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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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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최근연재일 :
2024.07.0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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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20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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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2쪽

환경이 아닌 인식의 문제. (3)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어, 다연아! 연습 끝난 거 아니었어?”

“그러게. 끝나고 핸드폰 해. 요 앞에서 기다릴게.”


지금까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알지 못하는 신소연과 김민아가 차례로 말했다.

두 친구 뒤에는 거구의 고우찬이 장승처럼 우뚝 서있다.

고우찬은 두 여자 친구와 달리 표정이 차가웠다.

연습실 안에 감도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했다.


뚜벅뚜벅.


고우찬이 말없이 공다연에게 걸어가 앞을 막아섰다.


“우찬아.....!”


김민아가 불러 세웠다.

고우찬은 얼굴을 굳힌 채 공다연을 등 뒤로 숨길 뿐.

그제야 뭔가 이상함을 눈치를 챈 김민아와 신소연이 얼른 공다연에게 다가왔다.

고우찬이 약간은 껄렁대는 투로 물었다.


“뭡니까?”

“그러는 넌 뭐야?”


김현일은 액션배우를 했을 정도로 무술에 능했다.

거구의 청년에게 겁을 집어먹을 이유가 없다.


“다연이 친구의 친구였다가 지금은 그냥 친구가 된 사람입니다. 그러는 그쪽은 뭡니까?”

“뭐? 그쪽?”

“그쪽이지 이쪽입니까?”


명백히 시비를 거는 말투.


“너 나 몰라?”

“모르니까 물어보는 거 아닙니까.”

“나 김현일야.”

“그렇습니까? 고우찬입니다.”


김현일이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신소연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고우찬에게 물었다.


“김현일씨를 몰라?”

“알아야 돼? 뭐 하는 사람인데?”

“탤런트시잖아.”


고우찬은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WaW 픽처스를 자주 들락거리는 고우찬이다.

충무로에서 가장 잘 나가는 영화배우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실제로 몇몇 배우들하고는 형아우로 지내고 있다.

대표적인 배우가 박중환, 이민재, 심지어 <은행나무 침대> 출연 배우들하고도 친하다.

주연급 영화배우도 아니고, 조연급의 탤런트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물론 친구를 잘 둔 덕분이다.

가깝게 김재욱이라는 잘나가는 영화사 제작부장, 멀게는 국제적으로 잘나가는 류지호의 불알친구니까.


“중환이 형님보다 잘 나가?”

“......!”


고우찬의 태도로 인해 긴장감이 일순 해소됐다.


“다연이 가방모찌(로드 매니저)인가?”

“거 말이 너무 심하쇼. 가방모찌라니....!”

“친구들하고 선약이 있었구만. 진즉에 그렇다고 말하지 그랬어. 다연 후배, 그럼 방송국에서 봐.”


일단 자리를 벗어나고 보는 김현일이다.

고우찬의 기세에 겁을 먹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절대 아니다.


“지난번부터 계속 다연이한테 추파를 던지는 것이 눈에 거슬렸는데, 이제는 극단 연습실까지 찾아와서 껄떡대다니.... 미친 거 아니야!”


신소연은 마치 자신이 당한 것처럼 화를 냈다.

김민아는 공다연을 꼬옥 껴안은 채 부드럽게 등을 두드려 줬다.

어릴 때부터 나이에 비해 정신력이 강하고 성숙한 공다연이다.

지저분한 생각을 가진 남자와 은밀한 공간에서 단둘이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웠을까.

많이 놀랐을 텐데도 오래지 않아 마음을 추슬렀다.


“애들아, 기분도 더러운데 막걸리 한 잔 하러가자.”


김민아가 몹시 놀랐다는 듯 물었다.


“어머, 다연이 너 막걸리도 마실 줄 알아?”

“나 배고픈 연극배우거든.”


신소연이 어림없는 소리하지 말라는 듯 콧방귀를 뀌고 말했다.


“웃기시네.”

“암튼. 기분도 꿀꿀한데, 가서 한 잔 하자.”


김민아가 냉큼 고우찬의 팔짱을 꼈다.


“레쯔 고우. 찬!”


