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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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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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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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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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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맹수가 얌전하도록 가만 놔둬라.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저기요... 혹시 우리 아는 사이였어요?”


연예인처럼 우월한 외모도 아닌데, 사람들이 잘들 알아본다.

처음에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잘 놀았다.

어느 순간 류지호 주변으로 군중들이 몰려들었다.


“류지호잖아?”

“정말?”

“하하.....”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류지호를 향해 휴대폰과 디지털카메라를 들이댔다.

류지호가 찍히는 것은 상관없었다.

동생들이 촬영되는 것이 문제다.

특히나 레오나가.

하는 수 없이 계속해서 자리를 옮겨가며 즐겨야 했다.


“......!”


전야제까지 해서 사흘이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갔다.

락 페스티벌 마지막 날에는 낮부터 무주리조트 전체가 긴장감에 휩싸였다.

장내 외부 음식물, 캔, 병 반입 금지라는 강력한 조치가 내려졌다.

이날은 해외특파원들까지 무주리조트를 찾아왔다.

모두들 기다려왔던 그 순간.

밤 9시 30분.

수만 명의 관객들 사이에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마침내 오매불망 기다려왔던 그들,  Dream Theater가 무대에 등장했다.


와아아아!


동계유니버시아드 대회 때보다 더 커다란 함성이 덕유산에 메아리쳤다.

한국의 락/메탈 팬들은 화려한 테크닉에 열광하는 면이 있다.

그리고 락 발라드를 유독 좋아한다.

Dream Theater는 멤버들이 약물이나 폭력과 거리가 먼 나이스 가이 이미지가 있다.

한국의 락 마니아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는 다 갖췄다고 볼 수 있다.

Dream Theater의 명곡들이 흘러나올 때마다 함성이 합창으로 변했다.

한국에서 공연을 하는 해외 아티스트들이 감동에 허우적거린다는 바로 그 한국관객들의 떼창이 시도 때도 없이 펼쳐졌다.

Another Day와 Pull Me Under는 류지호가 특히나 좋아하는 곡이다.

한 곡은 암투병 중이던 부모님을 그리며 쓴 곡이고, 다른 곡은 햄릿이 자신의 정신을 대가로 의붓아버지를 죽여 복수하려는 순간을 노래하고 있다.

두곡 다 아버지와 관련된 내용인데, 이전 삶에서는 곡이 만들어진 의도도 모르고 좋아했었다.

굳이 가사가 어떤 의도로 쓰였는지 몰라도 음악을 즐기는데 하등 문제될 것이 없었으니까.

영화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감독은 영화에 의미를 넣어야 한다.

적어도 스스로 예술행위라고 믿는다면.

그에 반해 관객이 감독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머리를 써야 할까.


‘대부분의 관객들은 그저 즐기려고 영화를 보는 것뿐임에도?’


최근 부쩍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류지호다.

본인이 하는 영화의 목적을 단순화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러기 위해서 누구에게 보여줄 것인지를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최대 100만 명이 봐주길 기대한다면 <The Killing Road>같은 마니악한 영화를 만들고, 300만 명 정도가 봐주길 기대한다면 <민중의 적> 같은 장르영화를 만들고, 천만 명이 봐주길 기대한다면 <REMO>나 TCU 프랜차이즈 같은 블록버스터를 만들면 되지 않을까.

작가주의 영화니 상업영화니 이분법적으로 나눌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관객들이 오해하는 것이 작가주의 감독들이 유독 주제의식과 메시지에 민감하다는 것이다.

실제는 그렇지 않다.

류지호가 알기로는 그렇다.

영화감독은 주제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영화를 연출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이야기나 인물에 매료되어 영화를 찍는다.

사회파라고 불리는 감독들조차 자신의 영화에서 메시지를 강하게 주장하지 않는다.

그저 질문할 뿐.

메시지를 전달하는 순간 영화가 아니라 선동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설득과 선동은 영화에서 한 끗 차이다.

많은 영화평론가와 영화애호가들이 한국식 신파를 극렬히 거부하는 이유가 바로 그 한 끗 차이 때문이다.

감독이 영화에서 신파를 통해 일방적으로 감정 과잉을 유도하려고 드니까.


“.....!”


Dream Theater 같은 공연에서 쓸데없는 관객과의 소통 같은 거 없다.

주구장창 노래와 연주가 이어진다.

프로그레시브한 락 음악과 열렬한 관객들의 반응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류지호의 머릿속은 고민들로 가득 찼다.

그런 고민을 하는 데는 자신감도 작용했다.

