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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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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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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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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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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맹수가 얌전하도록 가만 놔둬라.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2000년대 들어서며 충무로에 영화의 ABC도 모른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21세기적 가치인 창의력을 무기로 ‘디렉터스 체어’에 몸을 묻기도 하고, 열정과 경제력을 무기로 바다를 건너갔다 온 유학파 감독들이 메가폰을 잡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TV·CF·뮤직비디오 같은 관련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신인 아닌 신인들의 감독 데뷔도 문정성시를 이루는가 하면, 잘 쓴 시나리오 한편이 누군가의 직업적 팔자를 바꿔놓기도 했다.

한국영화 아카데미, 영상원 등 국내 고등교육기관에서 실전을 쌓고 현장에 투입된 감독들의 수도 만만치 않았고, 밥보다 영화를 우선했던 씨네필의 데뷔도 눈에 띄게 증가했다.

물론 연출부라는 길고 고단한 터널을 통과한 감독군의 무게도 여전히 묵직했다.

감독들의 출신지는 그대로 인맥형성의 보고다.

한솥밥을 먹은 사람들끼리 밀어주고 끌어주는 것은 당연지사다.

충무로 지도가 좀 더 세분화되어 그려지기 시작했다.

90년대 중반 대기업과 창투사 자본이 충무로에 쏟아져 들어올 때였다.


“입봉 못하면 등신!”


그런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돌았다.

하지만 외환위기가 영화계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영화제작 편수가 줄자 당연히 신인감독의 등용문이 바짝 쪼그라들었다.

90년대 중반 개나 소나 다 한다는 입봉 기회를 놓친 감독 후보들이 아쉬움의 한숨을 내쉬어야 했다.

헌데, 그 소리가 다시 충무로에서 조심스럽게 떠돌기 시작하고 있다.

다시금 눈 먼 돈들이 충무로에 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학파 출신 신인감독에게도 연출 기회가 다시 주어지기 시작했다.

그 동안 감독 한 둘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유학파 출신 감독의 흥행 성적은 그리 좋지 못했다.

아무리 아이디어가 참신하고 고전영화에서 빛나는 장면들을 멋지게 차용하는 등 영화에 대한 지식이 많더라도 영화는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다.

유학파들은 한국 영화판에 들어와 딜레마에 빠졌다.

할리우드 영화 인턴을 경험해 본 유학파들은 한국식 제작 시스템 적응에 애를 먹었다.

그렇다 보니 현장 장악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상업영화에서 이상주의적인 실험성을 추구한 나머지 이해하기 어려운 제작진행을 보여주며 스태프들로부터 멀어졌다.

유학파들은 외국 대학교에서 품었던 예술영화 창작에 대한 푸른 꿈과 흥행위주의 상업영화 사이에서 방황했다.

결국 타협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중에 한 명이 졸린 눈이 인상적인 서른 살의 신인 감독 스티브 조다.

한국이름은 조세민.

어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간 재미교포다.

류지호의 UCLA 영화과 후배다.

그는 WaW 엔터테인먼트가 투자·배급하고 필름앤쿠와 힘씨네마가 공동제작하는 영화 <이중간첩> 연출을 맡게 되었다.

필름앤쿠는 <민중의 적> 공동제작사고, 힘씨네마는 흥행보증수표 한정원 배우의 친형이 설립한 제작사다.


“제작사 크레디트 올라간다고 충무로에서 뒷말이 나온다며?”

“말 더럽게 많지. 잘나가는 동생의 위세를 빌어서 형이 영화 지분 챙긴다고.”


실상은 배우 한정원의 몸값이 너무 높은 관계로, 따로 영화사를 설립해 수익에 대한 지분으로 출연료를 보전해주는 편법을 쓴 것이다.


“정원 선배의 친형이 영화 제작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는 거 아니었어?”

“매니저 하다 제작자로 전향하는 경우가 없진 않잖아.”

