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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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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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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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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1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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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쪽

Big Shot. (3)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G.O.M이 전통이 없기 때문이에요. 백화점만 주로 파고든 김 팀장은 모르겠지만, 문 실장은 전국의 극장들을 돌아보며 느꼈을지 모르겠습니다. 거의 모든 극장들의 디자인이 똑 같은 곳이 없구나 하는.”


문지열이 그제야 류지호가 말하는 전통을 이해했다.


“아!”


G.O.M Cinemas는 사업기획 단계부터 다양한 전략을 구사했다.

영화관 로비의 선명하고 화려한 색상 대비로 관람객을 매혹시키고, 테마파크에서나 볼 수 있던 다양한 조명 시설로 공간을 풍성하게 꾸몄다.

브랜드의 차별성을 두기 위해 아이덴티티 디자인을 강화하기도 했다.

단관 극장은 건물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독자성을 구축할 수 있다.

반면에 대형유통 시설이나 복합 문화 시설에 입점 형태로 들어가는 멀티플렉스는 로고나 그래픽 디자인 등으로 브랜드를 어필할 수밖에 없다.


“현재 한국의 멀티플렉스에서 영화를 보게 되면 마치 인스턴트커피를 마신 것 같아요. 헌데 대한, 단성사, 피카디리, 스카라, 부산의 부영극장 같은 곳에서 보면 원두커피를 마신 것 같죠.”


대기업 계열 멀티플렉스는 주로 백화점이나 쇼핑몰에 입점을 한다.

때문에 건물의 외양은 천편일률적이다.

현대적인 감성으로 세련되어 보일 수는 있지만, 규격화된 복합시설의 일부일 뿐이다.


“단관극장들은 극장외형부터 특유의 시그니처가 있습니다. 하지만 멀티플렉스는 일단 백화점으로 들어간 후에 화려한 인테리어로 치장한 극장을 따로 찾아가서 영화를 봐야하는 거죠. 극장체인마다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내포한 인테리어를 했다고 하더라도 마니아가 아닌 한 일반관객에게는 특별한 차이점을 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1호점의 건물 입구부터 G.O.M의 Gate Of Movie를 강조하신 거군요?”

“첫 시도라 어설펐어요.”


기존 한국의 유사 멀티플렉스와 완전히 다른 미국식 간판과 입구를 벤치마킹해서 선보였다.

류지호가 보기에는 미진한 것도 사실이다.


“비록 멀티플렉스의 리스크 분산을 위해 백화점 사업까지 준비하고 있지만, 주된 사업은 영화입니다. 가능하면 멀티플렉스가 우선되었으면 좋겠네요.”


말이 되지 않지만, 수행원들은 토를 달지 않았다.

광성시네마가 멀티플렉스의 후발 주자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실상은 달랐다.

BGV 강변점에 조금 앞 서 일산 광성백화점에서 1호점을 오픈했다.

자체 유통 시절이 없는 BGV나 메가씨네와 달리 백화점이라는 든든한 지원자가 있었던 광성시네마는 그 장점을 살려 백화점 안에 자체 영화관을 입점 시킬 수 있었다.

유통 매장과 영화관을 엮어 관람객과 쇼핑객의 동선을 자연스럽게 하나로 잇는 전략을 전개한다.

여기에서 발생한 시너지 효과로 광성시네마를 단숨에 업계 2위로 성장시켰었다.

결국 BGV 역시 같은 집안의 뉴월드와 손잡았다.

그를 통해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경쟁이 치열해졌다.

멀티플렉스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상권이 중첩될 수밖에 없는 문제가 발생했었다.


“내가 어리석어 보일 겁니다. 비즈니스에 감성이라니. 하지만 극장이... 영화를 보는 행위가 그저 인스턴트커피 한 잔 가볍게 마시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 속에서 누군가에게는 친구와 또는 연인과 때론 가족과 함께 한 추억이... 기억이 함께 남는 것이 되면 좋겠습니다. 나는 포장지에 담긴 커피를 만들어 파는 사람이 아니라, 생원두 볶는 향기, 그 깨 볶는 향기부터 커피 향까지를 팔고 싶네요.”


