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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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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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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1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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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환경이 아닌 인식의 문제.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순호 류와 자주 어울리면서 안정을 찾은 것 같습니다.”


한 동안 영화를 찍느라 동생이 어떻게 지내는지 몰랐다.


“순호하고 자주 어울리고 있나 보죠?”

“밴드 연습실을 구했습니다.”

“누가요?”

“보스의 동생이요.”

“렌트비용은 어떻게....아, 알바를 하고 있었지.”


류순호는 라이브 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류지호와 같이 지내고 있어서 생활비가 전혀 들지 않았다.

가끔 류지호가 용돈을 주기도 하고.


“촬영이 없는 날은 주로 그곳에서 순호 류와 연주를 하며 놀고 있습니다.”

“바람직한 현상이네요.”

“에이전트 수잔도 매우 고무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래도 배런이 정신과 상담을 빼먹지 말고 받도록 다시 한 번 당부해 줘요.”

“알겠습니다. 보스.”


류지호는 이전 삶에서 조감독 생활을 하면서 영화판의 볼 거 못 볼 거 다 경험했다.

충무로는 할리우드에 비하면 건전한 편이다.

비교하는 것이 할리우드에 대한 모욕이다.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다.

대중 앞에서는 겸손하고 친절한 척은 다 하면서 막상 촬영장에서는 굉장히 포악해지는 감독이며 배우가 수두룩했다.

또 자신의 전용 트레일러에서 마약을 하거나, 이성 파트너를 불러 섹스를 한다거나, 어떤 배우는 감독과 주먹다짐까지 벌이기도 한다.

프로듀서들은 감독과 배우들의 성향을 다 파악하고 있다.

그 같은 소문이 밖으로 새어나오진 않는다.

영화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의 계약서에 비밀조항을 넣기 때문이다.


“커밍아웃은 하지 않았지만 은근히 동성애자들도 많지요.”

“성적 취향이나 성 정체성을 두고 왈가왈부한 건 아니죠. 다만 그들이 사적인 공간에서 같은 취향의 사람들과 난교파티를 벌이든 변태성행위를 하든 내가 알바 아니지만, 그 문제가 비즈니스로 들어오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문제잖아요.”

“다행히 배런 렌프로와 라이언 징거 사이에서 불미스러운 일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배런 렌프로는 굉장한 미소년이다.

소녀부터 유부녀까지 녀석과 잠자리를 해보려고 별 짓을 다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할리우드의 동성애자들의 표적이 되고 있다.

류지호는 아시아계다.

백인여성에게 성적 매력을 크게 어필해봐야 먹히지 않는다.

그럼에도 류지호가 데이트 신청을 받아준다고 하면 여자고 남자고 벨에어 산꼭대기에서 서쪽 게이트까지 줄을 세울 자신이 있다.

류지호가 그럴 정도인데, 배런 렌프로는 말 할 것도 없다.


“보스가 관심을 가지고 관리하지 않았다면 배런 렌프로는 라이언 징거, 그의 절친인 게이 프로듀서와 자주 어울렸을지도 모릅니다.”


마치 하비 웨인스타인이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수많은 여성을 성폭행한 것처럼, 그들이 배런 렌프로에게 몹쓸 짓을 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장래가 촉망 받는 영화감독이자, 할리우드 유대계 인맥을 무시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앞서가지 말자구요.”


속단해서는 안 된다.

게이라고 해서, 변태성욕자나 아동성폭력범이라고 예단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의심이 든다고 하더라도.

한편으로 웨인스타인도 20여 년간 그의 성폭력 범죄행각이 드러나지 않았다.

연이은 영화의 성공으로 부와 권력을 가진 할리우드 감독이라면, 일개 배우를 상대로 무슨 짓을 벌여도 이상하지 않았다.


“앞으로 소송은 어떻게 될 것 같아요?”