“형이 세민이 좀 잘 챙겨줘.”

“디렉터 스티브가 네 밑에서 배웠다며? 잘하겠지.”


조세민 감독은 류지호의 UCLA 영화과 졸업작품 <Dream Come True>와 <Escape>에서 세컨 조감독으로 참여한 바 있다.


“꼴값스런 호칭은 뭐야?”

“하필 성이 조씨잖아. 조감독이라고 하면 헛갈릴 거 같아서.”


류지호는 합정동의 WaW 프로덕션 오피스에서 열린 <이중간첩> 고사장에 와 있다.

류지호 사단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다수 영화에 참여할 예정이다.

제작사 필름앤쿠에서는 <이중간첩> 감독에 중견감독을 원했는데, 본부장으로 승진한 전하영 피디가 류지호의 후배 조세민과 여주인공에 송라원을 추천했다.

필름앤쿠에서는 단편영화제 수상 경험이 있는 조세민을 마음에 들어 했고, <복수의 꽃>으로 충무로에서 가장 핫한 여자배우로 떠오른 송라원에 대해서도 대환영했다.

물론 남자주인공 한정원 역시 만족했다.


“감독님 오셨어요?”


송라원의 인사를 류지호가 건성으로 받았다.


“엉.”


송라원은 제작자, 프로듀서, 조세민 감독, 한정원 배우 앞에서 ‘윤수미’ 배역에 대한 오디션까지 치렀다.

송라원은 당연히 주연 배우도 오디션을 보는 줄 알았다.

류지호가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이다.

송라원은 오디션 경험이 거의 없었는데, 앞으로도 별로 없을 것 같았다.

<복수의 꽃>으로 일약 라이징 스타가 되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찍게 될 수도 있다.

오디션 연습을 해 둘 필요가 있었다.


“감독님, 근데요.”

“현대다, 이놈아.”

“그런 개그는 그만 하시면 안 될까요?”


류지호가 뻔뻔하게 되물었다.


“개그 아닌데? 말장난인데?”

“재미없어요.”

“무슨 말이 하고 싶은데?”

“오디션까지 보면서 주연배우가 만만하게 보여도 되나요?”

“어쭈구리. 여주 한 번 해봤다 이거야?”

“감독님들이 막 호텔에서 오디션 보자고 하면 어떻게 해요?”

“그런 쓰레기들은 상종도 하지 마. 시나리오 받으면 곧바로 쓰레기통에 버려. 김민아 대표에게 곧바로 이야기 하고.”

“혹시 하영 언니에게 말해도 되나요?”

“전하영 피디?”

“예.”

“전 피디가 편하면 그렇게 해도 돼. 만약 전 피디로 버거운 인간이라면 박건호 대표님께 말해도 되고.”

“내가 진짜 엄청난 빽이 있다니까.”

“빽같은 소리 한다. 괜히 나하고 엮여서 질 나쁜 루머와 스캔들로 고생해 인마.”

“여자배우로 감내해야 한다면서요?”

“배우병 걸려서 어깨에 벽돌 얹고 다니면 너 안 본다. 명심해.”

“전 그런 병 안 걸려요. 걱정 마세요.”

“정신과 전문의 상담 받는 건 절대 빼먹지 말고. 공황장애도 방치하면 나중에 심각해지니까.”

“또. 또. 오랜만에 만나서 아빠처럼 잔소리 하신다.”

“하늘같은 스승이 말씀하시는데.... 혼날래?”

“저 베를린 갔다 온 배우입니다.”

“난 아카데미 갔다 온 프로듀서다 이놈아.”


송라원이 혀를 쏙 내밀며 웃었다.


“애기처럼 굴지 말고.”

“네에~”


송라원이 넙죽 허리 숙여 인사하고 고사장 안쪽으로 달려갔다.

매니지먼트 CHAN에는 회귀 전 좋지 못한 선택을 했던 배우들이 다수 소속되어 있다.

