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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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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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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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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쪽

지적인 액션영화는 망할 걸?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방문을 환영합니다.”

“내 집이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즐기다 돌아가십시오.”


벨에어 류지호의 집으로 2주 동안 수많은 차량들이 들락거렸다.

모두가 졸업파티를 겸한 집들이에 초대된 지인들이다.

UCLA에서 사귄 친구들, UCLA 한인학생회 친구들, JHO 산하 주요 임원들, 스티븐 아들러 같은 거물급 영화인과 배우들, 한인사회의 원로들, 한국전쟁 참전용사회 노인들, 시정부 고위 공무원들, 지방 정부 정치인들과 재계 인물들.

인연이 깊다고 생각되는 사람들만 추려서 초대했다.

그럼에도 업계, 인종, 지위를 떠나 홈 파티에 참석한 면면은 실로 다양했다.

보름 동안 매일 저녁마다 파티를 벌였다.

부모님은 북가주지역으로 관광을 떠났다.

홈파티에 초대된 면면이 평범한 사람 하나 없었기에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다.


“Jay. 얼른 결혼을 해야겠어. 넓은 뒷마당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보고 싶구만.”


모리스 메타보이가 부모님이나 할 법한 잔소리를 했다.

영화 사업 부문의 임원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인사 하게.”


모리스 메타보이가 60대 초반의 혈색 좋은 노인을 류지호에게 소개했다.

도수가 꽤 높은 안경을 쓰고 있어서 대학교수 같은 첫인상을 풍겼다.


“안녕하세요. 미스터 가렛.”

“만나서 반갑네.”


노인은 영국출신의 프로듀서 위건 가렛(Wigan Garrett)이다.

지난 1987년부터 콜롬비아스 픽처스 자문을 맡고 있었는데, 최근 모리스 메타보이가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 COO(chief operating officer)로 영입한 인사다.

경력이든 이름값이든 모리스 메타보이 밑에 있을 인물은 아니다.

무려 <스타워즈>와 <에일리언> 시리즈 제작에 참여한 프로듀서였으니까.

모리스 메타보이는 할리우드 기득권 연합체인 MPAA 가입을 위해 저명한 할리우드 인사들을 스카우트하고 있다.

최근까지 소닉-콜롬비아스에 몸 담았던 위건 가렛은 물론이고 워너-타임 인수합병 이후로 사내 정치에 신물을 느끼고 뛰쳐나온 고위급 인사, 또 LOG Company의 아이즈너의 전횡에 반기를 들었던 임원도 트라이-스텔라로 불러들이고 있다.


“D-Cinema 실험에 매우 깊은 인상을 받았네.”


20세기 PARKs에서 제작 부문을 총괄하다가 <타이타닉> 프로듀서로 합류한 잭 란다우(Jack Landau)가 지난 졸업작품 상영회에 대해 말을 꺼냈다.


“이제 첫 발을 뗀 것뿐입니다. 실용화 여부는 여전히 미지수죠”

“스튜디오 관계자들이 디지털 영화를 신나게 말하지. 그러면서 도전하기를 주저해. 에드윈 터너가 방송에 위성을 이용하면서 영화업계도 그 가능성에 주목하기 시작했었지. 할리우드는 너무 거대한 시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배급비용이 항상 프로듀서의 딜레마거든.”


위건 가넷이 말을 받았다.


“디지털 배급 시스템을 통해서 방대한 미국 시장을 커버한다면 영화 비즈니스의 양상이 크게 달라질 수 있겠어.”


모리스 메타보이도 말을 보탰다.


“지구상의 존재하는 극장 수만 개에 실시간으로 동시에 위성을 통해 영화를 전송할 수 있다면, 그것처럼 굉장한 일도 없을 거야.”


류지호가 웃으며 세 사람의 기대에 찬물을 부었다.


“꿈을 크게 가지라고 했다고, 너무 기대는 하진 마세요. 현실이 되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는 누구도 알 수 없으니까.”


할리우드 영화가 세계 영화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다.

미국에만 35,000개 스크린에 달하는 방대한 영화관을 갖고 있다.

