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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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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최근연재일 :
2024.07.0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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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0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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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선택과 집중.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RMW 7시리즈 3세대 리무진이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주)가온에서 올해 구입한 의전차량이다.

그 앞뒤에 SUV 경호 차량과 수행원 차량이 따르고 있다.

꽁무니를 따라오고 있는 탑차는 정옥순의 밥차다.

차량행렬이 안동으로 향했다.

마침내 도착한 곳은 풍천면 하회마을이다.

마을 입구에서 무전기를 든 남자가 류지호를 맞이했다.


“오셨습니까?”

“수고가 많아요. 안 부장.”

“차는 이곳에 주차하고 걸어가셔야 됩니다.”


그럴 줄 알고 캐주얼 차림에 운동화를 신고 왔다.


“화천서원이죠?”

“네!”


공터에 발전차, 촬영장비차, 조명탑차, 특수효과차, 스타크래프트 밴 등 많은 차량들이 주차되어 있다.

등판에 STAFF 문구가 박힌 점퍼를 입은 이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보조출연자를 실어 나르는 것으로 보이는 관광버스에 작품을 알리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退魔記錄>.

바로 인기 판타지 소설의 실사화 프로젝트 <퇴마기록>이다.

해동밀교도로 출연하는 것으로 보이는 보조출연자들이 촬영버스 주변에서 담배를 피우며 어슬렁거리고 있다.

머리를 시원하게 민 청년들이 상당히 많이 보였다.

<퇴마기록>의 제작부장 안용민의 안내를 받아 류지호가 화천서원으로 향했다.

수행원들을 공터에 남겨두고 김우영 실장만 대동했다.

<퇴마기록>의 기본 스토리는 해동밀교 사건을 중심으로 4명의 주인공들이 인연을 맺게 되고, 광기에 젖어 폭주하는 서교주를 징벌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국내 최대 사찰인 구인사나 해인사, 통도사, 화엄사 등에 촬영협조를 요청했었다.


“영화 내용이 불교를 부정적으로 그린다는 이유로 거부당했습니다.”

“전에 다녀간 촬영팀이 사고를 쳤던 것은 아니고요?”

“원래 드라마 촬영은 계속 하던 곳인데... 하는 수 없이 해동밀교 전경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기로 했습니다. 오픈세트는 전국각지의 서원과 고택 그리고 섭외가 가능한 소규모 사찰에서 촬영하고 있습니다. 오늘 촬영하고 있는 화천서원의 경우 작년에 복원되었습니다. 저희 팀이 최초 촬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회마을 내 화천서원은 고종 5년 서원 철폐령에 따라 두 개 건물만 남기고 철거되었다.

강당인 숭교당과 주소 전사청을 제외하고 사당 경덕사, 동재와 서재, 문루 지산루, 원문 유도문 등이 최근 복원되었다.


“내부에 들어가서는 못 찍는 거죠?”

“예. 외부에서만 촬영이 허가되었습니다. 마루에서의 촬영은 겨우 허락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시설훼손에 대한 각서까지 쓰고 촬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제작부가 고생이 많았어요.”


안용민은 빅보스의 칭찬에 몸 둘 바를 몰라 얼른 무전기에 입을 댔다.


“류지호 감독님 도착하셨습니다.”


치익.


무전기 너머에서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 잠시 그 곳에 계시라고 해. 내가 내려갈 테니까.

“알겠습니다.”


안용민이 몹시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피디님이 내려오신다고 잠시 기다려달라고 하십니다.”

“바쁠 텐데, 난 신경 쓰지 말고 가서 일 봐요.”

“예. 그럼.”


안용민이 류지호에게 넙죽 인사하고 화천서원으로 달려갔다.

밥차를 몰고 온 정옥순이 류지호에게 물었다.


“커피 한 잔 내려줄까?”


류지호가 밥차로 걸어가며 물었다.


“커피 머신도 가지고 다니세요?”


충무로 촬영현장에서는 믹스커피가 대세다.

류지호가 현장을 떠날 때까지도 그랬다.

2010년대에 가서는 커피차와 간식차가 일반화되면서 고급커피를 촬영현장에서도 즐길 수 있게 되지만.

그때가 되면 커피와 음료 간식만 따로 서비스하는 푸드트럭이 촬영현장에 수시로 들어오지만, 아직은 꿈도 못 꿀 일이다.


“감독님이나 높으신 분들을 위해 가지고 다녀.”

“스태프들은 못 마셔요?”