류지호가 일일이 지목해 영입했다.

김민아에게 소속 배우들의 정신적·심리적 관리를 철저히 해줄 것을 신신당부했다.

사생활까지 관리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혼자서 끙끙 앓지 않도록 환경을 조성 중이다.


“헤이, Jay!"

"....!"


류지호는 인사를 한 청년을 보며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녀석은 꽤나 피곤한 스타일이었다.

적당히 건들거리고, 적당히 겸손하고, 적당히 오만한.

미국의 뮤직비디오계에서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는 감독 중에 한 명이다.

1998년 한국인 최초로 MTV Video Award에서 최우수 비디오상을 수상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이후, 올해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우수 비디오상과 최우수 감독상까지 거머쥐며 미국 최고의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인지도를 굳히며 미국 최고의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자리 잡은 조 안(Joe Ahn)이란 이름의 재미교포다.

할리우드에서 잘나가는 인간답게 겸손함을 모른다.

한국 언론에서 단신으로 보도되어 그런가 보다 하겠지만 실제 미국의 뮤직비디오 업계에서 명성이 꽤 높다.

당대 최고 팝 스타와 일하고 있고, 글로벌 브랜드 광고도 자주 찍는다.

조만간 할리우드에도 진출할 예정이다.

500억 짜리 뮤직비디오 혹은 오토바이 광고라는 혹평을 듣게 되게 되겠지만.


“뮤직비디오 촬영하러 왔냐?”

“응. 한 편만 더 작업하면 계약이 끝나.”


조 안은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했다.

따라서 대화는 영어로 진행했다.

조세민이 조 안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바빠서 못 온다고 하더니. 왔네?”


두 사람은 친구다.

성격이나 성향은 완전히 정반대다.


“한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스튜디오 작품이라고 해서 와봤어.”

“뭘 기대했는데?”

“Jay가 하는 사업이잖아. 자그마치 빅7의 오너.”


같은 교포지만 조세민이 한국어도 능숙한 것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Jay, 혹시 한국의 스튜디오에서 내 영화에 투자해 줄 순 없어?”

“워너-타임이랑 해. 난 네 영화 관심 없어.”

“내가 뮤직비디오처럼 찍을까봐?”

“.....”

“진지하게 찍으면 되잖아. 영화처럼.”

“그래도 싫어.”

“왜?”


조 안의 태도는 숫제 돈을 맡겨놓은 것 같은 투다.

뮤직비디오 건으로 클라이언트와 만날 때도 저런 투로 상대한다.

왜?

잘 나가니까.

미국의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잘 나가면 귀족, 못 나가면 평민이다.

인종, 나이, 학벌 다 필요 없다.

돈을 많이 받고 일하는 사람이 상전이다.

잘나갈 때 벌어놓은 돈으로 평생 떵떵거리고 사는 게 미국 연예계 종사자다.

마약에 중독되고, 사치 부리다가 파산하는 사람도 그 만큼 많지만.


“크리스탈큐브 에이전트에게 스크립트 보냈더라.”

“응. 윌 욱 리에게도 보냈지. 윌하고 친하다며?”

“윌하고 친한 것과 상관없이. 싫어.”

“왓 더.... 무슨 이유 때문인지 정확해 알려주면 안 돼?”

“......”

“혹시 크리스탈큐브와 무슨 문제라도 있었어?”

“자기도 백인들에게 인종차별 당하는 주제에 감히 한국인을 비하한 놈이야. 지금까지도 429와 관련해서 사과 한 마디 없고. 너는 속도 참 좋다. 네 동포들을 공격하라고 선동한 자식에게 수백 만 달러를 안겨주고 함께 일을 하고 싶냐?”

“.....!”

“네가 미국인인 건 알겠는데, 한국에서 비즈니스 하려면 입 조심해.”


류지호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며 다시 말을 이었다.


“여기 거치지 않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지 말고.”

“.....왓?”

“그럼 재밌게 지내다 돌아가라.”


