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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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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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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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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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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선택과 집중. (3)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해동밀교의 당대 교주는 주인공 준후의 양아버지다.

그는 원래 좋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사람을 돕는다는 해동밀교의 본분을 망각하고 만다.

시바, 칼리, 아수라 등을 숭배하게 된다.

급기야 제물을 바치며 자신의 힘만 추구하는 광기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인신공양까지도 서슴지 않는 광인이 되어간다.

그것을 알게 된 해동밀교의 4대 호법은 악령퇴치의 일가견이 있는 박 신부를 불러온다.

그 시기 현암 역시 주화입마 후유증을 해결하기 위해 해동밀교로 잠입한다.

서교주의 폭주로 인해 호법들이 몰살당한다.

죄 없는 승려들까지 재앙에 휩쓸려 죽음을 맞이한다.

결국 해동밀교 본산은 아수라가 된 서교주의 난동으로 멸망하게 된다.

서교주의 폭주를 막기 위해 현암, 박신부, 준후가 힘을 합치지만.

역부족이다.

여기까지 오기 전 신파가 빠질 수가 없다.

아들을 아들이라 부르지 못하는 장호법의 애끓는 부정.

그 같은 사실을 꿈에도 모르는 준후의 천진난만함.

관객들은 엇갈린 부자지간의 운명에 눈시울을 붉힐 수도 있다.

그렇게 된 것은 모두 준후가 엄청난 영적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다음 대 해동밀교 교주가 되기 위해 서교주의 양아들로 입적하게 된 것.

서주교가 처음부터 빌런이었던 것은 아니다.

벽공도인이 서주교가 이성을 잃게 만들기 위해 몰래 약을 먹였다.

그는 서교주를 광인으로 만들어 해동밀교 내 서교주의 세력을 처리하려고 했다.

해동밀교는 물론 보화를 차지하려는 야망 때문이다.

또한 도술에 뛰어난 잠재력을 보유한 준후를 자신의 후계자로 삼을 욕심도 있다.

준후로 하여금 자신의 도맥을 잇게 한 후에 새로운 문파를 개창하려는 야심을 품었다.

나중에 밝혀지는 이 사단의 내막이다.

그런데 벽공도인이 예상한 것보다 서교주는 너무나 강했다.

결과적으로 벽공도인이 차지하려고 그렇게 원했던 모든 것들을 도리어 잃고 만다.

그렇다고 끝이 아니다.

겨우 목숨을 부지한 벽공도인은 준후만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

승희 가족의 불행을 해결하려던 주인공 일행을 습격한다.

준후가 벽공도인에게 납치당하고, 그 시점에 승희가 팀에 합류한다.

믿을 수 있는 박 신부를 따라나서긴 했지만, 승희는 세상의 이면에 대해 혼란을 겪는다.

그래서 합류가 곧바로 이어지진 않는다.

비극적인 가족사와 미지의 세계의 발을 내딛은 승희가 정신을 수습하기도 전에 거대한 음모와 싸움에 휘말린다.

납치된 준후를 추격해 당도한 곳은 불타버린 해동밀교 본산 터.

그곳에서 1편을 있게 했던 숨겨진 이야기들이 모두 밝혀진다.

준후의 아버지임을 밝히진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 장호법의 사연.

서교주와 벽공도인이 준후를 탐냈던 이유.

벽공도인이 실은 한국 정통 도맥을 이은 것이 아니라 중국의 화산파 제자라는 충격적인(?) 비밀까지.

특히 인신공향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아주 귀한 사람을 바칠수록 좋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서교주가 폭주하기 전에 준후를 주목했다는 사실은 여러모로 충격적이다.

준후를 자신의 양자로 들이고 여러 가지 주술을 가르친 것도 결국 인신공양의 제물로 바쳐 힘을 얻으려는 서교주의 탐욕이었던 것.


[아니야. 아니지? 형! 그치! 신부님... 모두 거짓말이죠?]


진실을 알게 된 준후는 이성을 잃게 된다.


[진정해...!]


이성을 잃고 날뛰는 준후의 위용이 서교주 못지않다.


[으아악! 용서 못해! 죽여 버릴 거야!]


왜 서교주와 벽공도인이 준호를 탐냈는지 알게 해준다.

잠재되어 있던 준후의 재능이 광기를 통해 분출된다.

벽공도인 하나 처지 하는 데도 애를 먹는다.

그런데 준후까지 이성을 잃고 날뛰니 퇴마사 삼인방으로서는 죽을 맛이다.

