시스템과 노하우만 전수해 주었을 뿐.

실질적 금전적 이익은 거의 얻질 못했다.


'물론 중국 시장이 닫히면서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세계 시장을 공략할 수 있게 되었지만.‘


중국시장은 실적 뻥튀기와 주가 띄우기로 써먹는 것 외에 해외 엔터기업에겐 실질적인 도움이 안 된다.

온갖 족쇄들이 이중삼중으로 걸려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중국 파트너 기업만 돈을 번다.

지금이야 미개척의 거대한 시장처럼 보이겠지만.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의 경우 돈 벌려고 들어갔다가 자신의 아이디어 노트만 강탈당할 수도 있다.

암튼 그 문제는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다.

중국의 상해영화유한공사는 2001년 상해영화그룹(Shanghai Cinema Group)으로 재탄생한다.

G.O.M Cinemas와 상해영화유한공사의 합작이 이루어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왜냐하면 류지호가 기대했던 것보다 (주)가온의 임직원들은 훨씬 유능했으니까.

향후 중국 극장사업 진출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행하게 된다.

때문에 류지호가 기억하는 한국 대기업들이 겪었던 시행착오 기간을 대폭 줄이게 된다.

그로 인해 류지호가 중국시장에서 ‘EXIT‘ 하는 시점을 잡는데 큰 도움이 된다.

매우 만족할 만한 방향으로.

아직은 먼 미래의 일이다.


“다들 열심히 해줘서 고맙네요.”

“실망시켜 드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근 가장 많이 듣는 말을 오늘 또 듣게 되는군요. 여러분을 믿습니다.”


현재 (주)가온의 전략기획실과 각 사업부들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대한민국은 IMF 한파로 몇 년간 추운 하루하루를 보낼 것이다.

(주)가온에게 추위는 아무런 장애가 되질 못할 것이다.

20억 달러라는 연료를 비축해두고 있기에.


✻ ✻ ✻


[DVD표준 전쟁은 모두가 승리자다. 그런데 진짜 승자는 따로 있다. 바로 JHO Company다. JHO는 많은 IT관련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그들로서는 가전기업보다는 컴퓨터 업계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어쩌면 당연했다. 재밌는 사실은 두 진영이 치열하게 포맷 분쟁을 벌이고 있을 때 JHO 계열의 IVE Entertaiment는 이미 DVD 타이틀 제작·유통 준비를 마쳤다는 사실이다. 결국 자신들이 손을 들어준 진영이 승리했다. JHO(지호)라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한 것일까. 누구보다 빨리 자사 흥행작품들을 DVD로 제작해 워너-타임과 함께 선제적으로 배포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 같은 행보가 가능했던 이유에 대해 지호 류는 “지난 비디오 포맷 대전이 너무 치열했다. 소닉은 두 번은 실수 할 리 없었고, 두 진영은 결국 타협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 예상했다”라고 회상했다. 또한 지호 류는 디지털 다기능 디스크(Digital Versatile Disc)라는 명칭 대신 디지털 비디오 디스크(Digital Video Disc)라는 명칭을 관철시켰다. 이에 대해 “대중들이 DVD 하면 영화라는 인식을 가질 수 있는 용어는 영화업계에게 꽤나 중요한 문제였다. 이는 영화업계의 마케팅에서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이라 설명했다. 가전과 컴퓨터 업계는 당장 할리우드의 협조 없이 새로운 저장매체인 DVD가 성공할 수 없기에 지호 류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제품이나 시스템에 어떤 명칭을 붙이느냐는 중요한 문제다. 기능, 구조, 사용 영역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가전업체와 컴퓨터 업계로서는 음악, 문서, 이미지까지 모두 담는다는 의미를 명칭에 담고 싶었다. 지호 류는 ‘Video‘란 명확한 단어가 용어에 들어가길 주장했다. 영화업계에서 DVD라는 새로운 매체가 비디오의 완벽한 대체이면서 대명사가 되길 원했기 때문이다.]