두 번째 시장인 일본의 3,500관, 10위 안팎의 한국의 800관에 비하면 미국의 영화 시장이 얼마나 거대한지 가늠할 수 있다.

D-Cinema의 탄생은 이런 미국의 방대한 시장 환경에서 시작되었다.

미국 영화는 채산성 면에서 상당히 어려운 시장 환경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블록버스터를 양산하고도 실제 순이익 면에서는 큰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다.

방대한 시장을 커버하기 위한 영화의 마케팅 비용.

수천 개 혹은 일만 개에 달하는 프린트 비용.

엄청난 숫자의 프린트를 배달하고 관리하기 위해 소요되는 부대비용.

그 모든 비용이 천문학적이다.

할리우드 영화의 순수 프로덕션 비용이 100원 이라면 모든 부대비용까지 합한 총제작비는 그 두 배다.

100원짜리 영화가 300원의 박스오피스 매출을 거둘 때부터 손익분기점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할리우드 관계자들 말고는 없다.

정확한 마케팅 비용과 배급비용은 공개되지 않는다.

영업비밀이다.

블록버스터가 순제작비 대비 3배의 박스오피스를 올리면 돈을 번 것처럼 보인다.

실상은 간신히 투자비용을 회수하는 선에서 그친 경우가 많다.

다만 홈비디오, TV 및 케이블 채널 등 부가시장이 방대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큰돈을 벌게 되지만.

메이저 스튜디오는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신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유효한 진리다.

망해도 진작 망했어야 할 왕년의 MSM Studios는 매번 고비를 넘기면서도 끈질기게 명맥을 이어가고 있으니까.

극장 매표수익의 몇 배의 달하는 부가시장의 존재 때문이다.

부동산 자산, 필름 라이브러리 등의 자산을 계속해서 팔아치웠지만, 여전히 <007> 프랜차이즈와 꾸준한 라이선스 수입을 가져다주는 <벤허> 같은 필름 라이브러리 및 수직계열화 되어 있는 케이블 채널, 홈비디오 사업 부문으로 인해 현금회전율로 연명하고 있다.

제 아무리 부가시장이 거대하다고 해도 박스오피스는 대단히 중요하다.

극장 매표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야 그 여세가 부가시장에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북미 시장은 누구나 군침을 삼켜 봄직한 마켓이다.

미국 시장에 도전한다면 그 같은 내막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소닉의 경쟁자 나쇼날이 유니벌스 스튜디오의 모회사 MCA를 호기롭게 인수했었다.

지금까지 20억 달러에 가까운 자금을 투자하고도 본전조차 못 건졌다는 이야기는 업계 안팎에서 유명한 사실이다.

결국 나쇼날은 할리우드에서 철수했다.


‘오성이 들어왔어도 그 꼴을 면치 못했겠지.’


집들이에 지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다.

이웃을 초대해서 식사를 대접하기도 했다.

넉살 좋고 오지랖 넓고 유쾌한 사람이면 화기애애하게 덕담이 오갔다.

아닌 경우도 많았다.

가끔 모가지에 철심을 심었는지 초대에 대해 건성건성 턱만 까딱거리는 놈도 있고, 한번 슥 쳐다보고 무시하는 개매너도 있었다.

그런 부류는 대체로 스포츠 스타나 졸부다.

류지호는 그러려니 했다.

어차피 자주 볼 사이가 아니기에.


“방송국이나 케이블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콘텐츠 공급만으로 돈을 벌 수 있겠습니까?”


건설과 부동산업을 하는 이웃의 우려였다.

콘텐츠는 돈이 안 된다?

미래를 몰라서 하는 말이다.

극장과 홈비디오 혹은 방송 같은 전통적인 콘텐츠 유통 부문이 없어도 상관없다.

류지호에게 StreamFlicks가 있으니까.

닷컴버블 시기에 Amazonia.com을 인수합병 해도 되고.

그것도 아니라면 JHO Company 자체적으로 OTT 서비스를 전개해도 된다.


“몇 년간 공격적인 인수합병을 했잖습니까? 그것도 금융권 자금조달을 최소화 했다고 신문에서 본 것 같은데....”