“미성년자 성적 유린 문제로 일이 커지면서 지역, 주, 연방 당국의 성범죄 특별조사단이 꾸려지게 될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감독, 제작진, 이 작품과 관계된 각종 기획사와 트라이-스텔라까지도 8개월에 걸쳐 조사를 받게 된다.


“지금 두 녀석은 연습실에 있겠네요?”

“확인해 보겠습니다.”

“배런을 라이언이나 그와 친한 게이들에게 휩쓸리지 않도록 유의하라고 수잔에게 전하세요.”


친하다고 해도 사생활까지 깊숙이 간섭하기 쉽지 않다.

법적인 보호자도 아니고.


“타블로이드의 표적이 될지도 모릅니다.”


저질 황색신문에서는 여전히 류지호가 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딱히 그와 관련해 류지호가 스트레스를 받진 않았다.

그 정도 루머로는 류지호의 멘탈을 흔들 수 없었다.

문제는 배런 렌포르와 엮어서 추잡스러운 이야기를 만들어낼까 싶어 우려스러울 뿐.

류지호는 개가 짓든 말든 상관없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

대중적 인기를 먹고 살아가야 하는 배런 렌프로는 아니다.


“그와 관련한 빌미를 만들지 않으면 되겠죠.”

“데브라 양과 데이트를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데브라 클라비에는 <Escape>에서 콜걸로 출연한 UCLA 연극전공 여학생이다.

도널드 제이콥은 류지호에게 따라다니는 각종 억측들을 해소시키기 위해 파파라치들에게 데이트 장면을 의도적으로 노출하길 건의했다.


“데브라를 그런 일에 이용하고 싶지 않네요.”

“보스와 데이트를 하고 싶어 하는 여배우는 많습니다.”

“하이에나들에게 먹잇감을 주지 않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더 보고 할 것이 없으면, 가서 일 보세요.”


도널드 제이콥이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영화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은 소송으로 상황이 복잡해진다.

개봉이 미뤄지고 미뤄지다 1년도 훌쩍 넘겨서 개봉할 수 있게 된다.

제작사 Bad Hat Productions는 미성년자 노동법규 위반 혐의로 2,000 달러의 벌금을 물게 되고, 미성년자 고용 허가를 상실하게 된다.

이후로 라이언 징거는 이와 유사한 소송을 여러 번 당하게 된다.

모두 빠져나간다.

프로듀서 역시 난잡한 동성 성생활로 할리우드에서 유명한 인물이다.

라이언 징거와 달리 십 여 년 후 관련 범죄로 실형을 받고 교소도에 수감되게 된다.

그는 라이언 징거와 달리 유대계가 아니었다.

참고로 문제가 됐던 샤워 장면은 재촬영을 진행하게 된다.

류지호가 나서지 않아도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 자체적으로 배급을 포기한다.

배급을 넘겨받은 소닉-콜롬비아스는 배급력을 총동원해 1,448개 스크린을 잡는다.

흥행에는 실패한다.

라이언 징거 연출작 중 가장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는 영화로 남게 된다.

실제 진실이 무엇이 되었든.

소송이 커지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의 감독과 제작자 그리고 스태프의 다수가 동성애자였다는 잘못된 정보 때문이다.

소송 당사자들이 이 점에 대해 불쾌했다는 것이 크게 작용했다.

문제는 전혀 진실이 아니었단 점이다.

학부모들은 제작진 다수에 동성애자가 다수 포함되었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철썩 같이 믿은 나머지 매우 강경하게 대처했다.

옛 말에 오얏나무 열매가 달린 나무 아래서는 갓을 고쳐 쓰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옛날에 오얏(자두) 밭은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다.

그렇듯 의심 살 행동을 하지 말라는 의미다.


‘이유가 뭐든지, 미성년자 배우들을 다루는 그의 태도는 심각한 수준이네.’


미국은 미성년자와 관련된 일에 대해서는 매우 엄격하다.