류지호는 조 안의 팔뚝을 가볍게 툭 치고는, 다른 영화 관계자에게 걸어갔다.

누군가는 뒤끝이 너무 길게 간다고 할 수도 있다.

LA흑인폭동 때 현장의 참상을 겪지 않았거나 내막을 모르는 제3자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적어도 미국에서 살아가는 한국계들에게 류지호의 행동은 뒤끝이 아니라 적절한 응징이다.

류지호가 LA흑인폭동으로 피해를 본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럼에도 크리스탈큐브 같은 래퍼와 흑인사회 지도자들에게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

자신들이 백인들로부터 심한 차별을 받는 주제에 백인의 시선으로 한국인을 차별하는 모습이 역겨웠기 때문이다.

크리스탈큐브 같은 래퍼들은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담는 래퍼라고 주장한다.

실상은 갈등과 혐오를 부추겨 자신의 지갑을 불리는 삼류 광대일 뿐이다.

한편으로 조 안 같은 한국계들 역시 짜증나는 부류다.

평소에는 한국에 대해 관심도 없다.

그런데 원하는 걸 얻기 위해 한국을 비하하는 것까지 마다하지 않는 한국계가 있다.

철저히 미국인으로 살아가려면 한국인임을 완전히 지우고나 살지.

백인 사회에 기를 쓰고 들어가서는 아시안 주제에 백인의 시선으로 같은 아시아인을 깔보는 조 안 같은 교포 3세가 흑인 형제들에게 선정성과 혐오장사로 제 잇속을 챙기는 크리스탈큐브와 그리 다르게 보이지 않았다.

조세민이 조 안에게 한심한 투로 말했다.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리지 말라고 했어. Joe.”

“....왓?”

“맹수는 얌전히 있게 가만 놔두라고.”

“....왓?”


조 안은 친구 조세민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친절하게 설명한다고 해도 이해할 수 없겠지만.


❉ ❉ ❉


지난 2001년 7월, MBS ‘시사매거진 2080’은 가요순위 프로그램과 관련해 방송사와 연예인의 ‘노예계약’ 관행을 폭로했다.

올해 1월에는 연예계 비리탐사보도 후속편으로 연예기획사들이 방송사와 스포츠신문 간부들에게 거액의 홍보비를 건넨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프로그램이 방영된 후 큰 파문을 일으켜 8개의 문화단체가 참여한 대중음악개혁을위한연대모임과 언론개혁시민연대가 기자회견을 열어 검찰의 철저한 수사와 연예계의 자정노력을 촉구했다.


[검찰의 수사가 개인적인 단죄 차원을 넘어 방송가와 연예계 사이의 고질적인 유착관계 및 비리구조를 철저하게 밝혀내고, 불공정하고 불법적인 연예계의 제작과 홍보 관행에 대한 근절로 이어져야 한다. 더불어 방송·연예계에게도 연예오락 프로그램 제작 시스템의 대대적인 개혁을 요구한다.]


성명을 발표한 수 십 곳의 시민단체들의 거리집회도 이어졌다.

한편으로 간담회, 공개토론회, 가요순위 프로그램 폐지를 위한 온라인 서명운동을 재개했다.

또한 음반 PR비 명목의 뇌물, 영화·드라마·CF 등 연예산업 전반에 걸친 비리사실에 대한 제보를 받기 시작했다.

MBS 보도 직후 서울지검 강력부는 연예계 비리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먼저 과거 연예계 관련 수사기록을 검토했다.

1회성 대가관계에 따른 범죄가 대부분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며 국내 가요시장 규모가 폭발적으로 커졌다.

코스닥에 상장하는 대형 기획사가 생겨나기도 했다.

연예인 지망생이 크게 늘면서 부패구조가 심화됐다.

개별적인 비리에서 구조적인 비리로 바뀐 것이다.

서울지검 강력부는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하기 전, 거의 반년 동안 내사를 벌였다.