이때 활약을 하는 것이 바로 월향이다.

영화 내내 말썽만 피우고 도움이 되지 않던 월향이다.

절체절명의 순간.

비로소 월향이 현암과 의지로 연결된다.

마치 이기어검술처럼 허공을 휘젓는 비기를 선보인다.

결국 벽공도인을 처치한다.

광인이 되어 날 뛰던 준후까지 진정시킨다.

주인공들은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럼에도 악당들을 물리쳤다.

어찌 보면 상처뿐인 영광이다.

전형적인 액션영화 엔딩이다.


‘액션영화에서는 주인공을 험하게 굴려야 제 맛이지....!’


그런 만큼 재미가 보장된다.

육체적으로나 서사적으로나.

에필로그에서 해동밀교에서 희생당한 혼령들을 위로하는 제(祭)가 치러진다.

그 자리에서 준후가 야무지게 다짐한다.


[다시는 나 같은 불행한 아이가 생기지 않도록.... 세상에 나가 못된 악령들을 퇴치할 것이라 맹세합니다!]


해동밀교 사건을 해결했지만 현암은 여전히 주화입마를 해결하지 못했다.

트라우마 역시 극복하지 못했다.

반면에 큰 소득도 얻게 된다.

월향이라는 영혼의 단짝을 얻음으로써 약간의 성장을 이뤘다.

승희는 얼떨결에 퇴마사팀에 합류했다.

고생길이 열린 불안한 미래를 예감한다.

애써 쾌활함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반면에 박 신부는 뭔가 비밀을 숨기고 있는 것 같다.


‘비밀을 알고 있다는 것이 맞는 표현이겠지.’


그렇게 영화가 마무리되면서 시리즈에 대한 여지를 조금 남겨둔다.

그 비밀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관객들이 궁금하도록.

박 신부의 파문과 관련해서도 서울대교구의 스캔들로 비화할 수 있는 여지도 미리 깔아두었다.

카톨릭 사제를 파문할 수 있는 권한은 오직 바티칸에만 있다.

사제직을 박탈한다는 것은 구원 받을 여지를 완전히 박탈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서울대교구에서 독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박 신부는 이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받아들였다.

추후 세계편으로 확장된다면 이 문제로 인해 한국의 카톨릭계가 큰 소동을 겪게 된다.

Timely 시네마틱 유니버스 전략도 도입할 예정이다.

최종 극장 상영본에는 쿠키영상이 들어간다.

엔드 크레디트 중간에 타다 남은 서교주의 발을 의미심장하게 보여준다.

만약에 1편이 박스오피스에서 만족할 만한 성적을 거둔다면, 이어질 시리즈에서 서교주가 제대로 된 악마가 되어 돌아온다.

불타다 남은 발을 매개체로 다시 악령의 모습으로 더욱 강해져서 돌아온다.

폐허가 된 해동밀교 근처를 지나는 이들을 유혹해 권속으로 만든 후 사이비종교 단체를 조직한다.

힘을 회복하는 동시에 세력을 만든다.

당연히 자신을 악령으로 만든 퇴마사 사인방을 증오할 수밖에 없다.

현암을 죽인 후 그 몸을 차지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본래는 말세편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원작자의 동의를 얻어 이번 삼부작에 포함시킬 수가 있었다.

서교주는 2편의 메인 빌런은 아니다.

메인 빌런으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누구도 <퇴마기록>의 프랜차이즈화를 장담할 순 없다.

심지어 류지호라고 할지라도.

이전 삶에서 성공했던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완전히 새롭게 진행되고 있다.

그때보다는 모든 면에서 준비가 잘 되어있긴 하지만.

흥행성공을 확신할 수 없음에도 이미 3편까지 시나리오가 작성되어 있다.

류지호, 배창훈, 원작자, 피디.

단 네 사람만 알고 있다.


‘당장 안 되면 2010년대 다시 시도해 되고.’


좀 더 기술이 나아지고 인프라도 갖춰진 후에 또 해보면 된다.

류지호가 WaW 픽처스라는 한국 최대 영화투자배급사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계획이다.

하고 싶은 프로젝트는 될 때까지 언제라도 하고야 만다랄까.


✻ ✻ ✻


원작 소설의 국내편에는 사실 주인공들의 명확한 목표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주인공들의 만남, 퇴마행, 성장 등을 에피소드로 분절해 서술했다.

류지호의 요청을 받은 원작자는 분절된 에피소드를 시간순서로 재정리한 후, 버릴 건 버리고, 취할 건 취했다.

