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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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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최근연재일 :
2024.07.0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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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1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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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영화 기술사의 한 획! (5)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해냈어. 이제 좀 즐겨야겠어.]

[이 방을 나가는 방법부터 찾고.]


이 무식한 커플과 달리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 커플은.


[패턴이야. 책장에 꽂혀있는 책의 색깔.]


책장에 가지런히 꽂혀있는 일정한 패턴의 책들.

그 가운데 다른 색깔의 책들의 권수는 어떤 숫자를 나타낸다.

시작의 방을 빠져나갈 수 있는 번호키다.

별 볼일 없는 예술가 데이비드와 창녀 커플 역시 시작 지점 방을 빠져나온다.

벽에 걸려있는 사진의 힌트를 조합해 버튼의 순서를 알아내야 하는 퀴즈를 풀어서.


“Jay, 도저히 모르겠어!”


배우들이 류지호에게 항의했다.


“......”


류지호는 답을 알려주지 않았다.


“답을 풀어야 하는 것 때문에 배역에 몰입할 수가 없어.”

“우리가 리얼리어티쇼에 출연하는 게 아니잖아.”

“문제 풀이 때문에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다고.”


여자배우들이 연기를 못할 정도라고 호소했다.


“내가 문제를 푸는 거라면서? 나한테는 알려줄 수 있잖아.”


스크립트에도 힌트 외에 답은 묘사되어 있지 않았다.

퀴즈의 답은 오로지 류지호와 각색 작업을 했던 김윤희만 알고 있다.

꿈쩍도 하지 않는 류지호로 인해서 배우들 스스로 진짜 단서들을 모아 열쇠를 찾거나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Jay.....!”


배우들은 막힐 때마다 류지호에게 답을 알려달라고 요구했다.

사정도 했다.

류지호는 요지부동이었다.

절대 답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자, 배우들은 스크립터로 참여하고 있는 김윤희를 공략했다.

그녀 역시 절대 입을 열지 않았다.


“답답해 미치겠네!”

“후우. 이러다 진짜 미처버릴 것 같아.”


탈출 방 세트는 실제 밀폐되어있지 않았다.

촬영 편의를 위해 가벽의 한 면은 상시 개방되어 있다.

배우들은 언제든지 세트를 벗어날 수 있다.

헌데 조명 세팅을 바꾸거나, 데이터 백업을 하는 시간에도 배우들은 세트장을 나오지 않았다.

그곳에서 서로 머리를 맞대고, 영화 속 탈출 방의 문제를 풀었다.

손이 남는 스태프도 문제 풀이에 끼어들었다.

배우들과 함께 머리를 굴렸다.

의외로 쉽게 찾아지는 단서도 있다.

그런 것이 더욱 의심스럽다.

똑똑한 사람이 함정에 더 잘 빠지는 이치다.

꼬아서 생각하다가 낭패를 당하는.

그런데 방 탈출과 관련되어서 어떤 장난도 없다.

의심하고 복잡하게 생각을 하도록 유도하는 연출과 관객의 밀당만 있을 뿐.

관객들을 헛갈리게 해서 주인공들만큼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어 줄.

D-Cinema 엔지니어들은 류지호와 김윤희가 짜놓은 퀴즈와 문제를 쉽게 풀었다.


“배우들에게 절대 알려주지 마세요.”

“우리도 듣지 않겠어요.”


스태프들도 자신들이 직접 풀겠다며 정답을 듣지 않았다.

그렇게 현장은 모두가 방 탈출 게임에 몰입했다.

어쨌든 저마다의 방식으로 커플들은 시작의 방을 빠져나오는 것에 성공한다.

막상 문제를 풀고 나면 허무할 정도로 쉬웠다.


✻ ✻ ✻


거실 같은 공간에 주인공 모두가 모인다.

아직까지 모두가 여유롭다.


[이건 도전이야. 지능 테스트 같은.]

[알았어. 그럼 빨리 어떻게든 해 봐.]

[그 방은 어땠어?]

[쉬웠어.]

[시시해]

[재수 없는 놈. 잘난 척 하기는.]

[이 먼지 많은 곳에서 구르려면 그 비싼 옷이 더러워질 텐데.... 괜찮겠어?]