설혹 부모가 자녀의 올 누드 촬영을 동의하는 계약서를 썼다고 해도, 윤리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

거기에 감독이 강압적으로 미성년자에게 올 누드 촬영을 명령했다면, 개인적인 인성의 문제를 떠나 범죄다.


‘수잔에게 다시 한 번 주의를 줘야겠어.’


류지호가 배런 렌프로와 관련된 일련의 일로 짜증이 나있을 때.

이와 유사한 일이 한국에서도 벌어지고 있었다.


❉ ❉ ❉


띠리리리.


스타크래프트 밴 뒷좌석에 앉아 있는 중년 남자가 안주머니에 넣어 둔 휴대폰을 꺼내 받았다.


- 여보세요? 혹시 전화 주셨나요?


휴대폰 너머에서 공다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연이?

- 예. 공다연입니다.

“나야.”

- 죄송하지만 누구신지....

“김현일.”


남자는 TV와 영화를 넘나들며 활발하게 활동하는 중견연기자 김현일이다.


- 안녕하세요. 선배님.

“뭐 해?”

- 공연 연습중이에요.

“끝나고 뭐 해?”

- .....?

“술 한 잔 할까?”

- 그건 좀 힘들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공다연의 단호함에 김현일의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힘들어?”

- 선배님 죄송한데요. 사적인 연락은 안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요즘 연극연습 때문에 바쁘거든요. 연출선생님이 엄격한 분이시거든요. 제가 정말 열심히 해야 해서....


명백한 거절이다.

얼굴 좀 반반한 후배 여자배우들이 으레 그러하듯 콧대 높게 튕기는 거였다면, 이렇게까지 딱딱한 태도를 보이진 않을 터.

공다연의 목소리는 친절함을 떠나 매우 쌀쌀맞았다.

숫제 귀찮다는 투다.


- 나중에 작품에서 뵈어요. 안녕히 들어가세요.


언제 후배들에게 이런 대접을 받아봤던가.

김현일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새파란 신인한테 차였다는 사실이 그의 자존심에 상처를 냈다.

최신 휴대폰을 손에 쥔 채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 때, 운전하고 있는 매니저가 룸미러로 그런 김현일을 발견했다.


“왜 요?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그러자 김현일은 휴대폰을 안주머니 안에 넣으면서 고개를 가볍게 가로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진짜요?”

“그렇다니까.”


하루 이틀 함께 다닌 것도 아니고, 매니저는 김현일의 표정에서 뭔가 일이 있다는 걸 눈치 챘다.

더 캐물으면 화를 낼 것 같았기에 일단 모르는 척하고 넘어갔다.

대신에 괜한 사고를 치지 않도록 확실히 주의를 줬다.


“중요한 때라는 건 형도 잘 알고 있죠?”

“알아.”

“구설수에 오를 수 있는 일은 당분간 조심해 주세요. 쓸데없이 다 된 밥에 코를 빠뜨리지 않도록 요.”

“쯧. 알았다니까.”


계속되는 잔소리에 귀찮다는 얼굴로 김현일이 혀를 찼다.

마음 같아서는 진즉에 매니저를 갈아 버리고 싶다.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오래 함께 한 만큼 자신을 잘 알고 있다.

무엇보다 바깥에 드러낼 수 없는 이런저런 일들을 조용히 잘 처리해 줬다.

오늘처럼 짜증을 유발해도 자르지 않을 정도로 쓸 만 한 매니저다.

물론 안 좋게 헤어졌다가 뒤통수라도 치면 곤란하기도 하고.


“그건 그렇고, 조재영 PD가 있는 자리에 날 부르는 걸 보니까. 이야기가 잘된 모양이지?”


김현일이 기대 섞인 어조로 물었다.


“저쪽에서도 형을 주연급에 캐스팅하는 걸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나 봐요.”

“그래. 바로 이거지.”


김현일은 잔뜩 들뜬 표정을 지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주연급 캐스팅이 걸려 있는 사안이다.

비록 원톱은 아니더라도 조연급 중에서는 상당한 비중의 배역이다.