공다연은 고등학교 때부터 이쪽 바닥에 들어와 활동했다.

심심풀이로 여자를 건드리고 다니는 남자 연예인들을 심심찮게 봤다.

동료 연예인뿐만 아니다.

방송국 PD, 영화감독, 하다못해 말단 스태프까지.

발정 난 개새끼들만 일부러 모아놓은 것이 아닌가 할 정도다.

그랬기에 김현일이 무슨 의도로 잘해주는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심지어 가수활동을 할 때는 성접대까지 할 뻔 했다.

그녀도 스타가 되고 싶었다.

누구보다 열렬하게 스타가 되고 싶었다.

몸 팔아서, 그것을 뇌물로 이용해서.

그렇게 스타가 되고 싶진 않았다.

자신의 인생에서 일생일대의 기회에 그런 선택지가 주어진다면, PD든 영화감독이든 한 번 자줄 수는 있다.

정말 일생일대의 기회라는 조건이 붙는다.

소꿉친구라고 할 수 있는 류지호급의 인물 정도.

그 정도 인물이 달라고 하면 고민 없이 줄 수 있다.

깜도 안 되는 것들이 헛심 쓰는 꼴이 가당치 않다.

연기학원을 다닐 때부터 성관계 대가로 중요 배역에 캐스팅 케이스를 많이 봤다.

대체로 그 결과가 좋지 못했다.

왜냐하면 성공도 준비된 자에게만 기회를 열어주는 것이니까.

외모와 연기에서 겨우 평균 수준의 신인이 좋은 배역을 따냈다고 해서 무조건 뜨는 것은 아니란 거다.

성관계를 대가로 기회를 받았던 친구들은 지금 이 판에서 사라졌다.

그런 유혹을 이겨낸 공다연은 여전히 현역이다.

비록 잘 나가는 배우는 아닐지라도.

자신이 준비된 배우라면 언젠가 한 번은 기회가 올 것이라고 공다연은 굳게 믿었다.

모든 무명배우들이 그러하듯이.


✻ ✻ ✻


일행은 명륜동 골목 안쪽에 위치한 민속주점에 자리를 잡았다.

네 사람은 정말 잘 먹고 잘 마셨다.

고우찬이야 원래가 먹성에 있어서는 말이 필요 없다.

여리여리한 세 여자 역시 만만치 않았다.

마치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풀기라도 하려는 듯.

세 여자는 꾸준히 안주를 주문했다.

공다연이 입가에 묻은 막걸리 찌꺼기를 손등으로 슥 문지르고 말했다.


“어찌 된 게 이놈이나 저놈이나.... 한 번 자빠뜨리려고 하는 놈들이 한 둘이어야 말이지.”


고우찬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연예계만 그런 줄 아냐? 내가 신병 때 어떤 변태고참 새끼가 취침시간만 되면 내 옆으로 와서 내 엉덩이에 거시기를 비벼대더라.”

“말도 안 돼!”


공다연과 신소연이 무슨 헛소리냐는 듯 강하게 부정했다.


“그 말도 안 돼는 것들이 벌어지는 곳이 군대란다.“

“으구으구. 우리 고찬이가 엉덩이가 이쁘게 생기긴 했져.”


김민아가 고우찬의 엉덩이를 토닥거리며 말했다.

술기가 도는 그녀의 얼굴은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고찬이는 뭐냐?”

“우리끼리 애칭이야. 레쯔 꼬우! 찬!”


공다연이 고우찬의 품에 안기는 김민아를 보며 짜증을 부렸다.


“이것들이 술 맛 떨어지게!”


두 사람의 애정행각이 꼴도 보기 싫다는 듯 공다연이 신소연으로 고개를 돌렸다.


“준우랑은?”

“자유로운 영혼이잖아.”

“편지는 좀 붙이대?”

“지금이 어느 시댄데 편지냐?”


고우찬이 끼어들었다.


“미국에서 준우 봤거든. 유학생활이 빡센가 보더라. 잘 대해줘.”

“야! 우리 코가 석자야. 누가 누굴 걱정해.”