할리우드는 말할 것도 없고, 한국에서 연출한 작품까지도 수십 개 국가로 팔리기 때문에 제작비를 회수할 수 있게 됐다.

심지어 <복수의 꽃> 같은 영화로도 돈은 벌었다.

뭘 해도 된다.


“앵콜!”


관객들의 열망에 호응해 Dream Theater는 두 곡을 더 부르고 무대에서 내려갔다.


펑펑.


축제의 끝을 알리는 아름다운 불꽃놀이가 이어졌다.

그와 함께 류지호의 상념도 화려한 불꽃처럼 흩어졌다.


✻ ✻ ✻


첫 번째 무주리조트 락 페스티벌이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공연을 기획한 무주리조트 행사팀과 매니지먼트 CHAN 공연기획 사업부는 일천한 경험에도 나름 행사를 잘 치러냈다.

이틀 간 누적관객 5만 2천명을 기록했다.

모든 공연이 지연이나 사고 없이 원활하게 진행되었다.

리조트라는 장소의 장점이 십분 발휘되어 화장실, 식당, 휴식 공간 등 관람객들에게 필요한 시설이 충분했다.

자원봉사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장내를 청소하는 봉사자들 또한 이번 공연의 일등 공신이었다.

겨울철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는 학생들이 자원봉사자로 많이 참여했다.

근처 지리나 시설의 위치, 셔틀버스 시간표 같은 기본적 사항을 숙지하고 있어서 안내요원으로 훌륭한 역할을 수행했다.

나래안전 시스템에서 파견 나온 안전요원들도 관객들과 특별한 트러블 없이 무난하게 질서유지 활동을 펼쳤다.

나래안전은 대규모 행사를 많이 치러본 경험자들임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아쉽다.”


레오나 파커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하루만 더 하지.”


풀 죽은 강아지처럼 축 쳐져 있는 레오나를 류지호가 위로했다.


“내년부터는 삼일 간 진행된다고 하니까. 내년에는 실컷 놀자.”

“내년은 내년이고.....”

“10월에 LA로 올래?”


언제 풀이 죽었냐는 듯 레오나가 고개를 바짝 쳐들었다.


“한인타운 퍼레이드에 초대 받았어. 그때 함께 퍼레이드에 참여하자.”

“좋았어!”


매년 10월에 열리는 LA한인축제는 미국 한인사회의 가장 큰 행사 중 하나다.

1972년 창립한 LA코리아타운 번영회 주최로 시작됐는데, 1988년 코리아타운 교민회로 이름을 바꾸고, 1997년 LA한인축제재단으로 비영리단체 등록을 해 축제를 개최해 왔다.

JHO Company Group은 이 행사의 중요한 스폰서 기업이다.

한인사회 일부에서 특정 기업이 행사를 독점하며 여러 문제가 나오고 있다는 말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류지호는 스폰서를 철회할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LA한인축제재단에서 류지호의 눈치가 보였던 모양이다.

퍼레이드의 중요 손님으로 초대하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퍼레이드를 주관하는 미주한국신문에도 할 말이 많은 류지호다.

화합, 희생, 헌신 같은 온갖 좋은 말들로 수놓지만, 뒷면을 들여다보면 너저분한 일들이 참 많았다.

2000년대 들어와서 LA한인축제가 더 커지고 위상도 높아지다 보니 온갖 날파리가 꼬이고 있었다.

한인들의 단합을 해칠 것 같아서 류지호는 꾹꾹 참고 있다.

딱히 관심사도 아니기에 깊이 알아보지는 않고 있지만 자꾸만 안 좋은 이야기들이 들려온다.

사실 류지호가 한인축제를 후원하는 것은 본인이 한국인이어서가 아니다.

다른 민족들에게 한인들이 기죽는 것이 싫어서다.

남가주에는 로즈 퍼레이드와 할리우드 크리스마스 퍼레이드 같은 유명한 퍼레이드가 있다.

마틴 루터 킹 퍼레이드를 비롯해 차이니스 신년 퍼레이드, 저패니스 신년 퍼레이드, 히스패닉 퍼레이드 등 각 이민자 문화를 대표하는 퍼레이드도 있다.

류지호가 UCLA에 다닐 때만 해도 LA한인축제 퍼레이드가 다른 커뮤니티보다 더 내실 있으며 더 화려하다고 보기 어려웠다.

당시에는 한인 커뮤니티가 다른 커뮤니티에 퍼레이드로 지는 게 싫었다.