그런 후에 배창훈 감독과 함께 현암을 중심으로 한 단순한 플롯을 만들었다.

원작팬이 아닌 일반 관객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우리는 불쌍한 사람을 돕고 구하기 위해 힘을 사용하는 거다. 세상의 악령을 멸하기 위해 나선 것이 아니야. 우리는 항상 사람의 목숨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 비록 그것이 악귀가 빙의된 사람일지라도....]


박 신부의 이런 신념은 때로 승희와의 갈등을 유발한다.

악령이 쓰인 인간을 대하는데 있어서 서로 다른 태도를 취하게 된다.

그런 의견충돌은 3편에 가서야 도드라지게 되겠지만.

<퇴마기록> 1편은 원작에 비교적 충실한 편이다.

대신 평면적이었던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만들고, 소설에서 생략되었던 내용들을 영화에서 새롭게 보강해서 넣었다.


[남들이 가지지 못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저들과 전혀 다르다고 생각하지 말자. 우리도 저들과 똑같이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는, 한낱 인간에 불과하다는 걸 항상 명심하자.]


등가교환.

주인공 네 명은 남들이 가질 수 없는 초능력을 가졌다.

그렇지만 그에 비견될 수 있는 커다란 상실과 상처를 갖게 되었다.

퇴마사로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현암은 동생을 지키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과 불완전한 능력을.

준후는 따뜻하고 친절했던 어른들의 이면에 도사린 추악한 탐욕을.

박 신부는 신앙과 퇴마 사이에서의 정체성 혼란을.

승희는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부서져버린 가슴을.

그것들을 극복하고 해답을 찾아야하는 여정이 주인공들에서 주어졌다.


‘다행히 영화가 칙칙하게 나올 것 같진 않네.’


몇 번의 촬영을 지켜보는 류지호의 감상이다.

이민재와 안중기의 표정에서 살아있는 사람다운 표정들이 보였다.

느와르 혹은 심령스릴러라고 하더라고 영화 내내 세상의 온갖 고통을 짊어진 것처럼 연기한다면 그것을 보는 관객이 힘들다.

마치 영화에 강요당하는 느낌이랄까.


‘내가 힘드니까 알아주세요.‘


그 같은 거다.

이민재와 안정기 배우는 상황에 따라 웃음을 흘리기도 하고, 짜증을 내기도 하고, 금방 포기할 것처럼 낙담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의도치 않은 유머가 불쑥불쑥 튀어나오기도 했다.

작정하고 웃기려고 한 것이 아니라서 관객이 웃지 않아도 상관없다.


‘역시 배 감독님이야. 안 선배야 여러 작품을 함께 했기에 척하면 착이었고, 이민재 역시 능수능란하게 원하는 연기를 끌어내시네.’


이민재는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그림이 만들어졌다.

연기 내공으로 화면을 씹어 먹을 정도의 아우라는 보여주지 못한다.

아직은 애송이다.

그럼에도 장점이 많은 배우다.

두 사람 모두 힘을 빼고 연기를 하는 것 같았다.

화면도 꽤 좋은 결과물이 나올 것 같았다.

이전 삶에서 촬영감독으로 실력을 인정받았던 김영복이다.

류지호와 단편영화를 두 편 작업하면서 마인드까지 업그레이드 되었다.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유성길 기사보다 더욱 깐깐한 촬영감독이 되어 가고 있다.


“수고하셨습니다!”


류지호가 촬영을 마친 배우와 스태프에게 힘차게 외쳤다.

원래 조용히 왔다가 조용히 돌아가려고 했다.

도저히 잘하고 있는 스태프들을 두고 볼 수 없었다.


“고기나 구워먹읍시다!”

“며칠 전에 회식 쏘지 않았어?”

“바쁘신 분은 안 와도 됩니다.”


일주일도 안 되어서 또 회식을 하게 된 <퇴마기록> 촬영팀이다.

고깃집을 통째로 빌려 신나게 먹고 마시며 고된 촬영의 피로를 풀었다.

뻔질 나게 <퇴마기록> 촬영장을 드나들던 류지호가 어느 순간 발길이 끊겼다.

며칠 후 류지호가 모습을 드러낸 곳은 양수리 종합촬영소다.


❉ ❉ ❉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천재가 덜컥 나타나기도 한다.

세상을 다 뒤집어 놓을 기세로 나타나서는 사람들의 관심을 일거에 끌어 모은다.