[너희들을 위해 수수하게 입고 온 거야. 걱정 마.]


하하하.

호호호.


나누는 대화들이 매우 가까운 사이만이 할 수 있는 말들이다.

서로 놀리고, 비난하고, 짜증 부려도.

모두가 웃는다.

죽마고우 사이라서 악의가 없다고 믿기에.

겉으로는 그렇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단서를 모아서 이곳을 빠져나가야지.]

[이걸 누르면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되는 건가?]


이번에도 샘이 아무 고민도 없이, 타이머를 누른다.

순식간에 1분이 경과하게 된다.


[그냥 너희는 즐기면 돼.]


영리하고 똑똑한 존의 커플이 나서기 시작한다.

그에게 경쟁심을 가지고 있는 해밀턴도 질 수 없다는 듯 팔을 걷어붙인다.

부자 해밀턴은 리더십으로, 대학교수인 존은 분석력으로, 예술가인 데이비드는 관찰력으로, 힘만 센 샘도 도움이 된다.

큰 키와 근력으로 높을 곳에 위치한 단서를 꺼내온다던가.

무거운 물건을 옮긴다던가.


[재미없어. 난 그만 두겠어.]


샘은 단순한 성격만큼 금방 게임에서 실증이 나버린다.

영화는 거의 실시간으로 방 탈출을 보여준다.

촬영도 똑같이 실시간처럼 촬영되고 있다.


✻ ✻ ✻


촬영 3주차에 접어들 때, 조지프 루카스와 프랭크 코폴라가 다녀갔다.

류지호를 격려하고 응원하기 위해서?

아니다.

디지털 영화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다.

두 사람은 류지호와 인사만 나누고 냉큼 로저 A 딕스에게 달려갔다.

DALLSA Origin 카메라를 비롯해 디지털 영화 작업공정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었다.


“매너를 알 만큼 알만한 양반들이 남의 촬영장에 와서 뭐하는 짓이래."


프로듀서 앨런 포스터가 당사자들에게는 직접 말하지 못하고, 류지호의 곁에 찰싹 붙어 투덜거렸다.


“놔 둬.”


류지호는 상관없다는 투다.


“저 모습은 널 깔보는 행위라고.”

“모니터 근처에 오지도 않고, 촬영에 간섭하는 것도 아닌데 뭘.”

“촬영에 방해만 되어봐. 내가 가만히 있나.”

“우린 저들 신경 쓰지 말고 촬영에 집중하자고.”


두 사람 말고도 꽤 많은 사람들이 촬영장을 다녀갔다.

할리우드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남의 촬영장에는 방문하지 않는 것이 업계 룰이니까.

게다가 <Escape> 촬영장에는 여러 연구소를 옮겨놓은 것처럼 각종 장비들이 즐비했다.

보안문제도 있다.

그럼에도 류지호는 할리우드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인사들을 위해 촬영장을 공개했다.

DVD가 받아들여지는 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D-Cinema 역시 저항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 중에 가장 열정적인 인물은 프랭크 코폴라와 조지프 루카스다.

프랭크 코폴라는 이미 1979년 선언한 바 있다.


“영화와 디지털 공학 그리고 위성에 관한 커뮤니케이션 혁명을 보게 될 것이다.”


당시에 프랭크 코폴라는 컴퓨터를 통한 영화 제작으로 거대 스튜디오가 아닌, 감독의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했다.

조지프 루카스는 D-Cinema의 선봉장이나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1977~1983년에 제작한 <스타워즈> 1~3편을 최신 VFX 기술을 적용해서 새로운 디지털 효과로 한창 재가공하고 있다.

이미 개봉 일정까지 잡혀 있다.

두 사람은 여러 번 <Escape> 촬영장을 방문했다.


“포스트프로덕션 작업 공정의 까다로움은 사용자에게는 단점으로 다가올 겁니다.”

“그런 단점이 의외의 판도 변화를 가지고 올 거야.”

“소닉의 카메라를 쓰실 계획이라면서요?”

“해상도 때문에 영화 전편에는 쓰지 못할 것 같아. 자네가 테스트하는 시네마 카메라가 이 정도라면, 디지털 캠코더는 더 실망스럽겠지.”

“소닉의 업무용 디지털 캠코더도 2K에 거의 근접할 걸요?”