문지열이 대표로 대답했다.


“추상적인 말씀이지만, 무얼 전하고자 하시는지는 알 것 같습니다.”


류지호는 앞으로 전개될 영상미디어 트렌드를 잘 알고 있다.

DMB, 인터넷 스트리밍, 더 나아가 스마트폰 기술의 발달, 여가 활동의 다양화까지.

영화관의 입지는 날로 좁아질 것이다.

특히 IP TV를 중심으로 한 부가판권 시장의 빠른 성장은 영화관 산업을 위기에 빠트릴 터.

한동안은 영화가 극장에서 막을 내리고 DVD나 비디오로 출시되기까지 최소 몇 주에서 최대 몇 달이라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십여 년이 지나면 영화를 내리고 며칠 만에 집에서도 최신 개봉 영화를 볼 수 있게 된다.

심지어 OTT와 시간차 없이 동시에 영화가 공개되기까지 한다.

집밖을 나서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다양한 시도를 전개해야 한다.

음향 설비를 더 전문화하고, 3D 상영관·스크린X·Eye-Max 스크린을 마련하는 등 시설에 막대한 비용을 투자해야 한다.

한편 클래식 공연이나 콘서트 실황을 중계해 영화가 아닌 콘텐츠로도 확장을 시도해야 한다.

국제 스포츠 대회, E-스포츠 결승전을 중계할 수도 있다.

이미 오동석에게 그런 흐름에 발맞추어 나갈 마스터플랜을 알려주었다.


“새로운 Theater Sign 디자인은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답니까?”

“공모전을 진행할지, 전문 디자인 업체에 용역을 줄지 논의 중에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멀티플렉스의 첫 번째 디자인은 극장입구를 장식하는 화려한 네온 간판이다.


“코엑스 몰에 들어갈 극장이 오픈하기 전까지 확정하는 걸로 하라고 전하세요.”

“예!”


멀티플렉스가 기존 영화관과 다른 가장 큰 변화는 역시 디자인에서 찾을 수 있다.

단순히 로고나 공간 장식을 화려하게 만드는 것만으로는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

차별화된 콘셉트는 기본이다. 공간 디자인 전략 역시 멀티플렉스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요소다.


“우리는 브랜드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고급화 전략을 펼쳐야겠죠.”

“지역의 특색을 살린 공간을 선보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맞아요. 입체적인 전술을 구사해야 합니다.”

“의장님 말씀처럼 영화관 전체를 하나의 문화 공간으로 포지셔닝해서 다양한 즐거움으로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겠습니다.”


트라이-스텔라 배급 영화들의 시사회를 다니면서 미국 극장들이 어떻게 경쟁하는지를 확인한 류지호다.


“미국의 단관 극장이나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정교한 디자인 전략은 시대적 흐름에 도태되지 않으려는 치열한 고민의 산물입니다. 사람들은 고민을 이해하려지 않고 결과만 카피하려고 하죠. 그래선 창조적 모방이 될 수 없어요.”

“그런 면에서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황 실장의 아이디어가 돋보인다고 생각합니다.”


문지열이 스탠퍼드에서 유학중이 황재정을 언급했다.

가온 웨딩홀 사업부에서는 평상시 비어있는 예식홀에서 매주 다양한 행사를 열고 있다.

시낭송회도 하고, 미니 클래식 공연도 개최하고 있다.

미술전문가를 초청해 어려운 미술작품을 사람들에게 쉽게 설명하는 강좌도 개최된다.


“특히 삼국지 강의나 한국사 강의 인기가 많다고 하던데.....?”

“지자체에서 먼저 강의를 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황재정의 계획이 단발성으로 끝날 것이라 예상했다.

구청에서 여는 각종 문화행사도 사람 모으기 쉽지 않은 시기다.

게다가 작년부터 건설사들의 부도 행렬로 인해 실업자가 계속 증가하는 상황이기도 하고.