하지만 천재의 길은 늘 순탄치만은 않다.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는 기본이다.

천재에게 가장 큰 적은 더 나아질 수 없다는 점에 대한 고뇌다.

천재는 이미 완성되어 있으니까.

올 여름 블랙코미디 영화 <넘버 쓰리>가 개봉됐다.

한국 코미디 영화 역사에 한 획을 그을 만한 기념비적 작품이다.

청소년관람불가 영화임에도 나름 박스오피스에서 선방했다.

서울 52만(실제 29만), 전국 123만 명을 동원했다.

이 영화의 각본을 쓰고 직접 연출까지 한 송진한은 충분히 천재라고 부를 만했다.

물론 임선택 감독의 걸작들 대부분을 집필한 작가가 친형인 관계로 저평가 되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

송진한은 형 못지않게 일찍부터 잠재력을 인정받았다.

서울대 영화동아리 시절부터 두각을 드러냈다.

<겨울 나그네>, <태백산맥>의 각본/각색을 한 것만으로 글재주가 설명이 된다.

그랬던 송진한이 식상하다며 욕을 먹기만 하던 조폭코미디를 데뷔작으로 들고 나왔다.

독특한 영화적 문법을 가미해서 그야말로 ‘조폭’ 가지고도 고급스러움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줬다.

<넘버 쓰리>는 아주 유쾌한 조폭코미디다.

외피만 보면 그렇다.

실제로는 한국사회의 부조리와 부패에 관한 통쾌한 풍자를 보여주는 영화다.

사실 영화 연출이 아직은 덜 정제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그럼에도 캐릭터 하나하나를 적재적소에 살려낸 것은 숙련된 각본가가 아니면 도저히 해낼 수 없는 내공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전 삶에서는 영화 인생이 평탄치 않았다.

영화에 있어서 타협하지 않는 면모로 인해 차기작에서 비평가들로부터 맹렬한 공격을 받았다.

이 후로 영화계에서 사라졌다.

꾸준히 영화작업을 하며 자신만의 영화세계를 펼쳤다면.


‘어쩌면 한국의 태런티노라고 불렸을지도 모를, 그런 양반이지.’


그런 송진한이 양수리 종합촬영소 세트장에 와 있다.

모니터 스테이션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멀찍이 떨어져서 촬영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런 송진한을 제작진 또한 방해하지 않았다.


끼익.


육중한 사운드 스테이지 방음문이 열렸다.

사람 한 명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틈으로 류지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쉿.


류지호가 얼른 입가에 손가락을 댔다.

방음문 주변에 모여 있던 제작부들이 일제히 인사를 해왔기 때문이다.

권영균 피디가 당장에 달려오려고 했다.

류지호가 손을 저으며 가만히 있으라는 시늉을 해보였다.


“......!”


류지호가 한편에 우두커니 서서 촬영을 지켜보고 있는 송진한을 발견했다.

촬영에 방해되지 않게 조용히 다가갔다.


“감독님도 오셨네요?”

“아, 류 감독.”


두 사람이 소리를 죽여 인사를 나누는데.


“슛!”


박은상 감독의 큐 사인이 세트장 안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현재 세트에서 촬영되고 있는 영화도 류지호가 프로듀싱하는 작품이다.

처음 기획할 때는 류지호와 박은상 두 감독의 공동연출을 고려했다.

D-Cinema 프로젝트가 연기와 지연이 반복되면서 박은상 감독 단독 연출로 정리되었다.

청춘영화의 외피를 두르고 있다.

충무로 스타일의 처절한 격투가 부각되는 액션영화이기도 하다.

영화 타이틀은 십여 년 전이었다면 검열당국에서 불허했을 <불길한 청춘>이다.

저예산 영화다.

<퇴마기록>에 비해 모든 면에서 1/3 규모다.

그럼에도 박은상은 절박했다.

때문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다.

게다가 한중미 합작영화 <풍운아>까지 걸려 있다.

이번 영화가 안 된다면 <풍운아> 연출 기획가 날아갈 수도 있다.


“커엇!”

“오케이!”


박은상의 시원시원한 음성에 차분했던 세트장에 다시 활기가 넘쳤다.

할리우드에서 여러 차례 작업을 해본 박은상 감독이다.

WaW 픽처스 제작시스템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간식차와 함께 왔어요. 저와 나가서 커피 한 잔 하시죠.”

“인사 안 하고?”

“말 걸었다가 집중 깨지면 그렇잖아요.”