조지프 루카스는 영화에 사용할 목적으로 소닉에 정식으로 디지털 카메라 개조를 의뢰한 상태다.


“전체적으로 밝게 찍는 것 같은데, 후반에서 전체적으로 어둡게 돌릴 생각인가?”

“야간에 조명이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노이즈가 생길 수 있어요. 노이즈가 발생해도 후반작업에서 어느 정도 잡을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화질은 조금 포기해야겠지만. 가능하면 밝게 찍어서 Da Vinci의 소프트웨어로 조정을 하게 될 것 같아요.”

“디지털 카메라는 하이라이트 부분이 필름에 비해서는 약한 편이지. 그래서 ND필터를 사용하고 조명으로 보완하거나 약간 눌러주고 촬영한 뒤에 후반에서 조절하는 방식을 권장하지.”

“DALLSA Origin은 현재까지 나온 디지털 카메라보다 관용도가 넓은 편이라서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닙니다만. 현장에서 문제가 없이 촬영을 했어도 디지털 후반공정을 잘못하는 경우에 화질손상과 함께 하이라이트 부분이 손실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하네요. 그래서 Da Vinci 엔지니어가 현장에 상주하며 후반을 어떻게 하느냐를 미리 염두에 두고 촬영을 하고 있어요.”


류지호는 조지프 루카스와 점심시간을 이용해 디지털 영화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아주 유익한 대화였어. 좋은 아이디어를 많이 떠올릴 수 있는 시간이었네.”

“덕분에 저도 많을 걸 배울 수 있었어요.”


누가 뭐라고 해도 디지털 영화 분야의 선구자다.

류지호는 조지프 루카스로부터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반대로 조지프 루카스는 류지호로부터 미래의 보편적인 작업방식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

두 번 정도 더 만남을 가졌다.

이후로 조지프 루카스는 더 이상 촬영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앨런 포스터가 촬영장 방문을 요청한 사람들에게 한소리를 한 모양이다.

어느 순간 방문자들이 싹 사라졌다.


❉ ❉ ❉


커플들은 밀폐된 공간에서 목숨을 담보로 한 잔인한 게임과 마주하게 된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거야.]


방 탈출 게임이 진행될수록 자신만의 생존을 위해 커플들은 남을 이용하기 시작한다.

결국 문제가 발생한다.

퍼즐을 다 풀었음에도 문이 열리지 않는다.

무언가 잘못됐다.

첫 번째 희생자가 나오게 된다.

샘의 여자 친구가 죽음을 맞이한다.

마침내 목숨을 담보로 한 잔인한 게임과 마주치게 된다.

여자 친구의 죽음에 샘이 이성을 잃고 폭주한다.

그의 난동으로 단서 일부가 훼손된다.

친구들은 그를 진정시키는 걸 포기한다.

그들이 선택한 방식은 샘을 따돌리기 것이다.

희생자가 나오면서 더 이상 게임이 아니게 되어 버린다.

살인사건이 된 것이다.

남은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심리적 압박감으로 패닉에 빠진다.

남은 이들은 미친 듯이 탈출을 위해 몸부림친다.

시간은 흐를수록 하나 둘 친구들이 죽어간다.

친구의 죽음에 냉정함과 신뢰감을 잃어간다.

극한 상황에 처해야 성격이 드러나는 법.

다음은 자신의 차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다들 극심한 이기심에 빠진다.

쓸데없는 소모적인 논쟁과 분열이 일어난다.

결국 친구를 배신까지 하는, 인간의 잔혹함을 보여주는 장면까지 등장한다.

게임의 주재자는 중요한 순간에 선택을 강요한다.

가령 우리 안에 고양이 한 마리가 갇혀 있는데, 고양이를 이용해 문제를 해결해야하는 미션이 주어진다.

샘은 우리 안에 갇힌 고양이를 오븐에 넣고 삶아버린다.


[고양이 대신 네가 대신 오븐에 들어갈 거야?]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고양이를 오븐에 밀어 넣는 장면에서는 소름이 쫙 끼친다.

인간의 내면에 감춰진 악의가 드러난다.

그 외에도 다양한 마이너스 감정들이 표출된다.