그래서 JHO Company와 자선재단을 통해 LA한인축제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부에서 곪아터진다면 후원을 철회할 마음도 있다.

LA한인축제 말고도 미국 내 한인축제는 많았으니까.


“건강 잘 챙기고.”

“10월에 LA에서 봐.”

“순호는 벨에어 집에 자주 들러보고.”

“대저택이 무너지기라도 할까봐?”

“집주인이 너무 신경 안 써도 안 되는 거야. 아라는 친구 아무나 사귀지 말고.”

“아휴~ 또 잔소리!”


동생들을 배웅하고 무주리조트로 돌아온 류지호의 표정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나래안전 시스템의 박영규와 장문식 이사가 조용히 면담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무주리조트에서도 특1급 호텔인 티롤.

그중에서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객실이 있다.

바로 501호다.

1997년 마이키 잭슨이 묵었던 세븐서미츠 룸은 마이키 잭슨방이라는 애칭으로 통하고 있다.

하룻밤 방값만 500만원에 달하는 이 방은 가온그룹 오너이자 세계적인 영화감독 류지호가 무주리조트를 방문하게 되면 전용 숙소로 사용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방 구조는 별난 게 없다.

방 1개에 거실 1개. 조리할 수 있는 공간이 따로 있을 뿐 특별할 건 없다.

서울의 특급호텔 스위트에 비하면 방도 그다지 넓지도 않고.

이벤트 패키지를 잘 활용하면 100만 원대에 묵을 수도 있다.

암튼 류지호 전용 숙소에서 류지호가 박영규, 장문식과 마주앉았다.

이중삼중으로 도청방지책을 펼쳐놓았기에 외부로 말이 새어나갈 일은 없다.


“단순한 사내 파벌 싸움이 아니라는 건 무슨 의미입니까?”


박영규 이사가 죄스럽다는 투로 대답했다.


“이사 몇 명이 사외이사들과 한통속이 돼서 회사 내부 일에 외부인들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외부인이요?”

“의장님도 아시다시피, 나래안전 내부가 좀 복잡하지 않습니까?”


나래안전 시스템은 태생부터 군 출신, 경찰출신, 정보부 출신, 조폭 출신들을 모아 만든 회사다.

회사 내부에 같은 출신들끼리 자연스럽게 파벌 비슷한 것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임건희 사장이 따로 놀지 않도록 조율을 잘하고 있었지만, 회사 규모가 커질수록 회사 전체에 대한 장악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보안업체 쪽으로 군경 출신을 몰아넣고, 그들을 견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나래종합부동산을 키웠다.

직원 숫자는 보안·경비·경호 사업이 크지만, 매출 및 자산에서는 나래정보통신과 나래 종합 부동산이 훨씬 컸다.


“어떤 조직사회나 혈연·지연·학연은 있게 마련이잖아요. 정도를 벗어났거나 누구나 납득할 수 없는 사내 정치가 아니라면 일소할 수 없는 문제일 텐데요.”

“회사 내부 문제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만, 외부 인사들이 밥숟가락을 얹으려고 기웃거리는 것이 문제입니다.”

“외부인사 누구요?”

“경찰 간부 퇴직자 모임과 군 장성 모임이 주로 기웃거리고 있습니다. 대략 십여 곳 정도 됩니다.”


류지호는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군 장성 모임 중에 가장 대표적인 곳이 별들의 모임이라는 성우회다.

그 외에 대령 모임부터 별의 별 퇴직 간부 모임이 존재했다.

경찰 출신으로는 경우회가 대표적이다.

군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재항군인회, 참전용사회, 자유총연맹 등 관변단체만 해도 수 십 곳이다.

군경 선후배가 많이 들어가 있는 나래안전이 그들에게 먹잇감으로 보였을 수도 있다.

일부 탐욕스러운 똥별, 똥경들이 슬금슬금 욕심이 생기는 모양이다.

고문이든, 사외이사든 밥숟가락을 얹으려고 기웃거리고 있는 것을 넘어 회사 내부로 들어오려고 하는 것을 보니.


“처음에는 후원금과 스폰서 정도 바라는 상황이라 적당히 도와줬습니다. 그런데 몇몇 정치에 뜻이 있는 장군 출신들과 관변단체 회장들이 나래안전을 이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무슨 움직임이요?”

“원하는 거야 뻔합니다. 정보와 무력입니다. 저희를 지지 세력으로 만들 생각인 것 같습니다.”