“다연이 넌 오늘 같은 꼴 안 당하려면 빨리 스타가 되고.”

“연예계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줄 알아?”

“다연이 많이 겸손해졌네. 내가 네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 나이가 몇인데 아직까지 천방지축일까. 낼모레 서른이여.”

“재욱이가 안 도와줘?”

“그래도 친구라고 오디션 기회는 많이 주더라. 오디션에 붙는 경우가 많지 않아서 그렇지.”


김민아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제작부장이면 높은 자리 아니었어?”

“WaW는 할리우드 스타일인가 봐. 웬만한 영화사는 제작부장 백으로 역할 하나 맡을 수 있는데, 지호 회사는 무조건 오디션을 봐야 돼.”

“미국 물이 많이 들어서 그런가?”


고우찬이 공다연의 빈 잔에 막걸리를 채워주며 떠봤다.


“내가 지호한테 말 해줄까?”

“아니야. 내 힘으로 해볼래.”

“우리 다연이 철들었네?”

“우리 다연이라니! 옆에 애인을 두고 그게 무슨 망발이야!”

“뭐 어때? 친구끼리. 그치 민아야.”


김민아가 파전을 입안에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소연이 얘기 좀 해봐.”

“나?”

“방송국 생활은 할 만해?”

“시다바리지 뭐.”

“어머, 소연이 입 거칠어진 거 봐.”

“우리는 딱 세 계급밖에 없어. PD, 작가 그 외 시다바리.”

“충무로는 조감독 힘이 세던데, 방송국 조연출은 별 볼 일 없어?”

“난 교양국에 있잖아. 드라마나 연예오락 쪽은 우리랑 다르겠지.”

“영화 쪽으로 옮길 생각은?”

“별로.”

“소연이는 어릴 때부터 야무진 데가 있었으니까 잘할 거야.”

“고맙다, 민아야.”


그렇게 여자들의 수다가 늦은 시간까지 이어졌다.

고우찬은 술자리 내내 여자들의 수다를 적당히 맞장구치며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술자리가 파한 후에 공다연과 신소연이 먼저 택시를 타고 대학로를 떠났다.

김민아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물씬 묻어나왔다.


“하지 마.”

“뭘?”

“하지 마.”

“그러니까 뭘?”

“아까 그 배우....”

“사람 패는 거 끊은 지가 언젠데. 도장이나 시합장에서 합법적으로 패는 거 말고는 이제 안 싸우잖아. 알면서 그래?”

“진짜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거지?”

“내가 때리지는 않을 거야.”


‘대신 그런 놈은 혼 좀 나야 돼.’


고우찬은 내심과 달리 김민아를 안심시켰다.


며칠 후.

고우찬은 김재욱과 황재정을 차례로 만났다.

마지막으로 나래안전의 장문식과 술자리를 가졌다.


“뭘 새삼스럽게..... 넌 신문도 안 보냐?”

“연예인들이 재벌 회장 아들하고 얼레리꼴레리 했다는 거요?”

“그 중 절반은 지라시로 떠도는 거고, 일부는 진짜야.”

“누가 진짠데요?”

“알면 다쳐. 그냥 너도 일반인처럼 소문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


지난 70~80년대는 연예인 매춘이 공공연했다.

그 같은 일이 공론화되면서 연예계 성매매가 은밀해지고 있다.

반면에 연예인들 간의 섹스스캔들은 일반화되었다.

증권가 사설정보지 수준에서 있을 법한 일들이 실제로 밝혀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00그룹 누구와 연예인 누가 관계를 맺었다느니, 또 다른 잘나가는 탤런트 모씨는 00그룹 회장과 관계를 갖고 있다는 등.

여자 연예인 오디션을 호텔에서 본다고 하면 백퍼센트 성상납을 요구하는 것이다.

연예계에서 술접대는 기본 중에 기본이다.

룸살롱에서 얼굴 도장만 찍고 빠지는 연예인이 있고, 2차 가는 연예인이 따로 있을 정도다.

유력 인사와 연예인 간의 하룻밤 화대는 보통 몇 백만 원에서 몇 천만 원까지 형성되어 있다.