도대체 왜 자신들이 죽어야 하는지.

탈출은 과연 할 수 있는 것인지.

콜걸은 대사도 거의 없고 존재감도 없다.

간혹 한 마디씩 할 때마다 자신을 제외한 7명의 이기심과 잔혹성을 꼬집는다.


‘인간의 행위에 있어서 선과 악은 본인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 되어지는 것이라는 걸 말하고 싶은 것일까.’


한편으로는.


‘선과 악을 떠난 자기방어의 행동은 비난 받을 수 없는 행동이라고도 주장하는 것도 같고.’


누구라도 극한 상황에 처하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영화가 클라이맥스로 치닫게 되면 그런 생각은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계속해서 일행 중 누군가가 죽어나간다.

살아남은 이들은 도저히 방을 빠져나갈 수 없다.

창문도 없고, 오로지 거실을 중심으로 방 네 개 뿐이다.

샘의 엄청난 완력으로도 출구를 열 수 없다.

데이비드가 기지를 발휘해 감춰져 있던 환풍기를 찾아낸다.

언제나 이런 장르에서 희생자들은 주로 비명지르고 조심성 없는 여성이다.

클리셰에 따라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여자는 따돌림을 당했던 콜걸이다.

리더처럼 행동하던 해밀턴이 친구 중에서 제일 먼저 죽는다.

세 친구는 콜걸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

없는 사람 취급한다.

심지어 그녀를 이 살인게임에 데리고 온 데이비드조차도.

그녀를 내버려두고 환풍구로 들어가 버린다.

존은 망설인다.

위험을 감지해서?

절대 아니다.

그는 폐소공포증이 있다.

살기 위해서는 폐소공포증이 문제가 아니다.

몸이 꽉 낄 것 같은 좁디좁은 환풍구로 들어가야만 한다.

그런데!

환풍구의 끝에 도달하면 맞이하게 되는 절망.

환풍구는 외부로 이어진 것이 아니다.

또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문제를 풀어야 하는 존은 폐소공포증으로 환기구 안에서 발작을 일으킨다.

머리를 쓸 줄 모르는 샘은 데이비드만 닦달한다.

어찌어찌 문제를 푼다.

환풍구를 빠져나가려는 순간, 벽이 내려온다.


[날 두고 가지마! 샘...! 데이빗! 나를 보란 말이야!]


좁은 공간에서 발작을 일으키던 존은 결국 환풍구에 안에 갇혀 죽게 된다.

힘겹게 환풍구를 기어왔건만.

그들이 도착한 방은 이 게임을 시작했던 최초의 방이다.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인간의 역사는 언제나 어리석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은유일까.


[처음부터 움직이지 말았어야 했어! 그랬다면 아무도 죽지 않았을 거야!]


이제 남은 사람은 데이비드와 샘, 단 둘 뿐.

둘에게 콜걸의 생사는 관심사가 아니다.

완전히 이성을 잃어버린 샘은 데이비드에게 화풀이를 한다.


[모두 다 너 때문이야! 이 새끼야!]


무자비한 폭력.

샘은 데이비드를 이성을 잃고 폭주한다.


퍽!


아이러니다.

데이비드를 죽을 위기에서 구해준 것은 환풍구로 들어갈 때 매정하게 버려졌던 콜걸다.


[이거 어디서 찾았어?]


콜걸이 내민 카드 키가 의심스럽다.


[지금 그게 중요해?]


선택의 여지는 없다.

마침내 두 사람은 방 탈출에 성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최종적인 시험이 남아 있다.

빈 공간에 테이블과 의자 두 개가 놓여있다.

그리고 의자 뒤로 각각 문이 있다.

하나의 테이블, 두 개의 의자, 두 개의 문.


[지긋지긋해.]

[이 개자식아! 이제 그만 좀 해!]


그때 스피커에서 변조된 음성이 흘러나온다.

프롤로그에서 들렸던 바로 그 목소리.


[비겁하게 숨어 있지 말고 모습을 드러내란 말이야!]

[이제 마지막 관문만 남았어.]

[그 놈이지? 그 놈 맞지! 일부러 내게 접근한 거지? 이런 짓을 꾸미려고.]


불길한 목소리는 프롤로그와 똑 같은 퀴즈를 낸다.

