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새글

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최근연재일 :
2024.07.05 09:05
연재수 :
901 회
조회수 :
3,838,309
추천수 :
118,862
글자수 :
9,980,317

작성
22.11.08 09:05
조회
4,071
추천
133
글자
22쪽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문지열 실장의 입에서 익숙한 회사명이 나왔다.


“나산그룹이 곧 부동산을 처분할 예정이란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아, 나산그룹!”

“서울 천호동 백화점 부지와 목동과 동대문 상가 부동산, 논현동 그룹 건물도 매각할 계획인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당장 돈 될 만한 것은 모조리 내다팔아야 제2금융권 빚을 갚겠죠.”

“맞습니다.”

“그래서요?”

“M&A팀을 가동하고 있습니다.”

“좋군요. 천호동과 목동 상가라.....”

“다온 로펌 변호사들이 나산 측과 물밑에서 접촉 중입니다.”

“인수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사정이 급박한지라 이곳 골프장 부지처럼 헐값으로 매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경쟁자는 없습니까?”

“현재 여력이 있는 기업들도 함부로 자금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그리고 의장님께서 가온에 투자하기로 한 15억 달러는 너도나도 원하는 달러이지 않습니까? 설사 경쟁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저희에게는 달러가 있습니다.”


이 당시만 해도 대한민국의 평시 외환보유액이 200억 달러가 적정선이었다.

그런데 올 여름부터 외환보유액이 계속해서 줄어들었다.

참고로 IMF에서 구제금융이 들어오기 직전 11억 달러까지 떨어지게 된다.

시장에서 달러가 완전 자취를 감춘 상황에서 15억 달러는 가뭄의 단비까지는 아니어도, 목마른 사슴의 목을 축여줄 물웅덩이는 될 터.

어쨌든 막대한 달러를 쥐고 있는 가온 비서실로 달러와 관련한 문의가 쇄도하기 시작했다.

9월 말 현재 환율은 940원 선.

이런 환율의 두 배를 주겠다는 곳도 있을 정도다.

수입 대금을 결재해야 하는 기업들로서는 다급하고 절박한 상황이기에.


“개별적으로 기업에 달러를 넘기는 것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가급적이면 대금 지급이나 시장에서 환율에 따라 원화로 바꾸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15억 달러가 한꺼번에 외환시장에 풀리면 혼란만 초래해 욕만 얻어먹게 될지도 모릅니다.”


납득하지 못하는 수행원들을 보며 류지호가 농담을 던졌다.


“고구마 먹은 얼굴들을 하고 있네요?”


조준열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의장님..... 15억 달러 아니 가온이 준비한 5억 달러를 포함해 20억 달러로 많은 걸 하실 수 있습니다.”

“압니다.”


그런데 왜 몸을 사리는데.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도 있죠.”


IMF 체제에서 많은 상식들이 깨져나간다.

‘대마불사‘라는 믿음까지도 허무하게 무너진다.

대유그룹이 해체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물며 가온은 너무 연약했다.

오성그룹이나 풍국그룹, 백설그룹이 작정하고 손을 쓰기 시작하면 WaW 픽처스가 그들 손아귀에 떨어지지 말란 법이 없다.

권력자들끼리 모여 앉아서 뒷거래를 하지 않을 거란 믿음은 순진한 거다.


“가능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티 안 나게 조용히 움직이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에게 전혀 관심도 없던 곳까지 쓸데없이 적으로 돌릴 수도 있으니까.”

“서민들에게 이번 위기는 오래토록 고통의 시간이 되겠지만, 살아남은 기업은 배를 한껏 불리는 시기가 될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겠죠. 소화할 수 없을 만큼 먹다가는 체합니다. 20억 달러와 가온GP가 보유하고 있는 여유자금을 합하면 엄청난 자금인 건 맞습니다만, 모든 걸 쓸어 담을 순 없습니다.”


문지열이 나섰다.


“신중하게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사람이든 기업이든 곤란함에 처하게 되면 탓할 대상을 찾습니다. 자신들의 실수와 실패를 전가시킬 구실을 찾는 법입니다. 우리가 그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겠죠.”

“절대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의장님.”

“나 듣기 좋으라고 아부하는 겁니까?”


문지열 실장이 진지한 표정을 풀고 농담으로 응수했다.