“물론 이익을 크게 보진 못합니다. 다만 가온웨딩의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고 있습니다. 경쟁 예식장들이 더 호화롭고 더 비싼 뷔페음식으로 고객의 호주머니를 털어낼 궁리를 하고 있을 때 지역사회와 함께 호흡하며 친밀감을 유도한다는 접근이 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너무 친밀해져서 결혼식의 신비감이 떨어지진 않아요?”

“결혼식만을 위한 신랑신부 꽃길을 시즌마다 변화를 주기 때문에 자주 예식홀에서 강의를 듣는 이들도 막상 결혼식에 와서 보면 처음 와 본 것처럼 느낀다고 합니다.”


과장된 이야기겠지만, 나름 운영을 잘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암튼 황 실장의 아이디어는 G.O.M에 그대로 적용해 볼 순 없겠죠. 다만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뭐 하나 하면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듯 천편일률적인 브랜드를 내세운 디자인으로 깔아버립니다. 멀티플렉스가 이른 시간에 일반화된 미국은 그렇지 않아요. 각 지방 또 각 지역에 맞는 디자인을 차용해 특색을 갖춥니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항구도시, 예향의 도시, 산과 들, 산업도시, 관광도시, 쌀의 도시 등.”

“대기업이 따라하지 않을까요?”

“아니요.”


류지호의 단언에 팀장들이 의아한 시선으로 쳐다봤다.


“그들은 말 그대로 대기업이잖아요.”

“.....?”

“그들은 절대 문화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합리성과 규모의 경제를 일순위에 놓기 때문이죠. 극장마다 디자인을 달리한다면 비용이 올라갑니다. 차라리 그들은 그 돈으로 한 곳이라도 더 상영관을 열려고 할 걸요.”


당장 이곳에 있는 팀장들도 마찬가지 생각이다.

멀티플렉스의 장점 중에 하나가 인테리어 디자인의 통일성이다.

그를 통해 브랜드를 고객들에게 각인시킨다.

게다가 전국의 극장마다 디자인을 달리한다면 초기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들어가게 된다.

그런데 10~20년 후 100여 개가 넘어갈 극장 전체의 디자인과 인테리어를 바꾼다고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차별화된 극장을 건설하는 것이 싸게 먹힐 수도 있다.


“웨딩 스튜디오를 어떤 방식으로 접근했는지 알아요?”

“고급화. 차별화. 브랜드. 신뢰. 그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너무 즉각적으로 대답이 나와서 류지호는 얼떨떨했다.


“가온의 뿌리를 알아야 현재를 인지하고 미래를 계획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뿌리라고 할 것까지야....”

“지금도 웨딩 부분에서 다른 경쟁업체들이 쫒아오지 못하는 부분입니다. 웨딩 비디오와 포토앨범이 일반화된 지금은 가온웨딩 역시 다른 업체들처럼 각 상품별로 비슷한 포맷으로 결과물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가격에 따라 차별점이 뚜렷하고, 초창기부터 만들어온 브랜드 이미지로 인해, 예비 신랑신부에게 가온 스튜디오에서 웨딩촬영을 하는 것은 좀 더 특별하다는 인상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방심하면 안 됩니다. 어렵게 만들어놓은 브랜드 이미지를 한순간에 망처질 수도 있으니까.”

“감사실과 비서실에서 꾸준히 교육·감시를 하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갑자기 팀장들이 경쟁적으로 아이디어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G.O.M 강남점에는 아직 열지 않은 스크린이 네 개나 됩니다. 그 가운데 한 개관 정도에서 다양한 이벤트를 벌일 수도 있습니다.”

“PC통신 영화 동호회를 위한 상영회를 열어도 될 것 같습니다.”

“소년소녀 가장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나, 장애인만을 위한 특별한 상영관을 만들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는 수익을 위한 것이 아닌 사회공헌 프로그램입니다.”


마지막은 장애인 차별이 될 수 있는 의견이다.

실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류지호는 특별히 바로잡아 주지 않았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어요.”