현재 KBC 대하사극 <龍의 淚>가 공전의 시청률 고공행진을 벌이고 있다.

후속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도 높았다.

높을 시청률을 이어받을 후속 드라마에 4공화국 시대나 삼별초 배경의 사극을 제작하려고 기획 중이다.

그런데 드라마가 후반으로 갈수록 광고수익이 떨어지고 있어서 투자 여유가 없었다.

따라서 <龍의 淚> 의상과 세트를 그대로 재활용할 수 있는 조선시대로 기획방향이 바뀌었다.

그렇게 후속 드라마로 기획된 것이 <왕조의 계단>이다.

문종 승하시기부터 중종반정까지의 50여년을 다루게 된다.

KBC에서는 <龍의 淚>의 열풍을 이어가기 위해 출연 배우 상당수를 그대로 <왕조의 계단>에 기용할 예정이다.

<龍의 淚>에서 무장으로 출연한 바가 있는 김현일 역시 출연이 유력시 되고 있다.

다만 조단역급이냐 주조연급이냐만 결정이 나지 않은 상태다.

<왕의 계단>은 기획단계다.

그럼에도 벌써부터 업계와 시청자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해외 판매까지 기대되는 상황이다.

수많은 배우와 소속사들이 배역을 따내려고 여기저기 줄을 대고 있다.

한때 주연급이었던 김현일은 조연에서 단역까지 밀려나는 처지에 놓였다.

<왕조의 계단>에서 중요한 배역을 맡게 되길 간절하게 원했다.

그래야 주말 드라마에서 적어도 조연으로 합류할 수가 있을 테니까.


“근데 그쪽에서 돈을 조금 세게 부를 거 같아요.”

“얼마나 더 받아쳐먹으려고. 얼마 달래?”

“3,000.”

“연출은 조재영이 아니라, 다른 PD 아니었어?”

“당연히 PD는 박중선인데.... KBC에서 조재영 PD 입김이 어디 가는 것이 아니라서.”

“조연급 개런티가 얼마나 된다고 3,000씩이나....”

“그래도 200회짜리 대하드라마잖아요. 캐스팅만 된다면 남는 장사죠.”

“장사가 뭐냐 장사가.... 연기자한테.”

“죄송합니다., 형님.”

“차 돌려.”

“어디로 가시게요.”

“대학로.”


김현일의 지시에 매니저가 강남으로 향하던 차를 대학로로 방향을 바꿨다.


❉ ❉ ❉


90년대 대학로 연극판은 해외유학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주도하는 유럽풍 실험극이 대세였다.

넌버벌 퍼포먼스(비언어극) 공연도 이 당시부터 시작됐다.

제대로 된 러시아 정통 리얼리즘극도 활성화 됐다.

동숭아트센터, 아르코 극장, 연우무대, 성좌, 바탕골 소극장, 정보 소극장 같은 무대들이 번성했다.

그와 함께 작은 규모의 소극장들이 모세혈관처럼 대학로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연극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들이 영화와 TV쪽으로 활발하게 연기영역을 확장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밥은 방송과 영화로 먹고 예술적 성취감은 연극에서.....!‘


다른 매체로 진출하는 연극배우들이 내세운 명분이다.

그런데 TV·영화로 진출해 슈퍼스타가 된 연극배우들은 다시 무대로 돌아오지 못한다.

정확하게는 돌아가기 힘들어진다.

TV·영화계에서 안정적으로 먹고 살 수 있고, 연극판이 점차 상업성으로 물들어가는 데다가 무대에 대한 열정이 식어 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예술성이 깊어지면 대중성도 함께 깊어지게 마련이다.

학교에서는 그렇게 가르친다.

적어도 영화와 연극에서는 해당되는 것 같지 않았다.

한국영화가 60~70년대 최고 전성기를 구가했다면, 연극은 70~80년대까지 소극장 공연으로 큰 날개 짓을 했다.