특별한 경우에는 집(부동산)이나 자동차 등으로 보상하는 경우도 있다.

오죽하면 ‘워싱턴포스트’에서 칼럼을 통해 ‘한국 연예산업에서 활동하려면 뇌물·섹스·정치적인 영향력이 필요하다’고 꼬집었을까.

보통 2년 주기로 방송국 PD의 뇌물 사건이 터진다.

성접대도 포함된다.

거의 대부분 뇌물, 배임죄로만 처벌을 받을 뿐.

성폭력은 죄로 다루지도 않는다.

한국 연예계의 현주소다.


“한 놈만 연예계에서 날려주세요.”

“김현일이?”

“네.”

“걔하고 엮일 일이 뭐가 있다고? 혹시 술 먹다가 싸움이라도 붙었어?”

“길거리에서 시비 붙었으면 걘 나한테 죽었어요.”

“근데 왜?”

“힘없는 여배우 따먹고 다니는 게 꼴 보기 싫어서요.”

“다연이냐?”

“.....”

“걔 지금 매니저도 없지 아마?”

“.....”

“너도 니 친구 닮아 가냐? 웬 오지랖이래?”

“친구 일이라서 그래요.”

“눈물겹다 아주 응?”

“어떻게..... 손봐줄 수 있어요?”

“인마, 우리 손 씻은 거 몰라? 손봐주긴 뭘 봐줘.”

“나래에서 형님이 주로 그런 작업하는 걸 제가 모를 줄 알아요?”

“아주 동네방네 다 소문났구나. 네가 알 정도면....”

“딴 소리 하지 말고요.”

“어려운 일은 아니다. 어차피 지금 작업하는 일도 있고. 함께 묶어서 처리하지 뭐.”

“해줄 거면서 뭘 그렇게 튕기고 그런데.....?”

“까분다.”

“신세는 꼭 갚을 게요.”

“됐어 시꺄.... 그나저나 졸업하고 나래안전으로 올 거지?”

“아니요.”

“아버지 회사로 가게?”

“미국 가려고요.”

“유학?”

“지호 옆에 있으면서 데본 아저씨한테 배우려고요.”


한국으로 돌아온 고우찬은 진로에 대헤서 많은 고민을 했다.

아버지는 류지호의 옆으로 가라고 충고했다.

큰물에서 놀라고.

뱀 대가리보다 용꼬리가 낫다면서.


“CIA출신이 별 거냐? 나래에도 안기부 출신 많아, 인마.”

“스케일이 다르잖아요.”

“어쭈? 촌놈이 미국 한 번 갔다 오더니 국제적으로 놀려고 하네?”

“한국에서는 확 끌리는 일거리가 없어서 그래요. 아버지 회사도 태권도장 차려서 심심하게 사는 것도.... 거시기 하고.”

“민아는? 결혼 안 해?”


고우찬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홀몸(?)이라면 마음껏 미국이든 한국이든 자유롭게 돌아다닐 텐데.


“건달에게 여자가 생기면 겁이라는 게 생기는 법이란다 아가야...”

“누가 건달이에요!“

“네 왁구만 보면 딱 건달이지 뭐.”


차마 반론을 펼 수 없는 고우찬이다.


“그나저나, 난 여자도 없는데, 독기가 싹 빠졌다 아주. 이 형이 민간인 다 됐어. 그치?”

“노인네처럼 추억팔이 할 거요. 하지 맙시다. 형님 가오만 떨어지니까.”

“니 말이 맞다. 다 소싯적 이야기다. 그냥 술이나 처먹자.”


뒤 늦게 합류한 강현도까지 해서 오랜만에 세 사람이 술잔을 기울였다.

류지호가 과거로 돌아와 가장 잘한 일 가운데 하나가 이들 세 사람의 삶을 바꾼 것이다.

현재진행형이긴 하지만....

사람의 인생이 환경에 영향을 받는 것인지 의지에 더 큰 영향을 받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이들을 보면 운명이란 것이 불변은 아니다.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것이 인생이고 운명처럼 보인다.


❉ ❉ ❉


제일생명사거리의 명소 G.O.M 강남점.