JHO Company의 재정에 문제가 있지 않은지 걱정하는 이웃도 있었다.

수십억 달러 규모의 인수합병을 한 것도 아니고.

고만고만한 기업들을 인수한 것이라 부담은 없었다.

현재 JHO Company 계열사 중에서 적자를 보고 있는 기업은 Timely, Eye-MAX, GMG LAB 세 곳뿐이다.

Timely Entertainment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맨 인 블랙>을 시작으로 매년 Timely 캐릭터를 이용한 영화를 내놓을 계획이다.

영화가 잘되면 코믹북 매출도 덩달아 올라갈 터.

라이선스 사업도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류지호는 21세기 전에 Timely Entertainment가 흑자경영으로 돌아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때가 되면 계열 분리했던 회사들을 다시 자회사로 편입시키고 몇 개 회사를 인수할 궁리를 하고 있다.

그동안 Timely는 라이선스 비즈니스에서 소극적이었다.

LOG 못지않은 인기 캐릭터 보물창고가 Timely다.

CEO 샘 리버먼은 수많은 캐릭터들을 통해 다양한 수익모델을 정립하고 있다.

Eye-MAX 역시 MPX와 DMR이 개발완료 되면 숨통이 트일 것으로 예상했다.

GMG LAB은 이윤을 창출한 목적으로 설립한 회사가 아니다.

연구중심 기업이기 때문에 수익활동보다는 연구와 특허 확보에 주력하면 된다.

특허가 쌓이다보면 그 자체로 수익모델이 될 터.


‘한남동 집에 가게 되면, 일기장을 꺼내 봐야겠어.’


90년대도 얼마 남지 않았다.

류지호가 10년을 상정하고 수립했던 계획과 목표는 대부분 실행되었다.

졸업을 했으니, 21세기를 위한 구체적 실행계획을 수립해 둘 필요가 있다.

90년대가 기초를 닦는 시기였다.

2000년부터는 성장의 시기가 되어야 한다.

트라이-스텔라가 메이저에 포함된다고 해도, 그것이 모든 걸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더욱 거센 견제와 경쟁에 놓이게 될 테니까.


❉ ❉ ✻


JHO Pictures는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오로지 류지호 마음대로 운영하는 영화사다.

류지호가 제작·연출하는 영화만 주로 작업했다.

그로인해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 내부에서 류지호의 영화선택권리를 축소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류지호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다섯 장의 영화선택 권리는 2010년까지도 유지할 생각이다.


‘LOG처럼 PC에 미치거나 중국 자본에 굴복해 스토리텔링이 망가지지 않으려면 최소한의 견제장치는 필요하니까.’


할리우드는 중국시장이 열리기만 학수고대하고 있다.

류지호는 중국 시장의 허와 실에 대해 냉정한 평가가 내려지던 시대를 살다 과거로 돌아왔다.

따라서 무턱대로 중국시장에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똑똑.


집무실 안으로 비서 사라 리 케슬러(Sara Lee Kessler)가 들어왔다.

그녀의 품 안에는 할리우드 양식으로 만들어진 스크립트가 안겨 있다.


“이번엔 몇 편이죠?”

“일곱 편이요.”


사라는 류지호의 영화 관련 업무를 보좌하는 임무를 맡고 있는 비서다.

특히 JHO Pictures나 류지호 개인 이메일로 들어오는 스크립트를 먼저 검토한 후에 수준 이하를 걸러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경력을 LOG 산하의 부에나비스타에서 쌓았는데, 도널드 제이콥이 의장 비서실을 강화하면서 영입한 영화 마케팅 전문가다.


“이번 주는 이것들이 끝이라고 말해줘요.”

“호호. 최근에 썩 괜찮은 스크립트들이 들어오고 있어서 장담할 수 없습니다.”


접수되는 대부분의 스팩 스크립트를 읽는 스튜디오 최고위층은 없다.

추리고 추려서 최종까지 올라온 것들만 읽던가, 그린라이트를 켜기 위해 심사 중인 스크립트만 그때그때 읽는다.