“별로 신경 안 쓰는 것 같던데?”

"저라도 유난 좀 뗠어보려구요.“

“무슨 유난?”

“촬영현장이 놀이터는 아니잖아요. 외부인이 너무 아무나 들락거리는 것 같아서요.”


송진한 역시 데뷔를 해봐서 안다.

지인들이 촬영장을 방문하기 일쑤다.

오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간단한 장면을 찍더라도 집중도나 텐션이 뚝 떨어질 때가 종종 있었다.


“걱정되세요?”

“뭐가?”

“박 감독이 예전 선배들이 하던 것처럼 줄콘티로 현장에서 마음대로 각본을 고칠까봐.”


송진한의 미간이 깊게 파였다.

<넘버 쓰리>로 데뷔하기 전,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할 때 큰 상처를 얻었다.

유명한 폭력조직 보스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의 각본을 썼다.

야심차게 취재도 열심히 하고 각본을 썼다.

결과적으로 자신이 쓴 각본의 30%도 실제 영화에 반영되지 않았다.

심지어 영화의 실제 주인공이 이렇게 고쳐라 저렇게 고쳐라 강요를 해서 완고도 제대로 마무리하지 않고 중간에 집필을 때려치우기까지 했다.

각본 크레디트에서 자신의 이름을 빼줄 것을 요구 했다.

하지만 영화 각본 크레디트에 버젓이 이름이 올라가 있었다.

나름 시나리오 작가로 썩 괜찮은 필모그래피를 쌓고 있었다.

흑역사로 남을 만한 작업으로 인해 시나리오를 작가를 때려치웠다.

공공연하게 그 영화는 자신의 각본이 아니라고 말하고 다닐 정도니, 얼마만큼 그 영화에 참여한 것을 부끄러워하는지 알 수 있다.


“그렇진 않아. 박 선배가 미국에서 작업을 해오셨다고 들었어. 어떻게 하시나 궁금해서.”

“연출은 다 똑같죠. 할리우드나 충무로나.”

“그렇지 않던데?”

“.....?”

“오케이가 대부분 세 번째 테이크에서 나오는 것 같더라.”

“할리우드 영화는 보통 다섯 테이크 이상 찍기가 힘들어요.”

“제작비 때문에? 그 정도로 빡빡해?”

“케이스 마다 다 다른 것 같아요. 까다로운 배우의 경우 디렉션을 정확하게 주지도 못하면서 감독이 계속 찍으면 바로 짜증을 내거든요. 스태프들도 같은 장면을 계속 찍으면 자신의 무능을 보여주는 거라 굉장히 프로페셔널하게 임하고요. 그래서 리허설을 많이 하는 편이죠.”


그것도 돈 주고 따로 고용한 대역을 데리고 리허설을 한다.


“류 감독도 시나리오를 직접 쓰니까 알겠지만, 각본을 쓰는 입장에서 감독이 현장에서 마음대로 바꿔버리면 그것처럼 화나는 것도 없어.”

“그래서 최초 각본 계약이 중요한데..... 아직 그 부분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있네요.”

“류 감독 영화에는 아무도 터치를 못하겠지?”

“그렇지도 않아요. 독립영화를 한다면 모를까.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은 이해관계자가 많아서 그들의 의견을 조율하는 게 정말 골치 아프고 힘들어요.”


충무로는 메인 투자자와 제작자만 잘 설득하면 그런대로 감독의 창의성이 담보되는 편이다.

반면에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

사공이 많기 때문이다.


“트라이-스텔라 정도 되는 영화사라면 그럴지도 모르겠군.”

“B Movie 장르영화만 제작하는 디맨션 필름이라고 있어요.”

“이진번 아들이 나온 <크로우> 만든 영화사?”


엄밀히 말하면 투자배급사다.

후속 시리즈는 저작권을 가진 디멘션 필름에게 권리가 있지만.


“거기도 마찬가지에요. 500만 달러짜리 영화를 제작해도 온갖 관계자들이 한마디씩 의견을 내죠. 물론 A급 감독이 되어서 자기 영화사 차려서 직접 제작하면 그런 일은 없지만요.”


디맨션 필름 투자·제작·배급 영화에서조차 매주 리포트가 임원들에게 올라온다.

거기에는 예산집행문제는 기본이고 촬영진행속도, 분량소화상황까지 언급되어 있다.

그런 후에 임원들이 감독이나 현장을 지휘하는 프로듀서에게 리포트를 써서 보낸다.