“파리의 한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철학자이자 영화감독을 초청해 철학 강의를 진행한답니다. 이 프로그램으로 인해 침체기에 빠지고 있는 프랑스 철학이 대중의 주목을 받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하더군요.”


문지열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했다.


“역시 예술을 사랑하는 프랑스답습니다.”


사실은 앞으로 7~8년 후에나 벌어지는 일이다.

팀장들에게 극장이 가진 고정관념을 깨주기 위해 미래에 벌어질 일을 들려줬다.

올리비에 푸리(Olivier Pourri)는 프랑스 철학계의 이단아다.

수년 후 영화를 주제로 고전철학을 얘기하는 ‘스튜디오 필로’라는 이름의 강좌를 영화관에서 열게 된다.

대중들에게 큰 호응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한국영화 감독님들 가운데 해외에서는 인정을 받지만, 정작 한국에서 저평가 받는 분들이 몇 분 계시죠. 그런 분들을 초청해 관객에게 자신의 영화관과 철학을 강의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토크쇼는 어떻습니까? 진행자로 비평가나 인문학 교수를 함께 무대에 올려도 좋을 것 같지 않습니까?”

“조금 오버하면 음악영화나 뮤지컬 영화를 상영하면서 파티를 열어줘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좌석을 모두 걷어내야 할까요?”

“그건 영화 상영이 아닌 그냥 놀자 판 아닙니까?”

“파티나 잔치라고 하지요.”

“관객층을 중장년층으로 넓힐 겸, 노인들을 초청해 추억의 흑백영화를 상영하는 건 어떻습니까?”

“60세 이상 노인 할인도 고려할 수 있겠군요?”


활발하게 토론을 벌이는 팀장들을 류지호는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자신이 입을 열게 되면 열띤 토론에 찬물을 끼얹게 된다.

모두가 즉시 입을 다물고 류지호에게 집중할 테니까.


‘유능한 사람들과 일하는 건 즐거운 거야. 척하면 착이니까.’


류지호는 가온이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그룹이 되기까지 이들과 쭉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배신만 하지 않는다면....’


류지호와 수행원들은 밤늦게 부산에 도착했다.

부산국제영화제 본부 호텔인 해운대 낙원호텔에서 하루를 묵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을 떨었다.

식사를 마치자마자 수영강변으로 향했다.

첫 삽은커녕 개발사업의 향방도 오리무중이다.

현재 센텀시티 예정지는 말 그대로 허허벌판.

그나마 대규모의 컨테이너 적치장이 들어서 있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는 덜했다.

명확한 사업계획이 서있지 않은 상황에서 허허벌판을 구경한들 무슨 도움이 될까마는.

그럼에도 팀장들은 열심히 일대를 돌아봤다.


❉ ❉ ❉


“헤이! 브로~”

"......"

“오랜만이다. Jay."

“어서 와요.”


류지호가 활짝 웃으며 일행 맨 앞에 서있는 남자와 포옹하며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남자는 파커가의 셋째 브랫 파커다.

매튜가 옆에서 투덜거렸다.


“쳇. 형제인 난 안 보이냐?”


류지호가 ‘하하‘ 웃으며 매튜와도 포옹했다.

그들은 지금 김해공항 로비에 격한 재회의 기쁨을 나누고 있다.

경호원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어서 공항이용객들의 주목을 더 끌었다.


“비행은 즐거웠어?”

“지루해 죽는 줄 알았다.”

“웃기지마. 네가 내 지갑을 다 털었잖아.”

“시골 촌놈 주제에 내게 포커게임을 도전하다니. 돈이 걸린 게임에서 난 한 번도 져본 적이 없어.”

“꺼져!”


매튜와 브랫이 티격태격 했다.

류지호를 알아본 공항이용객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얼른 청사를 빠져나왔다.

청사 앞에는 승용차 다섯 대가 줄지어 대기하고 있다.

나래안전에서 파견 나온 기사겸 경호원들이 파커 필드 직원들의 짐을 받아줬다.

공항 청사를 마지막으로 빠져나온 도널드 제이콥이 곧장 류지호에게 다가왔다.