- 파이낸셜타임즈 폴 헤멀스, 한국특파원.


지난 95년 가을.

전자산업에 디지털혁명을 몰고 올 DVD 표준화 전쟁이 막을 내렸다.

당시 컴퓨터업계는 소닉 진영의 기술이 컴퓨터 기술에 적용하기 쉬워 소닉-로얄필립스 진영에 합류하는 분위기였고, 가전업체와 메이저 스튜디오는 나쇼날-됴코시바우라 진영에 가담했다.

소닉과 나쇼날 양측 진영은 서로의 DVD 포맷을 관철시키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전개했다.

그 와중에 IBT를 비롯한 미국 컴퓨터 회사들이 단일표준을 촉구하며 소닉 진영에 압력을 행사했다.

두 진영은 지난 비디오 포맷에서 벌였던 전쟁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결국 서로 피를 흘리지 않는 나눠먹기 담합을 선택했다.

DVD 표준화 싸움이 지난 비디오 포맷 결전처럼 극단적으로 치달았을 경우 승자에게는 ‘세계 전자산업 주도’라는 특권이주어지는 반면 패자는 말 그대로 일패도지를 면할 수 없기에.

결국 서로가 위험부담을 회피하는 쪽으로 타협을 봤다.

특이했던 것은 트라이-스텔라가 다른 메이저 스튜디오들과 달리 소닉 측에 섰다는 점이다.

포맷은 물론 명칭 등 많은 것을 양보 받았다.

그것을 토대로 미온적이었던 영화업계를 설득할 수 있었다.

영향력 혹은 입김이 미치는 범위라고 할 수도 있고.

류지호의 의지가 어느 선까지 관철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도 있다.


작가의말

주말에도 한 번 더 연참이 있을 예정입니다.

평안한 하루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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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2) +2 22.11.08 4,071 133 22쪽
326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1) +9 22.11.07 4,358 138 21쪽
325 사회생활은 인맥이야...! +9 22.11.05 4,491 138 26쪽
324 선택과 집중. (4) +9 22.11.04 4,469 138 22쪽
323 선택과 집중. (3) +10 22.11.03 4,366 148 22쪽
322 선택과 집중. (2) +7 22.11.02 4,728 148 24쪽
321 선택과 집중. (1) +5 22.11.01 4,596 148 24쪽
320 아무 것도 안 해서, 안 돌아가는 일도 있더라. +5 22.10.31 4,578 144 30쪽
319 아무 것도 안 해도 잘만 돌아간다. (3) +10 22.10.29 4,568 146 27쪽
318 아무 것도 안 해도 잘만 돌아간다. (2) +8 22.10.29 4,303 131 22쪽
317 아무 것도 안 해도 잘만 돌아간다. (1) +9 22.10.28 4,564 153 27쪽
316 Celebrity. (2) +8 22.10.27 4,529 148 28쪽
315 Celebrity. (1) +10 22.10.26 4,605 144 27쪽
314 지적인 액션영화는 망할 걸? +4 22.10.25 4,639 155 26쪽
313 엄마는 여한이 없어..... +11 22.10.24 4,572 144 29쪽
312 세계 최초의 D-Cinema! +5 22.10.22 4,513 154 25쪽
311 환경이 아닌 인식의 문제. (4) +4 22.10.21 4,457 143 24쪽
310 환경이 아닌 인식의 문제. (3) +11 22.10.20 4,371 160 22쪽
309 환경이 아닌 인식의 문제. (2) +8 22.10.19 4,470 132 22쪽
308 환경이 아닌 인식의 문제. (1) +6 22.10.18 4,567 155 22쪽
307 괴짜 같은 녀석..... +7 22.10.17 4,511 150 25쪽
306 영화 기술사의 한 획! (5) +13 22.10.15 4,534 162 20쪽
305 영화 기술사의 한 획! (4) +5 22.10.15 4,270 129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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