하지만 80년대 평론가들의 엄격한 예술적 잣대와 비판으로 인해 일단의 연극엘리트들을 대거 무대에서 퇴장시켰다.

그 자리를 업자들이 차지했다.

소위 돈 되는 연극 위주로 공연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90년대부터 예술로서의 연극이 크게 퇴보하기 시작했다.

상업성과 예술성은 상존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원래는 상호 존중 하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다.

순수 예술계에서는 상업적 작품에서 대중이 깊이 공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다.

대중문화계는 순수 예술이 제시한 실험성과 혁신을 받아들여 품격을 올릴 수 있다.

이런 말 하면 양쪽으로부터 공격받을 확률이 높다.

한마디로 개소리라고.

그런데 UCLA 영화과의 교수가 한 말이라면 다르다.

맥도웰 교수가 늘 주장하는 것이다.


[호텔로 돌아갈 거야. 내가 얼마나 오늘을.... 내가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당신들이 알기나 해? 당신들 때문에 내 하루가 다 망가졌단 말이야!]


모두가 돌아간 텅 빈 극단 연습실.

공다연이 홀로 남아서 연습을 하고 있다.

그녀는 영국 극작가 레이 쿠니의 ‘런 포 유어 와이프’(Run for your wife)를 각색한 연극 ‘라이어’의 바바라 스미스 역에 캐스팅됐다.

이 연극은 존 스미스란 주인공의 한 번 시작한 거짓말이 계속해서 거짓말을 낳으며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 내용이다.

한 남자의 거짓말에서 시작해 사건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는 소동극이다.

공다연이 연기하게 될 바바라 스미스는 두 부인 가운데 한 명으로 섹시한 매력을 가진 팜므파탈 캐릭터다.

참고로 ‘라이어’는 1998년 초연 이후 총 35,000회 공연, 누적 관객수 500만 돌파, 아시아 최초 오픈 런 공연이자, 아시아 최장 기간 연속 공연, 아시아 최다 공연을 기록하게 된다.

공다연이 그런 기록을 보유하게 될 연극의 초연에 참여하게 됐다.


딸깍.


누군가 연습실로 들어왔다.

공다연이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다.

혹시나 선배인 줄 알고.

연습실로 입구에 뜻밖의 인물이 미소 띤 얼굴로 서 있다.

공다연은 당황스러운 심정을 애써 눌렀다.


“마침 있었네.”


여기 있을 걸 뻔히 알고 와 놓고는 뻔뻔하게 말하는 김현일의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짜증이 치밀어 올랐지만 꾹꾹 누르며 입을 열었다.


“어쩐 일로 오셨어요?”

“나도 한 때는 이곳에서 연습을 참 많이 했는데.....”


동문서답이다.

김현일은 70년대 연극으로 데뷔했다.

방송사의 특채 탤런트로 들어가 80년대 여러 드라마에서 주인공을 연기했다.

90년대 초에 드라마에 함께 출연했던 여배우와 결혼해 자식을 낳고 잘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부인과의 불화설이 새어나오는 등 가정생활은 썩 좋지 못했다.

여성편력이 난잡한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신인 여자탤런트들이 그와 잠자리를 가졌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엄밀히 말하면 연예계 선배라는 우월적 위치를 이용한 성폭력이다.

당사자들은 함부로 그런 사실을 어디 가서 하소연할 수도 없다.

당한 사람이 도리어 손가락질 당하는 시기였으니까.


“근처에 지나가다가 밥이라도 한 끼 사줄까 할 겸, 할 이야기도 있어서 왔어.”

“......”


안 그래도 껄끄러운 상대다.

소문도 안 좋고.


‘하필이면 연습실에서 아무도 없을 때 찾아와서는....’


공다연은 둘만 있는 상황이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김현일이 은근슬쩍 가까이 다가오면서 말했다.


“다연이는 내가 부담스러운가 봐?”

“솔직히 편하지는 않아요.”