“조직생활에 필숩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운용 자금이 모자라면 내 돈을 써도 좋습니다.”

“의장님 사비까지 끌어 쓸 수는 없습니다만. 참고 하겠습니다.”


류지호가 낮은 언덕을 내려갔다.

팀장들이 얼른 뒤를 쫒았다.


“김 실장.”


의전비서실장으로 보직변경 된 김우영이 냉큼 달려왔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하남 쪽 들렀다 갑시다.”

“하남에는 무슨 용무이신지?”

“거기 오래된 한정식집이 있어요. 서울 들어가기 전에 그 곳에서 식사하고 갑시다.”

“예!”


비서실 막내 오영환이 얼른 의장 비서실로 전화를 걸었다.

의전실에서 예약을 해 줄 것이다.

류지호는 작업화에 묻은 흙은 탈탈 털어내고 의전차량에 올랐다.


✻ ✻ ✻


여주를 떠난 류지호 일행이 하남의 유명한 한정식 집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푸짐하게 차려진 한상을 받았다.

식사 내내 류지호는 업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직원들의 일상적인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반주 한 잔이 들어가자 문지열이 평소 궁금했던 걸 물었다.


“오동석 본부장 이야기를 들어보면 의장님이 고른 영화나 주식은 거의 다 성공했다고 하던데... 혹시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으십니까?”

“확률이죠 뭐. 한치 앞도 예상하지 못하는 것이 영화판이잖아요. 행운도 작용했고. 사람의 직관이란 때로는 지식보다 정확할 때가 있는 모양인지. 운발이죠.”

“직관만으로 가능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데이터를 분석해서 내놓는 게 예측이라면, 직관이 결과로 나타나면 그것이 예지가 되지 않나 싶네요. 어쩌면 내가 어릴 때부터 상상하고 꿈꾸던 것이 시대와 맞아떨어지고 있는 걸지도 모르고.”

“젊은 나이에 미국과 한국의 기업을 무리 없이 이끄는 걸 보면 저희가 배울게 참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두고 롤모델이란 말을 하곤 해요. 나 같은 사람보다 우리 조상님 중에 본보기를 삼을 수 있는 위대한 리더가 한 분 계시죠.”

“혹시 세종대왕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맞아요. 세종의 리더십을 두 단어로 요약하면 소통과 솔선수범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분은 정책 하나도 왕의 권세로 집행하지 않고 이해관계가 갈리는 신하들과 타협하고 소통한 후 스스로 솔선수범을 보임으로 해서 정착시켰다고 하지요. 그렇게 하기 위해 학대에 가까울 정도로 자신을 단련하고 괴롭혔다고 하죠. 그런 마음가짐과 실천은 한 번의 어긋남 없이 재위 기간 동안 계속되었다고 하죠.”


문지열이 단지에서 동동주를 퍼 류지호의 빈 사발을 채웠다.

류지호는 동동주를 한 모금 들이켠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사람들이 가온의 조직체계를 보고 ‘미국 따라한다‘ ’겉멋만 들렸다‘ 수군거리는 것도 잘 알고 있어요.”


팀장들이 슬쩍 눈짓을 교환했다.

모두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고 있다.


“나는 팀장급 이상 임원들이 데스크에 앉아 결재서류에 도장만 찍는 수동적인 관리자가 되질 않길 바랍니다. 부하직원이 가져오는 최종보고서만 보다보면 정체될 뿐입니다. 임원도 스스로 정보를 얻고 수집해야 합니다. 그런 후에 연륜과 풍부한 경험으로 직원들이 보지 못한 걸 봐야합니다. 남의 성과를 자신의 것인 양 빼앗아 봐야 그것이 자신의 것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무사안일, 복지부동, 획일주의, 보신주의 등은 조직의 문화를 망가뜨린다.

형식주의에 갇혀 그 어떤 조직보다 느리고 비효율적인 조직이 되기 쉬운 것도 관료제 조직이다.

(주)가온은 이제 겨우 중견기업에 발을 걸쳤다.

관료주의를 걱정할 단계는 아니다.

그럼에도 류지호는 관료주의 병폐에 경고를 보냈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이 미래의 (주)가온의 중요 수뇌부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가온GP의 노아 시거, WaW의 박건호 대표, 나래안전의 임건희 사장. 그분들을 내가 좋아하는 것은 사장 자리에 앉아있어도 매사 솔선수범하고 업계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배우고 연구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분들은 밑에서 보고서가 올라오기 전에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준비된 상태에서 결재서류를 확인합니다.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기 전에 담당자들과 토론을 벌이죠. 직급이 높다고 그 권세로 권력을 휘두르거나 찍어 누르지 않습니다.”