대형 기획사에 대한 내사부터 들어갔다.

진정서와 탄원서 등 제보가 쏟아졌다.

대형 기획사들이 코스닥에 등록하고 유·무상 증자를 하는 과정에서 자금을 어떻게 조성했는지, 세금은 제대로 신고했는지 등을 광범위하게 내사했다.

방송사와 PD 등에 대해서도 정보를 많이 모았다.

내사에 착수한 지 6개월.

7~8월 간 전면적인 수사에 들어갔다.

가장 먼저 대형 연예기획사 4군데를 압수수색했다.

이른바 빅4로 불리던 KM기획, 도레미음반, STAR-G, 갤럭시 엔터가 대상이었다.

검찰 수사팀은 기획사들의 매출 규모와 유무상 증자과정, 세무신고액 등을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서울지검 강력부 소속 검사와 직원 중에서 조직폭력 전담수사팀을 제외한 전원이 매달렸다.

특수부와 공안부, 형사부 소속 검사가 차출돼 투입될 정도로 대형수사였다.

수사 성과도 좋았다.

한 달 만에 방송사 PD, 스포츠신문 간부, 연예기획사 임직원 등 16명을 금품수수, 향응, 공금횡령, 주금(株金)가장납입, 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아울러 12명을 비슷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기획사 대표와 방송사 PD, 스포츠지 기자 등 20여 명이 도주했는데 그들에 대해 즉각 수배 조치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폭력조직 자금의 연예계 유입, 연예기획사의 정관계 로비 의혹, 성상납 의혹에 대한 수사로 확대됐다.

또 서울지검은 대형 기획사가 증자를 통해 올린 시세 차익금이 어디로 흘러갔는지도 수사했다.

단순하게 접대비로 들어갔다고 보기에는 상당한 거액이었기 때문이다.

허위 장부를 만들어 기획사를 비호하거나 스폰서 역할을 했던 정·관계 인사들에게도 흘러갔는지 수사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특히나 심혈을 기울였던 것은 기획사로 조폭의 자금이 유입되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매니지먼트 CHAN 역시 압수수색을 피할 수 없었다.

김민아와 박현도가 검찰에 출석해 관련 조사를 받기도 했다.

서면으로 조사를 대신해도 되는데 굳이 검찰에 출석해서 연예면에 기사까지 나갔다.

류지호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신효정 변호사를 자신의 집무실로 불러들였다.


“실제로 직·간접적으로 조폭이 개입한 정황이 포착되었다고 해요. 그래서 어떤 자금이 기획사로 들어갔고, 거꾸로 기획사의 돈이 어떻게 조폭으로 흘러들어갔는지 수사했죠. 연예인을 기획 행사 같은 곳에 출연시키는 과정에서 조폭들이 출연을 강요하거나 갈취한 혐의는 없는지도 들여다봤다고 해요.”


검찰의 또 다른 관심 사안은 성상납 의혹이었다.

내사 과정에서 많은 정보들이 수집되었다.

시중에 나도는 소문이나 증권가 찌라시까지 검토했다.

일부 연예인을 실제 조사했다.

성적인 만족을 줄 수 있는 향응을 제공했는지 확인했다.


“이번에는 적당히 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네요. 검사들이 휴가까지 반납하고 부장검사가 장인상을 당했는데도 수사지휘에 집중했다면서요?”

“얼마나 신나겠어요? 시민들이 피자나 통닭을 보내면서 응원하고 있는데.”


하지만 검찰 정기인사를 앞두고 미묘한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연예계 비리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강골로 알려진 부장검사가 정관계로 수사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사방에서 압력이 들어오고 있다.

부장검사가 인사발령이 날 것이란 소문이 검찰 안팎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는 류지호는 가슴이 답답했다.

이 시기에 의지를 가지고 있던 검찰과 경찰이 좀 더 밀어붙여야 하는데.