류지호는 가능한 들어오는 스크립트는 모두 읽는 편이다.

아파 본 사람이 동변상련도 느끼는 법이다.

류지호는 누군가 영혼까지 갈아 넣어 작성한 글을 앞 뒤 3페이지만 읽고 돌려보내는 것이 미안했다.

당사자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에디에게 계약서 검토 끝났으면 서명하겠다고 전해줘요.”

“네. 보스.”


사라가 집무실을 나간 후 얼마 안 있어 도널드 제이콥과 법률 비서 에드먼드 제니스트(Edmund Genest)가 들어왔다.

곧이어 피터 웰스 사장과 제니퍼 허드슨까지 자리했다.


“나를 빼놓고 역사적인 계약을 해선 곤란하지.”


프로듀서 잭 워든이 득달같이 달려왔다.

에드먼드 제니스트가 할리우드 연출계약서를 류지호의 앞에 놓았다.

제니퍼 허드슨이 얼른 만년필 케이스를 열었다.

월가에서 파워팬이라고 불리는 몽블랑 149다.

월가맨들이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중대한 계약서에 서명할 때 꺼내 드는 펜이 몽블랑이다.

70주년 기념 한정판 만년필을 손에 쥔 류지호가 100페이지가 넘는 각본과 연출 계약서 각각의 서명란에 일일이 서명을 했다.

계약서에 명기된 작품명은 다소 의외다.

<REMO : The Destroyer>.

미국의 인기 어드벤처 소설을 원작으로 1985년 제작한 <Remo Williams: The Adventure Begins>를 리메이크 혹은 리부트하는 액션블록버스터 영화다.

잭 워든이 수년 간 준비하던 프로젝트다.

결국 돌고 돌아 류지호에게 왔다.


“시리즈의 운명을 위해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어.”


잭 워든이 아부 섞인 말로 대화를 시작했다.

류지호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잭, 난 스파이영화나 액션영화를 사람들에게 보여준 적이 없어.”


프로젝트가 몇 년째 표류했다.

판권에 문제가 생기며 위기에 처했다.

잭 워든은 류지호가 최초로 작성했던 기획서를 원작자인 워렌 머피에게 보냈다.

10페이지짜리 기획서를 읽어 본 워렌 머피가 그 자리에서 류지호에게 연락을 해왔다.


“워렌이 Jay가 아니면 안 된다는데 어쩌겠어?”


워렌 머피는 자주 류지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류지호가 메가폰을 잡아 줄 것을 줄기차게 설득했다.


“워렌 어르신이 한국전 참전용사셨을 줄이야....”


원작자 중에 한 명인 워렌 머피가 한국전 참전용사라서 연출을 맡기로 한 것은 아니다.

과거로 돌아와 찍은 두 번째와 세 번째 장편영화가 소품이었다.

1억 달러가 넘어가는 대작을 찍기 전에 징검다리 상업영화를 한 편 경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판단이 섰다.


“보스, 부디 새로운 멤버들과 함께 스파이영화의 역사를 써주기를 바랍니다.”


피터 사장의 말에 류지호가 엄살을 피웠다.


“부담주지 말아요. 5,000만 달러짜리 영화입니다. 망하면 어떻게 하려고.”

“10년 전하고는 다르지 않습니까? 보스는 이 시대 감독들 가운데서도 가장 첨단 영화에 앞 서 있습니다. 당시에는 구현하지 못한 많은 것들을 보여줄 것이라 믿습니다.”

“진짜 첩보는 총이 아니라 만년필로 한다는 말이 있죠.”


제임스 본드, 이든 헌터 모두 현실 스파이와는 거리가 멀다.

할리우드 스파이영화의 주인공들은 ‘어쨌든 우리 편이 다 이겨‘ 또는 ’주인공 혼자도 다 처리할 수 있어’라는 아주 낙관적이고 동화적인 세계관 위에 건설되어 있다.

리얼 액션과 리얼 월드의 리얼 플롯은 관객이 받아들이기 힘든 시기다.

진짜 피 튀는 세상에 놓인 주인공 그리고 감독의 지적인 연출은 아직은 성급했다.