읽고 참조 해주길 기대한다는 식으로 정중하게 표현한다.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감독은 별로 없다.

스튜디오로부터 전달된 의견을 묵살하고 해오던 방식대로 작업을 진행한다면 스튜디오 고위임원과 면담을 해야 할 수도 있다.


“창작자로서 영화감독은 할리우드보다 충무로에서 훨씬 자유롭게 일할 수 있어요. 게다가 할리우드에 비해 연출 기회 경쟁도 덜 치열하잖아요.”


다만 두 곳 사이에서 먹고 사는 문제는 하늘과 땅 차이가 나지만.


“나는 류 감독이 내 시놉시스를 단번에 오케이 해주리라고는 기대 안했어. 그래서 몇 가지 버전을 준비해 두었지.”

“처음 내가 기획했던 아이디어보다는 뛰어났으니까요. 권 피디와 박 감독이 날 설득했던 논리도 좋았고.”


<불길한 청춘> 프로젝트 최초의 아이디어는 1987년을 배경으로 하는 학원폭력물이었다.

6월 항쟁이 벌어지던 시기다.

암투장이라는 비밀스러운 폭력 모임에서 고등학교 폭력서클 멤버들이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성장하는 이야기였다.

<크로우즈 제로>로 대표되는 일본 학원폭력물과 비슷하지만, 영화의 포커스를 학교가 아닌 사회로 확장시킨 이야기였다.

류지호는 비관적이고 절망에 놓인 십대들의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묘사했다.

각색을 맡은 송진한은 97년 오늘로 시대배경을 고정했다.

똑같이 폭력을 소재로 다루지만 섬세한 감수성을 담았다.

독재정권 아래 놓인 시대상황 대신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맞이하게 된 한국 사회의 후유증을 풍자와 은유로 풀어냈다.

청소년들의 방황과 성장을 담은 뻔하디 뻔한 영화다.

그런데 암울한 경제 상황에 놓인 대한민국에서 기업의 부도, 구조조정, 정리해고 등으로 인해 이 시대 가장들이 마주한 절박함과 지면 죽는다는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폭력서클 멤버들이 다르면서도 닮아 보이는 것이 포인트다.


작가의말

행복하고 평안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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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0 Big Shot. (2) +16 22.11.10 4,407 143 23쪽
329 Big Shot. (1) +10 22.11.09 4,464 145 23쪽
328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3) +9 22.11.08 4,285 141 22쪽
327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2) +2 22.11.08 4,071 133 22쪽
326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1) +9 22.11.07 4,358 138 21쪽
325 사회생활은 인맥이야...! +9 22.11.05 4,491 138 26쪽
324 선택과 집중. (4) +9 22.11.04 4,469 138 22쪽
» 선택과 집중. (3) +10 22.11.03 4,366 148 22쪽
322 선택과 집중. (2) +7 22.11.02 4,728 148 24쪽
321 선택과 집중. (1) +5 22.11.01 4,596 148 24쪽
320 아무 것도 안 해서, 안 돌아가는 일도 있더라. +5 22.10.31 4,578 144 30쪽
319 아무 것도 안 해도 잘만 돌아간다. (3) +10 22.10.29 4,568 146 27쪽
318 아무 것도 안 해도 잘만 돌아간다. (2) +8 22.10.29 4,303 131 22쪽
317 아무 것도 안 해도 잘만 돌아간다. (1) +9 22.10.28 4,564 153 27쪽
316 Celebrity. (2) +8 22.10.27 4,529 148 28쪽
315 Celebrity. (1) +10 22.10.26 4,605 144 27쪽
314 지적인 액션영화는 망할 걸? +4 22.10.25 4,639 155 26쪽
313 엄마는 여한이 없어..... +11 22.10.24 4,572 144 29쪽
312 세계 최초의 D-Cinema! +5 22.10.22 4,513 154 25쪽
311 환경이 아닌 인식의 문제. (4) +4 22.10.21 4,457 143 24쪽
310 환경이 아닌 인식의 문제. (3) +11 22.10.20 4,371 160 22쪽
309 환경이 아닌 인식의 문제. (2) +8 22.10.19 4,470 132 22쪽
308 환경이 아닌 인식의 문제. (1) +6 22.10.18 4,567 155 22쪽
307 괴짜 같은 녀석..... +7 22.10.17 4,511 150 25쪽
306 영화 기술사의 한 획! (5) +13 22.10.15 4,534 162 20쪽
305 영화 기술사의 한 획! (4) +5 22.10.15 4,269 129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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