퀴즈가 의미하는 것은 질투, 공포, 두려움, 온갖 부정적인 마음들....

결국 한 단어로 귀결되는 것은 아닐까?

악한 마음, 즉 인간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악의라는 감정으로.


[왜? 도대체 왜!]


데이비드가 마지막 궁지에 몰려 콜걸을 탓한다.


[당신이 날 불렀잖아.]

[난 널 부른 적이 없어.]

[아니야. 분명 난 당신이 불러서 왔어. 당신 때문에 나까지 이런 개 같은 상황에 처한거라고!]


두 사람의 언쟁과는 상관없이 계속해서 시간을 흘러간다.


[이럴 시간 없어. 선택을 해야 돼.]

[먼저 선택해.]

[아니냐. 너부터.....]


결국 데이비드가 의자를 선택해 앉는다.

콜걸이 남은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데, 변덕을 부린다.

자리를 바꿔 앉는다.

두 사람이 앉아 있는 의자에 설치되어 있는 버튼.

자신이 살 것인가.

아니면 상대방을 살릴 것인가.

마침내 최종 선택의 순간이 찾아온다.


꾹!


한계 시간을 1초 앞두고, 두 사람이 동시에 버튼을 누른다.


불쑥.


의자에서 튀어나온 송곳이 데이비드의 항문을 지나 복부를 뚫고 나온다.


덜컹!


데이비드 뒤에 있던 문이 활짝 열린다.

마지막에 자리를 바꿔 앉지 않았다면.

부질없는 후회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모두 탈출 방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아무런 인연도 없는 콜걸만 살아남는다.

탈출 방에 들어간 4쌍의 남녀는 극한 상황에 처하면서 점차 감춰져 있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함축해서 드러낸다.

인간 군상의 모습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셈이다.

굳이 <큐브>와 비교하면 덜 상징적이긴 했다.

<큐브>에서는 탈옥수, 여의사, 수학자, 경찰, 건축가, 자폐증 환자들이 등장한다.

현대사회를 대변하는 인물들을 적절하게 보여준다.

폐쇄된 공간에 놓인 사람들이 얼마나 나약한지, 인간다움, 존엄성, 속물근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큐브>는 열린 결말로 유명해 진다.

결말에 대해서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이런 열린 결말이 갖고 있는 상상의 여지는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Escape> 역시 열린 결말이다.

그런데 해석과 상상의 범위가 <큐브>에 비해 비교적 좁다.

<Escape>에서 최후의 생존자는 가장 비천한 신분인 콜걸이다.

그녀가 탈출 방을 빠져나오며 맞닥뜨린 현실 세계는 더욱 비참하다.

슬럼가의 지저분한 골목이니까.

새벽의 차갑고 서늘한 공기는 비정한 사회를 암시한다.

또 다른 공포이기도 하고.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로 이어지는 수미상관식 설정에 밤과 새벽 시간대를 대비시킨다.

라스베이커스라는 화려한 도시와 슬럼가도 대비시킨다.

콜걸이 911 긴급전화를 건다.

그리고 들려오는 탈출 방 주재자의 질문.


[정말 탈출했다고 믿어. 진짜 그렇게 생각해?]


<큐브>가 인간의 삶과 사회를 풍자한다면 <Escape>는 인간 각자의 삶을 움직이게 했던 원동력, 즉 각자 내재되어 있던 부정적이고 음습한 감정들을 드러낸 것에서 머문다.

류지호는 사회와 세상을 탈출 방이란 공간에 함축하지 않았다.

영화속에서 악의와 이기심이 충돌했던 작고 초라한 방은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현실 세상은 더욱 큰 악의들이 충돌하는 곳이니까.


[악취 나는 썩은 사과가 중요한 게 아니야.}

[당신은 벌을 받을 거야! 경찰이 오고 있어!]

[하하하.]

[Good Girl..... 썩은 사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과상자가 문제야.]


뚜뚜뚜.


공중전화 통화가 일방적으로 끊어지면서 경찰 사이렌이 점점 가까워진다.


지지직-


화면이 꺼지면서 영화도 끝난다.

사건은 미궁으로 남겨둔다.

영원히 감추어지게 될 진실들....