“한가할 때 달라고 하면 줘. 바쁠 때는 해주고 싶어도 못하지 뭐.”


헤드스태프 서비스용으로 준비했다는 의미다.

커피 한 잔 준비해주는 게 뭐가 대수냐고 할 수도 있다.

한두 명도 아니고 수십 명을 챙겨주려면 본래 해야 할 일인 식사 준비를 못한다.


덜덜덜.


정옥순과 함께 온 30대 후반 여자가 일명 돌돌이(릴 게이블)를 능숙하게 발전차에 연결해 밥차로 전기를 끌어왔다.

한두 번 해본 일이 아니다.

매우 능숙했다.


“지금 막 전기 끌어왔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아메리카노 마시지?”

“예.”


정옥순이 커피머신을 준비하는 사이, 여자 조수가 밥차를 세팅하기 시작했다.

경호원들이 한 손 거들 법도 했다.

사방을 살피며 류지호의 주변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류지호 역시 도우라는 지시를 하지 않았다.

한국 정서로 볼 때 매정한 처사다.

그런데 경호원 입장에서는 정옥순을 돕는 일이 직무유기다.


“이모, 한 잔 더 준비해주세요.”

“응?”


정옥순이 고개를 들자, 서원 앞 언덕길을 내려오는 덩치 큰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한 피디도 아메리카노 좋아하지.”


정옥순이 트로트를 흥얼거리며 커피를 내렸다.

180대 중반의 신장, 넓은 어깨, 서구적인 체형, 동글동글한 얼굴에 꽁지머리를 한 30대 초반의 사내가 뛸 듯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오셨어요?”

“고생이 많으세요.”


류지호가 남자와 반갑게 악수를 나눴다.

<퇴마기록>의 프로듀서 강중기다.

일본에서 영화를 배우고 돌아와 연출부를 거쳐 <퇴마기록> 직전 조감독을 한 편 했다.

이전 삶에서 인연이 깊었던 선배다.

젊었을 때는 멋있는 사람이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좋은 사람이 되었다.

안타까운 것은 좋은 사람이 좋은 감독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처음 프로듀서를 제안했을 때 강중기는 완곡하게 거절했다.

류지호는 연출기회를 주겠다는 말로 설득했다.

언젠가 감독으로 데뷔할 수도 있다.

그 전까지 프로듀서로 다양한 영화를 다뤄보면서 이상과 현실을 냉철하게 인식하길 바랐다.

류지호가 과거로 돌아와 현실을 차가운 머리와 냉정한 눈으로 바라보게 됐던 것처럼.

정옥순이 류지호와 강중기에게 커피를 내밀었다.


“자, 커피.”

“잘 마실게요.”

“고맙습니다.”


류지호와 강중기가 고마움을 표하고, 어깨를 나란히 하고 화천서원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늘까지 30% 정도 소화했나요?”

“네. 그 정도.....”

“불편한 건 없어요?”

“숙소가 부족한 것 빼고는 특별히 불편한 건 없습니다.”

“보조출연자들은 서울에서 내려오나 봐요?”

“한국예술에서 주로 보내주고 있습니다.”

“다들 고생이네요.”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니고. 감수해야죠.”


두 사람이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며 한창 촬영이 진행되고 있는 서원으로 다가갔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류지호는 지나치는 스태프와 배우들과 일일이 아는 체하며 친근감을 표했다.

<퇴마기록>에 참여한 스태프들은 류지호를 개인적으로 알지 못한다.

그들로서는 연예인 이상의 유명인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반면에 류지호는 대부분의 스태프를 잘 알고 있다.

과거로 돌아오기 전 기억 때문이다.

류지호는 이 시기 가장 유능하며 잠재력이 충만한 스태프들만 모았다.

배창훈 감독을 제외하고, 기사급들의 연령대도 30대다.

2000년대 재능을 폭발시킬 이들이다.


‘좋네. 이 시기에 이들을 한 영화에 다 모을 수 있어서.’


류지호는 서원 안쪽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촬영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다.

서원 입구에서 조용히 지켜봤다.

오전 촬영을 마치고 나서야, 스태프들과 인사를 나눴다.

김영복과 김재윤 기사는 류지호와 <영정 사진>, <Help Me, Please> 두 편을 작업 하면서 인연을 맺었고, 특수효과 다이너마이트의 정두원, 동시녹음은 이승찬, 특수분장 김백준, 무술감독 임대호 등 모두가 이전 삶에서 류지호의 인연들이다.


“왔어. 류 감독?”

“안녕하세요. 선배님.”