(주)가온에는 50대 이상의 최고위직이 많지 않다.

고위급 대부분이 40대다.

한국의 조직 문화와 생리에 그나마 덜 젖어있는 이들로 채워놓았다.


“여러분이 내게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것처럼, 직급과 상관없이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기업문화가 정착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류지호가 식사자리에 한 말들이 비서실을 통해 전체 자회사로 전파될 것이다.

그것도 일주일 안에.

임원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직급이 낮은 직원들이 상관에게 업무보고를 할 때 조금 더 자신 있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게 될 수도 있다.

비록 류지호가 입에서 나온 대로 말했을 뿐일지라도, 그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기에.


❉ ❉ ❉


류지호와 여동생 류아라가 명동거리를 걷고 있다.

류지호는 안경을 쓴 채 야구모자를 푹 눌러썼는데 다행히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옷차림까지 여느 20대 청년과 다를 것 없이 평범했다.

경호원들도 전원 20대 남녀로 구성했다.

모두 평상복을 입은 채 은폐경호를 수행했다.

얼핏 보면 커플 데이트처럼 보였다.

류아라는 오랜만에 큰오빠와 데이트하는 것이 즐거웠다.

얼굴에서 웃음기가 떠나지 않았다.

해가 바뀌면 고삼이다.

알게 모르게 입시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둘째 동생과 달리 공부머리가 있는 모양인지 학업성적이 좋은 편이다.

신촌에 위치한 여대를 희망하고 있다.

갑자기 류아라가 우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정말 한국이 망하는 거야?”

“망하지는 않겠지만, 많이 힘들어질 거야.”

“국민들은 어떻게 해?”

“누구도 원치 않은 일이 벌어지게 되겠지. 많은 사람들이 고통에 빠질 거야.”

“큰오빠가 막을 수는 없는 거야?”

“내가? 어림도 없어.”

“윌리엄 할아버지한테 도와달라고 하면 안 돼?”

“파커 혼자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야.”

“위기를 막을 수 있을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큰오빠가 뭔가 알려줘야 하는 것 아냐?”


류아라는 경제와 관련된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다.

학과도 경영을 선택할 계획이다.


“오성경제연구소나 경일정책연구소 보고서도 무시하는 판에 오빠 말을 들어 줄까?”

“그렇구나. 그러면 TV뉴스나 신문에서 안 좋은 이야기만 하지 말고,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야 하지 않아?”

“그게 언론의 역할이지. 안타깝지만 정확한 정보 전달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경제 전문가들도 지금의 한국 경제를 위기로 보긴 하지만, 그저 일시적인 외환보유고 고갈 정도, 그간 누적된 문제들이 일시적으로 터진 것 정도라고 알고 있지. 사실 한국 내부의 문제만이 아닌 외부로부터 영향을 받는 복합적인 요인으로 오고 있는 위기인데 말이야. 한마디로 지금으로써는 위기를 피할 수 없다는 거야.”


류지호는 YnTV의 송일성에게 월가에서 작성한 여러 보고서를 보냈다.

올 초부터 수차례 뉴스화 되었다.

여의도 증권가에도 관련 보고서를 풀었다.

헤지펀드의 작업에 일방적으로 편승한 보고서는 빼고.

류지호의 경고를 농담 혹은 불온한 선동으로 받아들였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많은 이들이 동남아에서 시작된 금융위기 여파로 일시적인 어려움은 있겠지만, 이전에 발생한 경제 위기처럼 극복할 수 있는 대상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재벌을 위시한 주요 경제단체장들은 위기를 몇 번이나 극복하고 현재의 위치에 올라온 사람들이다.

이전의 경제 위기는 한국 경제의 경로 안에 있어서 조치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몰려오는 위기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양상의 경제위기라는 사실이다.


“지금도 사람들이 힘들어하는데.... 더 힘들어지는 거야?”

“아주 많이 힘들어질 거야.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벌어질지도.....”

“상상하지 못하는 일?”

“100대 기업 안에 들어가는 대기업까지 부도 난 것 뉴스에서 봤지?”