오피스 층에는 WaW 픽처스와 가온GP신탁투자회사 본사가 등이 입주해 있다.

여의도 있던 이사회 의장 집무실 역시 빌딩 최고층에 옮겨와 있다.

의장이 부재중인 관계로 항상 비어있다.

그럼에도 깨끗하고 정갈하게 관리되고 있다.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의장 집무실 창가.

거구의 사내가 뒷짐을 진 채 창문 너머 강남의 야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밤하늘의 별들이 모두 지상에 떨어져 내린 듯이 화려하게 빛나는 야경이다.

너무나도 화려했다.

대기업들이 부도를 맞아 줄줄이 화의신청을 하고 있음에도.

남자가 감상에 젖어 얼마쯤 서 있었을까.

누군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나 왔다.”


창가에서 천천히 몸을 뒤로 돌린 남자는 고우찬이다.

한쪽에 있는 가죽 소파로 걸어가 장문식의 맞은편에 자리 잡으며 입을 열었다.


“일은 다 정리 되었어요?”

“응.”

“뒤탈이 없게 확실히 마무리를 지었겠지요?”

“탈은.... 애들 장난보다 더 쉬워. 염려하지 않아도 돼,”

“수고하셨어요.”


턱.


고우찬이 발치에 놓여있던 보스턴백을 탁자에 올려놨다.


“뭐냐?”

“착수금이요.”


장문식이 보스턴백을 앞으로 당겨 지퍼를 열어 젖혔다.

노란색 서류 봉투와 함께 만 원권 지폐 뭉치가 가득 들어 있다.

장문식이 돈에는 시선도 주지 않고 서류 봉투를 집어 들었다.

안에 든 서류를 대충 훑어보려는데, 어두워서 안 보인다.

고우찬을 향해 막 입을 열려는데.


번쩍.


별안간 전등이 켜지며 집무실 안이 환하게 밝아졌다.

두 사람의 고개가 동시에 사무실 입구로 향했다.

그곳에 황재정이 멀뚱히 서있다.


“두 사람, 어두운데서 뭐해?”

“.....!”


고우찬이 반사적으로 장문식을 돌아봤다.

장문식이 킥킥 거렸다.

황재정이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남의 집무실에서 뭐 해? 불도 안 키고.”

“.....”

“무슨 꿍꿍이라도 꾸며?”


황재정은 보스턴백을 자신의 앞으로 끌어와 안을 확인했다.


“무슨 돈이냐?”

“.....”

“장 이사님, 이놈하고 무슨 작당모의라도 해요?”


후우.


고우찬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여간 도움이 안 돼. <대부>처럼 분위기 좀 잡아보려고 했더니.... 초를 쳐요.”

“이 돈 뭐냐니까!”

“사업자금.”

“무슨 사업자금?”

“매니지먼트 회사 초기자금.”

“매니지먼트?”

“응.”


황재정이 설명을 바라는 표정으로 장문식을 돌아봤다.

장문식이 다시 한 번 킥킥거리며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돈은 어디서 난 거야?”


따가운 황재정의 시선을 받은 고우찬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대답했다.


“지호 덕분에 주식으로 번 돈.”

“이 자식이! 이 돈이 어떤 돈인데.....!”

“행운을 불러오는 돈이지.”

“네가 매니지먼트를 알아?”

“내가 하려는 게 아냐.”

“어디 투자할 건데? STAR-G? W&Y?”

“새로 설립하려고.”

“사업을 하려고 했으면 의논을 했어야지. 네 맘대로 막...”


고우찬이 황재정의 말을 잘랐다.


“내 돈 가지고 사업하는데 왜 의논을 하는데?”

“사업하는 거 가지고 뭐라고 하는 거냐? 비서실에서 네 사업 준비를 도와줬을 거 아냐!”

“문식이형이 도와줬어.”


장문식이 황재정을 진정시켰다.


“재정아, 오해마라.”

“우찬이가 엉뚱한 일을 벌이면 말렸어야죠. 아니면 최소한 나나 지호하고 의논을 하던가.”

“말이 매니지먼트지 그냥 연극배우 몇 명하고 가수 두 명 일 봐주는 수준이야.”