류지호가 안중기 배우에게 공손하게 인사했다.

충무로에서 후배들이 존경을 보내야 할 단 한사람의 영화인만 있다면, 단연코 류지호의 눈앞에서 하회탈같이 웃고 있는 안중기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이견의 여지가 없다.

한국영화의 암흑기와 르네상스까지 묵묵히 충무로를 받쳐 준 진정한 영화인이다.

이어 벽공도인으로 출연하는 <서편제>의 소리꾼 김영곤 선배와도 인사했다.


“자네 혹시 연극에는 관심 없나?”

“영화만큼은 아니지만,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연극배우들에게 관심이 많다고 들었네.”

“연극계가 저에게는 원석들이 가득한 보석광맥이거든요.”


후우.


김영곤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선배들은 말이야. 가난해도 예술 한다는 자부심으로 평생을 연극판에 몸담았어. 그러다가 영화할 기회가 생기면 동료 배우들에게 죄송합니다 하고 그랬거든. 그런데 요즘은 좀 아닌 것 같아. 앞으로는 더 그럴 것 같고.”

“연극이 영화를 하기 위해 거쳐 가는 곳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드세요?”

“그러다가 연극하고 있는 사람들이 마치 영화 못하는 못난 사람인 것처럼 여겨지면 어쩌나... 지나친 기우일 진 모르겠지만.”


연극배우 출신들이 영화로 넘어와 스타덤에 오르면서 연극계 원로들과 젊은층의 마인드가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예술가의 자부심과 자존심을 깡그리 무시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원로 연극인들과 배우로서 또 연기의 확장성에서 도움이 된다는 젊은층의 생각이 엇갈리고 있었던 것.


“대중의 인기를 얻거나 어떤 상을 받는다거나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어떤 예술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따라 오는 부수적 결과물인데 지금의 후배들은 이거 자체를 예술을 하는 본질로 여기는 게 문제야.”

“특출 난 사람이 특별한 대접을 받는 것은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아까 말씀하신 예술의 본질을 지켜나가는 노력이나 그 부분에 삶을 바치는 사람들이 생존할 수 있게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겠죠. 국가 차원에서 해주길 기대하지만 우리들 스스로도 방법을 모색해 봐야죠.”

“민간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나? 뭐든지 돈, 돈 빌어먹을 돈이 문제야.”

“브로드웨이에서 활동하는 배우들 중에 잘나가는 배우나 연출가가 조합비를 더 많이 냅니다. 할리우드는 말할 것도 없고요. 노블리스 오블리주 아닙니다. 그들이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을 수 있고 또 그를 통해 부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안정된 무대가 항상 그 자리 그 곳에 있기 때문이죠. 돈을 잘 버는 누군가 힘을 보태지 않으면 본질이자 내가 태어난 곳이 사라지거나 위축될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언젠가는 다시 돌아올 고향 같은 곳이기도 하고요.”


억만장자 류지호가 예술계에 돈을 대는 것은 일시적이다.

언제든지 발을 뺄 수도 있으니까.

가장 좋은 방식은 정부가 꾸준히 순수 예술을 지원하는 것이다.

예술계 자체적으로 배우조합 같은 안정적이고 투명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높은 출연료를 받는 배우들이 더 큰 부담을 짊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술계 자체적으로도 장치가 마련되어 있어야 지속 가능한 시스템이 되는 것이다.

자본가인 류지호가 영화노조를 찬성하는 이유다.

순수예술과 대중문화산업 모두의 영속성을 위해서.


“선배님이 나중에라도 관료가 되신다면 그런 토대를 만들어주시면 되죠.”

“딴따라가 무슨 감투를 써.”

“사람 앞날을 어떻게 알겠어요.”


대중문화계 인사들이 정치판에 들어갔다가 문화체육부 장관이 된다.

기관장 한 번 경험해보지 못한 연예인 출신이 감투를 썼다가 의전 장관 혹은 얼굴마담으로 전락하고 만다.

김영곤 배우는 기자, 교사, 극단 운영, 예술계 기관장 등을 두루두루 경험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연예인 출신들과 결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장관을 지낼 때 잘 했는지 부패에 연루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암튼 <퇴마기록>의 스토리는 해동밀교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공중파 대하드라마를 연상시킬 정도로 중견탤런트와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고 있다.

류지호는 대선배들을 찾아다니며 일일이 인사를 드렸다.

<퇴마기록>의 캐스팅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스토리가 완전 달라졌기 때문이다.

메인 주인공은 현암이다.