“응.”

“그런 회사보다 훨씬 큰 대기업도 무너지고, 은행도 망하게 될지도 몰라.”

“은행이 망할 수도 있어?”


류아라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때만 해도 일반인들은 재벌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무엇보다도 은행 부도는 한국인들로서는 이해가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심지어 은행의 부도는 국가의 부도와 같은 것으로 생각할 정도다.

많은 국민들이 은행을 나라에서 다 관리하는 걸로 알고 있다.

이런 인식의 저변에는 뿌리 깊은 관치금융의 폐단이 자리했다.


“아마도 많은 기업과 은행이 망할 거야. 올해 직장을 잃은 사람보다 훨씬 많은 실업자가 내년에 발생할 거야. 그것이 순차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이라면 어떻게든 대응할 수 있겠지만, 둑이 갑자기 무너진 것처럼 순식간에 발생하는 일이라 감당하기가 힘들어져. 지금까지 직장을 잃은 사람의 숫자의 수십 배가 직업이 없어 고통을 받겠지.”


지금까지는 한번 입사하면 영원한 직원이었다.

종신고용이 보장되는 평생직장이 대기업이었다.

한마디로 직장이 곧 직업이었던 시대였다.

익숙하던, 진리라고 믿었던 것들이 무너지는 시기가 도래했다.


“큰오빠 말은 틀린 적이 없지만.... 솔직히 믿기지가 않아. 대기업은 경영상의 문제나 외부적인 요인으로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어도, 은행이 망한다는 말은 이해가 안 돼.”


모두가 그랬다.

경제전문가들은 은행도 망할 수 있단 사실을 잘 알고 있다.

1995년에 영국의 가장 오래된 투자은행 베어링스 은행이 파산하는 대사건이 벌어진 바 있다.

남의 나라 사정일 뿐.

한국에서 은행은 망할 수가 없었다.

그것이 한국인들의 상식이었다.


“한국은 이 위기를 통해서 많은 것이 달라질 거야. 어떻게든 위기에 따르는 부작용을 줄여보려고 하겠지만 현실이 따라 줄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큰오빠는 정말 어떻게 그런 것들을 다 알고 있는지 불가사의해.”

“뉴욕의 오빠 회사 구경했잖아. 거기서 일하는 직원들이 얼마나 똑똑한 사람들인데.”


아무리 사랑하는 여동생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한 번 살아봤기에 안다고 말할 순 없다.


“대기업들은 천하태평이야?”

“위기는 느끼면서 이상하게 낙관적이라고 할까. 달리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국가적 위기를 일개 기업이 어떻게 감당하겠어. 그저 살아남는 것에 급급할 수밖에.”

“큰오빠 회사는 문제없는 거지?”

“미리 잘 준비했으니까. 이번 위기가 어쩌면 회사를 더욱 크게 만들지도 모르겠다.”

“큰오빠는 뭐든 잘할 거야.”


슥슥.


류지호가 오랜만에 여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힘든 사람들도 많이 도와줘야 해?”

“그래야지.”


한국과 미국의 소유 기업뿐만 아니라, 류지호 개인 역시 외환위기를 기회로 큰돈을 벌 수 있을 터.

당장 손에 쥐는 현금은 없겠지만, 다양한 영역에서 기부를 할 생각이다.


“뭐 하고 싶어?”

“남산타워 갈까?”

“가자.”


남매는 남산타워에 올라 서울 야경을 감상했다.

남산 산책길도 걸었다.

류아라는 그 동안 남들에게 하지 못했던 고민을 털어놓았다.

류지호는 조언을 삼갔다.

그저 묵묵히 듣기만 했다.

자정이 가까워져서야 남매가 집으로 돌아갔다.


“내일 하루 푹 쉬세요.”


경호원들에게 휴식을 지시했다.

류지호 본인도 한남동 집에서 하루 동안 빈둥거렸다.


❉ ❉ ✻


월스트리트저널(미국), 니혼게이자이(일본), 파이낸셜타임스(영국).

세계적인 영향력을 자랑하는 3대 경제신문이다. 그 가운데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발행부수는 그렇게 대단하진 않다.

일간 30만 부 정도다.

그럼에도 경제뉴스에 관한 한 국제비즈니스사회에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특히 경제현상에 대한 예리한 분석이 단연 돋보인다.