“혹시 다연이.....?”


황재정의 물음에 고우찬이 냉큼 대답했다.


“응.”

“괜찮은 기획사 소개시켜주면 되잖아.”

“다연이랑 같이 연극하는 남자 애들 몇 명, 그리고 여자 가수 둘. 다들 인천 출신이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무슨 회사까지 차려?”

“내가 할 게 아니라. 민아가 사장할 거야.”

“뭐?”


이럴 때 점입가경이라고 하던가.

사회를 모르는 것은 김민아도 마찬가지다.

사기나 안당하면 다행일 터.

고우찬도 나름 고충이 있었다.

자신은 한 동안 미국으로 넘어가 류지호와 움직일 생각이다.

지난 군복무 시절처럼 또 다시 김민아가 자신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자신만 바라보며 살고 있는 김민아다.

그녀를 위해 뭔가 일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마침 매니저가 없던 공다연이 최근 곤란한 처지에 놓이기도 했다.

사정을 속속 들이 아는 친구가 일을 봐주면 서로에게 도움이 될 것이란 계산이다.


“사업을 취미로 하냐?”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배워서 크는 거지. 우리는 뭐 처음부터 잘 했.... 우린 처음부터 잘 했구나. 암튼! 문식이 형님이 예전 건달 생활할 때 인천에서 밤무대 가수들 관리도 했잖아. 그때 데리고 있던 후배 중에 매니저 봐줄 수 있는 사람 소개시켜주기로 했어.”


장문식이 황재정을 안심시켰다.


“걱정마라. 내가 제수씨 살뜰하게 돌 봐주마.”


황재정이 고우찬을 똑바로 쳐다보며 진지하게 물었다.


“확실하게 마음 굳힌 거야?”


고우찬도 진지하게 대답했다.


“시시하게 살고 싶지 않다.”

“지호 따라다닌다고 해서 뭔가 특별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야. 네가 제일 싫어하는 시바다리가 될지도 몰라.”

“지호 오른팔 되면 누가 시다바리라고 하겠냐? 막말로 너보고 지호 왼팔이라고 하지 시다바리라고 아무도 안 그러잖아.”

“의장 복심이라고 그런다, 자식아!”

“왜 화를 자꾸 내고 지랄이야!”


장문식이 둘을 진정시켰다.


“내 앞에서 싸우지 마. 혼난다.”


황재정과 고우찬이 동시에 장문식에게 소리쳤다.


“누가 싸운다고 그래요!”

“.....니들 그러다가 한 대 치겠다.....?”

“형님은 가만있어 봐요.”

“이사님은 끼지 마세요.”

“그럼 난 이만 간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 돈은 어떻게 할까?”

“일단 놔둬보세요.”

“또, 또! 잔소리!”

“법인 계좌에 이체하면 되지 뭐 하러 현찰을 찾아와. 그것도 만 원권으로.”

“.....!”

“둘이 잘 타협 봐라.”


장문식이 낄낄거리며 의장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황재정은 고우찬을 설득했다.

그렇게 해서 매니지먼트 사업을 잠정 중단시켰다.

비서실장이 아니기에 의장 비서실에 지시를 할 순 없었다.

대신 사업타당성 검토를 부탁했다.

류지호와도 의논했다.


“그냥 내 돈으로 해도 되는데....”

“시끄러워!”

“지호가 뭐라고 안 그래?”

“이왕 할 거면 제대로 하래. 취미로 할 거면 때려치우고.”

“...취미라니.”

“그리고 미국 올 거면 민아하고 결혼식 올리고 오래.”

“엑!”


고우찬이 질색했다.


“뭐야? 그 반응은?”

“아, 아니, 내, 내가... 나이가 몇 인데.... 결혼이야.”

“인간아. 철 좀 들어라.”

“계속 깐족거리면 한 대 친다?”

“민아한테 회사 차려주면 그걸로 끝이냐?”

“당연히 아니지. 내가 뒤에서 든든하게 지켜줘야지.”

“민아와 결혼할 생각은 있는 거고?”