“관변단체야 뿌리 깊은 보수세력의 나팔수 부대이니 그렇다고 치고. 군 장성 출신들이 나래를 넘본 다고요?”


나래안전 시스템이 타 업체들과 비교해 근무조건도 좋고, 군 출신이나 경찰 출신을 우대하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군경 출신들이 선호도가 높은 기업이다.

퇴역 전 부하들로부터 존경을 받은 고위급 인사들을 고문이나 교관 혹은 강사로 많이 초빙하고 있다.

그러니 나래안전 소속원들의 네트워크가 어지간한 관변단체와 맞먹는 상황이다.

회사가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군경 퇴직자 쪽으로 하나의 세력이 되어 버렸다.

누구도 의도치 않았지만.


“의장님도 군대에 다녀오셔서 아시겠지만, 우리 군은 사실 진급하려면 야전보다 기획파트가 유리하지 않습니까? 그 사람들은 퇴역 후에도 군에서 했던 정치와 권력이 사회에서도 통할 거라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명예를 아는 장성들은 정치 같은 더러운 곳에는 발을 담그려고 하지 않지만요.”


군 내부의 문제야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전 국민의 절반은 잘 알고 있다.

군 개혁이 때마다 여론의 중심으로 떠오르지만, 비리 사건이 터질 때뿐이다.

어떤 조직이든 고인물화 수렁에 깊이 빠지기 전 혁신이 이뤄져야 건강하게 돌아간다.

대한민국의 군대가 개혁되는 것은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바뀌는 것 같은 충격이 없으면 가능하지 않을 정도로 고였다.

군 개혁에 있어서 무기체계의 현대화, 방산비리 척결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군 인맥 교체를 통한 체질 개선이 무엇보다 급선무라고 입을 모은다.

류지호는 두 번에 걸쳐 군대를 다녀왔다.

한국의 군대와 미군을 모두 경험해 봤다.

공군과 해군은 잘 모지만 적어도 육군만큼은 한국 군대가 싸우는 군대가 아니었다.

기획하는 군대다.

언제부터인가 육해공 모두에서 야전출신이 대접받는 게 아니라 책상에서 정책을 기획하는 군인이 우선순위가 돼 버렸다.

육군전력만 놓고 보면 러시아와 중국과도 해볼만하다고 평가받은 한국의 육군이 기획 특화 책상물림 군인들로 인해 해가 갈수록 체질이 약화되고 있다.

소위 ‘똥별’이라며 조롱 받는 일부 장성들의 경우, 기본적인 체력검증도 통과하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그러면서도 당번병과 차량지원 등 장성급에 대한 혜택과 예우는 일반회사 임원의 대우를 훨씬 능가한다.

하나회가 척결되었다곤 하지만 육사 위주의 군 인맥이 서로 끌어주고 당겨주면서 군 조직은 심하게 동맥경화가 걸렸다.

육사와 비육사간의 치열한 경쟁이 있어야 군 조직에도 활력이 돌 텐데.

육사 중심으로 인사가 이뤄지다 보니 조직이 폐쇄적이고 변화에도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없게 됐다.

순혈주의는 필연적으로 허약한 DNA를 가진 군인을 만들게 된다.

육사 졸업장만 있으면 일정 계급까지는 무난히 진급하는데 누가 경쟁을 하려고 할까.

처세술과 인맥 쌓기에 능한 아첨꾼이 득세할 수밖에.

어디 군대만 그럴까.

사회나 기업 역시 개혁의 첫걸음은 조직의 변화 주체인 사람의 교체가 최우선이다.

조직 내 파벌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경영상 방해요소라면 쳐내는 것이 마땅하다.


“(주)동특 합병은 완료가 됐어요?”

“예.”

“지금은 정상화되었습니까?”

“현재 (주)서평특수로 상호명을 변경해서 나래안전의 자회사 형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거기 주력 사업이 뭡니까?”

“석유사업이 매출이 제일 크고, 휴게소가 다음입니다. 파벌 일부가 그쪽으로 손을 뻗쳐서 대부업 진출을 준비하는 것으로 압니다.”

“내가 그 동안 나래 자회사 쪽은 신경을 쓰지 않아서 그런데. 나래에서 내 지분이 어느 정도 됩니까?”

"특별한 변동은 없습니다. 여전히 나래 최대 지분을 보유하고 계십니다.“

“...음”


류지호가 옅은 신음을 흘리며 생각에 잠겼다.

솔직히 나래안전 시스템에는 크게 애정이 없었다.

막말로 버려도 된다는 마음도 있다.