따라서 류지호의 기획방향은 원작에 충실한 한편 마스터 치운이 지풍으로 북한군 탱크를 박살낸다거나, 장풍으로 땅거죽을 뒤집어 놓는 것 같은 무협판타지적인 요소를 배제했다.

잭 워든은 계속해서 기대감을 팍팍 드러냈다.


“액션 영화에도 지성이 있다는 걸 보여준 성공사례가 되었으면 좋겠어.”

“지적인 액션영화는 망할 걸? 지금 할리우드는 새로운 빌런을 정립하기 위해 혼란스럽잖아. 냉전시대의 정보를 얻기 위해 문서를 뒤져야 하고 분석을 위해 영민해야 하며 피로감에 찌든 리얼 스파이는 관객들로부터 외면 받을 거야.”


에스피오나지의 장인 존 르카레의 스마일리 3부작(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스마일리의 사람들)을 지금 제작하면, 비평가들만 환장하지 관객들은 외면할 가능성이 높다.

직장인 스파이는 10여 년이 흘러 냉전시대가 추억이 되고 아날로그 감성이 향수를 자극하는 시기가 왔을 때나 먹힌다.


“관객이 원하지 않는 걸 보여주는 정신 나간 짓은 하지 않을 겁니다.”


이 시기에 <본> 시리즈나 놀란의 세계관을 가져오게 되면, 엉망진창의 혼란만 유발할 뿐.

톰 메이포더의 <미션 임파서블>처럼 과거보다는 훨씬 앞서면서 현재 관객보다 딱 한 걸음만 앞서는 스파이 액션영화를 만들어야 한다.

미래의 성공사례에 집착해선 안 된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영화가 나올 수 도 있으니까.


“또 하나... 난 PG-13등급에 맞춰 영화를 만들 생각이 없어.”


피터 웰스가 아쉬운 듯 한숨을 내쉬었다.

류지호가 원작에 충실한 R등급 영화로 기획방향을 잡았기 때문이다.


“원작 자체가 펄프 픽션이잖아. 억지로 등급에 맞추다보면 85년 개봉한 영화처럼 정체성이 불분명한 이상한 영화가 나올 거야.”

“원작을 다운그레이드 시킨다면서? 원작에 충실하게 되면 괴랄한 영화가 나올 텐데.....”


<007> 시리즈처럼 수영복 입은 육감적인 미녀가 나오고, 마스터 치운에게 37가지 방중술을 알려달라고 조르는가 하면 음담패설 농담과 욕설도 여과 없이 묘사할 것이며, 폭력의 수위도 꽤나 높게 잡았다.


“<Help Me Please!>, <The Killing Road>, <Dream Come true>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을 보며 다시 한 번 알게 됐어. 완성도가 조금 부족하고 개연성도 허술하지만 상상력과 금기를 깨면서 그 괴랄함을 끝까지 밀고 나가다보면 관객들이 어느 순간 박수를 친다는 거야. 관객들은 어디까지 가나보자고 하면서도 실제 그들의 기대를 충복시킬 정도로 끝까지 막 나가다보면 그 순간 묘한 쾌감을 느끼게 되는 것 같더라.”


끄덕.


모두가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좀비가 뛰어다니는 것이 정말 이상했어. 그런데 Jay 너는 그 뛰어다니는 좀비를 끝까지 밀어붙였지. <Dream Come true>는 어디까지 유치하고 키치해 질 것인지 조마조마했는데, 마지막 쿠키영상 전까지 그 유치함의 밑바닥의 정점을 영화가 찍더라. 그래서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가 완성된 것 같았어.”

“85년 영화에서 좋았던 점은 성장 스토리야. 제임스 본드나 이든 헌터처럼 완성된 스파이가 아니라 준비가 덜 된 스파이란 설정이 마음에 들어. 살인기계로 재탄생한 스파이가 통제되지 못하는 힘을 사용하는 좌충우돌이 흥미로울 것 같고.”

“유쾌한 분위기는 나도 동의해.”


잔인하고 인정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악당.