“보스.”


도널드가 인사도 생략하고 곧장 보고부터 했다.


“프로젝터는 통관절차를 마치고, 방금 전 극장으로 출발했습니다.”

“별 문제는 없었지요?”

“영화제 집행위원회와 시 공무원들의 도움으로 비교적 빠르게 절차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수고했어요.”

“별 말씀을.”


류지호가 굳이 김해공항까지 온 이유는 미국에서 공수한 디지털 프로젝터의 통관 때문이다.

매튜와 브랫이 타고 온 전용기편에 실려 왔다.

혹시나 통관에 문제가 생기면 류지호가 직접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류지호가 나설 정도의 문제는 없었던 모양이다.

차량행렬이 해운대에서 가장 멋진 전망을 자랑하는 웨스틴비치 호텔에 도착했다.

동백섬 입구에 자리한 덕분에 해운대의 긴 해변이 걸리는 것 없이 한눈에 펼쳐진다.

날이 맑으면 맑은 대로, 비가 오면 오는 대로.

항상 드라마틱한 바다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전망이 좋은 호텔이다.


“오오. 마치 산타모니카 해변에 온 것 같군.”


브랫 파커가 탄성을 터트렸다.


“산타모니카에 가보긴 한 거야? 여긴 캘리포니아 해변에 비하면....”

“아기자기하고 난 좋은데?”


두 사람이 또 다시 티격태격했다.

류지호가 나섰다.


“일단 객실에 올라가서 좀 쉬어 둬. 서울로 올라가기 전에 부산 구경 시켜줄게.”

“네가?”

“아니 내 직원이.”


미국에서 넘어온 파커 필드 직원들이 객실로 흩어지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던 류지호가 호텔을 나섰다.

도널드 제이콥이 재빨리 따라붙었다.


“시차적응 하느라 힘들 텐데 올라가서 좀 쉬도록 해요.”

“괜찮습니다. 수행하겠습니다.”


직접 수행할 때는 고집스레 류지호 곁에서 떨어지지 않는 도널드 제이콥이다.


“갑시다!”


수영만 요트경기장 야외상영장에 트럭과 차량 몇 대가 서있다.

한국인과 미국인이 뒤섞여 분주했다.

그들 주변으로는 나래안전의 경호원들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다.


끼익.


체어맨이 나래안전 경호원 사이로 들어가 상영장 앞에 멈췄다.

류지호가 모습을 드러내자, 나래안전 경호원들이 거수경례를 했다.

제복을 입고 있을 때만 거수경례를 하라고 그렇게 이야기해도 시도 때도 없이 거수경례를 고집하는 나래안전 직원들이다.

류지호는 경호팀을 밖에 남겨두고 도널드만 대동하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곧장 대형 스크린 뒤편에 마련된 영사실로 향했다.

그곳 역시 나래안전 요원들이 통제를 하고 있다.


“헤이. 보스.”

“토니.”


류지호를 반갑게 맞이한 남자는 Eye-Max의 프로젝터 개발팀장 토니 데니슨(Tony Denison)이다.

두 사람이 악수를 나누는 사이에도 엔지니어들이 분주하게 필름 영사기를 해체했다.

토니가 류지호를 한쪽으로 안내했다.

튼튼한 나무박스의 항공화물이 몇 개 놓여 있다.


“물건에는 이상이 없겠죠?”

“파커의 전용기를 타고 안전하게 옮겨왔습니다.”

“하드디스크는요?”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지 않고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염려 놓으십시오.”

“설치는 Cristie 엔지니어들이 하는 겁니까?”

“예.”


현재 영사실에서 필름 영사기를 해체하고 있는 이들은 영화 영사기 업체 Christie에서 파견 나온 엔지니어들이다.

필름 영사기를 해체한 엔지니어들이 항공화물을 개봉했다.

이중삼중으로 밀봉된 금속 물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필름 영사기 크기에 육박하는 디지털 프로젝터와 부품들이다.

토니 데이슨의 입회하에 Christie 엔지니어들이 디지털 프로젝터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영사실은 나래안전 요원들이 교대로 지켰다.