초창기 멤버 가운데 충성스럽고 신의가 있는 사람들만 빼와 가온 그룹 보안팀을 꾸려도 되니까.

가온그룹이 상호출자제한기업이라서 특수관계 회사에 일감몰아주기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는데, 이참에 인수합병해서 정상적인(?) 내부거래로 전환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계열사로 편입되어도 일감 몰아주기라는 부당 내부거래 소지가 있지만, 규제를 피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대부업이라....”


류지호와 나래안전 초창기 멤버들은 본래의 사업 외 부문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문어발 확장으로 대기업이 되겠다는 포부같은 것도 없다.

그저 자신이 몸담았던 전 직장의 후배들이 전역 이후 취업걱정을 덜길 바랄 뿐이다.

그것은 장문식처럼 건달 출신도 마찬가지다.

건달이 좋아서 된 사람보다 어쩌다 보니 뒷골목으로 흘러간 이들이 더 많다.

그들을 양지로 끌어내는 것도 사회·경제적으로 좋은 일이다.


“두 사람... 이참에 나래안전이 가온그룹으로 편입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요?”


가만히 듣고만 있던 장문식이 설레발을 쳤다.


“무조건 찬성! 합시다!”


류지호가 박영규를 돌아봤다.


“직원들에게 투표를 해서 의견을 묻는다면 0.1%의 이상한 물 들은 임직원 제외하고 99.9%는 찬성을 할 겁니다.”


JHO Security Services에 매각하는 방법도 있다.

딱히 내키지 않았다.


“래리 킴 회장과 논의해 볼 테니까, 두 사람도 나래안전으로 돌아가서 창업멤버들과 의견을 나눠보고 CAPS쪽 경영진과도 대화해 보세요.”

“예!”


나래안전을 밖에 두고 방치하는 것보다 가온그룹에 편입시켜 통제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가온그룹으로서도 나쁠 것이 없다.

고용인원감축을 해야 할 경우 해고보다는 계약해지를 통해 나래안전 자회사로 폭탄던지기 할 수도 있고, 모회사의 인사정체를 해소하는 수단으로 쓸 수 있다.

가온그룹 임원급들의 진급이 살짝 밀릴 때 손자회사의 사장으로 보낼 수가 있을 테니까.

물론 손자회사에서는 임원 승진하는 길이 막히는 꼴이지만.

류지호는 서울로 복귀하자마자 래리 킴 회장과 나래안전 문제를 논의했다.

결론은 의외로 쉽게 도출됐다.


✻ ✻ ✻


서울로 올라온 류지호는 나래안전 시스템 문제를 래리 킴 회장에게 넘기고 몇 개의 행사를 골라 외부행사에 나섰다.

그 중에 하나가 서울시 주최 행사참석이었다.

류지호가 새롭게 삶을 이어가고 있는 지금까지 큰 틀의 역사가 거의 바뀌지 않고 흘러갔다.

그런데 역사가 바뀌는 일이 마침내 벌어졌다.

바로 제32대 서울시장에 자유국민당 재선의원 정의국이 당선된 것이다.

이전 삶에서 경일건설 회장, 서울시장을 거쳐 대통령까지 지냈던 이선택은 서울시장 경선과정에서 논란이 됐던 여러 문제들에 대해 검찰수사를 받는 처지가 됐다.

가온그룹과 다온로펌, 나래안전이 정의국의 당내 후보선출과 시장 당선을 은밀하게 돕긴 했지만, 역사와 다르게 흘러가게 될 줄은 몰랐다.

류지호가 보기에 이선택이나 정의국이나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어차피 정의국이 속한 정당이 보수를 표방하는 자국당인 이상 정책이나 정치적 행보가 이선택과 크게 다를 것 같지가 않았다.


[다른 정치인들보다 더 위험한 정치인들이 있다. 그들이 나쁜 사람이거나 좋은 일을 전혀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들이 추구하는 정책이 죽음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미국의 정신의학자 제임스 길리건이란 사람이 한 말이다.

미국의 공화당은 국민을 수치와 치욕에 노출시키기 쉬운 정책을 추구해왔다.

공화당 정권하에서 노동자는 언제든지 대체 가능한 인력으로 취급당했고, 복지정책은 거지들이나 좋아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개인의 노력을 유달리 강조함으로써 경쟁을 부추기고 소수자를 배제함으로써 다수의 결속을 다지는 정치적 수사와 정책들로 불평등을 생산했다.

그 과정에서 불평등은 오히려 사회 발전의 동력으로 숭배되고 있다.