그를 상대하며 총알을 피하지 못해 부상을 당하면서도 농담과 낙천성을 잃지 않는 주인공.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지만, 결국은 악당을 물리치는 너무나 전형적인 플롯.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점차 무술실력과 스파이로서의 틀이 갖춰지는 성장 드라마.

이전 삶에서 Timely Studios가 정립한 삼부작의 완결 형식.

최소한 본전치기는 할 수 있는 프랜차이즈 전략이다.

게다가 류지호의 주변에는 좋은 성공 전략으로 영화를 프로듀싱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레온 부룩하이머다.

<나쁜 녀석들>, <더 락>에는 낙천적인 분위기가 전편에 걸쳐 깔려 있다.

사실 두 영화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란 말이 업계에 파다했다.

흑인 버디 액션영화, 한 물간 제임스 본드와 연약한 남자 주인공의 조합, 단순한 플롯이고, 익숙한 듯 보이는 캐릭터 조합이다.

할리우드 관계자들 사이에서 두 영화 모두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 장담하는 말이 돌았다.

하지만 보란 듯이 성공했다.

그런 이들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유머와 볼거리가 지루할 틈 없이 풍부한 영화가 관객에게 제대로 먹혔다.


“암튼 원작에 충실하면서 B-Movie의 실험정신도 가져가면서 세련된 블록버스터 공식을 따를 생각이니까 너무 우려하진 말고.”

“믿어.”


주인공은 달라진 세상에 맞춰졌다.

컴퓨터를 활용해야 하는 스마트함도 갖춰야 한다.

류지호는 맨주먹 액션영화를 고집하지 않을 생각이다.

할리우드 영화의 공식인 카 체이싱 장면, 대규모 폭발 장면, 기관총의 난사 등을 적극 도입할 계획이다.

무협스타일이 매우 짙은 <REMO : The Destroyer>가 <다이하드>와 무엇이 다를까.

존 맥클레인의 적대자들은 총에 맞으면 피를 흘리고, 고통도 느낀다.

결국 악당도 죽음을 맞이하는 인간이다.

반면에 레모 윌리엄스가 대적해야 하는 원작 소설 속 대적자들은 사이보그, 뱀파이어, 첨단 무기로 무장한 미친 과학자, 마녀, 초능력자, 기갑 부대 등 상식적이지 않다.

홀로 도시 하나를 날려버릴 수 있는 마스터 치운이라면 모를까, 제자 레모 윌리엄스는 온갖 걸 다 동원해야 겨우 이길 수 있는 상대들이다.

류지호는 처음 프로젝트에 접근했을 때는 만만하게 봤었다.

결코 쉽게 봐서는 안 되는 프로젝트다.

원작 소설은 한마디로 잡탕이다.

무협, 첩보, 액션, SF, 호러, 풍자, 음담패설.

온갖 것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다.

그럼에도 머리 비우고 보면 꽤나 재밌게 읽히는 소설이다.


‘그러니 현재까지 90권까지 출간 되었지.’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많은 국가에서 출간되기도 했다.

영어권 국가에 고정 팬도 꽤나 많다고 한다.

쓸데없이 고상한 척, 전체관람가 등급을 위한 수위조절.

그 같은 함정에만 빠지지 않는다면 일반적인 수준의 할리우드표 블록버스터가 나와도 충분히 손익분기점은 맞출 수 있을 거란 계산이 섰다.

그러니 트라이-스텔라에서 투자·배급을 류지호의 영화선택권리 사용 없이 받아들인 것이고.


“트라이-스텔라에서는 뭐래? 내년 가을이나 겨울에 개봉할 수 있을 것 같아?”

“봄에 크랭크 인이 가능하겠어?”

“션이 윤색한 스크립트가 언제 내게 넘어오는가에 달렸겠지.”


류지호의 UCLA 동문 션 블랙(Sean Black)은 소설 ‘The Destroyer‘의 원작자 워렌 머피와 <리셀웨폰Ⅱ>의 각본을 함께 썼던 경험이 있다.

작년 연말 개봉한 <롱 키스 굿나잇>도 그가 썼다.

현재 말리부에 마련해 준 호텔에 틀어박혀서 한창 <REMO : The Destroyer>의 윤색작업에 매달리고 있다.