그렇다면 훗날 모 여배우의 자살도 벌어지지 않을 테고, 연예계에 만연한 성상납에 대해 강력한 경고를 보낼 수도 있을 텐데.


“흐지부지 될 겁니다.”


신효정의 단언에 류지호가 기어코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당으로서는 아무래도 부담이 되겠죠?”

“검찰에서 흘러나오는 말로 정관계 인사 대부분이 여당 측 인사들이니까요. 야당 쪽 인사들보다 여당에게 치명적인 것이 사실입니다.”

“레임덕이 시작된 작년에 영화판 사정바람이 불 때 화끈하게 처리했어야 했는데, 아쉽네요.”

“작년 영화계 수사는 사실 감독님과 BS가 타깃이었다고 들었어요.”

“나를요?”

“검찰이나 정계 쪽에서 가온그룹과 감독님을 들여다보고 싶었던 모양이에요.”

“건수를 잡아놨다가 이슈가 필요할 때 터뜨리고 싶었나 보네요?”


이른바 검찰 캐비닛 수사다.


“아마, 언론과 손뼉을 마주쳤다면, 연일 가온그룹과 감독님 이야기로 기사가 도배가 되었을지도 몰랐어요.”


작년에 있었던 영화계 비리 수사에서 WaW 엔터테인먼트는 100만 원의 벌금을 부과 받았다.

비리 때문이 아니었다.

별 건 수사로 1,000만 원 가량의 세금누락에 대한 벌금을 냈다.

공교롭게도 그 무렵에 검찰 정기인사가 단행됐다.

영화계 비리 수사를 주도하던 주요 검찰 인사들이 전보발령이 되었다.

류지호의 사람들이 관여하지 않았다.

한국영화산업에 들어와 있는 다른 대기업들이 손을 썼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작년에 스무 명 가까운 영화인들이 구속됐다.

영화계 수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만 하니 가요계 부패가 터졌다.

온갖 부패가 만연한 엔터테인먼트 업계라고 하지만, 어딘지 기획수사의 냄새가 진했다.


“만약 이번 정기인사에서 부장검사가 지방으로 인사 발령이 나면 어떻게 될까요?”


이 시기 서울지검 강력부는 연예계 비리수사와 관련해 20명 넘게 구속했고, 20명을 수배했으며, 그 외 상당수를 불구속하는 등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수사가 매끄럽지 않을 것이 불 보듯 뻔합니다. 김 부장은 서울지검 안에서도 강골 중에 강골로 유명하니까요.”

“정기인사가 맞긴 해요?”

“조금 늦춰지긴 했지만 정기인사는 맞아요.”

“부장검사는 어떤 사람이에요?”

“공무원이 사령장을 받으면 승복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고 아무 소리 않고 지방으로 내려갈 겁니다. 속에선 찬바람이 일겠지만. 그게 상명하복의 검찰이니까요.”


두 달여 간, 서울지검 강력부가 방송사에 대해 전방위적인 수사를 벌였다.

여러 명이 구속되면서 방송 프로그램 제작과 방영에 차질을 빗기도 했다.

물론 핑계다.

방송사 간부치고 구리지 않은 인간이 없다.

모든 방송사들이 검찰을 성토하고 나섰다.

자신들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채널을 동원해 수사팀을 압박했다.

게다가 정권실세들의 성추문을 파고들어가니 여당으로써는 담당 부장을 바꾸는 수밖에 없었다.

수사를 무력화시키는 방법은 지휘관 교체 말고는 답이 없으니까.

거대한 부패카르텔의 한 축으로 변질된 검찰을 류지호는 좋게 보지 않았다.

다만 이번 연예계 수사 같은 것에서는 나라가 뒤엎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권력자든 뭐든 끝까지 물고 늘어졌으면 하는 결기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방법이 없겠어요?”


판이 벌어졌을 때 화끈하게 업계를 뒤집어엎어야 했다.