영국 내 300명 안팎의 기자와 해외에 30여명의 특파원이 활동하고 있다.

세계 각국에 통신원들을 두고 매일 생생한 정치·경제뉴스를 전달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 한국 특파원이 한남동을 찾았다.

내외신 기자로서는 처음으로 류지호가 살고 있는 집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흔히 착각하는 것 중에 자산운용을 잘하는 사람들은 항상 돈을 버는 상태라는 겁니다. 미다스의 손이라 불리는 투자전문가들도 항상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성공과 실패를 합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어느 시점에 커다란 수익을 내는 변곡점이 존재하고, 그 변곡점에 위치하고 있기에 결과적으로 성공을 거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제신문 특성상 기자의 관심사가 류지호의 투자에 집중됐다.


- 그 변곡점이란 것이 뭘 의미하는 것입니까?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하나는 새로운 산업이나 비즈니스가 태동하면서 기존의 비즈니스 모델에 충격을 가하는 경우. 인터넷 산업의 등장으로 새로운 비즈니스가 등장한 것이 대표적이죠. 검색, 포털에서 시작해 최근의 게임, 쇼핑 등 인터넷 비즈니스가 진화하면서 이 과정에서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자산을 주식이나 채권 등에 분산투자해 놓고 시장을 떠나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변곡점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 맡기는 것이죠.”

- 두 번째에 부동산도 포함될 수 있겠네요?


류지호가 고개를 가볍게 끄덕여 보이고 커피를 호로록 마셨다.


- 변곡점이란 산업 구조의 변화, 경제 생태계의 진화라고도 볼 수 있는데, 그것을 예측하거나 준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내가 예측을 하거나 전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세상에는 비범한 사람들이 많죠. 수십 년 전에 많은 선각자들이 오늘의 시대를 예상했잖습니까? 우연인지 자본주의 시장경제 혹은 금융시스템의 불완정성 때문인지 모르지만 50년 주기로 미국에서 블랙먼데이가 터진다든가 10년 주기로 금융위기가 발생한다든가 기후변화로 인해 농수산물 수확에 변화가 생긴다든가... 우리는 비범한 능력을 갖추지 않아도 변곡점에 대해 충분히 대비할 수 있죠.”

- 지금까지 미스터 류는 투자를 해서 손해를 본 경우가 없다고 알려졌습니다.

“매번 그 같은 오해를 바로잡지만 소용이 없군요. 조금 전에 말했듯 누구나 성공 이면에는 무수한 실패가 있습니다.”

- 많은 사람들이 미스터 류의 투자비법을 궁금해 합니다.

“누구나 다 아는 방법입니다. 굳이 충고를 하자면 비중을 정해 놓아야 한다는 겁니다. 주가가 올라 주식 비중이 높아지면 줄여서 채권 비중을 늘리고, 주가가 떨어져 채권 비중이 높아지면 주식 비중을 다시 높여야 하는 방식.”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다.


“기계적인 방법 같지만 이 기계적인 자산운용이 탐욕과 공포와 두려움으로부터 나를 지켜낼 수 있습니다. 내가 주로 하는 투자방식은 평소에 사고 싶은 주식이나 기업의 리스트를 만들어놓는다는 겁니다. 물론 그 회사에 대해 공개된 정보를 최대한 구해서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죠. 내가 원하는 가격대나 수익률이 나올 때까지 기다립니다. 여기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주가나 부동산 가격이 계속 오른다면 그것과는 인연이 없다고 생각하고 뜻을 접어야겠죠. 그런데 이걸 아셔야 합니다. 투자에서 그런 일은 많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시스템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죠.”

- 실리콘밸리 투자를 매우 적극적으로 늘리고 있습니다. 물론 GARAM Ventures는 실리콘밸리의 선도적인 VC이긴 하지만.

“단순히 인터넷 기업이라고 해서 투자하진 않습니다. 중요한 점은 이런 산업의 비즈니스 모델을 잘 이해하고 지배적 사업자로 성장할 기업들을 선별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 같은 안목이 있는 투자자가 큰 성공을 거둘 겁니다. 그러나 항상 새로운 산업이나 비즈니스로 인한 투자의 기회는 거품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습니다. 막차를 탄 투자자들은 거품에 의해 희생양이 되기 일쑤입니다.”

-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 생각합니까?