<젊은 남자>의 이민재를 캐스팅했다.

서브 주연으로 안중기를 박신부 배역에 캐스팅했다.

배창훈 감독과 사적으로 친한 베우들이다.

복잡한 협상 없이 흔쾌히 영화에 합류했다.

류지호는 신인이나 연극배우 가운데 찾길 바랐다.

배창훈 감독과 박건호 사장은 모험을 할 수 없다며 반대했다.


“무려 30억 예산 영화야. 신인배우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것은 무모해.”

“민재씨가 중환이형이나 한 선배급은 아니잖아요.”

“그래도 민재가 정말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 나랑 <젊은 남자> 할 때 친해진 한철이를 찾아가 따로 캐릭터를 연구하고 연기 트레이닝을 받았다고 하더라.”


연극배우 김한철은 신인배우들의 연기선생으로 유명해진다.


“촬영 없는 날에도 몸도 충실히 만들고 액션 트레이닝도 열심히 받고 있대.”

“그렇다고 민재씨 벗겨서 포스터 찍지 말자구요.”


<젊은 남자> 포스터 중에 이민재의 상반신 노출 사진 버전이 있다.

근사한 근육과 몽환적인 표정이 인상적인 흑백 포스터였는데, 하도 여성팬들이 뜯어가서 그 포스터 버전만 금방 동이 나는 일까지 있을 정도였다.


“영철이는 아역배우 쪼 없어요?”


아역배우를 배출하는 곳이 TMT 연기학원이다.

그곳 출신 아역배우들에게 전형성이 있다.

류지호도 <영정사진>을 찍으며 이경재의 TMT 연기학원 쪼를 빼느라 고민을 했었다.


“거슬릴 정도는 아니야.”

“서은씨는요?”


승희 배역에 MBS 공채출신의 김서은이 캐스팅 되었다.

내년 방영될 MBS 의학드라마에서 삭발 투혼을 벌이며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게 되고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발산하게 되는 바로 그 김서은이다.


“잘 해. 말귀를 잘 알아들어.”


대체로 신인배우들은 어리바리 하다.

감독이 말귀를 알아들을 정도라고 표현했다면 잘한다는 의미다.

이 당시만 해도 영화 촬영장이 가족적인 분위기였다.

류지호가 할리우드 파워맨이든 뭐든 중요하지 않았다.

서로 농담도 건네면서 편하게 대했다.

류지호는 이런 분위기가 좋았다.

할리우드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충무로 특유의 정서다.


“자기는 한국에서 입봉 안 해?”

“언젠가 하겠죠.”

“쉬기 전날 내려온 것 보니 오늘 고기 좀 굽겠는걸?”

“점심 식사부터 하시구요.”


WaW 픽처스는 점심시간 1시간의 휴식을 무조건 보장했다.

그럼에도 습관은 무서웠다.

마음이 바쁜 스태프들은 1시까지 일을 하지 말라고 해도, 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였다.

감독과 배우들은 밥차 앞에 남아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지만, 퍼스트들은 담배 한 대를 피우고 촬영현장으로 냉큼 달려갔다.


“놀아도 현장에서 놀아야 마음이 편해.”


충무로 조수들이 선배로부터 귀에 따갑게 듣는 말이다.

여러 의미가 담긴 말이다.

그 모든 의미를 잘 알고 있는 류지호는 동료들이 안쓰럽기도 했다.

매우 불안정한 직업이란 의미도 내포하고 있으니까.

암튼 <퇴마기록>은 충무로의 관행을 모조리 깨고 있다.

이 당시 충무로 평균 영화 제작비는 10억 원 안팎.

평균 촬영 횟수 34회.

평균 포스트 프로덕션 기간 4주.

최근 가장 큰 예산의 영화<은행나무 침대>의 순 제작비는 18억 원.

총 6개월 간 촬영횟수는 75회.

최다 제작필름 소비 영화.

컴퓨터 그래픽 작업에 주어진 시간은 3개월.

그 외 포스트 프로덕션 5주.

그에 반해 현재 제작되고 있는 <퇴마기록>의 순 제작비는 29억.

총 4개월에 걸쳐 촬영횟수는 60회.

컴퓨터 그래픽 작업에 주어진 시간은 8개월(촬영과 동시 진행 중).

포스트 프로덕션 기간은 최대 4개월.

모두가 미쳤다고 했다.

영화의 흥행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도 영화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프로듀서의 책임이다.

류지호는 흥행에 실패하는 것은 부끄럽지 않았다.

영화 흥행은 운도 따라주어야 하니까.