공다연은 여전했다.

싫으면 싫고, 좋으면 좋다.

그녀는 할 말을 꾹 참으며 사는 성격이 절대 아니다.

그 때문에 싸가지 없다는 소리도 자주 듣는다.

그래서인지 고분고분하고 말 잘 듣는 여성을 기대하는 사람들은 그녀를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그런데 연극판에서는 공다연 같은 캐릭터가 전혀 낯설지 않다.

게다가 공다연은 어린 나이에 연예계의 쓴맛 단맛을 어느 정도 경험했다.

철도 조금 들었다.

어릴 때처럼 이기적으로 군다거나 막 나가지는 않았다.

일정한 선은 넘지 않았다.

그럼에도.


“제가 부족한 연습을 하고 있어서요. 나중에 방송국에서 뵈어요.”


공다연은 선을 명확하게 그었다.

틈을 주지 않으려고 했다.

김현일은 눈썹을 찡그렸다가 금방 신색을 바로 했다.


“난 그냥 친하게 지내자는 것뿐이야.”


그러면서 김현일의 손이 공다연의 어깨로 올라왔다.

공다연이 정색을 하며 그의 팔을 뿌리치고는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왜 이러시는 거예요?”

“이제 그만 좀 튕기지. 알잖아. 어린 애도 아니고.”


김현일이 대놓고 이야기했다.

공다연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더 이상 말을 섞는 것조차 싫었던 공다연은 원래 성격이 폭발했다.


“제가 몸 대주는 쌈마이로 보이세요? 계속해서 싫다고 사인을 줬는데. 왜 자꾸 질척거리시는데요!”

“뭐? 이 년이 지금 뭐라는 거야?”


김현일이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가면을 벗어던지고 공다연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봤다.


“......!”


순간 공다연은 겁이 덜컥 났다.

한때 액션영화에도 출연했을 정도로 무술실력까지 뛰어난 김현일이다.

물리력을 쓴다면 자신으로서는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약한 모습을 보이면 오히려 상대의 기세를 살려 주는 꼴이 되어 버릴 터.


“자꾸 이러면 경찰을 부를 거예요!”

“내가 뭘 했다고.”


김현일이 공다연의 팔을 우악스럽게 잡아끌었다.


“깍! 이거 놔요!”


공다연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김현일은 여유로웠다.

제아무리 강단이 있다고 해도 공다연은 김현일 앞에서는 궁지에 몰린 쥐 신세다.


“놔요. 아파!”

“그러게 조심해야지. 연약한 팔목이 부러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공다연은 분하고 억울하고 참담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눈가에 그렁그렁한 눈물을 달고 매섭게 노려보는 것 뿐.


“이제야 알 것 같네.”


공다연은 절대지지 않겠다는 듯이 김현일의 말에 꼬박꼬박 반박했다.


“뭐가요?”


그녀가 귀여운 짓 한다는 눈으로 내려다본 김현일이 느릿하게 답했다.


“가수할 할 때 따돌림 당했다며?”


일부러 귓가에 가져다 댄 그의 입술 사이로 더운 숨이 훅 끼쳤다.

목덜미에 벌레가 기어가는 것처럼 소름이 끼쳤다.


“멤버들하고 잘 어울리지도 못하고, 가수 선배들한테 찍혀서 고생 많이 했다던데.”


공다연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사실이 아니다.

진실은 언제나 강자의 것일까.

공다연은 혼성그룹의 얼굴 마담이었다.

다른 멤버들도 음악성은 쥐뿔도 없었다.

그런데 가수로서 역량의 잣대는 매번 공다연에게만 들이댔다.

음반은 망했다.

반면에 우월한 외모와 특유의 도도한 이미지로 공다연은 남자 고교생들에게 꽤 인기를 얻었다.

이를 시샘한 멤버들이 공다연을 은근히 왕따를 시켰다.

혼성그룹이 해체되기 전까지 공다연은 멤버들과의 관계로 꽤나 스트레스를 받았다.