“산업 자체는 21세기를 지배할 겁니다. 다만 투자과열이 문제죠. VC가 실패하는 대부분의 문제는 윤리와 양심에서 비롯됩니다. 벤처투자란 아이디어와 미래에 만들어질 가치에 투자하는 겁니다. 당장에 수익률이 출렁이는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연준의 저금리 발표로 인해 실리콘밸리로 자금이 쏟아져 들어올 겁니다. 투자과열이 거품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moral hazard‘가 산업을 망치고 모두를 불행에 빠뜨리게 됩니다.”


‘모럴 헤저드(moral hazard)’는 경제학자나 사회학자들이 즐겨 쓰는 용어다.

모럴 헤저드란, ‘자신의 행동이 상대방의 정보부족으로 정확하게 파악될 수 없다는 점을 악용하여 상대방의 입장에서 볼 때,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리콘밸리에 ‘묻지마 투자‘가 횡행하면서 눈먼 돈들이 흥청망청 탕진된다.

또한 투자자를 속이고 시장을 교란시킬 수 있는 분식회계도 암암리에 자행된다.


“지금의 닷컴투자열풍에 찬 물을 끼얹고 싶지도 의도도 없습니다. IT는 21세기에 아주 중요한 산업이며 비즈니스 모델입니다. 다만 오늘 나의 탐욕으로 인해 내일 벌을 받을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그 말을 꼭 덧붙이고 싶습니다.”


류지호는 닷컴버블 경고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의장 비서실에서 사진기자 동행을 불허했다.

대신 박상우 포토그래퍼가 찍은 사진을 파이낸셜타임스에 제공했다.

혹시나 의도치 않은 사생활적인 부분이 노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작가의말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Mr. 할리우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34 우리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6 22.11.14 4,371 143 26쪽
333 Big Shot. (5) +5 22.11.12 4,361 142 22쪽
332 Big Shot. (4) +6 22.11.12 4,144 134 26쪽
331 Big Shot. (3) +7 22.11.11 4,409 139 25쪽
330 Big Shot. (2) +16 22.11.10 4,408 143 23쪽
329 Big Shot. (1) +10 22.11.09 4,465 145 23쪽
328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3) +9 22.11.08 4,286 141 22쪽
»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2) +2 22.11.08 4,072 133 22쪽
326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1) +9 22.11.07 4,358 138 21쪽
325 사회생활은 인맥이야...! +9 22.11.05 4,491 138 26쪽
324 선택과 집중. (4) +9 22.11.04 4,469 138 22쪽
323 선택과 집중. (3) +10 22.11.03 4,366 148 22쪽
322 선택과 집중. (2) +7 22.11.02 4,729 148 24쪽
321 선택과 집중. (1) +5 22.11.01 4,597 148 24쪽
320 아무 것도 안 해서, 안 돌아가는 일도 있더라. +5 22.10.31 4,579 144 30쪽
319 아무 것도 안 해도 잘만 돌아간다. (3) +10 22.10.29 4,569 146 27쪽
318 아무 것도 안 해도 잘만 돌아간다. (2) +8 22.10.29 4,304 131 22쪽
317 아무 것도 안 해도 잘만 돌아간다. (1) +9 22.10.28 4,565 153 27쪽
316 Celebrity. (2) +8 22.10.27 4,529 148 28쪽
315 Celebrity. (1) +10 22.10.26 4,606 144 27쪽
314 지적인 액션영화는 망할 걸? +4 22.10.25 4,640 155 26쪽
313 엄마는 여한이 없어..... +11 22.10.24 4,573 144 29쪽
312 세계 최초의 D-Cinema! +5 22.10.22 4,513 154 25쪽
311 환경이 아닌 인식의 문제. (4) +4 22.10.21 4,457 143 24쪽
310 환경이 아닌 인식의 문제. (3) +11 22.10.20 4,372 160 22쪽
309 환경이 아닌 인식의 문제. (2) +8 22.10.19 4,471 132 22쪽
308 환경이 아닌 인식의 문제. (1) +6 22.10.18 4,568 155 22쪽
307 괴짜 같은 녀석..... +7 22.10.17 4,512 150 25쪽
306 영화 기술사의 한 획! (5) +13 22.10.15 4,534 162 20쪽
305 영화 기술사의 한 획! (4) +5 22.10.15 4,270 129 2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