류지호는 영화 엔딩을 열린 결말로 맺으면서, 이 사건을 주재한 진정한 악에 대한 단서는 남겨두었다.

류지호의 전작 <The Killing Road>를 안 본 관객은 이해할 수 없는 장치다.

두 작품을 연결 선상에 놓고 볼 때 관통하는 단어는....

인간 내면의 악의(惡意)다.

그것의 크기 문제다.

여담으로 <The Killing Road>를 여러 차례 본 열혈관객이 나중에 <Escape>를 보고 나서, 결말을 이렇게 정리하게 된다.


- 사람들은 그녀가 살아남은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내가 보기에 그녀는 무조건 살해당할 것이다. 왜냐하면, 탈출 방으로 초대한 인물이 다름 아닌 벤 사이퍼였기 때문이다.


해리슨 노튼이 실제 영화에 출연하진 않는다.

VIP룸 직원은 해리슨 노튼과 체형이 비슷한 UCLA TV·영화 연기전공 졸업생이 연기했다.

해리슨 노튼은 목소리 출연만 할 예정이다.

<Escape>에서는 악당을 따로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관객이 탈출 방 초대자가 벤 사이퍼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악당은 ‘왜 그들을 죽였나’를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게 된다.

벤 사이퍼는 사이코 패스 살인마 캐릭터이니까.


‘한니발 렉터나 마이클 마이어스급은 아니지. 사실 <Escape>에서는 벤 사이퍼란 걸 몰라도 상관없고.’


웨스트우드 주택 지하작업실에는 벤 사이퍼와 관련한 많은 아이디어들이 기록되어 있다.

류지호의 영화마다 일종의 이스터 에그로 심어 넣었다가 점차 영역을 확장하는 캐릭터.

배우는 계속해서 바뀌겠지만, 벤 사이퍼를 독자적인 악당 캐릭터로 조금씩 성장시키는 장기적인 그림을 궁리 중이다.

벤 사이퍼는 배트맨의 숙적 ‘조커’와는 결이 다른 괴물.

일명 ‘공공의 적‘이라고 불리는 사회악의 표상.


‘언젠가 그 빌런을 가지고 Timely 캐릭터와 크로스 오버 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Timely 코믹스의 대표 히어로들 대부분은 뉴욕에서 활동한다.

벤 사이퍼를 서부에서 동부로 이동시킬 필요가 있다.

<Escape> 촬영을 마치자마자 또 다른 영화를 궁리하는 류지호다.

영양가 없는 궁리였지만.


작가의말

즐겁고 편안한 휴일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PS. 루시오엘님, 을병정님 후원 감사합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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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 선택과 집중. (1) +5 22.11.01 4,597 148 24쪽
320 아무 것도 안 해서, 안 돌아가는 일도 있더라. +5 22.10.31 4,579 144 30쪽
319 아무 것도 안 해도 잘만 돌아간다. (3) +10 22.10.29 4,569 146 27쪽
318 아무 것도 안 해도 잘만 돌아간다. (2) +8 22.10.29 4,304 131 22쪽
317 아무 것도 안 해도 잘만 돌아간다. (1) +9 22.10.28 4,565 153 27쪽
316 Celebrity. (2) +8 22.10.27 4,530 148 28쪽
315 Celebrity. (1) +10 22.10.26 4,606 144 27쪽
314 지적인 액션영화는 망할 걸? +4 22.10.25 4,640 155 26쪽
313 엄마는 여한이 없어..... +11 22.10.24 4,573 144 29쪽
312 세계 최초의 D-Cinema! +5 22.10.22 4,514 154 25쪽
311 환경이 아닌 인식의 문제. (4) +4 22.10.21 4,457 143 24쪽
310 환경이 아닌 인식의 문제. (3) +11 22.10.20 4,372 160 22쪽
309 환경이 아닌 인식의 문제. (2) +8 22.10.19 4,471 132 22쪽
308 환경이 아닌 인식의 문제. (1) +6 22.10.18 4,568 155 22쪽
307 괴짜 같은 녀석..... +7 22.10.17 4,512 150 25쪽
» 영화 기술사의 한 획! (5) +13 22.10.15 4,535 162 20쪽
305 영화 기술사의 한 획! (4) +5 22.10.15 4,270 129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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