“나한테 이 세상에서 여자는 민아 밖에 없어. 민아는 좋은 엄마가 될 거야.”


고우찬의 유일한 트라이우마는 어릴 때 자신을 버린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미움이다.

미움보다는 그리움이 더욱 컸지만.


“일단 결혼이 부담스러우면 약혼부터 해.”

“음. 약혼이라....”

“무작정 자리 잡을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하지 말고. 기간을 정해 봐.”

“연애도 제대로 못 해본 놈이 어디서 훈수질이야.”

“지호가 한 말이다, 이 자식아!”

“그러면 그렇지.”

“어떻게 할래?”

“뭘 어떻게 해. 약혼 해야지. 먼저 아빠하고 상의해보고, 민아 아빠 아니 장인어른하고 장모님께 정식으로 인사드리고 허락받아야지.”

“앞으로 돈 쓰는 일은 지호와 상의 하던가, 나와 해. 알았어?”

“내가 애냐? 일일이 허락받게?”

“아~ 그러셔? 그래서 매일 후배들 우르르 끌고 다니며 고기며 술이며 사주냐?”

“네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운동하는 애들은 잘 먹어야 돼.”

“뭐든지 적당히 하자 쫌!”


군대까지 갔다 왔어도 손이 참 많이 가는 친구가 고우찬이다.

황재정은 류지호를 믿었다.

고우찬이 결혼하기 전까지 류지호가 데리고 다니면서 철을 들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자신들은 하지 못해도 류지호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작가의말

평온하고 행복한 하루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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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 우리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6 22.11.14 4,371 143 26쪽
333 Big Shot. (5) +5 22.11.12 4,361 142 22쪽
332 Big Shot. (4) +6 22.11.12 4,143 134 26쪽
331 Big Shot. (3) +7 22.11.11 4,408 139 25쪽
330 Big Shot. (2) +16 22.11.10 4,407 143 23쪽
329 Big Shot. (1) +10 22.11.09 4,464 145 23쪽
328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3) +9 22.11.08 4,286 141 22쪽
327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2) +2 22.11.08 4,071 133 22쪽
326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1) +9 22.11.07 4,358 138 21쪽
325 사회생활은 인맥이야...! +9 22.11.05 4,491 138 26쪽
324 선택과 집중. (4) +9 22.11.04 4,469 138 22쪽
323 선택과 집중. (3) +10 22.11.03 4,366 148 22쪽
322 선택과 집중. (2) +7 22.11.02 4,728 148 24쪽
321 선택과 집중. (1) +5 22.11.01 4,596 148 24쪽
320 아무 것도 안 해서, 안 돌아가는 일도 있더라. +5 22.10.31 4,578 144 30쪽
319 아무 것도 안 해도 잘만 돌아간다. (3) +10 22.10.29 4,568 146 27쪽
318 아무 것도 안 해도 잘만 돌아간다. (2) +8 22.10.29 4,303 131 22쪽
317 아무 것도 안 해도 잘만 돌아간다. (1) +9 22.10.28 4,564 153 27쪽
316 Celebrity. (2) +8 22.10.27 4,529 148 28쪽
315 Celebrity. (1) +10 22.10.26 4,605 144 27쪽
314 지적인 액션영화는 망할 걸? +4 22.10.25 4,639 155 26쪽
313 엄마는 여한이 없어..... +11 22.10.24 4,572 144 29쪽
312 세계 최초의 D-Cinema! +5 22.10.22 4,513 154 25쪽
311 환경이 아닌 인식의 문제. (4) +4 22.10.21 4,457 143 24쪽
» 환경이 아닌 인식의 문제. (3) +11 22.10.20 4,372 160 22쪽
309 환경이 아닌 인식의 문제. (2) +8 22.10.19 4,470 132 22쪽
308 환경이 아닌 인식의 문제. (1) +6 22.10.18 4,567 155 22쪽
307 괴짜 같은 녀석..... +7 22.10.17 4,511 150 25쪽
306 영화 기술사의 한 획! (5) +13 22.10.15 4,534 162 20쪽
305 영화 기술사의 한 획! (4) +5 22.10.15 4,270 129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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