심지어 사회 구성원 일부를 악마화함으로써 폭력을 조장하기까지 한다.

한국의 보수라고 불리는 정당도 미국의 공화당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은 공화당이나 민주당이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그 이름이 상징하는 정치적 가치는 중요하지 않다.

숭배까지는 아니지만, 백년이 넘는 세월동안 미국인들은 그 두 정당의 논리에 가스라이팅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 상태였으니까.

아무리 정치가 쇼라고 하더라도 그 쇼가 무엇을 대변하고 있는지를 유권자는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정치하는 놈들... 그 놈들이 다 그놈이지 뭐.”


그 같은 정치혐오에 빠져선 그 피해는 오로지 유권자가 감당해야 한다.

어떤 정당이 문제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어떤 정치인은 다른 어떤 정치인보다 더 해롭다는 사실이다.

유권자는 차선은 뽑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차악을 뽑을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사회적 스트레스 요인을 그나마 줄일 수가 있다.


“DMC사업이 서울시 역점 사업 중에 하나이긴 하지만, 가온그룹이 추진 중인 성수동 재개발문제도 큰 관심을 가지고 챙기겠습니다.”


언제 봤다고 정의국 시장이 유독 류지호에게 친근하게 굴었다.


“제 임기 동안 공약이 잘 이행될 수 있도록 의장님의 많은 조언과 협조 부탁드립니다.”

“제가 뭐라고 주제 넘게 조언을 하겠습니까. 시장님은 관료경험도 풍부하시니 잘하실 겁니다.”


이전 삶에서는 보수주의자라고 스스로를 규정한 지인들이 대기업 지원 ‘몰빵’ 에 대해 왜 그토록 당연하다는 듯 찬성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젠 어렴풋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안전해서다.

대기업은 투자하면 망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 때문이다.

외환위기 시기에 겪어봤지만 대기업도 얼마든지 망할 수 있다.

그 교훈으로 인해 더욱 더 대기업이 망하지 않도록 밀어주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피 같은 국민 세금이 대기업 회생 때마다 사용된다.


‘몰빵은 언제나 위험한 투자방식인데.’


투자의 기본 중에 하나가 분산투자다.

재벌 대기업에게 집중할 것인가.

오천만 국민에게 조금씩이라도 분산해서 투자할 것인가.

그것에 세제혜택, 정책, 복지라는 어떤 이름이 붙든지 간에.

국가가 국민 개개인에게 투자한다는 것 역시 일종의 분산투자다.

당장의 성과는 재벌 대기업이 내줄 것이다.

그런데 오천만 국민 각자에게 분산해서 투자한 것은 수백 배의 이익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투자 결과가 세대를 넘겨 뒤늦게 드러나서 그렇지.


“부디 이루고자 하는 정책과 비전을 모두 이뤄서 서울시가 세계적인 도시로 도약하는데 시장님의 이름이 앞서 거론되길 기원합니다.”


류지호는 정의국과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정의국이 서울시장을 거쳐 대권까지 도전하게 될지는 알 수 없다.

그것이 류지호와 가온그룹에 어떤 식으로 작용할지도 알 수 없다.

다만 류지호가 기억하는 것과 다른 방향으로 한국의 정치가 바뀌게 될 것이란 사실이 찜찜할 뿐.

당장은 고유현이 차기 대통령이 안 될 수도 있다.

내년에 다시 보수 정부가 들어설 수도 있다.

그것으로 인해 한국이 본래 역사와 달라지고 동북아시아가 바뀌면서 미국의 외교가 변화함으로써 세계정세가 류지호의 기억과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다.

나쁜 일일까.

불안해야 할까.

류지호는 크게 걱정이 되진 않았다.

그 동안 정치권력의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나름 준비를 해왔으니까.

설령 외풍이 심하게 분다고 할지라도 호락호락하게 당하지 않을 정도는 됐다.

권력자의 외압이나 기득권 담합으로 거대한 기업을 망하게 하는 시대도 아니고.


“그러니저러니 해도 새만금간척개발 민간주도에 대해 거대 양당 후보들이 전부 찬성하는 입장을 내놨으니 내년에는 가타부타 결판이 나겠어.”


대통령 후보의 공약(公約)이 막상 집권하면 공약(空約)이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지만.

왠지 새만금 문제가 다음 정부에서 좋은 방향으로 매듭이 지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작가의말

즐거운 하루와 함께 한 주 마무리 잘 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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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수가 얌전하도록 가만 놔둬라. (1) +7 23.05.26 3,187 116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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