영화 완성도에서 비판을 받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프로듀서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뜻이니까.


✻ ✻ ✻


류지호는 화천서원 방문 이후로도 몇 번 더 <퇴마기록> 촬영장을 방문했다.

첫 방문 때와 달리 조용히 와서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

모니터 스테이션에 류지호를 위한 디렉터스 체어도 마련되어 있다.

한 번도 앉지 않았다.

<퇴마기록>의 스토리는 이전 삶 그것과 완전히 바뀌었다.

영화가 시작되면 산속에서 홀로 태극기공을 수련하던 현암을 보여준다.

그것도 주화입마에 빠지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때마침 근처를 지나던 도혜스님이 평생을 수련하여 모은 공력을 현암에게 넣어주지 않았다면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신세가 될 뻔한 아찔한 순간이다.

그렇다고 현암이 온전한 신체인 것은 아니다.

두 차례에 걸친 주화입마로 인해 오른팔 외에는 공력을 운용할 수 없다.

불완전한 초인임을 영화 시작과 함께 관객에게 알려준다.

지극히 영화적인 캐릭터 설정이다.

캐릭터가 성장할 여지를 암시하는 동시에 중요한 동기부여다.

게다가 현암은 여동생의 복수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지 못할 상황이다.

감정적이다.

이 또한 극 전반에 걸쳐 현암의 행동을 예측불가능하게 만든다.

오른팔로는 천하무적이다.

현암은 성급하게 여동생의 복수를 위해 수련을 마무리하고 하산한다.

속세에 도착하자 처음으로 마주한 상황은 경찰의 불시검문이다.

현암은 행방불명자로 처리되어 주민등록이 말소된 상태다.

파출소로 연행되는 과정에서 도망친다.

기지를 발휘하는 것과 상관없이 무식한 방식으로.

외딴 산골 마을의 서낭당에서 서낭신 노릇을 하고 있던 혼령과 인연이 이어진다.

생전에 남자에게 원한을 품고 죽은 벙어리 여인의 혼령인데.

바로 월향(月香)이다.

파계승의 악령을 처지하기 위해 현암과 함께 싸우다가 월향검에 들어간다.

그러나 파계승의 저주를 받아 월향검에 영영 갇혀버리는 신세가 된다.

조금은 웃긴 이야기지만, 멜로 라인도 있다.

나중에 등장하게 될 현승희와 혼령인 월향 그리고 현암 사이에 삼각관계가 형성된다.

다만 시리즈로 만들어지게 될 경우에 한해서다.

소설 상에서 월향검에 검기를 싣는 것은 영화에 넣지 않았다.

만약 검기까지 등장하게 된다면 <스타워즈>급으로 시리즈가 만들어질 경우다.

즉 세계편, 혼세편까지 장수 프랜차이즈가 되었을 경우에 등장할 수도 있다.

암튼 월향검은 기운이 떨어지면 피를 먹여야 한다.

급할 때 현암 자신의 피를 먹이는 에피소드도 있다.

현암은 월향검과 함께 여동생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물귀신을 처치한다.

그런데 물귀신 역시 억울한 희생을 당한 불쌍한 영혼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복수의 허망함과 함께 사명을 깨닫는다.


[하늘은 이유 없이 힘을 주지 않겠지....]


현암은 불쌍한 영혼을 구해 하늘로 돌려보내야하는 사명을 받아들인다.

그 사명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서 꼬인 혈도를 완벽하게 해결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해서 메인 주인공 현암이 자신의 퇴마 동료들과 만나게 될 해동밀교 사건에 발을 내딛게 된다.

첫 번째 편의 서브 주인공으로 준후가 매우 비중 있게 다뤄진다.

2~3편이 제작된다면 박신부와 승희의 과거사와 드라마가 비중 있게 다뤄질 예정이다.

1편에서는 주로 현암과 준후의 교감에 중점을 둔다.

비록 주화입마에 빠져 온전한 초인은 아니지만, 현암의 체내에 막대한 공력이 충만했다.

육체적인 능력은 초월적이다.

게다가 오감이 극도로 발달되어 있다.

음식의 냄새만으로 재료와 조미료를 맞출 정도다.

벽 너머의 생명체의 반응과 움직임까지 감지할 수 있다.

비유를 하자면 오른팔만은 천하무적인 이성이 있는 헐크(Hulk)라고 할 수 있다.

현암은 여동생의 죽음과 주화입마로 인해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밤마다 악몽을 꾼다.