“DP는? 롭 리차드슨? 아니면 로저 A 딕스?”

“두 사람은 내후년까지 영화가 잡혀있대.”


피터 웰스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보스, 내가 추천해도 되겠습니까?”


피터 웰스는 할리우드 출신이 아닌 전문경영인이다.

할리우드 인맥이 있을 리가 없었다.


“사실 잘 아는 사람은 아닙니다. A-리스트를 보고 생각한 사람이 있어서 그럽니다.”

“누군데요.”

“레이먼드 쿤디 어떻습니까?”


류지호는 그를 추천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레이먼드 쿤디(Raymond Cundey) 역시 UCLA 출신이다.

할리우드 최상위권 리스트에 랭크된 촬영감독이기도 하다.

최근에 작업한 영화가 <아폴로13>이다.


“레이가 합류해 준다면 나도 두 팔 벌려 환영이죠.”


80년대 할리우드 영화의 영상 혁명을 이끌어온 촬영감독 가운데 한 명이다.

모션 컨트롤 기법을 영화계에 처음 도입한 촬영감독으로 유명하다.

레이먼트 쿤디는 모션 컨트롤 기법을 활용해 <백 투 더 퓨처>, <쥬라기 공원>, <아폴로 13> 등 실사영화를 촬영했고, <플러버>, <꼬마 유령 캐스터> 등의 3D 애니메이션을 촬영했다.


“조감독은 터커에게 이야기 해 놓을게. 프로덕션 디자이너는 마이크 리바, 캐스팅 디렉터는 수잔에게 맡기면 될 것 같아.”

“<The Killing Road> 팀을 다시 불러오고 싶어?”

“잭이 알아서 해.”

“스턴트는 Vic&Jay, VFX는 Hues & Rhythm. 스테이지는 트라이-스텔라 스튜디오.”

“Gower 스튜디오 공사는 내년 봄에 끝나지 않을 텐데.....?”

“봄에 입주가 가능할 것 같아. 어제 확인했어. 물론 사무실 입주는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거고 촬영지원 시설 일부만 당장 사용하게 될 거래.”

“잘 됐네.”


Gower Studios는 사운드 스테이지 외에 사무실, 편집실, 녹음실, 조명장비 대여, 소품 대여, 세트제작 지원, 자료실 등 원스톱 서비스가 가능했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스튜디오에는 이런 시설을 모두 갖추고 있다.


“계약도 마무리 됐는데, 함께 식사합시다.”


제니퍼 허드슨이 얼른 말을 받았다.


“셰프 노부 마쓰시타가 보스를 위한 특별한 좌석과 메뉴를 준비하고 있다고 해요.”

“말리부까지 가긴 그런데....”

“선셋 스트립의 1호 레스토랑입니다.”

“다들 일식 괜찮아요?”


LA에서도 꽤 유명한 셰프가 류지호를 위한 메뉴를 준비했단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동의해야 할 분위기다.


“좋아합니다.”


퇴근 후 <REMO : The Destroyer>의 주요 관계자들이 선셋 스트립의 일식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다.

언젠가부터 류지호는 회원제 레스토랑이나 셀럽 전용 출입구가 따로 있는 레스토랑을 주로 다녔다.

파파라치들의 사진 촬영을 피하기 위해서다.

사생활 노출도 문제지만, 중요한 비즈니스 정보가 노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LA 지역의 고급 레스토랑들은 셀럽들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한다.

영 앤 리치인 류지호는 유명 셰프와 레스토랑 오너들의 마케팅 타깃이 된지 오래다.

비서실에서 류지호가 선호하는 테이블, 특별 요청했거나 식이요법까지 고려한 메뉴를 주문하면 완벽하게 준비를 해준다.

류지호는 파파라치로부터 프라이버시를 보호받으며 일행들과 편안하게 식사를 즐겼다.

저녁식사를 하며 류지호는 자신의 할리우드 인력풀에 대해 생각했다.


“왠지 이번에도 UCLA 출신하고만 일하게 될 것 같네.”


작가의말

행복한 하루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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