그렇다고 해서 고질적인 연예계 금품 및 향응 제공 더 나아가 성접대가 뿌리 뽑히지는 않을 테지만.

그렇다고 매번 적당히 뭉개고 가다가는 피해자만 수없이 양산할 뿐이다.


“일단 김 부장의 지방 발령은 기정사실로 상정하고, 후속 수사팀에 그만한 강골 검사를 앉히는 수밖에요.”

“이미 정관계로 파고들지 말라는 사인을 보냈다잖아요. 누가 정관계를 들쑤시겠어요?”

“타협을 봐야 합니다. 정관계는 건드리지 말고, 방송, 영화계 그리고 투자회사 임원, 재계의 망나니들 쪽으로 집중을 해야 할 것 같아요.”


류지호가 못마땅한 투로 물었다.


“정관계에는 면죄부를 주자?”

“수사를 진행하려면 어쩔 수 없어요. 아마 정관계를 빼고, 재계 일부나 신흥 자본가 위주로 성과를 낼 수 있으면 도리어 여당에서 좋아할 지도 모르고요. 반재벌 노선에 부합하기도 하고. 진보시민단체와 연합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써먹을 수도 있고요.”

“검찰 내부에서도 얘기가 있을 것 아닙니까? 나름대로 짚이는 바가 있었을 텐데요?”

“물론 추측하는 건 있죠. 어떤 세력이 좌지우지하고 있는지. 검찰 내부에서도 말이 많다고 들었어요. 민감한 부분까지 깊이 들어간 탓에 인사조치될 거라는 소문이 파다해서 후임 수사팀은 수사를 포기하고 주저앉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게다가 그 팀이 사고를 쳤잖아요.”

“고문치사사건?”


연예계 비리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일부 경찰이 강압 수사한 사실이 밝혀졌다.

여론이 들끓으며 코미디언 출신 영화 제작자가 이번 연예계 비리수사에서 검찰을 대상으로 고소·고발전을 벌이게 된다.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 탓하는 전형적인 상황이 펼쳐진다.


“그걸 걸고넘어지게 되면, 강력부가 지금까지 쌓아올린 탑이 허물어지고 연예계 비리 수사도 미봉에 그칠 걸요.”

“거론되고 있는 정치권 인사가 세 명이었죠?”

“그보다 많다고 봐야 해요. 전·현직 의원들과 행정부의 유력인사들 여러 사람이 거론되고 있는 건 사실이니까요.”

“여러 사람이라면 10명 이상?”

“대여섯 명. 성문제는 내밀한 문제이기도 하고, 그를 입증하기도 쉽지 않은 사건이에요.”

“연예계 성비리에 대한 수사만큼이라도 계속 강력하게 밀어붙일 수 없겠어요?”

“좀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후임 검사가 의지가 있어야 하고, 지검장이 정치권과 협상을 해야 할 겁니다. 정관계로 수사를 확대하지 않겠다는 밀약 정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성상납은 주로 정관계 인사 로비에서 이루저진다.

그들을 빼놓으면 수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사 6개월, 본 수사 1개월이 막 경과한 상황입니다. 재계와 전현직 거물 방송국 관계자가 연루되지 않았을 리가 없어요. 일단은 정관계는 빼놓고, 나머지 부분에 대한 강력한 수사와 처벌의 본보기를 보인 후 언론에서 자연스럽게 정관계에 대한 미진한 수사를 대대적으로 떠들도록 해야겠지요.”

“내가 후임으로 수사를 진행하게 될 검사를 만나보는 건 어떻습니까?”


신효정이 화들짝 놀라며 반발했다.


“안 됩니다! 절대로.”


작가의말

평안한 주말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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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3 잘 참으셨습니다. +6 23.05.29 3,172 123 25쪽
» 맹수가 얌전하도록 가만 놔둬라. (2) +5 23.05.27 3,250 119 24쪽
511 맹수가 얌전하도록 가만 놔둬라. (1) +7 23.05.26 3,187 116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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