혹시나 모를 도난과 기술 유출을 대비한 조치다.

법석을 떠는 이유가 있다.

류지호의 디지털 영화 <Escape>가 부산국제영화제 월드시네마 부문에 초청됐다.

처음에는 필름 상영을 하려고 했다.

부산시장은 물론이고 LA 총영사관까지 디지털 상영을 부탁할 정도로 한국에서 성가시게 굴었다.

그렇게 해서 급하게 D-Cinema 개발팀이 상영방식을 논의하고, Christie에 연락해 디지털 프로젝터를 구하고, 영화제 측과 극장을 조정하느라 난리도 아니었다.

갑작스런 D-Cinema 상영으로 인해 극장도 부영극장에서 수영만 요트경기장 야외상영으로 변경됐다.

영화제 개막 전에 3회 상영 입장권이 매진되었다.

갑작스런 장소 변경으로 인해 혼란이 발생했다.


“그래도 빨리 혼란을 수습한 것 같습니다. 보스.”


도널드의 평가에 류지호가 쓴 웃음을 머금었다.


“뭐든 빨리빨리가 민족적 특성이라서.....”


류지호의 성격상 제대로 준비 안 된 프로젝트를 허락할 리 없다.

그럼에도 D-Cinema 상영을 허락했다.

일부러 고생을 시키기 위해서다.

앞으로 영화제를 하다보면 온갖 문제들이 터질 터.


“영화제 인지도가 낮을 때 각종 시행착오를 겪는 편이 좋겠죠.”


요트경기장 야외상영장을 관할하고 있는 책임자가 은근슬쩍 다가와 물었다.


“감독님.... LA에서 이곳까지 위성전송이 가능합니까?”

“DCP를 하드디스크에 따로 담아왔습니다. 이번에는 위성송출로 상영하지 않습니다.”

“그랬군요.”


시스템은 부산영화제 관계자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세계 국제영화제 최초로 디지털 영화 상영 이벤트가 벌어진다는 것이 중요할 뿐.

사실 디지털 영화는 부천판타스틱영화제와 성격이 맞았다.

<Escape>의 필름 상영을 위한 프린트가 조직위에 접수된 상태다.

영사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한 쓸 이유가 없지만.


‘일반 관객들이 관람하니까 영화 자체로 평가를 받을 수 있으려나?’


지난 <Dream Come True> 상영의 경우는 졸업작품이었다.

업계 관계자들을 위한 이벤트 형식이 컸다.

그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D-Cinema에 있었다.

이번에는 다르다.

관객들에게 D-Cinema는 큰 관심사가 아니다.

영화의 스토리, 미학, 감상이 중요할 뿐이다.

영화제를 찾는 관객들은 열렬한 영화팬들이라 일반 대중의 눈높이와 차이가 있지만.


❉ ❉ ✻


개막식을 하루 앞둔 날.

수영만 요트경기장에서는 필름 상영과 D-Cinema의 교차 상영 테스트가 이어졌다.

또한 부영극장 앞에서 PIFF광장 선포식이 열렸다.

그 자리에서 개막작 <차이니스박스>의 주연배우의 핸드프린팅 이벤트가 열렸다.

김기영 감독 역시 핸드프린팅을 남겼다.

그 시각에도 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감독과 배우들이 속속 본부숙소로 도착했다.

류지호는 영화제 호스트가 아니다.

그럼에도 먼저 영화인들을 찾아다니며 인사를 했다.


“굳이 보스가 일일이 찾아다닐 것까지야.....”

“한국에서는 그게 당연한 거니까요.”


해운대 수영만 요트경기장에 마련된 야외상영장에서 개막작을 관람한 류지호는 뒤풀이 파티에 얼굴을 비췄다.

류지호 입장에서 꼴 보기 싫은 선배도 많았다.

이전 삶의 기억 때문에.

속마음은 무시하고 싶었다.