잠꼬대를 하며 팔다리를 슬쩍 움직여도 침대나 벽이 박살나기 일쑤다.

악령에 대한 복수심과 새롭게 인식한 사명 사이에서 헤매고 있는데다가 영적인 능력이 거의 없다.

게임에서는 ‘몸빵’을 담당하는 탱커라고 분류한다.

반면에 어리고 연약한 준후는 영적인 능력이 매우 뛰어난 천재다.

딜러이자 힐러이며 버퍼까지 수행하는 만능이다.

사기캐라고 할 수 있지만, 어리기 때문에 미숙하고 성격이 여리다.

영화가 흥행에 성공해 콘솔 혹은 PC게임이 만들어지면 준후 캐릭터는 어떤 식으로든 조정이 될 수도 있다.

암튼 두 사람은 육식을 절대로 피해야 하는 약점이 있다.

게다가 천애고아로 외톨이란 공통점도 있다.

함께 악령을 퇴치해나가며 친형제와 같은 관계로 발전한다.

박 신부는 자애하고 차분한 휴머니스트다.

승희는 X세대를 상징하는 발랄하고 통통 튀는 신세대 여성이다.

시리즈의 첫 번째 편에서는 능력을 모두 개화한 상태가 아니다.

미숙하기도 하고 실수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적불가능한 적을 맞이해서 만신창이가 될 정도로 처절하고 힘겨운 싸움을 벌인다.


[이제 우린 뭐 먹고 살아요?]

[막노동을 하면 돼. 준후는 형만 믿어.]


판타지 영화지만 현실적인 문제도 나온다.

현암은 돈이 필요할 때마다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해왔다.

부모로부터 거액의 상속을 받은 부잣집 딸 승희가 합류하면서 형편이 나아진다.

원작에서는 박 신부가 젊어서 꽤 큰 부를 이룬 것으로 묘사되었다.

1편의 악당은 해동밀교의 서교주다.

소설팬이라면 진정한 흑막이 벽공도인임을 알지만.

엄청난 규모를 갖추고 있는 해동밀교 본산은 일반인이 들어올 수 없도록 사시사철 안개가 자욱한 운무진이 펼쳐져 있고, 악귀들을 풀어놓고 있다.

물론 CG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제작진은 류지호가 트라이-스텔라 픽처스에서 제작한 <쥬만지> 수준의 VFX를 기대했다.

류지호는 지나친 기대심을 박살내기 위해서 1989년 제작된 <고스트 버스터즈Ⅱ>를 보여주며 충무로 CG 수준의 현실을 일깨워주었다.

그러는 한편으로.


“두 영화의 공통점이 뭔 줄 아세요? 컴퓨터 그래픽의 어색함을 감추기 위해 아날로그 특수효과로 떠들썩한 장면들을 강조한다는 거죠. 때로는 그 반대의 편집도 절묘하게 써먹고.”


조악한 광선효과 CG, 유령의 존재를 부각시키기 전에 의자가 둥둥 떠오르고, 미지의 힘에 의해서 벽이 터져나가고 아스팔트가 땅 밑으로 꺼지면서 사람과 물건을 집어 삼키고, 그런 것들이 관객들에게 훨씬 더 위기감으로 다가오는 식이다.


“CG예산보다 FX와 미술 예산을 더 많이 책정한 것이 바로 그 이유 때문입니다. <영환도사>나 <천녀유혼>처럼 무협액션을 고민할 시간에 벽에 날아가 부딪치고, 물체가 둥둥 떠오르고, 주인공이 공중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리고, 무거운 물체에 깔리고, 자동차가 연쇄적으로 충돌사고를 내고, 건물 기둥이나 벽이 무너지는 액션을 고민해 보세요. 악령이 날린 뾰족한 나무의자 잔해가 주인공의 눈동자 앞에서 아슬아슬하게 멈추는 장면이 때론 더 관객들에게 실감나게 보이는 법입니다. 관객들은 경험적으로 그것에 찔리면 큰일 난다는 것을 알기에. 컴퓨터 그래픽은 정말 필요할 때만 잠깐씩 써야 합니다. 그게 연출력입니다.”


지금 이 시기는 CG를 정말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

뭘 해도 유치하게 보일 테니까.

뭐든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은 없다.

한국영화에서 꾸준히 VFX가 요구되고 또 다양한 장르에 적용되면서 발전하는 것이다.

류지호가 미국에서 하던 대로는 절대 안 된다.


‘기대가 없어야 실망도 없는 법이지.’


작가의말

행복한 하루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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