오랜 전 이야기다.


“당신같이 비겁하고 짜증나는 인간은 꼴도 보기 싫어. 네가 무슨 선배야. 발정 난 개새끼지.”


공다연의 고운 입에서 욕이 튀어나오자 김현일은 순간 당황했다.

그 틈에 잡혀 있던 손목을 재빨리 빼낸 공다연이 연습실 입구로 달려갔다.


“감히 어디서... 꾀를 부리고....!”


벌컥!


그 순간 일단의 무리가 연습실로 들어왔다.


작가의말

이번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모 감독의 사생활적 묘사에는 언론에 알려진 내용에 약간의 뇌피셜도 들어가 있습니다. 웨인스타인급의 쓰X기인지는 저도 모릅니다. 다만 가장 최근까지도 관련한 구설수와 소송이 있었고, 일부 혐의가 인정되어 피해자와 합의를 본 사실도 있다는 점. 동성애자 이슈는 그렇다고 처도 성격과 태도에도 문제가 많아서 스태프들 사이에서 그다지 환영을 받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A-list 감독이니까 누구도 뭐라고 못하고. 제작자는 투자를 잘 받을 수 있으니까 찝찝해도 고용하는 것이고. 뭐 그러는 것 같습니다.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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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할리우드!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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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 우리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6 22.11.14 4,371 143 26쪽
333 Big Shot. (5) +5 22.11.12 4,361 142 22쪽
332 Big Shot. (4) +6 22.11.12 4,143 134 26쪽
331 Big Shot. (3) +7 22.11.11 4,409 139 25쪽
330 Big Shot. (2) +16 22.11.10 4,408 143 23쪽
329 Big Shot. (1) +10 22.11.09 4,465 145 23쪽
328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3) +9 22.11.08 4,286 141 22쪽
327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2) +2 22.11.08 4,071 133 22쪽
326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1) +9 22.11.07 4,358 138 21쪽
325 사회생활은 인맥이야...! +9 22.11.05 4,491 138 26쪽
324 선택과 집중. (4) +9 22.11.04 4,469 138 22쪽
323 선택과 집중. (3) +10 22.11.03 4,366 148 22쪽
322 선택과 집중. (2) +7 22.11.02 4,728 148 24쪽
321 선택과 집중. (1) +5 22.11.01 4,597 148 24쪽
320 아무 것도 안 해서, 안 돌아가는 일도 있더라. +5 22.10.31 4,578 144 30쪽
319 아무 것도 안 해도 잘만 돌아간다. (3) +10 22.10.29 4,569 146 27쪽
318 아무 것도 안 해도 잘만 돌아간다. (2) +8 22.10.29 4,304 131 22쪽
317 아무 것도 안 해도 잘만 돌아간다. (1) +9 22.10.28 4,564 153 27쪽
316 Celebrity. (2) +8 22.10.27 4,529 148 28쪽
315 Celebrity. (1) +10 22.10.26 4,605 144 27쪽
314 지적인 액션영화는 망할 걸? +4 22.10.25 4,639 155 26쪽
313 엄마는 여한이 없어..... +11 22.10.24 4,572 144 29쪽
312 세계 최초의 D-Cinema! +5 22.10.22 4,513 154 25쪽
311 환경이 아닌 인식의 문제. (4) +4 22.10.21 4,457 143 24쪽
310 환경이 아닌 인식의 문제. (3) +11 22.10.20 4,372 160 22쪽
» 환경이 아닌 인식의 문제. (2) +8 22.10.19 4,471 132 22쪽
308 환경이 아닌 인식의 문제. (1) +6 22.10.18 4,568 155 22쪽
307 괴짜 같은 녀석..... +7 22.10.17 4,512 150 25쪽
306 영화 기술사의 한 획! (5) +13 22.10.15 4,534 162 20쪽
305 영화 기술사의 한 획! (4) +5 22.10.15 4,270 129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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