문제는 류지호가 반드시 인사를 드려야 할 존경받아 마땅한 선배들이 꼴 보기 싫은 이들과 함께 어울리고 있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꼴 보기 싫은 이들과도 인사를 나눴다.

자본주의 미소를 한껏 지으면서.

류지호를 어려워하는 젊은 배우들을 배려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뒤풀이 파티에 오래 머물지는 않았다.


✻ ✻ ✻


뒤풀이 파티에 얼굴만 비치고 떠난 류지호가 웨스틴비치 바에서 매튜, 브랫, 도널드와 술잔을 기울였다.


“파커가 한국의 종자에 관심이 있을 줄은 몰랐어.”


브랫 대신 매튜 그레이엄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아시아 시장으로의 확대 그리고 한국이 전초기지 쯤 되겠지.”


한국이 다국적 종자회사들에게 잠식되기 시작한 것이 이 무렵이다.

토종 종자회사들이 하나 둘 경영난을 겪으면서 차례로 외국계 회사에 넘어갔다.

이전 삶에서 다국적 기업에 인수·합병(M&A)된 곳은 국내 5대 종묘사 중 4곳이었다.

올 초부터 청원종묘가 일본 기업에게 매각됐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제약회사 스위스 Novusartes, 미국의 농업기업 Queeny Company가 한국의 종묘회사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 판에 세계 10대 종자회사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파커 가문 산하의 종자회사 BADAF Agriscience가 가세했다.

현보 같은 대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지는 상황이다.

그 탓에 한국의 종묘회사가 다국적 기업에 넘어가는 문제는 관심조차 받지 못했다.


“왜 한국의 종묘회사를 인수하려고 하는데?”


류지호는 한국의 종묘회사들이 꽤나 알짜라는 사실을 몰랐다.


“Queeny Company 산하에 유명한 종자회사가 있어. 이번에 대만농우종묘를 인수한다는 정보를 입수했지. 경제위기를 틈타 아시아 시장 공략에 나선거야. 1억 달러에 불과한 한국 시장을 노리고 다국적 종자회사들이 달려드는 게 아니야. 중국과 일본을 포함, 중동과 호주에 이르는 범아시아 시장을 겨냥한 포석이지.”

“대만농우라는 데가 큰 회사야?”

“10대 종자회사에 들어가는 일본 회사 다음이지. 그리고 그 다음이 한국의 호농이고.”


브랫 파커가 대략적인 세계 종자시장과 메이저 종자회사들에 대해 설명했다.


“농업 분야도 굉장히 복잡하네.”

“농약도 알려줘?”

“아니 됐어. 어디를 인수하려고 하는데?”

“왜 궁금한데?”

“나도 투자하려고.”

“어디에?”

“파커가 인수하려는 종묘회사에.”

“왜?”

“이야기 들어보니까 종자를 지키는 게 내 조국에 무척 중요할 것 같아서.”

“뭔 헛소리야?”

“어디 인수할 건지나 말해줘 봐.”

“호농과 중양.”

“두 군데나?”


한국의 1,2위를 다투는 메이저 종자회사다.

특히 중양종자는 매운 고추의 대명사로 알려진 청양고추 종자를 보유하고 있다.

호농종자는 고추 육종기술에서 세계적인 수준에 이른 회사다.

이들 종자회사가 Queeny에 넘어가든 파커가문 기업에 넘어가든.

청양고추 같은 농산물이 수입품이 된다,

즉 한국인들은 청양고추를 먹을 때마다 외국 회사에 로열티를 내야하는 것이다.


“두 회사 모두 자금사정이 매우 안 좋다고 하더라.”

“예상 인수가격은?”

“1억 달러 내외.”

“100% 지분매입이야?”

“안 될 걸?”

“그럼?”

“최대 70%? 남은 부분은 연구개발비 투자겠지.”

“21% 지분은 내가 살 게.”

“보스!”

“Jay!”


도널드와 매튜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바의 손님들의 시선이 일제히 류지호의 테이블로 모였다.


“말리지 마. 이 건은 두 사람의 조언을 듣지 않겠어.”


류지호가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작가의말

한 주 마무리 잘 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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